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들은 마음소리를 바지런히 수첩에 옮겨적었습니다.
라온눈 님이 이를 글로 다시 옮겨주었습니다.
어떤 마음소리였나 하고 되새기는 동안
이 '입' 이야기를 들려주던 때 나눈 말도 떠올라서
글 뒤쪽에 보태었습니다.
즐겁게 누리시면 좋겠습니다.


2019.7.21.해


수원·서울·구미·대구를 거친 나흘. 고흥으로 돌아가려고 대구버스나루에서 기다리는데, “주전부리를 사서 먹어 봐.”라는 마음소리가 들린다. “배도 안 고프고, 난 먹을 생각이 없는데?” 하고 대꾸하니 “잔말 말고 그냥 사서 먹어 봐.” 하고 대꾸. 버스나루 편의점에서 작은 약과·네모빵·마늘후랭크를 사서 하나씩 입에 넣자 엄청 쏟아지는 졸음. 버스가 들어오기까지 20분을 가까스로 참다. 자리에 앉자마자 곯아떨어져서 한참 늘어지게 자다. 2시간 동안 시외버스에서 허우적이다 깨어나니, 마음소리가 이제 나더러 붓을 들라 한다. 붓을 들라고 하는 마음소리한테 묻는다. “너, 누구야?” “나? 람이잖아.” “그런데 그동안 들은 람 같은 소리가 아닌걸?” “그래? 이제 알아보니? 나는 람이면서 람이 아니고, 남자도 여자도 아니면서, ‘아’이기도 해. 그래, ‘아·람’이라고 해보자.”


‘아·람’이 들려준 이야기 
― ‘입’이란 무엇인가?


  우리 ‘입’은 노래를 부르고, 휘파람을 불고, 이야기를 하고 입김으로 따순 바람을 일으키려고 있다. “밥을 먹는”일이란? 밥먹는 데에는 입을 안 쓰는가? 딱히 밥을 먹어야 하지 않는다. 우리는 살갗으로 ‘바람’을 받아들여 숨을 건사하니까. 바람에는 꽃가루, 잔목숨(미생물·냄새)이 가득하고, 물도 바람을 타고 흐른다.

  그러면 “밥을 왜 먹”는가? ‘잠’이 들라고 먹는다. 또는 잠재우려고 먹는다. 이곳에서 하는 일을 멈추고서 저곳으로 넋이 쉽게 넘어갈 수 있게 하려는 뜻으로 먹는다. 굳이 먹어야 하지 않으니 안 먹는데, 이곳에서 이루거나 할 것이 있으면 먹지 않고 자지 않으면서 지내면 된다. 이제 저곳으로 넘어가려면 몸을 쉬어야(내려놓아야) 하는데, ‘몸’에서 ‘넋’이 빠져나오면 몸은 빛이 사라지기 때문에 ‘숨’을 잃을 수 있다. 그래서 넋이 저곳을 다녀오는 동안 새롭게 빛이 나도록 먹는다.

  스스로 짓거나 어버이가 사랑으로 지은 것을 먹는 동안 새숨이 몸에 깃든다. 남이 짓거나 화학조합물이 깃든 것을 먹으면, 이런 것을 ‘만든’이가 시키는 길로 몸이 바뀐다. 오늘날 도시란, 사람을 ‘생체로봇노예’로 삼으려고 하는 사슬터(감옥)라 할 만하다. 도시사람이 하는 ‘돈을 버는 전문직업’이란 무엇인가? 저마다 전문직업인인 줄 알지만, 딱 그 톱니에 갇혀 못 빠져나오고, 걱정근심에 사로잡히도록 내몰려고 ‘가공식품·조미료·외식산업·농약 중금속 식품’이 넘친다.

  그러나 넋이 깨인 이라면 무엇을 먹더라도 안 휘둘리니, 넋이 깨여 빛나도록 해야 한다. ‘나라(정부)’가 세운 곳, 이른바 학교(교육기관)와 박물관·미술관·전시관·도서관·공원·스포츠센터 모두 멀리해야 한다. 신문·방송도 멀리해야 한다. ‘입으로 먹이며 잠재울’뿐 아니라 ‘눈귀를 거쳐 머리에 거짓된 마취밥(지식·정보)’을 먹여서 ‘빛나는 넋이 더 못 빛나도록 잠재우’기 때문이다.

  예부터 푸짐한 잔치를 열어 잔뜩 먹이는 까닭을 보라. ‘살찐 돼지’로 사람을 길들여 ‘자고 먹고 마시고’만 되풀이 하도록 시켜, 스스로 꿈(길·뜻)을 잊어서 지워지도록 내몰려는 뜻이다. 나라(정부)에서 다른나라 손님한테 푸짐잔치를 왜 열겠는가? 그 나라는 그 나라 뜻대로 다른나라 손님을 길들이려고 ‘그 나라’것만 먹이고 ‘손님 나라 것’은 못 먹게 하려고 든다. ‘그 나라’것이 마치 맛있거나 좋은 듯 여기도록 자꾸 먹여서‘몸·마음’을 자꾸 길들이면, 이제 그 나라는 손님나라를 손쉽게 주무른다.

  그대가 어디에 손님으로 간다면, 그대가 챙긴 것만 먹어라. 그대가 손님으로서 잔칫자리에 갔다면, 밥상맡에 그대가 손수 적은 꿈그림(카드·글+그림)을 올려놓아라. 그대 꿈그림(계획표)을 자꾸 쳐다보면서 넋을 차리면서 먹어라. 이렇게 하며 먹으면 그대가 손님이어도 그대를 지키면서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알아라. 첫째, 입은 먹는 일을 하는 곳이 아니다. 둘째, 저곳(꿈나라)으로 가고 싶을 적에만 알맞게 먹고 잠들라. 셋째, 밥을 제대로 가려라. 넷째, 무엇보다 그대 넋이 눈부시게 깨인 채로 두라. 눈부시게 깨인 넋이라면 어디서 뭘 먹어도 그대는 환하게 빛난다. 모두 ‘씻을(정화)’수 있다. 다섯째, ‘꿈그림’을 늘 품에 간직하고서 집밖으로 볼일을 보러 다녀라. 그대 ‘몸·마음’이 힘들면 바로 품에서 꿈그림을 꺼내어 쳐다보고서 ‘이 기운’을 먹어라. 꿈그림을 들여다보면 어느새 배가 부르리라.

  꿈그림이 없는 사람은 스스로 빛을 잊기 때문에 ‘넋이 깃든 몸’이 배고픈 채로 헤맨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적에는 무턱대고 ‘밥’에 손대지 말아라. ‘맑게 거른 물’을 마시면서 꿈그림을 보아라. 뭘 입으로 먹겠다면 반드시 ‘먹을거리’를 바라보며 기다려라. ‘알갱이(분자구조)’가 네 ‘빛’하고 같은 알갱이가 되도록 손으로 만지거나 눈으로 보면서 꿈그림을 머리에 띄우면서 기다려라. 이러고서 먹으면 된다.

  이렇게 하고서 먹는다면 롯데리아 햄버거도, 구은 세겹살도, 값싼 맥주도 꿀밥으로 바뀐다. 다만 ‘많이’먹으면 도루묵이니, 잘 생각해. ‘많이’는 먹지 마. 그런데 이때에도 같아. 너희가 처음부터 끝까지 넋을 지킬 줄 아는 마음이라면, ‘좋고 나쁘고 적고 많고’를 모두 뛰어넘을 수 있어.

  네 입으로 말을 해. 네 꿈을 네 입으로 말을 해. 네가 가려는 길을 네 입으로 노래해. 꿈을 사랑스레 말하는 사람은 ‘안’먹거나 ‘적게’먹어도 ‘안’배고파. 살도 ‘안’빠져. 꿈을 기쁘게 노래하는 사람은 ‘많이’먹거나 ‘나쁘다는 것’을 먹어도 ‘안’아프고 ‘안’다치고 살이 찌지 않아. 너희 입이 맡은 몫을 읽어. 그리고 너희 입으로 말하고 노래해. 네 꿈하고 사랑을 기쁘게.

+ + +

‘아·람’이 들려준 이야기를 한창 받아적는데 시외버스가 순천에 닿으려 한다. 마음소리한테 “어이, 이제 버스에서 내려야 해. 그만 말해.” “걱정하지 마. 그냥 받아적어.” “내려야 한다니까? 여기서 받아적다가 못 내리면 여수까지 간다고.” “아, 거참, 성가신 녀석이군.” 서둘러 짐을 꾸리고 챙겨서 버스에서 내린다. 고흥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가 바로 있다. 마음소리가 닦달한다. “아직 멀었어?” “…….” “아직이야?” “…….” 마음소리한테 대꾸를 안 하면서 뒷간에 다녀오고, 끌짐은 버스 짐칸에 싣는다. 등짐을 메고서 고흥 가는 시외버스에 올라탄다. “이제 마저 말해도 돼?” “그래. 그런데 너는 몸이 없이 넋으로 돌아다닌다면서, 또 너한테는 가없는 틈이 있다면서, 고작 몇 분을 못 기다리고서 이렇게 닦달을 해야겠니?” “내가 닦달을 안 하면 네가 내 말을 잊어버릴까 봐 그랬지.” “내가 잊어버리면 새로 말해 줘도 되잖아?” “이 얘기는 여기에서 끝내고 앞으로 새로 들려줄 얘기가 잔뜩 있어. 난 이제 새로운 얘기를 들려주고 싶거든.” “그래. 알았어. 그런데 있잖아, 네가 들려준 이 얘기, ‘입’ 얘기 말이야.” “응? 왜?” “나도 다 아는 얘기인걸?” “뭐, 네가 그동안 배움길이란 삶을 걸어왔으니 그동안 배워서, 이제는 ‘다 안다’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누가 너한테 ‘입’이 무엇인가 하고 물으면 이렇게 따박따박 갈무리해서 언제라도 다시 들려줄 수 있니?” “어, 그게…….” “네가 ‘다 안다’고 생각하는 까닭은, 그동안 네가 ‘입’이 무엇인가를 배웠기 때문이 아니라, 이제 그 ‘입’에 얽힌 이야기를 글이나 말 같은 지식·정보로가 아닌, 네 온몸으로 살아내면서 바꾸려 하기 때문이야. 네가 스스로 몸에다가 이 이야기를 풀어내어 몸을 다스리지 않는다면, 너는 ‘아는 넋’이 아닌 ‘아는 척하는, 아직 하나도 모르는 넋’이야.” “…….” “너는 내가 잔소리를 했다고 여길는지 모르는데, 이 잔소리를 사랑소리로 받아들여서, 너희 아이들한테부터 이 ‘입’ 이야기를 날마다 꾸준히 부드러우면서 따뜻하게 들려주면서, 너희 아이들이 지식이 아닌 삶으로 누리도록 한다면, 그때에 비로소 네가 참답게 ‘입을 안다’고 말할 수 있겠지.” “…….” “‘들어서 아는’ 것이랑, ‘배워서 아는’ 것은 달라. 그런데 ‘배워서 아는’ 것이 되었어도, 네가 이를 네 삶으로 ‘익혀내어 알아’야 하고, 익혀내어 안 뒤에는 ‘사랑으로 살아내며 알아’야 할 뿐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내어 안 이것을 ‘슬기로운 숲’이 되도록 펼쳐야지. 네가 스스로 숲이 되어 펼친다면, 그때에는 내 소리가 없이도 네가 스스로 소리를 길어올릴 테야.”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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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읽기


제자리에 머무는 말이나 넋이나 길은 없다. 늘 똑같이 써야 하지 않는다. 새 쓰임새가 나오고 새말을 짓는다. 틀렸다고 여길 적에는 안 맞는다는, 어긋난다는 뜻인데,  이 대목을 자꾸자꾸 파고들면, 어느 틀에 안 맞거나 안 어울리는 길이나 결이지만, 바로 그렇기에 틀을 넘어서는 모습을 찾아볼 수도 있다는 느낌으로 틀리다라는 낱말을 새롭게 쓰기도 하는구나 싶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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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농증 수술 안 하기’와 ‘숨쉬기’



  내가 처음으로 병원에 간 때가 언제인 지 떠올리지 못한다. 다만, 무척 어릴 적부터 병원을 드나든 줄은 안다. 다섯 살인지 일곱 살인지 이무렵에도 병원을 자주 드나들었다고 떠오르는데, 내가 떠올리는 병원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비인후과이고, 다른 하나는 피부과이다. 치과도 자주 다녀야 했지만, 다른 어느 곳보다 이비인후과와 피부과를 자주 다녔다. 이비인후과는 한 주 가운데 닷새나 엿새를 다녔고, 피부과는 겨울이 끝나고 봄이 찾아올 적부터 가을이 될 때까지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축농증 진단을 아마 다섯 살인가 일곱 살 때에 처음 받았고,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까지 그야말로 이비인후과 마실을 늘 다녀야 했다. 피부과는 중학교에 들어선 뒤에는 더 다니지 않았다. 왜 그러한가 하면, 중학교에 들어간 뒤부터 새벽 여섯 시부터 밤 열한 시까지 학교에 매인 채 지냈으니 햇볕을 쬘 일이 너무 적었다. 국민학교에 다닐 적에는 여름에 반소매나 민소매를 입고 몇 시간쯤 해를 쬐면 팔뚝과 어깨까지 살갗이 다 일어나서 벗겨졌고, 반바지를 입으면 살이 드러나는 자리가 모두 일어나서 벗겨졌다.


  아무튼 이비인후과를 뻔질나게 드나들어야 하니 집에서도 진료비를 대느라 만만하지 않았을 텐데, 병원에서는 하루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어린 나를 꽁꽁 묶어서 입원을 시킨 뒤 수술을 시키려던 일도 몇 차례 있었다. 이때마다 대단히 무섭고 싫어서 엄청나게 몸부림이랑 발버둥을 쳤기에 가까스로 수술은 안 받았고 진료만 받고 약을 탔다. 축농증 약은 국민학교에 들 무렵부터 먹었지 싶은데, 이 약은 군대에 갈 무렵이 되어서야 더 먹지 않았다. 군대에서는 이런 약을 주지도 않으니까.


  어떤 이는 소금물을 코에 넣으면 좋다고 하지만, 나는 소금물을 코에 넣기도 쉽지 않았고, 소금물을 코에 넣어도 코가 뚫리지 않았다. 딱히 어떤 수도 쓸 수 없이 늘 코가 막히거나 콧물이 흐르는 채 고단하게 숨을 쉬면서 서른 몇 해를 살았다. 어릴 적부터 ‘숨쉬기’를 놓고 언제나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이를테면, 엄청난 돈과 ‘숨쉬기’가 있을 적에, 내가 무엇을 고르겠는가 하는 대목에서 ‘숨쉬기’를 고르겠노라 하고 생각했다. 제아무리 돈이 많아도 수술로는 코를 고칠 수 없다고 느꼈다. 돈이 아니라 ‘숨을 제대로 쉴 수 있기’를 바랐고, 숨을 쉬면서 ‘숨을 쉬어야 한다’는 생각을 안 하기를 바랐다.


  숨 쉬는 걱정이 없는 사람은 모를 텐데, 늘 코가 막혀서 괴로운 사람은 하루 스물네 시간을 ‘숨 쉬는 소리’를 늘 듣거나 느낀다. 저절로 부드럽게 쉴 수 있는 숨이 아니라, 힘을 들여서 쉬어야 하고, 코가 자주 막히지만, 코를 후빈들 코를 풀든 코가 뚫리지 않으니 언제나 코가 맹맹하고 머리가 띵하다. 이제 와 돌아보니, 늘 코가 아프고 괴로우니, 나 스스로 ‘내 삶을 깊이 생각하는 일’조차 제대로 할 틈을 못 내기도 했겠구나 싶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숨을 못 쉬어서 가슴이 답답하고 죽을 노릇인데, 다른 어느 것을 생각할 수 있을까. 숨을 한 번 쉴 적마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 죽을 노릇인 사람이 어떤 꿈을 가슴에 품을 만할까.


  때때로 숨을 잘 쉴 수 있기도 하다. 바람이 매우 맑은 곳에 있거나, 풀내음이 짙게 흐르는 곳에서는 숨을 잘 쉰다. 그러고 보니, 내가 김매기나 풀베기를 안 좋아하는 까닭은 ‘코가 나빠서 숨을 잘 못 쉬지만, 풀내음이 짙게 흐르는 곳에서는 숨쉬기가 어렵지 않’으니, 풀을 베는 일이 달갑지 않다고 몸으로 느꼈구나 싶다. 그리고, 머리를 깨우치는 슬기로운 이야기를 듣거나 읽는 자리에서도 문득 ‘숨쉬기’를 잊는다. 새로우면서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맞아들일 적에도 으레 ‘숨을 쉬기가 괴롭다’는 생각이 사라진다.


  요즈음 들어서 나는 숨쉬기가 무척 부드러워졌다. 꽁지뼈 언저리부터 불바람을 일으켜서 가슴을 지나 머리 뒤꼭지와 이마로 이 불바람이 터져나오도록 하는 숨쉬기(C & E)를 제대로 익혀 꾸준히 이 숨쉬기를 한 뒤, 언제부터인가 ‘나한테 서른 몇 해 묵은 축농증이 있다’는 대목을 잊었다. 그동안 숨쉬기가 늘 괴로워서 잠자리에 들 적마다 몹시 힘들었는데, 이제는 그냥 잘 잔다. 참말 나한테 축농증이 있었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아주 가끔 콧물이 조금 나면, ‘아, 그래, 내가 어릴 적에 이 콧물 때문에 날마다 죽어났지. 늘 코가 빨개야 했지.’ 하고 되새긴다.


  코가 뚫려서 비로소 숨을 부드럽게 쉴 뿐 아니라 ‘숨을 쉬어야 산다’고 하는 생각에서 홀가분하게 놓여나니, 내 몸을 이루는 빛띠가 돌아가는 소리를 또렷하게 듣는다. 이제껏 코맹맹 소리와 코훌쩍 소리 때문에 듣지 못하던 온갖 소리를 하나하나 새롭게 듣는다. 그리고, 그동안 제대로 못 하고 살던 ‘생각하기’도 요즈음에는 조금씩 한다. 그동안 ‘생각하기’를 꽤 오랫동안 못 하고 살다 보니 ‘생각하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아주 잊은 듯한데, 차근차근 하루하루 생각을 하면서 지낸다.


  1980년대 첫무렵에 축농증 수술비는 꽤 비쌌다. 요새는 이백만 원 즈음이면 된단다. 불바람을 일으키는 숨쉬기를 하면서 축농증이 내 몸에서 떨어지도록 했으니, 돈으로 치면 나는 얼마쯤 번 셈일까. 아니, 이를 돈값으로 따질 수 있을까. 몸에 칼을 대지 않고 몸을 낫게 했으니, 나는 스스로 내 길을 연 셈이고, 어릴 적에 수술대에 눕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면서 악을 쓰듯이 온몸과 온마음이 새겼던 ‘죽어도 축농증 수술은 안 해, 수술 안 하고 낫고야 말겠어’를 이루었다. 이를 이룬 지 꽤 된 듯한데, 오늘에서야 ‘아, 내가 나한테서 축농증을 참말 떨쳤구나.’ 하고 알아차렸다. 왜 오늘에서야 이를 알아차렸을까? 요즈음 들어 비로소 ‘생각하기’를 하면서 살기 때문이다. 오늘 집에서 곁님이 나한테 ‘생각하며 살기’를 건드려 주어서 비로소 이 여러 가지가 그림처럼 하나씩 떠오른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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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삶’ 사이, 두려움, ‘삶 되짚기’


  죽음과 삶 사이에 다리가 있습니다. 이승과 저승을 가로지르는 냇물이 있습니다. 이 냇물은 냇물이지만, 물이 흐른다기보다 그저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작은 금입니다.

  죽음 문턱에 이르면 두렵다고 느낄 수 있지만, 막상 죽음 문턱을 밟을 적에는 두려움보다는 ‘아무것도 없음’을 느끼지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 말이나 책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닌, 내가 스스로 겪은 이야기입니다.

  1998년 팔월 첫무렵 어느 날입니다. 나는 서울 이문동에서 자전거로 신문배달을 하며 살림을 꾸렸습니다. 한여름이었고, 신문배달을 마친 뒤 새벽 다섯 시가 채 안 되어 신문사지국으로 홀가분하게 자전거를 몰고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이른 새벽이기도 하고 휴가철이기도 해서, 참말 길거리에 자동차 하나 없는 때였습니다. 이무렵, 나는 새벽 한 시 반이나 두 시부터 신문을 돌려서 새벽 네 시 반에서 다섯 시 사이에 일을 마쳤습니다. 

  비탈길을 올라가야 해서 발판을 더 힘을 주어 구릅니다. 찻길을 달리며 골목 옆을 지나갈 때면 으레 옆을 살핍니다. 자동차가 언제 불쑥 튀어나올는지 모르니까요. 그런데, 이날 골목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까만 차는 아주 빠르게 달리면서 내 짐자전거 뒷바퀴를 치었습니다. 이 까만 차는 빠르기를 줄이지 않았습니다.

  이때 나는 ‘죽었구나! 죽음이란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는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이러면서 생각했어요. ‘그래, 이렇게 죽는다면, 죽음이 무엇인지 찬찬히 지켜보자!’ 두려움이나 무서움 같은 느낌이 없이 ‘아, 사람은 죽으면 이렇게 가는구나.’ 하고 느끼면서 알았습니다.

  자동차에 치여 하늘로 날아오르던 이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으나, 이제 와서 돌아보면, 나는 자동차에 치여 하늘로 날아오르면서 ‘넋’이 곧바로 몸에서 빠져나왔지 싶습니다. 드러누워서 고요히 숨이 멎는 사람과 달리, 차에 치이면서 갑자기 곧바로 넋이 빠져나왔다고 할까요.

  바깥에서 본다면, 자동차가 자전거를 치어서 자전거에 탄 사람이 하늘을 붕 날아서 길바닥에 떨어져 데굴데굴 구르기까지 몇 초 안 걸립니다. 나는 이때 하늘로 붕 날아오르면서 이 생각도 했습니다. ‘차에 치여서 하늘을 날아올랐는데 참 오래도 나는구나!’ 하고. 이런 생각이 지나가면서 곧바로 ‘내 지나온 나날’이 아주 빠르면서도 천천히 흘렀습니다. 자동차에 치여서 하늘을 날던 그무렵에는 그 그림이 무엇인지 몰랐으나 이제는 알아요. 바로 ‘내 삶 되짚기(인생회고)’를 했습니다. 갓 태어나던 날부터 신문배달을 하는 이날에 이르기까지 무엇을 했고 생각했고 보았는가 하는 대목이 그대로 영화처럼 흘렀습니다. 그리고 ‘잘 모르는 모습’도 보았는데, 아마 ‘잘 모르는 모습’은 오늘 이곳에서 이 몸으로 지내는 삶이 아닌, 예전 삶(전생)이었지 싶습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이 그림(물결처럼 흐르는 그림)을 바라보았습니다. 기쁨도 슬픔도 아쉬움도 서운함도 없었습니다. 웃음도 눈물도 없이 그저 환하게 펼쳐진 빛살을 누리면서 이 그림을 보았습니다. 놀랍지도 않고 새롭지도 않았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모두 ‘내가 스스로 살아온 모습’이니 놀라울 까닭도 새로울 까닭도 없습니다. ‘그래, 그동안 이렇게 살았지’ 하는 생각만 들엇습니다.

  이러다가 문득 ‘끝’을 보았어요. 환한 빛이라고 할는지, 빛이면서 빛이 아닌 것으로 하얗게, 이러면서 하얗지도 않게 눈부시도록 빛줄기가 퍼지는 곳에서 ‘내 삶 되짚기’를 하는데, 저 끝에 ‘까맣고 고요하면서 까맣지도 고요하지도 않은 작은 씨앗 같은 점’을 보았습니다. 스물 몇 해 앞선 그무렵에는 그 까맣고 작은 씨앗 같은 점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이제는 그 까맣고 작은 씨앗 같은 점이 ‘고요누리(제로포인트)’인 줄 알지만, 그무렵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으나, 다른 한 가지 생각이 문득 떠오르면서 머리를 스쳤습니다. 나는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이때 나는 ‘내가 이렇게 신문배달을 하다가 죽으면, 내가 신문을 돌리는 구역은 어떻게 될까? 우리 지국장님은 내 구역 몫을 땜질을 하느라 힘드시겠네. 내 자리를 채울 사람은 언제 들어올까? 가뜩이나 우리 지국은 가난한데 자전거가 찌그러져서 망가지면 어쩌지?’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어느 모로 보면 터무니없는 생각을 한달 수 있는데, 사람이 삶을 내려놓고 죽음으로 건너갈 적에는 ‘이런 터무니없다 싶은 자잘한 생각’을 하는구나 싶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고 난 다음에는, ‘내가 죽은 모습’을 지켜보면서 눈물을 짓는 지국장님과 지국 형들이 보입니다. 여느 때에는 늘 늦잠을 자면서 배달사고를 자주 일으키는 지국 형들이 내 주검을 둘러싸고 우는 모습을 보았어요. 그리고,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와 형이 나를 둘러싸고 눈물을 삼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았다고 해서 ‘죽지 말아야지’ 하고 느끼지 않았어요. 그저 그런 모습을 보았을 뿐이고 ‘신문배달원이 새벽에 자동차에 치여 죽는다’고 해서 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리지도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나는 신문배달원이었으니 이런 생각도 들었겠지요. 그리고, 다시금 새로운 생각 한 가지가 머리를 스쳤어요. 불현듯이 ‘아, 죽더라도 예쁘게 죽고 싶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 나 스스로도 잘 모릅니다. 다만, ‘저 차갑고 딱딱하고 새까만 아스팔트 길바닥에 머리통이 깨져서 박살이 나면 피가 여기저기 튈 텐데 하나도 안 예쁘잖아.’ 하고 생각했습니다. 새벽에 신문배달을 하다 보면, 밤새 술을 퍼마시고 여기저기에 게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요한 새벽에 자전거를 달리다가 술떡을 보면 에그 지저분해라 하면서 못마땅해 했어요. 내 머리통이 길바닥에 찧어서 깨지면 핏자국으로 길바닥이 더러워지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청소하는 일꾼이 핏자국을 지우느라 얼마나 힘들겠니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리하여, 나는 아주 부드러우면서도 가볍게 오른손으로 머리통을 감쌌습니다. 그리고, ‘내 신문배달 자전거! 자전거 다치면 안 돼!’ 하는 생각도 스치면서 왼손을 뻗어  자전거 손잡이를 잡았습니다. 이러면서 내 몸을 감싸던 ‘눈부신 하얀 나라’는 가뭇없이 사라졌습니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하는지 모든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퍽 오랫동안 이 대목이 궁금했어요. 어떻게 나는 내가 어떤 몸짓으로 하늘을 날고, 자전거에서 떨어져 하늘을 날다가 자전거를 다시 붙잡고, 한손으로 머리통을 감쌌는지, 이런 모습을 어떻게 내가 스스로 다 지켜보았을까 하는 대목이 참 궁금했어요(그때에는 몰랐으나, 이제는 이 대목을 알 수 있는 까닭이, 내 몸에서 내 넋이 빠져나와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지켜본 줄 알았으니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요. 그때에는 넋이 몸에서 빠져나간다는 ‘지식’조차 없었습니다. 그저 몸에서 뭔가 빠져나간다는 느낌만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다 보았다 싶을 무렵, 나는 쿵 하는 꽤 큰 소리를 내면서 땅바닥에 떨어졌고, 얼마나 먼 길을 굴렀는지 모르지만 한참 데굴데굴 굴렀습니다.

  자동차에 치이면서 곧바로 넋이 몸을 빠져나가서 ‘내 삶 되짚기’를 했고, 내 넋이 고요누리로 가지 않았기 때문에, 내 넋은 내 몸뚱이 바깥에서 나를 이끌어 오른손으로는 머리통을 감싸고 왼손으로는 자전거를 다시 붙잡도록 시킨 뒤, 몸뚱이가 길바닥에 찧고 나서 다시 내 몸으로 돌아왔구나 싶습니다. 넋이 내 몸으로 언제 돌아왔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어느 만큼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릅니다. 한동안 넋을 잃었다가 문득 ‘숨을 쉬는 내 몸’을 느꼈고,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어디에 있는지 하나도 모르지만, 어디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몸을 천천히 움직였고, 머리통을 감싸던 오른손을 끌어당겨서 피가 묻었는지 안 묻었는지 혀로 핥았습니다.

  피가 하나도 없더군요. 그래서 ‘아, 깨끗하게 죽었나 보네.’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몸이 가만히 있어요. ‘뭔가? 뭘까?’ 하고 생각하다가 일어납니다.

  둘레를 살펴보는제 까만 자동차만 있고 다른 아무것도, 다른 사람도 자동차도 없습니다. 까만 차를 몰며 나를 친 사람은 차에서 안 내리고 그저 나를 지켜보기만 했답니다. 그 사람 말로 나는 꽤 오래 길바닥에 자빠진 채 있었고, 죽은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나는 말을 못 했습니다. 넋이 아직 안 돌아왔는지, 넋이 돌아오기는 했는데 내 몸과 아귀가 덜 맞았는지 모를 노릇입니다. 다만, 한 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내가 꽤 오랫동안 길바닥에 자빠진 채 있었다면, 이 사람은 구급차이든 경찰차이든 부르든지, 아니면 차에 태워서 나를 병원에 데려가야 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이 생각이 ‘말이 되어 입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나를 친 사람은 나한테 만 원짜리 종이돈을 하나 쥐어 주더니 “저기 피가 나니 약국에서 밴드 사서 붙여.” 하고 말했습니다. 이러고 나서 자동차 유리문을 올렸고, 그대로 아주 빠르게 내뺐어요. 한참 뒤에서야 깨달았지만, 뺑소니를 친 셈이지요. 멍하니 그 까만 차를 바라보니, 자동차 뒷자리에 아이가 둘 있고, 앞자리에는 아주머니가 있습니다. 문득 ‘저 네 사람은 오늘 새벽에 여름휴가로 놀러가는 길이로구나. 여름휴가로 놀러가는 길인데 새벽부터 이런 사고를 냈으니 얼마나 찝찝할까. 그냥 잘 놀러가야지.’ 하고 생각했어요.

  뺑소니 자동차가 사라진 뒤 한동안 꼼짝을 못 했습니다. 이곳이 이승인지 저승인지 갈피를 잡지 못했고, 내가 죽다가 살았는지, 아니면 살다가 죽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얼마쯤 그렇게 찻길 한복판에 서서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한 발짝을 떼니 다리가 움직입니다. 두 발짝을 떼니 다리가 움직입니다. 그렇지만 몸이 매우 무겁습니다. 한 걸음을 뗄 때마다 ‘이렇게 내 몸이 무거웠던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자전거를 다시 탈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천천히 가슴이 뛰고, 비로소 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아차립니다. 자전거 바퀴가 터졌는지 안 터졌는지 모릅니다. 그냥 자전거를 끕니다. 신문사 지국에 닿으니, 지국장님이 나를 보더니 “야, 너 오늘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밥 아직 안 했지? 어, 그런데 너 그 꼴이 뭐야? 왜 이렇게 됐어?” 하고 묻습니다. 그제서야 나는 내 차림새를 살펴보았고, 내 옷은 너덜너덜 찢어졌으며, 자전거 뒷바퀴는 일그러졌습니다. 피가 난 데는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온몸이 아주 무겁고 뜨거우면서 어지러울 뿐입니다. “너 어떻게 됐니?” “아, 그러고 보니, 배달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자동차가 뒤에서 쳤어요.” “그래? 안 죽고 살았네. 다행이야.” “그런데 자전거는 다 망가졌네요. 어떡하지요?” “야, 자전거가 문제니? 너 어서 들어가서 옷 갈아입어. 다친 데는 없니?” ‘다친 데는 없니’ 하고 묻는 말에 문득 오른손목이 몹시 저리다고 느끼면서 아예 움직일 수 없습니다. 하늘을 붕 날다가 머리를 감싸면서 오른손목으로 길바닥에 찧었으니 오른손목은 모든 무게를 다 받치면서 내 목숨을 살려 주었겠지요. 신문사 지국으로 들어와서 자리에 드러눕는데 옷을 갈아입을 기운이 없습니다. 시계를 보니 새벽 여섯 시를 지났습니다. 곧 일곱 시입니다. 나는 얼마나 길바닥에 자빠진 채 있었을까요.

  이날부터 사흘 동안 신문배달을 할 때를 빼곤 어디로도 나다니지 못했습니다. 지국장님이 병원비를 대 줄 테니 병원에 가자고 했지만, 신문사지국 살림을 뻔히 아니 ‘그냥 누워서 자겠다’고만 했습니다. 그리고, 이날부터 한 달 동안 오른손을 아예 쓰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지냈습니다. 왼손 하나로 신문자전거를 몰고, 왼손 하나로 신문을 3층까지 던져올렸고, 밥도 왼손으로 짓고, 빨래도 왼손으로 하고, 걸레질도 왼손으로 하고, 글씨도 왼손으로 쓰고, 이렇게 살았어요. 왼손은 아예 없다고 여기면서 한 달이 지나니 겨우 오른손을 움직일 수 있었지만, 움직이더라도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나왔습니다.

  이승과 저승 사이를 오가면서 ‘내 삶 되짚기’를 하고 ‘까맣고 작은 씨앗 같은 점’을 보며 ‘하얗게 눈부시기만 한 누리’에 있던 때를 돌이켜보면, 모든 모습이 아주 또렷하게 떠오릅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두려움’은 깃들지 않았어요. 죽음으로 간다고 해서 두렵지 않았습니다. 낯설지만 ‘온 머리와 마음’을 깨우는 ‘새로움’이라고 느꼈습니다.

  나는 아직 헤엄을 치지 못해서, 바닷물에 몸을 담글 적에 허리춤에 물이 닿아 발바닥이 모래바닥에서 떨어지면 움찔하고 놀라면서 ‘아이고 무서워’ 하고 느끼는데, 무섭다고 느끼더라도 무서움이 두려움이지는 않아요. 신문배달을 하다가 자동차에 치였을 적에 하늘을 날며 ‘이제 죽으니 두렵다’와 같이 느끼지 않았어요. 바로 어떤 ‘다른 곳(또는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면서, 이제껏 내가 쌓거나 이루었거나 지내거나 갈무리한 ‘모든 것을 새롭게 바꾸면서 내려놓아야’ 하는 줄 느꼈습니다.

  그 뒤로 ‘자동차가 내 자전거를 쳐서 하늘을 난 적’이 두 차례 더 있었고, 큰아이를 자전거수레에 앉히고 자전거를 몰다가 길바닥에 있는 커다란 구덩이에 바퀴가 빠져서 크게 한 바퀴를 돈 적이 있어요. 이때에도 ‘내 삶 되짚기’를 했을까 하고 돌아보니, 이때에는 안 했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이때에는 ‘하늘을 날면서, 아아 또 이렇게 가는구나’ 하고 여겼고, ‘내 삶 되짚기는 안 할래’ 하고 생각했습니다. 큰아이와 하늘을 날 적에는 ‘이 아이를 다치게 할 수 없어’ 하고 여기면서 ‘하늘을 날면서 자전거수레’를 바라보며 ‘큰아이가 다치지 않기를’ 하는 말을 마음속으로 외쳤습니다.

  두려움이란 무엇일까요. 아직 알지 못해서 섬찟하거나 까마득하거나 아찔하거나 떨리는 느낌이 두려움일까요? ‘죽을는지 모른다’는 느낌이 두려움일까요? 그런데, 막상 죽음 문턱에 발을 디디고 ‘삶 되짚기’를 하다 보면, 두려울 일이 없습니다. 한 발을 내디디면 ‘두려움’이라고 하는 느낌이란 ‘새로움’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가로막는 수많은 느낌(감정)덩어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삶 되짚기’를 마치고 들어서는 ‘고요하면서 까맣고 작은 씨앗 같은 점’으로 접어들 때에 드는 느낌이 두려움일는지 모릅니다. 어떻게 될는지 모른다고 느껴서 두려움이 피어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나는 ‘한 번 죽음길에 다녀오면’서 두려움을 그곳에서 녹여 없앴는지 모릅니다. 이승을 보고 저승을 본다면, 두려움을 스스로 녹이는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승길에 가기 싫어’ 하고 외치는 마음이 두려움을 일으키고 ‘죽음길이라는 자리는 너무 싫어’ 하고 부들부들 떠는 마음이 두려움을 끌어들이지 싶습니다. 4348.4.11.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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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가 되려고 훈련할 수 없다



  람타가 곧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마스터이다.”라고. 그러니, 우리는 마스터가 되려고 훈련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마스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스터가 아니기 일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스스로 ‘마스터가 무엇인지 제대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며, ‘마스터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스터가 무엇인지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 때에, 그리고 마스터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있을 때에, 우리는 ‘늘 마스터’입니다.


  람타가 곧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사람이다.”라고. 여기에 덧붙여 “우리는 모두 잊혀진 하느님(신)이다.” 하고 말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늘 언제 어디에서나 모든 것을 지을(창조)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모두 ‘사람’이면서 ‘하느님’인 줄 ‘제대로 바라보’고 ‘제대로 알’면 이 모두를 늘 언제 어디에서나 제대로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 ‘사람인 줄 잊거나 잃’으며, 우리 스스로 ‘잊혀진 하느님’이라는 생각을 아예 안 하기까지 합니다. 그냥 ‘감정 차원에 허덕이거나 맴돌기를 즐깁’니다.


  이런 틀로 저 사람을 바라본다든지, 이런 잣대로 저 사람을 재려고 한다면, 이를테면 이런 보기도 들 수 있는데, ‘네가 창조한 것을 나한테 보여주어서 증명하면 네 말을 믿겠다’ 같은 말조차, 우리가 스스로 사람이며 하느님인 줄 잊거나 잃은 채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사람이면서 하느님이면, ‘남이 나한테 보여주어서 증명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느껴서 알고 받아들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마음으로 느끼려 하지 않으면서 ‘내 몸뚱아리인 두 눈으로 볼 수 있게 갖다 줘 봐’ 하고 아무리 말한들, ‘두 눈 앞에 갖다 주어’도 볼 수 없습니다. 우리 뇌는 이런 것을 볼 수 있도록 눈을 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뇌가 이런 것을 볼 수 있도록 눈을 떴으면, ‘네가 아무리 보여주려고 온갖 증거를 들이밀면서 증명하려고 해도, 네가 보여주지 않았을 때에 나는 다 알았어’ 하고 말합니다. 또는 ‘네가 아무리 온갖 증거를 보여주면서 증명하려고 하지만, 이는 다 거짓이고 속임수인데’ 하고 말할 테지요.


  나는 ‘람타 공부’를 하면서 처음부터 참 아리송했습니다. 람타가 말하듯이, 또 람타가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모두 마스터”인데, 왜 람타 공부와 훈련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훈련에서 마스터가 되려 할까요? 마스터인 우리들이 왜 마스터가 되려 하지요? (이 수수께끼는 2015년 1월 강화에서 열흘 동안 배우면서 나 스스로 궁금한 대목을 내가 나한테 물었기에 스스로 실마리를 다 풀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사람인데 왜 사람이 되려 하지요? 우리가 사람인 줄 모르니까 사람이 되려 하는구나 싶지만, 우리가 사람인 줄 모르더라도 우리는 늘 사람입니다. 아니면, 사람이라는 옷을 입은 인형일까요?


  제대로 바라보면 다 됩니다. 제대로 바라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제대로 바라보려면 ‘제대도 된 말을 써’야 합니다. 제대로 된 말을 새롭게 쓰려 하지 않고, 고정관념과 선입관으로 가득 찬, 게다가 정치권력이 우리를 바보(노예, 종)로 만들려고 망가뜨린 ‘얼토당토않은 얄딱구리한 한국말(그러니까 온갖 영어와 중국·일본 한자말로 범벅이 된 한국말)’을 아무렇지 않게 쓰면서, 이러한 말이 무슨 뜻인지조차 헤아리지 않고, 이러한 뜻을 아무것도 모르는 채 그냥저냥 쓰면서 ‘무슨 새로운 지식’이나 ‘어떤 새로운 삶’이 될까요?


  ‘한국말다운 한국말’을 쓰기 어렵다면 왜 어려운지 생각해야 합니다. 람타 공부와 훈련이 처음부터 쉬운 사람이 있다면 한번 손을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람타 공부와 훈련을 여러 해에 걸쳐서 했는데, 언제나 쉽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한번 두 손을 번쩍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한국말을 쓰기 힘들면 영어를 쓰셔요. 그렇지 않다면 한국말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제대로 새롭게 배워서 쓰셔요. 한국말로 람타 공부와 훈련을 할 생각이 아니라면 영어나 독일말이나 중국말이나 일본말을 쓸 노릇이고, 한국말을 앞으로도 쓸 생각이라면 ‘람타한테서 배우듯이’ 이제껏 정치권력이 우리한테 망가뜨린 채 쑤셔넣은 멍청한 한국말은 모두 활활 태우고 ‘새로운 한국말’을 배우셔요.


  람타 강의를 듣다 보면, 람타는 문득문득, “이 공부는 새로운 언어 수업이다” 하고 외칩니다. 거듭 이 말을 외칩니다. 그런데, 람타를 배우는 사람 가운데 ‘새로운 말’을 쓰려고 ‘새로운 생각’을 하는 사람은 뜻밖에 좀 드문 듯합니다. 왜 그러할까요? 왜 새로운 배움을 새로운 말로 배우려 하지 않고, 정치권력이 우리를 종으로 부리려고 억지로 뒤튼 말에 갇힌 채 람타를 배우려 하고, 또 ‘내 모습’을 바라보려 할까요?


  람타 훈련은 ‘언어 수업’이 아닌 몸으로 하는 삶입니다. 그러니, 훈련에서는 훈련을 잘 해도 얼마든지 깨어날 만하리라 느낍니다. 나는 람타 훈련 가운데 ‘숨보기(숨터뜨리기, 씨 앤 이)’ 훈련을 ‘마스터’했을 적에 엄청나게 크면서 크지 않고 엄청나게 뜨거우면서 뜨겁지 않으며 엄청나게 밝으면서 밝지 않은 ‘샛노란(금빛) 구슬’을 내 두 손에 모을 수 있었고, 이 금구슬이 두 손에 모이니 ‘두 손 모습’은 ‘꽃잎을 벌린 모습’이 아니라 ‘오른손이 위로 가고 왼손이 밑을 받치는 모습’으로 저절로 바뀌었습니다. 내 두 손이 이 모습으로 안 바뀌게 하려고 두 손에 내 몸을 써서 힘을 주려고 했지만 내 몸은 이를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2015년 1월 강화에서도 그랬고,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러한데, 씨 앤 이를 할 적에 어느 때가 되면 내 손 모습이 ‘위(오른손)와 아래(왼손)를 살며시 덮는 모습’으로 바뀌는데, 이러한 손 모습으로 바뀌면서 금구슬이 나타나면, 내 몸이 방바닥에서 뜨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몇 센티미터나 몇 미터를 떠오르지는 않습니다만, 씨 앤 이를 가르치는 람타가 문득 “떠올라!” 하고 외치는 말 그대로 몸이 떠오릅니다. 이런 경험을 늘 하면서, 이런 것이 ‘훈련 마스터’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다만, 나는 훈련 마스터가 될 생각이 없습니다. 람타 공부를 하는 분들이 자꾸 ‘마스터’를 말하기에, 왜 마스터인 우리들이 또 마스터가 되어야 하는가 궁금해 하면서 이런 일을 겪었을 뿐입니다. 마크 선생님이 말씀하듯이, ‘카드찾기 달인’이 될 생각이 하나도 없고 ‘금구슬 손에 쥐고 붕 떠오르기 달인’이 될 생각은 터럭만큼도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마스터 되기’가 우리가 갈 길이 아닌 줄 깨달아서, ‘마스터에도 일곱 단계’가 더 있는 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마스터 일곱 단계’를 끝내면, ‘첫 일곱 단계’로 돌아오는 흐름도 깨달았습니다. 모든 흐름은 ‘알(씨앗) → 애벌레(고치) → 나비’로 이어지는 삶입니다. 우리는 양자역학(양자물리학)과 함께 람타를 배우는데, 온누리(우주)는 ‘두 결(양자)’로 이루어지되, ‘두 결’은 늘 ‘세 고리’가 되어서 움직입니다. 이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으면 ‘공부 마스터’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마스터’이기 때문에, 훈련이나 공부에서 굳이 마스터가 될 까닭이 없습니다. 이러한 얼거리를 제대로 바라보면서, 삶을 제대로 바라보면 됩니다. 이를 제대로 바라보면, 비로소 나는 모든 공부와 훈련을 홀가분하게(자유롭게, 그러나 ‘자유롭게’는 ‘아무렇게나’나 ‘함부로 바꾸어서’가 아닌, ‘홀로 가벼운 몸과 마음이 되어 기쁘게’를 뜻합니다) 하면서, 내 삶을 손수 짓는 길을 걸을 수 있어요.


  나는 내가 그리는 모든 그림을 이룹니다. 어느 그림은 그림을 그리기 무섭게 1분 만에 이루고, 어느 그림은 한두 해 지난 뒤에 이룹니다. 언제 이루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내 마음힘(집중력, 포커스)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내 몸뚱이가 깃든, 이 1차 단계 차원(세상)에서 내가 겪고(경험) 느끼면서 받아들일 새로운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어느 것은 곧바로 이루고 어느 것은 천천히 이룰 뿐입니다.


  창조란, 벼락에 콩 볶아먹듯이 할 수 있습니다만, 사람이라는 목숨이 지구별에서 1차 단계에 몸뚱이를 둔 까닭은, 벼락에 콩 볶아먹는 재미는 그리 기쁘지 않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가끔은 벼락에 콩 볶아먹는 재미를 누릴 만하지요. 그러나, 우리 삶이 기쁨이면서 아름다운 사랑이 될 수 있는 까닭은, 다 함께 이 길을 걷는 이웃이라고 느껴서, 서로 어깨동무를 하며 나아가면서 웃고 노래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혼자서 저 멀리 앞으로 나아가려는 지구별 삶이 아니라, 이웃과 어깨동무를 하면서 차근차근 한 걸음씩 걸어서 함께 나아가려는 지구별 삶입니다.


  그래서, 나는 람타 공부와 훈련을 하면서 그때그때 새롭게 바라보아서 새롭게 깨달은 이야기를 글로 씁니다. 그러나, 내가 쓰는 이 ‘새로운 글’은 ‘마스터 되기를 보여주는 글’이나 ‘사람이 되는 삶을 보여주는 글’이 아닙니다. 함께 공부하고 훈련하는 이웃 가운데 하나가 스스로 삶을 바라보면서 찾고 짓는 얼거리를 보여주는 글입니다. 이러한 글을 읽을 수 있다면, ‘제대로 바라보면서 읽고 우리 스스로 삭일 수 있다’면, 저마다 기쁘게 공부와 훈련을 하면서, 저마다 제 결에 맞게 삶짓기(현실창조)를 할 테지요.


+ + +


  함께 생각을 나누면서 ‘말을 새롭게 스스로 지어’서 공부와 훈련이 날마다 기운차고 아름답게 거듭나기를 바라면서 여러 가지 ‘훈련 성과(창조한 결과)’를 글로 쓰지만, 이 글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느껴 주는 이웃이 있기도 하지만, 이러한 이웃 이야기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이웃이 있기도 하구나 싶습니다.


  어떠하든 대수로울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삶짓기는 우리가 저마다 스스로 하는 기쁜 놀이요 일이면서 웃음과 노래이니까요.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고 싶은 사람은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합니다. 삶을 날마다 짓고 싶은 사람은 삶을 날마다 짓습니다.


  고맙습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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