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26) 어제의 1 : 어제의 카레

 

.. “냉장고에서 약간 굳은 어제의 카레를 따뜻한 밥 위에 얹어, 녹여 가면서 먹는 거지.” ..  《아베 야로/조은정 옮김-심야식당 (1)》(미우,2008) 23쪽

 

 ‘약간(若干)’은 ‘조금’이나 ‘살짝’으로 다듬습니다. “먹는 거지”는 “먹지”나 “먹는 셈이지”나 “먹는단 말이지”로 손봅니다.

 

 어제의 카레를
→ 어제 만든 카레를
→ 어제 먹고 남은 카레를
→ 어제 미리 만든 카레를
→ 어제 해 놓은 카레를
 …

 

 만화영화 〈아따맘마〉를 한국말로 보다가 일본말로 보며 아래쪽에 뜨는 글을 읽으니, ‘한글로 옮긴 글’ 가운데 적잖이 ‘일본말’인 대목이 보입니다. 〈아따맘마〉뿐 아니라 다른 만화영화도 이와 비슷할 텐데, 사람들은 만화영화에 나오는 ‘한글로 옮긴 글’이나 ‘한국말로 옮긴 말’이 참말 한국말인지, 껍데기만 한국말인지, 일본말을 고스란히 옮긴 말인지를 살피지 못합니다. 살필 겨를이 없다 할 만하고, 살필 마음이 없는지 모르며, 살필 까닭을 못 찾는지 모릅니다.

 

 일본 만화책 《심야식당》을 한국말로 옮긴 책에서 읽는 글 또한, 이 글이 옹글게 쓴 한국말인가 아닌가를 헤아리는 사람은 몹시 드물거나 아주 드물거나 아예 없지 않으랴 싶어요. 아니, ‘심야’와 ‘식당’이라는 낱말을 이렇게 한글로 적바림하면 한국말이라 할 수 있는가를 돌아보는 사람은 있기나 할는지요.

 

 이제 ‘심야(深夜)’ 같은 한자말은 아주 익숙히 쓰는 한국말로 삼을 만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심야’는 남달리 쓸 만한 낱말은 아니에요. 그저 “깊은 밤”을 뜻할 뿐입니다. “깊은 밤”을 가리키는 한국말은 ‘한밤’이에요. 그러니까, 만화책 《심야식당》을 옳게 한국말로 옮기자면, 먼저 “심야식당” 아닌 “한밤식당”이어야 합니다.

 

 ‘식당(食堂)’ 같은 한자말 또한 널리 쓰는 한국말로 삼아야 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식당’이란 딱히 새롭거나 뜻깊은 낱말이 아니에요. 그저 “밥집”이나 “밥가게”를 가리킬 뿐입니다. 곧, 만화책 《심야식당》을 찬찬히 한국말로 헤아리자면, 바야흐로 “한밤 밥집”이나 “한밤 밥가게”인 셈이에요.

 

 어제 미리 만들어 냉장고에서 살짝 굳힌 카레
 어제 미리 해 놓고 냉장고에서 하루쯤 굳힌 카레
 어제 해서 냉장고에서 하루 굳힌 카레
 …

 

 오늘날 사람들은 ‘나이트’나 ‘미드나이트’ 같은 영어를 아무렇지 않게 씁니다. 온갖 영어를 온갖 자리에 버젓이 씁니다.

 

 오늘날 사람들 말버릇은 먼 옛날부터 고이 이어졌다고 느낍니다. 먼 옛날부터 한국말 아닌 중국말을 이웃 한국사람이랑 생각을 주고받는 자리에서 버젓이 쓰던 흐름이 고스란히 이어졌으니, 지난날에는 중국말을 한국말인 듯 거들먹거리며 썼다면, 오늘날에는 영어를 한국말인 양 거들먹거리며 씁니다. 지난날에는 중국말을 마치 한국말을 하듯 아무렇지 않게 썼다면, 오늘날에는 영어를 꼭 한국말이라도 되는 듯 아무렇지 않게 써요.

 

 어떻게 살아가야 아름다운 내 나날인가를 생각할 때에, 내 삶과 넋과 말이 아름다이 꽃피울 수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가며 사랑할 때에 기쁜 내 하루인가를 돌아보아야, 내 삶과 넋과 말에 사랑이 깃드는 꿈을 어떻게 건사할 수 있는가를 깨닫습니다.

 

 생각을 잃으니 말을 잃습니다. 사랑을 잊으니 말을 잊습니다. 생각을 찾으며 말을 찾습니다. 사랑을 빛낼 때에 말을 빛냅니다. (4345.1.2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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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928) 있다 8 : 동그랗게 뜨고 있다

 

.. 그 아기는 그렇지 않아도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 할머니는 그 아기를 품에 꼭 안고 원장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  《하이타니 겐지로/김은하 옮김-우리 모두 가위바위보!》(예꿈,2008) 13쪽

 

 하나하나 차근차근 생각하면서 말하지 않으면 “뜨고 있었다”나 “나누고 있었다” 같은 말마디를 그냥 쓰고 맙니다. 더욱이, 일본책을 한국말로 옮길 때에 깊이 헤아리거나 옳게 살피지 않으면, 이렇게 “-고 있다” 같은 말투를 그대로 두고 맙니다.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x)
 큰 눈을 동그랗게 떴다 (o)

 

 눈은 뜹니다. 눈을 “뜨고 있지” 않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뜻이나 느낌을 조금 더 세거나 달리 나타내고 싶다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았다”나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았다”나 “눈을 말똥말똥 동그랗게 떴다”처럼 적바림합니다. 앞이나 뒤에 꾸밈말을 알맞게 넣어야 해요.

 

 보기글 끝자락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에서는 “이야기를 나누었다”로 맺으면 돼요. “-고 있었다”는 잘못 붙이는 군더더기예요. 어떤 사람들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처럼 적기도 하는데, 이렇게 적을 때에도 올바르지 않아요. “이야기를 나누었다”처럼 적거나 “이야기를 한창 나누었다”처럼 적어야 올바릅니다.

 

 제대로 쓸 말을 살피고, 알맞게 나눌 말을 생각해야 해요. 참다이 쓸 말을 곱게 사랑하고, 어여삐 주고받을 말을 살가이 보듬어야 해요. (4345.1.2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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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가운 상말
 600 : 동병상련

 

.. 데어의 글에 웃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실은 동병상련의 웃음이랄까 ..  《폴 콜린스/홍한별 옮김-식스펜스 하우스》(양철북,2011) 83쪽

 

 “데어의 글에”는 “데어가 쓴 글에”나 “데어가 남긴 글에”나 “데어가 책에 적은 글에”로 손질합니다. ‘하지만’은 ‘그러나’나 ‘그렇지만’으로 손보고, ‘실(實)은’은 ‘따지고 보면’이나 ‘알고 보면’이나 ‘가만히 보면’으로 손봅니다.

 

 동병상련(同病相憐) :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서로 가엾게 여긴다는 뜻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가엾게 여김을 이르는 말. 《오월춘추》의
   〈합려내전(闔閭內傳)〉에 나온다
   - 그들은 전쟁터에서 동병상련한 사이다 /
     그 당시엔 그와 동병상련할 처지가 아니었다

 

 동병상련의 웃음이랄까
→ 나 또한 아팠기에 짓는 웃음이랄까
→ 아픈 마음에 짓는 웃음이랄까
→ 쓰겁게 짓는 웃음이랄까
→ 쓴웃음이랄까
→ 아픈웃음이랄까
 …

 

 중국 옛글에 나온다고 하는 ‘동병상련’입니다. 곧, 이 말마디 ‘동병상련’은 한국말 아닌 중국말입니다. 예부터 중국과 한국이 가까웠으며, 중국 문화가 한국 문화에 크게 그늘을 드리웠대서 이러한 중국말이 한국말 곳곳에 스며들었다 할 테지만, 한국사람은 한국땅에서 한국말로 넋과 얼을 빛내야 알맞아요. 한국사람이 굳이 일본말이나 미국말이나 독일말을 써야 하지 않듯, 애써 중국말을 써야 하지 않아요. 중국 옛책에 나온다는 말을 부러 외우거나 널리 쓸 까닭이 없어요.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새말을 빚을 때에 아름답습니다. 이를테면, “같은 병을 앓는(同病)” 사람이 “서로 가여이 여긴다(相憐)”는 뜻이라 한다면, “함께 + 앓이”처럼 새말을 빚을 만해요. 내 이웃 아픔을 내가 함께 앓으면서 아픔을 달랜다는 뜻이 돼요. “슬퍼하는 내 오랜 동무하고 함께앓이를 했다”처럼 쓸 수 있어요.

 

 곰곰이 생각하면 ‘어깨동무’라는 낱말에 새로운 뜻을 넣을 수 있습니다. 이 나라 국어사전은 아직까지 ‘어깨동무’라는 낱말뜻으로 “(1) 상대편의 어깨에 서로 팔을 얹어 끼고 나란히 섬 (2) 나이나 키가 비슷한 동무” 두 가지만 싣지만, 사람들은 ‘어깨동무’라는 낱말을 “서로 돕는다”는 자리에서 쓰곤 해요. 그러니까, “어깨동무 (3) 서로 돕는 일”이 되어야 하고, “어깨동무 (4) 아픔을 서로 달래는 일”처럼 될 수 있어요.

 

 전쟁터에서 동병상련한 사이
→ 전쟁터에서 서로를 달래며 살아남은 사이
→ 전쟁터에서 함께 어려움을 이겨낸 사이
 …

 

 “싸움터에서 서로를 달랜” 사이를 가리킬 때에도 “싸움터에서 어깨동무한” 사이라 적을 수 있습니다. 비슷한 뜻과 느낌으로 살린다면, “싸움터에서 서로 어깨를 기댄” 사이라 적어도 돼요. “어깨를 맞댄”이라든지 “어깨를 겯은”이라든지 “어깨를 토닥인”처럼 적을 수 있어요.

 

 이 자리에서는 “함께 아파한”을 넣어도 되고, “함께 눈물웃음 쏟은”을 넣을 수 있으며, “함께 웃고 함께 운”을 넣을 만해요. 하나하나 생각을 기울이면 말문과 말씨와 말길을 차근차근 열 수 있어요.

 

 그와 동병상련할 처지가 아니었다
→ 그와 함께 아파할 처지가 아니었다
→ 그와 같이 아파할 때가 아니었다
 …

 

 “그와 함께 울 겨를이 아니었다”처럼 적어도 어울립니다. 함께 운다고 하는 일은 서로 겪어야 하는 아픔을 서로 달랜다는 뜻이거든요. 함께 아파하기, 함께 울기, 함께 부둥켜안기, 함께 얼싸안기, 이렇게 뜻과 느낌을 곰곰이 헤아립니다. 서로서로 즐거이 나눌 말을 찬찬히 톺아봅니다.

 

 온 마음 기울여 사랑할 말을 찾습니다. 온 넋 담아 아낄 말을 살핍니다. 온 꿈 실어 주고받을 말을 가다듬습니다. (4345.1.2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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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 글쓰기>(호미)가 나와서 고흥집으로 왔어요.

발행일은 2012년 1월 3일로 되었는데,

책방 배본은 금요일에 될 수 있는지, 설이 지나야 되는지 알 수 없네요 ㅠ.ㅜ

 

'전남 고흥 사진책도서관 1평 지킴이'가 되신 분한테는

http://blog.aladin.co.kr/hbooks/5137783

 

 

책을 부쳐 드리는데,

따로 안 부쳐도 된다고 말씀하신 분한테는

안 부칠게요 ^^;;;

(책방에 들어가면 기쁘게 장만해서 읽고

 곳곳에 알려주셔요 @.@ 아아아~~~)

 

 

 

 

 

 

 

 

<뿌리깊은 글쓰기>는 영어를 착하게 잘 쓰자는,

어쩌면, 영어 잘 쓰자라는 말보다는,

영어한테 잡아먹히는 한국말을

착하게 사랑하자는,

이야기라 할 수 있어요.

 

 

 

 

 

 

 

두루두루 사랑받는 책이 되어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한국말과 영어를 옳게 가누면서

말로 빚는 슬기로운 넋을

사랑스레 일군다면 기쁘겠어요.

 

이렇게 된다면,

이 책을 읽어 주는 분들은 사랑스러운 넋이 되고,

출판사한테는 책 낸 보람을 일구며,

글을 쓴 사람한테는 시골도서관 일구는 밑돈을 모으겠지요 @.@/

 

 

 

첫째 책 <생각하는 글쓰기>랑

둘째 책 <사랑하는 글쓰기>와

셋째 책 <뿌리깊은 글쓰기>가

착하고 예쁘게 사랑받으면

넷째 책도 태어날 수 있을 텐데,

부디~ 좋은 꿈 이루어지기를 빌어 봅니다.

 

혼자 만세!

하고 부르며 축하술 마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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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없애야 말 된다
 (1645) 상호적 1 : 상호적인 게 아닌가

 

.. 나의 작가활동은 어머니가 하고 있는 일과 아주 비슷한데, 부모가 하는 일에 흥미를 느끼고 아이가 흥미를 느끼는 것에 부모도 관심을 갖는 상호적인 게 아닌가 싶다 ..  《아이카와 아키코/장희정 옮김-흙에서 자라는 아이들》(호미,2011) 210쪽

 

 “나의 작가활동(作家活動)은”은 “내 작가활동은”이나 “내가 하는 작가 일은”이나 “내가 글을 쓰는 일은”이나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일은”으로 다듬습니다. “어머니가 하고 있는 일과”는 “어머니가 하는 일과”로 손질하고, “흥미(興味)를 느끼고”는 “재미를 느끼고”나 “즐거움을 느끼고”로 손질하고, “관심(關心)을 갖는”은 “눈길을 두는”이나 “마음을 기울이는”이나 “마음이 가는”으로 손질합니다.

 

 상호적 : x
 상호(相互)
  (1) 상대가 되는 이쪽과 저쪽 모두
   - 상호 이해 / 상호 신뢰 / 상호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다
  (2) 상대가 되는 이쪽과 저쪽이 함께
   - 상호 밀접한 영향 관계 / 상호 빈번한 대화와 교류가 필요하다

 

 부모도 관심을 갖는 상호적인 게 아닌가
→ 부모도 서로
→ 부모도 함께
→ 부모도 나란히
→ 부모도 같이
→ 부모도 서로서로
→ 부모도 다 함께
 …

 

 국어사전에 실리지 않는 한자말 ‘상호적’을 곰곰이 생각합니다. 북녘에서는 ‘상호’라는 한자말을 안 쓰고 ‘호상’이라 해서 한자 앞뒤만 바꾸어 쓴다고 합니다. 남녘과 북녘이 저마다 달리 살아가는 틀과 결에 따라 한자말 또한 달라지는구나 싶기도 하지만, 내가 보기로는 남녘이나 북녘에서 지식인 자리에 선 이들이 ‘서로’라는 한국말은 도무지 못 쓰는구나 싶어 슬퍼요.

 

 이쪽과 저쪽 모두를 가리키는 낱말은 예부터 ‘서로’입니다. ‘서로’를 힘주어 가리키는 낱말로 ‘서로서로’가 있어요. 둘이 함께 하니까 ‘함께’나 ‘같이’라는 낱말을 쓰면 잘 어울립니다. 둘이 함께 한다는 뜻으로 ‘나란히’라는 낱말을 쓸 수 있어요.

 

 앞에 꾸밈말을 붙여 “다 함께”라든지 “다 같이”라 쓸 수 있고, “모두 나란히”라든지 “모두 함께”라 할 수 있어요. “너도 나도”라든지 “너와 나도”라든지 “너와 우리”처럼 쓸 수 있습니다.


 상호 이해 → 서로 헤아림 / 서로 살핌
 상호 신뢰 → 서로 믿음 / 서로 믿기
 상호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다
→ 서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생각을 나누다
→ 서로 좋아하는 일을 이야기하다

 

 서로서로 살피고 헤아리는 삶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나날입니다. 다 함께 좋아하면서 어깨동무하는 누리예요.

 

 말도 뜻도 꿈도 사랑도 알뜰살뜰 여미면서 서로 나눕니다. 글도 생각도 믿음도 이야기도 오순도순 일구면서 서로서로 나눠요.

 

 좋은 말을 주고받으면서 좋은 꿈을 피웁니다. 좋은 글을 나누면서 좋은 넋을 북돋웁니다.

 

 상호 밀접한 영향 관계
→ 서로 가까이 얽히는 사이
→ 둘이 함께 살가이 얽히는 사이
 상호 빈번한 대화와 교류가 필요하다
→ 서로 자주 얘기하며 만나야 한다
→ 다 같이 자주 만나 얘기해야 한다

 

 국어사전에 안 실렸기에 안 쓸 만하다 여기는 ‘상호적’이 아닙니다. ‘상호’라는 한자말부터 우리한테 얼마나 쓸 만한가를 돌아보아야 한다고 느껴요. ‘서로’와 ‘서로서로’라는 한국말을 알맞고 바르게 쓰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느껴요. 이와 함께, 때와 곳에 따라 슬기롭게 쓸 한겨레 말글을 찬찬히 헤아리면서 북돋우면 한결 즐거우리라 느껴요.

 

 서로 힘을 모아야 합니다. 다 함께 슬기를 엮어야 합니다. 서로서로 뜻을 모두어야 합니다. 모두 나란히 꿈을 담아 내 말과 우리 말을 빛내야 합니다. (4345.1.18.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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