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297) 접하다接 1 : 소식을 접하며

 

교회 불지르기와 휴대전화의 빠른 보급, 노예노동과 디지털 혁명, 여아 살해와 나스닥 증권시장 붕괴, 지참금 문제로 아내를 태워죽이는 남편들과 세계미인대회에 나가는 여성들에 관한 소식을 늘 동시에 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룬다티 로이-9월이여 오라》(녹색평론사,2004) 21쪽

 

  “휴대전화의 빠른 보급(普及)”은 “빠르게 퍼지는 휴대전화”로 손보고, ‘여아(女兒)’는 ‘여자 아이’나 ‘계집 아이’로 손봅니다. “나스닥 증권시장 붕괴(崩壞)”는 “무너지는 나스닥 증권시장”으로 손질하고, “지참금 문제(問題)로”는 “지참금 때문에”로 손질합니다. “여성들에 관(關)한 소식(消息)”은 “여성들 이야기”로 다듬고, ‘동시(同時)에’는 ‘한꺼번에’로 다듬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는 “살아갑니다”로 다듬어 봅니다.


  그런데, 이런 글투 저런 낱말을 꼭 손보거나 다듬어야 하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굳이 이렇게 손질하거나 저렇게 고쳐써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 보기글처럼 글을 쓰거나 말을 하니까요. 이렇게 글을 쓰건 저렇게 말을 하건 이른바 ‘의사소통’을 하니까요.


  외마디 한자말 ‘접하다(接-)’는 모두 다섯 가지 뜻으로 쓴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다섯 가지 쓰임새가 있지는 않았을 테지만, 사람들이 이 한자말을 자꾸 쓰고 또 쓰면서 쓰임새가 넓어집니다. 사람들이 이 한자말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이 한자말이 없던 때에 홀가분하게 주고받던 말마디로 얼마든지 서로서로 생각과 뜻을 나누겠지요. 다섯 가지 뜻풀이와 보기글을 먼저 살펴봅니다.

 

  (1) 소식이나 명령 따위를 듣거나 받다
   - 사고 보도를 접하다 / 남편의 사망 소식을 접하자
  (2) 귀신을 받아들여 신통력을 가지다
   - 신을 접하게 되는데 쉽게 될 수야 없지요
  (3) 이어서 닿다
   -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에 접해 있다 / 우리 마을은 바다와 접해 있다 /
     판자로 지은 집들이 서로 접해 있다 / 우리 집은 바다를 접하고 있다
  (4) 가까이 대하다
   - 그는 거기서 엉뚱하게 동학의 교리에 접하고 바로 입도를 했습니다 /
     나는 사람들과 접하면서 사람마다 다른 개성을 발견했다 /
     그들이 서로 접하기 시작한 것은 며칠 전이었다 /
     그녀는 다른 간호원과는 달리 나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5) 직선 또는 곡선이 다른 곡선과 한 점에서 만나다.
      또는 직선, 평면, 곡면이 다른 곡면과 한 점에서 만나다

 

  국어사전에 실렸으니, 이렇게 다섯 갈래로 쓸 만하다 여길 수 있지만, 예부터 한겨레가 다섯 갈래로 다 다르게 나누던 말마디가 ‘接하다’라 하는 외마디 한자말한테 잡아먹힌 셈이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하나 갈무리해 보면, 한국사람은 다음처럼 이야기하면서 살았습니다.

 

 (접하다 1) → 이야기(소식)를 듣다
 (접하다 2) → 신이 내리다
 (접하다 3) → 바다에 닿다 / 집이 붙다 / 바다를 끼다
 (접하다 4) → 교리를 듣다 / 사람과 만나다 / 사람을 보다
 (접하다 5) → 닿다 / 만나다

 

  이야기를 듣는 자리라면 ‘듣다’라 말할 노릇입니다. 무당한테 신이 내리면 ‘내리다’라 말할 노릇입니다. 이어서 닿으니 ‘닿다’고 말합니다. 집은 “다닥다닥 붙었다”라 말하면 되고, “우리 집은 바다를 낀다”라든지 “우리 집은 바다 가까이 있다”라 말하면 돼요. 가까이 마주하기에 ‘마주하다’나 ‘가까이 마주하다’라 말합니다. 서로서로 만나거나 사귈 때에는 ‘사귀다’나 ‘만나다’라 말합니다. “나를 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처럼 ‘보다’를 쓸 수 있어요. 그리고 ‘접하다 (5)’ 뜻풀이처럼, ‘만나다’나 ‘닿다’라 말할 자리에 굳이 ‘접하다’를 써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책을 접한다”라든지 “영화를 접하다”라든지 “문화를 접하다”처럼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 제법 많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조용히 사라집니다. “영화를 보”고 “문화를 누리”는 사람도 차츰 사라집니다. 말다운 말이 주눅들고, 삶다운 삶이 자취를 감춥니다. 4337.7.23.쇠./4345.12.6.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교회 불지르기와 빠르게 퍼지는 휴대전화, 노예노동과 디지털 혁명, 어린 여자 아이 죽이기와 무너지는 나스닥 증권시장, 지참금 때문에 아내를 태워죽이는 남편들과 세계미인대회에 나가는 여성들 이야기를 늘 한꺼번에 들으며 살아갑니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01) 접하다接 16 : 풍경을 접하게

 

우리는 살면서 여러 가지 풍경을 접하게 됩니다
《야마오 산세이/김경인 옮김-애니미즘이라는 희망》(달팽이,2012) 245쪽

 

  한자말 ‘풍경(風景)’은 “= 경치(景致)”를 뜻한다고 합니다. ‘경치(景致)’는 다시 “산이나 들, 강, 바다 따위의 자연이나 지역의 모습”을 뜻한다고 해요. 그러니까, 풍경이든 경치이든 ‘어떤 모습’을 가리키는 셈이에요. 보기글에서도 “여러 가지 풍경”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손볼 수 있어요. “-하게 됩니다”는 “-합니다”나 “-하곤 합니다”로 손질합니다.

 

 여러 가지 풍경을 접하게 됩니다
→ 여러 가지 모습을 봅니다
→ 여러 가지 모습을 만납니다
→ 여러 가지 모습을 마주합니다
 …

 

  여러 가지 모습을 본다고 할 때에는 ‘지켜볼’ 수 있고, ‘바라볼’ 수 있습니다. ‘구경할’ 수도 있겠지요. 여러 가지 모습을 보는 일은 ‘만나기’나 ‘마주하기’이면서 ‘가까이하기’나 ‘곁에서 보기’일 수 있어요. ‘옆에서 보’거나 ‘둘레에서 본다’고 할 수 있습니다. 4345.12.5.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우리는 살면서 여러 가지 모습을 봅니다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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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말 손질 335 : 부정적으로 나쁜


현대에는 고독을 부정적이고 나쁜 것으로 보는 경향이 강한 것도 같지만
《야마오 산세이/김경인 옮김-애니미즘이라는 희망》(달팽이,2012) 30쪽

 

  ‘현대(現代)’ 같은 한자말은 굳이 손질하지 않아도 되리라 느낍니다만, 글흐름을 살피면 ‘오늘날’이나 ‘요사이’나 ‘요즈음’으로 손질할 수 있어요. ‘고독(孤獨)’은 ‘외로움’으로 손보고, ‘경향(傾)’은 ‘흐름’이나 ‘눈길’이나 ‘생각’으로 손봅니다. “강(强)한 것도 같지만”은 “센 듯도 보이지만”이나 “드센 듯하지만”이나 “짙은 듯하지만”으로 다듬는데, 앞말을 묶어 “나쁘다고 보는 듯도 하지만”이나 “나쁘다고 보는구나 싶지만”이나 “나쁘다고 보는 흐름이 짙지만”처럼 새롭게 쓸 수 있어요.


  ‘부정적(否定的)’은 “(1) 그렇지 아니하다고 단정하거나 옳지 아니하다고 반대하는 (2) 바람직하지 못한”을 뜻하는 한자말입니다. 이 자리에서는 (2) 뜻으로 썼구나 싶은데, ‘부정적’은 으레 ‘긍정적’과 맞서는 자리에 나타납니다. 쉽게 말하자면 ‘나쁜-좋은’ 꼴로 서로 맞서는 자리에 나타나는 낱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보기글에서는 ‘부정적(否定的)’과 ‘나쁜’이라는 낱말이 겹으로 쓰인 셈이에요.

 

 부정적이고 나쁜 것으로 보는
→ 바람직하지 않고 나쁘다고 보는
→ 나쁘다고 보는
→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
→ 좋지 않다고 보는
→ 어둡거나 나쁘게 보는
 …

 

  “부정적이고 나쁜”이 겹말이듯 “긍정적이고 좋은” 또한 겹말입니다. 일부러 더 세게 말하고 싶어 이렇게 겹말을 쓸 수 있습니다만, 어떤 모습을 여러 갈래로 살피며 나타내려 했다면, “어둡거나 나쁘게 보는”이라든지 “안쓰럽거나 나쁘게 보는”처럼 뜻이나 느낌이 다른 낱말을 넣을 때가 한결 나으리라 생각해요. 4345.12.5.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요즈음에는 외로움을 어둡고 나쁘다고 보는 듯하지만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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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가운 상말
 607 : 천진무구

 

사람들 가운데 어린 젖먹이들과 성인들한테서나 겨우 발견되는 천진무구天眞無垢와 내적 갈등의 부재不在를 장미가 지니고 있는 까닭이 여기 있지요
《앤소니 드 멜로/이현주 옮김-사랑으로 가는 길》(삼인,2012) 83쪽

 

  ‘성인(聖人)’은 ‘깨달은 이’나 ‘거룩한 이’로 다듬고, ‘발견(發見)되는’은 ‘보이는’이나 ‘볼 수 있는’으로 다듬습니다. “장미가 지니고 있는 까닭이”는 “장미가 지닌 까닭이”로 손질해야 알맞을 텐데, 다시금 손질해서 “장미한테 있는 까닭이”처럼 적을 때에 한결 매끄럽습니다.


  “내적(內的) 갈등(葛藤)의 부재不在”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부재’란 한국말로 ‘없음’입니다. ‘갈등’은 한국말로 ‘뒤얽힘’이나 ‘엇갈림’이나 ‘맞섬’을 가리킵니다. ‘내적’은 “안에 있는”이나 “마음에 있는”을 가리켜요. 뜻을 그대로 풀이한다면 “마음에 뒤얽힘이 없음”이나 “마음이 엇갈리지 않음”이라 할 테니까, “마음이 뒤얽히지 않다”거나 “마음이 어수선하지 않다”거나 “마음이 뒤죽박죽이지 않다”거나 “마음이 흔들리지 않다”를 가리킨다고 하면 될까 싶으면서 아리송합니다. 이 글을 쓰신 분이 조금 더 또렷하면서 환하게 알아들을 만하게 이야기를 밝히면 참으로 어여쁠 텐데요. 아무튼, 마음이 뒤얽히지 않거나 어수선하지 않다면 “마음이 차분하다”고 할 수 있어요.


  ‘천진무구(天眞無垢)’는 “조금도 때 묻음이 없이 아주 순진함”을 뜻하는 네 글자 한자말입니다. 이 또한 한국말로 일컫자면 ‘티없음’이요 ‘해맑음’입니다. 국어사전에는 안 실리지만 ‘때없음’처럼 새말 하나 빚어도 잘 어울려요.

 

 천진무구한 아이들의 모습
→ 때묻지 않은 아이들 모습
→ 티없는 아이들 모습
→ 해맑은 아이들 모습
→ 햇살처럼 맑은 아이들 모습
 …

 

  티가 없기에 ‘티없다’ 같은 낱말이 태어납니다. 때가 없으면 ‘때없다’ 같은 낱말을 빚어서 쓸 수 있어요. 티끌이 없으면 ‘티끌없다’ 같은 낱말을 쓸 수 있고, 거짓이 없을 때에는 ‘거짓없다’ 같은 낱말을 쓸 만해요.


  저마다 어떤 모습을 드러내면서 살아가는가를 살피며 말을 짓습니다. 서로서로 어떤 빛과 무늬를 보여주면서 삶을 일구는지를 돌아보며 말을 나눕니다. 아이들한테서 느끼는 해맑은 모습을 어른들한테서 나란히 느낀다면 참으로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햇살처럼 웃을 적에, 어른들도 햇살처럼 웃으면서 다 함께 고운 꿈과 사랑을 빛낸다면 더없이 기쁘리라 생각합니다. 4345.12.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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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가운데 어린 젖먹이들과 깨달은이한테서나 겨우 볼 수 있는 해맑음과 차분한 마음이 장미한테 있는 까닭이 여기 있지요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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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없애야 말 된다
 (867) 문제적 1 : 문제적인 것

 

중국을 주제로 다룬 서양 최초의 저서가 불분명하고 문제적인 것이 우리의 탐험과정에는 오히려 적절하다
《조너선 D.스펜서/김석희 옮김-칸의 제국》(이산,2000) 23쪽

 

  ‘최초(最初)의’는 ‘첫’으로 다듬고, ‘저서(著書)’는 ‘책’으로 다듬어 줍니다. ‘불분명(不分明)하고’는 ‘뚜렷하지 않고’나 ‘흐리멍텅하고’로 손봅니다. ‘적절(適切)하다’는 ‘알맞다’나 ‘좋다’로 손질하고, “우리의 탐험 과정에는”는 “우리가 탐험(探險)하는 과정(課程)에는”이나 “우리 탐험 과정에는”이나 “우리가 탐험을 떠나기에는”이나 “우리가 새길을 떠나기에는”으로 손질해 봅니다.


  국어사전을 살피면 ‘문제적’이라는 한자말은 안 실리고 ‘문제(問題)’라는 한자말만 실립니다. ‘문제’ 뜻풀이는 “(1) 해답을 요구하는 물음 (2) 논쟁, 논의, 연구 따위의 대상이 되는 것 (3) 해결하기 어렵거나 난처한 대상 (4) 귀찮은 일이나 말썽 (5) 어떤 사물과 관련되는 일”을 가리킨다고 나와요. 이 가운데 ‘문제적’과 이어지는 뜻풀이는 (2)과 (3)과 (4)과 (5)이 되겠지요. 보기글에 나오는 “문제적인 도서”라면 “말썽” 뜻이면서 “말썽이 되는 책”을 나타내는구나 싶어요.

 

 최초의 저서가 문제적인 것이
→ 첫 책이 문제가 많아
→ 첫 책이 말썽으로 가득해
→ 첫 책이 말썽투성이라서
→ 첫 책이 엉터리라서
 …

 

  한자말 ‘문제’를 쓰는 일이 잘못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연습 문제”나 “환경오염 문제” 같은 자리는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 “문제가 생기다”나 “문제를 일으키다” 또한 그대로 둘 때가 한결 낫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다만, “문제가 생기다”와 “문제를 일으키다”는 “말썽이 생기다”와 “말썽을 일으키다”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국어사전에 실린 (5) 또한 “이 일은 가치관에 얽힌 이야기이다”로 다듬을 수 있고요.


  그런데, 한자말 ‘문제’에 ‘-적’을 붙인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문제적 인물”이나 “문제적 영화”나 “문제적 상황”이나 “문제적 시각”처럼 쓰는 자리라든지 “이 같은 일은 문제적이다”나 “그 정책은 문제적이다”처럼 쓰는 자리는 곰곰이 돌아보아야 합니다. 왜 이렇게 써야 하는가를 깊이 되새겨야 합니다. 꼭 이렇게 써야 하는가를 찬찬히 살펴야 합니다.


  문제가 된다고 느끼면서 “문제가 되는” 무엇인가를 가리키고자 ‘문제적’ 같은 낱말을 쓴다고 할 텐데, 말 그대로 “문제가 되는”이라고 하면 넉넉하지 않으랴 싶습니다. 문제가 된다는 일이란 “말썽을 일으키는” 일이거나 “말이 많은” 일이곤 합니다. 이 같은 일은 곰곰이 “들여다보는” 일이거나 “눈여겨볼 만한” 일이 되기도 합니다. 영화나 소설이나 사진이 “문제가 된다”고 할 때에는 어떤 잘잘못 때문에 이렇다 할 수 있는 한편, 사람들이 숱한 이야기를 하도록 이끌어 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 많고 탈 많은 작품”이라 할 수 있고 “숱한 이야기를 낳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입방아에 오르는 작품”이라 할 수 있으며 “도마에 오르는 작품”이라 할 수 있어요. 썩 안 좋은 쪽으로 흐른다면 “말밥이 되는 작품”이라고 하면 됩니다.

 

 문제적 인물 → 문제 되는 사람 / 말썽쟁이 / 골칫거리 / 눈여겨볼 사람
 문제적 영화 → 말 많은 영화 / 말썽 많은 영화 / 눈여겨볼 영화
 문제적 시각 → 깊이 살피는 눈길 / 깊은 눈길 / 꿰뚫어보는 눈
 이 같은 일은 문제적이다
→ 이 같은 일은 문제가 있다 / 이 같은 일은 말썽이 된다
 그 정책은 문제적이다
→ 그 정책은 문제가 있다 / 그 정책은 말썽투성이이다 / 그 정책은 말이 안 된다

 

  그나저나, 국어사전에 ‘문제적’은 안 실립니다. 꽤 많은 사람들이 퍽 자주 쓰는 낱말인데 따로 안 실립니다. 한자말은 거의 빠짐없이 실어 놓고 ‘-적’붙이 낱말은 어김없이 실어 놓는 우리네 국어사전인데, 용케 이 낱말은 안 실어 놓았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국어사전 매무새는 오히려 문제가 된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말삶을 말 많고 탈 많게 꾸려요. 우리 글삶을 말썽투성이로 내버려 두기까지 해요. 우리 말밭을 알차게 가꾸지 못하고, 우리 글밭을 야무지게 일구지 못합니다. 아름다운 길로 접어들지 못하고, 해맑은 자리를 마련하지 못합니다.


  살가이 나누는 말마디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넉넉히 함께하는 글줄을 여미지 않습니다. 그저 이냥저냥 흘러갑니다. 그예 아무렇게나 놓아 둡니다. 세상 물결은 너무 바빠맞고, 세상 물결에 휩쓸리는 사람들은 말이든 글이든 생각이든 마음이든 넋이든 얼이든 삶이든 목숨이든 다부지게 붙잡지 않습니다. 더 즐겁고 한결 빛나는 보금자리를 보듬지 않습니다. 온통 골칫거리요 말썽투성이입니다. 몽땅 엉터리입니다. 4340.4.2.달./4342.12.7.달./4345.11.26.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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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 중국을 다룬 첫 책이 흐리멍텅하고 엉터리인 탓에 우리가 새길을 떠나기에는 오히려 알맞다

 

..

 

 '-적' 없애야 말 된다
 (1542) 문제적 2 : 문제적 인간

 

대학시절 학생운동의 현장에서 같이 운동하는 동지였던 K는 내가 얼마나 문제적 인간인가를 알게 해 주었다
《박원순과 52명-내 인생의 첫 수업》(두리미디어,2009) 54쪽

 

  ‘대학시절(時節)’은 ‘대학 때’나 ‘대학을 다닐 때’로 다듬고, “학생운동의 현장(現場)에서”는 “학생운동 현장에서”나 “학생운동 판에서”로 다듬습니다. ‘동지(同志)’는 그대로 두어도 되나 ‘벗’으로 손볼 수 있고, ‘K는’은 ‘ㄱ은’으로 손봅니다. ‘인간(人間)’은 ‘사람’으로 손질해 줍니다.

 

 문제적 인간인가를
→ 문제투성이 사람인가를
→ 말썽 많은 사람인가를
→ 골치투성이인가를
→ 골아픈 사람인가를
→ 말썽쟁이인가를

→ 말썽꾸러기인가를
 …

 

  보기글을 하나하나 뜯어 봅니다. 이 글을 쓰신 분은 “동지였던 K”를 이야기합니다. “동지였던 ㄱ”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아마 오늘날 어느 글쟁이라 하더라도 ‘ㄱ’이라고 적바림하는 이는 없지 않으랴 싶습니다. 한결같이 ‘K’라고 적바림하지 싶습니다.


  알맞고 바르게 글을 쓰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 말글을 다루는 책이나 글쓰기를 이야기하는 책이 나날이 쏟아지지만, 어떻게 말하고 글쓰고 생각하고 나누어야 하는가를 돌아보는 책까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 말다운 우리 말이란 무엇인가를 살피는 책을 찾아보기 어렵고, 우리 글다운 우리 글이란 어떠한가를 톺아보는 책을 집어들기 힘듭니다.


  글쟁이나 지식인이 ‘문제적’을 들먹이는 모습은 더없이 자연스럽다고 느낍니다. 교수나 교사가 ‘문제적’ 같은 말투를 가다듬으려는 모습을 볼 수 없는 일이란 그지없이 마땅한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이 땅 어버이들이 아이들 앞에서 ‘문제적’과 같은 말투를 털어내며 알차고 싱그러운 말투를 물려주려는 생각을 못하는 모습이란 참으로 흔한 일이라고 느낍니다.

 

 내가 얼마나 못난 놈인가를 알게 해 주었다
 내가 얼마나 부끄러운 녀석인가를 알게 해 주었다
 내가 얼마나 철부지인가를 알게 해 주었다
 내가 얼마나 못난이였는가를 알게 해 주었다
 내가 얼마나 바보 같았는가를 알게 해 주었다
 …

 

  생각해 보면, 오늘날에는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아이들한테 말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 말을 가르쳐 주고 삶을 물려줄 할멈과 할배를 만나기 어렵습니다. 큰식구를 이루어 서로서로 배우고 가르치며 어우러지는 삶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어른은 어린이한테서 배우고, 어린이는 어른한테서 배우는 물줄기가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교사 자격증이 있어야 가르칠 수 있지 않은데, 어머니와 아버지로서 가르쳐야 하는데, 할머니와 할아버지로서 가르쳐야 하는데, 이제 모든 가르침과 배움은 자격증으로 학교 울타리 안쪽에서만 이루어집니다. 지식과 학문뿐 아니라 말과 글마저 교과서와 교재로 가르치고 배웁니다.


  삶을 다루는 말이 아니라 지식을 다루는 말입니다. 삶이 묻어나는 글이 아니라 지식을 쏟아붓는 글입니다. 삶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라 지식이 줄줄 흐르는 책입니다. 삶이 스며드는 책이 아니라 지식을 되풀이하는 책입니다. 아름다움을 찾지 않는 말이며 책입니다. 즐거움과 웃음과 눈물을 고이 담지 않는 말이며 책입니다. 사랑을 놓고 믿음을 저버리는 말이며 책입니다. 4342.12.7.달./4345.11.26.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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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 학생운동 현장에서 같이 싸우던 벗이었던 ㄱ은 내가 얼마나 철부지인가를 알게 해 주었다

 

..

 

 '-적' 없애야 말 된다
 (1655) 문제적 3 : 문제적 인간

 

1등의 효용을 과장하는 사람들은 2등부터의 사람들은 쓸모없는 문제적 인간으로 만들어 버린다
《오창익-십중팔구 한국에만 있는!》(삼인,2008) 156쪽

 

  “1등의 효용(效用)을 과장(誇張)하는”은 “1등이 도움된다고 부풀리는”으로 다듬을 수 있는데, 보기글 뒤쪽에 ‘쓸모없는’이라는 낱말이 나오니 “1등이 얼마나 쓸모있는가 떠드는”이나 “1등 만들기가 얼마나 쓸모 많은가 떠벌리는”처럼 손질할 수 있습니다. “2등부터의 사람들은”은 “2등부터는”이나 “2등인 사람부터는”으로 다듬고, ‘인간(人間)’은 ‘사람’으로 다듬습니다.

 

문제적 인간
→ 골칫거리
→ 말썽거리
→ 걸림돌
→ 말썽 많은 사람
→ 걸리적거리는 사람
 …

 

  보기글 흐름을 살핀다면 “쓸모없는 문젯거리 사람”처럼 길게 적기보다는 “쓸모없는 사람”처럼 단출하게 적을 때에 한결 낫습니다. ‘문젯거리 사람’은 ‘문젯거리’로만 적어도 되고, ‘골칫거리’나 ‘말썽거리’처럼 새롭게 적어도 됩니다. ‘걸림돌’이라 적을 수 있고, “쓸모없이 걸리적거리는 사람”처럼 적을 수 있어요. 밝히고 싶은 느낌을 가만히 돌아보면서 어떤 대목을 어떻게 못마땅히 여기는가를 적으면 됩니다. 4345.11.26.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1등 만들기가 쓸모있다고 떠벌리는 사람들은 2등부터는 쓸모없는 걸림돌로 만들어 버린다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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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52) -의 : 84장의 사진

 

84장의 사진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풍경이 모두 담겨 있었다
《강예린·이치훈-도서관 산책자》(반비,2012) 25쪽

 

  “겨울의 풍경(風景)이” 같은 말투는 사람들이 퍽 자주 쓰는데, “겨울 풍경이”처럼 적든지 “겨울 모습이”처럼 다듬어야 알맞습니다. “담겨 있었다”는 “담겼다”나 “담긴다”로 손질합니다.

 

 84장의 사진에는
→ 84장 사진에는
→ 사진 84장에는
→ 84장에 이르는 사진에는
→ 사진 84장마다
 …

 

  너무 뻔하다 싶은 잘못이지만, 마음을 옳게 기울이지 않으며 글을 쓰거나 말을 하기에 “몇 장의 사진”이나 “몇 잔의 물”이나 “몇 통의 편지”나 “몇 명의 사람”처럼 어그러지고 맙니다. 이 말잘못은 영어를 올바로 가르치지 못하니 자꾸 불거지는데,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영어를 가르치는 이들부터 스스로 한국말을 올바로 배운 다음 영어를 가르치지 않으니, 어설플 뿐더러 뒤틀린 말투로 ‘번역’이나 ‘해석’을 하며, 얄궂은 한국말이 되도록 이끕니다. 4345.11.2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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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84장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모습이 모두 담겼다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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