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도서관학교 일기 2016.11.22.)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도서관학교 숲노래 = 사진책도서관 + 한국말사전 배움터 + 숲놀이터’



  도서관학교 앞마당은 운동장입니다. 이 운동장에 예전에 어떤 나무를 잔뜩 심은 분이 있습니다. 나중에 나무이름을 알았는데 ‘유칼립투스’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몰랐으니 그러려니 했지만, 이 나무가 한창 잎이 짙푸를 적에는 냄새가 얼마나 그윽한지 몰라요. 비록 아무렇게나 몰아서 심었다고 하더라도 유칼립투스는 우리 마을에 매우 고운 숨결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도서관학교 앞마당에서 느긋하게 자라던 유칼립투스 몇 그루를 모질게 베었습니다. 우리가 도서관학교에 없는 사이에 몰래 베었어요. 틀림없이 이 마을 아저씨나 할아버지가 한 짓이겠지요. 이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모르니 그냥 베었을 테고, 이 나무는 우리를 괴롭힌 일도 없는데 뭔가 성풀이를 하려고 나무를 괴롭혔구나 싶어요. 남몰래 훔칠 적에도 도둑질이지만, 남몰래 나무를 괴롭힐 적에도 도둑질이라고 느낍니다. 스스로 바보가 되는 도둑질이 사라지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도서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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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다 (도서관학교 일기 2016.11.5.)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도서관학교 숲노래 = 사진책도서관 + 한국말사전 배움터 + 숲놀이터’



  어제에 이어 큰아이 바지를 꿰맵니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늘 신나고 개구지게 뛰어노는 터라, 이래저래 무릎이 잘 나갑니다. 꿰맬 곳을 살피니 모두 네 차례 꿰매야 하는구나 싶어, 서두르지 말고 느긋하게 하자고 생각합니다. 큰아이가 몹시 좋아하며 즐겨입는 바지이니 느긋하게 꿰매되 너무 미루지 말자고도 생각합니다. 한 시간 남짓 바느질을 하고 나서 등허리를 톡톡 두들기고는 책도 살짝 읽습니다. 《유럽 골목 여행》(숲속여우비,2016)인데 사진이 제법 투박하면서 싱그럽습니다. 글도 그리 군더더기 없습니다. 참말로 유럽 골목을 좋아하면서 걸었네 하는 생각이 물씬 듭니다. 바람이 살짝 서늘하게 바뀌는구나 하고 느끼기에 이제 도서관 문은 닫고 집으로 가자고 아이들한테 말합니다. 큰아이는 도서관으로 오는 길에 꺾은 산국을 한손에 챙깁니다. 아이들은 모두 저만치 앞장서서 달립니다. 한창 달린 다음에 뒤를 돌아보면서 아버지를 부르고, 또 한창 달린 다음에 뒤를 돌아보면서 아버지를 찾습니다. 아이들 마음과 목소리를 읽으며 집으로 돌아가서 저녁 지을 생각을 합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도서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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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닐 (도서관학교 일기 2016.11.17.)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도서관학교 숲노래 = 사진책도서관 + 한국말사전 배움터 + 숲놀이터’



  도서관학교 한쪽 끝자락에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습니다. 이 은행나무는 수없이 시달렸습니다. 굵은 밑동 아래쪽을 보면 톱질 자국이 있어요. 가지도 여러 차례 잘렸어요. 옆에 붙은 논에 그늘을 드리운다면서 마을에서 베어내려 했겠지요. 베려고 하다가 도무지 힘들어서 톱날 자국이 또렷한 채 이 자리에 그대로 있겠지요. 하도 시달리느라 가지도 제대로 못 뻗겠지요. 이 은행나무 둘레에 돋은 풀을 베고, 찔레나무도 벱니다. ‘찔레야, 부디 다른 곳에서 자라렴.’ 은행나무 둘레에 들딸기가 자랍니다. 제법 퍼진 모습을 봅니다. 이듬해 봄에 꽃이 많이 피고 열매도 많이 맺겠네 싶습니다. 은행나무 줄기를 타고 오르는 덩굴을 걷어내는데, 밑동 둘레에 비닐쓰레기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걷어내다 걷어내다 무겁고 너무 많아서 살짝 쉽니다. 따로 끈을 챙겨서 비닐쓰레기를 묶어서 큰길에 내다 놓아야겠어요. 참말로 어떤 분이 비닐농사를 짓고서 비닐쓰레기를 나무 옆에 잔뜩 내다 버릴 생각을 했을까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도서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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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도서관학교 일기 2016.11.12.)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도서관학교 숲노래 = 사진책도서관 + 한국말사전 배움터 + 숲놀이터’



  오늘 나는 오늘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살림을 짓습니다. 어제하고 다르면서, 어제랑 오늘을 거쳐 모레로 나아갈 길목에서 살림을 생각합니다. 우리는 늘 오늘을 누리는데, 내가 이곳에서 오늘을 느껴도, ‘오늘을 느끼는 때’에 곧바로 이 오늘은 어제가 되어요. 어느 모로 본다면 ‘어제(지난날)가 될 날’을 바로 ‘오늘 이곳에서 짓는’ 셈이라고도 할 만합니다. 이런 오늘 나는 도서관에 아이들을 이끌고 찾아와서 바느질을 합니다. 며칠 동안 서울마실을 하며 지친 몸을 달래는 데에는 얌전히 앉아서 조용히 손가락을 놀리는 바느질이 참 좋다고 느낍니다. 아이들은 도서관 둘레 풀밭을 마음껏 밟고 꽃삽으로 파헤치기에 재미나고, 아버지하고 공놀이도 하다가 숨을 돌리면서 상자집에 들어가서 만화책을 펴며 신납니다. 집에서 챙긴 감을 넉 알 썰어서 접시에 담아 내미니 씨앗만 남기고 말끔히 다 먹습니다. 그나저나 ‘오늘’인 2016년 11월 12일은 서울에서 대단한 촛불모임이 있는 날입니다. 11월 11일까지 서울마실을 마치고 그날 밤에 고흥 시골집으로 돌아오면서 ‘하루 더 있을까?’ 하고도 생각해 보았어요. 그러나 나흘 동안 길에서 보내기에는 그리 만만하지 않아요. 이날(오늘)에 맞춰 시골에서 서울로 찾아와 촛불을 들 분이 무척 많기도 할 테지만, 나는 서울마실을 하며 만난 두 군데 헌책방하고 한 군데 인문사회과학책방 이야기를 갈무리하기로 합니다. 요즈음 부쩍 눈길을 받는 독립책방과 달리 오랫동안 오직 책 하나를 바라보며 책살림을 가꾼 이웃님들 손길하고 꿈을 생각해 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아이들이 이 고즈넉한 시골에서 신나게 뛰놀 터전을 슬기롭게 닦아서, 이 터전이 우리 아이들을 비롯해서 온누리 아이들한테 ‘숲책놀이터’로 이쁘게 거듭날 수 있는 길을 되새겨 봅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도서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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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지 (도서관학교 일기 2016.11.4.)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도서관학교 숲노래 = 사진책도서관 + 한국말사전 배움터 + 숲놀이터’



  두 아이가 바지에 구멍을 냅니다. 작은아이는 작은아이대로, 큰아이는 큰아이대로 바지에 구멍을 내요.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이니 으레 넘어져서 무릎이 까지는데, 늦가을로 접어드는 터라 긴바지를 입고 놀다가 넘어졌기에 무릎보다는 바지 천이 찢어집니다. 먼저 흙바지를 잘 빨래해서 말립니다. 잘 마른 바지에다가 실바늘을 챙겨 도서관학교로 갑니다. 오늘은 풀베기를 멈춥니다. 바느질을 하기로 합니다. 손잡이 끈 이음새가 풀린 천바구니부터 기웁니다. 이러고 나서 큰아이 고양이바지를 기웁니다. 이동안 두 아이는 큰 상자에 그림을 그리느니 뭔가를 뚝딱거리느니 하면서 놉니다. 풀베기는 낫을 쥐고 온몸을 쓰는 일이라면, 바느질은 바늘을 쥐고 온마음을 쏟는 일입니다. 한 땀씩 천천히 기웁니다. 작은아이한테까지 작아서 못 입는 낡은 바지를 가위로 오려서 큰아이 고양이바지 무릎에 댄 뒤에 기웁니다. 큰아이는 두 무릎이 나갔으니 두 군데를 기워야 합니다. 한 군데를 다 기운 뒤 손을 번쩍 듭니다. 다 했다! 아니, 반을 했다! 슬슬 해가 기울고 저녁밥 지을 무렵입니다. 나머지는 이튿날 마저 하기로 하고 창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도서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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