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47) -의 : 부모의 뒤늦은 게임공부

 

게임의 맛을 볼 대로 본 아이들과 부모의 뒤늦은 게임공부가 쉽게 만날 수 있다고 보는가
《편해문-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소나무,2012) 67쪽

 

  “게임의 맛”은 “게임 맛”이나 “게임을 하는 맛”으로 다듬습니다. ‘부모(父母)’는 ‘어버이’로 손볼 수 있어요. “게임공부(-工夫)”에서 ‘게임(game)’도 손질하면 한결 나을 테지만, 이 보기글을 쓴 분은 ‘놀이’와 ‘게임’이 다르다고 이야기를 해요. 그래서 ‘게임’은 그대로 두면서 ‘공부’만 손질해서 “게임 배우기”처럼 적을 수 있습니다.

 

 부모의 뒤늦은 게임공부가
→ 뒤늦게 게임공부 하는 부모가
→ 뒤늦게 게임을 배우는 어버이가
 …

 

  이 글월을 살피면 토씨 ‘-의’가 두 군데 나옵니다. 앞쪽은 ‘-의’를 털면 쉽게 다듬을 수 있습니다. 뒤쪽은 글흐름이 살짝 어긋났어요. “(무엇무엇 하는) 아이들”하고 “부모의 (무엇무엇 하는 것)”으로 엮은 글인데, 뒤쪽을 앞쪽과 다른 짜임새로 적으면서 어긋나요. 뒤쪽도 앞쪽처럼 “(무엇무엇 하는) 부모”처럼 적으면 토씨 ‘-의’는 가볍게 떨어집니다. (4345.10.1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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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맛을 볼 대로 본 아이들과 뒤늦게 게임을 배우는 어버이가 쉽게 만날 수 있다고 보는가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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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결에 물든 미국말
 (668) 애티튜드(attitude)

 

중요한 것은 질감과 명도 빛 심지어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소리까지 사진 속에 담을 수 있도록 사물을 바라보고 관찰하고 표현하는 ‘사진가의 애티튜드’를 기르는 일이다
《조선희-네멋대로 찍어라》(황금가지,2008) 96쪽

 

  오늘날 사람들은 한자말 ‘중요(重要)’를 아주 ‘중요’하게 여기듯 널리 씁니다. 그렇지만 이 한자말 뜻풀이를 옳게 새기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널리 쓰기만 하지 제대로 알지는 못합니다. ‘중요’는 “귀중하고 요긴함”을 뜻합니다. ‘귀중(貴重)’은 “귀하고 중요함”을 뜻합니다. ‘귀(貴)하다’는 “아주 보배롭고 소중하다”를 뜻합니다. ‘소중(所重)’은 “매우 귀중하다”를 뜻해요. ‘요긴(要緊)’은 “= 긴요”를 뜻한다 하고, ‘긴요(緊要)’는 “꼭 필요하고 중요하다. ‘매우 중요하다’로 순화”를 뜻한다 해요. 국어사전 뜻풀이를 샅샅이 살피면 이러한데, 가만히 보면 국어사전을 살핀들 ‘중요’ 말뜻을 짚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중요하다 = 중요하다”가 바로 국어사전 말풀이인 셈이거든요. 이른바, “중요 = 귀중 = 귀함 = 소중 = 긴요 = 요긴 = 중요” 꼴이에요.


  국어사전에서 한국말 ‘대수롭다’를 찾아보면 “중요하게 여길 만하다”라고 뜻풀이를 답니다. 그러니까, 한국말 ‘대수롭다’를 한자말 ‘重要’로 적는 셈이고, 예전에는 ‘대수롭다’라든지 ‘보배롭다’라 일컫던 이야기를, 오늘날에는 ‘重要’ 한 마디로 뭉뚱그리는 셈이에요. 그리고, 한국말 ‘대단하다’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아주 중요하다”로 풀이해요. 곧, “대단하다 = 긴요하다 = 요긴하다”요, 다시 말하자면 “대단하다 = 중요하다”인 셈이기도 합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중요한 것은”을 “대수로운 대목은”이나 “곰곰이 살필 대목은”이나 “찬찬히 헤아릴 대목은”으로 손질해 봅니다. “질감(質感)과 명도(明度)”는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느낌과 밝기”로 손볼 수 있어요. ‘심지어(甚至於)’는 ‘게다가’나 ‘더욱이’나 ‘더구나’로 손보고, “과학적(-的)으로 설명(說明)할 수”는 “과학으로 이야기할 수”나 “더 환하게 얘기할 수”로 손볼 만합니다. “사물을 바라보고 관찰(觀察)하고”는 겹말이에요. “사물을 바라보고”나 “사물을 바라보고 살펴보고”나 “사물을 바라보고 뜯어보고”나 “사물을 바라보고 헤아리고”쯤으로 다듬습니다. ‘표현(表現)하는’은 ‘나타내는’이나 ‘보여주는’이나 ‘드러내는’으로 다듬어요.


  그나저나 ‘애티튜드(attitude)’라고 적은 대목이 아리송합니다. 국어사전을 살피니, “발레에서, 몸을 한 다리로 지탱하고 다른 한 다리는 무릎을 굽혀 90도 각도로 뒤로 올리는 춤 동작”이라고 풀이가 달리는데, 이 보기글을 쓴 분은 발레 아닌 사진을 말하니까, 이런 뜻으로 쓰지 않았겠지요. 영어사전에서 ‘attitude’를 찾아봅니다. “(1) 태도[자세], 사고방식 (2) 반항적인[고집스런] 태도 (3) (몸의) 자세”, 이렇게 세 가지 뜻풀이가 보입니다. 설마 사진쟁이한테 “반항 어린 몸가짐”을 기르라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 “(1) 태도, 사고방식”이나 “(3) 몸의 자세”를 이야기하려 했겠지요.

 

 사진가의 애티튜드
→ 사진가다운 몸가짐
→ 사진가다운 매무새
→ 사진가다운 마음가짐
→ 사진가다운 몸짓
→ 사진가다운 눈길
 …

 

  영어사전 말풀이를 살피면, ‘태도(態度)’와 ‘자세(姿勢)’라고만 적습니다. 한자말로만 말풀이를 붙여요. 한국말 ‘몸가짐’이나 ‘매무새’를 쓰지 않아요.


  자리에 따라서는 ‘마음가짐’이나 ‘몸짓’일 수 있겠지요. ‘모양새’나 ‘모습’일 수 있어요. 사진가 이야기를 하니까 ‘눈길’이나 ‘눈짓’이나 ‘눈빛’이라고 적어도 어울려요.


  영어사전이란, 영어를 헤아리며 한국말을 잘 쓰도록 돕는 사전이라고 생각해요. 영어사전에 붙는 말풀이는 가장 알맞고 바르며 쉽다 할 만한 한국말로 붙어야지 싶어요. 사람들이 한국말을 알맞게 쓰도록 이끌고, 바르게 쓰도록 북돋우며, 쉽게 쓰도록 도와야지요.


  그런데, 이에 앞서 이 나라 사람들 스스로 어떤 말로 이녁 생각을 나타내는가를 살펴야지 싶어요. “사진가의 애티튜드”처럼 말하면, 이러한 말을 몇 사람쯤 알아들을까요. 왜 영어 ‘애티튜드’를 써야 했을까요.


  거꾸로 생각합니다. “사진가다운 몸가짐”이라고 하는 말마디를 영어로 옮긴다면, 어떤 영어가 될까요. 한국 사진가들이 “사진가다운 매무새”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곁에 영국사람이나 미국사람이 있다고 할 때에, 영어로 이 말마디를 어떻게 들려줄 수 있을까요.


  사진가는 ‘사진가’일 뿐 ‘포토그래퍼’가 아닙니다. 몸가짐은 ‘몸가짐’일 뿐 ‘애티튜드’가 아니에요. 잘 살피고, 슬기롭게 헤아리기를 바랍니다. (4345.10.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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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필 대목은 느낌과 밝기와 빛, 여기에 소리까지 사진에 담을 수 있도록(과학으로 말할 수 없지만) 사물을 바라보고 돌아보며 나타내는 ‘사진가다운 몸가짐’을 기르는 일이다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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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43) 발견의 1 : 발견의 예술

 

사진은 발견의 예술이다. 그렇다면 사진을 통해서 무얼 발견할까
《임동숙-사진일기, 날마다 나를 찾아가는 길》(포토넷,2012) 41쪽

 

  “사진을 통(通)해서”는 “사진으로”나 “사진을 보면서”로 손질해 줍니다. 한자말 ‘발견(發見)’은 “미처 찾아내지 못하였거나 아직 알려지지 아니한 사물이나 현상, 사실 따위를 찾아냄”을 뜻한다 합니다. 곧, “사진을 통해서 무얼 발견할까”는 “사진으로 무엇을 찾아낼까”로 손질하면 되고, “사진을 보면서 무엇을 찾을까”로 손질할 수 있어요.

 

 사진은 발견의 예술이다
→ 사진은 찾아내는 예술이다
→ 사진은 새로보는 예술이다
→ 사진은 새롭게 찾는 예술이다
 …

 

  말뜻을 헤아리면, 한국말은 ‘찾아내다’이고 한자말은 ‘發見’입니다. 한국사람은 ‘찾아내다’라 이야기하며, 한자를 쓰는 중국사람이나 일본사람은 ‘發見’이라 이야기하는 셈이에요. ‘發見’을 소리값 ‘발견’이라 적는대서 한국말이 되지 않아요. 요즈음은 ‘사진’을 ‘포토’라든지 ‘photo’라 적는 이가 많고, ‘사진관’도 ‘스튜디오’나 ‘studio’로 적는 이가 많은데, ‘포토’나 ‘photo’는 한국말이 아니에요. ‘스튜디오’나 ‘studio’도 한국말이 아니에요.


  생각을 기울여 ‘사진관’을 ‘사진집’이나 ‘사진가게’로 새롭게 적을 수 있어요. ‘사진마당’이나 ‘사진터’나 ‘사진누리’처럼 적어도 어울려요.


  새롭게 바라보는 눈길을 틔우면 됩니다. 새롭게 느끼는 가슴을 열면 됩니다. 새롭게 생각하는 마음을 추스르면 돼요.


  인터넷을 할 때에 어느 글쇠를 누르면 ‘새로고침’을 합니다. 예전에 어떤 영어로 이 말마디를 나타냈는지 모르겠으나, 이제 누구나 ‘새로고침’이라고 말해요. 2012년까지 아직 국어사전에 이 낱말이 안 실렸으나, 어엿하고 떳떳하며 씩씩하게 쓰는 예쁜 한국말이에요.


  ‘새로고침’을 발판 삼아 새롭게 다른 낱말을 헤아립니다. 새롭게 바라본다 할 때에는 ‘새로보기’나 ‘새로보다’를 헤아립니다. 새롭게 알아보려 할 때에는 ‘새로알기’나 ‘새로알다’를 헤아립니다. 새롭게 읽는다 할 때에는 책이나 글이나 사회나 흐름을 ‘새로읽기’나 ‘새로읽다’로 헤아립니다.

 

 발견의 즐거움 → 새로찾는 즐거움 / 새로보는 즐거움
 발견의 순간 → 새로찾는 때 / 새로보는 그때

 

  ‘새로쓰기’를 헤아릴 수 있습니다. ‘새로맺기’라든지 ‘새로살기’나 ‘새로가기’나 ‘새로걷기’처럼, 숱한 새말이 하나둘 태어날 수 있습니다. ‘새로사랑’이나 ‘새로믿음’이나 ‘새로꿈’이나 ‘새로마음’처럼 적어도 돼요. 스스로 새 뜻과 넋과 이야기를 담으면 돼요. 보기글도 이러한 흐름을 살펴 “사진은 새로보는 예술이다. 그렇다면 사진으로 무엇을 새로볼까.”처럼 다시 적어도 되겠지요. (4345.10.3.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사진은 새롭게 보는 예술이다. 그렇다면 사진으로 무얼 새롭게 볼까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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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음표 한자말 170 : 선후先後


괜찮아요. 승부도 가경에 접어들면 한 수의 선후(先後)가 전황을 좌우하는 법이니까
《이와아키 히토시/오경화 옮김-히스토리에 (7)》(서울문화사,2012) 152쪽

 

  “이기고 짐”을 뜻하는 한자말 ‘승부(勝負)’는 그대로 두어도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꾸 쓰기보다는 ‘겨루기’ 같은 낱말을 써 보면 어떠할까 싶어요. 한국사람 스스로 새 한국말을 빚어도 좋겠어요. ‘가경(佳境)’은 “한창 재미있는 판이나 고비”를 가리키는 한자말이라고 해요. 이런 한자말을 여느 사람들이 쓸까요? 보기글은 두 사람이 장기 두는 모습을 이야기해요. 그러니까, ‘승부’도 ‘가경’도 모두 털어 “장기판도 한창 달아오르면”이나 “장기싸움이 후끈후끈 달아오르면”으로 손볼 수 있어요. “전황(戰況)”을 좌우(左右)하는 법(法)이니”는 “싸움판을 흔드는 법이니”나 “싸움흐름을 이끌기 마련이니”나 “싸움을 크게 바꾸기 마련이니”로 다듬습니다.


  ‘선후(先後)’라는 한자말은 “(1) 먼저와 나중을 아울러 이르는 말 (2)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을 뜻한다 합니다. 쉽게 말해, 한국말로는 ‘앞뒤’입니다. 한국말 ‘앞뒤’를 중국사람이나 일본사람은 ‘先後’라고 적습니다.

 

 한 수의 선후(先後)가
→ 한 수 두는 앞뒤가
→ 한 수 놓는 앞뒤가
→ 한 수 앞뒤가
 …

 

  보기글에서는 ‘한 수 놓는 말’처럼 다 밝혀야지 싶습니다. 누군가 놓는 한 수 앞이나 뒤에 놓은 다른 말 하나가 장기판 흐름을 크게 바꾼다고 하는 이야기이니, ‘(장기) 말’이라는 낱말을 넣어야지 싶습니다. 다만, 장기판과 싸움판은 서로 같다고 여기며 주고받는 보기글이라, 이렇게 적을 수 있겠지요. 조금 더 헤아린다면, 이 보기글은 일본 만화책에 적힌 일본 한자말을 한글로만 바꿔 적은 듯해요. 한국사람이 읽을 책으로 옮기는 만큼, 무늬만 한글이 아닌, 알맹이가 한국말이 되도록 마음을 기울이면 좋겠어요. (4345.9.27.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괜찮아요. 장기판이 한창 달아오르면 한 수 놓는 앞뒤 말이 흐름을 크게 바꾸기 마련이니까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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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46) 별리의 1 : 별리의 장소

 

전주는 내게 아픈 기억을 송별하는 별리(離別)의 장소이면서 8월의 햇볕을 만나는 새로운 시작의 장소이기도 하였다
《신영복-변방을 찾아서》(돌베개,2012) 16쪽

 

  “아픈 기억(記憶)을”은 “아픈 일을”이나 “아픈 지난날을”이나 “아픈 생각을”로 손볼 수 있습니다. ‘송별(送別)’은 “떠나는 사람을 이별하여 보냄”을 뜻하는 한자말입니다. “송별하는 별리의 장소”처럼 쓴 보기글은 겹말입니다. ‘송별’이나 ‘별리’ 가운데 하나를 덜어야 올바릅니다. ‘장소(場所)’는 ‘곳’으로 다듬고, “8월의 햇볕을”은 “8월 햇볕을”로 다듬으며, “새로운 시작(始作)의 장소이기도”는 “새로운 곳이기도”나 “새롭게 길을 나서는 곳이기도”로 다듬습니다. 이 대목에서 ‘시작’은 어떤 일을 처음 마음으로 한다는 뜻이니 ‘새롭다’와 같은 뜻이에요. ‘시작’을 덜어 “새로운 곳”처럼 적으면 단출해요.


  보기글을 보면 ‘별리’라는 낱말에 묶음표를 치고 한자를 넣습니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흔히 쓰는 낱말이 아니기에 한글로만 적으면 못 알아볼 사람이 많겠지요. 그런데, 묶음표에 한자를 넣는들 잘 알아볼 만할까요. 한글로 적어도 알아보기 어렵다면, 한자를 밝히거나 알려도 알아보기 어려워요.


  국어사전에서 ‘별리’를 찾아보면 “= 이별(離別)”이라고 풀이합니다. 곧, 앞뒤만 바뀐 같은 낱말이에요. ‘이별(離別)’은 “서로 갈리어 떨어짐”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한국말로 적자면 ‘헤어지다’인 셈입니다.

 

 아픈 기억을 송별하는 별리(離別)의 장소이면서
→ 아픈 생각을 떠나 보내는 곳이면서
→ 아픈 일을 훌훌 털어 보내는 곳이면서
→ 아픈 지난날과 헤어지는 곳이면서
 …

 

  “이별의 인사”가 아닌 “헤어지는 인사”입니다. “이별의 눈물”이 아닌 “헤어지는 눈물”입니다. 굳이 한자말을 쓰고 싶다면 “이별하는 인사”나 “이별하는 눈물”처럼 ‘-하는’을 붙여야 올발라요. 그러나, 한국말 ‘헤어지다’가 있는데, 왜 ‘이별’이나 ‘별리’ 같은 바깥말을 들여와서 써야 하나 궁금해요. ‘헤어지다’와 ‘떨어지다’와 ‘멀어지다’와 ‘갈리다’를 때와 곳에 따라 알맞게 쓸 수 있는 마음이 되기를 빌어요. (4345.9.26.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전주는 내게 아픈 생각과 헤어지는 곳이면서, 8월 햇볕을 만나며 새롭게 길을 걷는 곳이기도 하였다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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