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226] 종이두루미



  집에서 종이로 노는 아홉 살 아이는 곧잘 종이접기를 하고 싶어서 책을 펼칩니다. 책에 나온 ‘종이학’ 접기를 해 보려는데 잘 안 된다면서 자꾸 도와 달라 합니다. 한 번 두 번 돕다가 아이한테 말합니다. “책을 덮으렴. 책을 보면서 하면 아예 못 접어.” 나는 책 없이 접는 손놀림을 아이한테 보여줍니다. 어릴 적부터 손에 익은 대로 종이를 네모반듯하게 자르고, 세모를 두 번 접어서 자국을 내며, 네모를 두 번 접어서 또 자국을 냅니다. 다시 세모를 접고, 잇달아 수많은 세모를 넣어 자국을 낸 뒤에 비로소 하나씩 새로운 꼴로 접습니다. 이러는 동안 어느새 예쁜 ‘종이두루미’가 태어납니다. 종이두루미를 다 접고 나서는 거꾸로 ‘펼친 종이’가 되도록 하나씩 풉니다. “눈으로 보기만 해서는 안 되고, 손으로 만지면서 몸에 익혀야 눈을 감고도 접을 수 있어.” 한나절 동안 함께 종이를 접고 나서 ‘종이학’이라는 이름을 생각해 봅니다. 일본에서 건너온 ‘종이학’ 접기인데, 일본에서는 ‘오리츠루(おりづる·折り鶴·折鶴)’라는 이름을 써요. “접는 두루미”라는 뜻입니다. 일본에서는 종이접기를 ‘오리가미(おりかみ·折り紙·折紙)’라고 말해요. 종이로 두루미를 접는 놀이가 일본에서 건너왔어도 ‘두루미’라는 이름을 쓰면 되었을 텐데, 처음에 ‘학(鶴)’이라는 한자를 쓴 바람에 이제는 ‘종이학’이라는 이름만 널리 퍼졌구나 싶습니다. 2016.5.14.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말이랑 놀자 216] 룰루랄라



  신나는 일이 있으면 저절로 노래가 나와요. 콧노래도 나오고 입으로도 온갖 가락이랑 말이 기쁘게 흐르지요. 이때에 ‘랄랄라’ 노래하기도 하고, ‘라랄라’나 ‘라라라’ 노래하기도 해요. ‘룰루루’ 노래하거나 ‘루룰루’ 노래하거나 ‘루루루’ 노래하기도 합니다. ‘랑랑랑’ 노래할 수 있고, ‘라리랄라’ 노래할 수 있으면 ‘리리리리’ 노래할 수 있어요. 신나거나 즐겁거나 기쁘면 ‘ㄹ’로 여는 말이 모두 노랫가락이 되어서 재미나게 춤추어요. 그래서 이를 갈무리해서 ‘룰루랄라’처럼 쓰기도 해요. 모두 ‘ㄹ’이 첫머리에 들어간 ‘룰루랄라’인데 ‘루룰라랄’처럼 말해도 재미나고, ‘라랄룰루’라든지 ‘라리랄라’라든지 ‘로리롤로’처럼 꼴을 살짝 바꾸면서 마음껏 놀 수 있어요. 때로는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라 라라라’ 하면서 노래하고, ‘랑랑랑 랑랑랑’ 노래한다든지 ‘름름름 름름름’ 노래할 만하지요. 자, 또 어떤 ‘ㄹ’ 노래를 부르면 재미있을까요? 발을 구르고 손을 흔들면서 밝게 웃는 낯으로 다 함께 모여서 신나게 ‘ㄹ’을 노래해요. 4349.2.1.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말이랑 놀자 215] 미리보기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책을 읽거나 어떤 영화를 보기 앞서, 언제나 ‘미리보기’를 할 수 있어요. 영화에서는 ‘예고편’이라고도 흔히 말하지만, 극장에 영화를 걸기 앞서 사람들한테 미리 ‘맛보기’로 선보이는 일은 ‘미리보기’예요. ‘맛보기’도 ‘미리보기’하고 같은 셈이에요. 그런데, 남보다 먼저 보고 싶어서 ‘먼저보기’를 할 수 있어요. 남보다 먼저 들어가거나 하려고 앞지른다면, 이때에는 ‘새치기’나 ‘옆치기’나 ‘가로채기’가 되어요. 다른 사람 자리를 빼앗으니까요. 사이에 끼어들거나 옆에서 슬그머니 가로채려 할 적에는 ‘내가 먼저’ 하겠다는 마음입니다. 이와 달리 너랑 내가 함께 하려는 마음이라면 ‘다 함께 미리보기’를 하거나 ‘서로서로 미리하기’를 하지요. ‘먼저’랑 ‘미리’는 거의 같은 자리를 가리킨다고 할 만하지만, 쓰임새는 이처럼 갈려요. ‘미리보기’를 하듯이 ‘미리읽기’나 ‘미리듣기’나 ‘미리먹기’나 ‘미리자기’나 ‘미리눕기’나 ‘미리가기’를 할 수 있어요. 앞으로 자야 할 잠을 미리 자니까 ‘미리자기’이고 ‘미리잠’이에요. 앞으로 먹을 밥을 머리 먹으니까 ‘미리먹기’이며 ‘미리밥’이에요. “미리 해서 나쁠 일이 없다”는 옛말이 있는데, 나중에 서두르지 말고 먼저 손을 알맞게 써서 챙기거나 건사하자는 뜻입니다. 4349.2.1.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말이랑 놀자 214] 리본, 댕기



  옛날에는 가시내뿐 아니라 사내도 머리카락을 땋아서 ‘댕기’를 달았어요. 댕기라고 하는 끈은 가시내만 쓰지 않았어요. 옛날에는 누구나 머리카락을 그대로 두었기에, 가시내도 사내도 머리카락을 땋을 줄 알았고, ‘머리땋기’는 ‘실닿기’라든지 ‘짚땋기’로도 이어져요. 머리카락을 손수 땋듯이 바구니나 소쿠리나 돗자리를 어른뿐 아니라 어린이도 넉넉히 짤 수 있던 살림이에요. ‘댕기’는 머리 끝을 여밀 뿐 아니라 곱게 꾸미는 구실을 하는 헝겊이나 끈을 가리켜요. 영어 ‘리본’도 으레 이런 구실을 하지요. 다만, 영어 ‘리본’은 리듬체조라고 하는 데에서도 말하고, 띠처럼 생긴 것을 가리키는 데에서도 써요. 그래서 리듬체조에서는 ‘끈’이나 ‘긴끈’이나 ‘긴띠’나 ‘막대띠’ 같은 이름을 쓸 수 있고, 여느 자리에서는 ‘댕기·끈·띠’를 알맞게 살펴서 갈무리할 만합니다. 영어이든 한국말이든 온누리 어떤 말이든, 스스로 잘 살려서 써야 쓰임새를 넓히고 새로운 뜻이나 느낌이 깃들어요.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것이나 문화라고 해서 반드시 영어로만 써야 하지 않는 줄 깨달을 수 있기를 빌어요. 4349.1.31.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말이랑 놀자 213] 라온



  닿소리 ‘ㄹ’로 여는 한국말은 거의 찾아볼 수 없어요. 오늘날 우리가 쓰는 ‘ㄹ’로 첫소리를 여는 낱말은 거의 외국말이라 할 만합니다. 옛날부터 한겨레가 ‘ㄹ’ 낱말을 안 쓰지 않았으나, 한글로 적는 맞춤법을 세우면서 ‘ㄹ’ 낱말은 모조리 자취를 감추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말사전에서 ‘ㄹ’ 자리를 살피면 거의 옛말이나 서양말이나 일본말인데요, 이 가운데 ‘라온’이 있어요. ‘라 + 온’인 낱말이고 “즐거운”을 뜻한다고 해요. 오늘날에는 안 쓰는 옛말이라지요. 그렇지만 오늘날에 이 ‘라온’을 쓰는 사람이 꽤 많아요. 회사나 공장을 열며 ‘라온’이라는 이름을 쓰는 곳이 있고, ‘라온’이라는 낱말을 넣은 아파트도 있지요. ‘라 + 온’으로 엮은 낱말인 ‘라온’에 다른 낱말을 엮어서 ‘라온눈’이나 ‘라온제나’나 ‘라온누리’나 ‘라온별’이나 ‘라온님’처럼 재미있고 사랑스러운 이름을 새로 짓기도 해요. 한국말사전에서는 옛말로 다루더라도 오늘 우리가 새로운 숨결을 담아서 즐겁게 쓴다면 얼마든지 ‘오늘말’로 거듭나요. 그리고, 오늘 우리가 제대로 안 쓰거나 잊는 낱말이라면, 이 낱말은 시나브로 ‘옛말’이나 ‘죽은말’이 돼요. 4349.1.31.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