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 줍는 책읽기

 


  9월 2일에 음성 할아버지 생일에 맞추어 나들이를 했고, 9월 28일에 한가위를 앞두고 다시 나들이를 한다. 9월 2일 멧자락을 살피니 도토리가 한창 여물려고 하지만, 푸른 빛이 감돌아 덜 익었다. 한가위 즈음 찾아오면 다 익겠거니 여겼는데, 한가위 즈음 도토리는 거의 모두 떨어졌다. 잘 익었을 뿐 아니라 거의 남김없이 바닥에 떨어져서 흙이랑 하나가 되었다.


  흙하고 한몸으로 섞인 도토리는 천천히 뿌리를 내리며 어린 참나무로 자랄 테지. 나는 아직 도토리나 잎사귀나 줄기나 나뭇가지를 살피면서, 네가 굴참나무인지 갈참나무인지 졸참나무인지 떡갈나무인지 상수리나무인지 가름하지 못한다. 그저 도토리요 그예 참나무라고만 여긴다. 이름을 옳게 살피지 못한다.


  참 마땅한 노릇이리라. 왜냐하면, 내가 도토리를 갈무리해서 도토리를 빻고, 도토리를 갈아 도토리묵을 쑤지 않으니까. 내가 몸소 도토리묵을 쑤면서 먹을거리를 마련한다면, 도토리마다 다 다른 맛과 내음을 느낄 테지. 도토리마다 다른 맛과 내음, 여기에 빛깔과 무늬와 모양을 느낀다면, 나는 눈을 감고도 참나무 이름을 찬찬히 헤아릴 수 있으리라.


  나무도감이나 열매도감 같은 책을 백 번 천 번 읽거나 외운대서 도토리를 알 수는 없다. 잎 그림을 백 번 천 번 그려도 도토리를 알 수는 없다.


  도토리를 주워서 먹어야 안다. 잎사귀를 어루만지며 그늘을 누리고, 숲에서 나물을 캐야 비로소 안다. 숲사람일 때에 숲을 이루는 나무를 알지, 숲사람이 아니고서 어떻게 도토리를 알거나 참나무를 안다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아직 숲사람이 아니라 하더라도 시골사람 되어 시골자락을 누리면, 나무와 풀과 꽃마다 어떤 이름인가를 알지 못하더라도 가슴을 활짝 열어 온갖 빛깔과 맛과 내음을 듬뿍 받아들일 수 있다. 모두모두 반가우며 푸른 빛깔이요 맛이요 내음이로구나 하고 느끼ㅕ 활짝 웃을 수 있다. (4345.10.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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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아주·환삼덩굴·쇠비름

 


  아이들이 손수 밭을 일구는 이야기를 다루는 그림책을 읽다가 오래도록 책장을 더 넘기지 못한다. ‘밭에서 자라는 잡풀’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인데, ‘밭 푸성귀’가 잘 자라지 못하게 가로막는 풀이라서 ‘김매기’를 해서 뽑아 버려야 하는 풀로 돌피·강아지풀·괭이밥·망초·왕바랭이·쇠뜨기·쇠별꽃을 비롯해 명아주·환삼덩굴·쇠비름을 든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시골마을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유채조차 잡풀로 여겨 그냥 뽑아서 버리곤 한다. 갓 또한 그냥 버리곤 한다. 유채잎이나 갓잎을 뜯어 집에서 자실 수 있으나, ‘먹는 다른 풀이 많으’니 굳이 유채잎이나 갓잎을 김치로 담가서 먹는 일이란 드물다. 자운영이나 질경이나 미나리조차 애써 캐거나 뜯지 않는다. 모조리 낫이나 기계를 써서 베어 버리거나 풀약을 쳐서 죽이신다.


  그림책에는 ‘나물로 많이 먹는 풀’로 질경이·냉이·꽃다지·쑥·민들레를 든다. 그런데, 시골에서 살아가며 지켜보면, 쑥이든 꽃다지이든, 애써 뜯거나 캐서 먹는 분들은 아주 드물구나 싶다. 배추나 무나 상추를 심어서 드시더라도, 스스로 씨앗을 퍼뜨려 씩씩하게 돋는 이들 풀을 반찬으로 삼는 분이 매우 드물다.


  새삼스레 더 생각해 본다. 괭이밥이나 쇠뜨기는 약풀로 쓴다. 이들 풀은 날로 먹어도 되며, 풀물을 짜서 마셔도 된다. 우리 식구는 명아주와 환삼덩굴과 쇠비름은 얼마든지 뜯어서 먹고 풀물을 짜서 마신다. 질경이와 민들레도 먹지만, 망초나 쇠별꽃이라서 못 먹을 까닭이 없다. 숲에서 스스로 자라는 망초라면 맛난 풀이요, 숲에서 예쁘게 크는 쇠별꽃 또한 좋은 풀이다.


  그런데,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나서 어른이 되기까지, 시금치라도 맛나게 먹는 아이는 몇이나 될까. 깻잎이든 호박잎이든, 고추잎이든 배추잎이든, 당근잎이든 부추잎이든 모시잎이든, 맛나게 즐기는 아이는 몇이나 되려나.


  밭을 왜 일구는지 모르겠다. 밭 일구는 이야기를 묶은 그림책이 아이들한테 무슨 삶과 생각을 들려줄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이러한 그림책을 장만해서 읽을 어른들은 질경이가 되든 명아주가 되든 가만히 바라보고 살며시 쓰다듬다가는 입에 기쁘게 넣어 냠냠짭짭 맛을 볼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스스로 먹어 보지 않고 먹어 볼 만한 풀이라느니 못 먹을 풀이라느니 하고 금을 그을까. 참말 모르겠다. 우리 집 텃밭 산초나무가 씨앗을 떨구어 새로 나는 어린 산초나무를 가느다란 가지까지 통째로 꺾어 간장이나 된장으로 무친 다음 날로 먹곤 한다. 산초잎과 산초줄기도 참으로 맛난다. 이름을 아는 풀도 이름을 모르는 풀도, 저마다 다 다른 풀내음을 풍기면서 내 몸으로 스며들어 나하고 하나가 된다.


  참말 나는 잘 모르겠다. 밭을 일구는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엮어 내놓는 뜻을 잘 모르겠다. 밭을 일구는 삶을 그림으로 담는 어른들 생각을 잘 모르겠다. (4345.9.2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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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쑥 내음 책읽기

 


  태풍이 지나가고 난 눈부신 파란빛 하늘을 올려다보며 빨래를 넌다. 마당 귀퉁이에 빨래를 널다가, 가을을 맞이해 새로 돋는 ‘마당 쑥’ 내음을 맡는다. 아침에 풀물을 짤 때에 쑥을 한 주먹 뜯어서 함께 넣는데, 뜯으면서도 쑥내음이 나고, 뜯고 나서도 쑥내음이 감돈다. 봄에 돋는 봄쑥에는 봄내음이 묻어나고, 가을에 돋는 가을쑥에는 가을내음이 묻어난다. 봄에도 가을에도, 또 여름에도 마당 한켠에서 스스로 자라나는 쑥을 뜯어서 날로도 먹고 풀물을 짜서도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맙고 즐거운가. 게다가 햇볕에 잘 마르는 빨래마다 가을쑥 내음이 배어들 테지. 마당에서 맨발로 노는 아이들 몸과 마음에도 가을쑥 내음이 찬찬히 스며들 테지. 나한테도 옆지기한테도 좋은 내음이 가만히 찾아들며, 언제나 좋은 넋으로 좋은 꿈을 꾸도록 도와주는구나 싶다. (4345.9.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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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젓가락소나무 책읽기

 


  전북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사람들이 나무젓가락처럼 박아 놓은 소나무를 본다. 숲에도 기차역에도 도시 한켠에도, 소나무를 갖다 심는 사람들은 ‘나무심기’ 아닌 ‘나무젓가락 박기’를 한다. 소나무 아래쪽 가지를 모조리 잘라 없앤 다음 맨 위에만 조금 남긴 나무젓가락이 되게 한다.


  소나무는 이렇게 나뭇가지 몽땅 잘리고 솔잎 몇 남지 않아도 살 수 있을까. 아니, 이렇게 나뭇가지와 솔잎을 몽땅 잘라 없애야 소나무는 이리 비틀고 저리 뒤틀며 악착같이 살아남으려고 용을 쓸까. 사람들이 소나무한테 하는 짓이 무엇인지, 사람들은 스스로 깨닫거나 느낄까. 돈과 겉멋에 휘둘리는 사람들이 소나무한테 이런 몹쓸 짓을 한다고만 느끼지 않는다. 여느 사람들조차 이런 소나무가 멋스럽거나 ‘비싸다’고 생각하니, 이런 짓이 끊이지 않는다. 더구나, 나무는 언제나 스스로 씨앗을 맺어 스스로 새끼나무를 퍼뜨리는데, 사람들이 애써 억지로 심어서 기르고 돌봐야(관리) 한다고 잘못 생각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스스로 엉터리라서 엉터리짓을 할밖에 없을까. 오늘날 사람들은 스스로 슬기로운 길하고 동떨어지기에 슬기롭게 살아가며 사랑하는 꿈은 헤아리지 않을까. 도시를 만들며 숲을 밀어 없애는 도시사람 마음이기에, 이 마음에 따라 나무를 나무로 여기지 않고 나무젓가락으로 삼는 노릇일까. (4345.9.1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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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꽃 책읽기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발포 바닷가로 가는 길에 꽃을 본다. 길에서 피고 지는 가을꽃이다. 바야흐로 가을에 접어드니, 여느 사람들은 가을날 지는 노랗거나 붉은 가랑잎을 떠올릴까. 그렇지만 이 가을에 길섶이나 풀섶에 예쁘장하게 피고 지는 조그마한 꽃이 많다. 예나 이제나 적잖은 이들은 살살이꽃(코스모스)을 두고 가을을 말하곤 하는데, 관청에서 씨앗을 잔뜩 뿌려 길가에 나풀거리는 살살이꽃이 길에서 길꽃처럼 피기도 하지만, 누가 씨앗을 뿌리지 않았어도 바람에 날리고 들짐승 털에 붙어 옮기며 천천히 자리를 넓히는 들풀이 조그마한 꽃을 피우기도 한다. 관광지라면 관청 공무원이 ‘자활 근로 일꾼’을 일삯 몇 만 원에 부려 코스모스를 뺀 다른 길꽃은 모조리 뽑거나 베지 않았을까. 관광지 아닌 여느 시골이라 온갖 들꽃이 길가에서 흐드러지며 서로 어여쁜 길꽃잔치를 벌인다. 어느 마을 어귀를 보니, 길가를 따라 관청에서 길게 심었음직한 동백나무 둘레로 마을 할머니가 심었음직한 호박이 노랗고 커다란 열매를 주렁주렁 맺는다. 관청에서 뭘 하지 않아도, 마을은 할머니들이 지켜 주신다니까요. (4345.9.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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