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9 짜장국수



  짜장국수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습니다. 돌이키면 어릴 적에는 짜장국수를 거의 못 먹었습니다. 중국집 짜장국수는 너무 기름져요. 열한두 살 무렵에 처음으로 짜장국수 한 그릇을 비울 수 있었지 싶습니다. 이 짜장국수를 1995년부터 곧잘 먹었어요. 서울 용산에 있는 헌책집 〈뿌리서점〉을 푸른배움터를 다니던 열아홉 살부터 찾아갔는데, 1994년에 열린배움터에 들어갔으나 이듬해부터 그만두자고 생각하며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로 일했어요. 혼자 일해 혼자 먹고살며 밥값을 오롯이 책값으로 돌렸어요. 새책은 엄두를 못 내고 헌책집을 날마다 찾아가는데, 주머니가 가벼우니 으레 예닐곱 시간쯤 구석에 앉아 읽지요. 사고 싶지만 못 사고 눈으로 살펴 머리로 새기고 마음에 담는 나날인데, 이런 책벌레를 고이 여긴 〈뿌리서점〉 지기님은 “오늘도 밥은 안 먹고 책만 보나? 책만 보면 배 안 고픈가? 나도 출출한데 혼자 먹기 그러니, 같이 먹겠나?”라든지 “책은 덜 사더라도 밥을 먹어야 하지 않나? 어떻게 책만 보나?” 하시면서 늘 짜장국수를 사주었습니다. 전철삯조차 버거워 짐자전거로 한두 시간을 달려 헌책집을 다니니 늘 굶으나, 단골인 여러 헌책집지기님이 으레 짜장국수를 사주면서 책벌레를 먹여살렸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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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8 자꾸자꾸



  이 일을 어느 만큼 했으면 다른 일을 합니다. 다른 일을 제법 했다면 또다른 일을 찾습니다. 또다른 일을 꽤 했으면 슬슬 멈추고 쉽니다. 되도록 맨살이 해바람에 잘 드러나는 차림으로 마당이나 뒤꼍에 맨발로 섭니다. 눈을 가만히 감고서 햇볕에 일렁이는 기운을 먹고 바람에 춤추는 숨결을 먹습니다. 이러고서 다시 집안일을 하고 글일이나 책일을 합니다. 아무리 마감이 바쁘더라도 글을 제법 쓰거나 손질하거나 추슬렀으면 집안일을 합니다.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비질을 합니다. 들풀을 훑고 마당을 살피고 풀꽃나무를 쓰다듬습니다. 책을 좀 읽었으면 자전거를 타고 들길이나 멧길을 가지요. 들길에서 풀꽃을 보고 멧길에서 나무를 만납니다. 한 가지만 오래도록 하지 않습니다. 한 가지만 오래오래 할 수 없습니다. 아기를 돌볼 적을 떠올리자면, 젖을 물리고 물을 몇 모금 먹이고서 등을 토닥입니다. 자장자장 노래도 하고 살몃살몃 춤을 춥니다. 아기를 앞으로 안고서 해바라기를 하고, 아기 얼굴 코앞으로 풀잎을 대고, 아기 손에 나무줄기를 만지도록 합니다. 기저귀를 갈고, 기저귀를 삶고, 삶은 기저귀 물을 짜서 널고, 잘 마른 기저귀를 걷어서 개고, 곁님이 누릴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고 …… 늘 새롭게 이모저모 갈마듭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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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7 이반 일리치



  처음 이반 일리치 님을 책으로 만나던 때를 떠올립니다. “왜 이렇게 어렵지?” 싶더군요. 그때에는 잘 몰랐으나, 이반 일리치 님이 쓴 글을 우리말로 옮긴 사람이 하나같이 ‘꾼(전문가)’이더군요. ‘꾼(전문가)’이기에 누구나 알아듣고서 쉽게 배우고 즐거이 따르다가 새롭게 삶을 짓도록 북돋울 만한 우리말로 가다듬지 않았어요. 이분이 쓴 책은 “Disabling Professions”라지요. “망가뜨리는 놈들”이나 “망치는 녀석들”쯤으로 옮기면 뜻·결·실마리가 확 다를 뿐 아니라, ‘꾼(전문가)’이 온누리에서 뭘 하는가를 한결 빠르게 알아채도록 이끌 만하리라 봅니다. ‘꾼이 쓰는 말’을 ‘아이들·시골 할매 눈높이’로 풀어내어 이반 일리치 님을 다시 읽어 보면, 이분은 우리 스스로 저마다 ‘님’이 되어야 한다고 속삭이는구나 싶습니다. ‘꾼이 아닌 님’입니다. 잘난꾼이 아닌 살림님이 될 노릇입니다. 살림을 가꾸는 손으로 하루를 짓고, 살림을 돌보는 눈으로 생각을 일구고, 살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동무를 사귈 적에 비로소 온누리에 아름다이 빛이 드리운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여겨요. 책만 곁에 둔대서 배우거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책에 서린 숨결을 들여다보고 아이랑 시골 할매하고 나누려는 자리에 설 노릇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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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2021.4.29.

책하루, 책과 사귀다 16 흔들흔들



  2021년 4월 28일, 작은아이는 처음으로 시골버스에서 ‘만화책 그리기’를 합니다. 밑그림만 그렸는데 “버스는 너무 흔들려서 못 그리겠어” 하고 말합니다. 빙그레 웃으면서 “흔들린다고 못 그릴 까닭이 없어. ‘흔들흔들’이라는 생각이 마음으로 퍼지니까 스스로 못 그린다고 여기지.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어디에서든 ‘그림’만 마음에 담아서 그리면 돼. 그리고 또 그리니까 그린단다. 너희 아버지는 너한테 이렇게 들려주는 말을 함께 들길을 걸으면서 척척 쓰잖니? ‘쓴다’는 생각을 스스로 심으면서 살기에 걸으면서도 쓰고, 버스가 아무리 흔들흔들해도 쓰고, 너희가 갓난쟁이일 무렵 너희 옷가지랑 기저귀랑 살림을 잔뜩 짊어진 몸에 너희를 한 팔로 안고서 다른 팔로 글을 썼는걸.” 하고 말합니다. 하거나 못 하는 까닭은 매우 쉽습니다. 하려는 생각을 마음에 심으니 하고, 하려는 생각을 마음에 안 심으니 안 하거나 못 합니다. 책에 사로잡히면 누가 불러도 못 듣고, 추위나 더위를 못 느끼기 마련입니다. 우리 스스로 모르게 ‘읽는다’는 생각을 마음에 심었거든요. 오직 ‘읽는다’만으로 빠져들기에 다 잊고 ‘읽는다’만 해냅니다. 마음에 늘 ‘사랑’을 심고 ‘살림’을 심고 ‘숲’을 심는 동무랑 이웃이 늘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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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5 숨



  돌봄터(병원)에서는 저를 ‘만성축농증’이라고 했습니다. 워낙 고삭부리라 아픈 데를 잔뜩 달고 사는 저였는데, 다른 무엇보다도 코 탓에 이비인후과를 날마다 드나들어야 했습니다. 집안일이며 곁일(부업)이며 몹시 바쁘고 힘든 어머니는 돌봄터에 치르는 돈뿐 아니라 돌봄터를 오가는 품이며 찻삯도 버거워 돌봄터 지기한테 묻습니다. “그러면 어떡해야 하나요?” “수술을 해야지요.” “수술을 하면 낫나요?” “아뇨. 수술을 해도 안 낫습니다.” 옆에서 이 말을 듣다가 벙 쪘습니다. ‘코를 째도 안 낫는다면서 코를 왜 짼다고! 네(의사) 코도 아니잖아!’ 돌봄터에서는 붙이기 쉬운 이름을 붙였을 텐데, 저는 코로도 입으로도 숨을 쉬기 어려운 나날을 39살까지 보냈습니다. 숨막혀 죽는다는 말을 내내 되새겼어요. 숨을 못 쉬면 1초도 버티기 힘든 서른아홉 해인데, 둘레에서는 “숨 좀 못 쉰다고 뭐가 아프다고 그래?” 하더군요. 이런 말을 외는 분은 눈코귀입을 다 막고 1시간 아닌 1분이라도 버틸 수 있을까요? 숨이 늘 가쁘고 벅찬 나날을 보냈기에 꿈을 생각할 틈이 없었습니다. 숨쉬기로도 바쁜걸요. 문득 돌아보면 이 숨을 쉬는 동안 오늘이 저한테 처음이자 마지막인 가장 아름다운 날로 여겨서 즐겁게 살자고 생각했구나 싶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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