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자는 유자빛 책읽기

 


  유자 열매 노랗게 익는다. 멀리서 바라보면 유자랑 탱자랑 엇비슷하다. 가까이서 보면 유자는 크고 탱자는 작은데, 멀리서 바라보면 엇비슷하다. 유자는 무슨 빛깔이라고 할 만할까. 탱자는 무슨 빛깔이라고 할 만할까. 귤은? 감귤은?


  사람은 모두 달라 저마다 스스로 이름을 붙인다. 큰 테두리에서는 ‘사람’이고, 사람 테두리에서는 ‘이름’이 있다. 유자도 큰 테두리에서는 저마다 달라 ‘유자빛’ 한 마디로는 뭉뚱그릴 수 없다. 크게 얽어 ‘유자빛’이라 하지만, 유자 열매마다 빛깔과 빛결과 빛무늬가 조금씩 다르다. 똑같은 모양이나 크기나 무게나 맛이나 멋인 유자 열매는 한 가지조차 없다. 그런데 유자나무에 달린 유자잎도 모두 다르다.


  어느 나무이건 다 다른 가지가 자라서 다 다른 잎이 돋는다. 다 다른 꽃이 피고 다른 열매를 맺으며 다 다른 씨앗을 키운다. 다 다른 씨앗은 다 다른 땅으로 떨어져 다 달리 뿌리를 내리며 다 다른 나무로 새삼스레 자란다. 얼마나 아름다운 숲이요 마을이며 지구별인가. (4345.11.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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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란 은행잎 책읽기

 


  창원중앙역에서 기차를 내려 한 시간 남짓 창원시 언저리와 한복판을 걷는다. 처음 창원중악역 둘레를 걷는 동안, 퍽 많구나 싶은 나무들이 우람하게 자라 숲을 이루어 눈이 확 트이고 가슴이 시원스레 열린다. 나무내음이 물씬 풍기며 알록달록 곱다. 이윽고 나무숲을 지나 시내 한복판으로 접어들 무렵부터 나무는 온데간데없고 높다란 건물과 널따란 찻길과 끝없는 자동차가 물결을 이룬다. 나무그늘 아닌 건물그늘에서 벗어날 무렵 새삼스레 노란 은행잎이 빛나는 조그마한 거님길이 나오고, 5층짜리 나즈막한 아파트가 나온다. 도시에서 숨을 틀 만한 데가 시내 바깥에 살짝살짝 있구나. 도시에서 가장 예쁘다 할 만한 이 노란 은행잎 거님길을 걷는 아이들이 있네. 이 길을 거닐면서 노란 가을내음 가을빛 가을바람 누릴 수 있겠지. 도시에서 배기가스 때문에 은행나무만 심지 말고, 감나무도 심고 능금나무도 심으면, 감나무 우거진 길을 거닐며 감알 발그스름한 싱그러운 빛깔과 내음을 물씬 누릴 테고, 복숭아나무도 심고 살구나무도 심으면 봄날 이 길을 거닐 적에 복숭아꽃 살구꽃 흐드러진 고운 빛깔과 내음을 듬뿍 누리겠지. (4345.11.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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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석류꽃 책읽기

 


  늦가을에 석류꽃 한 송이 빨갛게 피어나다. 석류열매 붉디붉게 맺혀 몽땅 떨어진 석류나무 가운데 한 그루에서 맨 꼭대기 나뭇가지에 석류꽃 한 송이 달린다. 어쩜, 너는 어떡하니. 나날이 바람이 차갑게 바뀌는데, 늦가을 앞두고 여러 날 퍽 따스한 바람이 불고 고운 햇살이 드리웠다지만, 이렇게 일찌감치 몽우리를 열면 어떡하니.


  그래도, 너는 너대로 가을 끝자락과 겨울 첫자락을 보고 싶었니. 그래, 굳이 굵다란 석류알이 되어야 하지는 않아. 가을바람 맡고 겨울바람 쐬면서 더 씩씩하고 튼튼하게 한삶을 누릴 수 있어. 봄내음과 여름내음 맡으며 피어나는 석류꽃도 아리땁지만, 찬바람과 눈바람 마주하는 석류꽃도 어여뻐. 누렇게 익은 벼를 베어낸 텅 빈 논자락 곁에서 한들거리는 석류나무에 새로 돋은 푸른 잎사귀와 너무 일찍 터지고 만 석류꽃 봉오리 하나, 더없이 푸르고 붉으며 환하구나. (4345.10.3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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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씨 책읽기

 


  꽃씨를 보면 어김없이 후 하고 불어서 날리고 싶은 어린이는 어디를 가건 무엇을 하건, 꽃씨를 볼 때면 발걸음을 멈춘다. 꽃씨가 너를 이끌어 이곳으로 온 셈이니, 네가 꽃씨를 불러 이곳에서 만난 셈이니. 네 작은 입바람으로 날아가는 꽃씨가 있지만, 네 작은 입바람에는 꼼짝을 않는 꽃씨도 있단다. 너 참 예쁘구나, 멀리 멀리 네 아이들을 흩뿌리렴, 하고 노래 한 번 부른 다음 호호 바람을 일으켜 보렴. (4345.10.2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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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씨앗 책읽기

 


  시골마을에는 사람이 손수 심어 돌본 나무가 있고, 씨앗이 스스로 뿌리내려 자란 나무가 있습니다. 손수 돌보아 키운 나무이건, 씨앗이 스스로 자란 어른나무이건, 모두 사랑스럽고 아름답구나 싶습니다. 사람들은 꽃을 보거나 열매를 얻거나 울타리로 삼으려고 나무를 심습니다. 예전에는 옷장을 짜려고 나무를 심기도 했습니다. 스스로 자라나는 나무는 사람들 바람이나 마음하고는 살짝 다르다 할 테지만, 푸른 잎사귀와 밝은 꽃과 예쁜 열매를 맺습니다. 사람이 심은 감나무에서 맺는 감알은 사람도 먹고 멧새도 먹습니다. 사람이 안 심고 나무 스스로 씨앗을 내려 이루는 나무에 맺히는 열매 또한 사람도 먹고 멧새도 먹습니다. 때로는 사람은 안 먹고 멧새만 나무열매를 먹곤 합니다.


  빨갛게 빛나는 나무열매를 바라봅니다. 큰아이는 빨갛게 빛나는 나무열매가 예쁘다면서 톡톡 땁니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손이 안 닿는다며 열매를 따 달라고 했는데, 다섯 살이 된 올해에는 웬만한 데까지 손이 닿아 스스로 따서 즐깁니다. 큰아이는 빨간 나무열매를 손바닥에 올려놓고는, “이 열매는 새가 먹는 거야. 새가 맛있게 먹을 거야.” 하고 말하다가는, “나도 먹어야지. 아버지도 먹어 볼래요?” 하고 묻습니다. “아버지는 안 먹어. 새한테 주자.” 하고 대꾸하는데, 큰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싱글벙글 웃다가 슬쩍 혼자 먹습니다. “아, 맛있다.” 하면서 몇 알 집어먹더니, “새들 먹으라고 올려놓아야지.” 하면서 남은 열매를 이웃집 돌울타리 한쪽에 가만히 올려놓습니다. 가을이 빨갛게 무르익습니다. (4345.10.2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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