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분의 일 1
타카토시 나카무라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549



우리가 함께 하면서 즐거운 하루

― 십일분의일 (1/11) 1

 나카무라 타카토시 글·그림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3.9.25. 4800원



  한집을 이루는 사람은 혼자일 수 있고 여럿일 수 있습니다. 한집에 한 사람만 있더라도, 한마을을 이루자면 ‘여러 한집’이 모여야 합니다. 그러니, 한마을을 이루려면 여러 사람이 골고루 어우러져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도 있고 저러한 사람도 있기 마련입니다.


  한별을 이루는 이 지구에는 여러 나라와 겨레가 있습니다. 같은 나라이면서 여러 가지 말을 쓰기도 하고, 여러 겨레가 모인 나라에서 한 가지 말을 쓰기도 합니다. 삶과 말이 같을 적에는 겨레요, 삶과 말이 다르더라도 한마을을 슬기롭게 이루려 하면 나라입니다.



“축구는 이제, 취미 삼아 할 거야.” “하지만 너만큼 실력 좋은 사람이 축구를 안 하는 건 아까운데.” “국가대표가 그렇게 말해 주니 기쁘긴 한데, 이미 결심했어.” (18쪽)

“난 축구를 계속할 수 있었어. 그건, 축구가,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니기 때문이야.” (32쪽)



  혼자서 무대에 오르는 운동경기가 있고, 여럿이 무대에서 뛰는 운동경기가 있습니다. 혼자서 무대에 오른다 하더라도 이 한 사람을 돕거나 돌보는 사람은 여럿입니다. 여럿이 무대에서 뛰는 운동경기라면 그야말로 여러 사람이 한마음이 되어 움직이기 마련입니다.


  나카무라 타카토시 님이 빚은 만화책 《십일분의일(1/11)》(학산문화사,2013) 첫째 권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이 만화책은 ‘축구’라는 운동경기를 놓고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혼자서 잘 한다고 잘 할 수 있는 운동경기가 아닌, 여럿이 함께 도우면서 즐겁게 할 수 있는 운동경기를 보여줍니다. 한두 사람이 솜씨를 뽐낼 때에 놀라운 성적을 거둘는지 모르나, 모든 사람이 한몸과 한마음이 되어 움직일 적에 비로소 ‘이 운동경기를 하는 보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나도 비슷한 처지였던지라 젊었을 땐 둘이서 정말 고생했어. 아빠는 ‘호강시켜 주지 못 해 미안하다’고 늘 내게 말했지. 그렇게 아빠는, 대학에 가지 않은 것, 고교 시절 달리기만 했던 걸 내내 후회했어. 그래서 최소한 내 아이들에게만은 나 같은 고생은 시키고 싶지 않다, 그게 아빠가 서클 따위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하게 된 이유야.” (79∼80쪽)



  우리가 함께 하면서 즐거운 하루입니다. 우리가 서로 눈을 마주치면서 빙그레 웃는 하루입니다. 우리가 같이 노래하면서 어깨동무하는 하루입니다.


  네 힘이 모자라면 내가 힘을 쓰면 됩니다. 내 힘이 모자라면 네가 힘을 쓰면 돼요. 둘 다 힘이 모자라면 이웃이나 동무를 부릅니다. 둘 다 힘이 넘치면 이웃이나 동무를 도우러 가요.


  물이 흐르듯이 삶이 흐릅니다. 물결처럼 기쁜 노래를 부르면서 삶을 가꿉니다. 물처럼 맑은 눈망울로 바라봅니다. 온누리를 적시는 빗물처럼 서로서로 마음을 촉촉히 적시는 고운 숨결이 됩니다.



“골도 어시스트도 아니야. 얼핏, 이 달리기는 그저 쓸데없는 짓으로 보일지 몰라. 하지만, 그렇게, 쓸데없을지도 모르는 걸 온힘을 다해 해야, 비로소 재미있는 축구로 이어지는 거야.” (87∼88쪽)

‘늘 혼자서 카메라에 빠져 있던 그녀를, 반 아이들은 괴짜 취급했지만, 그런 주변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 왠지 무척이나 상쾌해 보였다.’ (117쪽)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자, 그렇게, 새로운 결심을 가슴에 품고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무렵, 내 몸은 변하기 시작했다.’ (122쪽)



  만화책 《십일분의일(1/11)》이 들려주려는 이야기는 대단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새롭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품을 때에 비로소 새롭게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스스로 새롭지 않겠다는 마음이 될 때에 참말 새로움이 하나도 없는 하루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바보스럽게 산다면 그저 바보일 테지요. 그러나, 바보스럽게 산다고 해서 나쁘지 않습니다. 바보스러움을 온몸으로 겪을 뿐입니다. 슬기롭게 살 적에는 슬기로운 빛이 널리 퍼집니다. 나부터 슬기로우면서 둘레에 밝은 웃음을 베풀고, 내 둘레에서 슬기로우면서 나한테까지 밝은 웃음이 퍼집니다.


  조금 늦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조금 일찍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일찌감치 바보스레 살다가 뒤늦게 바보스러움을 떨칠 수 있어요. 차근차근 한길을 걸으면서 바보스러움을 씻은 뒤에, 빙그레 웃음꽃을 피울 수 있어요.



“결국 판단은, 네 몫이야. 네가 가고 싶은 길을 선택해라.” (81쪽)

“진심으로 변하려 한다면, 사람은 변할 수 있어요.” (152쪽)

‘지금, 이제야 겨우 딱 한 걸음 다가갔다. 그 시절 내가 그토록 꿈꿨던, 겉모습만이 아닌, 반짝반짝 빛나는 나 자신에게.’ (163쪽)



  내 길은 내가 걸어갑니다. 내 밥은 내가 먹습니다. 내 말은 내가 합니다. 내 노래는 내가 부릅니다. 내 웃음은 내가 짓습니다. 내 빨래는 내가 합니다. 참말 모두 내 몫을 나 스스로 즐겁게 맡습니다. 내 꿈은 내가 이루고, 내 사랑은 내가 길어올려요.


  너도 나도 얼마든지 반짝반짝 빛나는 숨결입니다. 나도 너도 언제나 고요히 피어나면서 눈부시게 일어서는 나무와 같습니다. 열한 사람이 함께 운동장에서 뛰는 축구처럼, 나는 열한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때로는 운동장에서 뛰지 못하고 뒷자리에 앉아서 지켜보는 사람일 수 있어요. 때로는 뒷자리에도 앉지 못하고 관중석에 앉아서 쳐다보는 사람일 수 있어요.


  어느 자리에 앉든 다 재미있습니다. 어느 자리에서든 내 몫은 즐거이 맡을 수 있습니다.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달릴 수 있고, 물주전자를 떠올 수 있으며, 목청껏 기운을 북돋아 줄 수 있습니다. 서로 아끼는 마음일 적에는 언제 어디에서나 사랑스러운 벗님입니다. 4348.8.26.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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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숟가락 8
오자와 마리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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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37



‘엄마도 이 집 아이라면’ 좋을 텐데

― 은빛 숟가락 8

 오자와 마리 글·그림

 삼양출판사 펴냄, 2015.6.2.



  아침에 두 아이를 데리고 마당 한쪽에서 능금씨를 심습니다. 마침 어제오늘 비가 와서 흙이 촉촉하게 젖었기에 손가락으로 땅을 쏘옥 눌러서 넉 톨을 심습니다. 능금씨에서 싹이 틀 수 있을는지 없을는지 모릅니다. 다만, 우리 집 마당 한쪽에서 씨앗에서 자라는 나무가 있기를 꿈꿉니다. 어린나무를 장만해서 키우는 나무도 사랑스럽고, 새가 눈 똥으로 자라는 나무도 사랑스러우며, 예전부터 이 시골집에서 자라는 나무도 사랑스럽습니다. 우리 집을 둘러싼 여러 사랑스러운 나무에 ‘씨앗 한 톨로 키운 나무’가 있으면 더욱 사랑스러우리라 생각해요.



“요 매화나무가 리츠 오빠 나무고, 요 단풍나무가 시라베 오빠 거, 가장 왼쪽에 있는 레몬나무가 내가 태어났을 때 심은 거야. 루카한테는 올리브가 어울린다고 엄마랑 얘기했거든.” “올리브가 뭐야?” “이 모종나무 이름.” (16∼17쪽)


‘문득 바라보니, 루카가 어리광부리고 싶어하는 것 같기에, 엄마랑 둘이 샌드위치처럼 양쪽에서 꼭 안아 줬다.’ (37∼38쪽)



  오자와 마리 님 만화책 《은빛 숟가락》(삼양출판사,2015) 여덟째 권을 읽습니다. 만화책 《은빛 숟가락》은 ‘집에서 사랑으로 지어서 먹는 밥’ 이야기를 다룹니다. 대단한 밥차림이라 하기 어려울 수 있고, 누구나 지어서 먹을 만한 밥차림이라 할 수 있는데, 한집 사람들이 저마다 손을 거들어 이것을 함께 하고 저것을 같이 하면서 짓는 밥차림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한집 사람들이 누리는 한솥밥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맛집 이야기라든지, 요리 대회 이야기라든지, 요리 솜씨를 겨루는 이야기라든지, 술안주를 찾는 이야기가 만화로 꽤 많이 나오는데, 《은빛 숟가락》에서 다루는 ‘집밥’은 여러모로 사뭇 다릅니다. 밥 한 그릇이 마음을 달래는 이야기를 다루되, 온누리 모든 살림집에서 저마다 사랑을 담아서 짓는 밥 한 그릇에서 피어나는 이야기가 흐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다루어요.



‘처음엔 밥 먹기 전에 ‘잘 먹겠습니다’ 하는 거랑, 밥 먹고 나서 ‘잘 먹었습니다’ 인사하는 걸 까먹기도 했어. 나중에 배고파질 때를 위해 잔뜩 남겼다가 혼나기도 하고, 다음 식사가 언제가 될 지 모른다는 생각에 너무 많이 먹어서 배 아파지기도 했지만, 이제 괜찮아. 형네 집에서는 매일 아침도 점심도 저녁도 밥 먹는 시간이 꼭 있거든.’ (22쪽)


‘엄마는 제대로 밥 먹고 있을까? 엄마가 일을 쉬는 날, 늦게 일어나서 보울 가득 샐러드만 먹거나, 크리스마스 무렵엔 이틀 연달아 케이크만 먹던 날도 있었는데. 카나데 누나가 그런 건 영양이 치우쳐서 안 된대. 엄마도 이 집 아이였으면 좋았을 텐데.’ (29∼30쪽)



  《은빛 숟가락》 일곱째 권에서 ‘루카’라는 아이는 ‘어머니 집’을 떠납니다. 이 만화책을 이끄는 주인공 사내인 ‘리츠’라는 젊은이는 ‘그동안 기른 어머니’ 말고 ‘저를 낳은 어머니’가 있는 줄 고등학생 적에 처음으로 알았고, 고등학교를 마친 뒤 ‘저를 낳은 어머니’를 찾아가기로 했는데, ‘저를 낳은 어머니’한테서 사랑을 조금도 못 받는 채 밥도 으레 굶는 ‘동생 루카’를 만나요.


  마음이 여리면서 착한 리츠라는 젊은이는 척 보기에도 제 동생인 줄 알겠는 아이한테서 등을 돌릴 수 없습니다. 날마다 손수 도시락을 싸서 ‘다른 집’에서 ‘저를 낳은 어머니’한테서 사랑을 못 받는 동생한테 가져다 줍니다. 도시락을 가져가는 길에 언제나 그림책도 챙겨서 책을 읽어 주고 여러 가지 놀이를 함께 해요.


  이러던 어느 날 리츠라는 젊은이는 ‘저를 낳은 어머니’하고 이야기를 하기로 합니다. ‘루카라는 아이를 리츠라는 젊은이한테 맡겨’ 달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러면서 루카라는 아이는 리츠가 사는 집으로 옮기고, 루카라는 아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때에 제 끼니를 먹는 삶’을 누려요.


  제때에 제 끼니를 처음으로 먹으면서 밥상맡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도 처음으로 배우는 루카라는 아이는 마음속으로 혼자서 생각합니다. ‘엄마도 이 집 아이였으면 좋았을 텐데.’



“루카의 책가방 멘 모습을 보면 분명 데려가고 싶어질 거야. 그리고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또다시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겠지. 그러니까 당분간은 안 만나도 돼. 가끔 너한테서 이렇게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좋아.” (55∼56쪽)


‘하지만 만일 지금 그 애가 상처받은 상태라면 뭔가 하고 싶어. 이제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가드레일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축 처져 있을 때에, 그 애가 손을 내밀어 준 것처럼.’ (68∼69쪽)



  아이는 아이입니다. 어른도 아이입니다. 몸뚱이와 키는 크더라도 어른도 아이와 똑같이 아이입니다. 아이도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고, 어른도 사랑을 받으면서 삽니다.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는 제대로 철들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어른도 제대로 슬기롭지 못해요.


  사랑이 흐르기에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서 씩씩하고 멋진 아이로 철이 듭니다. 사랑이 샘솟기에 어른은 기운차게 일하고 살림을 가꾸는 동안 아름답고 슬기로운 사람으로 우뚝 섭니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먹는 밥 한 그릇은 ‘그냥 밥 한 그릇’이 아닙니다. 서로 사랑을 나누면서 기쁘게 이야기꽃을 피우는 밥 한 그릇입니다. 한집에서 함께 나누는 밥 한 그릇은 ‘그냥 끼니 한 번’이 아니라 따사로운 마음이 오가면서 맑게 웃음잔치를 이루는 밥 한 그릇입니다.



“아까, 널 기다리면서 깨달았어. 가방 안에 늘 이 상자가 있었듯이, 내 마음속엔 네가 있었다는 것. 이제 상자 귀퉁이가 닳았고, 내용물도 전혀 대단한 게 아니지만, 늦어서 미안해. 생일 선물이야.” (94∼95쪽)



  밥상에 반찬을 많이 올려야 넉넉하지 않습니다. 값진 먹을거리를 늘 밥상에 올려야 즐겁지 않습니다. 어떤 반찬을 올리든 한솥밥을 오순도순 먹을 수 있을 때에 넉넉한 한 끼니입니다. 어떤 먹을거리를 나누든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먹을 수 있을 때에 즐겁습니다.


  동무를 부르고 이웃을 부릅니다. 멀리 떨어져 사는 살붙이를 부릅니다. 차린 것은 얼마 없어도 밥상맡에 나란히 둘러앉습니다. 서로 마음으로 사귀는 아름다운 넋이기에 즐겁게 밥 한 그릇을 비웁니다.



“그거 말인데, 뭐, 이런저런 말을 하는 놈도 있겠지. 너 때문에 주전에서 누락되는 사람도 있을지 몰라. 하지만, 작은 내 동생을 보면서, 있을 자리라는 건 처음부터 존재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거라고 절실히 느꼈어.” (144∼145쪽)



  씨앗을 심어서 열매를 얻기까지 긴 나날이 듭니다. 남새 씨앗을 심어도 석 달을 기다리기 마련입니다. 나무 씨앗을 심으면 여러 해를 기다려야 합니다. 나는 ‘씨앗으로 키운 예쁜 배나무’를 만난 일을 늘 마음으로 되새깁니다. 대여섯 해쯤 앞서 골목집 한쪽에 마련한 마당에서 잘 자란 배나무를 본 적 있는데, 이 배나무를 돌본 할아버지는 ‘놀러온 아들이 준 배가 맛있어서 씨앗을 남겨서 심어 보았는데, 이렇게 잘 자라서 이제 이 배나무에서 배를 얻어.’ 하고 말씀했습니다. 배씨 한 톨을 배나무로 키우기까지 얼마나 긴 나날을 얼마나 따순 손길로 어루만지셨을까요.


  사람도 씨앗 한 톨에서 새로운 숨결로 자랍니다. 모든 짐승과 벌레도 알(씨앗)에서 깨어나서 새로운 목숨으로 삶을 짓습니다. 풀과 나무도 언제나 씨앗 한 톨에서 새롭게 자랍니다. 몸에도 씨앗이 깃들고, 마음에도 씨앗이 깃듭니다. 우리 몸과 마음은 아주 작은 씨앗에서 비롯하는데, 이 작은 씨앗은 가없이 너르며 깊은 바람이 되어 따스한 사랑으로 거듭납니다.



“우리 집에 와. 좁은 정원이지만 무리해서 농구대를 설치했거든.” “어째서 그런 식으로 말해 주는 거예요?” “네가 농구를 좋아한다는 걸 아니까 그렇지. 그리고 또 하나는 나를 위해서야.” (138∼139쪽)



  밥을 다 지어서 밥상에 차릴 즈음 아이들을 부릅니다. 자, 수저는 너희가 놓아 주렴. 두 아이는 저마다 수저를 놓습니다. 어머니 수저와 아버지 수저도 아이들이 놓아 줍니다. 아직 아이들은 스스로 밥을 지을 줄 모르니 어버이가 도맡아서 짓습니다. 앞으로 아이들이 야무지게 자라서 손수 밥을 지을 무렵에는 내가 수저를 놓을 수 있겠지요. 밥을 먹자고 부를 수 있어서 기쁜 하루입니다. 밥상맡에서 수저 놀리는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밥 한 술 뜰 수 있어서 즐거운 삶입니다. 4348.8.25.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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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5-08-25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즐겨보는 만화입니다~^^
가족을 배려하는 마음이 읽혀서 좋습니다.

숲노래 2015-08-25 21:26   좋아요 0 | URL
오자와 마리 님 만화를 보시는군요 @.@

일본에서는 십 몇 권까지 벌써 나왔는데
한국은 번역이 너무 늦어요 ㅠ.ㅜ
9권이나 10권은...
또 이분 다른 작품은 언제쯤 번역이 될는지
참 까마득합니다......
 
파타리로! 23
마야 미네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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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548



재미난 삶을 바라는 장난꾸러기 임금님

― 파타리로 23

 마야 미네오 글·그림

 조은정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06.9.15. 3500원



  마야 미네오 님이 빚은 만화책 《파타리로》(대원씨아이,2006) 스물셋째 권을 읽습니다. 한국에서는 서른째 권까지 나오고 더는 나오지 않는 만화책입니다. 일본에서는 1979년에 첫 낱권책이 나왔고, 아직도 새 이야기가 꾸준히 나와서 2015년 5월에 아흔넷째 권까지 나왔다고 합니다. 만화를 그리는 분이 씩씩하게 몇 해 더 그린다면, 이 만화책은 마흔 해를 잇는 발자국을 남길 테고, 낱권책으로도 백 권을 넘기겠구나 싶습니다.




“그럴듯한 말로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라구! 사탄님의 명령을 거역할 거라면 힘으로라도 데리고 가겠어!” “힘으로?” (7쪽)

“나의 소중한 사람에게 집적대지 마! 다음에 또 이런 짓을 하면 소금을 뿌려서 머리부터 씹어버릴 거야!” (27쪽)



  만화책 《파타리로》는 ‘엽기발랄 원조만화’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이런 이름 그대로 《파타리로》에 나오는 ‘마리넬라 왕국’에서 임금님 노릇을 하는 ‘파타리로’는 언제나 우스꽝스럽거나 바보스러운 짓을 일삼습니다. ‘마의 삼각지대’ 한복판에 뜬 작은 섬나라라 하는 마니넬라 왕국이라는데, 파타리로 국왕은 이 나라에서 나오는 다이아몬드를 팔아서 어마어마한 재산을 쌓고, 이 재산으로 비밀정보요원(이들 요원한테는 ‘양파’라는 이름을 붙였다)을 키웁니다. 그런데 파타리로 국왕이 거느리는 비밀정보요원은 딱히 하는 일이 없습니다. 언제나 심심하다고 노래하는 국왕 곁에서 단막극놀이나 분장놀이를 하면서 하루를 보냅니다.




“인간계에는 옛날 인간이 파묻어 둔 보물이 여기저기에 있어. 그것을 파내지.” “그런 것을 용케 아는군요.” “파묻는 현장에 있었을 때도 있었고, 파묻은 본인에게서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거든.” “그렇군요. 몇 천 년 전부터 인간계에는 가끔 왔었으니까요.” “아스타로트 님은 몇 살이에요?” “글쎄, 나도 몰라.” “1만 살은 훌쩍 넘었잖아요. 생일 초가 장난 아니겠네요.” (38쪽)



  만화책 이야기로 그칠 수도 있지만, 파타리로 국왕은 나라일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돈이 넘쳐나니까 걱정하지 않는다기보다 처음부터 아무런 걱정이 없습니다. 파타리로 국왕이 걱정하는 일은 언제나 하나뿐이니, ‘삶이 재미없으면 어쩌나?’입니다.


  그래서 늘 이런저런 일을 꾀하고, 이런저런 장난을 치며, 이런저런 놀이를 지어냅니다. 만화책 《파타리로》를 놓고 ‘엽기발랄’이라고 하는 까닭은 ‘사회의식하고 동떨어진 모험과 놀이’로 온 하루를 보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몇 살인지 알 수 없는 파타리로인데, 학교에 가거나 책을 읽는 일은 없습니다. 만화에 나오는 여러 ‘미소년’도 학교에 가거나 책을 읽는 일은 없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돈이 넘치는 엄청난 부자가 되었을 때에만 ‘삶이 재미있기를!’ 바랄 수 있을까요? 돈이 아주 많아야만 ‘이제부터 삶을 재미있게 누려야지!’ 하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돈이 아주 많다고 하는 이들은 외려 돈을 자꾸자꾸 더 모으려고만 하지 않는가요?




“양파를 빌려줄 거야, 말 거야? 공짜로 빌린다는 건 아니야!” “사례금을 지불하겠다구?” “아아!” “그러면 그렇다고 빨리 말하잖구서 뭐야. 친구 사이에 싱겁기는.” (105쪽)


“너무 멋지다. 밖에 서서 음식을 먹는 것은 생전 처음이야.” “햄버거는 웬디스가 제일 맛있어.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은 마음만 먹으면 뼈까지 먹을 수 있어.” (175쪽)



  즐겁게 살려고 하는 사람이 즐겁게 살 수 있습니다. 웃고 노래하려는 사람이 웃고 노래할 수 있습니다. 춤추고 꿈꾸려는 사람이 춤추고 꿈꿀 수 있습니다. 생각으로 하루를 짓고, 하루를 짓는 대로 삶을 짓습니다. 만화책 《파타리로》에 나오는 ‘엽기스러운 모습’이나 ‘동성애 몸짓’은 그저 그렇구나 싶은데, 아무래도 한국에서 나온 《파타리로》 서른 권은 일본에서 꽤 예전에 나온 책이니 ‘해묵은 우스개’라 할 수도 있어서 그냥 그렇구나 싶은데, ‘아무 걱정을 안 하며 재미난 놀이를 새롭게 찾으려’ 하는 파타리로 국왕 모습은 여러모로 맑습니다. 짓궂은 얼굴로 여길 수도 있지만, 신나게 노는 어린이 얼굴이라 할 수도 있어요.


  이 만화책을 아이들한테 읽힐 수는 없고, 스무 살쯤 넘은 뒤에야 보여줄 수 있을 테지만, 만화책 《파타리로》에 나오는 ‘삶을 바라보는 눈길’을 가만히 헤아립니다. 아침에 웃으면서 일어날 때에 스스로 웃음이고, 저녁에 노래하면서 잠들 때에 스스로 노래입니다. 4348.8.25.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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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리장수 다로 1
김민희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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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544



나를 사랑하니까 죽여 주겠다고?

― 젤리장수 다로 1

 김민희 글·그림

 마녀의책장 펴냄, 2010.11.30. 6000원



  노예제가 사라졌을 적에 노예로 있던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고 합니다. 소작제가 사라졌을 적에도 소작농으로 있던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고 합니다. 아무런 대책이나 보호장치를 마련하지 않은 채 제도만 없앤다고 해서 삶이 바뀔 수 없습니다. 수백 해에 걸쳐서 노예나 소작농으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은 ‘남이 시키는 일’을 하는 삶에 익숙합니다. 게다가 수백 해에 걸쳐서 노예나 소작농으로 있었기 때문에 ‘내 땅’이나 ‘내 일’이 없기 마련입니다. 제도가 없어져도 노예나 소작농은 다시 노예나 소작농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얼거리입니다.


  왜 그러할까요? 노예나 소작농은 ‘노예로 뒹굴어야 하는 삶’이나 ‘소작농으로 짓눌려야 하는 삶’ 말고는 보거나 겪거나 배운 적이 없습니다. 스스로 ‘다른 삶’이나 ‘새로운 삶’을 찾거나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노예나 소작농이 다른 삶이나 새로운 삶을 찾거나 생각할 적마다 목숨을 빼앗기거나 끔찍하게 얻어맞았을 테니, 제도만 하루아침에 없앤다고 해서 달라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긴 전시 동안 대량생성된 군인들은 평화로운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다. 살육에 익숙한 그들은 평화로운 삶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게 된 것이다. 적응에 실패한 군인들은 걸인이나 산적과 같은 주변인으로 전락하여 사회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이에 나라에서는 구 케산국의 변경에 위치한 ‘절망의 광야’에 출몰하는 괴물들에게 현상금을 붙인다. 그리하여 방황하던 군인들은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절망의 광야에 몰려들게 되었다.’ (9쪽)



  김민희 님이 빚은 만화책 《젤리장수 다로》(마녀의책장,2010) 첫째 권을 읽으면서 빙긋빙긋 웃습니다. 김민희 님이 보여주는 우스개가 재미있기도 하고, 이 만화책에서 흐르는 이야기는 만화에서만 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어서 쓸쓸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보며 빙그레 웃고, 쓸쓸한 이야기에는 쓰겁게 웃습니다.



‘부럽긴 뭐가 부러워. 착각하면서 사는 게 자신감의 비밀이라니, 쯧쯧. 시시한 인간 같으니! 그나저나 저런 인간을 위해 일평생 여기서 갇혀 살아야 한다니!’ (35쪽)


‘전쟁의 시대는 지나갔다. 저 사람들은 과거의 사람들이다. 하지만, 난 아니다.’ (52쪽)



  ‘전쟁하는 때’에 태어나서 군인이 되어야 한 사람들은 전쟁터에 끌려갈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이들은 전쟁터에서 무기를 들고 ‘누군가를 죽이는 몸짓’이 익숙합니다. 이 일 말고는 달리 할 줄 아는 일이 없습니다. 게다가 무척 오랫동안 온 나라가 싸움판이었다면, 젊은 사내는 무엇을 할까요? 봄이 되어 흙을 갈아 씨앗을 심는 일을 할까요, 아니면 무기를 들고 훈련을 하는 일을 할까요?


  다만, 만화책 《젤리장수 다로》는 ‘무거운 사회비판’ 만화가 아닙니다. 《젤리장수 다로》는 바보스러운 사회에서 바보스러운 몸짓으로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언뜻선뜻 터져나오는 웃음을 가만히 잡아채는 만화입니다. 무엇보다도 ‘전쟁하는 쳇바퀴’에 길든 어른하고는 다르게 살겠노라 다짐하는 ‘내 삶을 새롭게 찾으려고 하는 어린이(또는 푸름이)’가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미자 씨는 지도 그리는 일을 진짜 좋아하는구나. 미자 씨 꿈은 금방 이루어지는 거라서 좋겠다.’ (93쪽)



  군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적군 잘 죽이기’입니다. 군인이 보람을 누릴 수 있는 일이란 ‘적군 많이 죽이기’입니다. 우리한테 적군이 될 저쪽 군인도 마찬가지예요. 서로서로 ‘너를 빨리 죽여’야 내 가슴에 훈장이 붙습니다. 서로서로 ‘너희를 많이 죽여’야 우리한테 평화가 찾아오는 줄 여깁니다.


  그런데 전쟁은 좀처럼 끝나려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서로 죽이고 죽여도 전쟁이 끝날 낌새가 안 보입니다. 전쟁이 커지면 커질수록 애꿎게 죽어야 하는 사람이 늘어나기 마련이기에, 이쪽과 저쪽은 서로서로 더 미워하고야 맙니다.


  전쟁은 평화로 나아갈 뜻이 없습니다. 전쟁은 언제나 더 오랫동안 사람들 마음속에 미움과 짜증과 앙갚음을 아로새기려 합니다. 이러는 동안 권력자는 높다란 걸상에 한갓지게 앉아서 온갖 권력을 누립니다.



“사람 친구를 먹다니, 그런 적은 없어요. 아직 친구랑 같이 여행 다녀 본 적이 없거든요.” “아직?” “그래서 여러분과 같이 여행을 떠난 것이 몹시 흥분되고 즐거워요.” “시끄러워, 시끄럽고! 아직이란 말은 그런 상황이 오면 사람 친구도 먹을 거란 말이냐? 엉?” “예? 그거야 불가피한 상황이 온다면야, 우리는 지도 그리는데 목숨을 걸고 있단 말이에요. 제가 먼저 죽으면 제 몸을 줄 거고, 반대로 친구가 먼저 죽으면 그 몸을 먹어서라도 살아갈 거예요.” (112∼113쪽)



  군인이 꿀 수 있는 꿈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내가 죽지 않고 살아남기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루 빨리 전쟁이 끝나서 지긋지긋한 이 짓을 그만두기입니다. 군인을 부리는 권력자는 전쟁이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전쟁이 이어져야 사람들을 전쟁터로 내몰면서 권력을 더 단단히 지키기 때문입니다. 어쩌다가 전쟁이 끝나더라도 사람들한테 ‘또 전쟁이 터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사람들 마음에 심어서 언제까지나 권력을 아주 단단히 지키려 합니다.


  그런데, 군인으로서 전쟁터에서 ‘내가 안 죽어’도 내 동무와 이웃과 한식구는 죽기 마련입니다. 군인으로 전쟁터에 끌려가서 ‘내가 안 죽어’도 끝없는 아픔과 슬픔을 언제까지나 짊어지고야 맙니다. 게다가, 전쟁이 끝나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군인이라 하더라도 고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피비린내에 익숙한 사람이 흙내에 온몸을 비벼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기란 몹시 어렵습니다.



“인어국의 최고 형벌이 인간으로 변화시켜서 인간의 감옥에 유배시키는 거라고? 사형이 최고형이 아니네.” (133쪽)



  만화책 《젤리장수 다로》에는 젤리장수인 앳된 사내가 나옵니다. 앳된 사내는 젤리를 한몫 단단히 팔아서 하루 빨리 부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루 빨리 부자가 되어야 ‘권력자 밑에서 노예로 지내는 어머니’가 풀려나는 길을 틀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앳된 사내가 젤리를 팔려면 ‘인어 할아버지’를 옆에 끼어야 합니다. 젤리를 팔려고 가로질러야 하는 붉은닥세리는 아무나 가로지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만화책에서는 ‘평화와 전쟁’ 두 가지를 한몸에 품은 인어가 나오는데, 이 만화책에 나오는 인어는 ‘남을 죽이는 짓’을 아무한테나 하지 않습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인어 사회에서는 ‘목숨을 빼앗는 짓’은 가장 좋아하는 사람한테 하는 일이라고 나와요. 그리고, 가장 싫어하는 사람한테는 “너 미워.” 하고 내뱉는 한 마디가 가장 끔찍한 폭력이라고 합니다. 사람 사회 잣대로 보면 도무지 알아먹을 수 없는 ‘인어 사회 잣대(만화책에 나오는 얼거리)’라 할 테지요.



“이것이 나의 정체다. 인어 중에 가장 못된 인어가 나다!” ‘정말 이게 사실이야? 사람을 미워하는 게 죄라니. 인어국은 귀여운 나라구나.’ (156쪽)



  사랑하거나 좋아하는 님이 있으면 ‘목숨을 빼앗아(죽여)서’ 고마움을 나타낸다고 하는 인어 할아버지를 옆에 끼고 붉은닥세리를 가로질러서 젤리를 신나게 팔아 부자가 되려는 만화책 주인공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앳된 주인공은 인어 할아버지가 ‘귀엽다’고 느껴서 더 잘해 주려고 하는데, 인어 할아버지는 앳된 주인공이 더없이 착하고 고마워서 ‘너처럼 멋지고 사랑스러운 사람은 죽여 주고 싶다’고 잠꼬대로 한 마디를 합니다.


  젤리장수 아이는 젤리를 팔아서 부자가 될 수 있을까요? 인어 할아버지는 저한테 따스한 젤리장수 아이를 죽일까요?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도를 그리겠다는 젊은 가시내는 지도를 다 그릴 수 있을까요? 참말 한 치 앞조차 내다볼 수 없는 삶이고, 이러한 삶을 김민희 님은 《젤리장수 다로》에 재미나면서 멋지게 잘 담았구나 싶습니다. 4348.8.18.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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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어 게임 3
카이타니 시노부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547



올바르게 살면 늘 속을까?

― 라이어 게임 3

 카이타니 시노부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07.4.25. 4200원



  카이타니 시노부 님 만화책 《라이어 게임》(학산문화사,2007) 셋째 권 첫머리에서 ‘놀라운 사기꾼’ 노릇을 하는 ‘아키야마’라는 젊은이 이야기가 흐릅니다. 아키야마네 어머니는 이녁 아들을 대학교까지 보내려고 궂은 일을 마다 않으면서 일을 하다가 그만 몸이 무너졌고, 이즈음 다단계 업체에 속아넘어가면서 나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아키야마라는 젊은이는 어머니가 속아넘어간 다단계 회사한테 앙갚음을 할 뜻을 품었고, 끝내 다단계 회사를 와르르 무너뜨리고는 옥살이를 했다고 합니다.



“꾀를 부려서 잠시 이득을 봐도,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어. 하지만 정직하게 살면 반드시 행복이 찾아올 거야.” (12쪽)


아키야마의 어머니는 고스란히 속아넘어간 것이다. 언제 어느 때나 사기꾼은 절박한 사람을 하이에나처럼 찾아낸다. 아키야마의 어머니도 이때 정말 몸도 마음도 한계에 몰려 있었던 것이다. (15쪽)



  《라이어 게임》에서 두 주인공 가운데 하나인 아키야마는 언제나 머리를 똑똑하게 굴립니다. 어리숙하게 보이면 다른 사람이 나를 속이려 하니, 조금도 어리숙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속여서 제 배를 채우는 사람이 있다면 이녁한테 곧바로 앙갚음을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회는 내가 너를 밟고 일어서느냐, 아니면 내가 너한테 밟히면서 바보스레 눌려야 하느냐 같은 두 갈래 길밖에 없다고 여겨요.


  만화책에서 흐르는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참말 이 같은 모습을 쉽게 마주할 수 있습니다. 눈속임이나 거짓말이 아닌 착한 몸짓과 참말로 서로서로 아끼는 사람은 좀처럼 안 드러나는 듯 느낄 만합니다. 신문이나 방송이나 책을 보면 어떤 사람들이 도드라질까요? 바로 참말 아닌 거짓말로 사는 사람들 모습이 도드라집니다. 조용히 제 보금자리를 가꾸는 사람들 이야기는 신문에도 방송에도 책에도 거의 안 나온다고 할 만합니다. 떠들썩하게 말썽을 일으키는 사람들 이야기가 신문이나 방송이나 책을 가득 채워요. 그런데 수많은 여느 사람들은 바로 이런 신문이나 방송이나 책을 보면서 ‘믿기’ 마련입니다.



“그걸 왜 지키니? 이건 라이어 게임. 속고 속이는 전쟁이야. 후후후, 아무튼 둔해 빠졌다니까. 넌 말이지, 내가 올라가기 위한 제물이었어.” (82쪽)


“아, 난 왜 이렇게 멍청할까. 왜 그런 게임을 해 버린 걸까.” “후회해도 소용없어. 당했으면, 갚아 줘야지!” (126쪽)



  올바르게 살면 늘 속을까요? 어쩌면 속을는지 모릅니다. 올바르게 살면 늘 빼앗길까요? 어쩌면 빼앗길는지 모릅니다. 올바르게 살면 늘 가난할까요? 어쩌면 가난할는지 모릅니다. 올바르게 살면 늘 고달플까요? 어쩌면 고달플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나를 속이지 않는 사람은, 아니 나 스스로를 속이려는 마음이 없이 삶을 짓는 사람은 즐겁게 웃습니다. 아프거나 슬픈 일이 있으면 아프거나 슬프게 눈물을 흘립니다. 나를 속이지 않으니 밥을 지을 적에 스스로 가장 맛있게 지으려 하고, 스스로 가장 맛있게 지은 밥을 이웃하고 넉넉히 나누지요.


  나를 속이지 않으니, 아니 늘 나를 참다이 바라보면서 살림을 가꾸니, 가난하건 가멸차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아이들하고 한솥밥을 먹는 기쁨으로 활짝 웃으면서 노래할 만합니다. 귀뚜라미 노랫소리가 반갑고, 바람 따라 춤추는 나뭇잎 소리가 재미납니다.



“싫으면 안 사도 돼. 기다리는 것은 패배뿐이니까.” (182쪽)


“전, 여러분의 말을 듣지 않겠어요! 모두들, 정말 이기적이군요. 1회전 투표 전에 한 스피치 타임에선, 아무도 제 이야기를 들어 주지 않았잖아요!” (196∼197쪽)



  《라이어 게임》은 이 이름 그대로 ‘거짓말 놀이’에 휩쓸린 사람들 모습과 몸짓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거짓말 놀이를 해야 나 혼자 살아남겠구나 하고 느끼는 사람들이 어떤 모습이 되어 어떤 몸짓을 보여주는가를 낱낱이 드러냅니다.


  그런데, 거짓말 놀이가 아닌 ‘참말 놀이’를 하겠노라 하고 생각을 바꾸면 어떻게 될까요? 내가 너를 속여야 내 밥그릇을 두둑히 챙길 수 있다는 생각이 아니라, 내가 너랑 즐겁게 손을 맞잡고 슬기를 모으면 서로서로 밥그릇이 푸짐하다는 생각을 품으면 어떻게 될까요?


  네 몫을 내가 차지해야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네 몫은 네가 누리고 내 몫은 내가 즐기자는 생각으로 어깨동무를 하면 어떻게 될까요? 혼자서 돌다리를 놓기는 매우 힘들지만, 둘이 하거나 서넛이 하면, 또는 열이나 스물이 하면 무척 손쉬우면서 거뜬합니다. 두레나 품앗이를 하는 사람들은 똑같은 품을 들여서 다 함께 더 넉넉히 누리는 살림을 지을 수 있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플레이어 전체로서는 손해를 보지 않는 거죠. 그것은 즉, ‘나만 이득을 보겠다’라고 생각하는 플레이어가 하나도 없다면, 전원이 살 수 있다는 뜻이에요.” (208쪽)


“이 라이어 게임은 거짓말쟁이가 이기는 게임이라고 생각하셨죠? 저는 아니라고 봐요. 라이어 게임이란, 사실, 거짓말을 해서 이기고 싶다는 욕망을 극복하고, 정직해질 수 있느냐를 시험하는 게임이라고 생각해요.” (210쪽)



  한 사람만 배가 부르다고 해서 나쁠 일은 없다고 봅니다. 다만, 한 사람이 배가 부르면 다른 사람은 모두 배가 안 부르겠지요. 한 사람이 돈을 왕창 번다면, 다른 사람은 돈을 왕창 잃겠지요.


  혼자 배가 부르면 즐거울까 궁금합니다. 혼자 모든 돈을 거머쥐면 이 돈을 얼마든지 쓸 만할까 궁금합니다.


  많이 먹거나 많이 써야 즐거운 삶이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즐겁게 먹어야 즐겁고, 즐겁게 써야 즐겁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웃을 속이면서 등골을 빼먹으려는 사람은 한 번 등골을 빼먹으면 앞으로도 등골을 빼먹으려는 길을 가고야 맙니다. 언제까지나 스스로 거짓말에 휩쓸려서 살아야 합니다. 여느 때에 늘 이웃하고 오순도순 나누는 사람은 앞으로도 늘 오순도순 나누는 기쁨을 가꾸기 마련입니다. 삶은 삶 그대로 바라보면서 가꿀 때에 아름답습니다. 4348.8.17.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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