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비 (도서관학교 일기 2016.12.2.)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도서관학교 숲노래 = 사진책도서관 + 한국말사전 배움터 + 숲놀이터’



  찬비가 내리는 날, 우체국에 부칠 책을 쌉니다. 이웃님이 우리 도서관학교로 찾아오십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지죽에 있는 도화헌미술관으로 나들이를 다녀옵니다. 수요일마다 ‘문화가 있는 날’ 행사를 전국 곳곳에서 한다는데, 고흥에서도 북을 치고 춤을 추는 공연을 이날 한다는군요. ‘문화가 있는 날’ 행사나 ‘문화융성’은 바로 요즈음 대통령이 내세운 문화정책입니다. 그런데 이 ‘문화가 있는 날’은 거의 다 ‘보여주기 공연’으로 뚝딱하고 끝나지 싶어요. 마을에 뿌리를 내리는 문화라든지, 두고두고 건사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문화로는 잇닿지 않는구나 싶습니다. 이 시골에서조차 자동차를 타고 ‘문화시설’을 찾아가서 구경하지 않고서는 이루지 못하는 ‘문화가 있는 날’이 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본다면, 문화는 공연문화만 있지 않아요. 책문화도 사진문화도 만화문화도 있어요. 시골 할매랑 할배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이끄는 그림문화도 있을 테고요. 마을 어린이나 푸름이가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돌고 마을 곳곳을 다니면서 ‘그림책 함께 읽기’나 ‘동화 읽어 주기’를 할 수 있고, 이러면서 마을 할매랑 할배한테서 옛이야기나 살아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요. 어쩌다 한 번 스치듯이 공연을 보여주고 사라지는 문화란, 한 번 스치고 지나가면 그저 덧없지 싶습니다. 구경만 하고 끝내는 놀이는 문화가 아닐 텐데 싶어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도서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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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도서관학교 일기 2016.11.27.)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도서관학교 숲노래 = 사진책도서관 + 한국말사전 배움터 + 숲놀이터’



  집 뒤꼍에 감나무가 있습니다. 감나무 둘레에서 초피나무가 싹이 텄습니다. 몇 해를 지켜보니 앙증맞은 어린나무가 됩니다. 이 어린나무를 큰 감나무 밑에 둘 수 없습니다. 초피나무가 살 수 없기도 할 테지만, 감나무한테도 안 좋을 테니까요. 어린 초피나무를 호미로 살살 긁어서 뿌리를 뽑습니다. 초피알에서 싹이 튼 이 어리고 멋진 아이들을 도서관학교로 옮기기로 합니다. 아무리 어려도 똑같은 나무이니, ‘다섯 그루’를 뽑아서 호미로 옮겨심습니다. 세 그루는 내가 심고, 두 그루는 큰아이가 심습니다. 우리 도서관학교는 올해로 열 살이지만, 고흥에서는 여섯 살입니다. 아직 퍽 어립니다. 어린 도서관학교에 어린나무 다섯 그루는 잘 어울릴 테지요. 걸거칠 것이 없는 너른 자리에서 어린나무가 무럭무럭 자라기를 빕니다. 나무 옮겨심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큰아이가 생쥐 한 마리를 봅니다. 죽은 채 논둑에 있습니다. 큰아이 손바닥으로도 움켜쥘 만큼 자그맣습니다. 마치 잠든듯이 꿈꾸는듯이 죽은 생쥐를 살며시 들어 대숲으로 옮겨 줍니다. 가랑잎으로 덮어 줍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도서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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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쇄 (도서관학교 일기 2016.11.23.)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도서관학교 숲노래 = 사진책도서관 + 한국말사전 배움터 + 숲놀이터’



  4쇄를 찍은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을 도서관학교 책시렁에 가만히 세워 놓습니다. 4쇄에는 겉그림에 “서울 서점인이 뽑은 2016 올해의 책”이라는 동글딱지가 척 붙습니다. 동글딱지가 참 멋지네 하고 생각하면서 쓰다듬습니다. 좋아 좋아, 스스로 북돋우는 노래를 부르고는 바로 이 늦가을에만 볼 수 있는 새빨간 나뭇잎을 한참 바라봅니다. 며칠만 지나도 모두 떨어질 가을잎이에요. 두 아이는 상자집에 들어가 만화책에 사로잡힙니다. 나는 사진책 《아! 공중만리》 이야기를 쓰려고, 김기찬 님 묵은 사진책 몇 권을 골마루에 눕혀 놓고 사진을 찍습니다. 김기찬 님은 ‘골목안’으로 들어서서 ‘골목사람’이 되었기에 《골목안 풍경》이라는 사진책을 내놓을 수 있었어요. 한겨레 사진기자인 강재훈 님이 내놓은 《아! 공중만리》는 그냥 스쳐서 지나가는 구경꾼이나 떠돌이 눈길로 찍은 사진이어서 참말로 그냥 겉스치는 모습만 흐르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어차피 찍는 사진이라면 ‘구경꾼보다는 마을사람(골목사람)’이 되어 찍으면 더없이 사랑스러울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 구태여 구경꾼으로 남기보다는 즐겁고 신나게 마을사람으로 녹아들면서 사진을 찍으면, 사진을 찍는 동안 웃음꽃이 흐드러질 텐데 싶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도서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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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결 (도서관학교 일기 2016.11.20.)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도서관학교 숲노래 = 사진책도서관 + 한국말사전 배움터 + 숲놀이터’



  가을에는 가을다운 숨결이 흐릅니다. 여름에는 여름다운 숨결이 흘렀어요. 겨울에는? 곧 찾아들 겨울에는 겨울다운 숨결이 흐를 테지요. 온나라에서 촛불모임으로 북적거리면서 시골마을 도서관학교는 고즈넉합니다. 이렇게 고즈넉할 적에는 고즈넉한 대로 찬찬히 풀을 베고 가을빛을 누립니다. 우리는 어디에 있든 언제나 한마음이라는 대목을 떠올려 봅니다. 아무리 가지가 잘려도 다시 씩씩하게 자라는 나무를 바라봅니다. 도서관학교 운동장에서 곱게 춤을 추는 억새를 바라봅니다. 이 늦가을에 함께 자전거를 타며 찬바람을 이기는 아이들하고 노래를 부릅니다. 스스로 고운 숨결이 될 적에 고운 말이 깨어나고, 고운 이야기가 흐르며, 고운 하루를 짓는다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도서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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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이 (도서관학교 일기 2016.11.3.)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도서관학교 숲노래 = 사진책도서관 + 한국말사전 배움터 + 숲놀이터’



  아이들하고 살면서, 또 곁님하고 살림을 하면서, 우리 삶에서 가장 크게 자리를 차지하는 한 가지를 꼽자면 으레 ‘놀이’를 들 만하다고 느낍니다. 놀이를 하는 아이들 하루이고, 놀이를 하듯이 짓는 어른들 살림이지 싶어요. 걷거나 달릴 적에도 놀이가 되고, 큰 상자를 소꿉집으로 삼을 적에도 놀이가 됩니다. 책을 읽을 적에도 놀이가 되고, 책을 읽든 낫을 쥐어 풀을 베든 모두 놀이가 되어요. 밥을 짓거나 설거지를 할 적에도, 자전거를 탈 적이나 마실을 다닐 적에도 놀이가 됩니다. 우리 삶은 놀이인 터라 일을 즐길 수 있고, 놀이하듯이 즐기는 일이기에 글이나 책이나 말이나 꿈도 모두 사랑스럽게 거듭날 만하지 싶어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도서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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