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101] 드디어 날아오른 새끼 제비

― 닷새 만에 여섯 마리 모두 날다



  우리 집 처마 밑은 제비가 지내기에 좋습니다. 그냥 좋습니다. 아이가 있는 시골마을이 드물고, 농약을 안 치는 시골집이 드무니, 여러모로 제비는 우리 집에서 지내기에 좋습니다. 우리 집 처마에 깃드는 제비는 해마다 비슷한 철에 돌아오고 비슷한 철에 떠납니다.


  다만, 우리 마을로 돌아오는 제비 숫자는 해마다 매우 크게 줄어듭니다. 2011년에는 수백 마리에 이르는 제비가 온 들과 마을에서 춤을 추었으나, 이듬해부터 부쩍 줄고 자꾸 줄어서 올해에는 열 마리도 채 못 봅니다. 그러니까 여러 마을을 아울러 고작 열 마리 즈음밖에 안 되는 제비 가운데 두 마리가 우리 집 처마에 깃들어 새끼를 낳아서 보살핍니다.


  사월 첫무렵에 우리 집 제비가 둥지를 손질하며 깃들려 할 적에, 알을 낳아서 깠는가 궁금했지만, 둥지를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그러다가는 제비가 떠날 수 있으니까요. 잘 낳았을 테고 잘 돌보겠거니 여기면서 지켜보니 사월 이십일에 비로소 새끼한테 먹이를 물어 나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며칠 먹이를 물어 나르다가 조용해졌어요. 왜 그러한지는 알 수 없습니다. 틀림없이 무슨 일이 생겼을 테지요.


  어미 제비는 한 달 남짓 우리 집 처마 밑을 떠났고, 우리 집 처마 밑은 이동안 몹시 조용했습니다. 처마 다른 쪽에는 겨우내 참새가 둥지를 틀어서 알을 까고 새끼를 길렀는데, 참새가 쉰 마리에 이르는 무리를 이끌고 찾아오며 제비와 다툰 적이 잦았으니, 뭔가 저지레가 있었을는지 모릅니다.


  오월 끝무렵부터 어미 제비 두 마리는 다시 처마 밑으로 찾아옵니다. 이때에도 참새하고 다툽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비가 물러서지 않습니다. 참새도 이번에는 그리 골을 부리지 않습니다. 가만히 헤아리면, 참새가 우리 집에서 알을 낳고 새끼를 깔 수 있던 까닭은 제비가 도왔기 때문(마음을 써 주었기 때문)입니다. 추운 겨울에는 참새가 제비집에 깃들어서 지내기도 하니, 참새는 제비한테 더없이 고마워 해야 할 노릇이라고도 할 만합니다.




  칠월로 접어들어 어미 제비가 새끼 제비한테 먹이를 주는 모습을 다시 봅니다. 이사이에 어미 제비가 알 하나를 둥지 밖으로 굴려서 깨뜨리기도 했습니다. 왜 알 하나를 버렸을는지 알 길이 없으나, 제비는 제비대로 뜻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다가 칠월 삼십일에, 새끼 제비 세 마리가 둥지에서 벗어납니다. 어미 제비는 새끼한테 더 먹이를 물어 나르지 않고, 새끼 가운데 세 마리는 씩씩하게 둥지를 벗어납니다. 다만, 갓 둥지를 벗어난 새끼 제비는 어미 제비처럼 훨훨 날지 않아요. 처마 밑을 가로지르는 전깃줄에 아주 오랫동안 앉아서 깃을 손질하거나 말똥말똥거릴 뿐입니다.


  그런데 새끼 제비가 처음 둥지를 벗어난 이날에도 참새 한 마리가 새끼 제비한테 다가오려 합니다. 어미 제비는 참새를 한 번 쳐다보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돌리고 새끼들을 바라봅니다. 참새는 멀거니 제비를 보다가 저도 고개를 돌립니다. 이렇게 한동안 둘이 나란히 앉았는데, 다른 어미 제비가 날아오니 참새가 떠납니다. 다른 어미 제비는 새끼를 지키던 어미 제비한테 무어라고 한참 지저귀더니, 새끼를 지키던 어미 제비 입에 벌레 한 마리를 넣어 줍니다. 어미 제비 두 마리는 서로 몫을 나누어 하나는 새끼한테 저지레를 할 녀석이 없도록 지키고, 다른 한 마리는 제 짝한테 먹이를 물어다 주는군요.




  이리하여 2015년 올해 우리 집 제비집에서 새끼 제비가 씩씩하게 세 마리 깨어나서 어른 제비로 큽니다. 그런데, 둥지에 아직 어린 새끼 제비가 있습니다. 어린 새끼 제비는 그야말로 말똥말똥 바깥을 내다보기만 할 뿐 조금도 밖으로 나올 엄두를 못 냅니다. 먼저 밖으로 나온 새끼 제비가 둥지로 날아들어서 “얘들아, 너희도 이제 나와!” 하고 지저귀는구나 싶은데, 둥지 앞에서 날갯짓을 보여주는데, 이래도 꼼짝을 않습니다.


  한 번 둥지 밖으로 나온 새끼 제비는 이튿날부터 새벽 일찍 집을 나서서 해질녘까지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제 새끼 제비는 어떻게 될까요?


  이럴 때에 어미 제비는 새끼 제비한테 먹이를 하나도 안 주기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집 어미 제비는 ‘남은 새끼 제비’가 가여운지,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 먹이를 물어다 줍니다. 아무래도 ‘앞선 세 마리’보다 ‘남은 몇 마리’가 작거나 여리다고 여겼을 수 있습니다. 그동안 지켜보기로도, 어미가 먹이를 물어다 나를 적에 빽빽거리며 고개를 내민 새끼는 세 마리만 보였어요.


  아마 세 마리가 몸이 먼저 잘 자라서 일찍 둥지를 벗어날 수 있었을 테고, 여리거나 작은 아이들은 먹이도 늦게 받거나 제대로 못 먹었을 수 있습니다.


  팔월 사일 새벽 이십 분 즈음, 처마 밑이 몹시 부산스럽습니다. 무슨 일이 있을까요? 큰아이가 먼저 바깥을 내다보더니 “제비들 잘 나네?” 하고 말합니다. 옳거니, 남은 새끼도 이제 둥지를 벗어났는가?


  늦게 둥지를 벗어난 새끼도 세 마리입니다. 두 마리가 늦도록 못 나오나 하고 여겼는데, 먼저 나온 아이도, 나중 나온 아이도 셋씩입니다. 여섯 마리가 한꺼번에 날아오른다면 더 씩씩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어미 제비 두 마리가 먹이를 물어 나르기에는 여섯 마리가 좀 벅찼을 수 있습니다.


  나중 나온 세 마리는 빨랫줄에 앉습니다. 아이들이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자리입니다. 아이들은 살금살금 다가서면서 손을 뻗습니다. 새끼 제비는 아이들이 가까이 다가서도 날아오르지 않습니다. 어미 재비가 보채거나 닦달을 하니 한두 번 날개를 파닥이는 듯하다 그치기를 되풀이하다가, 지붕을 타고 앉기도 하고, 빨랫줄 다른 자리로 옮겨 앉기도 합니다.


  이제 오늘부터 나중 세 마리도 하늘을 가르면서 놀 테지요. 이제 오늘부터 나중 세 마리도 날갯힘을 기르고 스스로 먹이를 잡는 몸놀림을 배울 테지요.


  늦깎이로 깨어난 제비 여섯 마리는 그야말로 바지런히 날고 또 날아야 합니다. 여름이 저물 무렵 태평양을 건너려면 날마다 신나게 날고 다시 날면서 힘을 키워야 합니다.


  부디 한국을 떠나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그날까지 튼튼하게 자라기를 빕니다. 올해가 저물고 이듬해에 새봄이 찾아오면 그때에도 기운차게 다시 찾아올 수 있기를 빕니다. 이듬해에 우리 마을에 찾아오는 제비가 늘어날 수 있기를 빕니다. 사람과 제비가 서로 사이좋게 아끼고 보듬으면서 사랑스러운 시골마을로 거듭날 수 있기를 빕니다. 〈흥부전〉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제비가 살 만한 마을일 때에 사람도 살 만한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생각합니다. 4348.8.4.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고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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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100] 언제든지 샘물을 마시지

― 맑고 시원한 물



  오늘 낮에 마을 어귀 샘터랑 빨래터를 치우려고 했는데, 우리가 치우려 하기 앞서 마을 할머니들이 먼저 치우셨습니다. 빨래터에 고인 물이 아주 얕기에, 아마 10분쯤 앞서 다녀가신 듯합니다. 어제(금요일)는 우체국에 다녀와야 하느라 못 치우고 오늘(토요일) 낮에 치우려 했는데, 한발 늦었습니다.


  마을 할머니들이 빨래터를 치우실 적에는 바닥을 수세미로 박박 문지르지는 않습니다. 힘드실 테니까요. 그러나 빨래터에 돋은 풀을 남김없이 뽑습니다. 우리가 빨래터를 치울 적에는 바닥을 수세미로 박박 문지릅니다. 그리고 빨래터에 돋은 풀을 하나도 안 뽑습니다. 마을 할머니는 ‘남들이 보기에 말끔한 모습’을 바라고, 우리는 ‘빨래터에서 신나게 물놀이를 즐깁’니다. 그래서 서로 빨래터를 치우는 몸짓이 다릅니다.


  어찌 되든, 마을 빨래터에 흐르는 물은 여름에 몹시 시원합니다. 언제나 맑고 싱그럽습니다. 맑은 물을 바라는 도시사람이나 읍내사람이 물을 길으려고 찾아오기도 합니다. 우리는 집에서도 이 물을 마시고, 마을 어귀 빨래터에서도 손발하고 낯을 씻습니다. 언제든지 마시고, 아무 때나 물을 찰방거립니다. 여름에는 물이끼가 잘 끼니, 며칠 뒤에 밀수세미를 들고 신나게 물청소랑 물놀이를 즐겨야겠습니다. 4348.8.1.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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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5-08-02 0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로서로 말 안해도 내가 앉은 자리를 정리하고 가는 모습!! 정겹군요^^

숲노래 2015-08-02 06:22   좋아요 0 | URL
마을 샘터와 빨래터는 참으로 멋진 곳이에요~ ^^
 



[시골살이 일기 99] 오늘 이곳에 있는 삶

― 함께 달릴 수 있어



  시골살이는 재미있습니다. 시골버스는 골골샅샅 다니지 않으니, 버스가 지나가는 길로 가야 버스를 잡아탈 수 있어요. 게다가 버스는 자주 오지 않기 때문에, 한두 시간이든 두어 시간이든, 버스를 놓치면 가야 할 곳에 못 가거나 택시를 불러야 합니다.


  우리 식구가 도시에서 살 적에도 마음껏 달리기를 하면서 버스 타러 마실을 하지는 않았으리라 느낍니다. 도시에서는 조금만 기다려도 버스가 옵니다. 전철을 타려고 해도 그야말로 조금만 기다리면 돼요. 굳이 달려야 할 일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도시에서는 골목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자동차나 오토바이 때문에 섣불리 달리지도 못합니다.


  자가용이 있으면 아무 걱정이 없을까요? 아마 그럴는지 모릅니다. 자가용을 장만해서 타면 아무 근심이 없을까요? 아마 그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가용이 없고, 자가용을 장만하지 않은 살림으로 살았기에, 아이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달립니다. 땀을 흘리는 아이들은 깔깔깔 웃고 노래합니다. 서로 달리기를 겨루고, 내기하듯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립니다.


  버스를 잡아타고는 창문을 활짝 열고 한 마디 하지요. “아, 시원하다!” 4348.7.17.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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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98] 우리가 오늘 아는 길

― 자전거로 고갯길을 넘다가



  아이들하고 함께 자전거로 고갯길을 넘다가 생각합니다. 우리가 가는 이 길은 우리가 오늘 누리는 길입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넘는 이 고갯길은 오늘 우리가 지나가는 길입니다. 뙤약볕을 듬뿍 받으면서 타려는 이 고갯마루는 오늘 우리가 넘어서면서 새롭게 나아가려는 길입니다.


  자전거 발판을 구를 수 있을 때까지 굴립니다. 더는 발판을 밟기 어렵도록 가파른 곳에서는 자전거에서 내립니다. 아이들이 힘들다고 하면, 두 아이는 모두 자전거에 앉힌 채 혼자서 자전거를 끕니다. 아이들이 힘들다고 하지 않으면, 두 아이 모두 자전거에서 내려 함께 오르막을 걸어서 오르자고 합니다.


  내리막에서는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신나게 달릴 수 있으나, 내리막이 너무 가파르면 이때에도 자전거에서 내립니다. 아이들더러 이 내리막을 걸어서 가자고 얘기하는데, 작은아이는 으레 내리막에서 마구 달립니다. “다리가 안 멈춰!” 하고 웃으면서 깔깔깔 노래하며 달립니다. 다섯 살 작은아이가 내리막을 달리다가 넘어진 적은 아직 없습니다.


  우리가 오늘 아는 길을 자전거로 달리다가, 두 다리로 걷습니다. 숲이 우거진 곳에 길이 하나 납니다. 이 길은 언제부터 이런 길이었을까요? 이 길은 고작 쉰 해 앞서만 하더라도 이만 한 넓이가 아니었을 테고, 백 해 앞서라면 그저 사람만 걸어서 다니는 길이었을 테지요. 아마 이리나 승냥이나 여우나 늑대도 나올 만한 길일 테고, 온갖 숲짐승이 함께 어우러지던 길이었겠지요.


  오늘 이곳에는 전봇대가 지나가기도 합니다. 전봇대조차 없이 고즈넉한 숲길이기도 합니다. 나는 아이들하고 숲바람을 마시고 싶어서 숲길로 자전거를 이끌고 찾아갑니다. 4348.7.5.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고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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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97] 논에 비친 산그림자

― 들녘이 빚은 그림



  네 식구가 자전거마실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산그림자를 봅니다. 산그림자는 논에 넓게 펼쳐집니다. 찰랑이는 논물에는 갓 심은 어린 벼포기가 고개를 내밀고, 하늘을 가득 채운 구름이 고요히 흐릅니다. 자전거를 천천히 달리면서, 저절로 노래가 나옵니다. 이 논그림을, 물그림을, 하늘그림을, 산그림을, 구름그림을, 네 식구가 함께 누릴 수 있다니 기쁘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여름바람이 시원합니다. 여름해는 뜨겁지만 구름이 흐르면서 더위를 식히고 그늘을 드리워 줍니다. 여름바람이 싱그럽습니다. 여름볕을 쬐면서 살갗은 까무잡잡하게 타고, 여름햇살이 눈부시게 빛나면서 온 들과 숲에 푸른 숨결이 새롭게 일어납니다. 들녘이 빚은 그림을 마주하면서 내 가슴에 곱게 새길 그림을 돌아봅니다. 4348.6.9.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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