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2022.6.5.

아무튼, 내멋대로 8 단란주점



  한자말 ‘단란’은 우리말로 옮기자면 ‘도란도란’이나 ‘살갑다·아늑하다·포근하다·오붓하다’를 가리킨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단란 + 주점’이란 이름을 쓴다. “단란한 주점”이라면 아이가 있어도 느긋하거나 오붓하면서 살가이 즐길 만할 술집이란 뜻일까? 아니다. 말뜻으로 새기자면 ‘단란주점 = 오붓술집·포근술집·아늑술집’일 노릇이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단란주점 = 젊은 아가씨를 옆구리에 찰싹 붙이거나 끼고서 질펀하게 술을 퍼마시면서 부비작거리는 짓으로 돈을 흔전만전 써대면서 지저분한 사내들이 우글대는 술집”이라고 해야 맞다.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면서 숲을 사랑하려는 사람이 단란주점에 갈 일이란 없고, 쳐다볼 까닭이 없으며, 어떤 곳인지 알 수도 없다. 그런데 2004년에 처음으로 단란주점을 겪어 보았다. 2004년 그때는 이오덕 어른 글을 갈무리하는 일을 맡으면서 ‘이오덕 유고시집’을 어느 곳에서 펴내도록 다리를 이으면 어울릴까 하고 알아보던 즈음인데, 이오덕 어른 글(시 원고)을 모두 한글파일로 옮겨서 종이로 뽑아 두 군데 펴냄터에 건네었더니, 둘 가운데 한 곳 대표하고 ‘나중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맡은 시인’이 “이렇게 귀한 원고를 정성껏 정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오탈자조차 없이 제대로 정리해 주셨네요. 이대로 책을 내면 되겠습니다.” 하고 말하면서 “시골에서 모처럼 서울까지 오셨는데 오늘 좋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하고 덧붙이더라. 나중에 장관을 맡은 시인은 “나도 같이 가고 싶은데 오늘은 어쩔 수 없는 선약이 있어서 같이 못 가서 미안하니 어쩐다. 다음에는 같이 가지요.” 하더라. 나는 “좋은 데 말고, 이야기하기에 조용한 데라면 좋겠습니다.” 했는데, “조용한 곳? 뭐 거기도 조용하다면 조용한 곳이지요.” 하면서 웃더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알림판(간판)’조차 없이 수수께끼 같은 굴을 한참 파고들어야 하는 술집이 있는 줄 이날 처음 알았다. 미닫이(창문)는 하나도 없다. 모두 꽉 막히고 닫힌 곳이다. 출판사 편집국장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잘 아는지 서글서글 손을 흔들며 말을 섞는다. 우리가 앉을 칸에 들어서니, 모든 사람 옆에 ‘민소매 깡똥치마 아가씨’가 하나씩 달라붙는다. “좀 떨어져 주시지요?” “어머, 이 젊은 사장님 좀 봐. 내가 싫은가 봐?” “아뇨. 술을 마시러 왔는데 그렇게 붙으면 어떻게 마십니까.” 출판사 편집국장님은 “왜? 아가씨 바꿔 줄까?” 하셨고, “국장님, 여기가 조용히 이야기하는 곳인가요?” 했더니 “여기서 하는 얘기는 밖으로 새지 않아.” 하시더라. “국장님, 오늘 저를 이곳에 데려온 얘기는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저는 바깥바람을 쐬고 밤하늘을 보면서 조용히 한 모금을 기울이면서 이야기하는 곳을 바랍니다. 그만 나가지요?” “내가 최종규 씨 취향을 몰랐구나. 미안해. 다른 시인이며 소설가는 여기 데려오면 그렇게 좋아하는데, 여기 데려와서 싫어하는 사람을 처음 봤네.” “네? 시인하고 소설가가 이런 데를 좋아한다고요? ㅎ이나 ㅇ 같은 사람도요?” “그래, 여기 싫어하는 사람 없어.” “여성 시인하고 소설가도요?” “응, 좋아하는 여성 시인하고 소설가도 많아.” 이오덕 어른 시집을 펴내겠다는 출판사에서 ‘이오덕 유고를 갈무리하는 젊은이’를 ‘숨은 질펀술집(단란주점)’에 데려갔다는 얘기를 어찌저찌 들은 58년 개띠 술꾼 셋이 나중에 이러더군. “아니, 왜 우리는 안 데려가? 그런 좋은 데 가려면 우리를 같이 불러서 데려갔어야지!” 하고 출판사 편집국장한테 따지더라. 2004년 이날 뒤로 나는 ‘58년 개띠’인 사람들이 낸 시집은 안 읽는다. 다만, 58년 개띠 가운데 경남 시골로 떠난 분이 쓴 시집만 읽는다. 경남 시골에 사는 시인 아저씨는 질펀술집을 안 가시겠지?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2022년 6월 2일,

서울도서전에 갔다가

서울시청 곁 길손집에 자리를 잡고서

저녁을 먹을 데를 살피려고

서울 무교동 골목을 걷는데

‘위스키 ××’란 앞을 지나갔다.

이곳은 미닫이를 활짝 열고서

몇 조각 안 되는 얇은 깡똥치마인

아가씨들이 줄지어 앉아

이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손을 흔들면서 들어오라고 부르더라.

등골이 오싹하고 섬찟했다.

우리나라 참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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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2.6.1.

아무튼, 내멋대로 7 전라남도 고흥



  인천·서울에서 살며 뽑기(선거)를 할 적에는 큰고장이라 워낙 사람이 많으니 ‘누가 뽑기를 하고 안 하고’가 드러나지 않는다. 전남 고흥에서 살며 뽑기를 할 적에는 워낙 작은시골이라 사람이 적으니 ‘누가 뽑기를 하고 안 하고’가 훤히 드러난다. 서울·부산이며 큰고장은 이른바 ‘이럭저럭 비밀투표’라 할 테지만, 전라남도나 경상북도 작은시골에서는 ‘다 드러나는 안 비밀투표’ 같은 우리 민낯이다. 2022년 6월 1일을 앞두고 ‘손전화’로 전화가 오더라. “사전투표 했느냐?”고 묻더라. 어처구니없는 노릇이지만, ‘통화 녹음’을 눌렀고, 나한테 “사전투표 했느냐?”고 묻는 분한테 이 말을 다시 하도록 에둘러 말을 했고, “저는 본투표를 할 생각입니다.” 하고 말하고서 끊었다. 서울·부산에는 새뜸(신문·방송)도 많고, 글을 쓰는 사람도 많다. 큰고장에서는 조그마한 허물도 쉽게 드러나고, 벼슬꾼(정치꾼·공무원)은 작은 허물이 새뜸에 환히 드러나서 창피를 받기도 하고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한다. 이와 달리 작은시골에서는 큼지막한 허물조차 돈(광고비)으로 씻을 뿐 아니라, 아무리 커다란 허물이 있더라도 외려 새뜸에 한 줄로조차 안 나오기 일쑤이다. 글바치(기자·작가)를 보라. 문재인·윤석열·조국·한동훈을 놓고 이러쿵저러쿵하지만, 전남 고흥 군수라든지 전남교육감 후보라든지 전라남도 군의원 같은 사람들 발자취를 살피는 이가 몇이나 될까? 전라남도 고흥에 살면서 하루하루 창피한 민낯을 숱하게 지켜보는데, 이 작은시골에서는 이 민낯을 글로 쓰는 사람을 ‘두 분 + 나 하나’ 빼고는 못 본다. 아는 이들은 그저 마음에 담고서 말을 않고 글로는 아예 안 옮긴다. 창피한 민낯을 말로 읊거나 글로 옮기면 군수·도지사·교육감·국회의원 같은 이들이 우르르 뒷손을 써서 아주 이뻐해(블랙리스트) 준다. 작은허물 아닌 큰허물로 얼룩진 그들(군수·도지사·교육감·국회의원)은 나더러 “입 좀 다물지? 입을 다물면 너한테도 좋을 텐데?” 하고 꼬드기려 한다. 나는 그들한테 “손 좀 치우시지? 난 너희 돈을 받을 생각 없어. 난 이 나라에서 참빛을 찾는 이들이 즐겁게 내 책을 사서 읽어 주기에 그분들이 책을 사서 읽어 주는 손길을 볼 뿐이야.” 하고 말한다. 경상도만 해도 ‘민주당 후보·국민의힘 후보·정의당 후보·진보당 후보·녹색당 후보’가 있다. 그러나 전라남도를 보면 ‘민주당 후보·민주당에서 탈당한 무소속 후보’만 있다. 전라남도는 다름(다양성)을 잃은 지 너무 오래되어 썩어문드러졌다. ‘오월광주넋’을 내세우려는 전라남도·광주라면, 모든 지역구에서 ‘정의당 후보·진보당 후보·녹색당 후보’가 나란히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나마 광주는 큰고장이라 이런 후보가 몇쯤 있다지만, 전라남도 작은시골에는 아예 없다. 바로 창피한 민낯이다. 우리나라 진보·녹색정치는 모조리 서울바라기로 쏠린 채 그들 스스로 말하는 ‘녹색(시골)’에 아주 등진 몸짓이다. ‘전라도로 먹고사는 민주당’도 고인물이지만, ‘서울에 목매는 진보정치’도 고인물이다. 2022년 6월 1일 14시에 자전거를 타고서 면소재지 중학교 체육관에 있는 투표소로 가기 앞서 이 글을 남긴다. 찍을 사람을 찾기 어려운데 뭘 찍어야 할까.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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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2.5.29.

아무튼, 내멋대로 6 쓸거리



  남이 시키기에 써내는 글이 아닌, 스스로 우러나오면서 펼치는 글은 1990년에 처음 썼다. 날마다 새벽부터 밤까지 꽁꽁 가두어 배움수렁(입시지옥)에 밀어넣는 푸른배움터(중학교) 길잡이(교사)는 언제나 막말에 몽둥이질에 손찌검이었는데, 어머니 곁일(부업)을 도우려고 마을을 함께 돌며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를 하다가 본 글에 ‘청소년헌장’이란 글줄이 하나 보였고, 이튿날 배움터에 가서 물어보니 아무도 모르더라. “청소년을 가르친다는 어른이 어떻게 청소년헌장도 모릅니까!” 하고 따지면서 글붓집(문방구)에서 큰종이(2절지)를 사서 큰글씨로 “청소년을 함부로 때리지 말고, 청소년한테 함부로 욕하지 말고, 청소년을 입시지옥에 내몰지 말고 ……” 같은 이야기를 파란글씨로 열대여섯 줄 적어서 나들간(현관)에 붙였다. 이러고서 글종이 옆에 나란히 섰다. 그때 길잡이는 “이 새끼 뭐 하는 거야?” 하면서 머리통을 후려치더니 잡아떼려 했고, 나는 “선생님, 청소년헌장도 모르십니까? 학교에서 청소년헌장을 알려주지 않으니, 제가 써 보았습니다. 선생님이 이렇게 욕하고 저를 또 때리고 이 글종이를 떼내려 하니, 청소년학대로 여겨 경찰에 신고해도 되겠습니까?” 하고 따졌다. 불그락푸르락하던 그이는 으뜸어른(교장선생)하고 한참 얘기하더니 ‘딱 이레(7일)’만 붙이고서 치우기로 하자고 얘기하더라. 이레 뒤 이 글종이를 손수 걷어서 건사하려 했더니, 그놈이 벌써 뜯어서 태웠더라. 이때 그놈(교사도 아닌 후레놈)이 ‘청소년헌장 글종이’를 박박 찢어서 불태우지 않았으면, 어쩌면 나는 굳이 글쓰기란 일을 안 했겠다고도 생각한다. 싸우자고 달려드는 글이 아닌, 삶을 삶대로 담고, 참말을 참말대로 옮기고, 사랑을 사랑대로 얹으면서, 살림을 살림대로 노래하기에 글이리라. 그리고 우리는 모두 다르면서 빛나는 숲(자연)이니, 스스로 얼마나 푸르게 빛나는 바람노래인가 하고 읽어내면서 한 올씩 담으면 글일 테지. 남을 쳐다보면 쓸거리가 없다. 스스로 나를 바라보면 모두 쓸거리로 피어난다. 우리 삶은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은, 오롯이 삶이다. 모자라지도 나쁘지도 않다. 훌륭하지도 값지지도 않다. 언제나 새롭게 맞이하는 오늘이기에 천천히 하루를 되새기면서 글 한 줄로 마음을 다독인다고 느낀다. 숱한 꼰대(어른 아닌, 나이만 먹은 꼰대)는 아이들이 마음빛을 글로 수수하게 옮겨서 스스로 하루를 노래하는 길을 바라지 않는다. 숱한 꼰대는 아이들이 굴레에 갇히고 수렁에 잠겨 쳇바퀴를 돌기를 바란다. 그래서 숱한 꼰대는 아이들한테 잘난책(베스트셀러·세계명작)만 읽히려 한다. 숱한 꼰대는 아이들이 책집마실을 스스로 누리면서 저마다 마음을 밝힐 책을 스스로 살펴보고 챙겨서 ‘잘나지 않은 수수한 책’을 만나는 길을 안 바란다. 잘난책만 읽느라 꼰대한테 길든 아이들한테는 쓸거리가 없다. 남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라온 사람한테는 삶이 없이 굴레·수렁·쳇바퀴만 있는걸. 심부름·시킴질을 떨쳐내고서 스스로 삶길을 일군 사람은 모든 하루가 쓸거리요, 노래이며, 빛살이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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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2.5.27.

아무튼, 내멋대로 5 스승이 없다



  우리 어머니는 작은아이한테 글을 가르치지 않았다. 우리 언니는 어린이집(유치원)을 다녔다. 언니는 ‘아들 드문 집안 맏이’라 ‘없는 돈을 어떻게든 빌리고 얻어’서, 인천에서 가장 좋다는 어린이집에 억지로 넣었다고 들었다. 언니한테 목돈을 쓰자니 작은아이한테 쓸 돈은 없으나, 일곱 살에 어린이집에 안 넣을 수 없었다지. 나도 언니처럼 어딘가(어디인지는 모르지만 언니가 날마다 가는) 가고 싶다고 어머니를 조른 듯싶다. 어머니는 ‘유치원 구실도 하는 마을 미술학원’에 나를 넣어 주셨고, 나는 그곳에서 ‘수업·공부’가 아닌 ‘놀기’를 하며 한 해를 참 잘 보냈다. 다만, 글은 몰랐는데 “어머니, 나만 글을 모르는데요, 글 좀 가르쳐 주세요.” “글? 국민학교 가면 다 배우는데 뭘 벌써 배워? 어머니 바쁜 줄 알지? 집안일이 얼마나 많냐. 그냥 국민학교 가서 배우면 안 되겠니?” 1982년에 들어간 국민학교에서 비로소 ‘한글’이란 이름을 듣고, 며칠이 안 되어 떼었다. 글씨도 셈도 매우 재미났다. 다만, 툭하면 때리고 차고 괴롭히고 물동이를 들라 시키고, 또래 앞에서 창피하게 닦달하는 어른(교사)은 너무 싫고 무서웠다. 열아홉 살에 푸른배움터를 마칠 때까지 나로서는 ‘스승’이 없다고 느꼈다. 그래도 하나를 꼽자면, 1992년 8월 28일부터 드나든 인천 배다리책거리에 있는 헌책집이다. 헌책집 할머니 할아버지 아줌마 아저씨는 내가 한나절(네 시간)은 가볍게 틀어앉아서 말없이 책읽기를 해도 너그러이 봐줄 뿐 아니라, 책값을 깎아 주거나 이따금 거저로 주면서 “책을 좋아하니 그냥 주지. 대견하네.” 하셨다. 배움옷(교복) 차림으로 뻔질나게 와서 주머니를 탈탈 털어 책값을 치렀다. “책값 많이 써서 어쩌나?” “뭘요. 걸어가면 돼요.” “집이 어딘데.” “○○동이에요.” “거기까지? 멀잖아?” “뭐, 오늘 산 책을 읽으면서 두어 시간 걸으면 돼요.” 국·중·고등학교보다 나으리라 여겨 들어간 열린배움터(대학교)도 매한가지라, 드디어 열린배움터는 그만두고 보니, 참말로 나로서는 나를 이끈 ‘사람스승’은 딱히 없다. 언제나 ‘책집지기’ 어른만 나한테 길잡이요 스승일 뿐이다. 스물다섯 살 무렵에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을 적에도, 스물아홉 살에 ‘떠난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하는 일을 맡을 적에도, 아주 마땅히 나한테는 사람스승이란 늘 책집지기 아재 아지매 할매 할배뿐이었다. 곁님을 만나 2008년에 큰아이를 낳고서, 2010년 가을에 인천을 떠나 시골로 삶터를 옮기면서, 바야흐로 스승으로 꼽을 숨결을 찾았다. 첫째, 곁님이 스승이다. 둘째, 아이들이 스승이다. 셋째, 숲이 스승이다. 곁님하고 두 아이랑 시골에서 살아가며 숲을 품는 길을 걷던 어느 날, 내가 나를 가리키는 글이름(필명)을 ‘숲노래’로 새롭게 지을 무렵, 나한테 넷째로 스승이 있다면 바로 ‘나’로구나 싶더라. 내가 나를 스스로 스승으로 삼을 줄 알기에 곁님을 스승으로 여기고, 아이들을 스승으로 두며, 숲을 스승으로 품는 살림을 걸어왔다고 느낀다. “최종규 씨는 스승이 없다고요? 당신은 혼잘멋(혼자 잘난 멋)인가요?” “저는 늘 곁님하고 아이들하고 숲한테서 배웁니다만, 그래서 남들이 물으면 이 세 님이 스승이라고 말합니다만, 곰곰이 보면 누구한테나 스승이란 있을 수 없어요. 이 말을 다들 못 알아들으시는 듯해서 그냥 ‘저한테는 제가 참스승입니다’ 하고 말하는데요, 스승이란, 가르치거나 이끄는 사람이 아닙니다. 스승이란, 스스로 슬기롭게 살아가는 숲빛을 품으며 스스럼없이 드러낼 뿐인 이슬인 사람입니다. 그러니 모든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 스스로 스승일 뿐’이고, 남을 스승으로 삼거나 여긴다고 하면 ‘우상숭배’일 뿐 아니라, 스스로 허깨비나 허수아비가 되어 참나(진정한 자아)를 잊고서 바보로 뒹구는 쳇바퀴에 스스로 갇힌 채, 우두머리(권력자)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면서 사랑을 나란히 잃는, 슬프면서 슬픈 줄조차 못 느끼는 부스러기로 목숨을 잇는다고 느껴요. 누구한테나 스승은 따로 없이, 스스로 배우고 스스로 가르치고 스스로 살림하고 사랑하면서 빛날 뿐입니다.” “……. 허허, 도인 납셨네.” “네, 모든 사람은 누구나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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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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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2.5.27.

아무튼, 내멋대로 4 육체노동



  1988년에 푸른배움터(중학교)에 들어가며 가장 놀란 대목은 새벽 여섯 시부터 밤 열 시까지 끊이지 않는 막말(욕)이다. 어린배움터(국민학교)를 다닐 적에는 집에서 새벽 여섯 시 무렵 나왔고, ‘고속도로 곁·공장 옆·군부대 앞·연탄공장 둘레·옐로우하우스 옆길·기찻길 기스락·골목길’을 걸어서 오갔다. 여덟 살짜리 ‘국민학교 1학년’인 1982년 3월 3일부터 내내 이렇게 걸었다. 배움터에는 으레 새벽 여섯 시 반이 안 되어 닿고, 숙직실 교사 빼고 아무도 없는 곳에 조용히 들어가 하늘바라기를 하거나 학급문고를 읽었다. 열네 살부터는 더 일찍 배움터에 갔다. 중학교에서는 05시 50분 즈음이면 배움터에 닿았고, 고등학교에서는 으레 05시 즈음이면 배움터에 닿았다. 아무튼 열네 살 푸름이는 중학교란 이름인 그곳에서 또래나 길잡이(교사) 모두 언제나 모든 말소리를 막말(욕)을 한가득 섞어 내뱉는 꼬라지를 보면서 “이게 무슨 학교인가? 감옥이지?” 하고 여겨 그만두고 싶었으나 “중졸도 아닌 국졸로 뭐 하게? 육체노동밖에 할 일이 없어!” 하고 윽박지르는 말에 주눅이 들어 겨우 버텼다. 이다음 고등학교에서는 “입시공부로 4∼5년을 버렸는데 안 아까워? 조금만 더 버텨. 적어도 대학교는 가 봐야지!” 하는 말에 자퇴할 꿈을 접고서 대학교란 곳을 어쨌든 들어가 볼까 하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막상 열린배움터(대학교)에 들어가니, 아직 첫 배움길(강의)조차 아니던 새터(새내기 새로배움터·OT)를 한다며 불러서 찾아간 1994년 2월 어느 날, 내가 다닐 갈래(학과) 윗내기(선배)가 어느 술집으로 오라 해서 한또래(동기)하고 작은 칸에 모여앉았더니, 윗내기는 우리가 들어간 칸을 밖에서 걸어잠근 다음에 “자, 너희들 오늘 여기서 이걸 다 비우지 않으면 못 나가!” 하더라. 뭔가 했더니 소주 한 궤짝을 들여놓고서, 아무 곁밥(안주) 없이 맨술(깡소주)을 다 비워야 한다더라. 나는 한국외대에서 네덜란드말을 익혀 통·번역을 할 꿈을 키우려 했는데, 길잡이(교수)를 만나기 앞서부터 질렸다. 3월 2일에는 “첫 강의는 휴강을 해야 제맛”이라며 멀뚱멀뚱 이름(출석)만 부르고 돌아가라는 길잡이를 보고서 속으로 “이 새끼들 비싼 등록금은 뒷구멍으로 처먹었나? 등록금을 받았으면 수업을 해야지, 왜 첫날부터 휴강이래?” 하고 뇌까렸다. 3월부터 7월까지 모든 배움길(강의)을 들으려니 윗내기나 한또래는 “야, 여기가 고등학교냐? 제끼고 놀러가자.”고들 하더라. “난 8교시까지 끝나지 않으면 놀러갈 생각 없어. 그리고 난 8교시가 끝나면 헌책집에 가서 적어도 두 시간은 책을 읽을 생각이니까, 나랑 놀고 싶으면 저녁 일곱 시 뒤에나 얘기해.”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그만두자고 생각했다. 대학교 자퇴는 싸움터(군대)를 다녀오고 나서 1998년 12월에 비로소 했으나, 1994년 9월, 그러니까 대학교 첫 방학이 끝난 뒤에 다짐을 했다. “너 고졸로 뭐 해 먹고 살게? 육체노동밖에 없어!” “몸쓰는 일이 나쁜가요?”“아니, 안 나쁜데, 정신노동이 돈 잘 벌어. 왜 굳이 힘든 길을 가?” “전 거짓말로 돈벌 생각은 코딱지만큼도 없습니다.” “니 코딱지는 왕코딱지냐?” 1995년 11월 6일에 싸움터로 끌려가서 스물여섯 달을 살아남으면서 앞길을 곰곰이 그려 보았다. 이제는 남(사회)이 하는 말은 안 듣기로 했다. 오롯이 내 마음빛을 읽고 내 넋이 바라보는 길을 걷기로 했다. 1997년 10월 어느 날, 별빛이 쏟아지고 별똥이 춤추는 강원도 양구 멧골짝에서 별빛지기(불침범)를 서다가 “그래, 강원도 양구 백두산부대(21사단)를 마치면 막일판(공사장)에서 일삯 만 원씩 더 준다지? 우리는 날마다 삽질로 살아가니까. 언제라도 몸일(육체노동)을 할 수 있어. 그렇다면 고졸내기로서 마음일(정신노동)을 부딪혀 보자. 마음일을 하는 쪽으로 가다가 도무지 안 되면 그때에 몸일로 바꾸자.” 고졸내기로 마음일을 할 자리는 없다시피 하지만 아예 없지는 않다. 그저 언제나 밑바닥부터 기면 된다. 머리로 글을 쓰거나 책을 다루는 일거리가 아닌, 사랑으로 글을 여미고 책을 돌보는 일거리라면 얼마든지 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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