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아 고양이 골룸 1
야마자키 마리 지음, sana 옮김 / 애니북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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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28



‘우리 집 광’에서 나고 자라는 고양이

― 아라비아 고양이 골룸 1

 야마자키 마리 글·그림

 sana 옮김

 애니북스 펴냄, 2013.5.10.



  올여름에도 우리 집 광에서 고양이가 태어났습니다. 해마다 두 차례씩 우리 집 광에서 고양이가 새끼를 낳습니다. 한 번은 겨울을 앞둔 늦가을에 낳고, 한 번은 이른여름이나 늦봄에 낳습니다. 마을고양이나 들고양이라고 해야 할 텐데, 이 아이들은 왜 우리 집 광에서 해마다 두 차례씩 새끼를 낳을까요? 아무래도 먹이가 넉넉하고, 아늑하기도 하며, 땡볕을 긋거나 물을 얻기에 수월한 곳이라고 여기기 때문일까요. 따뜻하거나 포근하다고 여기기 때문일까요.


  올여름에 우리 집 광에서 새끼를 낳은 어미 고양이는 지난해나 지지난해에 우리 집 광에서 태어났던 아이라고 느낍니다. 그러니까, 집고양이는 아닌 마을고양이나 들고양이는 꽤 예전부터 우리 집 광이나 마당이나 뒤꼍이 저희 보금자리나 고향일 수 있습니다. 우리 식구가 이 시골집에서 지낸 지는 다섯 해이나, 그에 앞서까지 꽤 오랫동안 빈집이었다 했고, 빈집이기 앞서는 늙은 할매 혼자 살았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마을고양이는 그무렵부터 이곳에서 새끼를 낳았을 수도 있겠지요.



어느 날, 왜 하늘에서 밥이 내리는 걸까요. 궁금한 마음에 올려다보니, 어떤 인간이 높은 건물에서 우리들한테 먹을 걸 던지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8∼9쪽)



  야마자키 마리 님이 빚은 만화책 《아라비아 고양이 골룸》(애니북스,2013)을 읽습니다. 둘째 권은 아직 한국말로 안 나오는데, 이 만화책에 나오는 고양이라고 해서 남다른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아라비아 고양이’다운 모습을 꼭 바라서 이 만화책을 읽지는 않았습니다만, 아라비아에서 만나는 고양이한테서 ‘아라비아 모습’을 엿볼 만하지는 않아요.


  어쩌면, 일본사람이 일본에서 고양이를 바라보듯이 아라비아에서도 ‘일본에서 하던 대로’ 바라보았으니, 아라비아다운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울 수 있겠지요.


  그러면, 나는 어떤 눈길로 우리 집 고양이를 바라보는가 하고 되새겨 봅니다. 도시에서 살던 때하고 시골에서 살던 때에, 고양이를 바라보는 눈길은 얼마나 다른가 하고 되짚어 봅니다.


  도시에서는 빈 그릇에 고양이 사료를 꾸준히 채워 주면서 지냈습니다. 살림돈이 모자라면 고양이 사료를 따로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때에는 다른 이웃집에서 잘 얻어먹겠지 하고 여겼습니다. 시골에서는 밥찌꺼기를 한쪽에 놓습니다. 가시나 뼈다귀가 나올 적에도 한쪽에 놓습니다. 알뜰히 챙기지는 못하지만 못 본 척하며 지내지는 못합니다.



그렇게 애교 부리지 않아도, 밤만 되면 우리한테 먹을 걸 던져 주는 인간이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거든요. 우리는 하얀 고양이도 아닌데, 그 인간은 그런 걸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아요. (14쪽)



  다섯 해 앞서 처음 이 시골집에 깃들던 무렵을 떠올리면, 그무렵에는 천장을 기어다니는 쥐가 꽤 있었습니다. 빈집으로 오래 있던 티를 낸다고 할까요. 그런데, 마을고양이가 하나둘 우리 집 둘레를 어슬렁거리고, 또 우리 집 광에서 새끼 고양이가 태어나서 놀던 때부터 ‘천장을 달리거나 기는 쥐’는 모조리 사라집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사람이 따로 먹이를 챙기지 않아도 고양이는 고양이 스스로 먹잇감을 찾습니다. 시골고양이한테는 쥐랑 지네랑 개구리가 맛난 먹이가 되리라 느껴요. 때로는 작은 뱀도 잡아서 먹겠지요.


  지난해 겨울에는 뒤꼍에서 뻣뻣하게 죽은 고양이를 보기도 했습니다. 늙어서 죽은 고양이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전남 고흥은 날이 폭하니 겨울이라고 해서 얼어붙지 않습니다. 틀림없이 뭔가를 잘못 먹고 죽은 듯했습니다. 마을 이웃집에서는 으레 쥐약을 놓고 농약을 많이 씁니다. 아무래도 쥐약 먹고 헤롱거리는 쥐를 잡아먹다가 목숨을 잃었지 싶은데, 우리 집 뒤꼍 풀숲에 곱게 누웠더군요. 이때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입니다. 볕이 잘 드는 뒤꼍 한쪽을 골라서 땅을 판 뒤 가만히 누였습니다.



그 인간은 갑자기 나를 높이 안아올리더니,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어요. 내려놔 달라고 버둥거려 보았지만, 쓰다듬어 주는 손길이 무척 기분 좋아서 나도 모르게 얌전해지고 말았어요. (46쪽)



  만화책 《아라비아 고양이 골룸》을 떠올립니다. 한국사람도 외국사람도 고양이를 바라보는 눈길은 서로 매한가지입니다. 예뻐하는 사람은 어느 곳에서나 예뻐합니다.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나 미워하거나 싫어합니다. 고양이밥을 챙겨 주고 싶은 사람은 도시에 살건 시골에 살건 마음을 찬찬히 기울입니다. 고양이 따위는 보기 싫은 사람은 멀쩡한 고양이한테 함부로 돌을 던집니다.


  ‘우리 집 고양이’라고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고 ‘우리 집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고양이’는 평상 밑으로 기어들어 한여름 땡볕을 긋기도 하고, 새끼 고양이는 평상에 올라앉아서 뒹굴며 놀기도 합니다. 어미 고양이가 마당 한복판에 벌렁 드러누워서 새끼 고양이한테 젖을 물리기도 합니다. 앵두나무 밑에 앉아서 풀내음을 맡으며 낮잠을 자기도 하고, 매화나무 옆이라든지 모과나무 옆에서 꾸벅꾸벅 졸기도 합니다.


  곰곰이 헤아려 보니, 우리 집은 농약을 안 치기에 풀개구리나 참개구리가 곳곳에서 노래합니다. 우리 집에서 함께 사는 고양이는 틀림없이 쥐하고 개구리를 노리며 나무 둘레에서 낮잠을 자는구나 싶습니다. 때로는 돌울타리에 올라앉아서 ‘나무에서 노래하는 새’를 오래도록 올려다봅니다.


  올겨울을 앞두고도 이 아이들이 새로 새끼를 낳을는지 궁금합니다. 아무쪼록 씩씩하게 우리 집 둘레에서 먹이를 넉넉히 찾으면서 오래오래 튼튼히 살아갈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마을고양이도 들고양이도 모두 우리한테는 이웃이요 동무이니까요. 4348.8.2.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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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겟 미 낫 Forget Me Not 1 세미콜론 코믹스
츠루타 겐지 지음, 오주원 옮김 / 세미콜론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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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39



나는 너를 잊지 않아

― 포겟 미 낫 1

 츠루타 겐지 글·그림

 오주원 옮김

 세미콜론 펴냄, 2012.2.24. 11000원



  지난 보름 동안 마을에서 개구리 노랫소리가 끊어졌습니다. 지난 보름 동안 마을에서 농약을 어마어마하게 뿌려댔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시골치고 농약을 안 뿌리는 마을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완전 유기농’을 하는 곳이 아니라면 어느 시골이든 농약나라가 됩니다. 논에는 농약을 치지 않더라도 고추밭에까지 농약을 안 치는 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능금밭이나 배밭이나 포도밭을 일구는데 농약을 한 방울도 안 쓰는 사람은 그야말로 찾아보기 아주 어렵습니다. ‘농약 없는 능금밭’인 ‘기적의 사과’를 이룬 일본 할배는 있습니다만,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여느 시골에서 농약 없이 아무것도 못 한다고 할 만합니다.


  오늘도 농약바람은 아주 사그라들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며칠 앞서를 헤아리면 아주 얌전합니다. 농약바람이 부는 동안 무논마다 개구리가 모조리 죽은 줄 알았는데, 우리 집 마당하고 뒤꼍, 그리고 우리 집 앞자락 빈들에서 개구리 몇 마리가 노래를 합니다. 농약을 안 뿌리는 세 군데에서만 개구리 노랫소리하고 풀벌레 노랫소리가 울립니다.



“피에트로 베누치와 이마리 마리엘은 스타일이 다르다고. 그리고 1류 탐정이 어찌 간통 조사나 하고 있냔 말이야.” “알겠습니다. 일류 탐정이 수발을 받는 것도 이상한 이야기지요. 그럼 오늘부터 식사는 스스로 준비하시길.” (13∼14쪽)



  츠루타 겐지 님 만화책 《포겟 미 낫》(세미콜론,2012) 첫째 권을 읽습니다. 둘째 권은 언제 나올는 지 알 길이 없는 만화책입니다. 츠루타 겐지 님 다른 만화책도 첫째 권은 이렁저렁 나오지만, 둘째 권은 좀처럼 나올 낌새가 없습니다. 츠루타 겐지 님 만화를 아끼는 분들은 ‘한 권이라도 만날 수 있어 반갑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여러 연재에 손을 대고는 도무지 다음 이야기를 안 잇는 몸짓’보다는 ‘한 가지 연재라도 꾸준히 손을 대어 다음 이야기를 잇는 몸짓’이 될 수 있으면 얼마나 고마우랴 싶기도 합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츠루타 겐지라는 분이 빚는 만화는 ‘연작’이면서 ‘연작이 아닌 작품’입니다. 여러 권이 나올듯이 ‘1’라는 숫자를 붙이기는 하지만, 어쩌면 이대로 더 연작을 선보이지 않고 끝맺을 수 있습니다. 다섯 해나 열 해에 한 권씩 선보일 수도 있겠지요.


  만화책은 으레 여러 권으로 이야기에 살을 붙이기 마련이니, 연작만화에서 낱권 하나만 놓고 깊이 살피거나 생각하는 일은 드물다고 할 만합니다. 그렇지만 마흔 권이나 쉰 권짜리로 나오는 만화책이라 하더라도 권마다 이야기가 다릅니다. 한 권씩 따로따로 줄거리를 살필 만합니다. 저마다 다른 권에 저마다 다른 목소리가 흐릅니다. 만화책 《포겟 미 낫》 둘째 권이 나올 수 있다면, 둘째 권 얼거리나 줄거리는 첫째 권하고 여러모로 다를 만해요. 셋째 권이 나올 수 있다면, 앞선 두 권하고 셋째 권은 짜임새나 매무새가 사뭇 다를 수 있습니다.



“두 액자 장인 빈센초와 페루지아. 놀랍네요. 동일 인물이에요.” “확실해졌네. 찾았어. 그 아가씨의 한심한 아버지.” “마스터도 참 능청스럽네요.” “어쨌든 매듭지었네. 이제 겨우 잘 수 있겠다. 행복해.” (64쪽)



  나는 너를 잊지 않습니다. 너도 나를 잊지 않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기에 잊지 않을 수 있고, 네가 나를 미워하기에 잊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가 너를 좋아하기에 잊지 않을 수 있으며, 네가 나를 싫어하기에 잊지 않을 수 있어요.


  나는 우리 아이들을 잊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나를 잊지 않습니다. 나는 우리 어버이를 잊지 않습니다. 우리 어버이도 나를 잊지 않습니다. 자주 만나거나 연락하든 아니든, 마음속으로 언제나 함께 있다고 느낍니다. 늘 보는 사이인 터라 더 가깝지 않습니다. 마음속으로 따스하고 넉넉하게 헤아리는 사이일 때에 더없이 가까우면서 살갑게 지낼 수 있습니다.


  수다를 많이 떨어야 가까운 동무가 아닙니다. 짧게 몇 마디를 섞더라도 웃음하고 노래가 흐를 때에 가까운 동무입니다. 편지를 자주 주고받아야 가까운 벗님이 아닙니다. 가볍게 몇 마디를 나누더라도 포근하면서 너른 마음이 되면 가까운 벗님입니다.



“거짓말쟁이가 커서 도둑이 된다는 말이 있지요. 전 직업상 산더미같이 거짓말을 해대고 있는데, 그런 저도 도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항상 빼앗기만 하는 저지만, 무언가를 빼앗긴 적이 딱 한 번 있습니다.” (194쪽)



  만화책 《포겟 미 낫》을 살피면, 여자 주인공은 ‘탐정 집안’에서 탐정 일을 물려받습니다. 남자 주인공은 ‘탐정하고 맞서는 도둑’ 일을 배워서 솜씨 좋게 도둑질을 선보입니다. 한 사람은 지키는 쪽이라 하고, 한 사람은 훔치는 쪽이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키는 쪽이 착하고 훔치는 쪽이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두 사람은 그저 ‘수수한 삶’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그런데, 훔치는 쪽은 가난한 이웃 것을 훔치는 일이 없습니다. 값비싸거나 값지다는 보배를 훔치기 일쑤입니다. 부자가 거머쥔 것을 훔친다고 해서 ‘착한 도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만, ‘나쁜 짓을 일삼는 사람이 여린 사람한테서 빼앗은 것을 훔치는 일’은 어떤 일이 될까요? 그리고, 1970년대부터 일어난 새마을운동은 풀집을 허물고 시멘트집에 슬레트지붕을 올리도록 했는데, 이제 시멘트집이나 슬레트지붕은 환경공해라고 일컫습니다. 새마을운동이 무시무시하던 지난날 슬레트지붕을 안 올리겠다고 하면서 군화발에 맞아야 한 시골사람은 어떤 삶이고, 오늘날로 접어들어 ‘슬레트지붕 무상철거’를 해 준다는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공무원은 어떤 삶일까요?



“저택도 재산도 이대로 누구에게도 상속되지 않고, 할아버지가 남긴 숙제만 대물림될 거야, 분명.” (210쪽)



  나는 기쁨을 잊지 않고 슬픔을 잊지 않습니다. 다만, 잊지 않되 굳이 더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나간 기쁨은 지나간 기쁨일 뿐이고, 지나간 슬픔도 지나간 슬픔일 뿐입니다. 새로 맞이할 아침을 생각하면서 곱게 꿈을 꾸려 합니다. 새삼스레 찾아올 멋진 하루를 떠올리면서 푸른 꿈을 다시금 지으려 합니다.


  만화책 《포겟 미 낫》은 ‘할아버지가 수수께끼와 함께 남긴 재산 상속’이 이야깃감이 된다고 할 만한데, 여자 주인공은 할아버지 재산에 그리 마음이 없으면서도 아예 마음이 없지도 않습니다. 잊지는 않되 더 생각하지 않는다고 할까요.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는다고 해서 갑작스레 기쁜 삶이 되지 않는 줄 알고, 빈털털이로 오늘을 살아도 오늘 하루를 기쁘게 누리면 웃음이 저절로 피어나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 4348.7.31.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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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의 소리 9
라가와 마리모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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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527



‘농약바람 헬리콥터’와 ‘노래하는 마음’

― 순백의 소리 9

 라가와 마리모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5.2.25.



  요 며칠 사이에 마을에서 개구리 노랫소리가 끊어졌다고 느꼈습니다. 얼추 열흘 남짓 됩니다. 왜 개구리 노랫소리가 끊어졌는지 아리송했는데, 어제 낮에 수수께끼를 풉니다. 해마다 이맘때, 그러니까 칠월 한복판이면 온 마을에 농약뿌리기가 한창입니다. 벼포기가 무럭무럭 자라는 이즈음에 다른 풀이 돋지 못하게 하려는 생각에다가, 메로(멸구)가 들지 말라면서 농약을 뿌립니다.


  요즈음은 시골에서 할매와 할배가 손수 농약을 뿌리는 일이 드뭅니다. 날이 갈수록 할매와 할배는 나이가 드는 터라, 손수 농약을 뿌리고 싶어도 못 뿌리기 일쑤예요.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시골 할매와 할배는 농협에 돈을 내고 헬리콥터를 빌립니다. 농협 공무원은 무인 헬리콥터에 농약을 그득 실어 논배미에 띄워요. 무인 헬리콥터는 온 마을 논을 두루 날아다니면서 농약을 뿌립니다.



‘민요주점에 있는 민요 가사책에, 전국의 노래 대략 700곡이 실려 있다. 그것도 널리 알려진 노래만 싣기 때문에 실제로는 더 많다. 할당량은 하루 두 곡. 외울 것.’ (6쪽)

“너, 호흡을 주고받을 생각이 있는 거니? 노래꾼의 개성을, 죽이지 말아야지.” (40쪽)



  농약바람이 부는 요즈막 시골마을에는 소리가 없습니다. 농약바람이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울려퍼지는 요즈막 시골마을에는 노래가 없습니다. 개구리도 풀벌레도 농약바람이 부는 동안에 쥐죽은듯이 고요합니다. 아니, 아뭇소리를 못 냅니다.


  농약 헬리콥터 여러 대가 이 마을 저 마을 떠다니면서 농약을 날릴 적에는, 들판에 농협 공무원을 빼고는 아무도 안 돌아다닙니다. 그야말로 쥐죽은듯한 시골 여름이요, 우리 집 아이들은 바깥에서 뛰놀지 못하고, 우리 식구는 자전거 나들이도 다니지 못합니다.


  참말 쥐죽은듯이 고요한 시골마을에서 《순백의 소리》(학산문화사,2015) 아홉째 권을 읽으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소리와 노래와 삶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소리와 노래가 잠들어 버리는 삶터란 무엇인가 하고 돌아봅니다.



“8년 동안 쌓아 온 지식을, 1주일밖에 안 된 녀석한테 쉽게 줄 수야 있나.” (24쪽)

“손님과 내가 주는 거야. 네 연주에 대한 대가라고. 기쁘지 않냐?” “…….” “저기 말야.” “예?” “호흡을 맞춘다는 건, 원치 않는 방향으로 교정된다는 건지도 몰라. 그건.” “그건?” “그때가 돼 보지 않으면 모르지.” (87∼88쪽)

“난 있지, 네 행동 하나하나가 놀랍지만, 진심이다 싶어 감탄했고, 뒤처진 것 같아 조바심이 났어. 그러니까 내 진심의 결실도 봐 주렴.” (109쪽)




  농약바람이 휘몰아치는 낮에 자전거에 두 아이를 태우고 마실을 갑니다. 오늘 꼭 우체국에 가서 부쳐야 할 소포가 있습니다. 안 갈 수 없는 노릇입니다. 아이들한테 비옷을 입힐까 하다가 그냥 갑니다. 날이 워낙 더워서, 비옷을 걸치고 자전거를 달리면 아이들은 온몸이 땀범벅이 되겠구나 싶어요.


  농약 헬리콥터가 없겠거니 싶은 길로 돌아서 가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코앞에 농약 헬리콥터가 농약을 촤아악 뿌립니다. 농협 공무원은 농약 헬리콥터를 낮게 띄워서 뿌리는데, 우리 자전거를 보더니 길 오른쪽으로 가라고 합니다. 속으로 웃음이 납니다. 자전거야 아주 마땅히 길 오른쪽으로 가지요. 그런데 바람이 길 오른쪽으로 부는데 어찌해야 할까요.


  두 해 앞서까지는 농협에서 농약 헬리콥터를 띄울 적에 며칠 앞서부터 면내방송을 했습니다. 지난해부터는 면사무소에서 ‘농약 헬리콥터가 뜬다’는 방송을 안 합니다. 농약 헬리콥터가 뜰 적에는 장독 뚜껑을 모두 닫고, 창문도 닫으며, 외출을 삼가라고 방송을 해요. 하늘에서 헬리콥터가 이리저리 날면서 온갖 곳에 농약을 뿌리니 한여름에 집안에 박혀서 문을 죄다 닫고 숨을 죽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만화책 《순백의 소리》를 가만히 헤아립니다. 노랫가락을 온몸으로 익혀서 온마음을 터뜨리듯이 들려주려고 하는 아이들은 언제나 구슬땀을 흘립니다. 악기 하나를 켜는데 그야말로 땀범벅이 됩니다. 영화 〈나인틴 헌드레드〉를 보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배에서만 지내던 ‘나인틴 헌드레드’가 ‘재즈의 아버지’라는 사람하고 피아노 겨루기를 할 적에 어마어마하게 땀을 쏟으면서 놀라운 연주를 선보입니다. 악기를 켜거나 다루는 사람이 흘리는 땀이란, 노랫가락에 싣는 온사랑이라고 할 만합니다.



‘소리가 모두를 이끌고, 흥을 돋우고, 즐겁게 하며, 축제다.’ (70쪽)

‘이야기가 소리를 필요로 하고, 소리가 이야기를 필요로 하며, 조개처럼 합이 맞는다. 말의 호흡, 소리의 타이밍, 그것이 맞아떨어져 하나가 된다.’ (133쪽)



  커다란 소포를 수레에 싣고 우체국으로 달리는데, 농약 헬리콥터가 바로 옆에서 나란히 납니다. 농협 공무원은 ‘아이 태운 자전거’가 지나가더라도 ‘농약 뿌리기’를 10초나 1분조차 멈추지 않습니다. 안내방송조차 없이 헬리콥터로 농약을 뿌려대니, 이 시골마을에서 볼일 보러 다니는 사람한테 마음을 쓸 겨를이 없으리라 느낍니다.


  나는 농약을 온몸으로 쏴악 얻어맞습니다. 눈이 매우 따갑습니다. 두 아이를 태우고 자전거를 모는데, 눈이 따갑더라도 눈을 감거나 손으로 가리면 그만 고꾸라질 수 있습니다. 뒤에 앉은 아이들더러 “눈 감아!” 하고 외친 뒤에 눈을 부릅뜨고 자전거 발판을 세게 구릅니다. 마음속으로 ‘괜찮아, 괜찮아, 지나가는 바람이야.’ 하고 생각합니다. 이 외침말 빼고는 아뭇소리도 나한테 안 들립니다.


  한참 달려서 농약 헬리콥터한테서 벗어나고 나서야 겨우 숨을 돌립니다. 참새도 제비도 가뭇없이 사라진 들판입니다. 개구리도 왜가리도 숨을 죽이는 들녘입니다. 아무래도 지난 열흘 사이에 엄청난 농약을 들마다 듬뿍 뿌렸으니, 개구리가 거의 다 죽었을는지 모르겠구나 싶습니다. 이즈음에 새끼한테 먹이를 물어다 나르는 제비는 어떠할는지 걱정스럽습니다만, 제비도 사람들이 농약을 뿌리는 줄 알 테니, 농약이 없는 깊은 숲으로 깃들어서 먹이를 찾을까요.




“‘우메조노’에서 다른 사람의 힘과, 소리에 승패가 있다는 걸 알았습니더. 지금 ‘타케노하나’에서, 돈을 벌려면 손님이 있어야 하고, 거기에는 ‘잘하고 못하는’ 것 이전에, ‘좋고 싫은’ 것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더.” (157쪽)

“솔직히 재능만 보면, 너는 여기의 누구보다도 위야. 그러니까, 기술을 배울 생각은 하지 마라. 배워야 할 건, 폭넓게 바라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이야.” (168쪽)



  만화책 《순백의 소리》에서 악기를 켜는 아이들은 빼어난 손놀림만 보여주지 않습니다. 갓난쟁이였을 적부터 노랫소리를 듣고 자랐으니, 또 갓난쟁이였을 무렵부터 악기를 만지며 놀았으니, 이 아이들 손놀림은 참으로 훌륭하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노래는 손재주로 들려줄 수 없습니다. 노래는 오롯이 ‘마음 울림’입니다. 마음을 건드리려고 켜는 노래요, 마음을 북돋우려고 들려주는 노래이며, 마음을 어루만지려고 나누는 노래입니다. 그러니, 악기를 켜는 사람은 ‘손놀림’보다 ‘마음’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이 없이 켜는 노래에는 ‘들을 만한 기쁨’이 없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쓰는 글도 이와 같다고 느낍니다. 마음이 없이 쓰는 글에 어떤 노래가 흐를 수 있을까요? 또, 마음이 없이 그리는 그림에, 마음이 없이 찍는 사진에, 마음이 없이 읊는 말에, 마음이 없이 짓는 밥에, 마음이 없이 세우는 아파트나 송전탑에 어떤 기쁨이나 노래가 흐를 만할까요?


  저녁이 흐르고 밤이 되니 빗줄기가 굵어집니다. 어제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뿌린 농약이 이 빗물을 타고 스러지려나요. 이 비가 그치면 부디 개구리도 풀벌레도 깊은 잠에서 깨어나 씩씩하고 힘차게 노래를 다시 부를 수 있기를 빕니다. 아름다운 시골마을 한여름에 맑고 사랑스러운 노랫가락이 새롭게 울려퍼질 수 있기를 꿈꿉니다. 4348.7.23.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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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시장 삼대째 42 - 안녕, 삼대째
하시모토 미츠오 지음 / 조은세상(북두)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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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41



언제 어디에서나 ‘좋아하는 일’을 한다

― 어시장 삼대째 42

 하시모토 미츠오 그림

 쿠와 카즈토 글

 임지혜 옮김

 조은세상 펴냄, 2015.5.26. 4500원



  바다가 깨끗할 적에 바다에서 고기를 낚습니다. 바다가 깨끗한 곳에서 김이나 굴이나 조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바다가 깨끗할 적에 바닷물에 뛰어들어 헤엄을 칩니다. 바다가 깨끗한 곳에서 상큼한 바닷바람을 쐬면서 기쁘게 노래할 수 있습니다.


  바다가 죽는다면 바다에서 고기를 못 낚습니다. 바다가 깨끗하지 않으면 김도 굴도 조개도 아무것도 못 얻습니다. 바다가 깨끗하지 않으면 바닷물에 뛰어들 수 없고, 바닷바람을 쐴 수도 없겠지요.


  오늘날 사회에서는 바닷가에 공장하고 발전소를 세웁니다. 유리공장도 제철소도 화학공장도 화력발전소도 핵발전소도 모두 바닷가에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일 테지만, 공장이나 발전소가 바닷가에 있으면, 이곳에서는 바닷일을 못합니다. 공장하고 발전소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바다에서 얻을 수 있는 선물은 그만큼 줄어듭니다.



“그랬구먼. 저 두 사람을 가르치기 위해서 삼대째가 베도라치를 발견한 걸지도 모르겠군.” “네?” “저런 일에 질투를 하는 하루마사도 한심하지만, 노리 녀석도 아직 일에 대한 진지함이 없어.” (11쪽)

“고급 브랜드가 되어서 가격이 올라가면 쉽게 먹을 수 없게 되지 않슴까. 전갱이라고 하면 역시 대중적인 생선 아님까!” “대단하군요! 저도 동감입니다! 원래부터 돈칫치 브랜드는 비싸게 팔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닙니다. 브랜드는 가격이 폭락하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62∼63쪽)



  하시모토 미츠오 님이 그림을 그리고, 쿠와 카즈토 님이 글을 쓴 만화책 《어시장 삼대째》(조은세상) 마흔둘째 권을 읽습니다. 2001년에 첫째 권이 나왔고, 2015년에 마흔둘째 권이 마지막으로 나옵니다. 마흔두 권에 이르는 만화책 《어시장 삼대째》는 일본 도쿄에 있는 츠키지 어시장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일본 곳곳에서 낚아올린 바닷고기를 하나씩 보여주고, 바닷고기 한 마리와 얽힌 사람들 이야기와 마음을 찬찬히 밝힙니다.



“훌륭한 손놀림입니다. 빠르면서 고른 완성도예요. 아오키가하라 씨, 저도 이렇게 생선을 손질할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 건어물에 대한 사랑이 있다면 말이야.” (64쪽)

“보기에는 똑같아 보여도 전갱이는 각각의 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살의 두꺼운 정도나 단단한 정도, 등이나 배 라인도 다르면 얼굴 생김새도 달라집니다. 기계로는 판별할 수 없는 전갱이의 개성입니다. 그 다른 점을 무시하고 모두 다 똑같이 손질하면 오히려 완성도가 떨어지게 됩니다.” “정답이다. 사람의 손으로 한 마리 한 마리의 차이를 확인하면서 애정을 담아 손질하는 거지.” (91쪽)



  책이름에도 나오듯이, 《어시장 삼대째》는 ‘삼대째’를 잇는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삼대’라고 해 본들 그리 길지 않은 나날입니다. 그런데, 어시장에서도, 바다에서도, 작은 가게에서도, 이 일을 즐겁게 이으면서 삶을 지으려고 하는 사람은 자꾸 줄어듭니다.


  가만히 따지면,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은 삼대도 삼십대도 아닙니다. 삼백대를 훌쩍 넘고, 어쩌면 삼천대도 훨씬 넘을 테지요. 지구별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예부터 시골에서 조용히 흙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았을 테지만, 요 백 해 사이에 아주 빠르게 도시 문화와 문명으로 바뀝니다. 이런 흐름을 타고 ‘삼대째’ 집일을 잇는 사람들은 조용히 사라지거나 잊혀집니다.


  그렇다고, 한집 사람들이 집일을 꼭 이어야 하지 않습니다. 다른 집안 사람이어도 얼마든지 ‘집일(가업)’이라기보다 ‘즐거운 일’을 찾아서 아름답게 삶을 지을 수 있으면 됩니다. 만화책 《어시장 삼대째》에 나오는 ‘어진 삼대째’라고 하는 주인공은 ‘어시장 집안을 이어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도시에서 회사원으로 일하다가 ‘어시장 일을 밑바닥부터 하나씩 배우며 뿌리를 내리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어부들의 후계자 부족에 위기감을 가지고 있었지요. 마을에 있는 생선 가게도 똑같이 고령화, 후계자 부족에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신궁의 삼대째가 말했던 ‘2, 3차 산업이 없어도 일차 산업은 존재할 수 없다’라는 말은 그런 의미였군요!” “어획량을 아무리 늘려도 그것을 파는 힘이 없으면 언젠가 모두 끝이 날 테니까요.” (145쪽)



  《어시장 삼대째》에 나오는 ‘어진 삼대째’는 물고기를 몹시 좋아합니다. 먹기도 좋아하고, 손질하기도 좋아하며, 도매상에서 물고기를 사고파는 일도 좋아합니다. 스스로 아주 좋아하는 일이기에 무엇이든 새롭게 배우려 하고, 이 일을 하면서 늘 보람을 느껴요. 그래서 ‘어진 삼대째’는 늘 새로운 물고기를 배웁니다. 물고기를 더 잘 알고 싶어서, 물고기를 낚는 고장으로 으레 찾아갑니다. 물고기를 낚는 일꾼을 만나고, 바다를 마주하며, 고깃배에 올라탑니다.


  전문 요리사한테만 요리를 맡기지 않습니다. 물고기를 더 잘 알고 싶기에, 손질법과 요리법도 새롭게 배워서 온갖 물고기를 스스로 다루려고 합니다.


  스스로 전문가로 거듭나는 ‘어진 삼대째’라고 여길 수도 있을 테지만, ‘어진 삼대째’는 전문가로 나아가기보다는 ‘좋아하는 삶을 한결같이 좋아하는 나날’이 되려는 마음일 뿐입니다. 스스로 좋아하는 물고기를 손질해서 먹고, 스스로 맛있게 먹은 물고기를 사람들한테 팔며, 스스로 좋아하는 물고기를 다루는 가게를 보람으로 여기면서 살림을 꾸리려 합니다.



“어시장은 츠키지라는 장소가 아닙니다!” “뿌리를 부정하는군.” “프로인 도매상 여러분이 생선을 다루는 장소가 바로 어시장입니다! 도매상이 토요스로 가면 그곳이 어시장이 되는 겁니다!” (216쪽)



  만화책 《어시장 삼대째》는 ‘츠키지 어시장’이 새로운 곳으로 옮기는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끝을 맺습니다. 츠키지라고 하는 곳도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백 해쯤 앞서 새로운 자리로 옮겨서 오늘날 같은 발자국을 남겼고, 이제 다시 새로운 자리로 옮겨야 하더라도 ‘어시장 일꾼’이 스스로 거듭나면서 땀을 흘리면 앞으로도 새로운 발자국을 남길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할 때에 즐겁습니다. 언제 어디에서라도 스스로 사랑하는 삶을 바라보고 가꿀 때에 아름답습니다.


  어떤 밥상을 차리든 아이들하고 기쁘게 웃으면서 먹으면 맛있습니다. 어떤 옷을 입든 다 함께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노래하면 곱습니다. 어떤 집살림을 꾸리든 한집 사람이 서로 아끼면서 보살피는 사랑이라면 재미납니다.


  땀내음하고 바다내음하고 삶내음이 찬찬히 흐르면서 열다섯 해를 이은 만화책을 가만히 쓰다듬습니다. 둘레에서 늘 마주하는 이웃들 삶자락이 아기자기한 이야기꽃으로 피어나는 만화책을 조용히 덮습니다. 마흔두 권이라는 먼길을 참 씩씩하게 걸어왔습니다. 4348.7.21.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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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가 없는 세상 책공장더불어 동물만화 1
김은희 지음 / 책공장더불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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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31



고양이가 없는 지구별이 되면

― 나비가 없는 세상

 김은희 글·그림

 책공장더불어 펴냄, 2008.4.12.



  지난달에 우리 집 광에서 새로 태어난 고양이는 으레 마당에서 놉니다. 처음에는 광하고 옆밭 사이를 오가며 놀다가, 천천히 마당으로 나오려 하더니, 요즈막에는 새벽 아침 낮 저녁 밤 가리지 않고 틈틈이 마당에서 평상을 오르내리면서 놉니다.


  고양이는 낮잠을 많이 자니 하루 내내 마당에서 뛰놀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평상 밑에 기어들어서 자고, 자전거 밑에 모여서 자며, 처마 밑에 짐을 쌓은 곳에 올라가서 잡니다. 자다가 깨면 먹이를 찾고, 먹이를 찾아 배가 부르면 놀아요.


  이 고양이는 마을고양이라 할 만하고, 들고양이라 할 수 있는데, 사람 손을 타려고 하지는 않으면서도, 꼭 우리 집 마당을 놀이터요 삶터로 삼아서 함께 지냅니다. 새끼를 낳은 어미도 우리 집 광에서 태어났고, 이 어미를 낳은 어미도 우리 집 광에서 태어났어요. 아마 이 아이들은 아스라히 먼 옛날부터 이 집에서 나고 죽고를 되풀이했으리라 느낍니다.



“나, 네가 하늘 나는 꿈 꿨다. 날개가 반짝반짝하면서 높이 나는 거 봤어.” “정말? 나 멋졌어?” (135쪽)

‘100일 동안 매일 신디와 추새가 천국에 가게 해 달라고 묵주기도를 했다. 물론 비웃을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두 아이를 위해 무엇이든 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였을까. 100일이 지난 며칠 뒤 원고 마감을 하고 깜빡 낮잠이 들었는데, 꿈에 신디가 보였다. 그런데 분명히 신디가 맞는데 눈이 부시게 온몸에서 흰빛이 나는 하얀 고양이 모습을 하고 나타난 것이다.’ (189쪽)




  김은희 님이 고양이하고 함께 지내는 이야기를 담은 만화책 《나비가 없는 세상》(책공장더불어,2008)을 읽습니다. 고양이를 한식구로 여겨서 한집살이를 한다는 김은희 님은 늘 지켜보는 고양이를 만화로 담고, 고양이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말을 나눌까 하고 생각하면서 만화를 그립니다. 고양이하고 눈을 마주보면서 마음속을 읽으려 하고, 고양이가 보여주는 몸짓을 눈여겨보면서 삶을 헤아리려 합니다.


  문득 우리 집 고양이를 떠올립니다.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내는 고양이는 쥐를 꽤 잘 잡습니다. 우리 집에 온갖 고양이가 드나들면서 새끼를 낳을 즈음부터, 천장을 가로지르던 쥐가 모조리 사라졌습니다. 우리 식구가 이 시골집에 처음 깃들 무렵만 해도 쥐가 제법 천장을 가로질렀는데, 참말 요 몇 해 사이에는 생쥐 꼬리조차 구경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우리 집 고양이들이 잡아서 먹다가 남긴 생쥐 주검은 곧잘 구경합니다. 쥐가 사는 굴을 찾아서 쥐를 잡았을 수 있고, 논둑이나 밭둑에서 쥐를 잡았을 수 있습니다.



“고양이들은 나무나 담을 탈 수 있으니까 웬만해서는 이런 일이 없는데, 이런 경우는 누군가 일부러 몰아 놓고 그러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사람이요?” “적어도 눈은 그렇고요.뭔가 막대 같은 걸로 치지 않는 한 이렇게 되지 않아요.” (140∼141쪽)

‘페르캉을 이렇게 만든 사람은 얼씬거리는 고양이 한 마리 혼내 준 거에 불과하겠지만, 그 생명이 얼마나 고통스러워 하는지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148쪽)



  사람은 고양이처럼 쥐를 잘 잡지 못합니다. 한겨레도 예부터 집에서 고양이를 기른다거나 고양이한테 먹이를 준 집이 꽤 많습니다. 광이나 부엌이나 천장을 가로지르는 쥐를 잡으라고 고양이한테 밥을 주면서 한집살이를 했을 테지요. 쥐를 잡아야 하는 고양이인 만큼 고양이한테는 목줄조차 안 하면서 한집살이를 했겠지요.


  고양이는 쥐뿐 아니라 개구리도 잘 잡고, 때로는 지네도 잡습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사람이 고양이한테 내주는 밥은 고양이한테는 주전부리일 수 있습니다. 고양이한테는 더 맛난 밥이 따로 있되, 사람이 애써 밥을 주니까 재미 삼아서 먹을 수 있어요. 게다가 고양이는 쥐를 잡아도 곧바로 먹어치우지 않습니다. 잡은 쥐를 먹을 적에도 조금씩 먹습니다.


  시골에서 사는 고양이는 숲바람을 쐬고 나무 밑에서 낮잠을 잡니다. 돌 울타리에 올라앉아서 해바라기를 하다가 꾸벅꾸벅 졸고, 나무 열매를 따먹으려고 멧새가 찾아들면 번쩍 눈을 떠서 새를 잡을 수 있나 하고 쳐다보다가 다시 꾸벅꾸벅 좁니다. 경운기나 짐차가 지나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라든지 사람이 다가서는 발소리가 아니라면 도무지 잠에서 깰 생각을 안 합니다.



‘노래를 부르자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히스테릭한 상태였던 신디와 추새가 눈에 띄게 안정적이 되었다. 물론 페르캉도 통증과 답답함 때문에 불안정했던 모습이 놀랄 만큼 얌전해졌다.’ (151쪽)

‘마당에 나가 한없이 나무나 풀을 들여다보고 있는 추새를 보노라면 구도자처럼 보인다. 친구들은 야생 상태였다면 추새는 분명 도태되었을 거라고 한다. 느린 걸음에 도무지 고양이라 생각되지 않는 온화한 성격. 벌레 한 마리 죽이지 못하는 선량함.’ (182∼183쪽)



  만화책 《나비가 없는 세상》을 보면, 누군가 고양이를 몰아붙여서 때리거나 차거나 괴롭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람들은 들고양이나 골목고양이를 괴롭히기도 하고, 따로 밥접시를 놓으면서 보살피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이웃사람을 아끼거나 사랑하기도 하고, 이웃사람을 괴롭히거나 따돌리기도 합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동무를 살뜰히 보듬는 너른 사랑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동무를 괴롭히거나 따돌리는 짓을 일삼기도 합니다.


  말을 못 하는 짐승을 괴롭히고, 말을 하는 이웃을 괴롭힙니다. 말을 못 하는 짐승을 아끼고, 말을 하는 이웃을 아낍니다. 두 가지 모습입니다. 남이 저를 괴롭히거나 따돌리면 슬프거나 고단할 텐데, 왜 여리거나 아픈 남(짐승하고 사람 모두)을 괴롭혀야 할까요. 길에서 사는 고양이한테 돌을 던질들 재미있을까요? 누가 나한테 돌을 던지면 재미있을까요? 내가 들고양이한테 돌을 던진다면, 바로 내가 나한테 스스로 돌을 던지는 셈입니다.



‘함께 살던 동생이 둘째 아기 연생이를 낳았다. 방에 재워둔 연생이가 잠에서 깨 울지도 않고 뒤척이면 우리는 몰라도 페르캉은 알았다. 더 놀라운 건 연생이가 젖을 먹고 싶어하는 것도 귀신같이 알아내는 것이다 … 아기가 태어나 처음 한 말은 ‘야옹이’였다.’ (197쪽)

‘엄마 말대로 사람이 동물들이 갖고 있는 만큼의 믿음만 갖고 있다면, 신뢰만 갖고 있다면, 아마도 사랑은 멀리 있지 않을 것이다.’ (199쪽)



  먹이를 먼저 얻으려고 다른 고양이를 밀치는 고양이라면, 이 고양이는 한결 잘 살아남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고양이한테 밀리는 고양이라면, 이 고양이는 들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 몫을 챙기려고 다른 사람을 밀치는 사람이라면, 이 사람은 한결 잘 살아남는다고 할 만합니다. 다른 사람한테 밀리는 사람이라면, 이 사람은 사회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할 만합니다.


  오늘날 사회에서 경쟁이나 실적을 따지고 경제성장에 목을 매다는 모습이란, 바로 다른 사람을 밀쳐서 내 몫을 챙기려는 몸짓하고 같다고 할 만합니다. 밥 한 그릇을 얻었으면 함께 먹을 만한데, 함께 나누지 않고 혼자 먹는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혼자 잘 살아남을 테지만, 마음은 몹시 가난하겠지요. 다른 사람을 이웃으로 여기지 못하고 밀치는 삶이라면, 이러한 삶에 사랑이 싹트기란 어렵겠지요.


  이 지구별에 고양이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아마 쥐가 들끓을 테지요. 이 지구별에서 여리거나 자그마한 사람들이 밀리고 밀려서 모조리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하고 어림해 봅니다. 아마 온누리에 더 무시무시하게 치고받는 싸움이 불거질 테지요. 남을 밀치는 사람만 살아남으면, 남을 밀치는 사람끼리 더 모질거나 매몰차게 밀치려 할 테니까, 싸움밖에 안 남습니다. 남을 밀치지 않고 그저 밀리면서 조용히 있는 사람은, 남이 아닌 이웃을 생각하면서 함께 살아갈 길을 사랑으로 살핍니다.


  따스한 마음이 되어 하루를 열기를 빕니다. 오늘도 우리 집 마당에서 새벽부터 신나게 뛰노는 들고양이 네 마리를 물끄러미 지켜보면서 마음을 가다듬습니다. 오직 따사로운 사랑을 마음에 담아 하루를 열자고 생각합니다. 내 마음자리부터 즐거운 노래가 흐를 수 있도록 삶을 짓자고 생각합니다. 4348.7.18.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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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샘 2015-07-18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 인터넷 기사로 어느 동네에 고양이가 죽어가는데 사람이 한 일 같다고 만약 확실한 증거가 나오면 신고 하겠다고... 그런 글 읽었는데 이 글이 위로가 되네요.

숲노래 2015-07-18 09:11   좋아요 0 | URL
이웃사람을 학대하기에는 눈치가 보이는 `그야말로 연약한 사람`이
고양이 같은 짐승을 학대하면서
스스로 마음을 망가뜨리는구나 싶기도 해요.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