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2022.11.2.

수다꽃, 내멋대로 29 왼손질



  나는 다람이(마우스)를 왼손으로 쥔다. 다들 오른쥠만 하는 듯싶으나, 1994년에 셈틀을 집에서 건사하며 쓸 적에 오른쥠만 하면 손목이 시큰거려 왼쥠하고 오른쥠을 갈마들었다. 왼손을 오른손하고 매한가지로 쓰려면, 오른손도 왼손처럼 다룰 줄 알아야 한다. 왼손하고 오른손은 저마다 다른 곳에서 저마다 다르게 힘을 들이면서 우리 몸을 움직인다. 부엌칼을 쥐어 무를 썰 적에 왼손으로 무를 잡지 않으면 못 썬다. 칼을 쥔 오른손도 잘 움직여야 할 뿐 아니라, 무를 쥔 왼손도 알맞게 틈을 내주어야 한다. 그저 왼손에 칼만 쥔대서 무를 잘 썰 수는 없다. 자전거를 타고서 오른쪽으로 돌든 왼쪽으로 돌든 매한가지이다. 어느 쪽 힘만 세서는 곧게 나아가지 않는다. 수저쥠은 좀 다르다. 수저는 한 손만으로도 쥘 수 있으니, 밥을 늦게 먹거나 굶어도 좋다고 여기면서 젓가락이랑 숟가락을 놀리면 머잖아 왼쥠을 익숙하게 해낸다. 글씨쓰기는 부엌칼질하고 비슷하다. 붓만 왼손에 쥔대서 글씨가 나오지 않는다. 앉아서 쓸 적에는 오른손으로 종이를 받쳐야 하고, 서서 쓸 적에는 오른손으로 글꾸러미(수첩)가 안 흔들리도록 받칠 줄 알아야 한다. 한쪽 손만 한쪽 일에 으레 쓰던 몸이라면, 오른손이 하던 일을 왼손이 하기란 대단히 어렵거나 아예 안 된다. 거꾸로, 왼손이 하던 일을 오른손이 하자면 몹시 어렵거나 아예 안 될 수 있다. 짐을 어떻게 나르겠는가? 두 손으로 같이 잡고서 안으니까 나른다. 아기도 두 손으로 나란히 잡고서 품에 안는다. 찰칵찰칵 찍는 틀도 왼손으로 고즈넉이 받쳐야 오른손으로 가볍게 단추를 누르니, 거꾸로 찍으려면 오른손이 받침 노릇을 단단히 하면서 왼손가락을 가볍게 놀려야 한다. 이 여러 가지는 어릴 적에 한쪽 손이 크고작게 다치면서 알아차렸다. 어릴 적부터 수저를 두손잡이처럼 쓰려고 했다. 나중에 한쪽 손이 다치면 무척 번거로운 줄 알아차렸으니 두 손을 홀가분히 쓰고 싶었다. 그러나 1984년 무렵에는 ‘왼손잡이 = 나쁜손’으로 바라보는 어른이 수두룩했고, 그무렵 아이들은 어른 흉내를 내듯이 왼손잡이를 놀렸다. 왼손잡이인 또래는 왼손잡이가 아닌 척하거나 숨겼다. 오른손을 안 내밀고 왼손을 내밀면 버릇없거나 멍청하다고 여기기까지 했다. 1995년부터 제금을 나면서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로 일할 적부터 손빨래를 하는데, 한 손이 다치면 손빨래가 몹시 벅차다. 오른손으로도 왼손으로도 비빔질을 하려고 무던히 애썼다. 오른손으로도 왼손으로도 잇솔질을 하려고, 또 왼손으로 하는 받침 구실을 오른으로 너끈히 해내려고 무척 힘썼다. 두손잡이로 지내면 한 손을 느긋이 쉬기에 좋기도 하지만, 둘레를 바라보는 결을 넓힐 만하다. 왼눈으로만 둘레를 보는가? 오른눈으로만 둘레를 보는가? 아니면 ‘두눈’으로 보는가? 아니면 ‘온눈(왼쪽도 오른쪽도 가운데도 아닌, 오롯이 사랑으로 활짝 연 눈)’으로 보는가? 두 손을 나란히 다루면서 갈마드는 첫걸음이란, 우리 눈길이 ‘외눈’을 내려놓고서 ‘두눈’으로 거듭나다가 ‘온눈’으로 피어나서 ‘꽃눈’으로 아름답게 노래하는 삶길이라고 생각한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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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2.10.15.

수다꽃, 내멋대로 28 우리 아이가 읽을



나는 글을 1992년부터 비로소 썼다. 그때 고작 열여덟 살이던 푸름이로서 오직 한 가지만 생각했다. “내가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우리 아이가 읽을 수 있는 글만 쓰자.” 나는 어린배움터를 다닐 적이든, 푸른배움터를 다닐 때이든, 짝꿍(여자친구)이 없었다. 동무들은 내 말을 듣고서 “야, 넌 여친도 없는 주제에 무슨 네 아이가 읽을 글을 생각해?” 하면서 웃더라. “너희가 보기에도 내가 짝을 만날 수 없을 만할 텐데, 내가 짝을 못 맺고 아이를 못 낳더라도, 이웃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글을 쓸 생각이야.” 언제나 모든 몸짓을 “우리 아이가 본다면?” 하고 생각하면서 했다. 때때로 창피하거나 부끄러운 몸짓을 한 날은 “우리 아이한테 무어라 말하지?” 하면서 혼자 낯을 붉혔다. 이때에도 난 짝꿍이 없이 혼자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로 일했고, 한때 짝꿍을 사귀었다가 헤어지고 혼자 책집마실을 다니면서도 “우리 아이가 곁에서 지켜볼 테니까” 하고 생각했다. 어느덧 두 아이를 낳아 시골집에서 고즈넉이 살아가는데, 혼자 시골집을 떠나 서울(도시)로 바깥일을 하러 며칠씩 돌아다닐 적에도 늘 “우리 아이들하고 함께 일하러 돌아다닌다면” 하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가 곁에서 마음으로 지켜보네!” 하고 생각하면, 언제 어디에서나 스스로 의젓하고 씩씩한 어버이로서 한 걸음씩 디딜 수 있다. 나는 사람을 겉모습으로 볼 마음이 터럭만큼도 없다. 겉모습은 껍데기이잖은가? 아무리 이쁘장해도, 아무리 날씬하거나 잘나 보여도, 아무리 대단하고 비싸다는 부릉이를 몰아도, 한낱 겉모습에 껍데기일 뿐이다. 나는 어릴 적에 ‘우리 아버지 때문에’ 주무르기(지압·마사지)를 스스로 익혔다. 우리 아버지는 어린배움터 길잡이(국민학교 교사)로 일했고, 날마다 술로 떡이 된 채 한밤에 들어왔는데, 날마다 마룻바닥에 털썩 엎어져서 “야, 신 벗기고 주물러.” 하면서 언니랑 나를 불렀다. 우리 둘은 거나쟁이 신을 벗기고 한 시간 남짓 발가락부터 머리까지 온힘을 다해 주물렀다. 이러기를 열 해 즈음 하다 보니 저절로 주무르기를 익힐 수밖에. 겉으로 아무리 잘나 보이는 사람도 얼핏 보기만 해도 몸 어느 곳이 막혀서 손가락으로 콕 찔러서 눌러 주어야 하는지 마음으로 보인다. ‘눌러 줄 곳이 안 보이는 사람’은 여태 다섯 사람쯤 보았을까. 나는 내 일감(본업)인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는 길도, 우리나라 ‘말살림(언어문화)’을 살리려는 대단한 뜻이 아닌, 내가 낳아서 돌볼 아이에다가 이웃 아이들이 앞으로 우리 말글을 헤아리고 배울 적에 이바지할 책으로 징검다리를 삼으려는 뜻 하나로 썼고 쓴다. 내가 쓰는 우리말 이야기가 아닌, ‘책숲마실 글’이나 여러 가지 삶글(수필)이나 느낌글(비평·서평)이란, 알고 보면, ‘낱말책(사전) 보기글’로 스스로 삼으려고 쓰는 글이기도 하다. 이리하여 내가 읽는 숱한 책도 ‘아이들한테 읽으라고 건넬 만한가 아닌가’라는 잣대가 가장 크다. 줄거리가 알차도 글결이 엉터리인데다가 우리말결을 망가뜨리는 책은 차마 아이들 손에 쥐어 주고 싶지 않다. 그림책이라면 엉터리로 쓴 글을 몽땅 죽죽 그어 고쳐쓴 다음에 건네준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두고두고 물려받아 삶을 노래할 만한 숲집을 가꾸고서 남길 생각이다. 나는 온누리 모든 아이들이 기쁘게 물려받을 숲과 보금자리인 푸른별(지구)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모든 말글에 담아서 하루를 여민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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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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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2.10.7.

수다꽃, 내멋대로 27 연휴



푸른배움터에 들어간 1988년부터 ‘쉬는날(연휴)’이 없었다. 1988∼1990년 사이에는 06시부터 22시까지 배움터에 갇힌 나날이라면, 1991∼1993년 사이에는 05시부터 23시까지 배움터에 갇힌 나날이었다. 1994년 한 해는 인천·서울 사이를 날마다 오가면서 숱한 사람들을 만나고서 책집마실을 다녔고, 1995년에는 열린배움터(대학교)를 더는 다니지 않기로 하면서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로 하루를 열고서 짐자전거로 헌책집 나들이를 다니고, 책숲·책집(대학도서관·대학구내서점)에서 곁일을 하면서 ‘이레 가운데 하루는커녕 하루 어느 때도 쉬잖고’ 일하고 배우며 살았다. 1995년 11월 6일에 싸움터(군대)에 끌려가서 1997년 12월 31일에 비로소 풀려날 때까지 그 싸움터에서 쉬는날이란 없었고, 다시 새뜸나름이로 일하다가 펴냄터(출판사) 일꾼으로 들어가는 1998∼2000년에도 쉬는날이 없었다. 《보리 국어사전》 엮음빛(편집장)으로 일하던 2001∼2003년에도, 이오덕 어른이 남긴 글을 갈무리하던 2003∼2007년에도, 인천 배다리에서 책마루숲(서재도서관)을 연 2007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두 아이를 낳아 돌보는 모든 나날을 아울러도, 나는 열네 살부터 하루조차 쉬는날을 두지 않았다. 둘레에서 “무슨무슨 연휴”라고 말하면 성가시다. “개천절 연휴”라든지 “한글날 연휴”라고 하면 살짝 어리둥절하다. ‘하늘을 연 날’을 우리 스스로 돌아보는 자리가 없이 놀러다닌다는 뜻이자, ‘말글길을 연 날’을 우리 스스로 잊으면서 노닥거린다는 뜻이니까. 배우지 않는 하루라면 죽음길이다. ‘배움 = 학교 다니기’일 수 없다. ‘배움 = 삶을 이루는 사랑을 스스로 알아차려서 슬기롭고 즐겁게 살림을 짓는 생각을 마음에 씨앗으로 심도록 모든 숨결을 받아들이기’이다. 둘레 사람들이 ‘쉬는날 없이 살아야 한다’고 여기지 않는다. 나는 쉬는날 없이 살지만, 누구나 느긋이 쉬는날을 누릴 노릇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나라에서 떠드는 “한글날 연휴”를 보라. ‘서울내기가 갑갑한 잿터(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푸른바람을 마시고 맛밥을 먹으려고 돈을 쓰는 며칠’을 읊지 않는가? “한글날 연휴”는 누가 누리는가? ‘공무원 아닌 일하는 사람’ 가운데 누가 쉬는날을 누리는가? ‘살림꾼(가정주부)’은 쉬는날을 누리는가? 시골사람은 쉬는날을 누리는가? 시골에서 흙살림을 짓는 사람한테 해날(일요일)이 있는가?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한테 쉬는날이 하루는커녕 한나절이라도 있는가? 2022년 10월 6일 낮에 서울에서 고흥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를 타는데 빈자리가 없다. 아이들을 이끌고서 할머니·할아버지·이모·이모부·사촌동생을 만나러 경기 일산에 갔다가 전남 고흥으로 돌아가는 시골사람은 쉬는날(연휴)이 끼면 고단하다. 쉬는날에는 ‘시골로 가는 길’에 빈자리가 없으니까. 나는 1995∼2004년 사이에 서울에서 살며 날마다 책집을 두서너 곳씩 다녔는데, 그무렵에는 흙날(토요일)·해날(일요일)에 쉬는 책집이 아예 없다시피 했고, 한 해에 하루조차 안 쉬는 책집이 참 많았다. 2022년 무렵에 이르면 이제는 ‘쉬는날 없이 여는 책집이 아예 없다’고 할 만하다. 지난날 여러 책집에서 “사장님은 쉬는날이 없으면 힘드시지 않아요?” “쉰다고 집에 있으면 더 힘들어요. 책집사람은 책집에 앉아서 책을 보며 햇볕을 느긋하게 쬐는 일이 쉬는 셈이에요.” 같은 말을 으레 주고받았다. 한 해 내내 쉬잖고 일해야 하는 어머니하고 “어머니 오늘은 좀 쉬시지요?” “아이고, 그럼 이 많은 일을 누가 하니?” 같은 말을 늘 주고받았다. 풀꽃나무한테는 쉬는날이 없다. 바람도 해도 별도 바다도 쉬는날이 없다. 쉬는날은 뭘까? 제대로 느긋하면서 즐거이 쉬는 길이란 뭘까? 돈을 들여 서울(도시)을 벗어나는 하루가 쉬는날일까? 서울에 눌러앉는 삶이야말로 참다운 쉼을 잊고 아름다운 일을 잃으며 즐거운 놀이하고 등진 채 사람다운 사랑을 스스로 버리는 길은 아닐까? 아기한테도 아이한테도 쉬는날이 따로 없다. 어른이란 몸을 입은 ‘사회인’이란 자리에 서면 일놀이뿐 아니라 모든 숨빛을 스스로 내팽개치는 굴레라고 느낀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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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2.9.21.

수다꽃, 내멋대로 26 아이곁에서



  2008년 8월 16일, 큰아이가 태어난 날부터 ‘육아일기’를 썼다. 아이하고 곁님을 돌보는 어버이로 지내자면 셈틀맡에 앉을 틈이 없다고 여겨, 아주 작아 뒷주머니에 넣을 만한 꾸러미(수첩)를 잔뜩 장만했고, 언제 어디에서나 쪽틈을 내어 쪽글을 적어 놓고서, 비로소 셈틀맡에 앉아 글을 여밀 짬이 나면 바지런히 옮겼다. 다들 ‘육아·일기’라는 낱말을 쓰기에, 제아무리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는 일을 하는 사람이더라도 유난을 떨고 싶지 않았다. 순이로 태어난 큰아이는 온날(백일)을 맞이하기까지 날마다 기저귀 쉰두 벌, 돌이로 태어난 작은아이는 온날을 맞이하기까지 날마다 기저귀 서른 벌을 내놓았다. 온날을 고비로 똥오줌기저귀 빨래는 차츰 줄어 큰아이는 쉰·마흔다섯·마흔·서른으로 꾸준히 줄다가 마침내 스물을 지나 열둘을 거쳐 대여섯하고 서넛 사이를 한참 오가다가 기저귀는 더 안 빨아도 되었다. 집안일이 ‘기저귀 빨래’만 있지 않으니 다른 일은 그대로인데, ‘아기 기저귀’를 그만 빨아도 될 무렵 ‘곁님 핏기저귀’ 빨랫감이 나왔고, 곧이어 작은아이 똥오줌기저귀로 이었다. 아이들은 늘 어버이 곁에서 쪼물락쪼물락하며 무엇이든 따라하고 싶다. 글을 쓰면 같이 글을 쓰려 하고, 그림을 그리면 같이 그림을 그리려 한다. 책을 읽으면 같이 책을 읽으려 하고, 노래를 부르면 같이 노래를 부르려 하고, 춤을 추면 같이 춤을 추려 한다. 부채질을 해주면 되레 부채질을 해주겠다고 부채를 뺏는다. 걸으면 같이 걸으려 하고, 자전거를 타면 같이 자전거를 타려 한다. 호미를 쥐어 흙을 쪼면 같이 호미를 쥐어 땅을 쪼아야 하고, 톱을 쥐어 나무를 켜면 으레 톱을 쥐어 같이 나무를 켜야 한다. 우리 집 아이들은 아주 어릴 적부터 어버이 곁에서 붓도 쥐고 종이도 만지고 찰칵이(사진기)까지 다루었을 뿐 아니라, 부엌칼에 호미에 낫에 톱도 덩달아 다루었다. 내가 손수 집짓기를 한다면 아이들은 아마 집짓기를 함께하면서 배우겠지. 다시 말해서, 어버이는 아이들한테 온삶을 보여주고 물려준다.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모든 살림을 소꿉놀이로 따라하면서 새롭게 가꾸고 지어낸다. 어버이는 아무 짓이나 못 한다. 늘 아이가 지켜보고 쳐다보고 바라보니까. 아이가 늘 보기에 어버이는 ‘아이 곁에서 무엇을 해야 스스로 아름답고 즐거우며 사랑스러울까?’를 늘 생각하면서 찾아나서고 배우게 마련이다. ‘아이가 늘 어버이한테 스승’이다. ‘따라하려는 아이가 곁에 있기에 어버이는 어질고 참하며 착하게 살림하는 길을 늘 새롭게 배우면서 펼치되, 춤노래로 즐겁게 맞아들일 노릇’인 줄 알아차렸다. 이렇게 하나하나 알아차리는 동안 ‘육아’나 ‘육아일기’란 한자말은 안 어울린다고 깨달았다. 한자말이라서가 아니라 ‘아이키우기·아이기르기’는 터무니없다. 아이는 스스로 보고 느끼고 놀면서 스스로 배우고 자란다. 어버이란 자리는 “아이 돌아보기(돌보기)”는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이만 돌아보아서는(돌보아서는) 어른답지 못 하다. 우리가 어버이(또는 어른)라면, “아이 곁에서 사랑을 스스로 숲빛으로 지으며 살림을 노래할 줄 알아야”겠더라. 이 대목까지 아이한테서 배웠기에 이제는 ‘아이곁에서’란 말을 지어서 쓴다. 아이 곁에서 살며서 글을 쓰면 ‘아이곁글’이다. 누구라도 매한가지라고 여긴다. 우리한테는 ‘아이키우기·아이기르기(육아·훈육·양육·보육·교육)’가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한테는 ‘아이곁에서’가 어울리고, 이 살림을 글로 옮긴다면 ‘아이곁글’을 남길 뿐이라고 생각한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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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2.9.14.

수다꽃, 내멋대로 25 우체국 공무원



  왜 그러한지 알 길이 없는데, 갈수록 우체국 일꾼이 자주 바뀐다. 게다가 새로 들어앉는 우체국 일꾼은 일을 대단히 못 한다. 글월(편지)이나 꾸러미(택배·소포)를 받거나 다루는 길을 처음부터 아예 모르는 채 자리에 앉으니, 손님은 하염없이 기다리기를 두 달쯤 하면, 우체국 일꾼이 이럭저럭 일손이 잡히고, 서너 달쯤 이 꼴을 보면 이제는 버벅거리는 우체국 일꾼이 없는데, 바로 이즈음 우체국 일꾼이 다시 싹 바뀌더라. 왜 이럴까? 어제(2022.9.13.)도 고흥읍 우체국에서 이런 꼴을 지켜보는데, 여기에 한 술 얹어 “낮 네 시 삼십 분이 지났으니 마감합니다!” 하고 여러 벌 외치더라. 나는 우체국에 세 시 사십오 분쯤에 들어와서 글월자루에 풀을 바르느라 바빴고, 마지막 풀바르기를 마치고 글월을 보내려 하니 네 시 삼십일 분이더라. 가만히 생각해 본다. 요새 우체국에서는 ‘받는곳 미리넣기(사전접수)’를 해줍사 하고 이야기한다. 미리넣기(사전접수)를 하느라 마감을 넘겼는데, 미리넣기를 안 하고 맡겼으면 마감에 안 걸렸겠지? 그런데 언제부터 우체국 마감을 네 시 삼십 분으로 앞당겼을까? 2022년 여름부터 우체국은 12시∼13시에 아예 닫아건다. 낮밥을 느긋하게 먹겠다면서 글월받기를 안 한다. 우체국 일꾼 스스로 일거리를 줄이면서 일삯은 그대로 받을 텐데, 무엇보다도 우체국이라는 자리는 열린일(공공업무)이다. 면사무소·동사무소·군청·시청도 어느덧 12시∼13시에는 아예 닫아거는데, 그들이 낮밥을 먹더라도 ‘무인 민원기계’를 쓸 수 있도록 해놓아야 하지 않는가? 우체국을 09시에 열어서 18시에 닫는다면, 글월을 받거나 돈을 넣고 빼는 일도 18시 마감이어야 맞다.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마감을 미리 쳐놓고서 18시까지 자리를 지킨다니 무엇을 하겠다는 뜻일까? 우체국이나 열린터(공공기관)가 ‘나날이 일을 안 하는 쪽’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면, 이들은 “낮은자리에 설 마음”이 조금도 없다고 느낀다. 나라지기(대통령) 한 사람만 ‘여린이(사회 약자)·외로운 사람·가난한 사람한테 눈을 맞추는 길(행정)’을 찾겠다고 몸을 낮춘들, 이렇게 열린터 일꾼(공무원)부터 일찍 마감을 걸고서 일을 안 한다면, 이 나라는 가라앉아 버리리라. 누가 우체국까지 찾아가서 글월을 부치는가? 누가 은행까지 찾아가서 돈을 넣고 빼는가? 누가 면사무소나 군청까지 가서 일을 보는가? 바로 ‘여린이(사회 약자)·외로운 사람·가난한 사람’이다. 함부로 ‘노동복지’를 들추지 않기를 빈다. 우리는 ‘나흘 일하기(주4일제)’로 가기 앞서 ‘왜 어떻게 어디에서 누구를 마주하며 일하는가?’부터 똑바로 보고 되새길 노릇이다. 벼슬꾼(공무원)이나 길잡이(교사)가 ‘닷새 일하기(주5일제)’로 일한다고 하더라도, 흙지기(농사꾼)는 늘 ‘이레 일하기(주7일제)’를 한다. 더구나 ‘갈마들기(24시간 교대제)’로 일하는 곳(공장)이 수두룩하다. 하다못해 마을가게(편의점)조차 24시간을 돌린다. 벼슬꾼아, 우체국 일꾼아, 군청과 면사무소 일꾼아, 너희들은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서 ‘사람이 없다고 빈둥거리면서 누리마실(웹서핑)을 하며 한들거리’는데, 우체국도 군청·면사무소·동사무소도 스물네 시간을 돌려야 한다. 스물네 시간 쉬지 않고 돌리되, 너희들은 ‘나흘 일하기’로 갈마들기(교대제)를 해야지. 그래야 너희 일이 ‘공무원’에 걸맞지 않겠느냐? 시골 군청과 면사무소조차 넘쳐나는 일꾼이 할 일이 없어서 노는데, 제발 하루 내내 열어놓고서 갈마들기를 하기를 빈다. 우체국에도 일꾼이 너무 많더라. 좀 갈마들기를 하며 ‘나눠서 일하기’를 해라.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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