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곁노래

곁말 9 풀꽃나무



  내리쬐는 햇볕을 온몸에 듬뿍 누리다 보면, 해님은 언제나 모든 숨붙이를 사랑하는구나 싶습니다. 돌도 냇물도 다 다르게 숨결이 빛나고, 바람줄기는 우리 등줄기를 타고 흐르다가, 빗줄기를 슬며시 옮겨타고서 신나게 놉니다. 어버이한테 사랑을 가르치려고 태어난 아이는, 바람처럼 놀고 해님처럼 웃으니 다 압니다. 우리가 어른이라면 아이로 놀며 자란 빛이라면, 풀꽃나무를 상냥히 쓰다듬는 사이에 눈뜨겠지요. 오늘 이곳에서 누린 하루는 새로 피는 꽃이라, 이 꽃내음이 번지면서 보금숲을 가꿉니다. 너는 나랑 다르면서 같은 하늘빛을 품어, 늘 새롭게 만나고 노래하는 동무입니다. 나는 너랑 같으면서 다른 풀빛을 안아, 언제나 새록새록 마주하고 춤추는 이웃입니다. 너는 풀이고 나는 꽃입니다. 너는 나무이고 나는 나비입니다. 너는 꽃잎이고 나는 꽃송이입니다. 너는 열매이고 나는 씨앗입니다. 너는 바람이고 나는 해님입니다. 그리고 모두 거꾸로 짚으면서 나란합니다. 너는 꽃이고 나는 풀이며, 너는 노래이고 나는 춤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르면서 같은 풀이면서 꽃이면서 나무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새롭게 피어나고 스러지다가 새삼스레 날아오르는 풀꽃이자 풀꽃나무입니다.


풀꽃나무 (풀 + 꽃 + 나무) : 풀하고 꽃하고 나무를 아우르는 이름. 풀·꽃·나무를 함께 가리킬 분 아니라, 수수한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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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말 8 푸른씨



  푸른배움터(고등학교)를 다니던 1991년에 즐겨읽은 여러 가지 책을 펴낸 곳으로 ‘푸른나무’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낸 어느 책을 읽다가 ‘푸름이’란 낱말을 처음 만났어요. 깜짝 놀랐지요. ‘청소년’이란 이름이 영 거북하고 못마땅하다고 여기던 열일곱 살에 만난 ‘푸름이’는 즐겁게 품을 새말을 짚어 주는 반가운 길잡이였습니다. 그 뒤로 즐겁게 ‘푸름이’라는 낱말을 쓰는데, 적잖은 분은 제가 ‘청소년’이란 한자말을 손질해서 쓰는 줄 잘못 압니다. 요즈음도 이 낱말을 즐겨쓰지만 이따금 말끝을 바꾸어 ‘푸른씨’나 ‘푸른순이·푸른돌이’나 ‘푸른님’처럼 쓰기도 합니다. 어린이 곁에서 ‘어린씨·어린순이·어린돌이·어린님’이라고도 하고요. 꼭 한 가지 이름만 있을 까닭은 없다고 생각해요. ‘씨’는 ‘씨앗’을 줄인 낱말입니다. ‘푸른씨 = 푸른씨앗인 사람’이란 뜻이지요. 이런 여러 가지를 헤아린다면, 청소년을 가리킬 적에 ‘푸른꽃’이나 ‘푸른별’ 같은 이름을 써도 어울릴 만하다고 봅니다. ‘푸른꽃·푸른별’ 같은 이름은 “열네 살∼열아홉 살”뿐 아니라, 어린이를 부를 적에 함께 써도 즐거우리라 생각하고요. 푸른별에서 푸른넋이 되어 푸른눈으로 마주하며 푸른말을 주고받으면 푸른길을 열 테지요.


푸른씨 (푸르다 + ㄴ + 씨·씨앗) : ‘푸름이(푸른이)’하고 뜻같은 낱말. 푸르게 피어나고 자라날 씨앗이란 뜻으로, 열넷∼열아홉 살 나이를 가리키는데, 어린이를 함께 가리켜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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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말 7 때



  모든 책은 때가 되면 손길을 받습니다. 손길을 받는 책은 천천히 마음을 보여줍니다. 책이 되어 준 숲은 사람들 손길·손때·손빛을 받으며, 새롭게 살아가면서 노래하는 길을 느끼고는, 나무라는 몸으로 받아들인 숨빛을 들려줍니다. 오늘은 다 다른 어제가 차곡차곡 어우러져, 앞으로 나아가는 꿈길을 심는 씨앗이지요. 우리는 이 씨앗을 말이라는 소리에 가볍게, 그리는 삶을 사랑이라는 별빛으로 얹어, 서로서로 웃고 나누는 살림으로 지핍니다. 아이가 가을을 맞이하며 뛰놉니다. 어른이 봄을 바라보며 아이를 안습니다. 여름은 비바람으로 하늘을 씻습니다. 겨울은 눈꽃으로 온누리를 보듬습니다. 하루는 별길을 따라서 걸어갑니다. 이때에 무엇을 느끼고 싶습니까. 저때에 누구하고 살아가고 싶습니까. 그때에 어떤 꿈씨를 살포시 묻으면서 살림을 짓고 싶습니까. 스스로 즐겁다면 티끌이 없어요. 스스로 즐겁지 않으니 티끌이라고 할 만한 때가 묻어요. 스스로 즐거우니 어느 때이든 노래해요. 스스로 안 즐거우니 노래도 춤도 이야기도 웃음도 눈물도 없어요. 소리도 모습도 같은 ‘때’인데, 스스로 어떻게 마음을 가다듬거나 생각을 추스르느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는 두 가지 ‘때’입니다.


때 : ‘때 1’는 ‘오늘·하루·여기’라고 하는 흐름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때 2’은 ‘손길·숨결’이 타거나 묻어서 다르게 보이는 모습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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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말 6 걷는이



  저는 부릉이(자동차)를 거느리지 않아요. 부릉종이(운전면허)부터 안 땄습니다. 으레 걷고, 곧잘 자전거를 타고, 버스나 전철이 있으면 길삯을 들여서 즐겁게 탑니다. 걸어서 다니는 사람은 ‘걷는이’입니다. 걸으니 ‘걷는사람’입니다. 걸으며 삶을 누리고 마을을 돌아보는 사람은 ‘보행자’이지 않아요. 걷다가 건너니 ‘건널목’일 뿐, ‘횡단보도’이지 않습니다. 아이랑 걷든 혼자 걷든 서두를 마음이 없습니다. 시골에서든 서울에서든 거님길 귀퉁이나 틈새에서 돋는 풀꽃을 바라봅니다. 어디에서나 매캐한 부릉바람(배기가스) 탓에 고단할 테지만 푸르게 잎을 내놓는 나무를 살며시 쓰다듬습니다. 걷기 때문에 풀꽃나무하고 동무합니다. 걸으니까 구름빛을 읽습니다. 걸으면서 별빛을 어림하고, 걷는 사이에 아이들한테 노래를 들려주거나 함께 뛰거나 달리며 놀기도 합니다. 걷는 아이들은 재잘조잘 마음껏 떠듭니다. 이따금 꽥꽥 소리를 지르기도 해요. 사람 많은 데에서는 뛰지도 달리지도 외치지도 못하던 아이들은 걷고 뛰고 달리면서 실컷 앙금을 텁니다. 즐겁게 걸으며 둘레를 맞이하는 아이는 가끔 부릉이를 얻어탈 적에 반길 줄 알아요. 그러나 스스로 걸을 적에 가장 신나고 새로우며 멋진 나날인 줄 새록새록 느끼며 자랍니다.


걷는이 (걷다 + 는 + 이) : 걸어서 오가는 사람이기에 ‘걷는이’입니다. 달리면서 오가는 사람이라면 ‘달림이’일 테지요. 헤엄을 즐긴다면 ‘헤엄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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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곁노래 2021.10.19.

곁말 5 빛



  쟤가 주어야 하는 ‘빛’일 수 있지만, 쟤가 주기를 바라기만 하면 어느새 ‘빚’으로 바뀝니다. 내가 주어야 하는 ‘빛’이라고 하지만, 내가 주기만 하면 너는 어느덧 ‘빚’을 쌓습니다. 하염없이 내어주기에 빛인데, 마냥 받기만 할 적에는 어쩐지 ‘빚’이 돼요.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가없이 사랑빛을 받습니다. 아이가 받는 사랑은 빚이 아닌 빛입니다. 아이도 어버이한테 끝없이 사랑빛을 보내요. 어버이가 받는 사랑도 빚이 아닌 빛입니다. 오롯이 사랑이 흐르는 사이라면 빚이란 터럭만큼도 없습니다. 옹글게 사랑이 흐르기에 언제나 빛입니다. 사랑이 아닌 돈이 흐르기에 빚입니다. 사랑이란 티끌만큼도 없다 보니 그냥그냥 빚일 테지요. 사랑하는 마음으로 건네는 돈은 ‘살림’이란 이름으로 스밉니다. “가엾게 여겨 내가 다 베푼다”고 하는 몸짓일 적에는 “받는 사람이 빚더미에 앉도록” 내몹니다. 똑같이 건네지만 한쪽에서는 ‘빛’이고 다른쪽에서는 ‘빚’입니다. 돌려받을 생각을 하면서 아이·동무·이웃이 빚에 허덕이기를 바라나요? 너른 품으로 포근한 사랑이 되어 아이·동무·이웃이 빛을 반기며 활짝 웃기를 바라나요? 굳이 빚쟁이가 되고 싶다면 말리지 않겠어요. 저는 서로서로 웃음꽃을 피우는 빛님이 되겠습니다.


빛 : 바라보면서 밝게 느끼거나 맞이하는 기운.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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