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좀 생각합시다 50


 가자


  일본 만화책이나 만화영화를 옮길 적에 일본에서 흔히 쓰는 한자말을 고스란히 한글로 적곤 합니다. 이를테면 일본에서는 으레 ‘變身’을 쓰는데, 이를 한글 ‘변신’으로 적곤 해요. “굼벵이로 변신!”처럼 말이지요.


  저는 아이들하고 함께 만화책이나 만화영화를 보며 이 대목에서 “굼벵이로 바뀌어라!”나 “굼벵이로 되어라!”로 고쳐 보곤 합니다. 다만, 이렇게 고쳐 보기 앞서 아이들한테 먼저 물어봅니다. ‘변신’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말예요.


  아이들이 서너 살이나 대여섯 살 무렵에는 ‘변신’이 무엇인지 몰랐고, 나중에 어렴풋하게 “몸이 바뀌는 모습”인 줄 알아차립니다. 이렇게 어렴풋이 헤아릴 무렵 비로소 다시 묻습니다. 자, 그러면 우리는 어떤 말을 쓰면 좋을까 하고요.


  만화책이나 만화영화에 “자, 출동이다!”도 곧잘 나와요. ‘出動’을 ‘출동’으로 적었을 뿐인 이 말씨를 아이들한테 물으니 “가는 일”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아이들한테 살을 붙여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너희 말이 맞다고, 가는 일이라고, 그러면 어디를 간다고 할 적에 무어라 말할 적에 한결 나을까 하고요.


  이리하여 우리는 “자, 가자!”나 “자, 떠나자!” 같은 말로 고쳐쓰기로 합니다. 때로는 “자, 가 볼까!”나 “자, 가자고!”라 할 수 있어요. “모두 가자!”나 “다 함께 가자!”라 해도 어울립니다.


  나라마다 말결이 다르기에 나라마다 말빛을 살리는 길이 갖가지입니다. 한국 말씨를 찬찬히 돌아본다면, 매우 짧은 말마디로 다 다른 결을 나타내요. 가자, 갈까, 가나, 가려나, 가 볼까, 가니, 가게, 갑시다, 갑세다, 가 봅시다, 가자구, 가자고요, 가자고 말이지, 가렴, 가, 가련, 가지, 가네, …… 말끝에 따라 뜻하고 결이 다르고, 말 앞뒤에 꾸밈말을 넣어 뜻하고 결이 새롭습니다.


  다른 나라 말을 한국말로 옮길 적에는 무늬만 한글이 아닌, 속살을 살리는 한국말을 살펴야지 싶어요. 한글로 읽도록 옮기는 다른 나라 책이나 영화가 아닌, 한국에서 즐겁게 살아가는 숨결을 헤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8.5.8.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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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좀 생각합시다 49


 온걸음이


  1988년에 중학교 1학년이 되어 영어를 처음 배우는데, 그때 배운 새로운 말 가운데 하나가 ‘걸어다니는 사전’입니다. 영어에서는 새로운 낱말을 지을 적에 예전부터 쓰던 낱말을 더하기도 한다며 ‘a walking dictionary’를 가르쳐 주었어요. 한국말 아닌 영어를 처음 듣고 배우며 매우 낯선데, ‘걸어다니는 사전’이라는 영어 낱말도 참 낯설었습니다. 굳이 ‘사전’이란 말을 쓰지 않고도 ‘똑똑이’나 ‘슬기꾼·슬기쟁이’ 같은 말을 쓰면 되지 않나 싶었습니다.


  이제 와 돌아보면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는 사전을 지은 발자국이 꽤 깊어 ‘걸어다니는 사전’ 같은 낱말을 지어서 쓴 지 제법 오래이지 싶어요. 한국은 아직 사전 발자국이 짧기도 하지만, 사전이라고 하는 책을 깊이 들여다보는 눈이나 마음이 얕다고 할 수 있을 테고요.


  다만 낱말이 좀 기니 살짝 줄여 ‘걷는사전’처럼 쓸 만합니다. 또는 ‘걷는책’ 같은 말을 지어 보아도 어울려요. 걸어다니는 사람을 ‘걷는이’라 해도 어울립니다. 굳이 ‘보행자’ 같은 한자말을 일본에서 끌어들여야 하지 않아요. 걷는 사람을 두고 ‘걷는님·걷는벗’ 같은 말을 새롭게 더 지을 수 있습니다. ‘걷는길’이나 ‘걷는마실’ 같은 말도 좋아요.


  ‘걷는사전·걷는책’을 놓고 더 헤아릴 수 있습니다. 참으로 잘 알거나 똑똑하거나 슬기로운 사람은 사전이나 책 같다고만 할 수는 없어요. 온삶이 알차기에 잘 알거나 똑똑하거나 슬기롭다고 할 만합니다. 그래서 온삶이나 온살림을 잘 알면서 이 길을 간다는 뜻으로 ‘온걸음·온걷다(온걷기)’를 생각해 보면, 이를 바탕으로 ‘온걸음이·온걸음벗·온걸음님’ 같은 낱말을 얻습니다.


  어떤 일을 맞닥뜨리더라도 찬찬히 풀거나 맺을 줄 알기에, 어느 자리에 있더라도 아름답거나 슬기로이 지낼 줄 알기에, 어느 때에 이르러도 참답고 착하게 살림을 지을 줄 알기에, 이러한 사람을 가리켜 ‘온걸음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고 싶습니다. ‘온똑똑이’나 ‘온슬기님’이라는 이름도 좋습니다. 2018.4.13.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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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좀 생각합시다 48


 이가 다치다


  아침저녁으로 이를 닦습니다. 밥을 아침하고 저녁에 두 끼니 먹기에 이때에 이를 닦아요. 이를 닦는 일을 ‘이닦기’라고 말하고, 아이들한테 “이를 닦자”나 “‘이닦이’ 하자” 하고 말해요. 문득 사전을 살피니 ‘이닦기·이닦다’는 없습니다. ‘양치(養齒)’만 싣습니다.


  한국말은 ‘이·이빨’인데, 사전을 더 살피면 ‘이빨’을 “‘이’를 낮잡아 이르는 말”로 다루고, ‘치아(齒牙)’를 “‘이’를 점잖게 이르는 말”로 다룹니다. 엉뚱합니다. 어떻게 한국말은 낮춤말이요 한자말은 높임말일까요?


  그러고 보니 이를 다스리는 병원은 “이 병원”이 아닌 ‘치과’일 뿐입니다. 의사는 “치아 건강”을 말합니다. “치아가 손상될 수 있으니”라든지 “치아 미백이 가능할까”처럼 말하지요.


  의사 가운데 “이 튼튼”이나 “이가 다칠 수 있으니”나 “이를 하얗게 할 수 있을까”처럼 말하는 분은 얼마나 될까요? 아이도 어른도 치과라는 곳을 드나들면서 차츰 ‘이·이빨’을 잊거나 멀리하면서 ‘치아’만 써 버릇할 수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이빨’은 짐승한테만 쓰는 말이라고 잘못 여길 수 있어요.


  ‘이빨’은 무엇일까요? ‘이빨’은 ‘이’를 세게 나타나는 낱말입니다. 그리고 ‘머릿니’하고 가려서 쓰는 말이기도 해요. 한국말에서 ‘이’는 여러 자리에 써요. 머릿니도 있지만, 사람을 가리키며 ‘이(이이·저이·그이)’라 하고, 어느 곳을 가리키는 ‘이(이곳·저곳·그곳)’이라 하지요. 여러 이는 ‘머릿니’나 ‘이이’나 ‘이곳’처럼 앞말이나 뒷말이 붙듯, 밥을 먹는 뼈인 ‘이’도 뒷말을 붙여 ‘이빨’일 뿐이에요.


  말을 말답게 쓰는 길이란 말하고 얽힌 삶을 삶 그대로 바라보는 눈길입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할 적에는 있는 그대로 말하지 못합니다. 찬찬히 못 보면 찬찬히 말을 못하고, 슬기로이 살피지 않으면 슬기로이 말하지 못해요. 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합니다. “이 튼튼 몸 튼튼 마음 튼튼 늘 꿈을 꾸자!” 하고요. 2018.4.19.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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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좀 생각합시다 47


 걸음


  아기는 두 다리에 힘을 주어 일어선 뒤에 걷고 싶습니다. 처음으로 걸음을 떼고는 아장아장 기우뚱기우뚱 신이 나서 걸음놀이를 누립니다. 아기들 걸음걸이인 ‘아장걸음’은 아기 몸짓을 그릴 뿐 아니라, 어떤 일이 아직 서툰 몸짓을 나타낼 만합니다. 처음 발을 뗀 몸짓인 ‘첫걸음’을 지나 한동안 용을 쓰듯 좀 어수룩해 보이지만 대견한 모습을 ‘아장걸음’이라고 할 만합니다.


  아장걸음을 지났어도 느긋하게 걸을 수 있습니다. 아기는 어른한테 대면 걸음이 느립니다만, 어른도 굳이 빨리 안 걸을 수 있어요. ‘느린걸음’이라든지 ‘천천걸음·찬찬걸음’으로 삶을 고요히 돌아볼 만합니다.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구나 싶어, 때로는 ‘더딘걸음’이 되기도 합니다. 애써 해 보았으나 쓴맛을 보고 말아 ‘쓴걸음’이라든지 ‘헛걸음’을 할 수 있고요.


  그만 허방에 빠진 ‘허방걸음’이 있어요. 늪이나 수렁에 빠지는 ‘늪걸음’이나 ‘수렁걸음’도 있지요. ‘가시밭걸음’이나 ‘쑥대밭걸음’도 있을까요? 어느 날은 신바람을 내며 ‘신바람걸음·신명걸음’을 내딛을 수 있어요. ‘춤걸음’이나 ‘노래걸음’을 뗀다면 무척 즐거워요. 이때에는 ‘기쁜걸음’이겠지요.


  그리고 ‘슬픈걸음’이나 ‘아픈걸음’이 있어요. 첫걸음이 있다면 마무리를 짓는 ‘막걸음·끝걸음’이 있을 테고, 한 발짝 뗀대서 ‘한걸음’이, 두 발짝 뗀대서 ‘두걸음’이, 새로 힘쓴대서 ‘새걸음’이 있을 테지요.


  우리는 걷습니다. 하루를 헤아리며 ‘하루걸음’이요, 삶을 살피며 ‘삶걸음’입니다. 늑장을 부리는 ‘늑장걸음’이나 ‘늦걸음’이 될 때가 있고, ‘서툰걸음’이나 ‘잰걸음·날랜걸음’이 될 때가 있어요. 굳이 ‘빠른걸음’이어야 하지 않되, 바람처럼 가볍게 ‘바람걸음’으로 피어날 때가 있습니다.


  꽃길을 걷는다면 ‘꽃걸음’이고, ‘글걸음’이나 ‘책걸음’이나 ‘배움걸음’으로 하나하나 익힙니다. 그러고 보니 “그곳에 여러 ‘걸음’을 했지.”나 “세 걸음째인데 안 되더라.”나 “다섯 걸음째에 이루었어.”라 말할 만하네요. 2018.3.24.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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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좀 생각합시다 46


 카프카가 쓴 말


  일본에서 한국말로 이야기꽃을 폈습니다. 한국문학을 사랑하며 한국말로 한국책을 읽는 일본 이웃이 퍽 많다 하는데, 이분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국말로 짓는 사전이란 무엇이고, 사전에 담는 말이란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제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은 분 가운데 제가 쓴 책을 읽은 분이 문득 “최 선생님이 쓴 책을 읽으며, 나는 내가 어떤 일본말을 쓰는가 하고 새롭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착한’ 일본말을 얼마나 썼는지 돌아보면서, 앞으로 ‘착한’ 말을 쓰기로 생각했습니다.” 하고 또박또박 한국말로 이야기합니다. 이분은 카프카 문학을 매우 사랑하여 카프카 책을 독일말로 다 읽으시기도 했다는데, “카프카가 어떤 독일어로 글을 쓴 줄 아십니까? 카프카는 매우 쉬운 독일어를 썼습니다. 카프카는 매우 쉬운 독일어로 아주 깊은 철학을 문학으로 담아냈습니다.” 하고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카프카 문학을 그리 사랑하지 않아서 몰랐고, 카프카 문학을 독일말로 읽지 않았기에 더욱 몰랐습니다. 카프카 사랑이인 일본 이웃님이 알려준 이야기를 듣고서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우리 한국에서는 매우 쉬운 말로 아주 깊은 생각을 아름답게 들려주는 분이 있을까요? 쉬운 말로 부드러우면서 깊고 넓게 생각꽃을 펴고 글꽃을 피우는 분이 있을까요? 모두 어려운 전문용어나 한자말이나 영어를 아주 ‘쉽게’ 쓰지는 않을까요? ‘쉬운’ 말을 쓰기보다는, 쉽지 않은 말을 ‘쉽게’ 쓰는 글버릇이나 말버릇에서 못 헤어나오지는 않을까요?


  성경에 나오는 하느님 말씀은 매우 쉽다고 합니다. 부처님이 들려준 말씀도 참으로 쉽다고 합니다. 그러면 성경이나 불경은 얼마나 쉬운 글일까요? 문학을 비롯해서 교육이나 정치나 사회나 철학이나 경제나 과학 같은 인문학은 얼마나 쉽고 부드러운 말씨로 펴나요? 수수하면서 따사로운 말씨로 수수하면서 따사로운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는 말씨를 쓸 줄 아는 글님은 얼마나 될까요? 열 살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할 수 있는 쉬운 말이 평화요 평등이며 민주이고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2018.4.2.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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