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25 펴냄빛



  읽고 새기거나 누릴 이야기를 담은 종이꾸러미를 ‘책’이라 하고 ‘冊’ 같은 한자가 있는데, 우리가 처음부터 “우리 글씨”를 썼다면 한자가 아닌 우리 글월로 이야기를 펴기 마련입니다. 예전부터 쓰던 말 그대로 오늘도 쓸 수 있지만, 오늘 우리가 새책을 써내고 여미어 내놓는다면, 지난살림에서 새롭게 익혀서 나누고 싶다는 사랑이 흐른다고 여겨요. 오랜책만 읽지 않고 새책을 써서 읽듯, ‘책’을 놓고도 얼마든지 새말을 지을 만해요. 우리는 총칼나라(강점기) 일본한테 시달리던 무렵 ‘박다←인쇄’하고 ‘펴내(펴내다)←출판’처럼 우리 나름대로 새말을 지었습니다. 이무렵에 ‘지은이←필자(작가)’처럼 새말을 짓기도 했습니다. 예전에는 ‘필자·작가’로도 넉넉했다면 이제는 ‘글님·그림님·노래님’처럼 가를 만하고, 새말을 더 지어야겠지요. 그렇다면 ‘책’은 어떻게 할까요? 저는 곧잘 “우리말로 본다면, ‘책’은 ‘숲’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이든 담고, 품고, 여미고, 이야기하고, 나누고, 푸르게 삶과 넋을 밝히는 꾸러미이기에 ‘숲’이라는 낱말로도 나타낼 만하지 싶어요.” 하고 말해요. 책을 펴내는 곳이니 ‘펴냄터←출판사’요 ‘펴냄빛(펴낸이)←출판사 대표’ 같은 이름도 슬그머니 지어서 쓰곤 합니다.


ㅅㄴㄹ


2016년에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처럼 

조금 길게 이름을 붙여서

'스토리닷'이라는 작은 펴냄터에서

이야기꾸러미를 선보였어요.


이윽고 《우리말 글쓰기 사전》처럼

이름을 조금 줄였다가


《책숲마실》처럼

이름을 더 줄였고


2021년에는

《곁책》처럼 그 짧은 이름도

더 줄였어요.


이다음에는 외마디로 붙이는

이름으로도 

책을 선보이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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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23 말씨앗



  우리가 마시는 싱그러운 바람은 사람 손길이 안 닿은 숲에서 비롯합니다. 풀꽃나무가 스스로 씨앗을 틔우고 잎을 내놓으면서 피고 지고 자라고 스러지는 숲이기에 온누리를 푸르게 가꾸는 밑바탕이 됩니다. 나쁜벌레를 잡아야 하지 않습니다. 풀죽임물을 뿌리거나 비닐을 쳐야 하지 않습니다. 가지치기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숲은 늘 스스로 아름드리가 되어요. 이때 사람은 무엇을 하면 될까요? 숲을 그저 누리면 되어요. 억지로 손대려 하지 말고 꾸밈없이 맞이하고 스스럼없이 바라보면서 홀가분하게 노래하면 넉넉합니다. 돌림앓이가 퍼지는 동안 나라에서는 자꾸 두려운 씨앗을 심으려 합니다. 오늘은 몇 사람이 걸리고 죽었다고 밝히지요. 그런데 고뿔(감기)에 날마다 몇 사람이 걸려서 죽었는가를 여태 밝힌 적이 없고, 미리놓기(예방주사)를 맞고 다치거나 죽은 사람도 안 밝혀요. 넘어지거나 앓거나 아프기에 죽지 않아요. 며칠 몇 달 몇 해이든 옴팡 앓고서 말끔히 턴 다음 튼튼히 일어나면 됩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우리 어버이는 “얘들아, 아프거나 돌림앓이에 걸렸으면 푹 쉬고 나아서 더 튼튼하게 놀면 돼” 하는 마음으로 지낼 노릇이에요. 오늘날 돌림앓이판은 ‘못 쉬고 못 노는 어른’들한테 쉴틈을 주는 셈 아닐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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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22 손빨래



  셈틀이나 손전화를 켜고서 글을 읽더라도 손을 씁니다. 종이책 아닌 누리책을 읽더라도 손으로 슥슥 넘깁니다. 무엇을 읽든 눈뿐 아니라 손을 쓰고, 몸이며 팔다리를 나란히 씁니다. 스무 살을 지나면서 홀로살기(자취)를 할 적부터 손빨래입니다. 빨래틀을 건사하지 않았습니다. 스물여섯 달을 지낸 강원 양구 멧골짝 쌈자리(군대)에서는 겨울에 얼음을 깨고서 손빨래였어요. 새뜸나름이로 일할 적에 날마다 땀에 젖은 옷을 빨래하는데 겨울나기란 만만찮아요. 한겨울에도 찬물로 빨래하거든요. 2003년에 이르러 비로소 더운물로 빨래할 수 있는 살림집을 얻었으나, 꼭 한 해뿐이고, 2008년에 큰아이를 낳고부터 비로소 더운물빨래를 했어요. 요새도 빨래틀(세탁기)은 잘 안 써요. 집에 두긴 했지만 으레 빨래그릇에 담가서 손으로 복복 비비고 헹구고 짭니다. 손으로 옷가지를 주무르면 ‘이 옷을 입으며 어떻게 지냈나’ 하는 이야기가 손을 거쳐 온몸으로 퍼져요. 종이책도 이와 같으니, 종이책을 쥘 적마다 ‘이 책을 짓고 엮고 다룬 이웃 살림이 손을 거쳐 온마음으로 번집’니다. 손을 뻗어 바람을 만지면 바람에 묻어나는 온누리 이야기를, 손을 들어 별빛을 쓰다듬으면 별이 우리 둘레를 돌며 들려주는 별나라 노래를 새록새록 읽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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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20 자고 일어나기



  어린이일 적에는 하루를 06시에 열었고, 푸름이일 적에는 하루를 04시에 열었으며,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로 일하던 무렵부터 하루를 02시에 엽니다. 큰고장에 살던 예전도 시골에 사는 오늘도 하루를 여는 때는 매한가지입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고도 하겠으나 둘레가 고요할 적에 일어나서 일하고, 둘레서 왁자지껄할 적에는 눈귀입을 닫고서 가만히 꿈나라로 갑니다. 스무 살에 제금(분가)을 나면서 새뜸나름이하고 몇 가지 곁일로 스스로 먹고살며 하루를 열던 02시란 더없이 고요하면서 모든 바람이 가장 차분하고 별빛이 깨어나는 즈음입니다. 02시에 잠들면 별빛을 모릅니다. 02시에 일어나야 별빛을 압니다. 별빛을 읽어야 새벽이슬을 읽고, 새벽이슬을 읽어야 풀꽃나무를 읽으며, 풀꽃나무를 읽어야 풀벌레·숲집승을 읽고, 이윽고 바람·하늘·해·비·흙을 읽어요. 이다음으로는 아이 눈빛을 읽고, 어버이 눈망울을 다스리고, 살림꽃을 가누는 숨결을 추스릅니다. 02시에 일어나면 서울도 숲으로 바뀝니다. 보금자리를 숲집으로 가꾸면, 여느 자리에서 쓰는 모든 말이 살림말이 되고, 이 살림말을 아이한테 물려주니 사랑말이 되며, 다같이 하루를 노래하면서 저마다 다르고 아름다우며 즐겁게 숲말을 펴기 마련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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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21 접종 배지



  서른 언저리까지 온갖 보람(배지)을 옷·등짐·자전거에 잔뜩 붙이거나 주렁주렁 달았습니다. 서른 즈음부터 이 모든 보람을 떼었습니다. 마음을 기울이는 ‘보람’이기도 하겠으나, 이보다는 마음을 빼앗기는 ‘보람’이 되고, 서로 금을 긋거나 남 앞에서 우쭐대는 ‘자랑’마저 되더군요. 지난 어느 날 이웃님이 저한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사전을 쓰는 양반이 어느 쪽에 기울어지면 안 될 텐데요? 좋은 뜻인 줄은 알지만, 그 길만 좋은 뜻일까요? 어느 길에도 안 서면서 조용히 살아가는 착한 사람이 있을 텐데요?” 하고 얘기하더군요. 국립국어원 낱말책은 “배지(badge) : 신분 따위를 나타내거나 어떠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옷이나 모자 따위에 붙이는 물건”으로 풀이해요. 북녘에서는 ‘김일성 배지’를 옷깃에 달도록 시켰어요. 남녘에서는 ‘일하는 곳·이바지(기부)한 곳·미는(지지하는) 곳·배움터(학교)’ 무늬를 새겨서 나붙입니다. 나쁜 뜻으로 보람(보이도록 하는 것)을 달지는 않는다고 느끼지만, ‘너랑 나랑 가르는 금’이 되곤 합니다. 요즈막 이 나라는 ‘접종 배지’를 달게 하려 한다지요. 마침종이(졸업장)로 사람을 가르는 굴레, ‘대학 이름 적힌 살림’하고 똑같습니다. 바늘(주사)은 조용히 놓고 쉴 노릇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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