숲노래 책숲마실


마음이 닿으니까 (2021.7.29.)

― 부산 〈백경〉



  반가운 일은 불쑥 찾아옵니다. 늘 반가운 일이라면 온하루가 불쑥불쑥 솟아나는 들풀이 물결친다고 할 만해요. 서운한 일은 문득 찾아듭니다. 늘 서운한 일이라면 온날이 문득문득 쓸쓸하다고 할 만해요. 살면서 반갑거나 서운한 일을 마주할 적에 ‘이처럼 느끼는 내’가 참다운 마음인지 아닌지 돌아봅니다. 부산처럼 커다란 고장에 마실하면 으레 밀치거나 밟고 지나가는 바쁜 사람이 가득합니다. 부산 같은 큰고장에는 바지런히 살림을 지으며 즐겁게 나누려는 사람도 많아요.


  시골이기에 씩씩하거나 푸르게 마음을 기울이는 일꾼이 적지도 많지도 않습니다. 이 삶자락을 헤아리노라면 언제나 하나를 느껴요. 삶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고 노상 새롭게 맞닥뜨리는 이야기일 뿐이니, 스스로 사랑이란 눈빛이 되어 즐겁게 노래할 줄 아는 마음으로 다스릴 노릇이지 싶습니다.


  한두 다리를 거치면 모두 이웃이라고 합니다. 한두 다리조차 안 건너더라도 서로 동무라고 느껴요. 마음을 틔우면 누구나 이웃이요, 마음을 닫으면 아무도 동무가 아닙니다. 왼켠하고 오른켠을 가른다든지, 너랑 나를 자른다면, 끼리끼리 만날 뿐이면서 울타리를 쌓아요. 갈랫길을 생각하며 걷고 전철을 갈아타서 〈백경〉에 닿습니다. 이리로 가면 되려나 어림하고, 요쪽으로 돌면 나오려나 헤아립니다.


  모든 책집은 턱을 넘어설 때까지 수수께끼입니다. 어느 책집이든 턱 너머로 들어서면 마을이며 고을을 빛내는 이야기가 흐드러지며 해맑습니다. 더 크기에 책을 더 갖추지 않고, 더 작기에 책을 덜 갖추지 않아요. 우리는 마음에 즐겁게 노래를 담고 싶은 만한 크기로, 또 이웃이랑 동무하고 사이좋게 춤추며 놀고 싶은 만한 너비로 책집을 꾸리고 보금자리를 여밉니다.


  책을 사러 책집에 갑니다. 새책집 새책이라면 어느 책집에서든 장만할 만하고, 헌책집 헌책이라면 바로 이 책집에 가야 비로소 장만합니다. 마을책집에서 마주하는 새책은 날마다 숱하게 넘실거리는 새 이야기 가운데 오늘 이 자리에서 더 소근소근 나누고 싶은 마음을 들려줍니다. 마을책집에서 스치는 헌책은 오늘까지 살아낸 발자취에 서린 숨빛을 새삼스레 나누고 싶은 마음을 밝혀요.


  책을 살 적에는 따로 안 살펴서 몰랐는데, 이해인 님 책은 안쪽에 글님 손글씨가 깃듭니다. 책집지기님이 여쭈어 받아오시는구나 싶습니다. 모든 책은 마음이 닿기에 씁니다. 어느 책이든 마음이 닿기에 알아봅니다. 모든 책은 마음을 기울이기에 책시렁에 건사합니다. 어느 책이든 마음을 담아서 읽고 새기며 이야기합니다. 흰고래는 바다에서도 뭍에서도 흰고래입니다. 하얀 빛살이란 해를 품은 이야기입니다.


ㅅㄴㄹ


《그 사랑 놓치지 마라》(이해인, 마음산책, 2019.11.25.)

《맹수와 사냥꾼 1》(김왕석, 스포츠서울, 1989.9.20.)

《하하하, 부산》(배길남, 책읽는저녁, 2019.11.1.)

《the two KOREAS》(National Geographic, 2003.6.)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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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담아 (2021.8.18.)

― 인천 〈문학소매점〉



  ‘문학’이라는 한자말은 막상 쓴 지 얼마 안 됩니다. 지난날에는 수수하게 ‘글’이라고만 했습니다. 글을 쓰거나 읽는 사람도, 글을 모르거나 안 읽는 사람도 “눈으로 보도록 담아는 말소리”를 그저 ‘글’이라 했어요. “모습을 알아보도록 금하고 빛깔로 담아낼” 적에는 ‘그림’이요, “뜻을 알아채도록 무늬를 지어 담아낼” 적에는 ‘글’입니다.


  바야흐로 수수하게 ‘글’이라고 하기에는 좀 모자라다 싶기에 ‘글꽃’이란 이름을 지은 배움어른이 있어요. 뜻으로만 새긴다면 “문학 = 글갈(글이라는 갈래)”이에요. “어학(언어학) = 말갈(말이라는 갈래)”이거든요. ‘글갈·말갈’이라 할 적에 ‘갈’은 ‘갈래’이기도 하고 ‘갈다·갈고닦다’이기도 합니다. ‘갈·가’는 ‘가다듬다·가다·가꾸다’하고 말밑을 잇습니다. 글을 갈고닦거나 가다듬거나 가꾸기에 ‘글갈’이요, 글이 눈부시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워 ‘글꽃’이지요.


  수수하게 ‘글’이라고 할 적에는 어린이랑 함께할 만합니다. 배움턱에 들어서지 못한 어른하고 같이할 만해요. ‘글꽃’이라고 할 적에는 어린이도 어른도 즐겁게 누릴 만하고, ‘글갈’이라고 할 적에는 누구나 스스로 차근차근 갈고닦으면서 나아가는 길인 줄 돌아볼 만합니다.


  지난 마실길에 〈문학소매점〉에서 신나게 찰칵찰칵했는데, 모두 가뭇없이 사라졌어요. 그날 다른 책집에서 찰칵찰칵한 이야기도, 인천 골목에서 찰칵찰칵한 발걸음도 나란히 자취를 감췄어요. 끄응 하고 앓아 봤자 어쩔 길이 없습니다. 부천으로 마실할 일이 있어 새삼스레 〈문학소매점〉을 찾아갑니다. 올해에 두걸음입니다. 멀고먼 길이라지만 책집 미닫이에 건 꽃천을 보면서, 또 책집 곳곳에 드리운 꽃무늬를 보면서, 이곳에서 글이며 살림이며 손길을 꽃답게 보듬는 숨빛을 느낍니다.


  곁에 아이들이 찾아오기 앞서까지는 ‘문학’을 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곁에 아이들이 찾아와 재잘재잘 노래하고 속닥속닥 소꿉책놀이를 함께하는 길에 어느새 노래꽃(동시)을 쓰고 꽃글(동화)을 씁니다. 다만, 저는 문학은 안 합니다. 어린이문학도 안 합니다. 그저 글을 쓰고 여며요. 아이하고 글놀이를 하고 글살림을 지으며 글사랑을 나눠요. 마음을 그려서 담아내는 글로 이야기꽃을 지핍니다.


  글꽃책집(문학책방)으로 찾아가려고 골목을 걷는 사이에, 또 글꽃책집에서 글꽃책을 누리고서 전철나루로 돌아가는 틈에, 골목집 조그마한 꽃그릇하고 텃밭에 깃든 풀벌레가 그윽그윽 부르는 노래를 듣습니다. 풀노래가 들리면 걷다가 멈춥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입니다. 가을볕을 부르고 가을내를 퍼뜨리는 사랑을 받습니다.


ㅅㄴㄹ


《고양이 게스트하우스 한국어》(권창섭, 창비, 2021.7.25.)

《우리 곧 사라져요》(이예숙, 노란상상, 2021.8.17.)

《혁명을 꿈꾼 독서가들》(강성호, 오월의봄, 2021.7.29.)

‘문학소매점’ 천바구니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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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미리내 (2021.8.18.)

― 부천 〈용서점〉



  인천에서 나고자란 사람한테 부천은 가까우면서 멉니다. 오히려 서울보다 멀어요. 부천에서 나고자란 사람도 인천이 서울보다 멀다고 느끼려나 곧잘 생각합니다. 시골에서 살며 읍내도 면소재지도 다 멉니다. 굳이 안 가까이하려고 시골에서 살거든요. 한참을 달려야 맞이하는 읍내라든지 큰고장은 언제나 잿빛집이 가득하고 부릉부릉 시끄럽습니다. 그렇지만 역곡나루에서 내려 천천히 걸으며 “이곳에서 우람하게 키가 크는 이 거리나무가 싱그럽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어느덧 가을 어귀인 터라 조그마한 풀밭이 있으면 어김없이 자그마한 풀벌레가 살며시 노래합니다.


  묵직한 등짐을 이고 걷다가 멈춥니다. 거리나무 곁에 서서 귀를 기울입니다. “넌 이곳에서 어떤 하루를 누구한테 노래로 들려주려는 마음이니?” 풀벌레한테 속삭이고, 나무줄기를 쓰다듬습니다. 하늘이 조금만 보이지만 구름을 올려다봅니다.


  마을책집 〈용서점〉은 호젓한 마을 한켠에 그림처럼 깃들었습니다. 왜 그림이냐 하면, 둘레 마을살림이 그림이니까 슬며시 이곳에 스미거든요. 일부러 등짐을 안 내려놓은 차림으로 책집 앞에서 찰칵찰칵 몇 자락 찍습니다. 커다란 등짐을 짊어진 아저씨가 뭔가 찍으니 이 앞을 지나가는 마을사람 여럿이 책집을 비로소 바라봅니다. “어, 여기에 책집이 다 있네?” “몰랐어? 좀 됐는데?” “처음 봤어.” “그래? 그럼 다음에 찾아오자.” 마을사람 수다를 듣고서 책집으로 들어섭니다.


  오늘 부천까지 여덟 시간 남짓 들여서 찾아왔습니다. 부천하고 부평 사이에서 살며 그림책을 빚는 《하루거리》 김휘훈 님을 만나거든요. 이른아침부터 한낮까지 말없이 길에서 노래꽃(동시)하고 꽃글(동화)을 썼다가 비로소 말길을 엽니다. 함께 책시렁을 돌아보고, 이주일 아저씨 책이 보여 그림님한테 건네어 봅니다. 우리 집 책순이가 반길 《반지의 제왕》 2001년 옮김판이 짝이 안 맞아도 둘 있습니다. 1980년대에 나온 옮김판하고 얼마나 다를까 궁금합니다. 짝은 나중에 다 찾겠지요.


  진작 장만할 수 있었으나 미루고 미룬 〈용서점〉 지기님 첫 책을 드디어 오늘 장만합니다. 다른 책집에서 살까 말까 만지작거리기만 했어요. 왜냐하면 〈용서점〉으로 마실해서 책집지기님 손글씨를 받으며 사고 싶었거든요.


  부천이든 인천이든 서울이든, 또 부산이든 광주이든 순천이든 별이 몇 송이 안 보입니다. 그래도 띄엄띄엄 몇 송이를 어림하지요. 비록 매캐한 하늘빛에 가려 별빛이 스러지는 큰고장이더라도 우리가 마음눈을 틔운다면 언제 어디에서나 미리내잔치를 누리리라 생각합니다. 책 한 자락하고 글 한 줄에서도 글님 눈빛을 읽어낼 만하고, 서로 주고받는 말 한 마디에서도 살림빛을 맞이할 만하고요.


ㅅㄴㄹ


《낮 12시, 책방 문을 엽니다》(박용희, 꿈꾸는인생, 2020.5.1.)

《브레히트 초기시 연구》(이희원, 예문, 1989.7.

《詩神의 住所》(송욱, 일조각, 1981.3.10.)

- 1981.4.25. 李生珍 東洋書林

《하나님은 머슴도 안 살아봤나?》(한희철, 다산글방, 1991.3.10.)

《사무원》(김기택, 창비, 1999.5.1.)

《글 잘 쓰는 법, 그딴 건 없지만》(다나카 히로노부/박정임 옮김, 인플루엔셜, 2020.5.15.)

《오늘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삽니다》(정해심, 호호아, 2021.8.4.)

《무라카미 라디오》(무라카미 하루키/권남희 옮김, 까치, 2001.10.5.)

《들꽃처럼 살으리라》(최영배, 까치, 2002.12.20.)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정순재, 분도출판사, 1998.2.24.)

《우리말 갈래사전》(박용수 엮음, 한길사, 1989.2.20.)

《반지의 제왕 2》(J.R.R.톨킨/김번·김보원·이미애 옮김, 씨앗을뿌리는사람, 2002.11.25.)

《반지의 제왕 3》(J.R.R.톨킨/김번·김보원·이미애 옮김, 씨앗을뿌리는사람, 2002.11.25.)

《미국 문화의 몰락》(모리스 버만/신현식 옮김, 황금가지, 2002.6.2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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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새롭게 (2021.5.13.)

― 서울 〈신고서점〉



  제가 어릴 적에도 그랬고, 우리 집 아이들도 그러한데, 아이들은 손에 책을 쥘 적에 “어느 해에 나왔는가”를 안 따집니다. “누가 썼는지”나 “어느 곳에서 펴냈는지”도 거의 안 봅니다. 그저 손에 쥔 책에 흐르는 이야기를 읽으려 합니다.


  우리가 어른이라면 늘 어린이한테서 배워야 할 노릇이요, 책을 마주하는 눈빛도 어린이한테서 배울 일이라고 여겨요. 다만, 쥠새는 어른이 어린이한테 찬찬히 짚어 주어야겠지요. 책이며 종이가 안 다치도록 쥐고서 가볍게 넘기는 손길은 어린이가 어른한테서 배울 대목입니다.


  서울에 계신 이웃님이 모는 자동차를 함께 타고서 〈신고서점〉을 찾아갑니다. 서울에서는 버스·전철·자전거나 두 다리로만 다녀 버릇해서 자동차로 움직이자니 무척 낯선데, 생각보다 빠르군요. 열두 시 언저리에 달렸기에, 또 서울 바깥으로 나아가는 길인 터라 덜 막히지 싶습니다. 고흥으로 돌아갈 버스때를 어림하면서 골마루를 돌다가 《최선 컬러학습대백과》 열 자락을 봅니다. 묵은 책이지만 단출하게 담은 글·그림이 아이들한테 이바지하겠다고 느낍니다. 다만 1981년에 계몽사는 일본 책을 베끼고 훔쳐서 이 책을 엮었어요. 어릴 적에는 몰랐고,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습니다. 그때 그분들(엮은이·펴낸이)은 이 민낯을 뉘우친 적 있을까요?


  오늘 바라보자면 “묵은 책”이나, 오늘을 잊고서 책으로만 보자면 “책이 태어나고 그무렵 사람들이 마주하던 살림새를 읽는 길잡이”입니다. 1978년에는 이러한 책을 즐기고 엮었구나 하고, 1987년에는 이런 책을 내고 읽었구나 하고, 1970년에는 이런 책을 주고받거나 책숲(도서관)에 건사했구나 하고 돌아봅니다.


  우리가 쓰는 모든 글은 뒷사람이 물려받습니다. 우리가 읽는 모든 책도 돌고돌아서 헌책 한 자락으로 아이들이 이어받아요. 오늘 쓰는 글에 어떤 하루를 담으며 아이들한테 물려주려는 마음인지 생각해 봅니다. 오늘 읽는 책으로 어떤 하루를 배워서 아이들한테 이어줄 만한지 되새깁니다.


  서른 해나 쉰 해 뒤에 태어나서 무럭무럭 자라 젊은 눈빛이 된 사람들한테 어떤 씨앗을 남기려는 글과 책인지 생각하지 않는다면, 먼 앞날뿐 아니라 바로 오늘부터 안 즐겁고 안 아름답기 마련입니다. 글쓰기나 책읽기는 “눈치를 볼 일”이 아니되 “아이들을 볼 일”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아이를 비롯해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이 읽을 글이요 책이라고 또렷이 깨달으면서 글줄과 책자락을 여미어야 비로소 어른이요 어버이라 하겠지요. 1991년에 나온 ‘노동소설’을 읽다가 쓸쓸히 덮습니다. ‘일하고 살림하는 목소리’가 아닌 ‘싸움하는 머리띠’만 넘실거렸군요.


ㅅㄴㄹ


《헤밍웨이 서한집》(칼로스 베이커 묶음/이지현 옮김, 예유사, 1981.11.10.)

《철강지대》(정화진, 풀빛, 1991.3.13.)

《韓國 歷代 名詩全書》(문헌편찬회·이병두 옮김, 문헌편찬회 출판부, 1959.2.15.)

《Reader's Digest 1977.3.》(Reader's Digest, 1977)

《Reader's Digest 1978.3.》(Reader's Digest, 1978)

《Reader's Digest 1978.6.》(Reader's Digest, 1978)

《Reader's Digest 1978.11.》(Reader's Digest, 1978)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이면우, 창작과비평사, 2001.10.10.)

《기형도 산문집》(기형도, 살림, 1990.3.1.첫/1996.9.20.21벌)

《이단 종교 비판》(고든 알 루이스/김진홍 옮김, 한국개혁주의신행협회, 1972.7.10.)

《週刊朝鮮 937호》(안병훈 엮음, 조선일보사, 1987.3.8.)

《BASEBALL 20호》(하일성 엮음, 인준미디어, 1997.11.1.)

《相對性原理》(제임즈 코울먼/박봉렬 감수, 현암사, 1970.9.25.)

《최신 컬러학습대백과 1∼10》(편집부, 계몽사, 1981.4.1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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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여는 빛 (2021.7.17.)

― 제주 〈주제 넘은 서점〉



  곽지 바닷가에서 아침을 맞이하지만 바다를 보러 나가지는 않습니다. 오늘 자전거로 달릴 길을 어림하면서 어제 하루 제주에서 보낸 자취를 바지런히 갈무리합니다. 등짐은 아직 묵직합니다. 무게를 못 줄인 채 자전거에 앉아 땡볕을 고스란히 받습니다. 오늘은 하가마을을 거쳐 제주시까지 달릴 생각입니다.


  자동차가 안 다닐 만한 길을 찾아서 달리자니 어느새 오르막입니다. 그래요, 한라산을 바라보며 달리니 내리막 없이 영차영차 합니다. 훅훅 가쁘게 숨을 고르면서 땡볕 오르막을 넘고 다시 넘다가 바야흐로 〈주제 넘은 서점〉이 깃든 마을에 닿습니다. 그러나 책집을 못 찾고 더럭초등학교 앞으로 갔다가 못가를 돌았어요.


  틀림없이 이 둘레인데 싶어 자전거에서 내려 집을 하나하나 보다가 아주 조그맣게 선 알림판을 봅니다. 옳거니, 수줍고도 조그맣게 붙인 글씨로구나.


  이곳 〈주제 넘은 서점〉은 아침책집입니다. 아침 여덟 시∼열두 시 사이에 열어요. 그 뒤로는 책집지기님이 다른 일을 보러 나가신다지요. 아침 열두 시에 닫기에 오늘은 아침에 쓸 글을 허둥지둥 매듭짓고서 달렸습니다. 책집 앞에서 땀을 들이고 손낯을 씻습니다. 바람을 쐬고 햇볕에 땀내음을 말립니다. 다시 손낯을 씻고서 드디어 들어섭니다.


  살림집하고 책집이 맞붙은, 아니 살림집 한켠을 책집으로 꾸민, 포근하면서 멋스러운 책샘터로구나 싶습니다. 마을 한켠이나 골목 안쪽에 깃든 책집은 ‘쉼터’라면, 이곳처럼 여민 책집은 ‘샘터’라고 느낍니다. 책집지기님 손길이 닿은 책으로 가득한 마루하고 책시렁을 돌아봅니다. 우리는 이제야 책집으로 품을 들여 마실을 하는 몸차림을 익히는 새날로 접어든다고 할 만합니다. 작은마을이며 배움터 둘레로 작은책집이 몇 군데씩 있던 지난날에는 책집마실을 생각한 사람이 드물었어요. 책집이 빠르게 사라지던 1990∼2010년 사이에도 굳이 책집마실을 하려는 분은 안 많았습니다. 이동안 숱한 마을책집은 조용히 버티며 책빛을 바라보았어요.


  누리책집이 엄청나게 늘고 판을 키운 오늘이 되고서야 비로소 손전화를 끄고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달려 마을책집으로 조용히 찾아가서 호젓이 하루를 누리며 등짐을 묵직하게 채우는 이웃님이 천천히 늘어납니다. 책집을 찾아가는 길은 “책만 찾아나서는 발걸음”이 아닙니다. “책집이 깃든 마을을 새롭게 만나려는 걸음”입니다. 왜 이 마을에 이 같은 책집을 여는가를 몸으로 읽고, 왜 이곳에 이 책을 갖추는가를 마음으로 느껴, 책 한 자락을 사랑으로 읽는 숨결을 처음부터 새롭게 생각하려고 책집마실·책숲마실을 할 테지요. 이다음엔 더 일찍 찾아와야겠어요.


ㅅㄴㄹ


《안나는 고래래요》(다비트 칼리 글·소냐 보가예바 그림/최유진 옮김, 썬더키즈, 2020.7.1.)

《키오스크》(아네테 멜레세/김서정 옮김, 미래아이, 2021.6.30.)

《세상에서 가장 멋진 책방》(히구치 유코/김숙 옮김, 북뱅크, 2021.3.15.)

《지구상에서 가장 멋진 서점들에 붙이는 각주》(밥 엑스타인/최세희 옮김, 현대문학, 2019.4.30.)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숲노래·최종규 글, 강우근 그림, 철수와영희, 2014.3.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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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8-16 1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제 넘은 서점
위트있는 중의법
너무 예쁘네요
습기와 소금기에 책이 걱정되긴 하지만,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예요^^♡

숲노래 2021-08-16 10:50   좋아요 2 | URL
아침 일찍 열고 12시에 닫기에
부지런히 나들이해야 하는 곳인데
찾아가 보시면
깜짝 놀랄 만큼 곱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