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여우 10
오치아이 사요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561



‘어떤 사랑’을 받고 싶은가요

― 은여우 10

 오치아이 사요리 글·그림

 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5.8.31. 5000원



  사랑을 받고 싶으면 사랑을 받으면 됩니다. 사랑을 주고 싶다면 사랑을 주면 됩니다. 다만, 하나를 알아야 합니다. 사랑을 주고받으려는 뜻이 있으면 사랑을 주고받으면 될 노릇이지만, 사랑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사랑을 받고 싶다고 해서 ‘받는 사랑’은 남이 나한테 선물을 했기에 받을 수 있는 사랑이 아니라, 스스로 마음속에서 길어올린 사랑입니다. 사랑을 주고 싶다고 해서 ‘주는 사랑’은 내가 너한테 선물로 건넬 수 있기에 주는 사랑이 아니라, 네 마음속에 잠자던 사랑을 북돋우거나 깨워서 일어난 사랑입니다.



“미안해. 괜히 신경 쓰게 해서. 아저씨한테도.” “괜찮아, 괜찮아. 이런 일도 있지!” (24쪽)


‘신사가 집이면 어떤 느낌일까. 나는 마코토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네.’ (42쪽)



  오치아이 사요리 님 만화책 《은여우》(대원씨아이,2015) 열째 권을 읽으면서 생각해 봅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좋아하는 마음이란 무엇일까요?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할 적에 이 마음은 거짓이 아니에요. 참입니다. 다만,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 ‘너를 사랑하는 내 마음’이 다른 사람들 마음보다 크지 않아요. 또 작지도 않지요. 네가 나한테서 사랑을 받으니까 네가 가장 즐겁거나 기쁘지 않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할 적에는 내 마음이 움직일 뿐입니다. 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요. 이 대목을 잘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 할 적에는 서로가 서로를 스스로 아끼면서 삶을 곱게 짓는 슬기로운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함께 어깨동무를 하면서 하루를 짓는 사이요, 함께 이 길을 걸으면서 씩씩하게 웃고 노래하는 사이라는 뜻입니다.



“나야말로 우리 마코토와 늘 사이좋게 지내 줘서 고맙구나. 앞으로도 마코토 잘 좀 부탁한다.” (62쪽)


“너, 마코토 좋아해?” “안 좋아해.” (71∼72쪽)



  내가 나를 사랑할 줄 알 때에 비로소 내 몸짓이 바뀝니다. 내 몸짓이 바뀔 적에 나하고 마주하는 네가 이 몸짓을 문득 알아챕니다. 내 달라진 몸짓을 알아챈 너는 너 스스로도 네 몸짓을 새롭게 가꾸고 싶다는 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이때에 너는 너대로 네 마음속에서 그동안 잠자던 사랑을 일으키지요. 나는 나대로 내 사랑이고 너는 너대로 네 사랑이기에 너와 나는 ‘한사랑’으로 만날 수 있어요.


  다시 말하자면, 주고받는 사랑이 아닙니다. 함께 있으면서 하나로 흐르는 사랑입니다. 함께 어우러지면서 하나로 어여쁜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너를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건 말건 대수롭지 않아요. 사랑은 홀로 차지하지 못합니다. 아니, 사랑을 홀로 차지하겠다고 하는 마음이야말로 ‘사랑이 아닌’ 바보짓이지요. 사랑은 ‘소유’가 아닙니다.



‘다다음주. 엄마의 기일. 아빠는 나와 비슷한 나이에 엄마를 만났다고 했어. 엄마는 내 나이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115쪽)


“바보라 해도, 그게 나쁜 건 전혀 아니니까. 지금의 히와코는 정말 예쁜걸.” (162쪽)



  만화책 《은여우》에 나오는 풋풋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는 삶일까요? 마음이 따뜻하게 피어나는 기운을 느끼는 아이들은 이 기운이 무엇이라고 알아챌 수 있을까요?


  내가 네 곁에 있으면서 너를 지켜보거나 보살필 수 있자면, 나는 먼저 나를 제대로 바라보면서 나를 지키거나 보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나 스스로 나를 지키거나 보살피지 못한다면, 나는 네 곁에 서지도 못해요.


  스스로 꿋꿋하면서 씩씩한 숨결이기에 내가 나를 사랑합니다. 스스로 싱그러우면서 맑은 넋이기에 내가 나를 보듬으면서 아낍니다. 사랑은 내가 나를 어루만지면서 나를 둘러싼 모든 숨결하고 넋을 어루만지는 바람하고 같습니다.



“긴타로도 알고 있었으면 진작 알려줬으면 좋았을 텐데.” “에츠코한테서 들었으니 이제 됐잖아. 그게 전부야.” “아빠랑 엄마 사이를 반대했다는 얘기는 해 줬으면서.” “윽.” “긴타로는 여기서 줄곧 많은 것들을 봐 왔구나.” “나무도 숲도 신사도, 옛날부터 있던 일 전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전해 주지 않아. 우리는 그저 잠자코 지켜볼 뿐이야. 다른 인간은 아무도 우리에게 뭔가를 들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어.” (205∼206쪽)



  사랑은 거머쥐지 않습니다. 사랑은 마음속에서 일으킵니다. 사랑은 불쑥 찾아오거나 문득 지나가지 않습니다. 사랑은 늘 마음속에서 나를 기다립니다. 눈을 뜬다면 사랑을 봅니다. 눈을 감는다면 사랑을 못 봅니다. 눈을 뜨고 마음을 열기에 사랑이 흐릅니다. 눈도 안 뜨고 마음도 안 연다면 사랑은 흐르지 않아요.


  ‘어떤 사랑’을 받고 싶은지 생각해 보셔요. ‘어떤 사랑’으로 내가 나를 아끼려 하는지 생각해 보셔요.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어떤 사랑’을 느끼면서 저마다 스스로 기쁘며 아름다운 나날을 가꾸도록 손을 내밀고 싶은지 생각해 보셔요. 4348.10.12.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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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 동경대 가다! 20 (신장판) - KBS 드라마 '공부의 신' 원작
미타 노리후사 지음, 김완 옮김 / 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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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62



서울대에 들어가도 꿈이 없으면 바보짓

― 꼴찌, 동경대 가다! 20

 미타 노리후사 글·그림

 김완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2010.1.4. 4500원



  꼴찌는 꼴찌입니다. 꼴찌이면서 서울대에 갈 수 있고, 꼴찌이면서 고등학교마저 그만둘 수 있습니다. 어느 길이든 다 갈 수 있습니다. 으뜸은 으뜸입니다. 으뜸이면서 서울대에 갈 수 있고, 으뜸이면서 고등학교를 그만둘 수 있습니다. 어느 길이든 마음대로 갈 수 있습니다.


  서울대에 가거나 안 가거나 대수롭지 않습니다. 스스로 가려는 길이기에 갑니다. 스스로 가려는 길이 아니지만 졸업장이나 이름값을 얻으려고 서울대에 간다면 참으로 덧없으면서 괴롭습니다.


  졸업장으로 무엇을 할까요? 이름값으로 무엇을 하나요? 졸업장은 삶을 밝히지 않습니다. 이름값은 사랑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시험 사이사이 쉬는 시간에 지난 과목 답을 맞춰 보는 짓을 절대 하지 말도록. 실수한 걸 알아봤자 동요만 할 뿐, 해결할 방법도 없다. 시간 낭비야. 끝난 과목은 머리에서 지워 버리고 남은 일들만 생각해. 시험에 임하는 자세는 언제나 ‘앞으로’다!” (41쪽)


“강자는 자신을 믿고 뻔뻔해질 수 있지만, 평범한 사람이 그러려면, 각오를 다지는 수밖에 없어.” (70쪽)



  미타 노리후사 님 만화책 《꼴찌, 동경대 가다》(랜덤하우스코리아,2010) 스무째 권을 읽으면, 이 만화책 두 주인공이 드디어 동경대 시험을 치르는 모습이 나옵니다. 두 아이는 동경대 시험을 치르려고 한 해 내내 죽어라 시험공부를 했습니다. 두 아이는 다른 대학교는 거들떠보지 않고 오로지 동경대만 바라보았습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두 아이는 ‘졸업장’ 때문에 동경대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한 아이는 등록금이 쌀 뿐 아니라 새로운 삶을 스스로 짓는 꿈으로 나아가려는 첫걸음으로 동경대를 바라봅니다. 다른 아이는 집안 식구들 눈초리를 받지 않는 홀가분한 삶을 생각할 뿐 아니라 스스로 옭아매던 울타리를 뛰어넘으려는 첫걸음으로 동경대를 바라봅니다.


  두 아이한테는 ‘굳이 동경대가 아니어’도 됩니다. 그러나 ‘애써 동경대를 고른’ 까닭은 ‘사회에서 첫손으로 꼽는 대학교’라고 하는 ‘울타리’를 ‘스스로’ 뛰어넘거나 허물고 싶기 때문입니다. ‘자기 한계’라고 하는 울타리를 스스로 없애면서 ‘내 꿈’을 이제부터 키우고 싶기 때문입니다.



“결코 새로운 문제는 나오지 않아. 평소 풀던 연습문제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것뿐이다. 공부건, 스포츠건 연습대로만 하면 대체로 성공하게 돼 있어. 세상 웬만한 일들은 평소대로만 하면 잘 되는 법이야.” (92쪽)


“자는 것도 먹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공부에 몰두한다. 끈질기게, 무아지경이 돼서 죽을 만큼 공부한다!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거야.” (147쪽)



  한국에서 서울대에 들어가도 꿈이 없으면 바보짓일 뿐입니다. 일본에서 동경대에 들어가도 꿈이 없으면 똑같이 바보짓이에요. 이리하여, 한국이나 일본 모두 서울대나 동경대를 나오고 나서 바보짓을 하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손꼽히는 대학교를 마쳤으나 슬기롭지 못한 몸짓과 말짓으로 바보짓을 일삼는 사람이 제법 많습니다.


  사람들은 왜 바보짓을 할까요? 생각을 키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왜 생각을 키우지 않았을까요? 아직 꿈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꿈이 없을까요? 시험공부만 바라보느라 정작 꿈을 돌아볼 겨를이 없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이 교사에 대한 신뢰를 잃는 순간은 언제일까? 그건, 이제까지 들었던 이야기가 거짓말이란 걸 알았을 때야.” (178쪽)


“사람은 일에서건 무엇에서건 끝마무리를 딱 지어 두려 하지만, 이건 에너지를 비효율적으로 쓰는 셈이지. 조금만 남겨두고 다음날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이건 스트레스를 쌓지 않고 매사를 원활히 진행하는 비결이야.” (202쪽)



  만화책 《꼴찌, 동경대 가다》를 읽으면 시험공부를 어떻게 맞이하고 수험생으로서 어떤 마음이 될 때에 씩씩할 수 있는가 같은 대목을 잘 엿볼 수 있습니다. 대학입시를 앞둔 수험생이라면 이 만화책을 찬찬히 읽을 만하리라 느낍니다.


  다만, ‘입시 비결’을 바라면서 이 만화책을 읽는다면 부질없겠지요. ‘입시 비결’이 아닌 ‘내 꿈 찾기’를 생각하면서 이러한 만화책을 읽어야지요. 참고서나 교과서나 자습서나 문제집을 왜 들여다보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시험점수를 잘 맞으려고 들여다보는지, 아니면 내 꿈으로 가는 길에 ‘시험이라는 울타리’를 넘으려는 마음으로 시험공부를 하는지, 똑똑히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험만 잘 치르는 기계가 아니라, 시험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서 삶을 사랑으로 가꾸는 슬기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아름다운 숨결로 거듭납니다. 대학입시는 ‘끝’이 아니라 ‘첫단추’일 뿐입니다. 4348.10.7.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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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의 형태 3
오이마 요시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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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60



네 뒷그늘을 감출 수 있을까

― 목소리의 형태 3

 오이마 요시토키 글·그림

 김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5.6.30. 5500원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늘 내 뒤에 남습니다. 모래밭을 걷든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된 땅을 걷든, 내 발자국은 늘 내 뒤에 남아요. 내가 걸어온 발자국을 잊으려고 한들 ‘잊으려 했다는 생각’이 나한테 남을 뿐, 내가 걸어온 발자국은 잊혀질 수 없습니다. 바닷물이 모래밭 발자국을 지우고, 눈에 보일 만한 ‘시멘트나 아스팔트 땅바닥 발자국’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 길을 걸어온 발자국은 언제나 몸하고 마음에 새겨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누구나 앞으로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앞으로 걸어가면서 뒤에 남긴 발자국을 돌아보지 않아요. 앞으로 걸어갈 적에는 앞으로 걸어가는 길을 생각할 뿐입니다. 앞으로 걸어가려 하는데 자꾸 뒤를 돌아보면서 ‘발자국이 잘 있나?’ 하고 살핀다든지 ‘발자국이 저기 있네!’ 하고 생각한다면, 그만 앞길이 자꾸 힘들 뿐 아니라 전봇대에도 부딪히고 나무뿌리에도 걸려 넘어질 테지요.



“드디어 핸드폰을 손에 넣었단 말이지?” “고맙게도 어머니가 사 줬어.” “그럼 당장 내 메일주소 등록할게. 어디 보자 빅프렌드 나가츠카, 연락처 셋. 너도 참, 친구 진짜 없다.” (5쪽)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 당시의 니시미야는 확실히 이해하고 있었다. 자기 때문에 사하라가 학교에 나오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그런 것도 몰랐던 주제에,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주제에, 나는 니시미야를 마냥 아무것도 모르는 애라고 단정지었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의 나 자신을 쥐어 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1쪽)



  오이마 요시토키 님 만화책 《목소리의 형태》(대원씨아이,2015) 셋째 권을 곰곰이 읽습니다. 한 번 읽고 다시 읽습니다. 이 만화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저마다 어릴 적부터 마음속에 생채기가 있습니다. 이 생채기는 어버이나 교사(초등학교 교사)가 남겼다고도 할 수 있지만, 동무나 이웃이 남겼다고도 할 수 있고, 아이들 스스로 남겼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생채기가 새겨진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글쎄요, 다들 잘 모릅니다. 서로서로 제 생채기를 감추려고 할 뿐이기에 어떻게 해야 할는지 모릅니다. 게다가, 서로 생채기를 안 건드리려 하고, 서로 생채기를 다시 들여다보려 하지 않습니다. 그저 묻어 두려고 합니다.


  생채기는 묻힐 수 있을까요? 생채기는 감출 수 있을까요? 내가 못 본 척한다고 해서 없어질까요? 내가 고개를 돌린다고 해서 생채기가 사라질까요?



“오늘은 고마워. 이시다가 사하라를 찾고 있다는 이야기, 정말 기뻤어. 실은 오늘 동생한테 더 기쁜 이야기를 들었어. 동생이 가출했을 때 도와줬다는 것. 동생이랑 같이 나를 찾아 줬다는 것.” (23쪽)


‘만약 중학교에서도 니시미야가 있었다면 사하라는 매일 보건실이 아닌 교실로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빼앗은 것은 나다. 나는 내가 니시미야에게서 빼앗은 수많은 것들을 돌려줘야 한다. 두 사람의 미소를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44쪽)



  만화책은 만화책입니다만, 우리 삶에서도 비슷한 일은 으레 일어납니다. 뜻하지 않게 동무 마음에 생채기를 입히고, 뜻하지 않게 내 마음에 생채기를 입습니다. 동무한테 생채기를 입힌 일이 언제까지고 마음에서 잊을 수 없어서 괴롭습니다. 동무한테서 입은 생채기가 언제까지고 마음에서 떨칠 수 없어서 괴롭습니다.


  이때 무엇을 해야 할까요. 잊히지 않아도 잊으려고 더 애쓰면 될까요. 잊히지 않으니까 내 지나온 발자국은 아예 아무것도 없다고 여기면서 살면 될까요. 내 어린 날은 없다고, 내 지난 열 해나 스무 해는 아예 없다고, 내 어린 날 만나거나 알던 동무나 이웃은 아예 이 지구별에 없다고, 이렇게 없다는 생각만 심으려 하면 될까요.



“나? 난 없는데? 만나고 싶은 애. 난 딱히, 초등학교 때 애들. 나, 난 아무렴 어?때. 난 친구 같은 것 없었다니까.” (68∼69쪽)


‘과거를 끊어버리는 것. 그게 나한테는 해결이자 위안이야. 분명 앞으로도 그 자식들한테는 관심 갖지 않을 거야. 그래, 관심 없어. 그 자식들 얼굴까지 싹 다 잊어버리자. 관심 없어. 관심 없어.’ (77쪽)



  뒷그늘을 되새기는 일은 쉬울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어려울 수도 없습니다. 바로 내 두 발로 걸어온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직 해님이 들지 않아 그늘이 진 자리일 뿐, 내가 스스로 해님 같은 마음으로 거듭나서 내 걸음걸이를 되새길 수 있다면, 내가 빚은 뒷그늘은 더 뒷그늘로 남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비추어 줄 해님이 아닙니다. 바로 내가 스스로 비출 해님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타나서 비추어 줄 해님이 아닙니다. 바로 내가 마음속에서 끌어내어 스스로 비출 해님입니다.


  이제 앞으로 가야지요. 앞으로 새로운 걸음을 내딛어야지요. 오늘 하루를 새롭게 맞이해야지요. 오늘부터 내 삶을 새롭게 지으면서 날마다 기쁨을 노래해야지요.


  네 생채기도 내 생채기도 그저 ‘발자국’입니다. 우리가 저마다 걸어온 길입니다. 옛 발자국은 바꿀 수 없습니다만, 새로 걸어가는 발자국은 얼마든지 새롭게 가꿀 수 있어요. 이제껏 내 마음에 사랑도 꿈도 없어 아무렇게나 이 길을 걸어왔어도, 오늘부터 내 마음에 사랑과 꿈을 곱게 새겨서 씩씩하게 이 길을 걸어갈 수 있어요. 뒷그늘만 생각하느라, 그러니까 ‘뒷그늘을 잊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느라, 내 앞길은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는 늘 제자리걸음만 하고 맙니다. 앞으로 새 걸음을 내딛으면서 새 마음이 되고 새 삶이 되며 새 노래가 될 수 있어야 비로소 스스로 해님이 됩니다.



“난 너한테 사과하고 싶었던 것뿐인데 웬 니시미야? 네가 걔 보호자라도 돼? 난! 니시미야한테 용서받고 싶은 게 아냐! 너한테! 난 그냥 돌려놓고 싶었던 것뿐이야. 이시다랑 내 시간을, 니시미야 때문에 망가져버린 그 시간을!” (155쪽)


“우에노가 말이야, 우리보고 이런 얘기를 하더라. ‘억지로 어울려 주는 거야? 친구 흉내.’라고. 우리 관계, 친구 흉내 같은 게 아니지?” “나도 혹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하지만 나도 친구 흉내는 싫어. 그러니까 흉내란 얘기 안 듣도록 좀더 너에 대해 알고 싶어.” (165∼166쪽)



  만화책 《목소리의 형태》에 나오는 아이들은 아직 많이 어립니다. 너무 어린 탓에 저마다 제 뒷그늘을 똑똑히 마주하기가 힘듭니다.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까지 합니다. 굳이 뒷그늘을 다시 마주해야 하느냐 싶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옛 그늘에 사로잡힐 수 없습니다. 이 아이들은 모두 지나간 뒷그늘에 발목이 붙잡혀서 앞으로 한 걸음도 못 나아가는 삶이 될 수 없습니다.


  ‘동무 괴롭히기’도 아니요, ‘동무 흉내’도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서로 ‘동무가 되어 즐거운 삶’을 누려야 합니다.



‘나 역시 니시미야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아니, 방금 전이 알 수 있는 기회였는데. 헤어스타일이라든지, 왜 수화가 아니라 말로 하려 했는지, 나한테 준 선물에 대해서라든지 이것저것 물어보면 좋았을걸. 겁이 나는 건가? 니시미야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 (176∼177쪽)



  때리는 사람은 맞는 사람이 얼마나 아픈지 모릅니다. 때리는 사람은 제 주먹이나 발길로 남을 때릴 뿐 아니라 제 몸까지 함께 때리는 줄 모릅니다. 동무나 이웃을 괴롭히는 사람은 동무나 이웃을 괴롭히는 겉몸짓뿐 아니라 바로 저 스스로 제 살을 깎아먹는 속몸짓까지 합니다. 언제나 바보짓이기 때문에 바보짓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스스로 굴레를 지어서 굴레에서 허덕이기 때문에 이 바보짓 굴레를 알아보지 못하는데다가 빠져나오는 길을 모릅니다.


  만화책 《목소리의 형태》에 나오는 아이들은 어떠할까요? 가해자 노릇을 오랫동안 하다가 피해자 삶을 오랫동안 보내는 주인공 사내 아이(이시다)는 고등학생쯤 되고서야 그동안 스스로 어떤 바보짓을 했는가를 뒤늦게 깨닫습니다. 옛날을 돌이킬 수 없는 줄 아니까 옛날을 돌아보기 무서우면서 싫고, 그렇다고 새날로 씩씩하게 갈 만한 기운도 없습니다. 아주 어정쩡해요.


  그래도 이 아이는 손말(수화)을 스스로 배웠습니다. 바보짓 쳇바퀴에 더 머물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딱히 뭔가를 잘 할 수 있는지 알 길이 없어도, 제자리걸음을 걷다가 수렁에 갇히기는 싫어서, 한 걸음을 겨우 내딛었어요. 그리고, 바로 이 한 걸음 때문에 스스로 기운을 차릴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바보짓이 아닌 사랑짓이 되도록, 이제야말로 얼간이 짓이 아닌 사랑둥이 짓이 되도록,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습니다.


  뒷그늘을 털려면 뒷그늘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뒷그늘에 따사로운 햇빛과 햇살과 햇볕을 스스로 드리울 수 있어야 합니다. 따스한 사랑을 어디에 드리워야 하는가를 스스로 생각해야 하고, 따스한 사랑을 드리우면서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는가를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4348.10.5.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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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 이야기 3
타니카와 후미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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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59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란

― 솔로 이야기 3

 타니카와 후미코

 한나리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5.9.15. 6000원



  아이들이 언제나 어머니하고 아버지한테 “사랑해요” 하고 속삭입니다. 어머니하고 아버지도 아이들한테 늘 “사랑해” 하고 노래합니다. 한집에서 함께 사는 우리는 마음으로뿐 아니라 입으로도 ‘사랑’을 늘 나누면서 하루를 열고 닫습니다.


  노래를 부를 적에도 ‘사랑’이라는 말마디가 으레 깃듭니다. 밥을 지을 적에도 사랑으로 짓자고 생각합니다. 마실을 다닐 적에도 함께 누리는 사랑이라고 돌아봅니다. 가볍게 소꿉놀이를 할 적에도 서로서로 아끼는 사랑으로 함께 웃습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 사는 이 땅에서는 어느 일이든 사랑으로 하는구나 싶습니다. 살붙이끼리만이 아니라, 동무끼리만이 아니라, 이웃끼리만이 아니라, 누구하고라도 사랑스러운 숨결을 나눌 적에 즐거우면서 아름답습니다. 서로 아끼면서 돕는 마음이 흐른다면 다투거나 싸울 일이란 없으며, 다투거나 싸울 일이 없을 적에는 군대나 전쟁무기가 있어야 할 까닭이 없어요.



‘그에게는 작고 귀여운 여자친구가 있는데. 좋겠다. 나도 쓰담쓰담 받고 싶다. 소름 돋아. 서른이 넘은 여자가 이 모양이라니. 이건 중학생만도 못한 수준이야.’ (10∼11쪽)


‘뭐, 그게 지금의 나에게는 최선입니다. 고탄다를 많이 좋아했고, 요령 없는 나의 최선. 고탄다, 고마웠어. 덕분에 생각났어.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그래, 이런 기분이었어.’ (20∼21쪽)



  타니카와 후미코 님이 빚은 만화책 《솔로 이야기》(대원씨아이,2015) 셋째 권을 읽습니다. 저마다 다른 삶자리에서 저마다 다른 삶을 가꾸는 사람들이 저마다 ‘홀로’ 사랑을 꿈꾸는 이야기가 흐르는 만화책입니다. 다만, 이 만화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혼자’ 살지는 않아요. 학교를 다니거나 회사를 다닙니다. 집에 어머니나 아버지나 형제 자매가 있습니다. 이웃도 많고 동무도 많아요. 그저 ‘이성친구’나 ‘애인’이라 할 사람이 없는 채 ‘홀로’인 이들이 이 만화책에 고개를 살며시 내밉니다.



‘추억을 담뿍 담은 이 옷은 그냥 티셔츠가 아니었다.’ (26쪽)


“그때 말이야, 그 쇼핑백을 버렸단 걸 알게 됐을 때 엄청 충격 받고 망연자실했는데, 한편으론 조금 안도했어.” (40쪽)



  곰곰이 헤아려 보면, 사람들은 으레 “혼자셔요?” 하고 묻습니다. 짝이 있느냐 없느냐를 묻는 말일 텐데, 짝이 없다고 하더라도 혼자인 사람은 없습니다. 적어도 “혼자셔요?” 하고 묻는 사람하고 마주보며 함께 있으니까요.


  게다가 혼자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짝 없는 외톨이’라 하더라도, 이녁이 깃들어서 사는 집을 짓거나 손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외톨이라 하더라도, 이녁이 입은 옷을 지은 사람과 가게에서 파는 사람이 있습니다. 외톨이라 하더라도, 이녁이 혼자 찾아가서 밥을 사다 먹는 가게가 있고, 온갖 먹을거리를 마련해서 가게에 내놓는 사람이 있습니다.


  버스나 기차를 모는 사람이 있고, 택시나 비행기를 모는 사람이 있습니다. 공무원이 있고, 의사도 청소부도 있습니다. 내가 미처 헤아리지 못할 뿐인 수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 함께 있습니다. 내가 하나하나 이름을 살피지 못할 뿐인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 터전을 함께 일구면서 삽니다.



‘유일하게 오로지 야마다만이 내 편이었고 정말 기뻤기에, 그게 사랑이든 사랑이 아니든, 다음엔 내가 유일한 야마다 편이 돼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60쪽)


‘인생에서 이런 장면이 몇 번째인 걸까. 몇 번씩 반복되는 건 내 잘못인 걸까? 일방적으로? 귀신한테까지 이런 소리를 듣다니. 하지만 난 나름 노력하고 있는데, 어째서?’ (71쪽)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예쁩니다. 마음을 따스하게 기울여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을 가슴속에 품으니 예쁘지요. 짝사랑이어도 예쁘고, 풋사랑이어도 예쁩니다. 불타는 사랑이든 차가운 사랑이든 예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되기에, 나부터 나를 한결 아낄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되면서, 나부터 나를 새롭게 돌아볼 수 있습니다. 조금씩 씩씩하게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차근차근 기쁘게 아침을 엽니다. 부풀거나 설레는 가슴으로 누군가를 좋아하기에 얼굴에 기쁜 웃음이 피어납니다. 들뜨거나 신나는 가슴으로 누군가를 좋아하니 온몸에 기쁜 숨결이 고루 흐릅니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너는 오래 살아. 사랑 받으면서.” (76쪽)


‘지금 좋아하는 사람도 없고 특별한 꿈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언젠가는 결혼도 하고 싶고, 새로운 곳에서 살아 보고도 싶어. 그 언젠가가 언제인데? 언젠가는 언제지? 지금인지도 몰라.’ (90∼91쪽)



  만화책 《솔로 이야기》는 ‘홀몸’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 정작 ‘혼자’가 아니라고 하는 이야기를 조용히 들려줍니다. 손을 맞잡고 나들이를 다녀야 ‘혼자 아닌 삶’이 되지는 않는다고 하는 이야기를 찬찬히 들려줍니다.


  살을 섞거나 입을 맞출 만한 누군가가 있어야 ‘혼자 아닌 몸’이 아닙니다. 먼발치에서 서성이더라도, 손을 잡을 만한 누군가가 없더라도, 따사롭게 피어나는 그윽한 꿈으로 웃음지을 수 있는 하루를 연다면 누구나 ‘함께 있는 넋’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선물처럼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거든요. 사랑은 바로 내가 나한테서 끌어내거든요. 나를 내가 스스로 아낄 수 있을 때에 사랑이 되거든요. 남이 나를 좋아해 주기에 사랑이 싹트지 않아요. 내가 나부터 제대로 바라보고 제대로 아껴서 제대로 삶을 짓는 길을 걸을 때에 비로소 사랑이 싹틉니다. 내가 나부터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면서 나부터 나를 제대로 아끼지 못한다면, 남들이 아무리 나를 좋아해 준다고 한들, 나는 나부터 믿지 못하니 다른 어느 누구도 좋아하지 못해요.



“마, 마스미, 너 뭔가 빠뜨린 거 없니?” “응? 없는데? 짐은 가방뿐이었고, 생활비도 잘 챙겼고.” “그, 그거 말고. 어제 뭔가 받고 싶었던 사람이 저기서 시무룩해져서 있는데.” “아, 미안, 미안 아빠. 진짜 미안해.” (138쪽)



  말 한 마디에서 사랑이 태어납니다. 따스한 기운을 듬뿍 실어서 들려주는 말 한 마디에서 사랑이 자랍니다. 기쁜 웃음을 곱게 담아서 가만히 노래하는 목소리에서 사랑이 퍼집니다.


  아이들이 연필을 손에 쥐고 하얀 종이에 ‘사랑’이라는 글씨를 그립니다. 나도 연필을 손에 쥐고 하얀 종이에 ‘사랑’이라는 글씨를 그립니다. 크레파스를 꺼내어 빛깔을 입힙니다. ‘사랑’이라는 글씨 둘레에 알록달록 무지개 그림을 그립니다. 언제나 사랑을 떠올리고 가슴에 담자고 생각하면서 사랑 그림을 방 한쪽에 붙여놓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이 그림을 바라봅니다. 4348.10.4.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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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 동경대 가다! 19 (신장판) - KBS 드라마 '공부의 신' 원작
미타 노리후사 지음, 김완 옮김 / 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556



‘시험공부’만 하느냐 ‘삶을 배우려’ 하느냐

― 꼴찌, 동경대 가다! 19

 미타 노리후사 글·그림

 김완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2010.1.4. 4500원



  중·고등학교 여섯 해를 다니는 동안 내가 무엇을 했는가 하고 돌아보면 이것저것 떠오르기는 하지만 그리 기쁘거나 새롭다고 할 만한 일은 좀처럼 찾기 어렵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늘 같은 자리만 맴돌아야 했던 나날이었네 하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이런 중·고등학교 여섯 해였어도, 기찻길을 밟고 두어 시간 거닐던 일은 자주 떠오릅니다. 이제 옛날 그 기찻길은 몽땅 사라졌지만 하루에 한두 대 지나가는 오래된 기찻길이 있었고, 자율학습 따위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려고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는 으레 그 기찻길을 따라서 아무 생각을 안 하고 천 걸음 떼기나 만 걸음 떼기를 하며 혼자 놀았습니다. 이렇게 한참 기찻길을 밟고 걸으면 어느새 무거운 짐이 훌훌 사라지고,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다시 시험공부를, 대학 입시 공부를 붙잡습니다.



“내 콤플렉스는 내 자신에 대한 거야. 난 고등학교를 중퇴했잖아? 난 곤란하면 금방 도망쳐 버리는 약한 사람이 아닐까 싶어서 자기혐오에 빠지는 거야. 하지만, 입시에서든 뭐든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이 강해질 수 있고, 더 유리하댔어.” (18∼19쪽)


“그래서, 오늘은 뭐 할 거야?” “그게 문제야. 시간은 남아돌고, 어슬렁거릴 수밖에 없으려나. 하지만 참 신기해. 작년 이맘때는 할 게 없어도 아쉽지 않았는데, 지금은 심심해서 죽을 지경이라니.” (40쪽)



  미타 노리후사 님이 빚은 만화책 《꼴지, 동경대 가다!》(랜덤하우스코리아,2010) 열아홉째 권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이 만화책은 모두 스물한 권이고, 책이름에서 말하듯이 ‘학교 꼴찌’인 아이가 일본에서 동경대에 붙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도록 ‘학교 꼴찌’를 하던 아이라 하더라도 동경대학교에 붙도록 시험공부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보여준다고 할까요.


  그러면, 어떤 이는 이 만화책을 참고서 삼아서 ‘나도 서울대에 한번?’ 하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참말 그렇지요. 서울대학교라고 해서 아무나 못 가는 곳이 아니라, 가고자 하는 뜻이 있는 사람이 가는 곳일 테니까요.



‘처음 시작했을 때는 공부가 무한한 것처럼 느껴졌는데, 시험공부는 유한하구나. 그걸 알고 나니 얼마나 공부하면 좋을지 점점 보이게 되고, 약점을 극복하는 게 재미있어졌어. 마치 공부란, 정해진 크기의 판 위에서 하는 오셀로 게임 같아. 아직 칸을 전부 채우진 못했지만, 이기는 법을 알게 돼 돌을 놓을 때마다 게임판의 색이 순식간에 바뀌는, 그런 느낌이 너무 좋아.’ (46∼47쪽)



  나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에 붙은 뒤 ‘대학교는 중·고등학교하고 다르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던 ‘다른 모습’은 대학교에 없었습니다. 고등학교까지 오직 시험공부만 해야 하던 학교 얼거리인데, 대학교에서도 똑같이 시험공부만 해야 하는 얼거리입니다. 중학교는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바라보는 시험공부요, 고등학교는 대학교를 바라보는 시험공부인데, 대학교는 회사와 공공기관을 바라보는 시험공부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 대학교는 놀고 먹는 시험공부입니다. 한쪽에서는 아침저녁으로 술잔치이고, 한쪽에서는 도서관에만 처박히는 시험공부입니다. 대학교조차 도서관이 ‘책 읽는 곳’이 아니라 ‘시험공부에 사로잡히는 곳’입니다.


  그러고 보면, 어린이와 푸름이한테 시험공부만 시키는 나라에서 대학교가 제대로 설 수 없겠구나 싶습니다. 이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내가 바보스럽다고 할 만합니다. 이 나라 교육이 제대로 섰다면, 중·고등학교 푸름이한테 시험공부만 우악스럽게 시킬 까닭이 없습니다. 한창 마음이 자라야 할 푸름이한테 삶을 가르쳐야 마땅한 중학교요 고등학교입니다. 자율학습이나 보충수업 따위로 아이들을 길들이거나 괴롭히려는 중·고등학교가 아닌, 삶과 사랑과 사람을 슬기롭게 보여주면서 가르칠 줄 알아야 하는 중·고등학교여야 하지요.


  고등학교를 마치는, 또는 대입 시험을 치른, 앳된 젊은이는 손쉽게 술하고 담배를 손에 쥡니다. 술하고 담배는 나쁘지 않습니다. 그리고 좋지도 않습니다. 그저 술하고 담배일 뿐입니다. 다만, 고등학교까지 학교나 사회나 마을이나 집에서 아이들한테 술하고 담배가 무엇인가를 제대로 보여주거나 가르치는 어른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대학교는 어떠할까요? 대학교 교수나 선배라는 사람은 술이나 담배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거나 가르칠 수 있을까요?



“큰맘 먹고 뒤로 물러나라. 거시적인 시점에서 수험에 임하기 위해 보다 높이, 위에서 보는 거야. 점점 높이, 기왕 하는 김에, 일본 상공에서, 지구 밖에서, 그리고 우주에서.” (69∼71쪽)


“그래서 어쨌는데 하는 얘기일 뿐이지.” “그래서 어쨌는데?” “설령 실전에 약한 타입이래도, 그게 어쨌다는 거냐, 그 말이야. 그렇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실전에 강해지도록 트레이닝해서 자기개혁을 하면 되는 것뿐이거든.” (119쪽)



  만화책 《꼴지, 동경대 가다!》는 훌륭하지도 않고 대단하지도 않으며 재미있지도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가 있습니다. 꼴찌이든 아니든 누구나 동경대에 가려고 하면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떤 일이든 스스로 어떤 마음을 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꼴찌이든 일등이든 동경대에 못 들어가는 까닭은 ‘동경대’라고 하는 곳을 제대로 알거나 살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고, 동경대에 왜 들어가려고 하는가를 스스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나 스스로 새롭게 거듭나려고 애쓰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화책에서도 흐르는 이야기입니다만, 동경대에 가든 안 가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동경대에 가야 한다면 가야 할 뿐입니다. 들어가면 되지요. 한국에서 서울대에 굳이 가야 할까요? 한국에서 대학교에 굳이 가야 할까요? 더 생각해서,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꼭 마쳐야 할까요? 중학교나 초등학교를 구태여 다녀서 졸업장을 거머쥐어야 할까요? 대학교 졸업장뿐 아니라 초등학교 졸업장이 반드시 있어야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만할까요?



“넌 슛을 열 개 다 넣으려 했기 때문이야.” “슛 열 개를 다.” “반대로 난 어떻게 이겼을까? 그건 처음부터 대략 여섯 개만 성공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대략 여섯 개.” “일곱 개 넣으면 승리는 거의 확실하고, 다섯 개로도 어떻게든 비길 수 있을 거라고 계산했어. 그래서 처음 두 번은 빗나가도 당황하지 않았지. 반대로 넌 아무 대책도 없이 시합을 시작했을걸? 어때?” (154∼155쪽)



  삶은 졸업장으로 판가름할 수 없습니다. 삶은 은행계좌나 아파트 크기로 잴 수 없습니다. 삶은 얼굴 생김새나 몸매 따위로 따질 수 없습니다. 삶은 밥그릇이나 나이로 헤아릴 수 없습니다. 삶은 오로지 삶으로 마주하면서 바라봅니다. 삶은 오직 사랑으로 가꿉니다. 삶은 오직 스스로 아름답게 일어서는 웃음꽃으로 기쁘게 돌볼 수 있습니다.


  시험공부를 하는 일은 나쁘지 않습니다. 어떤 시험에 꼭 붙어서 어떤 일을 하겠노라 하는 꿈이 있으면 시험공부를 신나게 하고 기쁘게 하며 재미나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시험을 마쳤으면 새로운 마음과 몸이 되어서 ‘삶 배우기’로 나아가면 돼요.


  우리는 저마다 다 다른 삶을 일구면서 저마다 다른 기쁨을 누리려고 이 땅에 태어납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다 다르면서 모두 뜻있고 값있으면서 아름다운 삶을 지으려고 이 땅에 태어납니다.


  삶을 가르치고 배울 때에 즐겁습니다. 삶을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이 사랑스럽습니다. 사랑스러운 너와 내가 만나서 어깨동무를 하면 아름답습니다. 한 걸음을 내딛고 두 걸음을 뻗습니다. 세 걸음을 디디고 네 걸음을 폴짝 뛰어오릅니다. 배우는 길은 즐겁고 사랑스러우며 아름답지만, 시험공부에 얽매이는 길은 괴롭고 따분하며 힘듭니다. 우리는 어느 길을 걸어야 할까요? 4348.9.28.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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