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살림숲을 건사하는 손 (2021.7.14.)

― 제주 〈동림당〉



  아침 아홉 시에 고흥 녹동나루에서 배를 타려고 새벽 여섯 시부터 자전거를 탑니다. 제주에서 만날 이웃님한테 드릴 책이며 노래꽃판을 잔뜩 짊어지고 달리니 등판과 등짐은 땀으로 흐벅집니다. 뱃길은 한나절(4시간)입니다. 이동안 손님칸에 누워서 등허리를 펴기도 하고 노래꽃을 새로 씁니다. 글꽃(동화)도 한 자락 써요.


  배에서 내리고 보니 성산나루가 아닌 제주나루입니다. 내릴 곳을 엉뚱하게 알았으니, 해날(일요일) 돌아갈 배도 제주나루인 듯한데, 물어볼 사람이 없습니다. 손님이 배에서 다 내리니 제주나루 일꾼이 모두 자리를 비웁니다. 제주로 오면 다니려고 짠 그림이 모두 틀어집니다만, 제주 시내 책집으로 가자고 생각하며 〈동림당〉을 찾아 달립니다. 걷거나 버스를 탈 적에는 몰랐는데 제주 시내에 오르내리막이 꽤 많군요. 인천이나 부산도 엇비슷합니다. 오래도록 이은 마을은 비탈을 그대로 살려 디딤돌을 놓아요. 이때에는 가파른 데도 많지만 집집마다 해바람을 알맞게 나눕니다. 처음부터 삽차로 크게 밀어 판판하게 때려지은 데는 높다란 잿빛집이 가득하고 자동차가 다니기에 좋습니다.


  제주 〈동림당〉은 책집하고 살림숲(박물관)을 나란히 건사합니다. 묵은 책·새뜸(신문)·세간에서 제주 발자취를 조촐히 읽도록 선보입니다. 흔히 ‘박물관’이란 일본스러운 이름을 쓰지만, 이 이름으로는 어린이한테 우리 삶자취를 들려주기 어렵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살림숲’이란 이름을 지어 보았어요. 우리가 살림을 가꾸면서 곁에 둔 연모나 연장을 그러모은 데를 가리키자면 ‘박물 + 관’이 아닌 ‘살림 + 숲’이 어울리겠다고 생각합니다.


  나무숲이 있기에 집과 밥과 옷을 얻습니다. 바다숲이 있기에 비바람을 누리면서 싱그러이 살아갑니다. 별숲이 있기에 밤낮이 흐르는 하루를 맞이합니다. 책숲이 있기에 오랜 슬기를 바탕으로 생각날개를 즐거이 펴는 길을 엽니다. 여기에 살림숲을 살그마니 놓아 우리 걸음걸이를 되새깁니다.


  우리가 주고받는 말을 마음이란 숲에 묻는 씨앗으로 바라볼 줄 안다면, 나무숲·바다숲·별숲·책숲·살림숲 곁에 말숲·글숲을 놓을 만하지 싶어요. 우리가 쓰는 말은 숲처럼 푸르고 짙고 싱그러우면서 사랑스러울 적에 아름답다고 봅니다.


  숲에서 태어난 숨결로 살림을 지어요. 숲에서 피어난 숨빛으로 삶을 가꾸어요. 숲에서 자라난 말로 이야기를 펴요. 억지스레 나무를 때려박는들 숲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 곁에 새가 있고, 새 곁에 풀벌레가 있고, 풀벌레 곁에 벌나비에 잠자리에 들짐승이 두루 어우러지기에 숲입니다. 모두이자 하나인 숲이 책으로 찾아옵니다.


ㅅㄴㄹ


《바람이 또 나를 데려가리》(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디자인하우스, 2005.8.17.)

《위대한 보통 사람들의 시대》(노태우, 을유문화사, 1987.11.20.)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이계삼, 녹색평론사, 2009.10.29.)

《우리들의 사랑을 위하여》(허영자, 자유문학사, 1986.5.25.)

《사람 자연 신》(F.S.C.노드롭/안경숙 옮김, 대원사, 1989.9.1.)

《추억이 사는 연못》(이소영, 아동문예사, 1996.7.15.)

《중고생을 위한 도올 선생의 철학 강의》(김용옥, 통나무, 1986.12.15.)

《말하는 나무 의자와 두 사람의 이이다》(마쯔따니 미요꼬 글·쯔까사 오사무 그림/민영 옮김, 1996.6.1.)

《기억법》(이강백, 대한두뇌개발연구원, 1976./1984.8.25.고침판)

《고등학교 독서》(오세영·김영철, 천재교육, 1996.3.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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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바람 (2021.7.17.)

― 제주 〈바라나시 책골목〉



  어제는 제주 애월읍 이웃님하고 밤 한 시까지 이야기했고, 오늘은 새벽에 하루 글거리를 서둘러 추스르고서 아침 일찍 길을 나섭니다. 〈주제 넘은 서점〉에 들르고서 제주 시내로 자전거를 달리는데 길잡이(내비게이션)를 보고서 달린 지는 요 제주마실이 처음이라 자꾸 엉뚱한 곳으로 새요. 제가 보기엔 이쪽으로 가라는구나 싶어 ‘이쪽’으로 갔더니 길잡이 화살은 차츰 엉뚱한 곳으로 갑니다. “응? 이쪽이 아닌 요쪽이니?” “에? 이쪽이 아닌 그쪽이야?” 길이로 치자면 〈주제 넘은 서점〉부터 제주 시내 〈바라나시 책골목〉까지 고작 20킬로미터 안팎입니다. 제 다리로는 자전거로 한 시간이 안 될 길인데, 막상 이 길을 거의 네 시간을 걸려서 갔습니다.


  그만큼 샛길로 자꾸 빠졌고, 샛길로 빠진 김에 마을길이며 바닷길이며 멧길을 신나게 탔습니다. 제주책집을 자전거로 다니며 등짐은 가벼워지기는커녕 자꾸 묵직해만 갑니다. 이러다 보니 무릎하고 허벅지가 끙끙거려요. “넌 왜 이렇게 나(무릎·허벅지)를 힘들게 하니?” “잘못했어. 조금만 돌아가면 되나 봐. 조금만 더 달리고 쉴게.” “말은 그리 하면서 언제 쉬니?” “조금만 더 가고 쉬면 …….”


  하가에서 신엄을 갔다가 구엄을 지나 수산·장전으로, 상귀·하귀를 돌며 가문동으로, 동귀·외귀를 지나 이호테우에서 노형동으로, 이러다 도두 ·용담을 거쳐 하늘나루가 코앞에서 보이는 곳에서 한참 쉽니다. 용두암 바닷가를 지나 용연구름다리에 이르니 비로소 오늘 자전거길 끝이 보일 만합니다. 용담쉼터에 너럭바위가 있기에 자전거를 세우고 손낯을 씻은 뒤 벌렁 눕습니다.


  나무그늘에 눕다가 앉아서 ‘길지 않은 길을 얼마나 빙그르르 돌았는가’를 헤아립니다. 빙그르르 돌았다지만, 자전거가 있기에 한결 신나게 골골샅샅 누비면서 마을살림을 보고 구름밭을 누리고, 바닷바람에 땡볕을 머금었구나 싶습니다. 너럭바위를 끼고 한참 쉰 다음 일어납니다. 뜨거운 짜이 한 모금을 마시자고 여기며 〈바라나시 책골목〉으로 천천히 갔는데 이레끝(주말)은 쉰다는 알림판을 봅니다. 오호라, 오늘이 흙날(토요일)이로군요. 이레끝은 누구나 쉴 만한 때라고 생각해요. 책집도 찻집도 쉬어야지요. 이제 오늘은 자전거는 그만 탈 테니, 〈바라나시 책골목〉 앞에서 바닷바람을 쐬고 햇볕을 머금으면서 허벅지랑 등허리를 주무릅니다. 지난 닷새 동안 이고 지고 다닌 책 하나를 꺼내어 넉줄글을 씁니다. 마을책집을 찾아갈 적에 제가 쓴 책을 으레 등짐에 얹어 챙깁니다. 지난 닷새 동안 짊어진 책을 오늘 비로소 내려놓습니다. 팔이나 붓으로뿐 아니라, 다리랑 등허리로 쓰고, 빨래하고 아이 돌보는 손으로 쓰고, 햇볕에 바닷바람으로 쓴 책 한 자락입니다.


ㅅㄴㄹ


《우리말 글쓰기 사전》(숲노래·최종규, 스토리닷, 2019.7.22.)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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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답게 그리고 (2021.7.16.)

― 제주 〈그리고 서점〉



  애월 어린이를 앞에 두고서 제주에 여럿 있는 ‘폭포’란 무엇일까 하고 물어봅니다. “쏟아지는 물이요!” “‘쏟아지는 물’을 어떻게 줄여 볼 만할까?” “음, ‘쏟물’?” “네, ‘쏟물’이겠지요. 말은 이렇게 줄여요. 그런데 ‘쏟물’은 소리내기 좀 어렵지 않나요?” “네.” “우리말은 소리내기 어렵지 않아요. 옛날부터 쓰는 말은 모두 누구나 쉽게 알아보고 알아채고 소리내어 쓰도록 지었어요. 그러면 이쯤에서 생각해 봐야지요. ‘물’은 어떻게 엮은 낱말인가요?” “물이라면 ‘무 + ㄹ’?” “네. 그러면 ‘쏟물’은?” “어, 그러면 ‘쏠물’?” “맞아요. 오랜 옛날부터 우리가 스스로 가리키던 쏟아지는 물이란 ‘쏠’이에요.” “우와, 신기하다.” “이제 거꾸로 생각해 볼게요. ‘쏠’이라는 우리말이 ‘폭포’를 가리킨다고 알려주면 알기 쉽겠어요? 아마 외워야 할 테고, 외워도 이내 잊기 쉬워요. 그렇지만 ‘쏠’이라는 낱말이 어떤 뜻이며 어떻게 태어났는가 하는 말뜻하고 말밑을 헤아려서 파고들면 외울 까닭이 없고, 되게 쉬우며 누구나 알아챌 만해요. “쏟아지는 물”을 줄여서 ‘쏟(쏘) + 물(ㄹ)’이거든요.” “네.” “어린씨한테 다른 낱말을 들어 볼게요. ‘쏘다’나 ‘쏘아붙이다’가 있어요. 벌이 쏘고 말을 쏘아붙인다고 해요. 총을 쏜다고도 하고요. 이 ‘쏘·쏟’은 세면서 빠르게 흐르는 결을 나타낸답니다. 비슷하면서 다른 ‘솟·소’도 있어요. ‘솟다·솟아오르다·샘솟다’ 같은 얼개로 나타나는데, 이처럼 말밑을 하나씩 짚으면 사람들이 예부터 어떻게 살면서 생각하고 말을 짓고 나누었는가를 알 만해요.”


  다른 하나를 들어 봅니다. “어린씨 여러분한테 어른들이 “심부름을 시키”지요?” “네! 맨날 시켜요!” “‘심부름”이란 뭘까요?” “시키는 일?” “네. 시킨다고 해서 심부름이에요. ‘시-’가 붙잖아요. 짐을 싣는다는 ‘싣다’나 힘들거나 괴롭다는 ‘시달리다’도 ‘시-’가 맞물려요. 곧 심부름은 스스로 생각해서 하는 일이 아닌, 남이 하라는 대로 따르는 몸짓이에요. 이와 달리 우리가 스스로 생각해서 하는 몸짓이 있어요. 뭘까요?” “음.” “‘일’이란, 우리가 스스로 생각해서 하는 몸짓이에요. 오늘날 삶터(사회)에서는 ‘일’이 품는 밑뜻하고 동떨어져 버리고 말았는데, ‘일 + 다’를 생각하면 쉬워요. ‘일다·일어나다’는 물결이 일고 바람이 이는 길, 아직 없는 곳에서 처음으로 태어나거나 오르는 몸짓이랍니다. 그래서 ‘심부름’하고 달리 ‘일’은 우리가 스스로 생각해서 이루려는 길이에요.“


  말밑은 먹물붙이(학자) 노닥거림이 아닌 어린이 눈빛으로 살피고 찾고 느끼고 나누면서 생각을 스스로 북돋우는 말샘으로 나아가야지 싶습니다. 〈그리고 서점〉이 깃든 애월에서 애월 어린이들 반짝이는 눈빛에 제 말샘도 빛났습니다.

















ㅅㄴㄹ


《구본형의 마지막 편지》(구본형, 휴머니스트, 2013.7.15.)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사샤 세이건/홍한별 옮김, 문학동네, 2021.6.4.)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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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를 품다 (2021.7.15.)

― 제주 〈시인의 집〉



  어제는 저녁 여섯 시 무렵 일찌감치 길손집에 들었습니다. 고흥집에서 녹동나루까지 자전거를 몰았고, 제주나루에 내려서도 한참 자전거를 타느라 온몸과 등짐이 땀으로 흥건해요. 빨래부터 하고 땀내음을 씻어야겠다고 여겼는데, 이튿날인 오늘 아침까지 치마바지가 덜 마릅니다. 오늘도 자전거를 신나게 몰 테니 다시 땀범벅일 테고, 덜 마른 치마바지를 입고서 아침 일찍 길을 나섭니다.


  꽃송이처럼 피어나는 구름을 올려다보면서 달립니다. 해도 구름도 좋은데 자전거로 움직이는 분은 아무도 안 보입니다. 길에 자동차는 엄청 많습니다. 열일곱 해쯤 앞서 푸름이를 이끌고 자전거를 달릴 적에 지나간 조천 마을길을 오늘 새로 만납니다. 돌담길을 천천히 지나 〈시인의 집〉을 알리는 조그마한 이름판을 봅니다.


  마을책집 마당에서 땀을 들이고 손낯을 씻습니다. 한참 땀을 식히고서 안쪽으로 들어섭니다. 땀을 실컷 뺐으니 뜨거운 잎물(차)을 마십니다. 땡볕에 자전거를 한참 탈 적에는 찬물을 섣불리 마시면 안 됩니다. 오히려 뜨겁거나 따듯한 물을 마셔야 몸이 사르르 풀려요. 달아오른 몸에 찬물을 넣으면 속이 다칩니다.


  바다하고 하늘이 만나는 곳을 가만히 바라볼 수 있는 곳을 가볍게 돌다가 구석자리에서 슥 움직이는 아이를 봅니다. “넌 어떻게 들어왔니?” 여닫이를 활짝 열어 놓았기에 살그머니 들어온 듯합니다. “너, 여기에서 스스로 못 나갈 듯한데?” 왼손을 살그마니 펴고 오른손으로 슬슬 밀어서 품습니다. “자, 이제 너른바다로 가렴.” 바닷게를 내보냅니다.


  우리는 모두 노래하는 님입니다. 갓 태어난 아기가 젖을 달라며 우는 소리도 노래요, 젖을 빠는 소리도 노래이고, 기저귀에 응가를 하고서 아버지를 부르는 아이 목소리도 노래입니다. 똥오줌기저귀를 복복 비비고 헹구어 삶은 다음 마당에 널어 해바라기를 시킬 적에 마르는 소리도 노래요, 아이를 안고 업으며 마실하는 발걸음 소리도 노래예요. 땡볕에 자전거를 달리며 길바닥에 주루룩 흘러내리는 땀방울 소리도 노래이고, 건널목에서 푸른불을 자동차가 기다릴 적에 풀밭에서 퍼지는 가느다란 풀벌레소리도 노래입니다.


  이 모든 노래에 글씨라는 옷을 입히니 글(문학 또는 시)이 됩니다. 소리를 무늬처럼 그리기에 글이요, 소리에 빛깔을 입히기에 그림이에요. 늘 아이들을 뒤에 태워서 달리던 자전거를 아주 오랜만에 혼자 달렸습니다. 비록 혼잣몸으로 달리지만, 등쪽에서 아이들 웃음소리를 듣습니다. 몸은 떨어져도 마음은 함께 있으니 노래를 들어요. 우리 말소리는 말빛으로, 우리 눈망울은 눈빛으로 늘 어우러집니다.


ㅅㄴㄹ


《그대라는 문장》(손세실리아, 삶이보이는창, 2011.2.13.)

《지옥에 이르지 않기 위하여》(염무웅, 창비, 2021.6.3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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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2021.7.9.)

― 인천 〈나비날다〉



  나누면서 비운다는 뜻으로 〈나눔과 비움〉이란 이름으로 2010년에 인천 배다리에 깃든 책집은 2021년에 ‘동성한의원’ 자리를 여럿이 함께 빌리면서 알맞게 칸을 갈라 마을책집 살림을 잇습니다. 지난 열두 해 사이에 〈나비날다〉란 이름으로 피어난 이곳은 나비(고양이)랑 함께 느긋하면서 푸르게 책자락을 돌아보려는 눈빛을 펼쳤어요.


  길고양이를 안 좋아하는 분도 있으나 마을고양이로 여겨 꾸준히 나비밥을 그릇에 놓는 분도 있습니다. 길고양이를 내쫓는 분도 있지만 길동무나 삶벗으로 여겨 마음을 나누는 분도 있어요. 가만 보면, 마을 한복판에 무시무시하게 찻길을 때려지으려는 분도 있고, 마을 한복판에 쉼터나 숲이나 텃밭을 마련하려고 손품을 들이는 분도 있어요. 나무가 조금이라도 자랄라치면 줄기랑 가지를 뭉텅뭉텅 쳐야 깔끔하다고 보는 분도 있는데, 나무는 나무 스스로 푸르게 자라기에 조용히 다가가서 포근히 품으면서 아끼는 분도 있어요.


  우리는 어느 길에 서는 사람인가요. 우리는 무엇을 좋아하는 살림인가요. 저마다 다른 숨결인 사람이니, 저마다 다른 길을 좋아하기 마련입니다. 내가 좋아한다면 너도 좋아해야 하나요? 내가 안 좋아하면 너도 안 좋아해야 하나요? 서로 다르게 나아가는 길이 아름답다고 여긴다면, 서로 다르게 걷되 들꽃길이면서 숲빛길이 되도록 마음을 그러모을 수 있는가요?


  마을에 돈이 더 돌아도 나쁘지 않겠습니다만, 마을에 철새가 찾아와서 여름에 노래하고 가을에 둥지나기를 하면서 돌아갈 수 있으면 아름답습니다. 마을에 일거리가 더 있어도 나쁘지 않겠습니다만, 마을집이 서로 햇볕과 바람과 눈비를 살뜰히 나누면서 개구리·풀벌레 노랫소리를 즐길 수 있으면 사랑스럽습니다. 우리는 책을 더 많이 읽어도 나쁘지 않을 텐데, 책 하나를 늘 새롭게 되읽고 생각을 한결 넉넉하면서 너그러이 다스리면 슬기롭습니다. 우리는 어른스러운 말씨로 글을 써서 글꽃(문학)을 펴도 나쁘지 않을 테지만,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하는 맑으면서 밝은 눈빛으로 수수하게 삶글을 나누면 반가워요.


  근대문화유산이 안 나쁘지만 ‘오늘 여기’를 바라보면 즐거워요. 문화예술이 안 나쁘지만 ‘우리 마을’에 숲을 품도록 하면 싱그러워요. 어린이가 맨발로 뛰놀 풀밭 한켠에 맨손으로 타고 오를 나무가 우람하게 자라면, 어른은 이 곁에 도란도란 둘러앉아 조촐히 잔치를 열 만합니다. 일하는 어른 곁에 소꿉하는 아이랑 웃고 노래하는 얼굴로 살림꽃을 지펴서 고이 물려주고 나누는 마을길이 되면 좋겠어요.


ㅅㄴㄹ


《나의 작은 헌책방》(다나카 미호/김영배 옮김, 허클베리북스, 2021.5.19.)

《고양이와 할머니》(전형준, 북폴리오, 2019.11.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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