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풍선
김수박 지음 / 수다 / 201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화책 즐겨읽기 373



외로우면 술을 마시지 마

― 빨간 풍선

 김수박 글·그림

 수다 펴냄, 2012.3.12.



  손수 흙을 일구어 씨앗을 심어서 거두는 이들은 밥을 아무렇게나 먹지 않습니다. 해마다 볍씨를 알뜰히 갈무리해서 이듬해에 즐겁게 심으려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들은 밥 한 그릇을 앞에 두고 언제나 마음 가득 비손하면서 수저를 듭니다. 땅이 하늘이고 하늘이 하늘이며 내 손길이 하늘입니다.


  손수 나무를 아끼고 사랑하면서 열매를 얻는 이들은 철마다 나는 열매를 고맙게 얻습니다. 겨울에 딸기를 바라지 않고, 봄에 배나 능금을 바라지 않습니다. 제철에 제철 열매를 먹는 사람들은 늘 스스로 삶을 가꾸고 지으면서 사랑스레 일굽니다.


  손수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는 언제나 아이를 사랑으로 돌봅니다. 아이를 학교에 섣불리 보낼 일이 없어요. 아이한테는 교과서 지식이 아닌 삶을 가르쳐야 하니, 굳이 학교에 보내야 하지 않아요. 아이가 교과서 지식을 얻어야 하더라도, 맨 먼저 삶을 알고 사랑을 깨달으며 꿈을 꾸어야 하니, 아이를 손수 낳아 돌보는 어버이라면, 아이하고 나눌 숨결을 곰곰이 돌아보면서 물려줍니다.



- ‘변기만 뚫리면 행복할 것 같다. 이상하지. 평소엔 당연한 줄로만 알다가.’ (15쪽)




  먼먼 옛날부터 어느 겨레에서나 어느 마을에서나 밥 한 그릇은 온누리였습니다. 온삶을 담은 밥이고, 온넋을 실은 밥이며, 온꿈을 넣은 밥입니다. 왜냐하면, 밥 한 그릇을 가게에서 사다가 먹던 겨레는 없어요. 밥 한 그릇을 남이 지어서 차려서 대주는 일이란 없어요. 늘 스스로 밥을 지어서 먹었으니, 밥 한 그릇은 언제나 온누리입니다.


  먼먼 옛날부터 밥뿐 아니라 술도 온누리였습니다. 술을 아무 데에서나 마구 팔지 않았어요. 팔 일조차 없어요. 먹을 만큼 밥을 지어서 먹듯이, 마실 만큼 술을 빚어서 마셨습니다. 밥이 되는 곡식을 알뜰히 여겨 고맙게 먹고 즐겁게 하루를 누리듯이, 술이 되는 곡식을 살뜰히 돌보아 반갑게 먹고 기쁘게 하루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밥이나 술이 온누리가 아닙니다. 하늘도 아닙니다. 밥 한 그릇에서 사랑을 느끼거나 술 한 잔에서 꿈을 헤아리는 사람이 아주 많이 줄었습니다. 어디에서나 값싸게 사고파는 밥이나 술이 되었고, 사랑스러운 손길로 알맞게 즐기는 밥이나 술이 아닌, 지쳐서 쓰러질 때까지 퍼넣다가 게우는 밥이나 술이 됩니다.



- “지난날이 행복이었고, 현재를 고통이라고 판단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성 시스템의 오류에서 비롯된 거야. 인간은 이미 창조주에 의해 탄생되었고, 이미 너무 오랫동안 자기복제를 했어. 남은 육체의 기간 동안 근본적 오류를 가진 이성을 어떻게 할지는 자네의 몫이네!” (40쪽)

- “살아가는 일 그대로가 축복이었다! 앞만 보고 가! 어제는 끝났어!” (44∼45쪽)






  김수박 님 만화책 《빨간 풍선》(수다,2012)을 읽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태우는 사람이 끝없이 나옵니다. 삶에 지치는 사람이 아닌 돈에 지치는 사람이 가없이 나옵니다. 사랑이 아닌 살곶이에 얽매이는 사람이 줄줄이 나옵니다.


  삶이란 무엇일까요. 어느 때에 삶을 삶이라 할 수 있을까요. 아침과 낮과 저녁에 세 끼니를 챙겨서 먹으면 삶일까요. 번듯하다는 회사에 이름을 내밀어 쏠쏠하다는 숫자를 통장에 찍어야 삶일까요. 내 아파트가 있거나 내 자가용이 있으면 삶일까요. 시집이나 장가를 예식장에서 치른 뒤 아이를 몇쯤 낳아서 유치원이나 학교나 학원에 보내면 삶일까요.


  우리는 왜 태어났을까요. 돈을 벌려고 태어났을까요. 우리는 왜 태어났나요. 학교에 다니고 성적표를 받으며 동무를 밟고 올라서서 대학교에 붙으려고 태어났나요.



- ‘도시는 더 차갑게 느껴졌어. 따뜻한 곳을 찾아 헤매었지. 둘만 있고 싶었어. 둘만 있을 곳이 없었어. 도시가 야속했어.’ (61쪽)

- ‘5학년 때 나는 성자와 같은 반이 아니었다. 나는 키가 뻘쭘해서 운동회에서 달리기 계주 선수로 뽑혔다. 수업만 마치면 저녁 석양이 질 때까지,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연습했다. 성자는 처마 그늘 밑에 앉아서 구경하다가 내가 지나가면 웃곤 했다. 그러나 우린 구태여 아는 체하지 않았다. 나는 다른 반이면 아는 체하면 안 되는 줄 알았다.’ (73쪽)





  삶이 차갑구나 싶으면,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똑같이 차갑습니다. 삶이 따스하구나 싶으면,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늘 따스합니다. 삶은 스스로 짓습니다. 남이 무너뜨리거나 망가뜨릴 수 없습니다. 삶은 스스로 가꿉니다. 남이 선물하거나 베풀 수 없습니다.


  내가 손수 수저를 들어 내 입으로 밥을 넣은 뒤, 내 몸에서 밥을 삭혀야 기운을 얻어 목숨을 건사합니다. 남이 먹어 주는 밥이란 없습니다. 남이 마셔 주는 술이란 없습니다. 언제나 무엇이든 스스로 합니다. 즐거움도 스스로 짓고, 슬픔도 스스로 짓습니다. 웃음도 스스로 지으며, 눈물도 스스로 짓습니다.



- ‘난 그 애를 거의 1년 만에 만난 셈이었습니다. 그동안의 과거는 서로에게 무의미했어요 .우리는 공유할 미래가 없었으므로, 난, 난 외로울 땐 그 애를 불렀습니다. 그 애가 나를 부르는 법은 없었죠. 맞아요.’ (86쪽)



  외로우면 술을 마시지 마셔요. 외로움을 바라보셔요. 즐거우면 술을 마시지 마셔요. 즐거움을 바라보셔요. 외로움이 무엇이고 즐거움이 무엇인지 똑똑히 바라보셔요. 빛을 똑똑히 바라본 다음, 이 빛을 또렷하게 알아챌 수 있을 때에 생각을 기울여요. 생각을 기울여서 삶을 하나하나 짚어요. 이제껏 걸어온 길을 짚고, 오늘 선 곳을 짚으며, 내가 나아갈 곳을 짚어요.


  술을 마시려면, 모든 생각을 마친 뒤에 마셔요. 동무를 불러 즐겁게 술잔을 부딪히려면, 먼저 모든 생각을 다 지어요. 나한테 삶이 있어야 내 이웃한테도 삶이 있어요. 나한테 생각이 있어야 내 동무하고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어요. 나한테 사랑이 있어야 내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줄 수 있어요. 4347.8.3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교야구선수 자와 씨 2
미시마 에리코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61



네 꿈은 뭔데?

― 고교야구선수 자와 씨 2

 미시마 에리코 글·그림

 강동욱 옮김

 미우 펴냄, 2010.9.15.



  “니 꿈은 뭐고?” 하고 묻는 어른은 매우 드뭅니다. 어른들은 “니 꿈은 뭐고?” 같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쳇바퀴처럼 도는 온갖 소식과 정보를 말밥으로 삼을 뿐입니다.


  “너는 꿈이 뭐야?” 하고 묻는 아이들을 만나기 쉽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코앞으로 다가오는 대학입시에 얽매여 좀처럼 꿈을 펴지 못합니다. 꿈을 한 자락 펼 겨를이 있으면 문제 하나라도 더 풀라고 하는 윽박지름이나 다그침을 들어야 합니다.


  어른이 되든 아이로 살든 꿈을 꾸거나 생각하거나 나누지 못하도록 단단하게 굳은 한국 사회이지 싶습니다. 어른도 아이도 꿈을 입밖으로 좀처럼 안 꺼내는 꽉 막힌 한국 사회로구나 싶어요.



- “야, 모리구치! 저 녀석은 어떻게 연습 후에도 미묘하게 좋은 냄새가 나냐, 아앙?” “아, 아야야야. 몰라요. 저도!” “보통은 찬물로 씻어 봤자 땀 냄새도 안 가시는 거 아냐?” (14쪽)




  미시마 에리코 님이 빚은 만화책 《고교야구선수 자와 씨》(미우,2010)를 읽으면, 고등학생이면서 야구선수인 ‘가시내 자와’가 나옵니다. 일본에 어떤 법이나 규칙이 있는지 모르지만, ‘남자 선수’ 아닌 ‘여자 선수’는 대회에 나올 수 없다고 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학교 야구부’이기는 하더라도 ‘자와’는 대회에 나가지 못하고, 그저 연습만 합니다.


  처음부터 알면서 야구선수로 뛰는 가시내입니다. 처음부터 알지만 야구선수로 지내는 하루가 즐거운 가시내입니다.


  머스마는 무엇을 느낄까요. 솜씨가 모자라 대회에 나가지 못하는 머스마라면 무엇을 생각할까요. 가시내보다 솜씨가 떨어지더라도 머스마이기 때문에 대회에 나갈 수 있는 아이라면 무엇을 생각할까요.


  나갈 수 없는 대회인 줄 알면서 언제나 연습을 하는 아이는 어떤 마음일까요. 아이한테도 대회에 나가고픈 마음은 있지만, 연습을 하면서 스스로 하고픈 일을 한다는 즐거운 웃음과 노래가 가득할까요.



- “여, 여어. 자와. 여기서 뭐 하냐? 너도 새해 참배 왔어?” “아니. 그냥 집에서부터 뛰다 보니까.” “진짜? 너희 집 여기서 꽤 멀지 않냐?” (27쪽)

- “새해 첫날 아침부터 러닝을 하는 여자가 있다니 말이야. 그치?” “댁조 좀 그렇게 열심히 해 보시지?” ‘어차피 그 녀석. 아무리 열심히 해 봤자 시합에도 못 나가는데.’ (30쪽)





  우리는 밥을 먹으려고 일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배고픈 때가 찾아오기를 바라면서 일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졸릴 때까지 일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잠을 잘 만한 곳을 얻는 돈을 벌려고 일하지 않습니다.


  밥을 먹고 똥오줌을 누며 잠을 잔다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사람을 사귀며 어떤 집에서 살림을 꾸린다면, 모두 뜻이 있습니다. 어디로 나아가는 길이기 때문에 이 삶을 누립니다.


  무엇을 하고 싶나요. 무엇이 되고 싶나요. 꿈이 무엇인가요. 어떤 사랑으로 꿈을 지었나요. 무엇을 할 때에 온몸에 새롭게 기운이 솟으면서 즐거운가요. 무엇이 되겠다는 꿈을 품을 적에 싱그럽게 웃으면서 맑게 노래가 샘솟는가요.



- “야구부는 좋겠다.” “응? 뭐가? 전혀 안 좋거든? 연습도 오래 하고, 규칙도 엄하고, 선배도 짜증나고.” “그런 게 아니라 미야코자와 말이야, 미야코자와! 솔직히 너희들 같이 연습하면서 슬쩍슬쩍 몸을 만지고 그러잖아.” “뭐어? 연습 중에 그런 생각할 여유도 없거든요. 여자니 뭐니 신경도 안 써!” (44∼45쪽)





  야구가 좋다면, 선수로서 대회에 나가도 좋습니다. 야구가 좋다면, 야구 연습을 해도 좋습니다. 야구가 좋다면, 동무들과 야구 놀이를 해도 좋습니다. 야구가 좋다면, 경기장에 가서 구경을 해도 좋습니다. 야구가 좋다면, 텔레비전을 켜거나 라디오를 틀어 야구 소식을 보거나 들어도 좋습니다. 야구가 좋다면, 신문에 실린 야구 기사를 읽어도 좋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을 읽는다면, ‘대회에 나가지 못하는 가시내’가 야구 부원으로 신나게 연습을 하고 땀을 흘리면서 지내는 하루가 얼마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가를 알아차립니다. 좋아하는 마음을 안 읽는다면? 좋아하는 마음을 못 읽는다면?


  그저 따분하겠지요. 그저 재미없겠지요. 그저 심심하겠지요.



- “그 촌스러운 블레이저 코트가 마음에 들어? 그거 입는 사람은 미야코자와랑 오타쿠 같은 여자애뿐인걸. 흰 거 입어, 흰 거! 얼마나 예쁜데.” “흰 거는 더러워져서 싫어.” “야구부야말로 매일 흰옷을 더럽히지 않아?” (144∼145쪽)



  이녁은 어떤 꿈을 꾸는가요. 이녁은 어떤 꿈을 지으면서 하루하루 누리는가요? 이녁은 어떤 꿈을 키우면서 즐겁게 사랑을 나누는가요? 이녁은 어떤 꿈을 가꾸면서 아침마다 새롭게 일어나서 활짝 웃는가요?


  우리 모두 즐겁게 살기를 바라요. 우리 모두 기쁘게 웃기를 바라요. 우리 모두 어깨동무를 하면서 사이좋게 어울리기를 바라요. 높고 낮음은 없습니다. 잘나고 못남은 없습니다. 모두 같은 숨결이고, 모두 예쁜 눈빛입니다. 4347.8.2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궁속의 벚꽃 下 - 완결
고우다 마모라 지음 / 시리얼(학산문화사)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70



우리는 뭘 하며 사는 사람일까

― 미궁 속의 벚꽃 下

 고우다 마모라 글·그림

 도영명 옮김

 시리얼 펴냄, 2012.12.25.



  나는 시골에서 삽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시골에서 삽니다. 곁님도 시골에서 삽니다. 시골에서 사니, 시골살이입니다. 시골에 보금자리를 두면서 시골을 누리는데, 조용하거나 호젓하게 숲이 깃들지는 못하고, 마을에서 지냅니다. 마을에서 지내면서 시골마을에서 사람들이 서로 어떻게 얽히거나 어우러지는가를 곰곰이 들여다봅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 가운데, 시골에 그대로 남아서 시골살이를 잇는 사람은 대단히 적습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든 도시에서 나고 자라든,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도시에서 지냅니다. 도시에서 더러 시골로 삶터를 옮기는 사람이 있으나 대단히 드뭅니다. 돈을 꽤 많이 모으지 않고서 시골로 삶터를 옮기는 사람은 아예 없다시피 할 만합니다. 집과 땅을 살 만한 돈이 있은 뒤에, 또는 집을 새로 지을 돈이 있고 나서야, 비로소 시골로 가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사람들이 시골에서 살지 않으려는 까닭은 아주 뚜렷합니다. 돈이 될 만한 일거리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도시에서 살려 하는 까닭은 아주 또렷합니다. 돈이 될 만한 일거리가 많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 “내 아버지가 목숨과 바꿔서 지킨 관음언덕인데, 거기 사는 녀석들은 마치 벌레라도 쫓아내듯 내 아내를 자살로 몰아넣었단 말이오!” (50쪽)

- “카노가와 유키히코 씨는 같이 집단 괴롭힘을 당해 왔다는 점에서 가족과 이어져 있습니다. 그는 아직 젊으며, 그 인연이 존재한다면 분명 갱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 변호사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구형된 ‘사형’에 대해 정상참작을 요구합니다.” (70쪽)




  시골에서 즐겁게 살려고 생각하면서 시골에 남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자란 뒤 시골에 남는 사람이 참 드문데, 시골에 남더라도 왜 스스로 시골에 남아서 살아가려 하는가를 곰곰이 헤아리는 사람이란 더욱 드뭅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시골이라 하더라도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에 걸쳐서 시골살이를 가르치거나 이야기하는 교과서나 교육과정이나 교사가 아예 없습니다. 시골이든 도시이든 언제나 도시만 가르치거나 이야기합니다. 시골도 도시도 그저 ‘도시에 살아야 사람’인 듯 여깁니다.


  도시에 있는 사람들은 시골사람이 어찌 지내는지 모릅니다. ‘땅이 있어 밥은 안 굶겠지’ 하고 여기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만, 시골에서 무엇을 하며 살 수 있는가를 헤아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오늘날 사람들은 스스로 삶을 지을 줄 모릅니다. 스스로 삶을 짓는 넋을 잃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사람들한테는 무엇이 있을까요? 오직 하나, 돈을 버는 솜씨만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돈을 벌 줄 알고, 돈을 쓸 줄 압니다. 돈을 은행에 맡기거나 돈을 굴리는 길을 압니다. 돈을 빌려주거나 빌려서 쓰는 길을 압니다. 그뿐입니다.



- “본인의 희망대로 다시 태어나 제대로 된 인간으로 다시 시작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하지요. 후후.” “아, 그렇게 되는 대로 의견을 던지진 말아 주십시오. 지금까지 한 회의가 수포로 돌아가니까요.” “큭큭.” ‘뭐, 뭘 웃고 있는 거야. 사람 하나를 죽이느냐 살리느냐에 대해 얘길 하고 있는 중인데. 어, 어째서 웃음이 나오는 거지? 우, 우린 대체 뭐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고, 우린!’ (92∼93쪽)

- ‘재판관들은 아무것도 몰라! ‘집단의 악’에 해결방법 따윈 없으니까, 이런 사건이 일어나는 거란 걸. 해결방법이 있었다면 나도 회사를 그만둘 필요는 없었지.’ (99쪽)




  오늘날 도시사람은 집을 짓거나 옷을 짓거나 밥을 짓는 길을 까마득히 모릅니다. 초등학교나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학교에서 밥짓기를 배우는 일이 없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생이 되더라도, 대학교에서 누가 밥짓기를 가르치나요? 아무도 안 가르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집에서 어버이한테서 밥짓기를 배울 겨를이 있을까요? 입시지옥에 갇혀 골골대느라 새벽부터 밤까지 고단한데, 언제 어떻게 밥짓기를 배우겠어요?


  오늘날 아이들은 스무 살이 넘든 서른 살이 넘든, 전기밥솥을 켜고 끌 줄도 모르기 일쑤입니다. 밥물을 어떻게 맞추는가도 모를 뿐 아니라, 가게에서 쌀값이 얼마나 하는 줄조차 모르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그러니까, 가게에서 파는 쌀값이 얼마인 줄도 모르는데, 흰쌀과 누런쌀이 뭐가 다른가를 알 턱이 없고, 겨가 무엇인지 알 수 없으며, 나락과 씨나락과 볍씨가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지 모르며, 이삭이라든지 벼꽃이 무엇인지 하나도 알 수 없습니다.


  보리와 쌀을 가를 줄 아는 아이는 얼마나 될까요. 콩이 가짓수가 얼마나 많은지 아는 아이는 얼마나 있을까요. 콩밥뿐 아니라 옥수수밥이나 감자밥이나 고구마밥이나 당근밥이나 밤밥이나 무밥이나 콩나물밥이나 …… 온갖 밥을 지어서 남달리 맛있게 먹을 줄 아는 아이는 얼마나 있으려나요.



- “잠깐 나 좀 보쇼, 재판장 양반! 재판장 양반. 잠자코 듣자 하니, 당신 말투는 마치 ‘사형’으로 정하도록 설득하려는 것 같잖소! 처음부터 ‘사형’으로 정해둔 것 같단 말이오!” “아, 아니. 결코 그렇지는.” “당신들 프로 판사들 사이에서 처음부터 ‘사형’으로 정해 뒀다면, 우리들 같은 법률 초짜를 일부러 불러내서 재판에 참가시키는 의미가 없는 거 아니오? 양형표 따위로 형량이 정해진다니, 당신들, 비싼 월급을 받는 주제에 진짜 편하게 일하는구만!” “무, 무례한 말씀은 삼가 주세요! 저희들은 피해자 및 가해자의 심정이나 증거, 증언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결론 내리고 있습니다! 감정을, 감정을 억누른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토쿠이 씨가 알기나 하세요?” “난 당신들 같은 엘리트가 아니니, 감정을 억누른다는 건 불가능해! 재판장 양반. 우리들이 어렸을 때는 우리보다 위 또래인 학생들이 나라를 상대로 싸웠던 것처럼, 좀더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었던 때가 아니었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싸우지 않았느냔 말이오? 재판장 양반. 당신, 혹시 뭔가를 겁내고 있는 건 아니오?” (126∼129쪽)




  삶을 가르치지 않는 학교입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삶을 배우면 사랑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삶을 알아 사랑을 깨달으면 언제나 가장 평화롭고 아름다우면서 즐거운 길을 걷습니다. 도시에서 소모품 노예처럼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는 길이 아니라, 스스로 삶을 짓는 길로 가지요. 그러니, 오늘날 사회는 아이들한테 삶을 가르치려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도시에서 소모품 노예로 남아서 일삯(인건비)을 낮추도록 하려고 애씁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소모품이 다 닳으면 곧바로 다른 소모품으로 갈아끼울 수 있게끔 도시에 예비품(실업자)을 잔뜩 쌓습니다.


  삶을 배운 아이들이 굳이 도시에 남을 까닭이 없습니다. 삶을 배운 아이들이라면 도시에 남더라도 아름답게 마을살이를 가꿉니다. 중앙정부에 기대는 삶이라든지 중앙경제에 얽매이는 삶이 아니라, 도시에서도 얼마든지 ‘마을 자치’와 ‘마을 공동체’로 나아갑니다. 삶을 배웠으니 마땅히 어깨동무와 이웃사랑을 하지요. 도시에서도 두레와 품앗이를 얼마든지 하지요. 이렇게 되면 정치와 경제와 문화와 교육은 모두 부질없는 짓이 됩니다. 그래서, 권력자와 기득권자는 아이들한테 삶을 안 가르치고 입시지식만 가르칩니다. 모든 아이들이 슬기로운 꿈과 생각을 버리면서 ‘대학바라기 기계’가 되도록 내몹니다. 이렇게 해야, 중앙권력이 바라는 대로 모든 사람을 노예로 부릴 수 있거든요.


  모든 사람을 노예로 부리면 중앙권력한테 무엇이 좋을까요? 권력을 지키고 돈을 더 많이 거두어들일 수 있어 좋습니다. 그리고, 마을 자치를 하지 않으니, 중앙권력을 거머쥔 이들은 손짓 하나로 권력을 누립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법이 없이 살던 아름다운 숨결’이지만, 도시에 모여 권력에 얽매인 노예가 되면서 ‘법에 붙들린 슬픈 소모품’으로 굴러떨어집니다.



- “나도, 나도 회사에서 같은 일을 겪었으니까. 나도 아무런 방법이 없었으니까.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어. 난 당신의 그 마음을 잘 알고 있어! 이봐. 이제 진실을 말해 줘! …… 같은 나이에,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오타쿠에, 〈포레스트 걸〉의 팬이면서 둘 다 집단 괴롭힘을 당했지. 난 너랑 같은 편이야! 넌 혼자가 아니라고!” (175∼176쪽)

- “본인이 했다고 인정하면 죄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쉽게 범인으로 만들어지는군요. 우리가, 우리가 아무 죄도 없는 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으려고 했었다니. 이렇게 무서운 일이 또 있을까요?” (186쪽)




  고우다 마모라 님이 빚은 만화책 《미궁 속의 벚꽃 下》(시리얼,2012)를 읽습니다. 두 권으로 짤막하게 끝맺는 이야기입니다. 앞권에서는 배심원 제도가 얼마나 바보스러우면서 우악스러운가를 보여준다면, 뒷권에서는 ‘배심원 제도’를 발판으로 삼아서 사람들이 스스로 삶을 새로 짓는 길을 열 수 있는 모습을 넌지시 보여줍니다.


  ‘교훈을 받는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좋고 나쁨’이 없는 삶을 깨달아, 언제나 스스로 삶을 지을 때에 즐겁고 아름답다는 소리입니다. 만화책 《미궁 속의 벚꽃》은 말합니다. 사회에 갇힌 사람들은 저마다 수수께끼처럼 제 모습을 감춘 채 참다운 사랑을 잊거나 잃으면서 바보짓을 한다고 말합니다. 사회에 갇히지 말고 스스로 삶을 날마다 새롭게 짓는 사람들은 언제나 제 모습을 환하게 드러내면서 참다운 사랑을 꿈꾸고 생각하면서 기쁘게 웃는다고 말합니다.



- ‘그 녀석은 잃어버린 어린 시절을 되찾으려고, 그 녀석은, 그 녀석은 필사적으로 살려고 했던 것이다. 그렇다. 사건의 중요 인물들은 사회에서 뒤처진 그 세 사람은, 심야의 비밀통로 속에서 서로 어깨를 마주하며, 서로를 보듬으며 열심히 살아왔던 것이다!’ (229쪽)

- “이게 지금의 세대입니다. 저희들은 과보호를 받으며 자라 온 탓에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타인과의 교류를 피해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같은 가공의 세계로 도망치곤 합니다. 이게, 이게 당신들이 만든 사회예요.” (232쪽)

- ‘만약 이 재판이라는 비일상을 접해 보고, 열심히 궁리해 보게 된다면, 일반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거나, 이후의 각자의 인생에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 지옥 같은 평의도 결코 쓸모없는 것이 아니었다고. 그렇게 믿어도 되지 않을가? 재판에 참가한 경험을 자기 자신을 위해 살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배심원 제도의 빛이 아닐까?’ (235∼236쪽)




  우리는 뭘 하며 사는 사람인가요? 사랑을 하며 사는 사람인가요? 돈만 버는 기계인가요? 맛집이나 멋집을 찾아다니는 도시 나그네인가요? 소모품인가요 노예인가요, 아니면 스스로 사람인가요? 저마다 마음속에 깃든 하느님을 읽을 줄 아는가요? 예배당에 가거나 성경책을 뒤져야 하느님이 있다고 여기는가요?


  한국에는 《여검시관 히카루》와 《교도관 나오키》가 나온 적 있습니다. 한국에 알려진 고우다 마모라(고다 마모라) 님 세 번째 작품인 《미궁 속의 벚꽃》입니다. 책이름처럼 우리는 누구나 ‘숨겨진 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피어날 때를 기다리는 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아름답게 피어나서 환한 꽃빛과 맑은 꽃내음을 둘레에 나누면서 사랑스러운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 “진실을 얘기해 줘. 난, 바로 너야.” (177쪽)



  법이 있어야 할 자리는 없습니다. 대통령이 있어야 할 곳은 없습니다. 학교가 설 데는 없습니다. 법이 아닌 삶이 있어야 할 뿐입니다. 대통령이 아닌 보금자리가 있어야 합니다. 학교가 아닌 마을이 있어야 합니다.


  다만, 쳇바퀴처럼 똑같이 되풀이하는 소모품 삶이 아닌, 날마다 스스로 새롭게 짓는 삶이어야 합니다. 잠만 자는 부동산과 같은 아파트 같은 데가 아니라, 나무가 자라고 풀과 꽃이 어우러지는 마당이 있는 보금자리여야 합니다. 온갖 농약과 비닐을 함부로 쓰는 마을이 아닌, 두레와 품앗이와 이웃사랑과 어깨동무로 아름다운 마을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동무가 되는 까닭은 서로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서로 이웃이 되는 까닭은 서로 사랑스럽기 때문입니다. 지구별에서 누구나 즐겁게 동무와 이웃이 될 수 있는 날을 꿈꾸면서 기다립니다. 4347.8.2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궁속의 벚꽃 上 - 배심원제도의 빛과 어둠
고우다 마모라 지음 / 시리얼(학산문화사)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69



누가 누구를 죽였을까

― 미궁 속의 벚꽃 上

 고우다 마모라(고다 마모라) 글·그림

 도영명 옮김

 시리얼 펴냄, 2011.7.25.



  전쟁이 터졌으면, 이쪽에서 저쪽을 죽이든 저쪽에서 이쪽을 죽이든 ‘죽인 짓’이 틀림없지만, 어느 쪽에서나 ‘죽인 잘못을 따질 수 없다’고 말합니다. 전쟁이기 때문에 서로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고 여겨, 어쩔 수 없이 서로 죽여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전쟁이기 때문에 죽여도 되는 일이란 없습니다. 전쟁이라는 허울을 쓴 채 서로 죽이기 때문에 자꾸 전쟁이 커지거나 이어집니다. 허울이 전쟁일 뿐, ‘사람 죽인 짓’은 똑같기 때문에, 이쪽에서나 저쪽에서나 서로 앙갚음을 할 마음만 가득합니다.



- ‘나, 난 방금 사람을 죽이려고 했어. 이렇게까지 살인자가 될 만큼 망가져 버린 건가. 나란 놈은!’ (13쪽)

- ‘결국 갈 곳 없는 피리터가, 사회의 밑바닥을 떠도는 인간이 남을 처벌하는 자리에 있을 수 있을 리가 없지.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랐는데.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구나.’ (27쪽)




  죽여도 될 사람이 있을 턱이란 없습니다. 죽어도 될 사람이 있을 까닭이란 없습니다.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할 사람이라든지, 지구별에서 없애야 할 사람이 있을 일이란 없습니다. 그러나, 눈을 뜨지 못한 사람은 있습니다. 눈을 뜨지 않기에 마음을 열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눈을 뜨지 않아서 마음을 열지 못한 탓에 사랑을 나누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헤아리자면, 여러 독재자가 있습니다. 독재자한테 빌붙어 여느 사람을 괴롭히거나 죽인 허수아비나 꼭둑각시가 있습니다. 독재자한테 빌붙은 허수아비나 꼭둑각시한테 잘 보이려고 바보짓을 한 여느 수수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독재자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던 공무원과 교사가 있습니다.


  바보스러운 짓을 저지르거나 일삼는 사람은 참말 바보스럽기 때문입니다. 바보스러운 사람한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부터 한겨레는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준다’하고 말했습니다. 이 옛말을 곱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지만, 이 옛말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예부터 한겨레는 ‘미운 아이’한테 떡을 더 주었을까요?



- ‘정말로, 정말로 내가 맡아도 괜찮은 건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을 죽이려고 했던 내가, 사람을 처벌한다니.’ (29쪽)

- “배심원 여러분은 이 형사사건을 각자의 인생경험에 비춰서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53쪽)




  ‘미운 아이’나 ‘고운 아이’란 없습니다. 다만, ‘미운 아이’라 할 적에는 ‘사랑받지 못한 아이’라는 뜻입니다. 사랑을 받지 못해 마음이 다친 아이들을 가리켜 ‘미운 아이’라고 에둘러 말할 뿐입니다. 그러니, 이 아이들한테 사랑(떡 하나)을 자꾸 베푼다는 뜻입니다. 사랑을 누리지 못한 탓에 자꾸 바보스러운 짓을 저지르니, 이 아이들이 아무쪼록 앞으로 제대로 사랑을 바라보고 느끼면서 알도록 이끈다는 뜻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 나라에서 정치권력을 거머쥐었던 이들 가운데 참답게 ‘사랑’을 알거나 누리거나 나눈 사람은 거의 없지 싶어요. 사랑을 모르기에 허튼 짓을 저지릅니다. 사랑을 누리지 못했기에 독재정권 서슬 퍼런 칼을 휘두릅니다. 사랑을 나눈 적이 없기에 우악스러운 토목개발과 새마을운동 따위를 밀어붙입니다.


  미운 아이를 사랑하는 일은 몹시 어려울 수 있습니다. 고운 아이만 사랑하고픈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라 한다면, 참말로 사랑이라 한다면, 내 말을 고분고분 따르는 얌전하고 착한 아이한테만 나눌 수 없습니다. 참사랑이라 한다면, 다 함께 참삶을 이루도록 어깨동무를 하는 길로 나아가리라 느낍니다. ‘밉다·곱다’라는 틀을 씩씩하게 깨부순 뒤, 서로 즐겁게 웃고 노래하는 길로 나아갈 때에 비로소 사랑이 된다고 느낍니다.



- ‘지금부터 ‘집단의 악’을 말하려고 한다는 건, 이 여자애도 내부고발을 한 나랑 같은 배신자라는 얘긴데! 대체 왜 피고인 측의, 엄마를 죽인 남자의 증인으로 법정에 나온 걸까?’ (116쪽)

- “집단 괴롭힘이 거짓말이라느니 뭐라느니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지 마. 이 어린애 같은 인간아! 난 진짜 있었던 일을 말하러 온 것뿐인데. 어째서 너 같은 안경잡이 뚱땡이한테 이런 공격을 받아야 되는 건데!” (128쪽)



  고우다 마모라(고다 마모라) 님 만화책 《미궁 속의 벚꽃 上》(시리얼,2011)을 읽습니다. 일본에 처음 생긴 배심원 제도가 무엇인가를 찬찬히 그려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배심원 제도가 드리우는 어두움과 빛을 나란히 밝히는 작품입니다. 어떤 사람이 배심원이 되고, 어떤 사람이 ‘살인범’으로 몰리며, 판사는 어떻게 법을 다루고, 사회는 어떻게 흐르는가를 조용히 건드리는 작품입니다.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집단 따돌림’으로 기나긴 해에 걸쳐서 괴롭던 이가 ‘집단 따돌림을 일삼는 사람’을 죽인다면, 누가 누구를 죽인 셈일까요. ‘살인죄’란 무엇일까요. 집단 따돌림이 없었어도 살인이 있었을까요. 살인죄로 어느 한 사람을 다스린다면 집단 따돌림이 사라질까요.




- ‘자식을 지켜야 할 어머니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자식에서 ‘사형’을 선고한 것에,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이미 이 가족에겐 부모 자식 간의 애정 같은 건 존재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170쪽)

- “각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을 제 자식에게 빼앗긴 것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다만, 이런 일이 생기기 전에 집단 괴롭힘을 그만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175쪽)



  만화책 《미궁 속의 벚꽃》은 ‘집단 따돌림’을 일삼는 이들이 ‘언젠가 앙갚음을 고스란히 받을는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저마다 조금씩 품는데, 이 두려움이 차츰 커진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더 모질게 집단 따돌림을 일삼는다고 이야기합니다. 따돌림받는 이가 앙갚음을 못 하게끔 더 모질게 밟고 괴롭힌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폭력으로 한 사람을 누르면 ‘새로운 폭력’이 안 터질까요. 폭력으로 사람을 눌러서 ‘폭력이 더 없도록’ 할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하자면, 군대를 키우면 전쟁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이웃나라로 쳐들어가서 이웃나라에 있는 전쟁무기를 모조리 빼앗으면 전쟁이 없이 평화가 이루어질까요?


  만화책이 아닌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면 ‘전쟁·폭력·살인·따돌림’ 따위는 언제나 함께 움직이는 얼거리인 줄 알아챌 수 있습니다. 전쟁과 폭력과 살인과 따돌림은 바로, 군대뿐 아니라 학교와 회사와 모든 조직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참모습을 그대로 바라보려 하지 않습니다. 군대가 있으면 되지, 경찰이 있으면 되지, 대통령이 있으면 되지, 뭐가 있으면 되지 …… 하면서, 정작 하나도 될 일은 없는데 스스로 눈을 감습니다.


  군대가 하는 일은 전쟁입니다. 전쟁은 폭력입니다. 폭력은 살인을 낳습니다. 살인으로 나아가는 따돌림입니다. 군대도 경찰도 없어야 합니다. 정치도 경제도 없어야 합니다. 문화도 과학도 없어야 합니다.


  무엇이 있어야 할까요? 삶이 있어야지요. 생각이 있어야지요. 사랑이 있어야지요. 웃음과 노래와 이야기가 있어야지요. 우리는 이 땅에 ‘있어야 할 것’이 있도록 마음을 기울여야 아름답습니다. 이 땅에 ‘있어야 할 것’이 없는데, ‘있지 않아도 될 것’이나 ‘없어야 할 것’만 잔뜩 심은 채 바보짓을 저지르지 않나 돌아보아야 합니다. 4347.8.2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트] 우리 마을 이야기 1~7 세트 - 전7권
오제 아키라 지음, 이기진 옮김 / 길찾기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지난 2012년 3월부터 5월 사이에 일곱 권이 재빨리 나왔던

<우리 마을 이야기>를 읽은 지 꽤 되었으나

일곱 권 모두를 놓고 쓰는 느낌글은

오늘 마무리를 짓는다.


느낌글 하나를 섣불리 쓸 수 없었기 때문에

내 몸으로 삭히는 대로

내 마음으로 걸러서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썼다.


6권 이야기를 쓴 뒤

7권 이야기를 쓰기까지는

꽤 오래 걸렸다.


그동안 책상맡에 이 만화책을 놓으면서

자꾸 들여다보고 생각하면서

이 만화를 바탕으로 우리 삶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하는

실마리를 풀어 보려 했다.


아무쪼록 이 만화를 제대로 읽어

삶을 슬기롭게 일구는 이웃들이 늘어나기를 빈다.



7권 : 우리 마을을 지키는 힘 (2014.8.23.)

http://blog.aladin.co.kr/hbooks/7116573


6권 : 흙을 배우는 삶 (2013.11.6.)

http://blog.aladin.co.kr/hbooks/6677648


5권 : 삶·교육·꿈을 흙과 함께 (2013.2.22.)


4권 : 함께 살아가는 땅 (2012.11.17.)


3권 : 따뜻이 품는 가슴 (2012.9.13.)


2권 : 10년 걸린 밭, 10년 흘린 밥 (2012.4.1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