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없애야 말 된다
 (1608) 태생적 1 : 태생적으로 고독

 

인간은 원래 고독한 존재라고 합니다만 이런 마음의 상태가 사진의 테마로 빈번히 쓰이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사진가들의 사진 작업이라는 것이 태생적으로 고독하기 때문입니다
《곽윤섭-이제는 테마다》(동녘,2010) 245쪽

 

  ‘인간(人間)’은 ‘사람’으로 다듬고, ‘원래(元來)’는 ‘워낙’이나 ‘처음부터’나 ‘모름지기’로 다듬습니다. ‘존재(存在)’는 ‘목숨’으로 손보거나 앞뒤 말과 묶어 “외롭다고 합니다만”으로 손봅니다. “이런 마음의 상태(狀態)가”는 “이런 마음이”나 “이런 마음결이”나 “이런 마음자리가”로 손질하고, “사진의 테마(Thema)로”는 “사진감으로”나 “사진 주제로”로 손질하며, ‘빈번(頻繁)히’는 ‘자주’로 손질해 줍니다. ‘이유(理由)’는 ‘까닭’으로 고쳐쓰고, “사진가들의 사진 작업(作業)이라는 것이”는 “사진가들이 사진을 찍는 일이”나 “사진가들이 하는 사진찍기가”로 고쳐씁니다.


  ‘태생적’은 국어사전에 안 나옵니다. 한자말 ‘태생(胎生)’을 살피면, “어떠한 곳에 태어남”을 뜻한다고 해요. 이를테면, “농촌 태생”, “부산 태생”, “한국 태생의 러시아 문학가”처럼 쓴다고 합니다.

 

 태생적으로 고독하기 때문
→ 처음부터 외롭기 때문
→ 워낙에 외롭기 때문
→ 더없이 외롭기 때문
→ 참으로 외롭기 때문
 …

 

  사진찍기가 처음부터 외로울 까닭이란 하나도 없다고 느낍니다. 사람을 찍든 사물을 찍든 숲을 찍든 무엇을 찍든, 사진을 찍는 사람은 언제나 외롭지 않습니다. 어디에서나 사람하고 부대끼거나 섞이면서 찍는 사진이요, 늘 사람들과 나누려는 사진이거든요. 사진쟁이가 사진을 찍는 일이 처음부터 외롭다면, 글쟁이가 글을 쓰는 일이나 그림쟁이가 그림을 그리는 일이나 똑같이 외로울 노릇입니다. 춤쟁이가 춤을 추거나 노래쟁이가 노래를 부르는 일 또한 외로워야 할 테지요. 농사꾼이 농사를 짓거나 일꾼이 일할 때에도 외로워야 할 테고요.


  사람한테는 외로움이라는 마음자리가 누구한테나 있습니다. 외로움이 없는 사람이란 없습니다. 따로 사진쟁이가 더 외롭다 할 수 없고, 사진쟁이만 외롭지 않습니다.


  사람한테는 외로움이라는 마음자리와 함께 어깨동무라는 마음자리가 나란히 있습니다. 어느 한때에는 살며시 외롭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다른 한때에는 하나도 외롭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외려 호젓하거나 조촐하다고 느낍니다.


  우리들은 우리 생각을 펼칠 때에 제대로 깊이 살펴야 합니다. 제대로 깊이 살피지 않으면서 우리 생각을 펼치려 한다면 어줍잖거나 어리석은 말이 튀어나오기 일쑤입니다. 생각바탕부터 단단히 다스린 다음 즐겁고 넉넉하게 나누는 넋이며 말이 되도록 애쓸 노릇입니다. 생각바탕이 단단히 야물지 않은 탓에 생각바탕을 담는 말이 야물지 못합니다. 생각바탕을 단단히 가다듬으면, 삶에서 비롯하는 싱그럽고 야무진 넋이 피어납니다. 참되고 착하며 고운 말이란 야무지거나 씩씩한 삶에 뿌리를 두고 태어납니다.

 

 남녀 뇌가 태생적으로 다르다고?
→ 남녀 뇌가 다르다고?
→ 남녀 뇌가 처음부터 다르다고?
 대중가요의 태생적 한계에서
→ 대중가요는 처음부터 한계가 있어서
→ 대중가요는 워낙 한계가 있어서
 태생적으로 부지런한 DNA를 갖고 있다
→ 날 때부터 부지런한 유전자를 갖고 있다
→ 처음부터 부지런한 유전자를 갖고 있다
 …

 

  한국말이 아닌 ‘태생적’을 곱씹어 봅니다. 먼저, ‘태생(胎生)’이라는 낱말부터 한국말이 아닙니다. 이 한자말 ‘태생’은 ‘태어남’을 가리키기만 합니다. “농촌 태생”이 아닌 “농촌에서 태어남”이거나 “농촌내기”입니다. “부산 태생”이 아닌 “부산에서 남”이나 “부산사람”입니다. “한국 태생의 러시아 문학가”가 아닌 “한국에서 태어난 러시아 문학가”이거나 “한국 핏줄을 가진 러시아 문학가”입니다.


  우리는 우리 말을 할 노릇입니다. 우리 말이 아닌 얄딱구리한 말을 할 노릇이 아닙니다. “가난한 집 태생이라 고학으로 학업을 마쳤다” 같은 글월은 겉보기로는 한글이지만, 속보기로는 우리 말이 아닙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힘들게 배웠다”라든지 “가난한 집에서 자라며 어렵게 학교를 다녔다”처럼 적어야 비로소 우리 말입니다. “나는 태생은 서울이나 자라기는 시골에서 자랐다” 또한 이와 매한가지입니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자라기는 시골에서 자랐다”나 “나는 서울에서 났으나 자라기는 시골에서 자랐다”처럼 적어야 바야흐로 우리 말이라 할 만합니다.


  껍데기가 한글이라 해서 모두 한국말이 되지 않습니다. 한글로 적바림했다고 죄 한국말로 여길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여러모로 즐겨쓴다 해서 한국말이라는 이름표를 붙일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오래도록 널리 쓴다지만 한국말이 되지는 않습니다.

 

 사진쟁이가 사진 찍는 일이 더없이 외롭기 때문입니다
 사진쟁이가 사진을 다루는 일이 늘 외롭기 때문입니다
 사진쟁이가 사진을 하는 일이란 퍽 외롭기 때문입니다
 사진쟁이한테 사진찍기란 한결같이 외롭기 때문입니다
 …

 

  삶을 밝히고 넋을 북돋우면서 사랑을 나누며 고운 믿음을 섬길 때에 시나브로 한국말로 자리잡습니다. 사람을 아끼고 얼을 살찌우며 따스함으로 감싸는 한편 착하고 너른 마음결로 손을 맞잡을 때에 차근차근 한국말로 뿌리내립니다. 말다워야 말이고, 한국말다워야 한국말입니다. 4343.8.5.나무/4346.2.1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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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모름지기 외롭다고 합니다만, 이런 마음자리를 사진감으로 자주 쓰는 까닭은 따로 있습니다. 사진가들이 사진을 찍는 일이 처음부터 외롭기 때문입니다

 

..

 

 '-적' 없애야 말 된다
 (1657) 태생적 2 : 태생적으로 다르다

 

사진은 회화·영화와는 태생적으로 다르다. 프레임 안이든 바깥이든, 사진의 유전자는 판이하다
《윤현수-사진의 비밀》(눈빛,2010) 46쪽

 

  ‘회화(繪畵)’는 따로 거르기 어려운 낱말이라 할 수 있을 텐데, 보기글에서는 ‘그림’으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사진과 그림과 영화를 견주어 이야기하니, 쉽게 ‘그림’이라 적을 때에 한결 어울리지 싶어요. ‘프레임(frame)’은 ‘틀’이나 ‘사진틀’로 손보고, “사진의 유전자(遺傳子)”는 “사진을 낳는 씨앗”이나 “사진을 이루는 씨앗”으로 손봅니다. ‘판이(判異)하다’는 ‘사뭇 다르다’나 ‘아주 다르다’나 ‘매우 다르다’나 ‘서로 다르다’로 다듬어 봅니다.

 

 태생적으로 다르다
→ 처음부터 다르다
→ 뿌리부터 다르다
→ 바탕부터 다르다
 …

 

  말뜻을 살피면, “태어날 적부터 다르다”입니다. 이 말뜻 그대로 쓰면 됩니다. 태어날 적부터 다르기에 “처음부터 다르”고, “뿌리부터 다르”며, “바탕부터 다르”겠지요. 꾸밈말을 보태어 ‘맨 처음’이나 ‘밑뿌리’나 ‘밑바탕’이나 ‘밑자리’ 같은 낱말을 쓸 수 있어요. 생각을 기울이면서 새 낱말을 빚고, 새 낱말을 하나둘 빚으며 이야기를 살찌웁니다. 4346.2.19.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사진은 그림·영화와는 밑뿌리부터 다르다. 사진틀 안이든 바깥이든, 사진을 낳은 씨앗은 사뭇 다르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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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옹글게 쓰는 우리 말
 (1563) 눈코입

 

눈코입이 오목조목한 히메나야말로 늘 차가운 표정에 새침해 보인다
《이시다 이라/김윤수 옮김-날아라 로켓파크》(양철북,2013) 83쪽

 

  “차가운 표정(表情)”은 “차가운 얼굴”이나 “차가운 낯빛”으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뒷말과 묶어 “차갑게 보이고 새침해 보인다”라든지 “차갑거나 새침해 보인다”처럼 다듬어도 됩니다.


  이 글월에서는 ‘눈코입’이라 나옵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으레 ‘이목구비(耳目口鼻)’ 같은 낱말을 쓰니, 퍽 남다르다 할 만합니다. 그렇지만, ‘이목구비’란 “귀·눈·입·코를 아울러 이르는 말”일 뿐이에요. 한국사람이 널리 쓸 만한 낱말이 아니요, 한국말을 북돋우는 낱말이 아닙니다. 귀와 눈과 입과 코를 아울러 가리키는 낱말이라면 ‘귀눈코입’이라 하면 되고, 한겨레한테 익숙한 말차례에 따라 ‘눈코귀입’이라 하면 넉넉합니다.

 

― 눈코 . 눈코귀 . 눈코입 . 눈코귀입

 

  자리와 흐름에 따라 알맞게 씁니다. ‘눈코’나 ‘귀입’처럼 둘씩 묶을 수 있고, ‘눈코입’이나 ‘눈코귀’처럼 셋씩 묶을 수 있습니다. 4346.2.1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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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949) 가운데 2 : 언급하는 가운데

 

지금까지 다룬 내용에서 여러 주제를 언급하는 가운데 이미 드러나기는 했지만
《에냐 리겔/송순재-꿈의 학교, 헬레네 랑에》(착한책가게,2012) 244쪽

 

  ‘지금(只今)까지’는 ‘이제까지’나 ‘여기까지’나 ‘여태까지’로 다듬고, ‘내용(內容)’은 ‘이야기’나 ‘줄거리’로 다듬으며, ‘언급(言及)하는’은 ‘말하는’이나 ‘다루는’으로 다듬습니다. ‘주제(主題)’ 같은 낱말은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글흐름을 살피면 살짝 덜어도 돼요. 또는, “여러 주제”라 하기보다는 “여러 가지”라고 할 적에 한결 알맞구나 싶어요.


  그런데, 이 보기글은 글짜임이 퍽 엉성합니다. 어딘가 겹말 내음이 나기도 하고, 군더더기 같은 말투가 드러납니다. 이 낱말 저 말투 모두 아울러서 “여기까지 여러 가지를 다루며 이미 드러나기도 했지만”이라든지 “여기까지 여러 이야기를 다루며 이미 드러나기도 했지만”처럼 단출하게 손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한 다음 ‘가운데’를 살펴봅니다.

 언급하는 가운데
→ 말하는 동안
→ 다루는 사이
→ 살필 적에
→ 살펴보면서
 …

 

  글흐름을 통째로 손볼 때에는 시나브로 사라지는 ‘가운데’입니다. 따로 이 말투를 넣지 않아도 됩니다. ‘가운데’라는 말투가 엉뚱하게 나타난 자리만 살핀다면, “말하는 동안”이나 “이야기하는 동안”처럼 다듬으면 됩니다. 잘 생각해 보셔요. 일본을 거쳐 일본 한자말이나 일본 말투가 처음 깃들던 때에는 “言及하는 中에”처럼 글을 쓰던 지식인이고, 나중에는 글꼴만 한글로 고쳐 “언급하는 중에”처럼 글을 쓰던 지식인이에요. 이제는 ‘중’을 뜻새김만 한국말로 바꾸어 “언급하는 가운데”처럼 적는 지식인입니다.


  ‘가운데’는 틀림없이 한국말입니다. 한국말이지요. 그렇지만, 이 자리처럼 쓸 때에는 한국 말투가 아니에요. “-고 있다”에 나타나는 ‘있다’도 한국말이지만, “-고 있다” 꼴을 쓰면 한국 말투 아닌 영어 현재진행형을 일본사람이 옮겨적은 말투를 한국사람이 엉터리로 끌어들인 말투이듯, ‘가운데’라는 낱말을 넣는 말투도 한국 말투하고 동떨어집니다. 4346.2.11.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여기까지 다룬 이야기에서 여러 가지를 말하며 이미 드러나기는 했지만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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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가운 상말
 611 : 경거망동

 

모든 것을 침착하고 신중하게 하되 목표를 정해 놓고 올바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야지, 남들이 하라는 대로 이리저리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
《에냐 리겔/송순재-꿈의 학교, 헬레네 랑에》(착한책가게,2012) 289쪽

 

  “침착(沈着)하고 신중(愼重)하게 하되”는 “차분하고 꼼꼼하게 하되”로 손볼 수 있습니다. “차근차근 꼼꼼하게 하되”라든지 “찬찬히 차분하게 하되”로 손보아도 잘 어울립니다. “목표(目標)를 정(定)해 놓고”는 “목표를 세워 놓고”나 “할 일을 세워 놓고”나 “나아갈 길을 잡아 놓고”로 손보고, “올바른 방향(方向)을 향(向)해”는 “올바른 곳을 바라보며”나 “올바른 곳으로”나 “올바르게”로 손봅니다.


  ‘경거망동(輕擧妄動)’은 “경솔하여 생각 없이 망령되게 행동함”을 뜻하는 네 글자 한자말입니다. 그런데 말풀이가 쉽지 않군요. 다시 국어사전을 들춥니다. ‘경솔(輕率)’은 “말이나 행동이 조심성 없이 가벼움”을 뜻한다 하고, ‘망령(妄靈)’은 “늙거나 정신이 흐려서 말이나 행동이 정상을 벗어남”을 뜻한다 하는군요. 그러니까, ‘가볍게 움직이거나 함부로 구는’ 짓을 가리킨다 하겠습니다.

 

 이리저리 경거망동해서는
→ 이리저리 가볍게 움직여서는
→ 이리저리 휘둘려서는
→ 이리저리 휩쓸려서는
→ 이리저리 춤춰서는
 …

 

  뜻을 살피면 ‘경거망동’ 같은 낱말도 얼마든지 쓸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말뜻 그대로 ‘가볍게’나 ‘함부로’라 쓴다면 한결 쉬우면서 널리 즐거울 수 있겠구나 싶어요.


  쉽게 말하며 쉽게 생각을 나눕니다. 부드러이 말하며 부드러이 생각을 주고받습니다. 가벼운 짓이 가볍다 밝히고, 함부로 구는 짓을 함부로 구는 짓이라고 가리킵니다.


  그러고 보니, 함부로 구는 짓은 ‘마구 움직이는 짓’이에요. 마구 움직이는 짓은 한 낱말로 간추려 ‘막짓’이라 나타낼 수 있습니다. ‘막말’과 ‘막춤’처럼 ‘막-’을 앞가지 삼아 새 낱말 빚을 만합니다. 4346.2.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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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차근차근 꼼꼼하게 하되 어떻게 할지를 살펴 올바르게 나아가야지, 남들이 하라는 대로 이리저리 춤춰서는 안 된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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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61) -의 소재 1 : 시의 소재

 

무엇보다 우리에게 친근한 것이기 때문에 시의 소재로 딱 좋으니까요
《하이타니 겐지로/햇살과나무꾼 옮김-선생님, 내 부하 해》(양철북,2009) 178쪽

 

  “친근(親近)한 것이기”는 “가깝기”나 “살갑기”로 다듬고, ‘소재(素材)’는 ‘감’이나 ‘글감’으로 다듬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시의 소재로”처럼 나오는데, “시로 쓸 글감으로”로 손볼 수 있고, 간추리면서 “싯감으로”로 손볼 수 있습니다. “시로 쓰기에”나 “시로 다루기에”라든지 “시로 옮기기에”나 “시로 적바림하기에”로 손볼 수 있으며, “시로 쓸 이야기로”라든지 “시로 들려주기에”처럼 손보아도 잘 어울려요.

 

 시의 소재로
→ 시로 쓰기에
→ 시를 쓰기에
→ 시를 쓸 때에
→ 싯감으로
→ 시 쓸 얘기로
 …

 

  일본사람은 글을 쓰면서 “詩の素材”처럼 적습니다. 일본사람은 “詩の作法”이라고도 적습니다. 그러나, 한국사람은 “싯감”처럼 적거나 “시쓰기” 또는 “시 쓰는 법”처럼 적으면 됩니다. 시 아닌 소설에서도 “소설감”이라 적고 “소설쓰기” 또는 “소설 쓰는 법”처럼 적으면 돼요.


  한국말을 적을 때에는 한겨레 말투와 말결과 말씨를 살핍니다. 먼 옛날부터 흐르던 말차림을 곱씹고, 오늘을 가로질러 앞으로 흐를 말무늬를 생각합니다. 알맞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레 나눌 말빛을 헤아립니다. 4346.2.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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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우리한테 살갑기 때문에 시로 쓰기에 딱 좋으니까요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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