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2022.7.19.

아무튼, 내멋대로 19 싸구려



  열여덟 살이던 1992년 8월 28일부터 ‘책다운 책’에 비로소 눈을 떴다. 이때까지는 ‘그냥 책’을 그저 읽었다면, 이날부터는 ‘모든 책을 새롭게 보는 눈’으로 나아가자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냥 책’이 아닌 ‘책다운 책’을 찾아서 읽자니 주머니가 홀쭉했다. 우리 어버이는 아이한테 책값을 넉넉히 줄 만한 살림이 아니었고, 열일곱 살까지 살던 옛집에서는 마을 동생을 가르치고(과외 교사) 살림돈을 벌기도 했고, 어머니가 곁일을 삼던 새뜸나름(신문배달)을 거들기도 했으며 여름겨울에는 한두 달씩 따로 먼마을로 달려가서 새뜸나름을 더 하며 곁돈을 벌었으나, 열여덟 살에 아버지가 옮긴 새집에서는 아무 곁일거리가 없었다. 우리 아버지가 그무렵 옮긴 새집은 인천 연수동이었고, 막 올린 잿빛집(아파트)만 우줄우줄 선 스산한 벌판이었다. 홀쭉한 주머니로 무슨 책을 살 수 있을까? 읽고픈 아름책이 눈앞에 가득하지만 느긋하게 집이나 길에서 읽을 수 없었다. 요새야 책숲(도서관)에 온갖 책을 두루 들이면서 느긋이 빌려읽을 수 있다지만, 1992년만 해도 인천에 있던 고을책숲(구립도서관·시립도서관)에는 ‘책다운 책’이 아예 없다시피 했기에, 빌릴 만한 책이 없었다. 이리하여 열여덟 살 푸름이는 “책집에 서서 얼른 100자락 읽기”를 했다. 한 자리에 오래 서서 책 한 자락만 읽으면 새책집 일꾼은 으레 눈치를 보내니, 책 한 자락을 3∼5분 사이에 얼른 읽어내려고 용을 썼다. 마치 “나 이 책 다 읽지 않았어요. 살 만한가 하고 좀 살폈어요.” 하고 시늉을 하는 꼴이었다. 이렇게 이 책시렁 저 책시렁을 옮기면서 “살짝 살피는 척하지만, 막상 처음부터 끝까지 얼른 읽어내기”를 했고, “100자락을 읽고서야 1자락을 사기”를 했다. 새책집에서는 한 자리에 서서 읽으면 등에 꽂히는 눈치로 고단했다면, 헌책집에서는 아무도 눈치를 등에 안 꽂더라. 놀랐다. 더구나 헌책집지기는 “요새는 학생처럼 책을 보는 사람이 없는데 반갑네.” 하면서 책값을 에누리해 주기까지 하셨다. 더 놀랐다. 왜냐하면, 새책집에서건 헌책집에서건 “100자락을 읽어야 겨우 1자락을 사는 살림”이었는데, 그곳에서 갖은 책을 신나게 읽고서 겨우 한두 자락을 사는 푸름이한테 에누리를 해주시니까. 그런데 나는 에누리를 받으면 이 몫으로 책을 더 샀다. 마음에는 두되 주머니가 홀쭉해서 못 산 책이 있으니까. “학생, 버스비 없다면서? 버스비 없는데 책을 또 사도 되나?” “네, 두 다리가 멀쩡하니, 집에는 걸어가면 됩니다.” “집이 어딘데?” “걸으면 두 시간이 넘는데, 걸으며 책을 읽으면 네 시간이 걸리더군요.” “아니, 그렇게 먼데 걸어간다고?” “오늘 산 책을 읽으면서 걸어가면 어느새 집에 닿아요.” 새책집에서는 온돈을 치르며 새책을 산다면, 헌책집에서는 ‘똑같은 책이 여럿’ 보이면 ‘더 낡고 지저분한 책’으로 골랐다. ‘더 깨끗하거나 말끔한 책’은 300원이나 500원, 때로는 1000원이나 2000원이 비싸게 마련. 일부러 후줄근한 책으로 사서 책값을 줄이려 했다. “책이 너무 낡은데, 다른 책으로 사지?” “아뇨. 껍데기를 보려고 사는 책이 아니라, 알맹이를 읽으려고 사는 책이니 걱정없습니다.” 열여덟 살부터 서른세 살에 이르도록 늘 ‘싸구려’인 책으로 골랐다. 서른네 살쯤 이르자 ‘책 겉그림(표지)’을 긁어서(스캔) 둘레에 보여주자니 ‘그동안 산 싸구려책’으로는 겉그림을 못 긁기도 할 뿐 아니라, 겉그림이 아예 없는 책도 수두룩하더라. 이리하여 예전에 사읽던 허름한 싸구려 책을 요즈막에는 ‘말끔하고 말짱한 헌책’으로 다시 산다. 오늘 새로 산 《돔 헬더 까마라》도 《네째 왕의 전설》도 푸릇푸릇하던 지난날 낡아떨어진 책으로 샀기에, 이제 깨끔한 책으로 되사면서 곰곰이 생각한다. 비록 싸구려란 길을 걸었어도, 싸구려였기에 더 신바람으로 책을 읽고 살피며 속빛을 헤아리고서 품는 눈빛을 가꾸는 살림을 새록새록 배울 수 있지 않았을까.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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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2.7.4.

아무튼, 내멋대로 18 누리책집 알라딘



  나는 누리책집에서 느즈막이 책을 샀다. 늘 마을책집에서만 책을 샀는데, 2003년 9월부터 충북 충주 멧골에 깃든 이오덕 어른 옛집에 머물면서 ‘이오덕 어른이 남긴 글을 갈무리’하는 일을 하다 보니, 책집마실을 할 틈이 없었다. 그래도 이레마다 서울마실을 하면서 책집을 돌았고, 이틀이나 사흘쯤 책집에서 장만한 책을 바리바리 싸서 충주 멧골로 땀빼며 실어날랐다. 이러다가 너무 벅차 2005년에 드디어 ‘누리책집 알라딘’에 들어가서 책을 샀다. 시골에는 책집이 없기에 누리책집을 쓸 수밖에 없었고, 그래도 되도록 발길이 닿는 여러 고장 마을책집에서 책을 사려 했다. ‘누리책집 알라딘’은 거의 만화책을 사는 데로 삼았다. 그동안 만화책을 사던 곳은 서울 홍대앞 〈한양문고〉였다. 이곳은 어느 날 불쑥 가게를 접고 말아 그야말로 만화책은 ‘누리책집 알라딘’에서 살 수밖에 없더라. 이러구러 2022년 6월에 이르도록 ‘누리책집 알라딘’에서 산 책은 그리 안 많다고 생각하지만, 그래서 “상위 0.062%”에 든다고 한다. 다만 “상위 0.062%”는 ‘누리책집 알라딘’에 쓴 책값으로 어림한 자리매김이고, 책은 ‘6021자락’을 샀다고 한다. 나보다 책을 훨씬 많이 사서 읽는 벗님이 있다. 2022년 7월 1일에 서울 마을책집 〈책이는 당나귀〉에서 책벗님을 만나 이 얘기를 했는데, “100살까지 알라딘에서 64260자락을 더 사겠네” 하는 말이 뜨더라고 말했더니 “그것밖에 안 돼? 100살까지 살 책인데 그대한테는 너무 적잖아?” 하더라. “책을 알라딘에서만 사지 않으니까 적게 나오겠지요.” 했다. 누리책집에 이름을 걸고서 책이야기를 올린 지 제법 된다. 처음에는 아무 누리책집에도 책이야기를 안 띄웠으나, 아무래도 책을 살펴서 읽을 이웃님한테 길동무 노릇을 하자면, 내 누리글집(블로그)에만 올리지 말아야겠다고, 누리책집에 바로 걸쳐 놓아야 이바지하리라 여겼다. ‘누리책집 알라딘’에 모든 책이야기를 걸치지는 않았으나, 2005∼2022년 사이에 걸친 책이야기(서평·리뷰)는 7022꼭지라고 나온다. 그동안 쓴 책이야기는 2만 꼭지를 가볍게 넘기니 좀 적게 걸친 셈일 텐데, 숲노래가 서울마실을 하던 2022년 7월 1일, ‘알라딘서재 담당자’가 숲노래한테 누리글월을 하나 띄웠다. 숲노래가 쓴 느낌글에서 ‘철바보’라는 우리말을 쓴 대목이 “비방성 명예훼손”이라서, 숲노래 느낌글을 “블라인드 처리”를 했다고 알려주더라. “비방성 명예훼손”으로 쓴 ‘철바보’라는 우리말을 고치면 “블라인드 처리 해제”를 하겠다더구나. 한자말 ‘철부지’를 썼다면 “비방성 명예훼손”이라고 안 여겼을는지 모른다. 한자말로 “부족한 부모”쯤으로 쓸 적에도 “비방성 명예훼손”이라고 안 볼 만하리라 느낀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우리말을 얕본다. 쉽게 우리말을 쓰면 낮춤말로 여긴다. 한자말이나 영어를 써야 높임말로 여긴다. “그림책 다독이(토닥이·달래기)”라 말하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죄다 “그림책 테라피”라고 영어를 쓴다. 아무튼 이제 슬슬 ‘누리책집 알라딘’을 끊을 때일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교보문고·영풍문고·예스24·반디앤루니스’가 벌인 몇 가지 씁쓸짓을 본 뒤로 이런저런 책집에서는 아예 책을 안 산다. 그래도 책이야기는 걸쳐놓는다. 생각해 보면, 구태여 알라딘을 떠나기보다 알라딘에서는 책을 이제 안 사면 될 만하다. 그들한테는 책장사가 첫째요, 책이야기를 찬찬히 읽고 스스로 살림빛을 배워서 저마다 사랑으로 숲빛을 짓는 오늘을 누리는 길은 막째에나 있을는지 모른다. 알라딘·예스24·교보문고가 책장사가 첫째가 아니라면, 돈·이름·힘이 아닌, 오직 삶·사랑·숲으로 모든 책을 아우르는 길을 갈 테지.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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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문득 찾아보니

'철바보'라는 낱말을

어느 책 하나뿐 아니라

다른 책이야기에도

더 썼는데

'철바보'란 우리말을 쓴

다른 글은 "블라인드 처리"를

안 하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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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2.7.1.

아무튼, 내멋대로 17 욕



  어린이일 적에도 푸름이일 적에도 막말(욕)을 쓴 일이 없다. 또래나 언니나 동생은 툭하면 ‘x새끼’ 같은 말을 썼으나, 나는 싸움판(군대)에 끌려가서 열여덟 달째(상병 6호봉)에 이르도록 아무 막말을 안 썼다. 열두 살 무렵으로 떠오르는데, 하도 괴롭히고 놀리는 마을 언니가 있어, 한 오십 미터쯤 떨어진 데에서 언니한테 “야, 이 돼지야!” 하고 한 마디를 하고 스스로 부끄러웠다. 돼지가 무슨 잘못인가. 어린배움터를 다니는 동안 막말을 안 쓴 사내는 나랑 ㄱ이라는 동무 둘뿐이었다. 푸른배움터를 다닐 적에 막말을 안 쓴 사내는 나랑 ㅈ이라는 동무 둘뿐이었다. 싸움판에서 스물여섯 달을 지켜보는 동안 막말을 안 쓴 ㅈ이라는 사람이 생각난다. 어느 날 ㅈ이라는 뒷내기하고 밤지기(불침번)를 설 적에 넌지시 물었다. “ㅈ상병님은 왜 막말을 안 씁니까?” “님이라니요, 최뱀(최 병장님) 말 낮추세요.” “둬 달이면 ㅈ상병님도 병장이 될 테고, 그때엔 저도 이 무시무시한 데를 떠날(쩐역) 텐데요, 저보다 세 살 위이니 이제는 님이라 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음, 다들 막말을 해도 나까지 하면 내 입이 더러워지잖아요. 막말을 쓰면 앞에서는 후임병이 따라오거나 고분고분한 듯해도 얼마 안 가 똑같아요. 그러면 하나 마나이기도 하잖아요. 그냥 처음부터 부드럽게 타이르면서 같이 잘 하자고 하고 싶어요.” “그런데 혼자만 막말을 안 쓰잖아요.” “하긴 그렇지요. 그래도 한 사람부터 안 쓰면 앞으로는 다르겠지요.” 스물한 살까지 막말을 안 쓰고 용케 살아왔으나 스물두 살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서 꺾여, 그날(상병 6호봉)부터 그곳(군대)을 떠나는 날까지 날마다 입에 막말을 달고 살았다. 주먹이나 발길을 안 썼으나, 다들 내 입에서 나오는 막말이 허벌나게 무시무시해서 소름이 돋고 섬찟했단다. 나는 때리기나 얼차려는 시키지 않고 말로 볶았다. 싸움판을 떠나 삶터로 돌아오고 보니 툭하면 싸움판 때 버릇이 불거지고, 그곳에서 내뱉던 막말이 문득 흐르면 둘레가 싸했다. ‘아차, 큰일을 저질렀구나.’ “잘못했습니다. 싸움판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으려고 용을 쓰다가 그만 마음도 입도 더렵혔습니다. 주둥이를 다물겠습니다. 아니 ‘주둥이’가 아니지요, ‘입’이지요.” 물든 입에서 물을 빼기는 버거웠다. 어쩌면 앞으로도 쉽지 않을는지 모른다. 곁님을 만나며 막말질이 섣불리 튀어나오지 않도록 다독였고, 두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어버이가 어버이다우려면 아무 말이나 내뱉지 않는, 아니 늘 사랑으로 말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서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재우며 밤마다 한나절(네 시간)씩 노래를 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틈나는 대로 노래(동요)를 불렀다. 밥을 차리면서, 빨래를 하면서, 자전거에 아이를 태우고 달리면서, 아이를 업거나 안으며 거닐면서, 그냥 가만히 앉아서 늘 노래를 불렀다.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는 길에 큰아이한테 우리글(한글)을 알려주려고 노래꽃(동시)을 처음으로 썼다. 2009년이었지 싶다. 이제 돌박이인 큰아이는 숲노래 씨가 늘 쓰는 글을 저도 쓰겠다고 숲노래 씨 붓을 가로채어 바닥이고 책이고 신나게 그렸다. 적어도 여덟 살이나 열 살에 글을 알려주려 했으나 돌 무렵부터 우리글을 알려주면서 ‘아이한테 알려줄 글’을 노래로 불렀다. 이때부터 어느새 막말은 자취를 감추어 간다. 노래꽃쓰기(동시쓰기)란, 삶말로 돌아가면서 살림말을 돌아보고 사랑말을 새롭게 찾는 ‘마음빛닦기’라고 느낀다. 싸움판에 안 끌려갔으면 아마 막말을 쓸 일이 없었을 텐데, 그러면 아이를 낳고서도 노래꽃을 쓸 일이 없었으려나? 곰곰이 생각하니 그렇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아닐 테지. 싸움을 물리칠 수는 없으나, 싸움을 사랑으로 녹이자면 ‘노래를 꽃으로 부르면’ 되는 줄 아이들한테 날마다 새록새록 배운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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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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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2.6.25.

아무튼, 내멋대로 16 육아 전담



  어린배움터(국민학교)를 다닐 적에 여섯 달마다 ‘장래희망’이란 이름으로 무슨 종이를 빼곡하게 채워야 했다. 왜 이런 종이를 써내야 하는지 알 턱이 없으나, 배움터에서 뭘 시킬 적에 안 하면 엄청 얻어맞았기에 고분고분 다 해내야 했다. ‘난로 당번’으로 있을 적에 ‘우리가 낸 모든 숙제’를 불쏘시개로 쓰는 줄 알아채고는 그 뒤로 배움터에서 뭘 내라는 짐(숙제)을 참 하기 싫었다. 아무튼 13살에 이르도록 ‘짝 안 맺고 혼자 살겠다(비혼)’고 적었다. 푸른배움터에 다니던 14∼19살에도 한결같았다.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 열린배움터(대학교)를 다니며 ‘아! 서울에 나와 보니 이 땅에는 꽉 막힌 사람만 있지 않구나? 찾아보면 열린 사람도 있겠구나!’ 하고 느꼈고 ‘짝을 맺고 살아도 되겠구나’ 하고 새마음을 품었다. 스무 살부터 제금을 나며 밥옷집 살림을 혼자 건사했다. 되도록 안 먹거나 가볍게 먹고, 모두 손으로 빨래하고, 집에는 보임틀(텔레비전)·거울·옷칸 따위를 안 들여놓고, 얇은 이불 한 채가 끝이고, 나머지는 책으로 채우고, 자전거 하나를 곁에 두기로 했다. 글을 쓰려고 셈틀을 켤 적을 빼고는 전기를 쓸 일이 없는 살림이었다. 싱싱칸(냉장고)조차 안 썼으니까. 내가 혼자 사는 집에 찾아온 분들은 입을 쩍 벌렸다. “와, 이 집엔 책밖에 없네. 아니, 옷도 없고 그냥 책만 있네.” “네, 책 말고 뭐가 더 있어야 하지요? 제가 숲에서 살면 책조차도 없고, 종이랑 붓 하나만 둘는지 모르는데, 나중에는 종이랑 붓조차 치울는지 몰라요.” 옷칸 없이 살다가 곁님을 만나 짝을 이루면서 옷칸을 놓았다. 아기가 태어날 때를 앞두고 집에 잔뜩 있던 책을 책마루숲(서재도서관)으로 옮겼다. 짝꿍하고 아이랑 함께 살아갈 적에는 집에 책만 놓을 수는 없다. 그릇에 수저에 수건에 이모저모 살림이 있어야 한다. 곁님은 피아노를 들이자고 했다. 집 한복판에 누구나 언제라도 실컷 노래를 누리도록 커다란 가락틀(악기)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더라. 목돈을 헐고 언니한테 빌려서 피아노를 들였고, 살림돈을 조금조금 모으는 대로 다른 가락틀을 하나둘 들였다. 2013년 무렵 빨래틀(세탁기)도 들였다. 내가 바깥일로 집을 비워야 할 적에 곁님이 천기저귀나 이불을 빨아야 할 수 있기에, 이제는 없으면 안 되겠더라. 빨래틀을 들였어도 난 예전처럼 손빨래를 한다. 어수룩하거나 모자란 대목은 으레 곁님이 따박따박 들려주는 꾸지람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면서 천천히 추스르거나 고친다. 집안일하고 아이돌봄을 도맡아 하는 길에 “아름답고 아늑하여 사랑스러운 보금자리”는 언제 어떻게 이룰 만한가 하고 짚어 보았다. 사내(아빠·남자)란 자리는 머스마(머슴)라는 이름 그대로 모든 일을 맡아서 할 노릇이다. 가시내(엄마·여자)란 자리는 갓(메·山)이란 이름 그대로 기쁘게 노래하고 가락틀을 타면서 신나게 놀 노릇이다. ‘몸쓰는 힘(힘살·근육)’을 타고난 사내(머슴·벗)는 기쁘게 일하면서 “가시내가 들려주는 아름다운 노래를 사랑으로 들으면서 기운을 내면 즐겁”다. ‘몸쓰는 힘’이 아닌 ‘마음을 달래며 사랑을 그릴 줄 아는 숨결’을 타고난 가시내(갓)는 “기쁘게 놀고 노래하면서 아이들하고 짝꿍(사내)이 삶을 즐기는 웃음꽃을 눈부신 빛살로 받아안으면서 깨어나도록 북돋우면 즐겁”다. ‘육아분담’은 부질없다. 가시버시(여남) 모두 집안일하고 아이돌봄을 할 줄 알아야 하면서, 이 몫을 버시(사내)가 도맡으면 된다. 이따금 버시가 멀리 바깥일을 다녀와야 할 적에 비로소 가시(가시내)가 집안일하고 아이돌봄을 살짝 맡아 주면 된다. 오늘날 터전을 돌아보면, 숱한 사내는 집안일을 안 하고 아이도 안 돌본다. 아이 똥기저귀를 손수 갈며 빨래하고 씻기는 우두머리(대통령)가 있었나? 어느 감투꾼(국회의원·장관·시도지사)이 집안일을 하거나 아이를 돌보는가? 사내들이 집안일·아이돌봄을 안 하니 자꾸 싸움판(군대)을 키우고 총칼(전쟁무기)을 만들어서 바보짓(전쟁)을 일삼는다. 그리고 바보짓 사내처럼 ‘놀고 노래하며 웃음꽃을 지피는 가시내 살림길’이 아닌 ‘감투랑 벼슬을 노리는 가시내’가 너무 늘었다. ‘나라 없는 나라’여야 아름답다. ‘보금자리를 사랑으로 지어’야 비로소 사랑이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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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2.6.25.

아무튼, 내멋대로 15 김치 달걀



  처음으로 마주하는 이웃님이 “밥으로 뭐 좋아하셔요?” 하고 물으시면 “안 먹기를 가장 반깁니다.” 하고 말씀한다. ‘안 먹기’를 늘 첫째로 꼽는데, 내가 ‘안 먹기’를 누리도록 헤아린 이웃님을 여태 두 사람 만났다. “그래도 뭘 좀 먹어야 하지 않아요? 안 먹고 어떻게 살아요?” 하는 말에 “그러면 안 매우면 됩니다. 그리고 개나 미꾸라지나 선지는 빼고요.” 하고 보탠다. “따로 좋아하는 밥은 없어요?” 하고 더 물으시면 “국수나 라면이나 짜장국수도 되고, 빵 한 조각이어도 됩니다.”라 하는데, 이렇게 밝히는 뜻을 헤아린 이웃은 아직 못 만났다. 나는 김치를 못 받아들이는 몸이다. 찬국수(냉면)도 못 받아들이고, 크림을 듬뿍 넣은 달콤이(케익)도 못 받아들인다. 요구르트·요거트를 찻숟가락만큼 맛은 볼 수 있되 썩 가까이하고픈 마음이 없다. 여기에 김조차 꺼린다. 어린날(1975∼1987)을 보내는 동안 무엇보다 ‘밥먹기’가 괴로웠다. 동무네에 가서 놀다가 동무네 어머니가 “같이 밥 먹자.” 하고 부르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내 몸이 못 받아들이는 먹을거리가 수두룩하기에 우리 집에서뿐 아니라 동무네 집에서도 언제나 ‘밥때’가 날마다 끔찍했고 골이 아팠다. 숱한 사람들은 ‘먹는 재미’로 산다고 말하더라. 그러나 ‘안 먹는 기쁨’으로 살고픈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안 먹는 기쁨’으로 살고픈 사람이 고작 1/1,000,000,000이라고 하더라도 틀림없이 있다. 더구나 나는 김치를 진저리나도록 못 받아들이는 터라, 어느 집에나 있는 김치를 볼 적에는 눈앞이 어질어질하다. 우리 아버지는 ‘김치 못 먹는 아들’을 밥자리에서 늘 한숨에 짜증으로 나무랐고, 억지로 김치를 입에 욱여넣으면 뱃속이 뒤집혀 바로 게우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으나, 그야말로 악을 쓰며 참고 또 참아 꿀꺽 겨우 삼키면 어느새 어머니 아버지 언니는 밥그릇을 다 비웠다. 나 혼자 김치 한 조각하고 오래오래 씨름했다. 우리는 왜 굳이 ‘덩이진 밥’을 먹어야 할까? 굶으며 산다고 죽을까? 고기밥(육식)도 당기지 않지만 풀밥(채식)조차 당기지 않는다. 고기밥만 목숨이 아니다. 풀밥도 목숨이다. 돼지·소·닭만 목숨이 아니다. 시금치·배추·당근·무도 목숨이다. 사람들은 다른 목숨을 밥으로 삼아 제 목숨을 잇는다고 하는데, 바람을 마시고 물을 머금기만 하면서도 얼마든지 즐겁게 삶을 누릴 만하다고 느낀다. 우리가 바람밥·물밥을 잊은 채 고기밥·풀밥을 허겁지겁 욱여넣으려 하면서 자꾸 싸움이 불거지지 않나? 먼먼 옛날사람이 들살림(수렵채집)을 할 적에 ‘잘 먹지도 못 하고 힘들게 살았으리라 지레 어림’하는 이들(역사학자·문화인류학자)이 많은데, 난 그렇게 바라보지 않는다. 먼먼 옛날사람은 조금만 먹어도 넉넉한 살림이었으리라 느끼고, 굳이 안 먹고 바람이랑 물만 누려도 튼튼한 몸이었으리라 느낀다. 내가 “김치를 못 받아들이는 몸”이라고 말할 적에 알아듣는 사람은 여태 둘이었는데, 두 사람을 빼고는 “어떻게 한국사람이 김치를 못 먹어?” 하는 핀잔이나 비웃음이나 놀람이었다. 난 “왜 한국사람이라고 해서 다 김치를 먹어야 하지요? 우리 겨레가 김치를 먹은 지 고작 오백 해(500년)가 안 된 줄 모르시나요? 고춧가루를 넣은 김치라면 고작 백 해조차 안 되는데 모르나요?” 하고 대꾸한다. 돌이켜보니 외할머니도 나를 헤아려 주셨구나 싶다. 김치를 못 먹기에 밥자리에서 힘든 나를 알아챈 외할머니는 외사촌 누나한테 “야, 얼른 가서 우리(닭우리)에서 달걀 하나 가온나.” 하고 시켰다. 다들 눈이 동그래졌다. 그무렵 달걀은 웃어른이 이따금 누리는 값진 먹을거리였으니까. “내 몫으로 줄 테니 암말 말어.” 하시며 내 밥에 손수 날달걀을 톡 까서 부어 주셨다. 나는 날달걀도 못 먹기는 했으나 김치보다는 나았다. 차마 외할머니 앞에서 ‘날달걀도 못 먹는 티’를 낼 수는 없더라. 그 뒤 나는 밥때에 이르면 일부러 밖에서 뛰놀며 멀리 달아났다. “쟤가 노느라 바빠서 밥 먹을 때도 모르는가 보다.” 하는 소리가 나오도록.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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