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873) -의 승리 1 : 독일군의 승리를
마르크스는 독일군의 승리를 기원했다. 그 이유로 당시 그는 “독일군의 패배는 독일 사회주의운동을 20년 지연시키는 데 그치겠지만…” .. 《스즈키 주시치/김욱 옮김-엘리노어 마르크스》(프로메테우스출판사,20060 45쪽
‘승리(勝利)’나 ‘패배(敗北)’는 제법 흔히 쓰는 낱말입니다. 한자말이고 아니고를 떠나 그대로 둘 때에 한결 낫다고 여길 만합니다. 그렇지만 보기글에서는 토씨 ‘-의’를 찰싹 붙인 채 쓰이니 찬찬히 살펴 알맞게 다듬어 줍니다.
‘기원(祈願)했다’는 ‘바랐다’로 손보고, “그 이유(理由)로”는 “그 까닭으로”나 “그러한 까닭으로”나 “왜냐하면”으로 손보며, ‘당시(當時)’는 ‘그때’로 손봅니다. ‘지연(遲延)시키는’은 ‘늦추는’이나 ‘미루는’으로 손질하고, ‘20년(二十年)’은 ‘스무 해’로 손질해 줍니다.
독일군의 승리를 기원했다
→ 독일군이 이기기를 바랐다
→ 독일군이 이겼으면 했다
독일군의 패배는
→ 독일군이 지면
→ 독일군이 진다면
→ 독일군이 졌을 때는
…
한국사람이라면 한국말 ‘이기다’와 ‘지다’뿐 아니라, 한자말 ‘승리’나 ‘패배’를 안다고 할 만합니다. 어른들은 두 갈래 말을 나란히 씁니다. 아이들은 어른들 말투를 곁에서 들으면서 두 갈래 말투에 익숙해집니다. 이기니까 ‘이기다’라 할 뿐인데, 어른들은 이처럼 말하기보다 ‘승리’라는 한자말을 끌여들이기를 좋아합니다. 지니까 ‘지다’라 할 뿐이나, 어른들은 이 같이 말하기보다 ‘패배’라는 한자말을 애써 받아들이기를 즐깁니다.
아이들한테 어떤 말을 들려주는 어른일 때에 아름다울까 생각해 봅니다. 무럭무럭 자라서 푸름이로 살아가는 빛나는 넋한테 우리 어른들은 어떤 글을 써서 읽힐 때에 어여쁠까 헤아려 봅니다.
‘이기다’와 ‘지다’라는 한국말로는 어른들 넋이나 얼이나 뜻을 나타내기 힘들기에 ‘승리’와 ‘패배’라는 한자말을 끌여들여야 하나요. 한자말로도 모자라, 이제는 ‘윈(win)’과 ‘루즈(lose)’라는 영어까지 받아들여야 하나요.
토씨 ‘-의’를 아무 곳에나 함부로 붙이는 일도 잘못이요, 알맞고 바르며 손쉽고 살가이 쓸 때에 넉넉하고 아름다울 말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일도 잘못입니다. 삶을 살피며 말을 살핍니다. 삶을 가꾸며 말을 가꿉니다. 삶을 사랑하며 말을 사랑합니다. 삶을 이야기하며 말을 이야기합니다. (4340.1.2.불./4345.7.7.흙.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마르크스는 독일군이 이기기를 바랐다. 왜냐하면 그때 그는 “독일군이 지면 독일 사회주의운동을 스무 해 늦추는 데에서 그치겠지만…”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40) -의 승리 2 : 노동자의 승리
공장주나 미술관의 이사보다 ‘내가 더 어엿한 남자다’, ‘남자답다’라고 사진을 보면서 말하는 거죠. 그래서 남자답다고 느낀다면, 노동자의 승리인 거죠
《아라키 노부요시/백창흠 옮김-천재 아라키의 괴짜 사진론》(포토넷,2012) 134쪽
“공장의 주”처럼 토씨 ‘-의’를 넣는 일은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잘 살필 수 있으면 됩니다. “미술관의 이사”는 “미술관 이사”로 다듬을 수 있어요. “말하는 거죠”는 “말하는 셈이죠”나 “말하지요”로 손질하고, “승리인 거죠”는 “승리인 셈이죠”나 “승리이죠”로 손질합니다. ‘남자(男子)’는 그대로 두어도 되나, ‘사내’로 손보아도 잘 어울립니다.
이렇게 낱말을 하나하나 살피고 나서 “노동자의 승리”에 드러나는 토씨 ‘-의’를 가만히 돌아봅니다. 한자말 ‘승리’를 넣으니 토씨 ‘-의’하고 잘 어울리고 마는데, 한자말 아닌 한국말 ‘이기다’를 넣을 때에도 토씨 ‘-의’하고 잘 어울릴까 하고 가누어 봅니다.
노동자의 승리인 거죠
→ 노동자가 이긴 셈이죠
→ 노동자가 이겼다 할 테죠
→ 노동자가 이겼다 하겠지요
…
어떤 이는 “노동자의 이김인 거죠”처럼 글을 쓰리라 봅니다. “노동자의 짐인 거죠”처럼 글을 쓸 이도 있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이렇게 글을 쓰면 알아보기 몹시 힘들며, 말투도 썩 알맞지 않아요. 애써 한국말을 썼다지만, 말투를 나란히 가다듬지 못하면 영 엉망이 되고 맙니다.
한 사람이 쓰는 말을 생각합니다. 한 사람이 쓰는 말은 낱말과 낱말을 묶어 이루어집니다. 낱말과 낱말은 말투로 엮습니다. 말투는 말결로 드러나고, 말결은 말무늬로 빛납니다.
하나하나 아리땁게 추스릅니다. 빈틈이 없도록 가다듬는 낱말이나 말투나 말결이나 말무늬가 아니라, 내 넋과 얼을 곱게 밝히는 낱말이나 말투나 말결이나 말무늬가 되도록 마음을 기울입니다.
맞춤법 때문에 말을 가다듬을 일이 없습니다. 띄어쓰기 때문에 글을 추스를 일이 없습니다. 우리 말글을 바로쓰거나 옳게 쓰는 일이란, 남 앞에서 자랑한다거나 겨레얼을 빛내는 일이 아닙니다. 내 가장 좋은 사랑을 빛내면서 내 가장 맑은 꿈을 나누는 삶이 바로 ‘내 말글을 바로쓰거나 옳게 쓰는’ 일이에요. (4345.7.7.흙.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공장주나 미술관 이사보다 ‘내가 더 어엿한 사내다’, ‘사내답다’라고 사진을 보면서 말하지요. 그래서 사내답다고 느낀다면, 노동자가 이긴 셈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