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지기


 날마다 세 시간 남짓 책을 만진다. 바닥에 신문종이 두 장을 깔고, 책을 스물다섯 권쯤 얹은 다음, 다시 신문종이 두 장을 위에 얹는다. 지난해에 쓰고 나서 갈무리한 끈뭉치를 다시 끄집어 내어 책을 천천히 묶는다.

 끈으로 묶은 책뭉치가 도서관 한쪽에 차츰 쌓인다. 한 해 만에 책을 다시 묶는다. 집일을 하는 틈을 쪼개어 조금씩 책을 묶는다. 책을 묶다가도 이내 집으로 돌아가서 일을 해야 하니까 느긋하지 않다. 책을 묶으며 이 책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샀고, 이 책을 읽으며 어떠했던가 하고 돌아보지 못한다. 그저 바삐 묶고 다시 묶으며 쌓을 뿐이다.

 집에서는 집에서대로 아이랑 집일이랑 복닥여야 하고, 도서관에서는 도서관에서대로 책묶기에 매달려야 한다. 하루에 한 쪽씩 꼬박꼬박 읽자고 다짐했던 삶인데, 요 며칠 동안 한 쪽조차 못 읽고 지나가는 하루가 되고 만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책이 내 삶으로 스며들 수 있을까. 눈코 뜰 사이 없는 사람은 무슨 책을 손에 쥘 만할까. 사람이 새벽부터 밤까지 쉴 겨를이 조금조차 없다면, 이 사람한테는 무슨 기쁨과 보람이 있다 할 만할까.

 느긋하거나 한갓지지 않다면 책을 읽을 수 없다고 하리라. 바빠도 바쁜 틈을 쪼개어 책을 읽는다 하리라. 그런데, 책이란 뭘까. 책 하나는 힘겹거나 고단한 사람한테 어떻게 마음밥이 될 만한가. 네 살 첫째 아이가 아버지가 책을 묶는 곁에서 뛰고 노래하면서 논다. 집일하는 보금자리에서는 혼자 그림책을 무릎에 얹어서 펼친다. 스스로 놀고 스스로 읽는 아이가 대견하다. 일하는 아버지 곁에서 놀고 읽는 아이가 고맙다. 등허리를 쿵쿵 두들기며 사진기를 살짝 들어 아이가 놀거나 읽는 모습을 사진으로 한두 장 적바림하면서 내 책읽기로 삼는다. (4344.7.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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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이가시


 오이에 가시가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겉에 오돌토돌 돋은 뭔가가 있구나 하고 느끼지만, 있거나 없거나 날로 그냥 먹어 버릇했다. 다른 사람이 먹도록 차릴 때에는 손바닥으로 슥슥 훑어서 썰었다.

 오이를 딸 때에 손바닥이 가시에 찔린다고들 한다. 그렇지만 나는 오이를 따며 장갑을 낀 일이 없다. 그냥 맨손으로 딴다. 뭔가 손바닥을 간질이지만, 이 간질이는 녀석이 가시라고 여기지 않았다.

 문득 예전 어머니들을 떠올린다. 빨래기계가 없던 지난날, 고무장갑이 없던 지난날, 실장갑이 없던 지난날 어머니들을 헤아린다. 집안일을 하든 집밖일을 하든, 으레 맨손으로 모든 일을 하던 어머니들을 생각한다.

 오이에는 틀림없이 가시가 있단다. 텃밭에서 오이를 따며 가만히 돌아보니 틀림없이 가시라 할 만하다. 두릅싹을 딸 때에도 두릅나무 가시에 찔려야 한다. 반창고라느니 연고라느니 하나도 없던 지난날 어머니들 손은 어떤 모양이었을까. 예쁘장하거나 연기가 빼어나다는 연예인이 역사연속극에서 ‘어머니 차림’으로 멋진 모습을 뽐내는 일은 흔할 테지만, 또 잘생기거나 울퉁불퉁한 힘살을 뽐내는 연예인이 역사연속극에서 ‘아버지 차림’으로 훌륭한 말을 들려주는 일은 흔할 테지만, 오늘을 살아숨쉬는 어머니하고 아버지는 어디에서 만나야 좋을까. (4344.7.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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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렁이 걱정


 엊저녁부터 빨래하는 방에 지렁이가 나타난다. 장마철 빗줄기가 그치지 않으니 이곳에까지 지렁이가 나오는가 보다. 지렁이가 살아가는 흙 속에 빗물이 너무 많이 고여 숨이 차기 때문일 테지. 퍼붓는 빗줄기라 하더라도 사이사이 한 시간쯤 쉰다면 밭에 물이 고이지 않을 테지만, 몇 시간 내리 퍼붓는 비일 때에는 제아무리 물빼기를 잘하는 밭이라 하더라도 물이 고이고 만다. 이렇게 되면 밭에서 살아가는 지렁이는 물에 잠겨 숨이 막혀 죽을 수밖에 없다.

 골목동네 인천 한켠에서 살던 때에도 비가 퍼붓는 날 골목마실을 하면 지렁이를 곧잘 보곤 했다. 조용한 동네 한켠에 꽃밭이나 텃밭을 일구는 분들 살림집 언저리에서는 어김없이 지렁이를 만난다. 그러나, 도시에 살던 지난날 지렁이를 참으로 걱정했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아, 지렁이가 여기에서도 사는구나, 하고 생각하거나 느낄 뿐이었다.

 멈출 길 없이 퍼붓는 빗줄기에 개똥벌레이며 파리이며 모기이며 어떻게 견딜까. 나비와 나방과 잠자리는 어떻게 먹이를 찾거나 날개를 말릴까. 도랑에 살던 도룡뇽과 개구리는 이 물결에 휩쓸리지 않을까. 아이 손을 잡고 우산을 받은 채 도랑 옆에 서서 거세게 구비치는 물결을 바라보았다. 문득, 푸른개구리 옛이야기가 떠올랐다. 사람 아닌 조그마한 개구리, 이 가운데에서도 더 작은 푸른개구리 눈으로 바라볼 때에 이 도랑물이 얼마나 무시무시할까. 푸른개구리한테 냇물은 바다요, 이 도랑만 하더라도 낙동강이나 압록강처럼 길고 커다라며 깊은 물줄기라고 느끼지 않을까. 퍼붓는 거센 비에는 굵직한 물줄기 둘레 땅도 무너지는데, 멧골짝 조그마한 도랑 둘레 흙이라 하면 금세 쓸리겠지.

 여러 날 길디길게 이어지는 빗줄기라 하더라도 부디 한 시간이나 두 시간씩 비가 쉬어, 멧새와 풀벌레와 흙벌레와 멧짐승이 먹이를 찾거나 몸을 말릴 겨를을 내준다면 하늘님과 구름님이 참말 고맙겠다. (4344.6.2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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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눈물 2011-06-26 21:10   좋아요 0 | URL
아...위에 도깨비 동화책도 그렇지만 내용이 왠지 옛 생각이 나는 것들이네요. 저도 오늘 아이하고 산책을 나갔습니다. 비가 퍼붓다 잠시 햇볓이 보이길래 너무 답답해서 나갔죠. 그런데 주차장(아파트에 삽니다) 바닥에 달팽이 한 마리가 있던군요. 요즘 아이가 걸을때마다 바닥을 보며 나뭇잎이나 돌맹이를 주우는 버릇이 있어, 저도 덩달아 지나다닐때마다 아이랑 길바닥을 보곤하죠. 그러다 달팽이를 보았습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아이랑 와이프랑 셋이서 꿈틀거리는 달팽이를 보았죠. 그러다 그 옆을 보니 그 무엇에 밝힌 달팽이들이 있더군요. 이것들에게 목숨이 이리 하찮을까요? 그 달팽이들을 보며 시골살때 비올때면 길바닥에 널려있던 지렁이 생각이 났었습니다. 지렁이가 왜 나오나 했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숲노래 2011-06-27 02:46   좋아요 0 | URL
작은 목숨들은 장마나 큰비에 물에 빠져 죽거든요. 사람들은 자동차를 타면서 이들 작은 목숨을 밟아서 죽이는데, 밟아서 죽이는 줄을 너무 쉽게 잊고 말아요......
 



 하이디는 왜 글을 배워야 하는가


 알프스 알름산에서 살아가던 하이디는 거짓말하는 이모 손에 이끌려 프랑크푸르트라는 큰도시로 갑니다. 흰눈이 덮이는 높은 멧봉우리에서 할아버지랑 양치기 오빠랑 염소랑 새랑 개랑 나무랑 벌판이랑 사귀고 싶은 하이디는 큰도시를 갑갑한 구멍이라고 느낍니다. 여덟 살 하이디가 할 줄 아는 일이란 염소젖 짜기입니다. 여덟 살 하이디는 글을 읽을 줄 모를 뿐더러, 책을 들여다본 적이 없습니다. 알프스 알름산에서 함께 살아가는 할아버지나 이웃 할머니나 양치기 오빠 또한 책을 들여다본 적이 없거나 책을 살필 일이 없습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집에 모여 수많은 일을 하고 수많은 돈을 벌거나 쓰면서 살아갑니다. 프랑크푸르트 구멍집 창문은 조그마할 뿐 아니라 좀처럼 열리지 않는데다가, 애써 창문을 연달지라도 똑같이 생긴 구멍집만 바라볼 뿐입니다. 드넓은 하늘과 벌판과 나무와 숲과 멧짐승과 멧새와 흰눈을 바라볼 수 없습니다. 매캐한 바람이 불고 매서운 마음씨만 가득합니다. 너른 곳에서 너른 바람이 불며 너른 마음으로 사귀는 사람을 더는 마주하기 힘듭니다.

 생각해 보면, 알프스 알름산에서 살아가는 사람일 때에는 굳이 종이에 새겨진 글을 읽을 까닭이 없습니다. 흰눈이 책이고 파란하늘이 책이며 푸른들과 우거진 숲이 책입니다. 염소젖을 짤 때에 몽클몽클한 젖퉁이가 책이고, 멧새가 우짖는 소리가 모조리 책이에요. 프랑크푸르트 같은 큰도시에서는 살가이 사귈 이웃이나 동무가 아니기 때문에, 혼자 외로우니까 종이에 새긴 글을 곰곰이 팔밖에 없습니다. 글을 읽고 쓸 줄 모른다면 큰도시에서는 일자리조차 얻을 수 없고, 일자리를 얻어 돈을 벌어들여도 느긋하거나 따숩게 쉴 보금자리를 마련하기는 힘듭니다.

 여덟 살 하이디는 글을 배워야 할까요. 여덟 살 하이디는 학교에 다녀야 즐거운 앞날이 열릴까요. 여덟 살 하이디는 글을 배우지 않고 깊은 멧봉우리에서 할아버지하고 둘이 살아가는 일이 괴롭거나 나쁜 일이 될까요. 여덟 살 하이디가 학교에 다닌다면 누가 무엇을 가르치며 하이디가 앞으로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가기를 바랄까요. (4344.6.2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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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되쓰는 끈으로 책을 묶기


 1995년부터 책을 끈으로 묶는 솜씨를 익혔습니다. 1995년에는 옥매듭 짓기를 잘 해내지 못했습니다. 1998년과 1999년에도 아직 서툴었습니다. 그러나 옥매듭 짓기가 서툴든 익숙하든 살림집을 옮겨야 했고 책을 묶어야 했습니다. 2000년 2001년 2002년이 되면서 옥매듭 짓기는 차츰 발돋움합니다. 해마다 잔뜩 늘어나는 책살림을 해마다 다시 묶고 풀면서 시나브로 손바닥에 굳은살이 두껍게 박힙니다. 2003년 2005년에는 손바닥 굳은살이 더 두꺼워지고, 책 묶는 솜씨는 한결 발돋움합니다. 2007년과 2008년에는 더는 책을 묶고 싶지 않았으나 또 책을 묶고 나르면서 옥매듭 짓기는 더욱 나아졌고, 2009년과 2010년에는 이제 마지막이라고 여기면서 또 묶고 또 풀면서 손바닥이 통째로 굳은살이 됩니다. 2008년에 태어난 첫째 똥오줌기저귀를 날마다 수십 장씩 빨면서 굳은살이 아주 단단해집니다.

 이제 내 손이 좀 쉬면서 책묶기 아닌 책읽기로 마무리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던 2011년 다시 책묶기를 합니다. 묶고 풀기를 되풀이하면서 책을 다루는 매무새는 차츰 거듭나는데, 나는 책을 사고파는 사람이 아니라 책을 읽는 사람인데, 책을 다루는 매무새가 이렇게 거듭나는 일이란 뭔가 하고 곰곰이 생각합니다. 책을 묶으며 땀방울이 이마에서 툭툭 떨어져 신문종이를 적시는 동안, 가만히 생각합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머니는 하루 내내 아이 곁에 붙어서 젖을 물리고 재우며 노래합니다. 한 달 두 달 석 달이 아닌 한 해 두 해 세 해입니다. 아이는 세 해쯤 되니 이제 스스로 마음껏 뛰놀며 제 살아갈 길을 찾아나서려는 모양새가 엿보입니다. 그러나 아직 아이 스스로 뭔가 일거리를 찾을 수 없으니, 더 오래 어버이가 곁에서 밥과 옷과 집을 사랑과 믿음으로 베풀어야겠지요.

 2011년에 또다시 책묶기를 하며 예전에 쓰던 끈을 꺼냅니다. 1995년부터 쓰던 끈 가운데 버린 끈은 얼마 안 됩니다. 너무 오래되거나 낡아 끊어지면 버리지만, 웬만해서는 안 버리고 1995년 끈까지 꽤 남아, 이 끈을 새로 잇고 덧대면서 2011년까지 고이 씁니다. 예전 끈을 늘 되쓰지만 되쓰는 끈으로는 해마다 새로 책묶기를 할 때면 으레 많이 모자라서, 지난날 쓰던 끈하고 견주면 곱배기로 장만해서 씁니다. 2010년에는 푸른끈을 아마 80개쯤 사다 썼지 싶어요.

 고뿔을 앓는 첫째는 새벽녘에 코피를 잔뜩 쏟고도 그냥 곯아떨어집니다. 얼굴 닦는 천에 물을 묻혀 아이 얼굴과 코 둘레를 닦고 코에 물을 몇 방울 넣습니다. 태어나던 병원에서 억지로 맞힌 철분제와 항생제 주사 때문에 몸앓이를 하는 둘째는 밤새 끄에끄에 소리를 내면서 잠투정을 하고 잠꼬대를 합니다. 아침이 되어서도 끄에끄에 소리는 그치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곁에서 토닥이며 젖을 물려 새근새근 재웁니다. 이제 아버지는 간밤 똥오줌기저귀 빨래를 신나게 해대면서 아침 미역국을 끓이고 밥을 해야겠지요. (4344.6.2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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