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이야기꽃



우리는 서로 이슬떨이


[물어봅니다] 숲노래 님이 쓴 책을 읽다가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어서 질문을 드려도 될지요? ‘이슬떨이’라는 뜻을 조금 더 알고 싶습니다. 사전에서의 뜻을 살펴보지 못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이 낱말을 언제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문득 어떤 느낌일지 상상은 되지만 몸에 길들여진 말이 아니라 그런지 겉핡기 식으로 느껴져서요.


[이야기합니다] 물어보신 말씀을 듣고서 사전을 뒤적여 보았어요. 사전을 보니 ‘이슬떨이’를 올림말로 삼기는 하지만, 막상 보기글을 하나도 안 붙였네요. 보기글 없이 뜻풀이만 달랑 있으니, 어쩌면 사람들은 이 낱말을 여느 자리에서 어떻게 쓰는가를 모를 수 있고, 배우기 어렵다고 느낄 수 있겠어요.


  ‘이슬떨이’라는 낱말하고 닮은 ‘이슬받이’라는 낱말이 있어요. 사전은 ‘이슬받이’도 올림말로 삼아서 뜻풀이를 하지만, 이 낱말에도 보기글이 하나도 없네요. 이는 두 가지로 읽을 만해요. 첫째, 뜻풀이는 있되 보기글이 없는 사전이라면, 이 사전을 엮은 분들이 낱말 쓰임새를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는 소리예요. 둘째, 문학이나 언론이나 학문에서 어느 낱말을 어떻게 쓰는가를 찾아내지 못했으면, 사전을 엮는 분들 스스로 보기글을 붙이면 돼요. 그러나 그 사전을 엮은 분은 스스로 보기글을 붙일 생각을 안 했거나 못 한 셈입니다.


  사전이라면 뜻풀이 곁에 보기글을 두어야 해요. 두 가지가 함께 있어야 비로소 사전이라는 책답게 밑꼴을 갖추는 셈이에요. 보기글은 낱말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흐르는 결을 어린이부터 누구나 느낄 수 있도록 알맞게 붙일 수 있어야 하고요.


 ㉠ 네가 어제 이슬떨이가 되어 주었지. 오늘은 내가 이슬떨이가 될게.

 ㉡ 어머니는 언제나 이슬을 떨어 주면서 앞장서서 씩씩하게 가셔요.

 ㉢ 앞에서 이슬을 모조리 맞으며 옷자락이 젖었어도 걱정이 없대요.

 ㉣ 이슬을 머금은 푸나무는 싱그럽게 자란단다. 이 이슬을 온몸에 받았으니 한결 싱그럽겠지. 곧 떠오르는 해는 젖은 곳을 모두 따뜻이 말려 준단다.


  ‘이슬떨이’는 이슬을 앞에서 먼저 떨어 주어서 뒤따르는 이는 이슬에 젖지 않도록 하는 모습을 나타내요. ‘이슬받이’는 이슬을 앞에서 모두 받아 주면서 뒤따르는 이가 이슬에 안 젖도록 하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이런 얼거리를 살펴서 ㉠ ㉡ ㉢ ㉣ 같은 글을 새로 써 봅니다. 이슬은 나쁜 것이 아니에요. 밤새 고요히 잠든 푸나무는 이동안 천천히 맺은 이슬을 머금으면서 아무리 뜨거운 한낮에도 시원하게 하루를 나요. 푸나무는 새벽이슬을 품고서 후끈후끈 더운 불볕에 조금씩 물기운을 밖으로 내보내는데, 이렇기에 풀밭이나 숲은 더운 날씨에도 참으로 상큼하고 시원하지요.


  가만히 보면, 앞에서 가는 사람이 이슬이라는 물을 온몸으로 떨거나 받으면 이이는 몸이나 옷이 젖으니, 뒷사람은 옷이 안 젖어요. 성가신 일을 기꺼이 받아들일 뿐 아니라, 어느 길을 가야 알맞은가를 온몸을 던져서 찾아내는 노릇을 한달 수 있어요. 그런데 이슬이란 푸나무를 살리는 아름다운 숨결이에요. 이슬떨이나 이슬받이 노릇을 하는 사람은, 이녁이 맞아들일 낯설거나 고되거나 만만찮은 일을 싫어하지 않아요. 멀리하거나 꺼리지도 않아요. 모두 이녁을 살찌우는 마음밥으로 삼지요. 그렇기에 ‘이슬떨이·이슬받이’를 멋지면서 야무지고 아름다운 길잡이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쓸 수 있어요.


이슬동무 : 새벽을 여는 이슬을 맞이하는, 또는 새벽을 여는 이슬을 떨어 주듯 먼저 나아가는 길에 같이 있는 사이

이슬벗 : 새벽을 여는 이슬을 맞이하는, 또는 새벽을 여는 이슬을 떨어 주듯 먼저 나아가는 길에 같이 있는 가까운 사이


  사전에 ‘이슬동무·이슬벗’ 같은 낱말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 두 낱말을 새롭게 지어서 써요. 이슬떨이나 이슬받이는 한 사람일 텐데, 둘이나 셋이 나란히 이슬떨이로 나설 수 있어요. 서로 즐거이 웃으며 어깨동무하며 앞장서서 나아가기에 이슬동무랍니다. 자, 그러면 더 생각해 봐요. 우리는 이런 여러 낱말을 바탕으로 또 새로운 말을 지을 만해요. 어떤 말을 더 지을 수 있을까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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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우리말 이야기꽃



어떻게 새말을 지어요?


[물어봅니다] 숲노래 님은 날마다 글을 대단히 많이 쓰시는 줄 압니다. 그렇게 많이 쓰는 글을 보면 처음 보는 낱말이 꽤 많아요. 그런데 처음 보는 낱말이지만 어쩐지 어렵지 않고 무엇을 가리키는지 바로 알겠어요. 사전에도 없는 그런 새로운 말을 어떻게 날마다 그렇게 지을 수 있는지 궁금해요.


[이야기합니다] 저는 제가 글을 이렇게 날마다 엄청나게 많이 쓰는 사람이 될 줄 몰랐습니다. 게다가 글을 많이 쓴다는 생각조차 못했어요. 어느 날 문득 둘레에서 “글을 참 날마다 부지런히 안 지치고 잘도 쓰시네.” 하고 이야기해서 깨닫곤 합니다. 제 글쓰기부터 말하자면, 저는 스스로도 모르는 채 글을 날마다 잔뜩 쓰며 살았는데요, 이 글쓰기는 오롯이 사전쓰기였더군요.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국어사전이란 책을 두 벌을 통째로 다 읽고서 “국어사전이 뭐 이 따위로 엉터리야? 이 따위 국어사전이라면 차라리 내가 새로 쓰겠다!” 하고 한 마디를 뱉었어요. 국어사전을 두 벌 통째로 읽은 느낌을 이렇게 스스로 터뜨린 그날부터 글쓰기를 한 셈인데요, 그 글쓰기가 사전쓰기인 줄 알아차린 때는 2014년 즈음입니다. 참 무디지요? 늘 사전쓰기를 한 주제에, 참말로 그즈음까지는 제가 사전쓰기를 한다는 생각조차 못했답니다.

 

 책숲 = 책 + 숲 : 책으로 이룬 숲

 책마루 = 책 + 마루 : 책으로 이룬 마루

 책칸 = 책 + 칸 : 책으로 이룬 칸


  세 낱말을 적어 봅니다. 이 세 낱말은 다른 사전에 아직 없습니다. ‘숲노래 사전’에만 실은 낱말입니다. 아무튼 먼저 짜임새하고 뜻을 밝혀 보았는데요, ‘책숲·책마루·책칸’이란 세 낱말은 무엇을 가리키는지 가만히 어림해 보시고, 다음에 적을 낱말하고 맞대어 보면 좋겠어요.


 책숲(책숲집) ← 도서관, 라이브러리, 책문화, 책세계, 책세상

 책마루 ← 서재, 독서실

 책칸 ← 서재, 도서실


  영국에 셰익스피어란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글을 무척 많이 쓰신 이웃님인데, 이분은 글을 쓰면서 새말을 아주 많이 지었다더군요. 이녁 생각이나 마음을 나타내려고 할 적에 ‘예전부터 사람들이 쓰던 말’로는 어쩐지 모자라거나 안 맞는구나 싶으면 그때그때 새말을 지었다더군요.


  제 글쓰기나 사전쓰기란 셰익스피어가 걷던 길하고 닮습니다. 사람들이 그냥그냥 쓰는 낱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고 느끼면 그때그때 제 나름대로 새롭게 말을 엮거나 지어요.


  흔히들 ‘텃세’라고 그냥 쓰지만, 저는 ‘텃힘’으로 고쳐서 씁니다. 다들 ‘육식동물·초식동물’이라고 그냥 쓰더라도, 저는 ‘고기짐승·고기먹이짐승·고기잡이짐승’하고 ‘풀짐승·풀먹이짐승·풀뜯이짐승’처럼 고쳐서, 아니 새로 말을 지어서 쓰고요.


  저는 ‘시인’이라 안 하고 ‘시쓴이·시쓴님’을 섞어서 쓰고, 때로는 ‘노래님’이라고도 씁니다. 어제 큰아이하고 읍내에 저자마실을 다녀오는데, 큰아이가 ‘쥐치포’라 적힌 이름을 보더니 “아버지, ‘포’가 뭐예요?” 하고 물어요. 속으로 생각했지요. 아하, ‘포’는 어린이가 모를 만하겠네, 하고. “납작한 것을 가리키는 한자가 ‘포’야. 그러니까 ‘납작쥐치’네. ‘납작오징어’이고.”


  이제 ‘책숲·책마루·책칸’을 이야기할게요. 둘레에서 저더러 ‘도서관’하고 ‘서재’란 곳을 가리키는 새말을 지어서 쓰면 좋겠다고 꽤 자주 물었지요. 예전에는 ‘도서관·서재·도서실’ 같은 말을 그냥 쓰다가, 이태를 생각한 끝에 제 나름대로 새말을 짓고 엮고 추슬렀어요. 그래서 요새는 ‘책마루숲’ 같은 말까지 지었습니다. ‘책마루숲 ← 서재도서관’이랍니다. 스스로 새롭게 생각하고 싶다면 누구나 새말을 그때그때 즐겁게 지을 수 있어요. 남이 시키는 대로 하기보다, 스스로 길을 즐겁게 열겠다는 마음이라면 늘 넉넉히 새말꽃을 피운다고 느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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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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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지 않은 말


[물어봅니다] 숲노래님의 글은 언제나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어야 해요 그만큼 우리말에 익숙하지 않아서일 꺼예요.


[이야기합니다] 물음을 한참 되읽었어요. 그럴 수 있겠네 싶으면서 아닐 수 있기도 하겠지요. 다만 먼저 이 한 마디는 여쭐 수 있어요. 제가 쓴 글이건 이웃님이 쓴 글이건, 우리는 글을 제대로 읽자면 매우 천천히 읽어야 합니다. 빨리 읽어서는 놓치거나 건너뛰거나 잘못 짚기 일쑤예요. 이는 말에서도 같아요. 빨리 말하면 빨리 알아듣기 나쁘겠지요? 빨리 말하고 빨리 들으려 하면 너무 바빠서 어지럽거나 허둥거릴 수 있어요. 누가 쓴 글이든 천천히 읽지 않으려 하면 그만 우리 마음까지 허둥지둥하면서 헤매기 쉽습니다.


  그리고 낱말을 살짝 바꾸어 볼게요. ‘천천히’는 ‘찬찬히’하고 맞물립니다. ㅓ하고 ㅏ가 다른 낱말이지요. 뜻은 거의 같다고 할 두 낱말이면서 결하고 무늬가 다른 낱말이랍니다.


  자, “찬찬히 읽기”라 하면 어떤 느낌인가요? 이때에는 ‘서두르지 않으면서 한결 깊이’ 읽는다는 느낌이 들지요? 이와 매한가지로 “천천히 읽기”도 ‘서두르지 않으면서 더 깊이’ 읽으려는 느낌이 깃듭니다. ‘천천히’는 ‘느리게’하고 비슷하지만 달라요. ‘느리게’는 빠르지 않도록 움직이는 몸짓이라면, ‘천천히·찬찬히’는 깊고 넓게 헤아리거나 살피려고 하는 몸짓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깊고 넓게 헤아리거나 살피려고 하면, 서두르거나 바쁘게 움직이지 않아요. 이런 몸짓은 얼핏 느리다고 여길 수 있지만, 그냥 느린 몸짓은 아니지요.


  제가 쓴 글을 천천히 읽어 주신다면, 제가 글을 쓸 적에 다루는 모든 낱말에 숨결을 불어넣으려 하는 마음을 느끼신다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참 고마운 일입니다. 참말로 저는 제가 글이나 말로 나타내는 모든 이야기에 숨결을 담으려고 해요. 어떤 숨결인가 하면, ‘스스로 사랑하는 살림을 새로 세우는 숲으로 숨쉬는 슬기롭고 상냥하면서 사이좋게 살뜰한 삶으로 서로서로 생각하는 씨앗을 심는 싱그러운 숨결’이라 할 만합니다.


  모두 ㅅ으로 이어 보았어요. 저는 어쩐지 ㅅ이 마음에 들어요. ㅅ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제 사랑을 오롯이 담아서 쓰는 글이니, 더욱 천천히 한결 찬찬히 읽어 주시면, 더욱 깊으며 한결 새롭게 사랑어린 빛을 받아들이시리라 하고 여겨요.


  그러니까 이웃님은 ‘우리말에 덜 익숙하다’기보다 ‘우리말로 쓴 글에 담은 사랑을 듬뿍 누리고 싶다’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나서 제가 쓴 글을 천천히 읽어 주시는구나 싶습니다.


  저는 말을 빨리 하고 싶지 않아요. 느긋하게 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야기꽃이란 이름으로 강의나 강연을 가면, 반드시 뜸을 들여요. 첫머리를 열 적이든, 한창 말을 하다가든 뜸을 들이지요. 그렇다고 뜸을 오래 들이지 않아요. 얼추 5초∼10초쯤 문득 서고 입을 살며시 다물고서 뜸을 들이는데요, 다들 이 5초∼10초가 엄청 길다고 느낀대요. 고작 5초∼10초인데 말이지요.


  이야기꽃을 펴다가 들이는 이 뜸은, 제가 들려주려는 이야기를 더욱 천천히 한결 찬찬히 마음으로 받아들이실 수 있는 틈이라고 할 수 있어요. 뜸을 들여야 밥이 맛있게 익듯, 이야기를 함께하는 자리에서도 틈을 주어야 마음 깊이 사랑어린 숨결이 춤추듯 스며든다고 느껴요.


  우리 삶도 이와 같겠지요? 서두르면 얼마나 힘든데요. 아이들더러 왜 이렇게 늑장 부리느냐고 다그치면 아이도 어버이도 같이 고단해요. 우리가 어디로 마실을 갈 적에 서두르지 않는 바람에 버스나 기차나 비행기를 놓칠 수 있어요. 그러나 놓쳤으면 다음에 오는 대로 타면 되어요. 서두르지 않기로 해요. 길을 갈 적에도, 일을 할 적에도, 말을 할 적에도, 글을 쓸 적에도, 또 책이나 글을 읽을 적에도 서두르지 않기로 해요.


  간추리자면, 서둘러서 읽어야 할 글이나 책이라면 처음부터 아예 안 읽으면 더 좋아요. 천천히 읽거나 찬찬히 새길 만한 글이나 책을 가려서 읽으면 참 좋아요. 이렇게 함께 걸어가면 좋겠어요. 천천히, 찬찬히, 다르면서 비슷한 두 낱말을 혀에 얹고서 기쁘게 노래하면 좋겠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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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꽃

우리말 이야기꽃



순수한 우리말을 알려면?


[물어봅니다] 이 책을 읽으며 매우 많은 쓰지 말아야 할 말을 쓰고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특히, 이름 난 시인이 쓰신 책이나 교과서뿐 아니라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이나 우리말 큰사전과 같이 모두가 인정하는 곳에서조차도 그러한 말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놀라웠습니다. 이러한 점을 생각하면, 순수한 우리말이란 무엇인지를 알기란 몹시 어려웠을 듯 싶은데, 최종규 작가님께서는 어떻게 순수한 우리말을 처음 알고 새롭게 살려내실 수 있으셨습니까?


[이야기합니다] 저는 “순수한 우리말(한국말)”을 알지 않습니다. 그리고 “순수한 우리말”을 찾으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쓸 말을 생각해요. 제가 살아가는 이 터에서 태어나고 흐르면서 사랑이 깃든 말이 무엇인가 하고 생각하지요.


  제가 사전을 짓는 터전으로 삼는 곳은 제 책마루이자 책숲인데요, 책마루란 ‘서재’이고 책숲이란 ‘도서관’을 가리키려고 제가 새로 지은 이름입니다만, 아무튼 제 책마루이자 책숲을 놓고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자, 이 책마루이자 책숲에 붙인 ‘숲노래’란 이름으로 실마리를 풀어 볼게요.


  이웃님은 ‘숲’이나 ‘노래’라는 말을 참으로 언제부터 썼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아마 모르시겠지요? 저도 잘 모릅니다. 2만 해나 20만 해가 된 말일 수 있으나,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숲’을 가리키는 한자 ‘林’을 한국이란 터에서 언제부터 받아들였는지는 얼추 어림할 수 있어요. ‘노래’를 가리키는 한자 ‘歌’도 한국이란 터에 들어온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더 오래되었다고 더 이 터에 어울리는 말이라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얘기를 왜 하느냐 하면, ‘숲’이나 ‘노래’란 낱말은 “순수한 한국말”이라기보다는, “이 터에서 사랑으로 짝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슬기롭게 돌보고 즐겁게 살아간 사람들이 저절로 입으로 터뜨려서 아름답게 써서 나누다가 물려준 낱말”이라고 할 만합니다.


  거듭 말씀하지만, 저는 “순수한 한국말”을 쓸 생각이 없습니다. 제가 쓰는 말은 오로지 ‘살림말’이나 ‘사랑말’이나 ‘삶말’입니다. 바로 앞에서 밝혔습니다만, 다시 밝혀 볼게요. “이 터에서 사랑으로 짝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슬기롭게 돌보고 즐겁게 살아간 사람들이 저절로 입으로 터뜨려서 아름답게 써서 나누다가 물려준 낱말”인 살림말이나 사랑말이나 삶말을 쓰려고 생각합니다.


 작은짜·가운짜·큰짜


  엊그제 세 가지 말씨를 새로 지어서 우리 집 아이들하고 써 보았습니다. 저는 거의 집에서만 밥을 먹습니다만, 어쩌다가 바깥에 나가야 할 일이 있으면, 길가에 있는 밥집에 들어가는데요, 이때에 차림판을 보면 으레 ‘대·중·소’로 가르고, 밥집 일꾼은 ‘대짜·중짜·소짜’란 이름으로 묻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바로 이 ‘대짜·중짜·소짜’를 못 알아듣고 툴툴거려요. 아이들 말을 고스란히 옮길게요. “‘큰것·가운뎃것·작은것’이라 하면 알아듣기 쉬운데 왜 저런 말을 써?” 아이들 툴툴거림을 듣고서 빙그레 웃었어요. 이러면서 문득 생각했지요. ‘가운뎃것’은 좀 긴 듯해서 ‘-뎃-’을 덜어 볼까 싶더군요. 그리고 ‘-짜’라 붙이는 말씨는 재미있으니 “작은짜·가운짜·큰짜” 또는 “큰짜·가운짜·작은짜”처럼 말해도 어울리려나 하고요.


  “작은짜·가운짜·큰짜”라 말하면 처음에는 낯설다 여길 분이 틀림없이 있겠지만 이내 스스로 알아채리라 느껴요. 이와 달리 ‘대·중·소’는 한자를 모르는 사람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한글을 읽을 줄 아는 외국사람도 ‘대·중·소’가 뭘 나타내는지 도무지 종잡지 못하겠지요.


  저는 그저 생각을 합니다. 사랑스럽게 살림을 지으며 살아가는 동안에 활짝 웃고 노래하는 마음으로 쓸 만한 말을 생각합니다. 여기에 하나를 보탠다면, 다섯 살 아이나 열 살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할 만한 말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국을 좋아해서 찾아오려는 이웃나라 분들을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순수한 한국말”이 아닌, “즐겁게 사랑으로 함께 나눌 말”을 늘 생각하면서 하나하나 혀에 얹고 글로 실어 본다고 할 만해요. 이웃님도 해보실 수 있어요. “순수한 한국말”을 찾기는 어려울 뿐 아니라 지끈지끈할 만해요. 그러나 즐겁게 노래할 말을, 숲을 사랑하는 말을, 아이하고 어깨동무하는 말을, 이런 살림말을 헤아리는 일은 누구나 쉽고 재미나게 할 수 있으리라 여깁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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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생각하기. 핑크색 임산부 자리


예전에는 ‘서울지하철’이라 했는데 ‘서울메트로’로 이름을 바꾼 곳이 있다. 이름을 바꾼다면 더 헤아려서 ‘지하철·전철·메트로’를 모두 넘어설 만한, 이를테면 ‘씽씽이’라든지 ‘날쌘이’ 같은 이름을 지을 수 있다. 어쩌면 ‘서울두더지’라 하면서 땅밑에서 마음껏 빠르게 다니는 탈거리라는 뜻을 나타내어도 좋겠지.


핑크색 자리를 임산부 자리로

우리의 배려가 멋진 하루 만들어줄 거예요


‘서울두더지’는 사람들이 앉는 자리 가운데 한 곳을 “임산부 지정석”으로 둔다고 한다. 그런데 알림말에서는 “임산부 자리”로 쓴다. 한국말 ‘자리’가 ‘지정석’을 가리키는 셈이니, 처음부터 이 말을 쓰면 더 좋겠다.


그나저나 ‘배려’가 ‘하루를 만들어줄 거’라고 적는 글은 아귀가 안 맞는다. 번역 말씨이다. ‘우리가 마음을 쓰’기에 ‘하루가 멋지다’쯤으로 글결을 손질해야 아귀가 맞는다.


배롱빛 자리를 아기 엄마한테

우리 사랑이 멋진 하루를 지어요


배롱꽃 자리를 아기 엄마한테

사랑스레 마음쓰는 멋진 하루


요새는 서울에도 배롱나무를 심어 배롱꽃을 누린다. ‘핑크’나 ‘분홍’보다 ‘배롱빛’이나 ‘배롱꽃’이라 하면 어떨까. ‘아기 엄마’한테 “사랑스레 마음쓰는” 이웃님이 늘면 좋겠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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