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化)' 씻어내며 우리 말 살리기
 (177) -화化 177 : 스토리화

 

아이들 개개인의 활동을 앵글에 담아서 스토리화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상봉-안녕, 하세요!》(공간 루,2011) 186쪽

 

  “아이들 개개인(個個人)의 활동(活動)을”은 “아이들 개개인이 활동하는 모습을”로 손질해서 적어야 뜻이 잘 드러납니다. 이렇게 손질한 다음에는 “아이들이 활동하는 모습을”로 더 손질할 수 있고, ‘아이들이 하는 활동’이 무엇인가를 살펴 또렷하게 밝힐 수 있어요. 보기글에서는 아이들과 교사가 사진찍기를 하며 삶을 새롭게 배운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래서 다시금 손질하면 “아이들이 저마다 사진 찍는 모습을”이나 “아이들이 저희 나름대로 사진 찍는 모습을”처럼 적을 수 있어요.

  “앵글(angle)에 담아서”는 “사진에 담아서”로 손보고, ‘스토리(story)’는 ‘이야기’로 손봅니다.

 

스토리화하고
→ 이야기로 엮고
→ 이야기로 꾸미고
→ 이야기로 빚고
→ 이야기를 이루고
→ 이야기를 만들고
 …

 

  어느 모로 본다면 “사진을 찍다”를 “앵글에 담다”처럼 나타낼 만합니다. 살짝 빗대어 가리킬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굳이 안 써도 될 영어를 살며시 쓰는 버릇이 들면, 이 보기글처럼 ‘이야기’라는 한국말을 잊거나 뒤로 젖혀요. 한국사람이 쓸 일이나 까닭이나 뜻이 없는 ‘스토리’를 자꾸 쓰고야 맙니다.


  한국말 다룬다는 국어사전조차 ‘스토리’를 올림말로 삼습니다. 다만, ‘스토리’는 한국사람이 쓸 만한 낱말이 아니기에 ‘순화 대상 낱말’로 올리는데, 고쳐쓰거나 걸러야 하는 낱말이라면 처음부터 올림말로 삼을 일조차 없어요. ‘북(book)’이나 ‘도어(door)’를 애써 국어사전 올림말로 다룰 까닭이 없거든요. ‘네임(name)’을 국어사전에 실을 까닭이 없어요. 더구나, 한국사람한테는 ‘책·문·이름’이라는 낱말이 있으니, 이들 영어를 써야 하지도 않습니다.


  ‘스토리 + 화’는 ‘-化’만 턴대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말씨는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생각하지 못하는 말버릇에서 비롯합니다. 낱말부터 하나하나 차분히 살피지 못하는 말매무새에서 불거져요.


  어떤 이는 “이야기화하고 싶기 때문이다”처럼 말할는지 모릅니다. 말투, 말매무새, 말결, 말흐름을 모를 뿐더러 스스로 살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한국말을 슬기롭게 살펴야지요. 말과 넋과 삶을 튼튼히 붙잡고 어여삐 보듬어야지요. 흔들리는 말과 넋과 삶이 아닌, 어여삐 피어나는 말과 넋과 삶이 되도록 북돋아야지요. 이야기가 되는 삶이고, 이야기로 거듭나는 넋이며, 이야기로 흐드러져 나누는 말이에요. 저마다 이야기 한 자락 즐겁게 여밀 수 있기를 빌어요. 4345.12.23.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아이들이 저마다 사진 찍는 모습을 나도 사진으로 담아서 이야기로 엮고 싶기 때문입니다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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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54) -의 : 네 분의 선생님

 

같이 동참해 주신 네 분의 선생님께도 감사하자
《이상봉-안녕, 하세요!》(공간 루,2011) 157쪽

 

  한자말 ‘동참(同參)’은 “어떤 모임이나 일에 같이 참가함”을 뜻한다고 합니다. 한자말 ‘참가(參加)’는 “모임이나 단체 또는 일에 관계하여 들어감”을 뜻한다고 해요. 그러니까, “같이 동참해 주신”은 겹말입니다. 이 자리에서는 “같이해 주신”이나 “같이 애써 주신”이나 “같이 있어 주신”처럼 손질해 줍니다.


  ‘감사(感謝)’는 “(1) 고마움을 나타내는 인사 (2) 고맙게 여김”을 뜻합니다. 한국말은 ‘고마움’입니다. “감사하자”는 “고마워 하자”나 “고맙게 여기자”나 “고맙게 인사하자”로 손봅니다.

 

 네 분의 선생님께도
→ 네 분 선생님께도
→ 네 선생님한테도
→ 선생님 네 분한테도
→ 선생님들한테도
 …

 

  “네 권의 책”이 아닌 “책 네 권”입니다. 한국 말투로는 “선생님 네 분”이에요. “네 분”이라는 말마디를 앞에 놓고 싶다면 “네 분 선생님”이나 “네 선생님”이라 적으면 돼요. 말차례와 말투와 말결을 알뜰살뜰 돌아보며 슬기롭게 말꽃을 피울 수 있기를 빕니다. 4345.12.1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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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해 주신 네 선생님한테도 고맙다 말하자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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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결에 물든 미국말
 (670) 레토릭(rhetoric)

 

시간에 쫓기고 살 물건은 많은데, 주차할 곳도 없는 재래시장에 가라는 건 선거 때 정치인들이 구사하는 레토릭에나 나오는 하나마나 한 말이다
《오창익-십중팔구 한국에만 있는!》(삼인,2008) 204쪽

 

  “주차(駐車)할”은 “차를 댈”이나 “차를 둘”로 손보고, “가라는 건”은 “가라는 소리는”이나 “가라 한다면”이나 “가라고 하는 말은”으로 손봅니다. ‘구사(驅使)하는’은 ‘읊는’이나 ‘들려주는’이나 ‘써먹는’이나 ‘들먹이는’으로 손질합니다.


  ‘레토릭(rhetoric)’은 아마 영어일 텐데, 독일말로도 이와 거의 같거나 비슷한 낱말이 있구나 싶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이 낱말을 쓰는 지식인이 퍽 많이 늘었는데, 제가 떠올리기로는 지난날 지식인은 한자말 ‘수사학(修辭學)’이나 ‘수사(修辭)’를 즐겨썼어요. 영어사전 말풀이를 살피면 ‘레토릭’은 ‘미사여구(美辭麗句)’나 ‘웅변술(雄辯術)’을 가리키기도 한다는데, 한자말 ‘수사(修辭)’ 뜻풀이가 “말이나 글을 다듬고 꾸며서 보다 아름답고 정연하게 하는 일”을 가리키니, 이런저런 한자말은 ‘보기 좋게 꾸미는 말’이나 ‘듣기 그럴싸하게 다듬는 말’이로구나 싶어요.

 

 말 / 말씀
 말장난 / 말잔치 / 말놀이
 치레하는 말 / 치레말(치렛말) / 겉치레말 / 겉말 / 겉치레

 

  꾸며서 아름답게 보이려는 말이라면, 이러한 모습 그대로 ‘꾸밈말’입니다. 꾸미는 말이란 치레하는 말이기도 하기에, ‘치레말’이라는 새말을 빚을 만합니다. ‘겉치레말’이라 할 수 있고, ‘겉치레’나 ‘겉말’처럼 적어도 어울립니다. “치레하듯 읊는 말”이라든지 “겉으로 꾸미는 말”이라든지 “겉으로 치레하는 말”처럼 풀어서 적어도 돼요.


  지난날 지식인들은 한자를 즐겨썼기에 ‘수사’나 ‘수사학’처럼 적었다지만, 지난날 여느 사람들은 언제나 여느 말로 ‘치레하는 모습’이나 ‘꾸미는 모습’을 나타냈어요. 오늘날에도 이런 흐름은 같아요. 오늘날 지식인들은 영어를 즐겨쓰니까 ‘레토릭’ 같은 낱말을 들먹이겠지요. 오늘날에도 수수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수수한 낱말을 빌어 수수한 생각을 나타낼 테고요.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수사학’이든 ‘레토릭’이든 그닥 대수롭지 않게 쓰는 말이라 할 텐데, 여느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 낱말도 저 낱말도 좀 뚱딴지 같습니다. 엉뚱하거나 생뚱맞달까요. 쓸 만한 까닭이 없구나 싶은데 쓰니까 엉뚱하고, 이웃이나 동무하고 두루 나눌 만한 낱말이 못 되는구나 싶어서 생뚱맞아요.


  살다 보면, 말놀이도 하고 말장난도 하겠지요. 말만 번드레한 말잔치를 할 수도 있어요. 때와 곳에 따라 말놀이나 말장난이 재미날 수 있어요. 누군가는 말잔치로 사람들을 웃음잔치로 이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레토릭’ 같은 영어는 어떤 구실을 할까요. 이러한 영어를 쓰는 일은 한국 사회에 어느 만큼 이바지를 할까요. 이런 낱말을 듣거나 읽어야 하는 한국사람은 어느 만큼 즐거울까요. 4345.12.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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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쫓기고 살 물건은 많은데, 차 댈 곳도 없는 저잣거리에 가라는 말은 선거 때 정치꾼들이 읊는 말잔치에나 나오는 하나마나 한 말이다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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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53) 보통의 1 : 보통의 생활

 

사회의 평화와 안전은 정치적인 움직임보다도 오히려 우리 보통 사람들이 보통의 생활 가운데 생각하고 행동하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바바 치나츠/이상술 옮김-평화를 심다》(알마,2009) 203쪽

 

  “사회의 평화와 안전은”은 “사회 평화와 안전”이라고 다듬을 수 있고, 조금 더 마음을 기울여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사회는”처럼 새롭게 쓸 수 있습니다. ‘평화(平和)’와 ‘안전(安全)’이 어떠한 모습인가를 헤아린다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이라든지 “즐겁고 밝은”이라든지 “너그럽고 따사로운”처럼 새롭게 생각을 열도록 이끄는 말마디를 넣을 만해요. “정치적(-的)인 움직임보다도”는 “정치로 하는 움직임보다도”나 “정치 움직임보다도”나 “정치보다도”나 “정치로 움직이기보다도”로 손볼 수 있고, “우리 보통(普通) 사람들”은 “우리 여느 사람들”이나 “우리 같은 여느 사람들”이나 “우리 같은 사람들”이나 “우리처럼 수수한 사람들”로 손봅니다. “생활(生活) 가운데”는 “살아가면서”나 “살아가며”로 손질하고, ‘행동(行動)하는’은 ‘움직이는’으로 손질하며, “이루어지는 것이다”는 “이루어집니다”나 “이루어진다”로 손질합니다.

 

 보통의 생활 가운데 생각하고
→ 여느 삶을 누리며 생각하고
→ 수수하게 살아가며 생각하고
→ 조그맣게 살림을 꾸리며 생각하고
→ 즐겁게 살아가면서 생각하고
 …

 

  한자말 ‘보통(普通)’은 “특별하지 아니하고 흔히 볼 수 있어 평범함”을 뜻합니다. ‘특별(特別)’은 “보통과 구별되게 다름”을 뜻하는 한자말이요, ‘평범(平凡)’은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이다”를 뜻하는 한자말입니다. 국어사전 말풀이를 살피면, ‘보통’도 ‘특별’도 ‘평범’도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서로 돌림풀이를 하거든요. 게다가, 이런 한자말 풀이이나 저런 한자말 풀이도, 먼먼 옛날 한자가 한국 사회에 깃들지 않던 때 이 겨레가 어떤 낱말로 생각을 주고받았는가 하는 조그마한 귀띔도 하지 못합니다.


  스스로 곰곰이 생각합니다. 먼먼 옛날 ‘여느’ 사람들은 어떤 낱말로 생각을 주고받았을까요.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 ‘수수한’ 사람들은 어떤 말마디로 마음을 나누었을까요.


  보기글을 살피면 “보통의 생활 가운데”라 나옵니다. 토씨 ‘-의’를 애꿎게 붙이기도 하지만, ‘가운데’를 잘못 넣습니다. ‘가운데’라는 낱말은 한국말이에요. 한자말도 영어도 아니에요. 그러나 이 대목에 ‘가운데’를 넣을 수 없어요. 잘못 쓰는 번역 말투이거든요. 한국말에는 현재진행형이 없을 뿐더러, 일본사람이 현재진행형을 일본사람 나름대로 옮겨서 쓰는 ‘中’이라는 말투를 한국말로 어설피 옮길 적에 자꾸 ‘가운데’라는 말마디가 튀어나옵니다. 어느 번역가는 그냥 ‘중’이라고 적어 무늬만 한글처럼 옮기기도 해요. 그러니까 “보통의 생활 중에 생각하고”처럼 일본글을 한국글로 옮기는 사람이 있어요.


  우리들은 하나하나 따로 놓고 보면 ‘자그마한’ 사람입니다. 우리들은 조그맣거나 작다 할 만합니다. 그런데, 크든 작든, 누구나 아름다운 숨결입니다. 이름값이 높거나 낮거나, 누구라도 고운 넋입니다.


  우리들이 쓰는 말은 더 거룩하거나 더 훌륭하지 않습니다. 수수한 말이 널리 쓰는 말이요, 여느 말이 쉬운 말입니다. 남다르지 않은 말로 내 생각을 펼칩니다. 톡톡 튀지 않는다지만 얼마든지 내 마음을 드러냅니다.


  한 번 더 살피고, 다시금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물빛은 어떤 빛이라 할 수 있나요. 해맑고 환한 물빛은 남다르다 할 빛깔일까요. 어디에서나 흐느는 물은, 골짜기 물은, 바다를 이루는 물은 어떤 빛깔일까요. 어디에서나 보는 파란 하늘은, 푸른 들판은, 저마다 어떤 빛깔일까요.


  가장 수수하다 싶은 말이 가장 즐겁거나 맑은 말이라고 느낍니다. 여느 자리 여느 사람 입에서 흔히 흐르는 말이 가장 어여쁘거나 밝은 말이라고 느낍니다. 4345.12.9.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사회는 정치보다도 오히려 우리처럼 수수한 사람들이 여느 삶을 즐겁게 누리며 생각하고 움직일 때에 이루어집니다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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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297) 접하다接 1 : 소식을 접하며

 

교회 불지르기와 휴대전화의 빠른 보급, 노예노동과 디지털 혁명, 여아 살해와 나스닥 증권시장 붕괴, 지참금 문제로 아내를 태워죽이는 남편들과 세계미인대회에 나가는 여성들에 관한 소식을 늘 동시에 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룬다티 로이-9월이여 오라》(녹색평론사,2004) 21쪽

 

  “휴대전화의 빠른 보급(普及)”은 “빠르게 퍼지는 휴대전화”로 손보고, ‘여아(女兒)’는 ‘여자 아이’나 ‘계집 아이’로 손봅니다. “나스닥 증권시장 붕괴(崩壞)”는 “무너지는 나스닥 증권시장”으로 손질하고, “지참금 문제(問題)로”는 “지참금 때문에”로 손질합니다. “여성들에 관(關)한 소식(消息)”은 “여성들 이야기”로 다듬고, ‘동시(同時)에’는 ‘한꺼번에’로 다듬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는 “살아갑니다”로 다듬어 봅니다.


  그런데, 이런 글투 저런 낱말을 꼭 손보거나 다듬어야 하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굳이 이렇게 손질하거나 저렇게 고쳐써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 보기글처럼 글을 쓰거나 말을 하니까요. 이렇게 글을 쓰건 저렇게 말을 하건 이른바 ‘의사소통’을 하니까요.


  외마디 한자말 ‘접하다(接-)’는 모두 다섯 가지 뜻으로 쓴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다섯 가지 쓰임새가 있지는 않았을 테지만, 사람들이 이 한자말을 자꾸 쓰고 또 쓰면서 쓰임새가 넓어집니다. 사람들이 이 한자말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이 한자말이 없던 때에 홀가분하게 주고받던 말마디로 얼마든지 서로서로 생각과 뜻을 나누겠지요. 다섯 가지 뜻풀이와 보기글을 먼저 살펴봅니다.

 

  (1) 소식이나 명령 따위를 듣거나 받다
   - 사고 보도를 접하다 / 남편의 사망 소식을 접하자
  (2) 귀신을 받아들여 신통력을 가지다
   - 신을 접하게 되는데 쉽게 될 수야 없지요
  (3) 이어서 닿다
   -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에 접해 있다 / 우리 마을은 바다와 접해 있다 /
     판자로 지은 집들이 서로 접해 있다 / 우리 집은 바다를 접하고 있다
  (4) 가까이 대하다
   - 그는 거기서 엉뚱하게 동학의 교리에 접하고 바로 입도를 했습니다 /
     나는 사람들과 접하면서 사람마다 다른 개성을 발견했다 /
     그들이 서로 접하기 시작한 것은 며칠 전이었다 /
     그녀는 다른 간호원과는 달리 나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5) 직선 또는 곡선이 다른 곡선과 한 점에서 만나다.
      또는 직선, 평면, 곡면이 다른 곡면과 한 점에서 만나다

 

  국어사전에 실렸으니, 이렇게 다섯 갈래로 쓸 만하다 여길 수 있지만, 예부터 한겨레가 다섯 갈래로 다 다르게 나누던 말마디가 ‘接하다’라 하는 외마디 한자말한테 잡아먹힌 셈이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하나 갈무리해 보면, 한국사람은 다음처럼 이야기하면서 살았습니다.

 

 (접하다 1) → 이야기(소식)를 듣다
 (접하다 2) → 신이 내리다
 (접하다 3) → 바다에 닿다 / 집이 붙다 / 바다를 끼다
 (접하다 4) → 교리를 듣다 / 사람과 만나다 / 사람을 보다
 (접하다 5) → 닿다 / 만나다

 

  이야기를 듣는 자리라면 ‘듣다’라 말할 노릇입니다. 무당한테 신이 내리면 ‘내리다’라 말할 노릇입니다. 이어서 닿으니 ‘닿다’고 말합니다. 집은 “다닥다닥 붙었다”라 말하면 되고, “우리 집은 바다를 낀다”라든지 “우리 집은 바다 가까이 있다”라 말하면 돼요. 가까이 마주하기에 ‘마주하다’나 ‘가까이 마주하다’라 말합니다. 서로서로 만나거나 사귈 때에는 ‘사귀다’나 ‘만나다’라 말합니다. “나를 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처럼 ‘보다’를 쓸 수 있어요. 그리고 ‘접하다 (5)’ 뜻풀이처럼, ‘만나다’나 ‘닿다’라 말할 자리에 굳이 ‘접하다’를 써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책을 접한다”라든지 “영화를 접하다”라든지 “문화를 접하다”처럼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 제법 많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조용히 사라집니다. “영화를 보”고 “문화를 누리”는 사람도 차츰 사라집니다. 말다운 말이 주눅들고, 삶다운 삶이 자취를 감춥니다. 4337.7.23.쇠./4345.12.6.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교회 불지르기와 빠르게 퍼지는 휴대전화, 노예노동과 디지털 혁명, 어린 여자 아이 죽이기와 무너지는 나스닥 증권시장, 지참금 때문에 아내를 태워죽이는 남편들과 세계미인대회에 나가는 여성들 이야기를 늘 한꺼번에 들으며 살아갑니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01) 접하다接 16 : 풍경을 접하게

 

우리는 살면서 여러 가지 풍경을 접하게 됩니다
《야마오 산세이/김경인 옮김-애니미즘이라는 희망》(달팽이,2012) 245쪽

 

  한자말 ‘풍경(風景)’은 “= 경치(景致)”를 뜻한다고 합니다. ‘경치(景致)’는 다시 “산이나 들, 강, 바다 따위의 자연이나 지역의 모습”을 뜻한다고 해요. 그러니까, 풍경이든 경치이든 ‘어떤 모습’을 가리키는 셈이에요. 보기글에서도 “여러 가지 풍경”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손볼 수 있어요. “-하게 됩니다”는 “-합니다”나 “-하곤 합니다”로 손질합니다.

 

 여러 가지 풍경을 접하게 됩니다
→ 여러 가지 모습을 봅니다
→ 여러 가지 모습을 만납니다
→ 여러 가지 모습을 마주합니다
 …

 

  여러 가지 모습을 본다고 할 때에는 ‘지켜볼’ 수 있고, ‘바라볼’ 수 있습니다. ‘구경할’ 수도 있겠지요. 여러 가지 모습을 보는 일은 ‘만나기’나 ‘마주하기’이면서 ‘가까이하기’나 ‘곁에서 보기’일 수 있어요. ‘옆에서 보’거나 ‘둘레에서 본다’고 할 수 있습니다. 4345.12.5.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우리는 살면서 여러 가지 모습을 봅니다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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