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내 책을 내가 (2021.3.2.)

― 인천 〈집현전〉



  푸른배움터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고, 아이들한테 빛꽃(사진)이 왜 빛으로 꽃이 되는가를 들려주기도 하던 이상봉 님은 2011년에 《안녕, 하세요!》란 책을 선보입니다. 손수 출판사를 열어 인천에서 사진책도 제법 선보였습니다. 이제는 인천 배다리에서 헌책집 〈집현전〉을 이어받아서 천천히 손질하고는 2021년부터 열었습니다.


  푸름이를 푸른빛으로 이끄는 손길하고, 헌책을 새롭게 잇는 손빛은 비슷합니다. 푸르게 물드는 손이기에 책먼지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책먼지를 털어내어 징검다리 구실을 합니다. 이미 읽힌 책을 다시 읽히고, 오래 묻힌 책을 새로 캐내며, 미처 사랑받지 못한 책이 뒤늦게라도 사랑받도록 북돋우는 터전이 헌책집입니다.


  해가 저물고 배다리가 어둡지만, 〈집현전〉은 불빛이 환합니다. 둘레 책집보다 느긋하게 저녁빛을 밝혀 줍니다. 이곳에 《책순이, 책 읽는 시골아이》가 있기에 선뜻 집었습니다. 책집지기님이 묻습니다. “아니, 자기 책을 자기가 사 가는 사람도 있나? 자기 책은 놔 두지?” “저한테도 이 책이 이제 없어요. 저도 이 책을 찾아야 해서 제 책이어도 제가 사야 한답니다.”


  책을 써낸 사람이라고 해서 제 책을 잔뜩 건사하지는 않습니다. 책을 새로 내면 2자락∼10자락쯤 출판사에서 보내 주는데, 판을 거듭할 적에 꼬박꼬박 보내는 곳이 있고, 따로 안 보내는 곳이 있어요. 몇을 건사하지 않았는데 이웃이나 글벗이 “책 좀 하나 주시오” 하고 물으면 안 주기 어려우니 어느새 책님 스스로 제 책이 동나곤 합니다. 이러다가 이 책이 판이 끊어지면 헌책집을 돌면서 찾기도 하지요. 지난날에는 이렇게 제 책을 찾는 책님이 제법 있었어요.


  되읽힐 책을 살피는 헌책집입니다. 되읽는다고 할 적에는 옛글을 바탕으로 새글을 익힌다는 뜻입니다. 되읽기란 옛슬기에서 오늘슬기를 찾으려는 몸짓입니다. 되읽으려 할 적에는 ‘헌종이터(폐지처리장)’에서 사라질 뻔한 헌책에 새숨을 불어넣어 다시 살아나도록 하는 길입니다.


  살림을 짓는 손길을 옮겨 글 몇 줄에 그림이며 빛꽃 몇 자락을 짓습니다. 푼푼이 그러모은 글·그림·빛꽃을 갈무리해서 꾸러미가 되면, 덜고 깎고 보태고 손질해서 이야기로 여밉니다. 이 이야기를 종이에 앉히니 책으로 태어납니다. 수수한 보금자리에서 지은 사랑은 글·그림·빛꽃으로 피어나서 숲내음을 담은 종이에서 새삼스레 노래합니다. 종이책이란 숲내음이고, 숲내음이란 살림꽃이고, 살림꽃이란 사랑으로 지은 보금자리이고, 사랑자리란 삶빛이라고 생각합니다.


ㅅㄴㄹ


《책순이, 책 읽는 시골아이》(최종규, 함께살기, 2013.7.31.)

《공갈빵》(최임순, 사진공간 배다리, 2016.6.10.)

《홀로서기》(서정윤, 청하, 1987.3.25.)

춘천 〈청구서적〉 비닐싸개, 4층짜리 책집

《車에 실려가는 車》(김영승, 우경, 1988.4.25.)

《봄을 기다리며》(김영준, 둥지, 1990.5.14.)

《벙어리 연가》(양문규, 실천문학사, 1991.8.25.)

《대학 문에 서서》(류병주, 거름, 1986.3.25.)

《열꽃 공희》(김규린, 천년의시작, 2011.3.15.)

《사랑이여 빛일레라》(구상·김동리·법정·이청준 외, 홍성사, 1982.4.20.)

《인천화교이야기》(김보섭, 인천광역시중구한중문화관, 2017.6.8.)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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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분 (2021.3.2.)

― 인천 〈아벨서점〉



  고작 2분만 책시렁을 돌아볼 틈이 있어도 두 시간 길을 달려가곤 합니다. 아슬아슬 1분이나 5분만 책칸을 살필 겨를이 있어도 하룻밤을 들여 찾아가곤 합니다. 다른 날 느긋이 새롭게 와도 좋아요. 그렇지만 마침 움직이는 길이기에 다른 볼일을 살짝 줄이거나 당기거나 늦추고서 책집이라는 곳에 깃듭니다.


  봄에 꽃망울이며 잎망울을 터뜨리는 나무 곁에 한나절을 나란히 서거나 앉아서 꽃내음하고 잎내음을 맡아도 즐겁습니다. 다문 2분이나 2초라도 봄나무를 쓰다듬고서 푸른내음을 맡아도 기뻐요.


  느긋하게 찾아가야 넉넉하게 누리는 줄 압니다만, 빠듯하게 찾아가더라도 반가이 누리는 길이라고 느껴요. 이다음은 이다음이요, 오늘은 오늘이거든요. 더 많이 읽어도 되지만, 바로 오늘 만나고픈 책을 읽어도 돼요. 가게를 언제 닫는지 어림하면서 〈아벨서점〉을 찾아간 저녁나절입니다. 낮에 인천에 닿아 관교동부터 학익2동까지 걸었고, 자칫 늦겠구나 싶어 버스로 용현동을 가로질렀고, 숭의1동하고 신흥동3가 쪽을 더 거닐고서 택시를 탔습니다.


  지난해인 2020년에는 〈아벨서점〉에서 처음으로 책을 못 샀습니다. 1992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이 책집에서 책을 샀으나 그만 지난해에는 책을 못 사고 밤골목에서 책집 빛꽃만 남겼습니다. 새해 새봄에 찾아들었어도 막 가게를 닫으려던 때였고, 가벼이 몇 마디 말씀을 여쭙고는 골마루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책집 골마루를 빙 돌 적마다 숲을 빙 돈다고 느낍니다. 이 책집에서는 이 숲을 돌고, 저 책집에서는 저 숲을 돕니다. 좋은 숲도 나쁜 숲도 없이 모두 다르게 푸른 숲입니다. 우람한 숲도 조그만 숲도 없이 저마다 다르게 빛나는 숲입니다.


  쪽틈이라 할 2분이라면, 아이를 품에 안고 노래를 부르기에 넉넉합니다. 쪽겨를이라 할 2분이라면, 책집 골마루를 휘돌면서 책 두어 자락 손에 쥐기에 넉넉합니다. 1000만 원이나 200만 원을 손에 쥐고서 책숲마실을 하지는 않습니다. 2000원이든 1만 원이든 5만 원이든 살림돈을 주머니에 챙겨서 책숲마실을 합니다. 주머니에 넣은 돈을 헤아리면서 어느 책을 집으로 데려갈 만한가를 돌아봐요. 집으로 데려가지 못하더라도 책집에 서서 읽을 책을 만납니다.


  서서 읽어도 마음으로 스며듭니다. 장만해서 읽어도 마음으로 젖어듭니다. 빌려서 읽어도 마음으로 잠깁니다. 산 책을 다시 사서 읽어도 마음으로 피어납니다. 마을에서 샘터인 책집은 우리 몸에 새숨을 불어넣도록 동무가 되어 주는 쉼터입니다. 왜 굳이 아직까지 종이책을 쥐냐고 묻는다면, ‘종이 = 나무 = 숲’이니까요.


ㅅㄴㄹ


《買物繪本》(五味太郞, ブロンズ新社, 2010.4.25.)

《Cool Time Song》(Carole Lexa Schaefer 글·Pierr Morgan, Viking, 2005.)

《천국의 열쇠 上·下》(A.J.크로닌/김정우 옮김, 청한문화사, 1987.1.10.)

《새 삶을 위하여 上·下》(R.슐러/설영환 옮김, 청한문화사, 1987.1.10.)

《잠든 그대》(배창환, 민음사, 1984.12.10.)

《여왕코끼리의 힘》(조명, 민음사, 2008.2.1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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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자취 (2020.10.30.)

― 전주 〈한가서림〉



  군대에 들어가던 1995년까지 소설책을 곧잘 읽었으나, 군대를 마친 뒤부터 소설은 아예 안 읽다시피 하고 어린이책을 읽습니다. 어린이책을 펴내는 출판사에서 책팔이(영업부) 일꾼으로 지내던 2000년 무렵까지 역사책을 꽤 읽었지만, 어린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엮는 일꾼으로 지내는 2001년부터 역사책도 아예 안 펴다시피 합니다. 소설책이나 역사책이 나쁘다고 여기지 않으나 덧없더군요. 소설로 삶을 읽기보다는 ‘온몸으로 마주하는 삶에서 고스란히 삶을 읽는’ 길이 낫겠다고 느꼈어요. 다른 책을 바탕으로 엮는 역사책으로 자취를 읽기보다는 ‘온마음으로 사람과 풀꽃나무와 별을 마주하면서 자취를 읽는’ 길이 낫다고 느꼈고요.


  1947년에 나온 《20th century bookkeeping and accounting 19th edition》은 대학교재로 쓴 듯합니다. 이 책을 읽은 분 자취가 사이에 ‘단국대학 제2부 1966년 제1학기 강의시간표’로 남아요. 1966년에 이 영어책으로 ‘회계’를 배웠구나 싶어요. 푸른배움터(고등학교)를 다니며 읽었지만 《미래의 충격》 책낯이 새삼스러워 뒤적였더니 책자취에 “辭典과 良書의 殿堂 民衆書籍 全州電話 2-6476”라 적힌 쪽종이가 붙습니다. ‘전주 민중서적’ 자취예요.


  지난날에는 책집에서 책을 팔 적에 ‘일본처럼 팔림종이를 붙이거나 끼워’서 팔림새를 살폈습니다. 이 팔림종이가 온것으로 남은 책이라면 책집에서 안 팔린 채 돌고돌았다는(반품·재고처리) 뜻이요, 뒤쪽이 뜯겼다면 팔렸다는 뜻입니다. 아주 조그마한 종잇조각이지만, 책이 걸어온 자취입니다. 마을에서 사람하고 사람 사이에서 흐른 책이 남긴 자국입니다.


  꾸러미(전집)로 파는 어린이책은 있되, 하나하나 땀흘려서 엮은 어린이책이 드물던 무렵에 베끼거나 훔치거나 ‘덤핑’이란 이름으로 나돌던 어린이책이나 그림책이 꽤 많습니다. “국제판컬러텔레비전 최신가정학습도서관”도 이런 꾸러미 가운데 하나일 텐데요, 글·그림을 이우경 님이 맡았군요. 책낯하고 속그림이 다르고, 그린이를 따로 안 밝혀 놓아서 못 알아보기 좋겠더군요. 그러나 속그림을 보고는 바로 알아챘습니다. 우리나라 그림책 첫길을 연 분이 이우경 님입니다. 어린이 삶을 헤아리고 어린이 앞길을 살피면서 어린이스럽게 붓을 잡은 분이에요.


  새로 나오는 책도 틀림없이 알차거나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새책이 나오려면 옛책이 바탕이 됩니다. 새로 짓는 터전이나 살림도 참으로 알뜰하거나 멋집니다. 그런데 옛자리나 옛살림이 밑돌이 되기에 새길을 닦거나 열어요. 새책 곁에 헌책이 있으니 책숲이 빛나요. 헌책 곁에 새책이 나란히 있어서 서로 곱지요.


ㅅㄴㄹ


《샤갈/타오르는 추억》(벨라 샤갈 글·마르크 샤갈/김성림 옮김, 홍성사, 1978.8.20.)

《국제판컬러텔레비전 50 최신가정학습도서관 : 효녀심청》(이우경 글·그림, 학원출판공사, 1990.5.25.)

《만화 사자소학》(박진우 엮음, 고려출판문화공사, 1990.4.30)

《빠빠라기》(에리히 쇼일만/김정우 옮김, 예지원, 1990.7.15.)

《가까이》(이효리, 북하우스, 2012.5.24.)

《20th century bookkeeping and accounting 19th edition》(Paul.A.Carlson·Hamden L.Forkner·Alva Leroy Prickett, South-Western pub, 1947)

《미래의 충격》(앨빈 토플러/윤종혁 옮김, 한마음사, 1982.1.5.10./1982.3.20.5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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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산 곁 새롭게 숲 (2020.12.23.)

― 서울 〈신고서점〉



  저는 서울 이문동 한국외국어대학교를 다섯 배움철(학기)만 다니고서 그만두었습니다만, 이문동에 있는 한겨레신문 나름터에서 새뜸(신문)을 돌리며 일했기에 새즈믄해(2000년)를 맞이할 무렵까지 이 둘레에서 살았습니다. 새뜸을 돌리려고 자전거에 가득 싣고 다닐 적마다 〈신고서점〉 앞을 스치는데, 틈나는 대로 들러서 혼자 책으로 배우고, 살림돈을 아껴 몇 자락씩 장만했어요. 책을 사서 읽느냐 저녁거리를 장만하느냐는 갈림길에서 늘 책을 골랐고 하루 한끼로 버텼습니다.


  새벽에 새뜸을 다 돌리면 막내인 제가 밥을 짓는데, 이 밥으로 하루를 살았어요.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자꾸 울리면 물을 마시거나 침을 삼켰어요. 먹을거리가 없으니 책을 펴면서 “나는 책을 읽어. 오직 책만 생각해.” 하면서 밤을 지새웠습니다. 길에서 새뜸을 한 자락 팔면 300원을 얻는데, 마을가게에 50원 외상을 걸어 350원짜리 라면 하나 사서 토막내고는 국물만 가득하게 끓여 이틀로 나누어 먹었어요.


  늘 굶으며 혼자 배우던 가난배움이한테 〈신고서점〉은 마음을 살찌우는 쉼터였습니다. 〈외대학보〉에 우리말·책·헌책집 이야기를 이레마다 실었는데, 학보사에서는 제가 학보 글삯으로 책을 사읽는 줄 뻔히 알고는 “글 안 주셔요?” 하고 나름터에 전화로 묻기도 했습니다. 토막글은 3만 원, 긴글은 5만 원, 두 꼭지 실으면 8만 원, 눈물겨운 글삯을 받는 날은 어김없이 〈신고서점〉이며 서울 곳곳 헌책집으로 자전거를 달려서 책값으로 탈탈 털었습니다. 이런 저를 보다 못한 어느 헌책집지기는 “허허, 젊은이는 책만 먹나? 밥도 먹어야지?” 하면서 책값으로 주머니를 다 털어낸 저한테 “나 혼자 먹으면 심심하니 같이 짜장면 먹을까?” 하면서 옷소매를 잡아끌었습니다.


  길장사로 책을 처음 팔던 〈신고서점〉은 ‘외대 앞’이라는 자리를 얼추 마흔 해 살아냈습니다. 조금씩 가게를 넓혔고 웃칸(2층)까지 올렸어요. 그런데 이문동에 잿빛집(아파트)을 높이 올리려는 장사판이 그치지 않았어요. 마을헐기(재개발)를 놓고 열 해를 겨루다가 손들기로 하고서 이문동을 내려놓고 성신여대 앞으로 옮기기로 합니다. 거의 한 해에 걸쳐 책짐을 옮깁니다. 새터는 모두 넉칸(4층)을 통째로 책집으로 꾸밉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고 큰 헌책집이 됩니다.


  손길이며 자취를 아로새긴 마을을 떠나기는 쉬울까요? ‘오랜책집’을 눈여겨보는 이웃은 누구일까요? 우이산 곁에 새롭게 숲이 들어섰습니다. 나무한테서 온 책으로 가꾸는 책숲입니다. 나무가 푸르다면 책은 새롭습니다. 옛터가 아스라하다면 새터는 초롱초롱 노래합니다.


ㅅㄴㄹ


《das groβe Buch der Baume》(Hugh Johnson, Hallwag Verlag, 1974)

《die Illustrierte Enzyklopadie der Aroma Ole》(Julia Lawless, Scherz, 1996)

《국어 오용 사례집》(편집부 엮음, 국어연구소, 1989.12.26.)

《사바행》(이청, 형성사, 1980.8.10.)

《나는 죽어서도 새가 되지 못한다》(서효원, 서울창작, 1993.2.10.)

《解脫門》(마스나미 고오도/심동흥 옮김, 불교출판사, 1981.6.30.)

《a dangerous freedom》(Bradford Smith, Dell pub, 1954)

《Herinneringen uit mijn leven》(J.H.Gunning J.Hz, Spruyt, 1940)

《문장연습》(고려대 교양학부 교양국어연구실, 고려대학교 출판부, 1973.3.1.)

《그림 이야기·한국편 3 쥐의 사위 고르기》(장수철 글·백민 그림, 동아출판사, 1986.9.15.)

《百萬人의 文學聖書 1 天地創造》(한국 크리스찬 문학가협회, 금성출판사, 1971.12.15.)

《もののけ姬》(宮崎 駿, 德間書店, 1993.12.3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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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 아직 없는 (2021.2.5.)

― 광주 〈소년의 서〉



  1980년 오월 빛고을을 기리는 자리가 꽤 많고, 이 자리를 맡으면서 돈을 버는 사람이 퍽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는 분 가운데 그런 자리에 가거나 돈을 버는 사람은 없더군요. 고흥이며 장흥이며 보성이며 순천에서 그날 그곳 한복판에 있던 적잖은 분은 그저 조용히 흙을 일구거나 장사를 하거나 살림을 하거나 아이를 돌보면서 마치 이 나라에 ‘없는 사람’인 듯이 하루를 보냅니다. “광주? 나도 게 있었지. 알 만한 놈들은 다 안다.” “그런데 아재 이름은 거기 없던데요?” “에, 그런 거 싫어 조용히 살잖아. 누가 찾아오겠다고 하면 산으로 달아나지. 돈 받거나 이름을 남기려고 광주에 있지 않았다.”


  광주로 마실을 하면서 〈소년의 서〉에 찾아올 적이면 이곳 책꽂이 한쪽을 차지한 ‘광주 이야기책’에 먼저 눈이 갑니다. 다만 이 책꾸러미는 모두 안 파는 책입니다. 이곳에 와서 살며시 넘기다가 제자리에 꽂아 놓아요.


  그날 그곳에서 참 많이 죽었습니다. 고작 마흔 해 즈음 된, 가까운 핏자국입니다. 이 핏자국을 되읽을 적마다 우리 발자국을 새록새록 돌아봅니다. 우리는 1980년도 살았고 1945년도 살았습니다. 1915년이나 1855년이나 1555년이나 555년도 살았어요. 아스라한 지난날, 백제란 이름으로 가야·고구려·신라를 이웃하던 터전에서는 어떤 핏자국이 있었고, 땀자국이 있었으며, 살림자국이 있었을까요?


  ‘밝은뉘’란 이름이던 까마득한 지난날에는, 이런 이름조차 없던 더 아렴풋한 지난날에는 이 고장 이 터 이 숲에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어우러지면서 서로 사랑하고 돌보고 노래하는 꿈이 흘렀을까요?


  광주 발자국을 담는 커다란 집에 부산·마산·대구 발자국을 담는 칸을 마련할 수 있을까요. 인천·강릉·옥천 발자국을 담는 자리를 같이 둘 수 있을까요. 모든 어깨동무(평화)는 밑바탕이 사랑입니다. 모든 사랑은 밑뿌리가 어깨동무입니다. 백기완 님은 ‘노나메기’를 말했는데, 저는 ‘너나들이’를 말하고 싶어요. 빛나는 고을에는 너나가 따로 없이, 너나가 하나되는, 사랑이며 어깨동무로 마주하는 옛자국과 새걸음이 나란히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맨발로 신나게 뛰어놀 빈터를 고을 한가운데에 두기를 바라요. 어른들도 맨발로 신명나게 마당놀이를 펼 쉼터를 이 곁에 놓기를 바라요. 봄을 맞이하면 들마다 푸르게 물결치는데, 이곳 전라도에서 가장 커다란 고장에 아직 없는 너른숲·열린숲·아름숲을 넓혀 나가기를 바라요. 높다란 집을 세워야 열린배움터(대학교)가 되지 않아요. 아이들이 실컷 뛰놀고 노래하는 곳이 마을이면서 배움터예요.


ㅅㄴㄹ


《아이누 민족의 비석》(가야노 시게루/심우성 옮김, 동문선, 2007.4.2.)

《예술가의 여관》(임수진, 이야기나무, 2016.2.15.)

《자연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들》(C.A.웨슬리져/박소예 옮김, 청하, 1992.5.15.)

《차분히, 한 걸음씩(광주 동구 비건라이프)》(김태희와 네 사람, 오늘산책, 2020.11.3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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