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들딸기 더 맛나게 먹는 법?

[시골노래] 바다를 노래한 시골돌이



며칠 앞서 큰아이만 데리고 바다로 자전거마실을 다녀왔어요. 그날 작은아이는 몹시 서운해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바다로 자전거마실을 갈 적에는 두 아이 모두 가기로 했습니다. 며칠 앞서 큰아이만 데리고 자전거마실을 간 까닭은, 집에서 바다까지 제법 먼 길을 아버지가 자전거로 잘 이끌 만큼 다리힘이 될는지 잘 몰랐기 때문이에요.


서운해 하는 작은아이를 바라보다가 생각했어요. 어버이로서 더 기운을 내면 제법 먼 길이어도 얼마든지 씩씩하게 자전거를 굴릴 수 있으리라고.


힘차게 발판을 구르고, 즐겁게 달렸어요. 그리고 이번에는 지난번하고 다른 길로 바닷가를 한 바퀴 돌면서 새로운 들딸기밭을 찾았어요. 이곳에서 두 아이는 배가 볼록 나올 만큼 실컷 들딸기를 훑었지요.


국수꽃(국수나무 꽃)이 떨어져서 바닥을 곱게 꾸민 숲길을 걷습니다. 하얀 찔레꽃 냄새를 온몸으로 마십니다. 들딸기가 가득한 풀숲으로 들어가서 가시를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빨간 알을 훑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내리막길을 마음껏 달립니다.


그리고 달콤한 들딸기를 더 맛나게 먹겠다면서 작은아이는 혀를 날름 내밉니다. 굵은 들딸기 한 알을 혀에 얹었으니 말은 못하고, “에엥?” 하는 소리로 나를 부르더니, 내가 작은아이를 쳐다보니 “에헤헤!” 하고 웃습니다.


하하! 그래, 그렇게 먹으면 더 맛나지? 들딸기돌이, 시골돌이, 놀이돌이, 장난돌이, 꽃돌이 …… 온갖 이름이 있는 작은아이는 혀에 얹었다가 몇 번이나 바닥에 떨어뜨리지만, 이내 주워서 혀에 얹으면서 놉니다.


재밌지? 배부르지? 맛나지? 즐겁지? 소쿠리 가득 훑어서 들딸기를 먹은 기운으로 며칠 뒤에 또 들딸기를 훑으러 자전거마실을 하자꾸나.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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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처음 피우는데 재미있어!”

[시골노래] 흙놀이 곁에서 모깃불



우리 집 뒤꼍에는 텃밭이 있는데, 이 텃밭 한쪽에는 흙놀이터가 있습니다. 지난겨울에 흙을 그러모아 두 아이가 마음껏 흙을 조물락거리면서 뒤집어쓸 작은 놀이터를 꾸몄습니다.


한겨울에도 손이 시렵다는 말을 안 하면서 참으로 신나게 흙놀이를 했어요. 정 손이 시려우면 장갑을 낀 채 흙놀이를 했고, 겨울에도 흙투성이가 되어 놀았어요.


겨울에는 풀이 모두 시들어서 추위 빼고는 딱히 마음을 쓸 대목이 없습니다. 바야흐로 봄이 오고, 또 이 봄이 무르익으면서 흙놀이터 둘레는 풀밭으로 바뀝니다. 나는 바지런히 풀을 매어 밭으로 바꾸지만, 호미 한 자루를 쥐어 밭으로 바꾸는 겨를보다는 풀이 자라는 겨를이 더 빠릅니다.


겨울에 포근하고 봄에 따스한 고장인 터라, 다른 곳보다 모기도 일찍 깨어납니다. 흙놀이를 하던 아이들이 자꾸 모기에 물려 따갑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모기 때문에 성가셔 하는 소리를 들으며 밭을 매다가 생각합니다. ‘그래, 이제 모깃불을 태울 때가 되었네.’


호미로 뒤꼍을 일구면서 캐낸 커다란 돌을 고릅니다. 예전에 구들로 쓰던 판판하고 넓적한 돌을 들어서 아이들 흙놀이터 곁에 둡니다. 마른 풀을 모아서 올리고, 잘 마른 쑥도 뭉쳐서 올립니다. 성냥을 당겨 불을 피웁니다.


마른 풀에 불이 붙어 자작자작 소리를 냅니다. 불길이 솟다가 수그러들고, 검불은 차츰 까맣게 바뀝니다. 연기가 피어나면서 빙그르르 돕니다. 내 몸에도 연기를 쐬고, 아이들 몸에도 연기가 퍼지도록 합니다.


두 아이는 한참 흙을 파면서 놀다가 큰아이가 모깃불 앞으로 다가옵니다. “나도 해 보고 싶어.” 불을 어떻게 피우는지 아직 잘 모르는 아이는 날풀을 모깃불에 얹습니다. “얘야, 날풀은 물기가 많아서 잘 안 탄단다.” “그러면?” “가랑잎처럼 잘 마른 풀을 얹어야지.”


어느덧 두 아이는 흙놀이는 뒤로 젖힙니다. 이제 두 아이 모두 “땔감을 찾자! 땔감을 모으자!” 하면서 뒤꼍을 이리저리 달립니다. 아이들이 달리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이 아이들은 땔감을 모은다기보다 그냥 뒤꼍을 신나게 달리면서 노는 재미를 누리지 싶습니다.


재미있지? 불 피우기가 얼마나 재미있는데. 아버지는 도시에서 태어나 살며 마을 한쪽에서 어른들 몰래 불을 피우면서 놀곤 했는데, 그 재미란 이루 말할 수 없었어.


처음에는 불씨에 숨을 마냥 세게 훅 불던 아이들이지만, 이내 고르면서 오래 후우우 불면서 불씨를 살리는 길을 깨닫습니다. 연기가 잘 나서 더 모깃불을 살피지 않고 밭을 매노라니 어느새 아이들이 마른 풀을 잔뜩 얹어서 그만 불길이 사그라듭니다. “아버지! 불이 꺼졌어! 성냥 줘 봐!” “어디 보자. 얘야, 이렇게 잔뜩 얹으면 불씨도 숨이 막혀서 타지 못해. 숨이 드나들 길을 열고서 조금씩 얹어야지.”


가만히 살피니 불씨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성냥을 쓰지 않고 숨을 찬찬히 불어서 다시 불씨를 살립니다. “앞으로는 뒤꼍이나 마당에서 흙놀이를 할 적에 이렇게 모깃불을 피우자. 신나겠지?” “응! 벼리, 불 처음 피우는데 되게 재미있었어! 다음에도 또 피울래!”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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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6-05-20 0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영상으로 아이들 움직임과 목소리를 들으니 더 새롭고 반갑고 한번 더 보게 되고, 그렇네요.
불놀이, 어릴 때는 참 재미있었는데 오히려 어른이 되고 나니 불이 무서워졌어요.

숲노래 2016-05-20 18:55   좋아요 0 | URL
이런 재미난 놀이는 사진으로뿐 아니라
동영상으로 찍으면 한결 재미나구나 하고 느껴요.
어제도 즐겁게 모깃불 피웠는데
오늘도 해가 기우는 이즈음
또 피워 볼까 하고 생각합니다 ^^
 

조용하며 따스한 봄바다가 재미있어

[시골노래] 밭일을 쉬고 봄바다 마실



호미 한 자루로 밭일을 신나게 하다가 등허리를 펴려고 호미를 내려놓습니다. 아이들은 밭일 하는 아버지 둘레에서 꽃삽으로 흙을 파면서 놉니다. 햇볕이 뜨거운 한낮에도 나는 그대로 밭일을 하지만, 아이들은 “아, 덥다!” 하면서 나무 그늘 밑이나 평상에 가서 앉습니다. 이러다가 아버지만 뒤꼍 밭자락에 혼자 두고 집으로 들어가지요.


이렇게 부산한 봄철을 밭일로 보내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때때로 골짜기를 가고, 때때로 마을 어귀 빨래터에서 물이끼를 걷고, 때때로 들마실을 하는데, 이제 바야흐로 바닷마실을 할 때가 되었겠구나 하고요.


밭일을 하루 미룬다기보다 하루쯤 밭일을 한 시간만 가볍게 합니다. 이러고 나서 손을 털고 자전거를 살핍니다. 가고 오는 데에 삼십 킬로미터 길이니, 체인하고 바퀴를 더 꼼꼼히 살펴요. 물을 챙기고 도시락을 챙깁니다. 이렇게 다 챙기고 나서 “오늘은 올해 들어 새로운 데에 가 볼까?” 하면서 자전거를 달리자고 말합니다. “어디 가는데?” “어디를 갈까?” “놀이터?” “아니.” “골짜기?” “아니.” “우체국?” “아니.” “그럼 어디야?” “가면서 한번 생각해 봐.”


마을 앞에서 논둑길로 접어든 뒤에 천천히 달립니다. 면소재지 한복판을 가로지릅니다. “어, 우체국이 아니네?” 면소재지 바깥으로 나서면서 왼쪽 오르막으로 접어들 즈음, “아, 바다에 가는구나! 바다 가고 싶었어. 겨울 동안 바다 생각 했어!” 하는 소리가 뒤에서 터져나옵니다.


두 아이는 해마다 무럭무럭 자라니, 집에서 바닷가까지 달리는 십오 킬로미터 즈음 되는 길은 해마다 조금씩 힘이 듭니다. 그렇지만 큰아이는 몸이 크는 만큼 힘살도 붙어서, 큰아이가 샛자전거에 앉아 발판을 구르는 힘도 커져요. 그러니 두 아이 몸무게가 느는 만큼 힘이 들어도 큰아이가 새롭게 받쳐 주기에 오르막도 고갯길도 한결 씩씩하게 오릅니다.


나무가 길가에 선 길이 오른쪽으로 나오고, 나무가 없이 바다로 더 빨리 가는 길이 왼쪽으로 나옵니다. 우리는 망설이지 않고 오른쪽으로 갑니다. 오른쪽은 돌아가는 길이요, 내리막하고 오르막이 이어지느라 자전거로 가기에는 더 힘들어요. 그래도 이 ‘나무 길’은 바람이 시원하고 꽃내음도 좋아요.


봄바다에는 으레 손님이 없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날은 천막을 치고 유행노래를 크게 튼 손님이 있네요. 우리는 봄바다에 물결소리를 듣고 바람내음을 마시러 오지만, 물결하고 바람보다는 고기랑 술이랑 유행노래를 실컷 즐기고픈 손님들이 꼭 있구나 싶어요.


이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모래밭에 구덩이를 내고 산을 쌓으면서 놉니다. 봄바다가 얼마나 차가운가 하고 맨발로 들어가서 느껴 봅니다. 참말로 봄바다는 아직 차가워서 맨발로 들어가서 조금 걷다가 “발 시렵네” 하면서 물러나옵니다.


큰아이는 몸을 쏘옥 집어넣을 만한 구덩이를 맨손으로 팝니다. 작은아이는 팔을 쑥 밀어넣을 구멍길을 팝니다. 바닷물이 일렁이는 데까지 달렸다가 모래를 한 줌 쥐어서 공처럼 뭉친 뒤에 던집니다. 넓은 모래밭에서 서로 공을 던지면서 놀다가 도시락을 먹고, 발을 씻습니다.


두 시간 즈음 놀았습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 볼까?” “벌써? 더 놀고 싶은데.” “그래, 더 놀고 싶지? 너희는 시간을 아직 몰라서 더 놀고 싶을는지 몰라. 그렇지만 조금 더 있으면 해가 기울어. 마당이나 집에서 두 시간 놀 적하고 바닷가에서 두 시간 놀 적에는 힘이 다르게 들지. 아마 집에 돌아가면 너희는 더 놀 기운이 없이 곯아떨어질걸?”


두 아이는 긴 겨울을 끝내고 봄을 맞이해서 바다로 왔지만 두 시간밖에 못 놀고 돌아간다니 서운합니다. “얘들아,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얼마든지 바다에 또 오면 돼. 다음에 또 오자.”


작은아이는 수레에서 잠듭니다. 큰아이도 슬슬 졸려 합니다. 그러나 큰아이는 샛자전거에 앉아서 끝까지 함께 달려야 합니다. 두 아이는 ‘자가용 아닌 자전거로 마실을 다닐 적’에는 ‘집으로 돌아갈 기운’을 남겨 놓아야 한다는 대목을 조금은 깨달았을까요? 조용하며 따스한 봄바다에 곧 다시 나들이를 가자고 생각하며 씩씩하게 발판을 구릅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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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뜨개 살림’을 선물로 물려받다

[시골노래] 집에서 손으로 뜬 인형



큰아이가 어머니한테서 뜨개질을 배웁니다. 뜨개질을 배우는 큰아이는 하루아침에 뜨개질을 솜씨 있게 할 수 없다는 대목 때문에 살짝 힘들어 합니다. 그렇지만 여러 시간 여러 날에 걸쳐서 진득하게 뜨개바늘을 쥐고 뜨개실을 엮은 끝에 비로소 뭔가를 하나 이룹니다.


처음으로 작은 실꾸러미를 하나 뜨고 나니 아이 얼굴에 웃음이 가득합니다. 해냈구나, 이제 첫걸음을 떼었구나, 이제부터 하나하나 차근차근 나아가면 되겠구나.


뜨개옷은 온누리에 여러 벌 있지 않습니다. 같은 밑틀(도안)이 있어서 온누리 어디에서나 똑같이 보이는 옷을 뜰 수 있습니다만, 뜨개질을 하는 사람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언제나 저마다 다른 숨결하고 기운이 흐르는 뜨개옷이 태어납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우리는 옛날부터 ‘온누리에 꼭 한 벌만 있는 옷’을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아 입었어요. 예부터 어느 나라 어느 고장 어느 집에서든 어버이가 모든 옷을 손수 지어서 아이한테 입혔어요. 더 살핀다면, 온누리에 하나인 사랑스러운 아이한테 온누리에 한 벌인 사랑스러운 옷을 지어서 입혔다고 할 만해요.


곁님이 아이한테 선물하고, 또 곁님이 아이한테 가르치는 뜨개질은 스스로 삶을 지어서 살림을 다스리는 손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겨울에 발이 시리지 않도록 하되, 재미를 살린 ‘오리발 버선’이라든지, 수세미로도 쓸 수 있고 놀잇감으로도 쓸 수 있는 ‘옥수수 뜨개’라든지, 손가락에 끼우는 ‘얼룩말 인형’은 이리 보나 저리 보나 예쁘다고 느낍니다. 이 작은 뜨갯거리 하나를 뜨자고 여러 날이 들고, 여러 차례 풀고 다시 뜨고를 되풀이해야 합니다만, 어느 뜨갯거리도 돈값으로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뜨개질이 재미난 큰아이는 곧잘 뜨개바늘을 놀립니다. 실가락지를 떠서 손가락에 끼다가, 들마실을 하는 길에 민들레를 꺾어서 놀다가 ‘민들레 목도리’를 해 줍니다. 호호 불면 휘파람 소리가 나는 인형한테도 목도리를 떠 줍니다. 시골집 시골순이는 어느덧 뜨개순이가 되어 인형한테 목도리를 하나씩 떠 주어요. 나중에는, 그러니까 한 해 두 해 손에 힘이 붙고 슬기를 꽃피우면서 철이 드는 사이에, 제 옷을 손수 지어서 누리는 멋진 살림꾼이 될 만하겠지요.


한 해 내내 언제나 어린이날이요 생일이요 잔칫날이라고 여기면서 즐겁게 선물을 합니다. 뜨개질도, 뜨개 인형도, 살림짓기도 서로서로 주고받으면서 사랑스럽습니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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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꽃물결에 폭 잠긴 꽃순이·꽃돌이

[시골노래] 갓꽃밭에서 꽃아이로 놀다



나는 우리 집 큰아이를 어릴 적부터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큰아이는 처음부터 시골에서 나서 살지 않았고, 도시에서 나서 자란 터라, 이때에는 ‘골목순이’라고 불렀어요. 큰아이는 사진을 찍는 아버지 곁에서 사진기를 아주 어릴 적부터(돌이 되기 앞서부터) 갖고 놀았기에 ‘사진순이’이기도 했고, 책을 다루는 일을 하는 아버지 곁에서 ‘책순이’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아이는 ‘놀이순이’입니다. 어떤 놀이가 되든 스스로 새롭게 지어서 씩씩하고 즐겁게 놀 줄 알기 때문입니다. 또 밥을 맛나게 잘 먹어서 ‘밥순이’라는 이름도 얻고, 심부름을 야무지게 잘해서 ‘살림순이’라는 이름도 얻어요. 동생을 따스히 아낄 줄 알고 이웃을 넉넉히 헤아리는 ‘사랑순이’인데다가, 글씨도 똑똑히 잘 쓰는 ‘글순이’요, 그림을 곱게 잘 그리는 ‘그림순이’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꽃순이’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꽃을 보면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들여다보지요. 꽃송이를 귓등에 꽂으며 놀기도 하고요. 꽃물결이 일렁이는 곳에서는 꽃헤엄을 치고 싶어 합니다.


우리 집은 시골에 있고, 시골에서도 고즈넉하면서 얌전한 마을에 있습니다. 마침 우리 시골마을은 ‘경관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겨우내 빈논에 유채씨를 뿌려요. 전남 고흥은 제주처럼 관광지가 아니요, 제주에 있는 유채꽃길처럼 드넓은 유채밭이 있지 않아요. 그렇지만 우리 집 두 꽃순이와 꽃돌이가 꽃헤엄을 치며 놀기에 알맞춤한 꽃밭이 있습니다.


이 꽃밭은 유채꽃하고 갓꽃이 어우러진 노란물결입니다. 사월에 노란 꽃물결을 구경하러 찾아다니는 분들은 유채꽃밭만 볼 테지만, 고흥 시골마을에는 아주 먼 옛날부터 들과 밭에서 스스로 돋는 ‘갓’이 무척 많아요. 꽃대가 높이 솟으면서 잎이 가늘어지거나 마를 적에는 갓하고 유채를 가리기 어렵지만, 처음 잎이 돋을 즈음에는 갓잎하고 유채잎이 결이나 두께나 빛깔이나 모습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쉽게 알아볼 만해요.


아무튼, 시골순이요 꽃순이인 큰아이하고, 시골돌이요 꽃돌이인 작은아이는 갓꽃이든 유채꽃이든 따지지 않습니다. 저희(아이들)보다 크게 훌쩍 자란 노란 꽃잔치를 이룬 곳에 뛰어들면 될 뿐입니다. 촘촘하게 올라온 갓꽃밭 사이로 들어가면서 술래잡기를 하면 재미날 뿐이에요.


꽃순이랑 꽃돌이는 우리 서재도서관 한쪽에 펼쳐진 갓꽃밭에 파묻힙니다. 어른 키보다 살짝 큰, 얼추 2미터쯤 자란 갓꽃밭에서 두 아이는 까르르 웃으면서 잡기놀이를 합니다. 꽃물결에 잠기니 두 아이가 어디에 있는지 나도 못 찾습니다. 꽃 꼭대기가 흔들리는 곳에 이 아이들이 있겠거니 여깁니다. 갓꽃은 유채꽃보다 알싸한 냄새가 흐르는데(갓잎은 유채잎보다 알싸한 맛과 냄새가 있거든요), 이 아이들은 마냥 신나게 꽃놀이를, 꽃헤엄놀이를 누립니다.


“아버지도 얼른 들어와 봐! 아무것도 안 보여!” 깊은 꽃밭에 파묻히니 재미나지? 우리 이제부터 사월마다 ‘갓꽃밭놀이’를 즐기자. ‘유채꽃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은 많아도, 갓꽃밭놀이를 즐기는 사람은 없을 테지? 2016.4.27.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고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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