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과 사랑


 아이가 태어나 무럭무럭 자라서 어른이라는 몸이 되어 제 목숨을 누릴 때에는 꼭 세 가지를 돌아보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첫째는, 아이 스스로 제 목숨이 얼마나 고마운가를 느껴 저와 동무와 살붙이와 이웃이 다 달리 아름다운 사람인 줄을 알도록 하는 일입니다. 둘째는, 아이가 살아가는 나날을 어떻게 하면 아이 손으로 착하게 꾸릴 수 있는가를 깨닫도록 돕는 일입니다. 셋째는, 아이가 아이 삶과 어버이 삶과 이웃 삶과 동무 삶이 얼마나 사랑스러운가를 살펴서, 이 사랑스러운 삶을 참다이 껴안을 수 있도록 어깨동무하는 일입니다. (4344.6.1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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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 깃든 땀과 값과 꿈


 좋은 삶을 좋은 넋으로 일구면서 좋은 글을 쓰려고 좋은 땀을 흘려 좋은 책 하나 태어납니다. 좋은 책 하나 태어났을 때에는 좋은 일을 해서 번 좋은 돈으로 좋은 마실을 즐기면서 좋은 책방에서 좋은 손길을 내밀어 좋은 웃음을 주고받으면서 장만합니다. 좋은 마음이 되어 좋은 발걸음으로 좋은 골목을 천천히 거닐거나 좋은 자전거를 산들한들 달리며 좋은 보금자리로 돌아옵니다. 좋은 살림집에서 좋은 아이를 어루만지면서 좋은 푸성귀와 곡식으로 마련한 좋은 밥을 차려 좋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좋은 하루를 보냅니다. 좋은 잠자리를 펼쳐 좋은 자장노래를 부르면서 좋은 꿈을 맞아들이도록 하고, 살짝 좋은 틈을 내어 좋은 책에 서린 좋은 얼을 되새깁니다. 좋은 책을 좋은 매무새로 읽으면서 내 좋은 삶을 한결 좋은 길로 거듭나도록 보살피는 좋은 기운을 얻습니다. 좋은 땀이 깃든 좋은 책을 읽으면서 내 좋은 삶을 날마다 새롭게 북돋웁니다. 좋은 책은 나 스스로 좋아하는 어여쁜 일터에서 땀흘려 얻은 삯을 그러모아 장만합니다. 좋은 꿈은 좋은 책을 하나둘 꾸준하게 맞아들이면서 좋은 흙을 밟고 좋은 바람을 쐬며 좋은 햇살을 누리는 기쁨을 밑밥 삼아 키웁니다. 나날이 책을 사귀고 책을 만나며 책을 사랑하며 지내는 동안, 책삶은 사랑삶으로 뿌리내립니다. (4344.6.1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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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 지는 빛


 새벽 네 시 반, 달 지는 빛을 본다. 밭 가장자리에 오줌을 누면서 달 지는 빛만 마냥 바라본다. 고개를 돌려 맞은편 해 뜨는 빛을 함께 바라본다. 해가 뜨는 빛살이랑 달이 지는 빛살이랑 똑같다. 지는 달과 뜨는 해는 같은 빛무늬이다.

 어릴 적에도 달 지는 빛을 본 적 있었을까. 자주는 아니지만 드물게 보았다고 떠오른다. 아주 드물게, 몹시 드물게, 한 해에 한 번쯤, 두어 해에 한 번쯤 보았다고 떠오른다.

 달 지는 빛을 이야기한 어른이나 동무는 없었다. 달 지는 빛을 보여준 어른이나 동무도 없었다. 나 또한 동무한테 달 지는 빛을 보여줄 수 없었다. 돌이켜보니, 이제껏 살아오며 내 둘레 살붙이라든지 이웃한테 달 지는 빛을 이야기한 적조차 없었다고 느낀다.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이웃마을을 천천히 돌던 요 며칠 헉헉거리면서 생각해 보았다. 아버지 혼자 헉헉거리는 자전거마실이 아이한테 뜻이 있을까. 아이 또한 헉헉거리며 길을 달려야 보람이 있을까. 아이랑 어버이가 즐기는 자전거마실이란 무엇일까. 아주 머나먼 길을 달릴 때에 자전거마실이라 할 만할까. 아이를 수레에 태우는 일하고 자가용에 태우는 일은 얼마나 다를까. 나는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무슨 삶을 보여주고 어떤 길을 지나며 이렇게 함께 오가는가.

 자전거는 어느새 논둑길을 달리고, 아이는 내려 달라며 아버지를 부른다. 아이는 수레에서 내려 논둑길을 작은 발 콩콩거리면서 내닫는다. 벼포기를 바라보고 논물을 바라보며 먼 멧등성이를 바라본다. 아이가 바라보는 곳을 아버지가 바라보고, 아버지가 바라보는 데를 아이가 바라본다.

 밤오줌을 스스로 가릴 줄 아는 나이가 된다면, 우리 집 첫째도 머잖아 아버지하고 달 지는 빛을 함께 바라볼 수 있겠지. (4344.6.1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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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은 숲이 아니어도


 깊은 숲이 아니어도 나무 백 그루쯤 우거지면 새들이 아늑하게 둥지를 틀 수 있고, 푸른바람이 산들산들 시원합니다. 나무는 어느 나무라 하든 좋습니다. 굴참나무이든 떡갈나무이든 멧벚나무이든 물푸레나무이든 살구나무이든 오얏나무이든 뽕나무이든 다 좋습니다. 온갖 나무가 백 그루쯤 뒤섞여 우거져도 좋습니다.

 사람이 빚은 책이 될 때에는, 좋은 책이 아니어도 백 권쯤 모이면 사람들이 즐겁게 펼칠 수 있거나 고맙게 쥘 수 있거나 아름다이 누릴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람이 빚은 책은 이 책이든 저 책이든 가리지 않으면서 백 권쯤 갖춘다면, 또 천 권이나 만 권쯤 갖춘다면, 십만 권이나 백만 권쯤 갖춘다면 어떠할는지 궁금합니다.

 이 책 저 책이 있는 까닭은 이 책을 보고픈 사람과 저 책을 읽고픈 사람이 있기 때문일 테지요. 다 다른 사람들이 얼크러진 삶터이니 다 다른 사람들한테 도움이 될 온갖 책이 있을 만합니다. 그렇지만, 참으로 다 다른 사람들한테 다 달리 아름다울 책이 이렇거나 저렇게 있는 셈인지, 제법 팔리며 돈이 될 만한 책이 이렇거나 저렇게 있는 셈인지 아리송합니다.

 좋다고 할 만한 책이라면, 참으로 좋다고 할 만해서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한 책이라면, 천 권 만 권 십만 권 백만 권이 될 수도 있을 테지만, 꼭 백 권쯤만 알뜰히 추려, 책꽂이 하나 좋은 나무를 골라서 짠 다음, 얌전히 꽂고는 어른과 아이가 함께 즐길 때가 더없이 어여쁘리라 생각합니다. (4344.6.1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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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계와 책읽기


 기계를 안 쓰면 넓은 논밭을 언제 갈아엎으며 논을 언제 삶고 밭에 언제 이랑고랑 내느냐 할 오늘날입니다. 그런데, 흙을 일구는 사람은 목숨을 다스리는 사람입니다. 목숨을 다루는 사람이기에 품과 겨를을 들여서 일을 합니다.

 나는 내 두 아이뿐 아니라 이웃이나 동무가 낳아서 키우는 아이를 어떤 ‘주어진 시간표 틀’에 맞추어 지식을 쏙쏙 집어넣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나 스스로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든, 내 아이한테 책을 읽히든, 둘레 아이가 책을 읽도록 거들든, 지식이 아닌 삶으로 책을 받아들이도록 할 뿐입니다.

 기계를 쓰면 틀림없이 온갖 일을 훨씬 빨리 마무리짓습니다. 기계를 쓰면 팔과 손과 허리와 다리가 하나도 안 아프면서 빨래를 다 해냅니다. 기계를 쓰면 꽤 멀리까지 수월하게 오갈 수 있습니다. 기계를 쓰면 짐을 싣든 사람을 태우든 걱정할 일이 적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기계처럼 살고 싶지 않을 뿐더러, 내 몸뚱이를 쓸 수 있는 삶일 때에는 내 몸뚱이를 쓰고 싶습니다. 내 팔다리가 힘들 때에는 택시를 부르거나 버스를 타면 됩니다. 내 팔다리를 쓸 만하다면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몰면 됩니다. 내 손으로 빨래를 하면서 내 식구들 옷가지를 만지작거리고 두 아이 똥오줌 냄새를 손에 잔뜩 풍기면서 살아갑니다.

 나는 내 아이가 똑똑한 사람이거나 잘난 사람이거나 대단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나는 나부터 똑똑한 사람이거나 잘난 사람이거나 대단한 사람이 되기를 꿈꾸지 않습니다. 해야 할 일을 하는 착한 사람으로 살고, 할 수 있는 즐거움을 나누는 고운 사람으로 지내며, 하고픈 일을 사랑하는 참다운 사람으로 삶을 일구기를 비손합니다.

 책은 첫 줄부터 끝 줄까지 기계처럼 읽을 수 없습니다. 책읽기를 할 때에는 한 줄만 즈믄 번 읽을 수 있습니다. 한 줄이 좋아 두고두고 되읽을 수 있고, 때로는 휙 건너뛸 수 있습니다. 같은 책을 자꾸자꾸 읽을 수 있으며, 새로운 책만 찾아나설 수 있겠지요. 틀에 박을 수 없는 책이요 책읽기이듯, 틀에 박을 수 없는 삶이며 사랑입니다.

 기계를 써야 하느냐 안 써야 하느냐가 아닙니다. 어떤 기계를 왜 언제 어디에서 얼마나 누구하고 쓰느냐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막 세이레를 갓 지난 어린 아기가 새근새근 자는 살림집 곁으로 부릉부릉 큰소리를 내는 오토바이를 몰며 시골일을 한다면, 이와 같은 기계는 사람 삶에 무엇을 이바지하는 셈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는 바람이 거세게 분대서 잠을 깨지 않습니다. 아이는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 소리에 잠을 깨지 않습니다. 아이는 개구리 우는 소리에 잠을 깨지 않고, 뻐꾸기 높은 목청에 잠을 깨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는 기계 소리에는 어김없이 잠을 깹니다. 자동차나 오토바이 소리에는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아이는 텔레비전 소리에도 잠들지 못하는데, 호미나 괭이로 흙을 쪼는 소리에는 근심없이 잘 잡니다. (4344.6.13.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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