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좀 생각합시다 9
가정식백반
‘가정식 백반’이라는 한국말은 없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런 알쏭달쏭한 말이 널리 쓰입니다. 게다가 이 말이 아주 알맞거나 좋은 말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부쩍 늘어납니다. 먼저 ‘가정식’이라는 말은 한국말사전에 없는데, ‘가정(家庭) + 식(式)’이기 때문이고, 중국 한자말 짜임새입니다. ‘백반(白飯)’은 “흰밥”을 뜻하는 한자말이며, 중국에서 들어온 낱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부터 한겨레는 ‘흰밥’을 먹는 일이 매우 드뭅니다. 흰밥은 궁중이나 부잣집에서 먹었고, 손수 흙을 가꾸어 나락을 일구던 시골사람은 ‘누런밥’을 먹었습니다. 시골사람은 쌀을 빚을 때가 아니면 겨를 함부로 벗기지 않습니다. 갓 거둔 햅쌀이라면 겨가 있는 채로 밥을 지어도 맛있습니다. 떡을 찌거나 쌀을 빚을 적에는 겉꺼풀뿐 아니라 속꺼풀도 많이 벗겨서 하얗게 되어야 다루기에 수월합니다. 이와 달리 밥을 먹을 적에는 겨만 살짝 벗길 적에 훨씬 고소하면서 맛이 나을 뿐 아니라 몸에도 도움이 되지요.
떡을 찌거나 술을 빚는 나락은 ‘흰쌀’입니다. 밥을 끓이는 나락은 ‘누런쌀’입니다. 이때에도 ‘백미(白米)’나 ‘현미(玄米)’가 아닌 ‘흰쌀’이랑 ‘누런쌀’이에요. 그런데 ‘백미·현미’라든지 ‘백반’ 같은 낱말은 조선 양반 사회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지식인이나 관청에서 두루 썼지요. 그무렵에는 정치나 행정이나 문화나 사회 모두 ‘한자말만’ 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오늘날까지 그치지 않아서 ‘밥집’이 아닌 ‘백반집’ 같은 이름으로도 남고, 요즈음에는 ‘집밥’이 아닌 ‘가정식백반’이라는 이름으로까지 퍼집니다.
집에서 짓는 밥은 ‘집밥’입니다. 밖에서 사먹는 밥은 ‘바깥밥’입니다. 가게에서 지어서 파는 밥은 ‘가게밥’입니다. 그런데 이런 밥을 놓고 ‘집밥·바깥밥·가게밥’ 같은 한국말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은 드물고, ‘가정식백반·외식·식당밥’ 같은 말만 자꾸 퍼집니다. 4348.10.4.해.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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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승-생활이라는 생각》(창비,2015) 40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