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여우 7
오치아이 사요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516



삶은 언제나 누구한테나 사랑스럽다

― 은여우 7

 오치아이 사요리 글·그림

 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5.4.30.



  아이를 낳아서 함께 살지 않는 사람은 아이하고 나누는 사랑을 어느 만큼 헤아리거나 알 만할까 하고 문득 생각해 봅니다. 내가 아이를 낳지 않고 혼자만 살았다면, 내가 하루 내내 아이를 돌보고 밥을 차려서 먹이고 입히고 씻기며 이것저것 손수 가르치고 보여주는 삶을 지내 보지 않았으면, 나는 무엇을 알거나 깨닫거나 느꼈을까 하고 문득 헤아려 봅니다. 나 스스로 아이와 함께 살지 않은 나날이었으면, 나를 낳아 돌본 어머니 마음을 얼마나 읽을 만했을까 하고 문득 곱씹어 봅니다. 곁님하고 아이들하고 시골마을에 보금자리에 마련해서 살림을 찬찬히 꾸리지 않았으면, 이 땅에 있는 수많은 ‘아줌마 이웃’ 마음을 어느 만큼 읽거나 살필 만했을까 하고 문득 되새겨 봅니다.





- “하루도 갈래?” “하루는 안 가! 그 여자애들 또 오면 어떡해! 이번에는 꼭 쫓아낼 거야!” “산책이나 그런 거 재미없어. 바깥은 북적북적 시끄럽기만 하고.” “그러니까 잠깐씩이라도 나가서 자꾸 익숙해져야지. 신의 사자도 요즘의 바깥 모습을 알아두면 좋잖아. 그래. 슈퍼에 가자! 감귤 사 줄게!” (12쪽)

- “여름뿐이라 짧게 느껴지지만, 그건 매미에게는 정해진 인생이니까.” “응.” “매미는 자기 인생을 열심히 살았으니까 괜찮아. 인간에게도 정해진 수명이 있는걸.” (18쪽)



  오치아이 사요리 님이 빚은 만화책 《은여우》(대원씨아이,2015) 일곱째 권을 읽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조촐한 일본 절집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가 일곱째 권에서도 차분하게 흐릅니다. 앞선 여섯 권과 일곱째 권을 나란히 놓고 살피면, 일곱째 권에서도 앞선 여섯 권과 마찬가지로 ‘대단한’ 이야기는 한 가지도 흐르지 않습니다. 모두 ‘수수한’ 이야기입니다. 흔한 이야기요, 너른 이야기입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보잘것없다고 할 만한 자잘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대단하지 않고 수수한 이야기를 엮은 만화책이 재미있습니다. 놀랍거나 짜릿하지 않고 투박하면서 흔한 이야기를 담은 만화책이 살갑습니다. 크거나 거룩한 이야기가 아니라, 어디에서나 마주할 만한 조그마한 이야기를 다룬 만화책이 사랑스럽습니다.





-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사람이든 뭐든 옛날과는 달라. 너도 신주가 되겠다고 결심한 순간, 지금까지와는 달라진 거야. 하지만 신사는 변하지 않을 거고, 나 역시도 그래. 앞으로도 사라질 때까지 내 인생을 살아갈 뿐이지. 너도 네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면 되는 거야.” (37쪽)

- “하고 안 하고는 별개로 쳐도, 좀더 자신감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63쪽)



  오월이 무르익는 봄날 저녁은 개구리 노랫소리가 어마어마합니다. 다만, 시골에서만 이렇습니다. 그리고, 시골이라 하더라도 면소재지나 읍내에서는 개구리 노랫소리를 듣기 어려워요. 시골에서도 면이나 읍하고 한참 떨어진 두멧자락이 되어야 개구리 노랫소리가 쩌렁쩌렁 울립니다.


  늦은 밤이 되어도 잠들지 않으려는 아이들을 이끌고 논둑길을 걷습니다. 등불 하나 없는 깜깜한 밤에 손전등조차 없이 논둑길을 걷습니다. 오늘은 비가 오면서 구름이 가득한 날이라, 밤에 별도 없습니다. 별빛에도 기대지 못하고 그저 스스로 밤눈을 밝히면서 논둑길을 걷습니다. 신나게 울어대는 개구리는 논둑길을 세 사람이 걷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아마 개구리 스스로 저희가 내는 우렁찬 노랫소리에 ‘사람 발자국 소리’쯤 쉽게 파묻히기 때문이리라 느낍니다.


  들녘 한복판에 이르러서 걸음을 멈춥니다. 두 아이와 함께 들녘 한복판에 서서 눈을 감습니다. 깜깜한 밤에 들녘 한복판에 서니 그야말로 개구리 노랫소리와 도랑물 소리가 크게 울립니다. 가슴이 벌렁벌렁 뛸 만큼 싱그러운 소리입니다.




- “하루의 기억을 나눠 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필요 없어. 저 녀석에게는 앞으로의 기억이 있잖아.” (117쪽)

- “그나저나 요리도 잘하시고 정말 대단하시네요! 저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아뇨, 아뇨. 그렇게 대단하지 못 해요. 사실 저도 처음에는 아무것도 못했으니까요. 아내가 일찍 세상을 떠났거든요. 마침 집에 있을 수 있는 직업이기도 했고, 마코토에게 엄마 노릇도 해 주고 싶어서, 누나에게서 배우고 친구에게서 배우고, 정말 필사적이었죠.” (150쪽)



  내가 시골집에서 아이들과 누리는 놀이는 대단하지 않습니다. 두 아이는 ‘잡기놀이’ 한 가지만 해도 한두 시간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노래하고 웃고 떠들면서 신납니다. 장난감 하나 없이 마당에서 평상을 사이에 두고 잡느니 잡히느니 하면서 사뿐사뿐 걷다가 달리기만 해도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열 번 스무 번 읽은 그림책이라 해도, 백 번 이백 번 다시 읽으면서 새롭습니다. 어느 그림책은 두 아이와 함께 살면서 천 번 이천 번을 읽기도 했습니다. 그리 이름난 그림책이 아니어도, 아이들 스스로 재미나다고 여기는 그림책이라 하면, 천 번 이천 번은 가볍게 되읽습니다. 되읽을 적마다 새롭고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흐릅니다.


  만화책 《은여우》 일곱째 권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이 만화책이 낱권책으로 어느새 일곱째 권이 나오고 머잖아 여덟째 권이 나올 텐데, 앞으로도 수수하면서 투박하고 자잘한 이야기가 가득하리라 느낍니다. 도드라지지 않지만 사랑스럽습니다. 눈에 뜨이지 않지만 아름답습니다. 너와 나는 모두 아름다운 사람이고, 나와 너는 모두 사랑스러운 이웃입니다. 아무래도 《은여우》라는 만화책은 늘 이 대목을 가만히 짚는구나 싶어요.





- “요시즈미 씨는 선생님 부탁으로 히와코를 돌보게 됐고, 아이들이 같은 학교, 같은 반 친구가 되고, 오늘도 우연히 마코토의 친구들이 집에 와서 저와 요시즈미 씨가 여기서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거죠.” “네에.” “그렇게 생각하면 참 대단하죠.” “대, 대단한 건가요?” “그럼요! 큰일은 아니지만 대단한 거예요.” (153쪽)



  선물꾸러미가 커야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선물이기만 하면 다 좋습니다. 그리고, 선물이 없어도 반갑습니다. 아이들은 할머니나 할아버지나 큰아버지나 이모나 외삼촌이나 이모부하고 목소리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어도 웃음을 그치지 못합니다. 전화로 나누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대수롭지 않습니다. 밥을 드셨느냐는 둥, 무엇을 하시느냐는 둥, 보고 싶다는 둥, 흔한 인사말이 오갈 뿐인데, 아이들은 전화기를 붙잡은 몸으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릅니다.


  책을 덮고 생각에 잠깁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아이들하고 날마다 부르는 놀이노래와 자장노래는 지난 여덟 해에 걸쳐서 하루에 한 차례씩 불렀다고 쳐도 삼천 번쯤 부른 셈입니다. 하루에 몇 차례씩 부른 노래라면 만 번을 부른 노래도 있는 셈입니다. 그러고 보니, 큰아이하고는 어느덧 삼천 날이 가깝도록 함께 살았고, 얼추 만 차례에 가깝게 밥상을 마주했습니다. 가만히 돌아보니 참으로 대단합니다. ‘큰일’은 아닐 테지만 대단합니다. 아니, ‘대단한’ 일도 아니라 할 테지만 멋집니다. 아니, ‘멋진’ 일도 아니라 할 테지만 재미있고 즐겁습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오래오래 두고두고 수수한 밥 한 그릇을 함께 나눌 테고, 수수한 노래를 함께 부를 테며, 수수한 놀이를 함께 즐기겠지요.


  삶은 언제나 누구한테나 사랑스럽습니다. 오늘 밤도 이 대목을 느끼면서 두 아이 이부자리를 여밉니다. 두 아이 사이에 가만히 누워서 두 아이 가슴을 살며시 토닥입니다. 4348.5.1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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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도 말해도
카츠타 번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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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515



잘해야 하는 말이 아니니까

― 말해도 말해도

 카츠타 번 그림

 사토 타카코 글

 시리얼 펴냄, 2011.6.25.



  나는 혀짤배기입니다. 혀가 짧아서 잘 못 내는 소리가 있습니다. 조금만 빨리 말하거나 서둘러 말하려고 하면 혀가 꼬이기 마련이고, 말을 곧잘 더듬습니다. 내가 어릴 적에 둘레에서는 이런 내 말투를 듣고 웃거나 놀리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럴 때면 나는 얼굴이 벌개져서 더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웃거나 말거나 놀리거나 말거나 대수롭지 않은 노릇이지만, 다른 사람 눈치를 볼 일이 없다는 대목을 깨닫기까지 꽤 오랜 나날이 걸렸습니다.


  말을 더듬든 걸음걸이가 엉성하든 아무것도 아닙니다. 누군가는 글씨가 엉성합니다. 누군가는 글을 잘 못 씁니다. 누군가는 밥을 잘 못 짓습니다. 누군가는 낫질을 잘 못 합니다. 누군가는 자동차를 못 몰고, 누군가는 자전거를 못 탑니다. 그런데, 이 모두 다 아무렇지 않아요. 그저 그럴 뿐입니다.




- “좀더 하나를 깊이 파야 해. 내가 한 걸 똑같이 따라하면 어쩌겠다는 거야? 연구를 안 하잖아. 자네는 머리가 나빠. 나 흉내내기도 아니고, 그러면 안 되잖아?” (11쪽)

- “그 아저씨는 그저 입을 놀렸을 뿐이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가 아니었어. 그게 마음에 안 들어서 나왔던 거라고!” (16쪽)



  사토 타카코 님이 쓴 글에 카츠타 번 님이 그림을 입힌 만화책 《말해도 말해도》(시리얼,2011)를 읽습니다. ‘라쿠코’라고 하는 ‘일본 전통 만담극’이 있다고 합니다. 이 일본 전통 만담극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만화책입니다. 먼저 소설로 나온 책이 있고, 이 소설은 영화로도 나왔습니다. 만화책은 맨 나중에 나옵니다. 소설과 영화를 알맞게 갈무리하면서 만화답게 새로운 숨결을 담아서 새로운 눈길로 보여줍니다.


  일본에서는 ‘전통 만담극’을 예나 이제나 꾸준하게 잇는다고 할 만합니다. 한국에서는 ‘전통 이야기마당’으로 무엇이 있을까요? 판소리가 있다고 할 만할까요? 그러면, 판소리를 여느 날 스스럼없이 들을 만한 무대가 있을까요? 농악이나 사물놀이를 여느 날 얼마든지 듣거나 즐길 만한 자리가 있을까요?




- ‘나도 여자애한테 늘 이런 것은 아니다. 이부코 씨는 특별하다. 한심할 정도로 말이 뜻대로 나오지 않는다. 그 녀석들은 언제나 이런 감정을 품고 있는 걸까.’ (31쪽)

- “젊은이는 말을 더듬나? 흐응, 그렇구만.” “그게 어쨌다는 거죠?” “응, 재미로 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 “재미로 하면 안 되나요?” “안 되지, 난 진지하거든,” “그거야 아저씨 사정이죠! 잘난 척하지 말아요. 야구선수인지 뭔지 모르지만 난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어요.” “뭐라고?” “대개는 라쿠고를 재미로 배워요. 하지만 여기에 오는 사람은 모두 사연이 있어요. 다들 인생을 걸었다고요.” (38∼39쪽)



  ‘라쿠코’를 여덟 해째 배우는 젊은이가 있습니다. 여덟 해째 배우지만 도무지 솜씨가 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젊은이한테 이 사람 저 사람이 찾아와서 ‘라쿠코’를 배우겠다고 합니다. 젊은이는 제 솜씨를 키우거나 갈고닦지 못해서 헤매는데, 그만 ‘제자’라고 해야 할는지 ‘문하생’이라고 해야 할는지, 아무튼 곁에 세 사람을 두고 라쿠코를 가르치는 자리에 섭니다.


  배우다가 길이 막혀서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면, 남을 가르쳐 보면 외려 길을 틀 수 있기도 합니다. 배우는 사람은 마냥 배우기만 할 수 없습니다. 배워서 제대로 알자면, 내가 배운 이야기를 둘레에 넉넉히 가르치거나 알릴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제대로 배우는 길이라면 둘레에 얼마든지 알려줄 수 있어요. 내가 똑똑히 배워서 슬기롭게 익힌다면, 내 둘레에서는 내 가르침을 받을 수 있어요.


  훌륭하거나 대단하다는 사람만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름나거나 잘난 사람만 가르치지 않습니다. 모름지기, ‘스스로 배우는’ 사람일 때에 ‘스스로 가르치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 “타츠야는 왕따 당한 적이 없지? 매일이 지옥이야.” (96쪽)

- “똑같은 다도회라는 것은 절대 없단다. 어느 다도회든 생에 단 한 번뿐이라는 마음으로 임하라는 뜻이야.” (100쪽)



  만화책 《말해도 말해도》에 나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해도 말해도’ 실마리를 풀지 못해 스스로 갑갑합니다. 내 마음을 둘레에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니 언제나 스스로 답답합니다. 삶을 즐겁게 누리면서 사랑을 기쁘게 가꾸고 싶은데, 막상 뜻대로 안 되니 괴롭습니다.


  이리하여, 갑갑하고 답답하고 괴로운 사람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입니다. 이제는 더 갑갑하기 싫고 답답하기 싫으며 괴롭기 싫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갑갑함이랑 답답함이랑 괴로움을 떨쳐내고 싶습니다. 앞으로는 환하게 웃고 맑게 노래하고 싶습니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삶을 사랑하는 길을 눈부시게 걷고 싶습니다. 말해도 안 되니 다시 말하고, 다시 말해도 안 되기에 거듭 말하며, 거듭 말해도 안 되니까 자꾸 말합니다.


  스스로 말합니다. 새롭게 말합니다. 씩씩하게 다시 일어납니다. 다시 일어나서 웃음지으려 합니다. 새롭게 웃음지으면서 삶을 지으려고 합니다. 오늘 안 되면, 모레에 다시 하고, 모레에도 안 되면 글피에 더 하려고 합니다.




- ‘누가 뭐라 해도 좋다. 지금 내가 가장 하고 싶은 방식으로 할 것이다.’ (114쪽)

- “싸움이나 승부가 아니라, 녀석을 웃겨 주자는 마음으로 부르면 어떨까? 남을 웃기는 건 기분 좋은 일이야.” (122쪽)

- “잘 들어, 무라바야시. 잘하려고 하지 마. 이건 네가 좋아하는 이야기야. 네가 말하고 웃을 정도로 좋아하는 이야기야. 그걸 관객에게 들려주는 거야. 대서비스를 하는 거지. 마야타한테도 말이야.” (125쪽)



  어떤 일이든 ‘잘해야’ 하지 않습니다. 어떤 일이든 ‘해야’ 합니다. 씩씩하게 해야 합니다. 즐겁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을 담아 아름답게 해야 합니다. 남이 무어라 하든 말든 아랑곳할 일이 없습니다. 내 걸음걸이가 엉성해 보이든 말든 나는 씩씩하게 걸어야 합니다. 엉성해 보이는 걸음걸이라서 걸음을 걷지 않으면, 앞으로도 끝내 걸음을 못 걷습니다. 엉성한 걸음걸이라 하더라도 걷고 다시 걷고 또 걸어야, 비로소 새로운 걸음이 되어 ‘엉성함’에서 스스로 풀려나 ‘맑고 밝은’ 걸음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혀가 꼬이고 더듬더듬 쭈뼛거려도 다시 말합니다. 말해도 말해도 자꾸 말더듬이가 된다 하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말합니다. 뒤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앞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으뜸이나 버금이 되겠다는 뜻이 아니라, 그야말로 내가 나답게 서서 웃음꽃이 피어나는 이야기잔치를 이루려는 뜻입니다. 웃으면서 말하고, 노래하면서 꿈꾸는 삶이 되려는 뜻입니다. 4348.5.15.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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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구리왕짜 2015-05-15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하지 못해서
아름답습니다
인간답습니다
 
유리가면 43
미우치 스즈에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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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13



한길을 가려는 몸짓

― 유리가면 43

 미우치 스즈에 글·그림

 서수진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09.8.15.



  누구나 한길을 걷습니다. 다만, 누구나 한길을 걷되 한길을 걷는지 안 걷는지 못 알아채기 일쑤입니다. 누구나 한삶을 짓습니다. 다만, 누구나 한삶을 짓되 내가 참말 내 한삶을 짓는지 아니면 갈 곳을 잃고 어지러이 헤매기만 하는지 모르기 일쑤입니다.


  곧게 이 길을 걷든 이리저리 헤매든 우리는 모두 한길을 걷습니다. 가시밭길을 걷거나 수렁에 빠지더라도 모두 한길을 걷습니다. 제자리걸음이나 쳇바퀴질 같아도 누구나 한길을 걷습니다. 나를 스스로 바라보면서 생각을 이으면 됩니다. 나를 스스로 아끼면서 사랑을 품으면 됩니다.




- “좋아하는 여자한테 자기 마음을 당당히 밝히다니, 참 남자답네요.” (27쪽)

- “웬일로 도쿄 하늘에 별이 다 보인대?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던데, 넌 빌어 본 적 없니?” “응.” “그래, 어떤 소원?” “근데, 이젠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 (33쪽)



  미우치 스즈에 님 만화책 《유리가면》(대원씨아이,2009) 마흔셋째 권을 읽으면서 ‘한길’을 곰곰이 헤아립니다. 연극 〈홍천녀〉에서 주연 배우가 되려고 하는 마야와 아유미가 있는데, 두 아이는 온힘을 그러모아 저희 나름대로 ‘새로운 홍천녀’가 되는 길을 걷습니다. 다른 어느 길도 두 아이 눈에는 안 보입니다. 두 아이는 저마다 새로운 홍천녀가 되어야 마음이 찹니다. 아유미로서는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마음이 큽니다. 어머니가 맡지 못한 배역인 홍천녀가 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어머니 그늘과 품에서 나와 홀가분하게 설 만하리라 여깁니다. 마야는 꼭 홍천녀라는 배역에 마음을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마야로서는 연극이기 때문에 홍천녀를 하고 싶은 마음이요, 수많은 유리가면 가운데 하나로 홍천녀에 마음이 갑니다.





- ‘대사 하나하나가 전부 아코야의 마음? 난 아코야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었어! 바람, 불, 물, 흙. 자연계를 움직이는 생명의 에너지! 아코야는 분명 당연한 듯이 알고 있었을 거야!’ (47쪽)

- “왜 그래? 이 나무도 살아 있는 거잖아. 인간처럼 말은 못 해도 아코야는 나무와도 얘길 나눴어.” (51쪽)

- “이대로 가면 그 녀석한테 승산은 없어. 있다면, 그 녀석이 얼마나 관객에게 자신이 ‘진짜’임을 깨닫게 하느냐겠지.” “진짜?” “그래, ‘진짜’. ‘진짜’ 홍천녀 말야.” (90∼91쪽)



  조금 더 헤아리자면, 마야가 홍천녀 배역을 하려는 까닭은 ‘사랑’ 때문입니다. 둘이지만 하나인 넋이고, 하나이지만 둘인 몸으로 사는 숨결을 잇는 끈을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모든 이름과 돈과 힘 따위를 내려놓고 마음과 마음이 다시 새롭게 만나서 이루는 사랑을 알고 싶어서 홍천녀 배역을 하고 싶습니다.


  아유미로 보나 마야로 보나, 두 아이는 모두 홀로서기를 바랍니다. 아유미는 이제 어머니와 아버지가 사는 집에서 나와 홀로 살림을 꾸리는 길을 걷고 싶습니다. 마야는 이제 ‘꼬마’가 아닌 ‘사랑’으로서 떳떳하게 서며 씩씩하게 한길을 걷고 싶습니다.


  서로 다른 자리에 있으나 서로 같은 꿈입니다. 서로 다른 마음이지만 서로 한마음입니다. 이리하여, 츠기카게 님은 두 아이더러 ‘홍천녀는 벌써 너희 마음에 다 있다’고 말했어요. 어느 한 가지 모습을 똑같이 따라해야 하는 홍천녀가 아니라, 아유미는 아유미대로 마야는 마야대로 제 삶을 스스로 깨달아서 제 힘으로 씩씩하게 걸어갈 수 있어야 비로소 ‘내 홍천녀’가 되고, ‘내 홍천녀’는 다른 사람 것에 휘둘리거나 이끌리거나 흉내내는 모습이 아닌, ‘오롯한 내’가 되는 삶입니다.





- “누구를 위해? 뭐 때문에? 왜! 홍천녀를 하려는 거지? 꼬마.” ‘마스미 씨!’ (99쪽)

- “아, 다행이다. 안 밟아서.” ‘벌레도, 풀도, 살아 있어. 흙이 생명을 키우고 있는 거야. 아코야가 캐는 약초도 분명, 생명을 지닌 풀. 분명 아프겠지? 미안해. 미안해.’ (120쪽)

- ‘따뜻해. 소중한 삶의 불! 분명 보물처럼 소중할 거야. 아코야의 불은! 혹시 매일의 삶 속에 아코야의 세계가 있는 게 아닐까? 아주 조금 모양만 바꿨을 뿐이고, 아코야의 세계는 언제든 눈앞에 있어. 흙도 물도 불도!’ (128쪽)



  아유미한테는 홍천녀 배역이 가장 높은 봉우리입니다. 마야한테는 홍천녀는 수많은 배역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유미는 홍천녀 연기를 하고 나면, 앞으로 다른 모든 연기가 ‘어려울 일도 쉬울 일도 없’는 똑같은 연기인 줄 알아차릴 만하리라 느낍니다. 마야는 홍천녀 연기를 하고 나면, 이제 삶과 사랑과 사람이라는 실마리를 풀어서, 스스로 옭아매었던 ‘난 연기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다’는 바보스러운 생각을 내려놓을 만하리라 느낍니다.


  이리하여, 만화책 《유리가면》은 두 아이가 저마다 제 허물을 벗고 일어나는 흐름을 차분히 보여줍니다. 마흔 해가 되도록 연재가 끝나지 못하는 만화책 《유리가면》인데, 어느 모로 보자면, 이 만화에서 보여줄 이야기는 다 끝났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츠기카게 님이 두 아이한테 ‘너희 마음속 홍천녀’를 말했을 때에 벌써 이야기는 다 끝났지요. 두 아이가 스스로 제 마음을 제대로 읽어서, 제 한길을 제 손과 발로 일굴 수 있으면, 앞으로는 홍천녀 배역이든 무슨 배역이든 가리거나 따질 까닭이 없다는 뜻을 밝혔으니, 마흔셋째 권이든 마흔아홉째 권이든, 언젠가 나올 쉰째 권이든, 모두 ‘같으면서 다른’ 이야기를 품습니다.





- ‘그럼, 아코야의 옷은? 집은? 누에고치와 식물에게서 실을 자아내고, 베틀로 천을 짜고, 의복을 만든다! 누에나 식물의 생명을 받아서 입는다!’ (131쪽)

- “다행이다. 한 송이라도 건져서. 한 송이라도.” (180쪽)



  《유리가면》 마흔셋째 권에서 마야는 비로소 제 마음을 안 숨기기로 합니다. 보라빛 장미를 건사하려는 몸짓을 여러 사람 앞에서 다부지게 보여줍니다. 한 송이라도 건지려고 하는 몸짓을 보여줍니다. 마야가 어떤 마음인가를 둘레 사람한테 아주 짙고 드세게 보여줍니다.


  마야는 바로 이 길을 가야 합니다. 마야는 바로 사랑을 가슴에 품고 삶을 노래하는 길을 가야 합니다. 마야는 마야 스스로 가슴에 품을 사랑을 알아야 홍천녀를 할 수 있습니다. 아유미라는 아이는 어떠할까요? 아유미라는 아이는 제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그늘을 제대로 깨달아서, 그냥 혼자서 씩씩하게 서면 됩니다. 굳이 어머니와 아버지네 집에서 살아야 할 까닭이 없고, 어느 모로 보면 굳이 그 집을 나와야 할 까닭도 없습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나는 나’인 줄 알아차려서 스스럼없이 바라보면 됩니다.


  아유미는 마야한테 시샘할 까닭이 없습니다. 아유미는 아유미 스스로도 ‘하늘이 내린 선물(천재)’을 넉넉히 한몸에 받을 줄 알고 느껴서 누리면 됩니다. 기쁨으로 삶을 누리고, 즐거움으로 삶을 노래하면 됩니다. 4348.5.15.쇠.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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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가면 42
미우치 스즈에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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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14



둘이 된 한 넋이 가는 길

― 유리가면 42

 미우치 스즈에 글·그림

 단행본 기획팀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05.5.15.



  두 아이는 다르게 놉니다. 두 아이는 서로 다른 목숨이니 다르게 놀밖에 없습니다. 네 아이가 있으면 네 아이가 다르게 놀고, 백 아이가 있으면 백 아이가 다르게 놉니다. 천 아이나 만 아이가 있으면 참말 천 가지나 만 가지 모습으로 다르게 놉니다.


  한집을 이루어 살아가는 두 사람이 있을 적에도 두 사람은 다르게 사랑합니다. 한마음이 되는 사랑을 같더라도, 두 사람이 사랑으로 다가오는 몸짓은 다르지요.


  다르기에 같을 수 있고, 같기에 다를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따로 살아온 발걸음처럼 다르지만, 앞으로 걸어갈 한길을 똑같이 어깨동무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지낸 나날이 같더라도, 그동안 마음으로 받아들여서 삭이고 가꾼 넋은 다를 수 있습니다. 한솥밥을 먹더라도 다 다른 사람이 저마다 다르게 먹습니다. 멀리 떨어져서 지내도 언제나 마음으로 만나면서 기쁘게 웃습니다.




- “아니에요, 마스미 씨. 저, 두 분 정말 잘 어울리세요. 약혼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마스미 씨, 전 이제 더 이상 ‘꼬마’가 아니니까, 그런 식으로 부르지 말아 주세요!“ (12∼13쪽)

- “알았나? 너희들도 신경쓰지 말도록! 상대는 상대! 나는 나! 스스로에게 자신을 가져라! 자기 자신밖에 할 수 없는 연기가 있어!” (37쪽)



  미우치 스즈에 님 만화책 《유리가면》(대원씨아이,2005) 마흔둘째 권을 읽으면, 마음이 흔들리다가 제자리를 잡고, 다시 마음이 흔들리다가 제자리를 찾는 마야 이야기가 흐릅니다. 그리고, 마야와는 다르지만 마음이 흔들거리다가도 언제나 새삼스레 차분하게 제자리를 되찾는 아유미 이야기가 흐릅니다. 두 아이는 서로 다른 마음결을 가꾸면서 삶을 짓습니다. 두 아이는 저마다 다른 마음씨를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삶을 빚습니다.


  다만, 두 아이는 아직 서툽니다. 스스로 우뚝 서기에는 아직 서툴고 어립니다.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서툴지 않습니다. 연기를 한 햇수가 길지 않아서 서툴지 않습니다. 두 아이가 하고 싶은 〈홍천녀〉라고 하는 연극은 바로 두 아이 마음속에 벌써 있으나, 아직 이 숨결을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에 서툴고 어립니다.





- “당신의 따뜻함이 좋아요. 이대로 시간이 멈춰 버려도 좋다고 생각할 정도랍니다.” (42쪽)

- “괜찮아, 할멈. 난 기타지마 마야한테는 없는 무기를 가지고 있으니까. 지지 않아. 걱정 마.” (49쪽)



  마야가 하는 연극을 아유미가 할 수 없습니다. 아유미가 하는 연극을 마야가 할 수 없습니다. 두 아이는 ‘한 가지 연극’을 ‘두 가지 이야기’로 풀어낼 수밖에 없습니다. 두 아이는 저희를 가르치고 이끈 스승님하고 똑같은 연극을 선보일 수 없습니다. 스승님은 스승님대로 이녁 삶을 바친 연극을 했습니다. 마야는 마야대로 제 삶을 바치는 연극을 해야 하고, 아유미는 아유미대로 제 삶을 바치는 연극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 두 아이는 서로 맞잡이로 지내야 하면서 동무입니다. 두 아이는 서로서로 지켜보면서 언제나 제(마야와 아유미) 마음속을 고이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합니다.




- ‘내가 왜 이러지? 이상해. 여긴 매화골, 사랑하는 사람은 이츠신인데, 왜?’ (65쪽)

- “미안해, 사쿠라코지. 지금까지 정말로 미안해! 난 최악의 상대 배우야.” (124쪽)

- “이 눈으로 본 적도 없는 존재를 믿을 수 있을 리 없지! 하지만 말이야, 자신이 믿지도 않는 걸 연기해 보이면, 관객은 그걸 믿을 수 있을까?” (135쪽)



  삶은 누구한테나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꼭 이 사람을 좋아해야 아름다운 삶이 되지 않습니다. 저 사람을 멀리한다든지 그 사람하고는 등을 져야 아름다운 삶이 되지 않아요. 그런데, 《유리가면》에서는 ‘영혼의 반쪽’이라는 말이 끊임없이 나옵니다. 처음에는 ‘한 넋’이었는데 ‘두 넋’으로 갈라진 사이라는 이야기가 가없이 흐릅니다.


  ‘둘이 된 한 넋’이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한 넋이 두 넋으로 나뉠 수 있을까요.


  곰곰이 돌아볼 노릇입니다. 모든 것은 언제나 하나에서 비롯합니다. 둘에서 둘이 비롯하지 않습니다. 하나에서 모든 것이 비롯합니다. 처음 하나에서 새로운 하나가 태어납니다. 그래서 ‘둘이 된’ 하나는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로 나뉜 하나’는 다른 몸을 입으나 언제나 한넋, 곧 한마음입니다. 이를테면 거울이라고 할 수 있고, 유리에 비친 내 얼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림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내 몸과 함께 늘 움직이는 고요한 그림자 말이지요.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 아니라 늘 하나입니다. 처음부터 하나였으니, 하나를 둘로 가랐다고 해서, 이 ‘둘로 나뉜 둘’을 더하면 한결같이 하나입니다.




- “하지만, 〈홍천녀〉의 무대 위에서 전 제 운명의 상대와 만날 수 있어요. 내 분신, ‘영혼의 반쪽’, 생명을 나눈 또 하나의 나 자신.” (157쪽)

- ‘마스미 씨, 보라색 장미의 사람! 이제 당신한테 사랑받지 않아도 좋아요! 한 사람의 여자로서 사랑받지 않아도 좋아요! 대신 당신에게 난 여배우로서 최고의 존재이고 싶어요! 내게 무한한 힘을 주는 세상에서 오직 한 사람뿐인 내 팬! 그러니 부탁이에요. 보라색 장미의 사람! 앞으로도 잘 지켜봐 주세요. 저와 제 홍천녀를! 저, 꿈을 향해 걸어가는 거예요! 지금은 그 첫걸음!’ (206∼207쪽)



  지구별을 이루는 목숨붙이는 모두 다릅니다. 이들은 모두 다른 삶을 누리면서 언제나 지구별을 이룹니다. 너와 내가 있습니다. 나와 네가 우리로 모입니다. 다 함께 지구별에서 바람을 마시고, 햇볕을 먹으며, 빗물과 이슬을 들이켭니다. 누구나 흙을 밟을 뿐 아니라, 흙에서 자라는 목숨을 받아들입니다. 밥도 옷도 집도 모두 이 땅, 이 지구별에서 테어나서 자랍니다.


  ‘둘이 된 한 넋’인 ‘영혼의 반쪽’은 목숨을 나눈 숨결이겠지요. 언제 어디에서나 한마음이 되고, 다른 몸에 깃들어서 살지만 늘 한곳을 바라봅니다. 한집에서 한사랑을 나누려 하고, 한꿈으로 나아가는 한길에 섭니다. 한뜻을 이루려고 온힘을 기울이니, 머잖아 둘은 처음으로 돌아가서 한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리가면》에 나오는 ‘보랏빛 장미로 찾아오는 사람’인 마스미 씨는 제 마음을 시원하게 털어놓지 못합니다. 이는 마야도 매한가지입니다. 둘은 마음으로는 만날 수 있고, 언제나 한마음이 되어 만나지만, 정작 이 마음을 제대로 바라보려 하지 않습니다. 주춤거립니다. 두려워 합니다. 모든 이름과 돈과 몸뚱이를 내려놓으면 되는데, 아직 이름도 돈도 몸뚱이도 내려놓지 못합니다. 둘은 언제쯤 모든 사슬을 홀가분하게 내려놓고는 한몸이 되는 한마음인 한삶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4348.5.8.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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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가면 6
스즈에 미우치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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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11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된다

― 유리가면 6

 미우치 스즈에 글·그림

 해외단행본팀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0.4.30.



  아침에 일어나서 마당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는데, 왜가리 한 마리가 날개를 활짝 펼치고 바람을 가르며 날아갑니다. 왜가리는 날갯짓을 하지 않고 날아갑니다. 높은 하늘에서 바람을 살며시 타고 물처럼 가볍게 흐르듯이 납니다.


  바람을 타는 맛이란 어떠할까 궁금합니다. 바람을 가만히 타고서 몸에 힘을 모두 빼고 하늘을 나는 기쁨이란 어떠할까 궁금합니다. 바람을 타고 하늘을 가르는 동안 몸에는 아무 힘이 안 들어갈 테고, 어디로든 바람과 함께 부드럽게 갈 테지요.


  내 몸은 이 땅에 있습니다. 내 마음은 이 땅에도 있고 하늘에도 있습니다. 살며시 눈을 감고 저 왜가리처럼 하늘을 온몸으로 맞아들이는 모습을 그립니다. 내 숨결이 바람과 하나가 되어 흐르는 모습을 헤아립니다.




- ‘해 봐라, 마야. 네 스스로 납득할 때까지. 자신이 생각하고 고통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새로운 역이 탄생하는 거란다.’ (8쪽)

- “얘, 넌 그저 엑스트라일 뿐인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니?” “하지만, 난, 연기하는 걸 좋아하니까. 그밖엔 아무것도 잘하는 게 없거든. 좋아하는 것만큼은 열심히 하고 싶어. 어릴 때부터 엄마가 늘 말했어. 아무 쓸모없는 못난 것이라고. 하지만 연기하고 있을 때만큼은 어쩐지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어.” (21∼22쪽)



  미우치 스즈에 님 만화책 《유리가면》(대원씨아이,2010) 여섯째 권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유리가면》 여섯째 권에서 ‘마야’는 저 스스로 걷는 연극길이 어떠한 삶인가를 차분히 돌아봅니다. 주연이건 조연이건 단역이건, 무대에 설 수 있는 보람이 무엇인가를 가만히 되새깁니다.


  연극과 숨결이 다른 영화에도 나와 보면서, 무대는 달라도 사람들한테 다가서는 마음이 같다는 대목을 읽습니다. 연기와 무대로 보여주려는 이야기는 바로 사람들 가슴에 아름다운 노래로구나 하고 찬찬히 깨닫습니다.





- ‘난 할 거야! 아무리 작은 역할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내일을 향한 첫걸음. 내일을 위한 시작. 내일을 향한!’ (32∼33쪽)

- ‘기쁘다. 내 연기가 돈이 되다니. 다행이다. 이걸로 교재비를 낼 수 있게 됐어.’ (38쪽)

- “어떤 인물이냐고? 행인이야, 행인!” “예, 하지만 노인인지 젊은이인지 어린애인지, 부자인지 가난한지 귀족인지 상인인지, 거기에 따라 삶의 방식도 상당히 다를 텐데.” (54쪽)



  언제나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됩니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스스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니 아름답게 됩니다. 스스로 밉다고 생각하니 밉게 됩니다. 그러니까, 마야는 마야 스스로 여왕이라고 생각하니 여왕이 됩니다. 마야는 마야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연극을 하니까 ‘살아서 숨쉬는 느낌’이 들면서 기쁘게 웃고 노래할 수 있습니다.


  제자리걸음을 걷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앞으로 나아가려고 한 발짝 내딛습니다. 뒷걸음을 치지 않으려고 힘을 냅니다. 오늘 이곳에서 모레로 차근차근 나아가려고 온힘을 모읍니다.


  살아서 숨을 쉬는 사람인 줄 알려고 이 길을 걷습니다. 살아서 숨을 쉴 뿐 아니라, 웃고 노래하면서 사랑을 짓는 아름다운 사람인 줄 알려고 이 길을 갑니다. 살아서 숨을 쉬는 동안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삶을 지으려고 이 길에 섭니다.




- ‘여왕님! 아아, 나 여왕님이 되는 거야. 멍청하고 열등생인 내가 여왕님으로. 거짓말 같아. 연극이라서 할 수 있는 거야. 아무리 본모습은 볼품없어도 여왕의 가면을 쓰고 여왕의 인생을 살아가는 거야. 그리고 그 가면을 쓰고 있는 동안만은, 나는 내가 아니야. 난 지금 여왕님이 되는 거야.’ (60∼61쪽)

- “왜 그러니, 아유미? 그 다음은.” “죄송합니다. 선생님, 여러분. 지금 것을 다시 한 번 하게 해 주세요. 안 돼요. 왠지 진짜가 아냐. 역에 동화되지 않아요. 그저 거지 역을 연기하고 있는 것 같아서.” (93쪽)



  꿈을 생각하는 사람은 꿈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꿈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어디로 나아가야 할는지 알지 못합니다. 꿈을 생각하는 사람은 꿈으로 나아가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스스로 찾고 살핍니다. 꿈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어디로 나아가야 할는지 모르니, 이리저리 헤매거나 부딪힙니다.


  꿈을 생각하기에 가시밭길을 가시밭길로 여기지 않고 씩씩하게 나아갑니다. 꿈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채 멍하니 걸어가니, 가시밭길이 나오면 짜증스럽고 걸림돌이 보이면 갑갑합니다.


  스스로 가꾸는 마음에 따라 하루가 달라집니다. 내 마음에 즐거운 노래를 실으면 어떤 일을 겪든 그저 즐겁게 맞아들이면서 새롭게 추스릅니다. 내 마음에 즐거운 노래를 싣지 못하면 아무리 놀랍거나 멋지거나 고마운 일을 겪더라도 제대로 즐기거나 누리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 ‘해야 해. 할 거야, 연극을! 단 한 사람이라도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는걸. 기다려 주고 있어. 내 연극을. 아무것도 아닌 나를.’ (107쪽)

- “지금의 그 애로서는 멀었다고, 츠기카게 씨가 그렇게 말했다고? 지금 그 애로서는 멀었다고.” “예, 예, 분명 그렇게 말했다고. 그렇지?” “그래? 그렇다면 그 애가 미래의 〈홍천녀〉라는 거군.” (119쪽)



  연극을 하는 마야는 스스로 생각합니다.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합니다. 연극을 하면서 마야는 스스로 생각합니다. 여러 사람들한테 나누어 줄 수 있는 빛과 고요를 생각하고, 이웃하고 나눌 수 있는 웃음과 눈물을 생각하며, 동무와 함께 나누는 사랑과 꿈을 생각합니다.


  연기를 하려고 하는 연기가 아닙니다. 연극을 하려고 하는 연극이 아닙니다. 무대에 서려고 세우는 무대가 아닙니다. 꿈이 있기에 연기를 하고, 꿈을 이루는 길에서 즐겁기에 연극을 합니다. 꿈으로 나아가면서 무대에 서고, 꿈을 활짝 피우려고 무대에서 춤을 추고 노래합니다. 4348.5.5.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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