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64 노래



  멋을 안다면 섣불리 아무 데나 파헤치지 않습니다. 멋스러운 사람이라면 즐겁게 흙을 일구고 살림을 지으며 생각을 가꿉니다. 마구 파헤쳐 놓은 땅을 바라볼 적마다 가만히 다가가서 고이 쓰다듬고는 풀씨를 몇 묻습니다. 어린나무도 몇 옮겨심습니다. 이러고서 그곳을 떠납니다. 파헤쳐진 땅에 새숨이 무럭무럭 오르기를 기다립니다. 아이들한테 “자, 우리는 미움이 아닌 사랑으로 우리 보금자리를 새롭게 그리는 눈빛으로 가자” 하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씨앗심기’이니까요. 아이도 어른도 배운 대로 살아요. 무엇이든 배운 대로 받아들여 삶을 빚어요. 저는 우리 어버이한테서, 우리 아이들은 저한테서 말과 삶을 배워요. 모든 글은 삶을 마음으로 느껴서 옮기기 마련입니다. 꾸밈글이라면 꾸미는 삶을 꾸미는 마음으로 덧입혀서 꾸미는 손으로 옮기겠지요. 살림글이라면 살림하는 사랑을 살림하는 마음으로 살림하는 손빛이 되어 옮길 테고요. 글쓰기나 글읽기도 모두 “삶을 노래하면서 즐기면 된다”고 여깁니다. 틀을 따르거나 좇을 까닭이 없어요. 스승이 가르친 대로 살아야 할까요? 스스로 새롭게 배워서 삶을 짓는 하루일 적에 비로소 아름다워요. 언제나 “오늘 나”을 그리고 읽고 씁니다. 우리가 스스로 씨앗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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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63 사랑



  책을 쥘 적마다 사랑을 어떻게 그리는가 하고 들여다봅니다. 사랑하는 마음이나 눈빛이 없이 줄거리를 짜는 책은 더없이 따분하면서 부질없는 말잔치라고 느낍니다. 사랑은 ‘사랑’이라는 낱말을 써야 그릴 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이라는 낱말을 아예 안 쓰더라도 삶·살림으로 얼마든지 그려내지요. 아이가 누리는 소꿉이며 놀이는 사랑을 바탕으로 삼기에 즐겁습니다. 어른이 짓는 일이며 살림은 사랑을 발판으로 하기에 아름답습니다. 쌀을 씻어서 불릴 적에도 사랑어린 손길이 되려고 합니다. 밥을 짓고 차리고 설거지를 할 적에도 늘 사랑스러운 눈길이 되려고 합니다. 길을 걷거나 자전거를 탈 적에도, 또 시골버스나 시외버스나 전철이나 택시를 탈 적에도 한결같이 사랑하는 마음이 되려고 합니다. 글을 쓸 적에도 사랑을 어떻게 그릴까 하고 생각합니다. 글에 ‘사랑’이라는 낱말을 아예 안 쓰더라도 삶을 가꾸고 살림을 나누는 하루를 노래하듯 담아낼 적에 저절로 사랑스레 흐르기 마련입니다. 둘로 가른다기보다 ‘사랑’을 보려고 합니다. 이래야 하거나 저래선 안 된다는 틀이 아닌 ‘사랑’으로 가려고 합니다. 아이랑 노는 어버이라면 사랑이고, 풀꽃나무를 쓰다듬는 손빛이라면 사랑입니다. 사랑은 노상 스스로 샘솟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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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62 아이는



  아이는 스스로 어디에서나 빛(보물)을 보고서 하나하나 곁에 두며 숨결을 받아들이는구나 싶어요. “무엇을 보니?” “응, 여기 좀 봐.” “무엇이 있어?” “잘 봐. 안 보여?” “알았어. 잘 볼게.” “잘 보면 다 보여.” 글씨를 몰라도 무엇이든 보고 느끼고 배우는 아이입니다. 글씨가 적힌 종이꾸러미를 보아야만 ‘읽기’이지 않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숨결을 가만히 보면서 속빛하고 속내하고 속사랑하고 속숨을 느끼고 알아차려서 받아들인다면, 더없이 멋진 ‘읽기’이지 싶어요. 책에 적힌 줄거리를 따라가면서 이웃사람 삶을 읽을 수 있습니다만, 이웃사람을 마주하는 오늘 이곳에서 마음으로 삶을 읽으면 한결 빛나요. 책으로 옮기고 나서야 들여다보는 삶이 아닌, 책에 안 적혔어도 언제나 삶을 읽을 줄 안다면, 바람하고도 얘기하고 별님하고도 속삭이고 풀벌레랑 새하고도 조곤조곤 수다를 할 테지요. 모든 아이는 늘 입과 손과 마음으로 《파브르 곤충기》도 쓰고 《초원의 집》도 쓰고 《반지의 제왕》도 씁니다. 어버이나 어른이라면 아이 곁에 쪼그려앉거나 함께 나무를 타거나 들판을 맨발로 뛰놀면서 함께 삶읽기·숨읽기·빛읽기·오늘읽기·사랑읽기·숲읽기를 누리면서 눈길을 확 틔울 만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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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61 읽고 싶은 책



  바깥일을 보려고 이웃고장으로 나들이를 가노라면, 오늘날 숱한 이웃님이 어떻게 생각하고 말을 하는지 한눈에 알아봅니다. 한여름이라면 다들 “아이고 더워. 더워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더군요. 한겨울이라면 누구나 “아이고 추워. 추워 죽겠다.”는 말을 입에서 안 떼어요. 자, 하나씩 짚어 봐요. 스스로 덥다고 여기면서 “더워 죽겠다”고 말하니 더워서 죽겠지요? 우리는 즐거울 적에 뭐라 말하나요? “이야, 즐겁다!” 하고 말할 테지요. 즐거우니 즐겁다고 말할 테지만, 스스로 즐겁다고 말할 줄 알기에 참말로 즐겁습니다. 아무리 불볕이어도 불볕이 아닌 우리 손에 쥔 책을 마음으로 헤아리면서 읽으면 어떤 더위도 안 받아들이기 마련입니다. 사랑을 그려서 마음에 담으니 스스로 사랑이 돼요. 꿈을 그려서 마음에 심기에 스스로 꿈을 이루는 길을 갑니다. 제가 읽고 싶은 책이란, 제가 읽고 싶은 마음입니다. 온갖 책을 하나씩 만나면서, 온갖 삶을 읽는 눈썰미를 하나씩 틔웁니다. 책은 문득 날아오릅니다. 겉보기로는 날개가 없다고 여길 테지만, 책마다 마음으로 펄럭이는 날개가 있어요. 책에 깃든 사랑이라는 숨빛을 읽는 동안 저는 늘 구름밭에서 노는 마음이 됩니다. 스스로 하늘빛이 되어 바람처럼 노닐려고 읽습니다.


읽고 싶은 책이란, 읽고 싶은 마음.

讀みたい本とは、讀みたい心。

하나씩 만나면서, 하나씩 눈을 틔운다.

一つずつ會いながら、一つずつ目を開く。

책은 문득 날아오르고, 마음은 구름밭에서 노네.

本はふと舞い上がり、心は雲の上で遊ぶ。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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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60 다 읽었나요



  저는 책을 좀 많이 산다고 할 만하지만, 저보다 훨씬 많이 사는 이웃을 압니다. 저는 책을 꽤 많이 읽는다고 할 텐데, 저보다 참 많이 읽는 이웃을 알아요. 2021년을 잣대로 치면 제가 거느리는 책은 5톤 짐차로 10대가 넘습니다. 이런 책을 구경하거나 둘러보다가 “이 많은 책을 다 읽었나요?” 하고 묻는 분이 있습니다. 이때에는 빙그레 웃으며 “책을 바로 다 읽으려고 사나요? 앞으로 읽으려고도 사고, 되읽으려고도 사고, 물려주려고도 사요. 똑같은 책을 여러 벌 되사기도 하는데, 제가 읽을 책이랑 아이가 읽을 책이랑 ‘아이가 낳을 아이가 읽을 책’까지 헤아려서 사기도 하지요.” 하고 대꾸합니다. “오늘은 아직 새책집에서 팔지만 머잖아 판이 끊어지겠구나 싶은 책도 미리 사요. 바로 읽을 생각은 아니고 앞으로 읽을 생각이어도, 나중에 읽으려고 찾아볼 적에는 사라질 때가 있거든요. 열 해나 스무 해, 때로는 쉰 해 뒤에 읽을 책을 미리 사기도 합니다.” 하고 보태요. 이제 저는 시골에서 살기에 미리 잔뜩 사 놓기도 합니다. 시골엔 책집이 없으니 큰고장 책집으로 마실을 와서 잔뜩 산 다음, 시골집에서 조용히 머물며 차근차근 읽는답니다. “다 읽었나요?”가 아닌 “책을 읽으며 얼마나 즐겁나요?”를 물으면 좋겠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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