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49 어른만 볼 책



  어느 책은 겉에 “열다섯 살부터”나 “열여덟 살부터”라는 글씨를 박습니다. ‘시·소설’ 같은 이름이 붙는 책에는 이런 글씨를 안 박지만, 숱한 ‘시·소설’은 어린이가 읽을 만하지 않습니다. 미움·싸움·시샘·살부빔·골질·괴롭힘 같은 줄거리가 판치는 “어른만 보는 시·소설”에는 왜 겉에 “어린이는 읽지 말도록” 같은 글씨를 안 박을까요? 아니, 어른 사이에서도 안 즐겁거나 안 아름다운 노릇 아닐까요? 2015년 즈음까지는 ‘그림책’이라 할 적에는 “어린이부터 누구나 읽고 즐기는 책”이었으나, 그무렵부터 “어린이를 빼고 어른만 읽고 즐기는 그림책”이 하나둘 나옵니다. 2020년을 넘어서니 “어른만 볼 그림책”이 꽤 많아요. “어른만 그림책”은 이름을 따로 붙여야 한다고 느껴요. 그러나 이 ‘어른’이란 낱말이 걸립니다. 참다운 어른이라면 나이만 먹은 사람이 아니에요. 나이만 먹은 사람은 ‘늙은이’나 ‘철없는 바보’입니다. 그림으로 마음을 달래는 책은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한테도 아름답고 사랑스러워요. “어른만 그림책”도 그릴 만하지만 “누구나 그림책”을 그리는 어질고 참한 어른이 늘기를 바랍니다. “나이든 그림책”은 아이들이 무척 힘들어 합니다. 그림책은 ‘나이’ 아닌 ‘빛’을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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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48 지역작가



  글을 쓰고 책을 곁에 두며 ‘부러 버리’거나 ‘애써 안 품은’ 이름은 ‘지역작가’입니다. ‘마을글꾼’이 나쁘다고 여기지는 않으나, 갈수록 ‘지역작가’라는 이름을 등에 업고 온갖 ‘바라지(지원사업)’를 휩쓸고, 그 마을·고을·고장에서 벌어지는 벼슬아치(군수·공무원) 검은짓·뒷짓에 눈감는 ‘지역작가’ 모습에 혀를 내두릅니다. “지원사업을 차지하는 지역작가”하고 “지원사업을 펴는 벼슬아치”는 서로 한통속이 되더군요. 태어난 인천, 싸움판살이(군대생활)를 한 강원, 이오덕 어른 글을 갈무리하며 지냈고 우리 어버이가 사는 충청, 책골목잔치를 거들려고 열 몇 해를 드나든 부산, 아이들하고 열 몇 해를 살아가는 전남,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하고 책마을 일꾼으로 아홉 해를 살던 서울, 가시아버지 피붙이가 사는 경남, 이 어느 곳을 놓고도 마을글꾼이고 싶지 않습니다. 발이 닿고 마음이 닿는 모든 곳마다 다르게 흐르는 숨결을 새롭게 바라보는 눈빛으로 마을책집으로 찾아가서 책을 손에 쥐고 글을 여밉니다. 모든 마을·고을·고장에 이웃이나 동무가 살기에, 모든 곳을 다 다르면서 고르게 사랑합니다. 굳이 글이름을 붙여 본다면, ‘숲글꾼·사랑글꾼·살림글꾼’에 ‘노래글꾼·꽃글꾼·놀이글꾼’쯤이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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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47 한글맞춤틀



  1935∼1936년에 조선어학회에서 펴낸 《한글》이란 달책을 펴면, ‘조선어 맞춤법 통일안’을 세우려고 몹시 애쓰면서 ‘기독교회’와 크게 싸우는 이야기가 빼곡합니다. 뒷날 ‘한글맞춤법’으로 이름을 바꾸는데, 고장마다 달리 쓰던 말씨(사투리)가 매우 나쁘다고 여기면서 서울말(교양 있는 표준말)을 세워야 한다고 목청을 높입니다. 조선어학회는 나중에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꿉니다. 배움모임(학회) 이름에서 드러나듯 말이 아닌 글을 눈여겨봅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다르게 생각을 담는 말길이 아닌, 사람들이 모두 똑같이 쓸 그릇이라는 글길을 파고들지요. 이러다 보니 조선어학회(한글학회) 분들은 “사람들이 어떤 말을 어떻게 가누어 쓰고, 어떤 삶을 어떤 말에 담도록 짓는가 하는 이야기”는 아예 안 다루다시피 합니다. 총칼나라(일제강점기) 한복판에 나온 《한글》은 책이름만 한글로 쓸 뿐, 몸글엔 한자를 새까맣게 써요. 논밭을 지으며 아이를 낳아 돌보는 여느 순이돌이는 ‘우리말이란 생각길’을 연다면, 붓을 쥐어 책을 엮는 글바치는 ‘틀(표준)에 따르는 글씨’만 바라보더군요. 이러한 틀은 안 나쁩니다만, 다름(다양성)을 얕보거나 지나치기 쉽지요. 사투리는 다름·멋·삶·살림이면서 사랑으로 흐르는 생각씨앗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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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하루, 책과 사귀다 46 사랑글



  누가 쓴 글에서 어느 대목이 어긋나거나 그릇되었다고 따지기는 쉽습니다. 누가 한 말에서 어느 말씨가 틀리거나 엉성하다고 짚기도 쉽습니다. 어긋나거나 그릇된 글을 달랜다든지, 틀리거나 엉성한 말을 다독이기는 어떨까요? 남이 쓴 어긋나거나 그릇된 글을 안 쳐다보고서 스스로 삶을 사랑하는 숨결로 글을 새로 쓰기는 어떤지요? 남이 편 틀리거나 엉성한 말은 그만 듣고서 스스로 살림을 짓는 손빛으로 말을 새로 들려주기는 어떤가요? 얼핏 보면 “따지지 않고 사랑하기”나 “짚지 않고 살림하기”가 어려울는지 모릅니다만, 막상 이렇게 사랑글이며 살림말을 펴고 보면 “가장 쉬운 길이 사랑글이자 살림말”인 줄 알아채리라 생각합니다. 온나라가 “쉬운 길이 마치 어려운 듯 뒤집어씌우”고 “따분하며 사랑이 없는 길이 마치 좋은 듯 꾸미”는 판이라고 느낍니다. 꾸밈글이 아닌 사랑글을 손수 쓴다면, 꾸밈책이 아닌 사랑책을 스스로 찾아낼 만합니다. 거짓말이 아닌 살림말을 스스로 편다면, 거짓책이 아닌 살림책을 스스로 알아볼 만합니다. 아주 쉬워요. 사랑이란 어린이부터 어른 누구나 하면서 나누는 길이요, 살림이란 아이랑 어른이 어깨동무하면서 즐기는 길입니다. 사랑글을 쓰고 사랑책을 읽어요. 살림말을 펴고 살림책을 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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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하루, 책과 사귀다 45 손천



  웬만한 어른도 어린이도 책을 함부로 만지거나 다룹니다. 값비싸다는 빛돌(보석)을 “숱한 어른과 어린이가 책한테 하듯 함부로 만지거나 다뤄”도 될까요? 누구나 살펴보기 좋도록 펼쳐 놓는 새책집·헌책집입니다만, 새책도 헌책도 가볍게 쥐고 부드러이 넘기며 “내가 살 만한가 아닌가를 헤아릴” 노릇입니다. 살 만하면 가슴에 품고, 살 만하지 않으면 제자리에 곱다시 놓을 노릇이에요. 저한테 책쥠새를 가르치거나 알려준 어른은 없지만, 어릴 적부터 살림돈을 푼푼이 모아 어렵게 한 자락씩 장만한 책이다 보니, 저희 집에 있는 책조차 스스로 살살 가볍게 만집니다. 이러다 열 살 무렵 “책을 많이 건사한 동무네”에 놀러갔더니 동무가 책을 쥐는 손길이 무척 곱더군요.“넌 어떻게 책을 그렇게 읽니?” “막 읽으면 책이 다치잖아.” 동무를 보면서 책쥠새를 처음으로 배웠습니다. 동무는 늘 손천(수건)을 챙겨서, 책을 읽다가 손을 닦더군요. 1994년 서울 용산 헌책집 〈뿌리서점〉에서 만난 책손 아저씨는 “집에서도 책을 볼 적에는 흰장갑을 껴요. 책먼지 때문이냐고 묻는 분이 있는데, 헌책을 살필 적에도 책이 안 다치게 하고 싶거든요.” 하고 말씀했어요. 손천을 챙겨 손때를 틈틈이 닦으면서 책집에서 책을 살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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