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약


  서울 시내를 다니는 버스는 ‘서울버스’입니다. 광주 시내를 다니는 버스는 ‘광주버스’이고, 시골을 다니는 버스는 ‘시골버스’예요. 다른 곳을 안 거치고 바로 가는 버스라면 ‘바로버스’이고, 여러 곳을 돌고 돌아서 가는 버스라면 ‘도는버스’이지요. 바로버스는 ‘직행버스’라 하기도 하고, 도는버스는 ‘완행버스’라 하기도 해요. 서울에서 다니는 버스는 2003년부터 네 가지 빛깔로 옷을 새롭게 입혔어요. 처음에는 ‘그린(G)·옐로(Y)·블루(B)·레드(R)’처럼 온통 영어만 썼는데, 이제는 ‘풀빛(푸름)·노랑·파랑·빨강’ 같은 한국말을 써요. ‘풀빛버스’보다는 ‘초록버스’라는 이름을 쓰는 분이 있는데, ‘초록’은 ‘풀빛’을 가리키는 중국 한자말이에요. 일본 한자말로는 ‘녹색’이 있어요. 그러고 보면, 빛깔말을 쓰는 ‘빨간약’이 있습니다. 다치거나 까진 생채기에 바르는 약이에요. 이 약에는 ‘머큐로크롬’이라는 긴 이름을 있지만, 흔히 손쉽게 ‘빨간약’이라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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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글걸상


  다리가 아프면 걸상에 앉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기도 해요. 여러 사람이 앉을 만하도록 긴 걸상이 있어서, 이를 ‘긴걸상’이라 해요. 혼자 앉을 만한 걸상은 그냥 ‘걸상’이라 할 텐데 ‘홑걸상’이라 해 볼 수 있어요. 앉으면 폭신한 걸상이라면 ‘폭신걸상’이 되고, 다리가 바닥에 단단히 버티지 않아서 흔들흔들거리는 걸상이라면 ‘흔들걸상’이 돼요. 앉는 자리가 동그랗다면 ‘동글걸상’이나 ‘동그라미걸상’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고, 네모난 자리를 마련하면 ‘네모걸상’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어요. 걸상이 빙그르르 돌아간다면 ‘빙글걸상’이나 ‘빙그르르걸상’이 될까요? 어른들은 빙글빙글 도는 걸상을 가리켜 ‘회전의자’라 하고, 빙글빙들 돌면서 드나드는 문은 ‘회전문’이라 하는데, 빙글빙글 도는 문은 ‘빙글문’이라 하면 한결 알아듣기 쉬우리라 생각해요. 밥상을 빙글빙글 돌릴 수 있으면 ‘빙글밥상’이 되지요. 일본밥을 파는 가게에 가 보면 ‘빙글초밥’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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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기, 작대기


  가늘고 긴 것이 있으면 ‘작대기’라 해요. 이 작대기가 나무라면 ‘나무작대기’이고, 쇠라면 ‘쇠작대기’예요. 가늘고 긴 것이라 할 테지만 작대기보다 짧으면 ‘막대기’이지요. 작대기를 토막으로 낸다면 막대기라고 할 만합니다. 작대기를 쓰면 높은 곳에 매달린 것을 따거나 움직일 수 있어요. 도랑이나 냇물에 빠진 것을 건지려면 작대기를 쓰지요. 낚싯대는 바로 작대기이고, 마당에 빨랫줄을 드리운 뒤에 받치는 바지랑대도 작대기예요. 창문을 가리는 천을 드리우려고 벽과 벽 사이에 높이 가로지르는 길다란 것도 작대기이지요. 막대기는 짧은 것을 가리키는데, 빵집에서 흔히 파는 바게트라고 하는 빵이 바로 ‘막대기’를 닮은 빵이에요. 그래서 바게트빵은 ‘막대기빵’이나 ‘막대빵’이라 할 만해요. 길이가 짧으면서 덩어리가 진 것은 ‘토막·도막’이라 하는데, 토막은 크고 두툼한 것을 가리키고, 도막은 작고 도톰한 것을 가리켜요. 장난감으로 삼는 ‘나무도막’은 작고 도톰하지요. ‘나무토막’이라고 하면 난로에 불을 땔 만큼 제법 큰 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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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


  우리가 사는 이 나라는 슬프거나 아픈 일을 숱하게 겪으면서 말까지 슬프거나 아픈 일을 겪었어요. 남녘하고 북녘이 서로 다른 나라로 갈리면서 남녘말하고 북녘말이 갈리기도 하는데, ‘동무’라고 하는 낱말을 두고도 남·북녘이 뿔뿔이 갈렸지요. 그렇지만 〈동무 생각〉 같은 노래는 그대로 부르고, 〈어깨동무 노래〉 같은 오래된 놀이노래는 고이 흘러요. 아무리 정치와 사회가 찢기거나 갈리더라도 사람들 가슴에 깃든 오래된 사랑이나 살가운 숨결을 억지로 끊지는 못한다고 할까요. 오래된 놀이노래인 〈어깨동무 노래〉를 살피면 ‘어개동무·가게동무·씨동무·보리동무·천동무·만동무·머리동무(머리카락 동무)·개동무(날씨 개는 동무)·해동무(해님 같은 동무)’ 같은 동무 이름이 나와요. 이런 여러 동무 말고도 ‘길동무·책동무·글동무·일동무·놀이동무·소꿉동무’가 있고, ‘책동무·생각동무·마음동무·밥동무·이야기동무·이웃동무’가 있으며, ‘꿈동무·만화동무·노래동무·춤동무·배움동무·그림동무·사진동무·영화동무’가 있어요. 비슷한 또래로 가까이 지내는 사이를 가리키는 ‘벗’이라는 낱말도 있고, ‘동무님·벗님’처럼 쓰기도 해요.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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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205] 쪽글



  책을 읽을 적에 ‘몇 쪽’을 읽느냐 하고 따지고, 배나 감을 칼로 쪼개어 ‘두 쪽’이나 ‘네 쪽’이 나와요. 내 물건을 ‘한쪽’에 곱게 두기도 하고, ‘이쪽 저쪽’에 엉클어 놓기도 해요. 작은 종잇조각을 가리켜 ‘쪽지’라 하는데, ‘쪽종이’이기도 해요. ‘색지’나 ‘색종이’가 있지요? ‘색지’는 “빛깔 넣은 종이”를 가리켜요. ‘색지 = 색종이’랍니다. 그리고 ‘색종이 = 빛종이·빛깔종이’이고요. 작은 종잇조각이 ‘쪽종이·쪽지’이듯이, 짧게 적어서 띄우는 글은 ‘쪽글’이라고 해요. 그러면 짧게 들려주는 말은 ‘쪽말’이 되겠네요. 손전화 기계에 글을 짧게 써서 띄우면, 바로 이처럼 짧게 써서 띄우는 글은 ‘쪽글’이기도 한데, 영어로 ‘메시지’라고도 하지요. 인터넷 게시판에 누군가 쓴 글이 있고, 이 글에 우리가 느낌을 덧붙이거나 덧달 수 있어요. 다른 사람이 쓴 글에 내 느낌을 덧붙이거나 덧달 적에는 ‘덧글’이 되어요. 다른 사람이 쓴 글에 내 생각을 밝히려는 뜻으로 대꾸하려고 하면 ‘댓글’이 됩니다. 나한테 온 편지에 답장을 쓰듯이, 내가 다른 사람한테 글을 써서 보내면 ‘답글’이 되지요. 4349.1.27.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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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204] 만들다



  내 이름을 ‘지어(짓다)’요. 내가 바라보는 나무나 풀에는 먼 옛날 누군가 지어 준 이름이 있어요. 새한테도 벌레한테도 누군가 이름을 지어 주지요. 시골에서는 흙을 짓거나 농사를 지어요. 함께 즐겁게 부를 노래를 짓지요. 줄을 지어서 서고, 글이나 책을 지어요. 어른뿐 아니라 어린이도 삶을 짓고 사랑을 지으며 살림을 짓습니다. 집이나 옷이나 밥을 짓고, 웃음이나 눈물을 지어요. 재미난 이야기를 짓고, 약을 지으며, 없는 말을 지어서 장난을 치거나 놀이를 해요. 잘못을 짓기도 하지만, 일이 잘 끝나도록 마무리를 지어요. 우리는 서로 사이좋게 짝을 지어서 놀아요. 그러니까, 밥이나 빵이나 국수나 두부는 ‘만들지(만들다)’ 않습니다. 밥은 짓거나 하거나 끓이지요. 빵은 구워요. 국수는 삶고, 두부는 쑵니다. 요리나 음식을 할 적에도 “요리를 하다”나 “음식을 하다”라 할 뿐 “요리를 만들다”라고 하면 살짝 엉뚱합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짓다·만들다’를 제대로 가려서 쓰지 않고 뒤섞어서 쓰지요. 사람들이 손이랑 마음을 써서 새롭게 이룰 적에는 으레 ‘짓다’라는 말을 씁니다. 갑작스레 나타나거나 공장에서 자동차를 찍듯이 새롭게 이룰 적에 비로소 ‘만들다’라는 말을 써야 알맞아요. 4349.1.28.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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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203] 아침볕



  ‘아침햇살’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요? 쌀로 빚은 마실거리가 떠오를까요? 아니면 아침에 떠오르는 해님이 비추는 눈부신 햇살이 떠오를까요? 한국말사전을 찾아보면 ‘아침해’나 ‘아침햇살’ 같은 낱말은 없어요. 그러나 우리는 ‘아침해·저녁해’라든지 ‘아침햇살·저녁햇살’ 같은 말을 곧잘 써요. 아침저녁으로 새로운 기운이면서 반가운 느낌이기 때문일 테지요. 사전에는 없지만 ‘아침볕·낮볕·저녁볕’이라 해 볼 만해요. 햇볕은 아침 낮 저녁으로 뜨겁거나 포근한 기운이 다르니까요. 눈이나 비를 놓고 ‘새벽눈·아침눈·낮눈·저녁눈·밤눈’이라 할 수 있고, ‘새벽비·아침비·낮비·저녁비·밤비’라 할 수 있지요. 서로 나누는 인사를 놓고 ‘새벽인사·아침인사·낮인사·저녁인사·밤인사’라 할 만해요. 노래라면 ‘새벽노래 …… 밤노래’가 되고, 놀이라면 ‘새벽놀이 …… 밤놀이’가 되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또 새벽부터 밤까지 우리는 저마다 재미나거나 즐거운 하루를 누리기에, 그때그때 어떠한 삶이랑 살림을 누리는가를 헤아리면서 새로운 말을 지으며 생각을 가꿀 만합니다. 4349.1.26.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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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202] 너희들



  어른들은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너희’나 ‘너희들’ 하고 말합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을 마주보면서 ‘너희’나 ‘너희들’ 하고 말하지 않아요. ‘너희·너희들’은 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한테 쓰는 말이거나, 또래 사이에서 쓰는 말이에요. “너희 집에 놀러갈게”라든지 “너희들끼리 놀고 나를 안 불렀네”처럼 쓰지요. 내가 어머니나 아버지를 가리킬 적에 “우리 어머니(우리 엄마)”나 “우리 아버지(우리 아빠)”처럼 말해요. ‘우리’라고 하는 한국말은 “부르는 사람”하고 “불리는 사람”을 함께 아우르면서 쓰거든요. “나를 낳은 어머니”라는 대목을 좀 힘있게 나타내고 싶어서 “내 어머니”처럼 쓰기도 하는데, ‘내’가 아닌 ‘나의’를 넣어서 “나의 어머니”처럼 쓰면 올바르지 않아요. 한국말은 ‘내’이거든요. “너희 집”이나 “네 언니”처럼 말해야 올바르고, “너의 집”이나 “너의 언니”처럼 쓰면 올바르지 않아요. 한국말은 ‘네’이거든요. 그런데 어린이가 보는 영어사전에까지 ‘my’라는 영어를 ‘나의’로 잘못 적기 일쑤라서 ‘나의·너의·우리의’ 같은 말투가 잘못 퍼져요. 일제강점기에 잘못 들어와서 퍼진 일본 말투가 아직까지 사그라들지 않았어요. 4349.1.26.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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