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한테 책 읽히는 누나 2


 아버지는 빨래를 하고 밥을 하느라 몹시 바쁘다. 식구들 밥을 먹이고 나서 설거지를 하며 밥상을 치우는데, 혼자서 방바닥을 잔뜩 어지르며 책을 읽던 첫째가 어느새 둘째 곁에 눕더니 그림책을 펼친다. 저번에 동생 곁에 누워 그림책 읽히던 일을 떠올렸을까. 그림책을 배에 얹어 한 장씩 넘기며 동생이 잘 들여다볼 수 있도록 펼친다. 조잘조잘 노래를 하듯 떠든다. 그림책을 읽는 말마디가 아니라, 이제껏 주워들은 온갖 말마디를 아무렇게나 잇고 섞고 엮어 떠든다.

 동생한테 그림책을 읽힌다며 번쩍 펼친 손이 동생 목을 누른다. 그래도 둘째는 저랑 놀아 준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서 좋은지 같이 웃고 떠든다. 설거지하느라 물에 젖은 손으로 사진기를 쥐고는 한참 바라본다. (4344.7.2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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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타기


 아버지가 두 달째 책짐을 꾸리느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도서관에서 복닥거리니, 멧골집에서 살아가지만 아이는 좀처럼 멧길 마실을 하지 못한다. 그래도, 책을 싸는 아버지 곁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며 이리저리 누비고 돌아다닌다. 아버지가 가위를 들어 끈을 잘라야 할 때면 제가 자르겠다며 손을 내민다. 아버지는 가위를 아이한테 건네어, 아이가 자르도록 한다.

 한창 떠들며 놀던 아이가 조용하다. 집으로 돌아갔나 싶어 두리번거리는데, 아이는 아버지가 싸서 차곡차곡 쌓은 책짐을 차근차근 밟고 높이 올라선다. 창가로 엉금엉금 기어가더니 꽤 큰 창문을 혼자서 연다. 창문을 열고는 “아, 시원해.” 하고 말하더니, “아버지, 저기 구름이 산에 앉았어.” 하고 덧붙인다. 며칠 앞서 아이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읍내 마실을 다녀오며 “저기 봐. 구름이 산에 앉았어요.” 하고 들려준 말을 고스란히 따라한다. 창문으로 내다 보이는 멧자락에 구름이 걸쳤는가 보다.

 멧등성이를 타며 멧풀을 뜯지 못하는 나날이기에, 도서관에서 책짐을 타면서 논다. 어서 책짐 싸기를 마치고 새로 옮길 자리를 찾아서, 아이하고 마음껏 멧길 마실을 하고 바닷길 나들이를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4344.7.2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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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가 좋아하는 소리


 어머니가 젖을 물리려고 바스락거리며 옷섶 여는 소리. 아버지가 재우려고 살포시 품에 안고 냇가에 서서 함께 듣는 물 흐르는 소리. 어머니가 보드랍게 속삭이듯 부르는 자장노래 소리. 아버지가 씻기려고 통에 물을 받고 나서 배냇저고리 끈이나 단추를 푸는 소리. 누나가 조잘조잘 읊거나 노래부르는 소리. 토닥토닥 품에 안아 따스하게 바라보려고 사뿐사뿐 다가오는 걸음 소리. 빨아서 다 말린 기저귀를 찬찬히 갠 다음 차곡차곡 쌓는 조용한 소리. (4344.7.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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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


 자전거는 바람을 가르며 달립니다. 앞에서 마주 부는 바람일 때에는 이 바람을 뚫습니다. 뒤에서 떠미는 바람일 때에는 이 바람을 업습니다. 바람이 부는 날 자전거를 달리면 그닥 시원하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지 않는 날 자전거를 달려야 비로소 시원합니다. 두 다리로 걸을 때에는 바람이 아주 세게 불지 않는다면 맞바람이든 등바람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은 땡볕을 거닐며 땀이 흐르고, 바람이 부는 날은 땡볕에서도 어느 만큼 견딜 만합니다.

 자동차도 때때로 바람에 흔들립니다. 그러나 바람이 불건 안 불건 자동차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지 않는 날에도 자동차는 에어컨을 틀면 되고, 창문을 열어도 됩니다. 바람이 부는 날에도 자동차는 에어컨을 틀면 그만일 뿐 아니라, 바람이 어떠한가를 느낄 수 없습니다. 바람이 불 때에 풀잎과 나뭇잎을 흔듭니다. 풀이 눕고 나뭇잎이 뒤집힙니다. 들판과 논에는 물결이 치고 하늘에는 구름이 흐릅니다. 그렇지만 풀과 나무를 도려낸 도시나 시골 읍내에서는 바람이 불 때에 쓰레기가 날리고 간판이 흔들립니다. 건물 사이사이 매섭게 때리는 된바람이 불 뿐입니다.

 바람이 부는 날, 바람소리에 잠겨 풀벌레나 개구리나 멧새가 우는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바람이 잠든 날, 온누리를 휘감는 풀벌레나 개구리나 멧새가 우는 소리로 시골집 둘레가 가득합니다. 바람이 불지 않는 무더운 여름 밤, 기저귀 빨래가 마르는지 안 마르는지 알 길이 없고, 네 살 아이는 이리 구르고 저리 뒤집으며 이불을 걷어찹니다. (4344.7.1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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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볕


 하늘을 올려다본다. 구름이 걷히면서 해가 난다. 언제 보고 이제서야 보는 해인가 헤아리면서 오늘 가장 먼저 할 일을 하나씩 어림한다. 무엇보다 빨래이다. 비가 그치지 않아서 할 수 없던 두꺼운 옷 빨래나 이불 빨래를 해야 한다. 이 좋은 햇볕을 듬뿍 쬐면서 숲에서 책 한 권 시원하게 읽을 수 있기를 바라지 못한다.

 아이들하고 살아가는 어버이라면, 아이들이 햇볕을 쬐며 멧길을 오르내리도록 마실을 다니자고 생각할밖에 없다. 아이들 옷가지가 햇볕을 쬐며 따사로운 기운을 듬뿍 받아들이기를 바랄밖에 없다.

 제아무리 좋다 하는 빨래기계를 쓴들 햇볕처럼 보송보송 말리지 못한다. 제아무리 좋다 하는 아파트에 산다 한들 햇볕을 머금은 바람처럼 바짝바짝 말리지 못한다. 햇볕을 흉내내거나 바람을 시늉한대서 햇볕처럼 따사롭거나 바람처럼 시원하지 않다. 흙을 따라한대서 흙처럼 모든 씨앗을 넉넉히 품으면서 뿌리가 내리도록 하고 줄기를 올리도록 하지 못한다.

 해를 바라보는 풀처럼 해를 바라보는 빨래이고, 해를 바라보는 나무처럼 해를 바라보는 사람이라고 느낀다. 해를 좋아하는 꽃처럼 해를 좋아하는 살결이요, 해를 사랑하는 흙처럼 해를 사랑하는 목숨이라고 느낀다.

 햇볕을 보니, 살아가는 하루를 새삼스레 깨닫는다. 햇볕을 쬐며, 살아숨쉬는 오늘을 다시금 고맙게 돌아본다. (4344.7.1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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