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맛 - 느낌 있는 사진을 만드는 크리에이티브 사진 강의
우종철 지음 / 이상미디어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찾아 읽는 사진책 214



사진 한 장으로 노래하는 맛

― 사진의 맛

 우종철 글·사진

 이상미디어 펴냄, 2015.8.10. 25000원



  사진 한 장은 아무것이 아니지만, 때로는 모든 것이 됩니다. 사진 한 장은 그저 한 장일 뿐이지만, 두고두고 바라보면서 어느 한때를 되새기는 밑바탕이 됩니다.


  아이들이 할머니와 할아버지 품에 안겨서 놀다가 잠든 모습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는데, 어느새 아이들이 내 뒤에 달라붙어서 “뭐야? 뭐야!” 하면서 쳐다봅니다. 두 아이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저희가 예전에 어떤 모습으로 할머니하고 할아버지한테 안기며 놀았는지 되새깁니다. 아이들은 그저 노는 몸짓이었을 텐데, 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내 자리에서는 ‘아이와 할머니 할아버지’가 함께 드러납니다.


  아이들은 사진찍기를 무척 좋아합니다. 왜 좋아하는가 하면, 사진에 찍힌 모습을 들여다보면 ‘몸에 있는 눈’으로 볼 때하고 사뭇 다르기 때문입니다. 제 눈으로 보는 모습과 ‘다른 사람 눈으로 보는 모습’은 그야말로 달라요. 그러니, 아이들은 사진찍기가 재미난 사진놀이입니다.



대략 100년에서 150년 전에 나타난 이러한 경향(회화 모방)은 안타깝게도 오늘날 대다수의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찍고 답습하는 사진들과 매우 유사합니다. (16쪽)


쿠델카는 자신의 사진은 자신의 삶에 대한 기록이라고 했습니다. 떠나고, 사랑하고, 웃고, 우는 세상의 모든 모습들은 결국 자신의 모습이기도 한 것입니다. (32쪽)



  우종철 님이 빚은 《사진의 맛》(이상미디어,2015)을 읽습니다. 《사진의 맛》은 사진길에 접어들려고 하는 이웃님한테 베푸는 선물이라고 할 만합니다. 아직 사진을 모르지만, 사진기를 손에 쥐고 신나게 사진놀이를 하고픈 이웃님이 사진을 노래하는 삶이 되도록 북돋우려고 하는 길잡이책이라고 할 만합니다.


  다만, 이 책에 적힌 말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하이키 톤·미들 톤·로우키 톤’ 같은 말을 그냥 씁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이런 영어는 오늘날 영어라기보다 한국사람 누구나 흔히 쓰는 ‘여느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톤’이든 ‘콘트라스트’이든 그냥그냥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진의 맛》이라고 하는 책이 사진길로 가려는 이웃님한테 ‘사진을 즐겁게 찍자’고 노래하는 길잡이책이라고 한다면, 조금 더 쉬우면서 부드러운 말씨로 풀어낸다면 한결 나으리라 생각합니다. 영어 아닌 한국말로도 얼마든지 사진을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요. 어른 아닌 어린이한테 사진을 이야기하면서 가르칠 적에 어떤 말을 써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면 됩니다.




초보 사진가들에게 있어 사진 기술을 습득한다는 것은 바로 사진기가 가지고 있는 시각적 특성을 이해하고, 이를 이용해 자신이 본 것을 자신의 느낌에 가장 가깝게 표현하고자 애쓰는 행위일 것입니다. 이 과정도 간단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이런 과정이 지나면, ‘사진은 눈에 보이는 것을 찍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찍는 것’이란 점을 이해하고 그러한 세계에 좀더 다가갈 수 있습니다. (45쪽)


대상을 보고 사진을 찍는 순간, 사진가의 마음속에는 자신의 의도를 효과적이게 하는 톤을 미리 결정하고 있어야 합니다. (76쪽)



  사진찍기는 사진을 찍는 일입니다. 사진찍기는 ‘사진기를 다루는 일’이 아닙니다. 글쓰기는 글을 쓰는 일입니다. 글쓰기는 ‘연필을 다루는 일’이나 ‘자판을 다루는 일’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사진찍기를 할 적에는 ‘사진기를 알맞게 다루기’는 해야 하지만, 굳이 사진기를 남달리 다루기까지는 안 해도 됩니다. 북을 치는 이가 북채를 하늘로 던졌다가 받아서 북을 칠 수 있듯이, 글을 쓰는 이가 연필을 하늘로 던졌다가 받아서 글을 쓸 수 있어요. 다만, 이런 재주는 잔재주라고 합니다. 잔재주는 잔재주로 다른 사람 눈길을 끌 터이나, 이러한 잔재주는 사진이나 글이 나아가는 밑바탕이나 기쁨은 아니에요.


  무슨 말인가 하면, 사진을 배우려고 한다면 사진을 배우면 됩니다. 사진을 찍으려고 한다면 사진을 찍으면 돼요.


  ‘잘 찍은 사진’이 아닌 ‘사진’을 찍으면 됩니다. 남한테 자랑할 만한 ‘멋진 사진’이 아닌 ‘사진’을 찍으면 됩니다. 스스로 즐겁게 사진을 찍으면서 놀 수 있으면 되어요.



주 피사체에 항상 초점이 맞아야 한다는 정해진 룰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103쪽)


순수하게 사물을 보는 연습의 전 단계로 우선 사진을 찍기 위해 대상을 찾거나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에서 뭔가 동요하는 자신의 느낌을 발견해 보시기 바랍니다. (136쪽)



  《사진의 맛》이라는 책에서도 다루는데, 틀에 박힌 사진을 찍을 까닭이 없습니다. ‘주 피사체’이든 ‘찍히는 어떤 것’이든 꼭 초점이 맞아야 하지 않습니다. 황금률 구도를 맞추어야 할 까닭이 없고, 뛰어난 구도를 살펴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찍기는 사진을 찍는 일일 뿐, 멋지거나 빈틈이 없는 구도를 찾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조금 흔들려도 괜찮고, 많이 흔들려도 괜찮습니다. 빛을 예쁘게 맞추지 않아도 괜찮으며, 어둡거나 밝아도 괜찮습니다.


  다만, 이야기가 흐른다면 다 괜찮은 사진입니다. 사진을 찍는 나하고 사진을 읽는 너하고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웃음꽃을 피울 만한 이야기가 흐른다면 모두 아름다운 사진입니다. 사진을 찍는 나랑 사진을 읽는 너랑 어깨동무를 하면서 슬픔이나 아픔을 달랠 만한 이야기가 서린다면 더없이 사랑스러운 사진입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것,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사진으로, 그림으로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157쪽)


사진 찍기에 좋은 대상은 결국 내 주변 가까이에 항상 존재하고 있습니다. (180쪽)


사진의 출발은 잘 아는 것, 익숙한 것, 좋아하고 사랑하는 대상을 바라보고 찍는 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187쪽)




  사진을 찍는 맛이란, 삶을 짓는 맛입니다. 사진을 찍는 맛이란, 이야기를 빚는 맛입니다. 사진을 찍는 맛이란, 사랑을 노래하는 맛입니다. 사진을 찍는 맛이란, 꿈을 꾸는 맛입니다.


  이리하여, 사진기 한 대를 손에 쥐면서 무엇이든 사진 한 장으로 찍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못 찍을 사진이란 없습니다. 어떤 이야기이든 사진이 되고, 어떤 삶이든 사진이 됩니다. 부자인 삶도 가난한 삶도 모두 사진이 되어요. 이름난 예술가도 이름이 안 난 시골 할매도 모두 사진이 되지요. 갓난쟁이도 어린이도 어른도 사진이 됩니다. 몽골이나 티벳도 사진이 되고, 일본이나 중국도 사진이 되어요.


  다시 말하자면, 사진에는 ‘흔한 소재’나 ‘아무것 아닌 주제’가 없습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찍는 이야깃감이어도 재미난 사진이면서 놀라운 사진이 됩니다. 아무도 안 찍는다고 하는 소재나 주제도 얼마든지 사랑스러우면서 멋진 사진이 되지요.



흔히 사진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을 찍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상상력 없이 육체적 시각에 의존해 사진을 찍는 것은 매우 초보적이고 제한적인 사진 행위입니다. (249쪽)


어떤 경우 작품을 보고 작가의 지인들이 “너답다.”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이 최고의 찬사라고 생각합니다. ‘나답다.’라는 것은 내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솔직했다는 반증입니다. (327쪽)



  나는 사진 한 장으로 노래합니다. 두 장도 백 장도 아닌 사진 한 장으로 노래합니다. 공모전에 뽑힌다거나 어떤 상을 받은 사진이 아닙니다만, 우리 아이들이 바람 따라 물결치는 논둑에 서서 바람노래와 풀노래를 한껏 마시는 모습을 찍은 한 장으로 삶을 노래합니다.


  오늘을 노래하기에 오늘 이곳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오늘을 노래하기에 ‘오늘 찍은 사진’은 어느덧 ‘어제 찍은 사진’이 되면서 우리 삶을 새삼스레 되짚는 이야기밭이 됩니다. 오늘을 노래하기에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날’에도 기쁘게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느낍니다. 오늘은 어제로 흐르고, 오늘은 다시 앞날로 흐르며, 오늘과 어제와 앞날은 사이좋게 만납니다. 사진 한 장이 있어서 언제나 젊으면서 기쁩니다. 사진 한 장이 있어서 언제나 춤추면서 꿈꿉니다.


  사진은 어떤 맛일까요? 사진은 내가 바라는 맛입니다. 슬픈 날에는 슬픈 맛이 나는 사진이고, 기쁜 날에는 기쁜 맛이 나는 사진이에요. 맑은 날에는 맑은 맛이 나는 사진이다가, 흐린 날에는 흐린 맛이 나는 사진이지요.


  늘 달라지면서 늘 새롭게 거듭나는 사진입니다. 이 사진 하나를 마주하면서 고요히 생각에 젖습니다. 참으로 사진 한 장이 고맙습니다. 《사진의 맛》을 읽는 ‘사진이웃님’ 누구나 마음에 담을 이야기꽃을 곱게 피울 수 있기를 빕니다. 4348.9.2.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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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마이어 : 나는 카메라다 비비안 마이어 시리즈
비비안 마이어 지음, 박여진 옮김 / 윌북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찾아 읽는 사진책 212



우리는 누구나 ‘이야기 도서관’이다

― 비비안 마이어, 나는 카메라다

 비비안 마이어 사진

 존 말루프 보관

 로라 립먼·마빈 하이퍼만 글

 하워드 그린버그 엮음

 박여진 옮김

 윌북 펴냄, 2015.3.30. 25000원



  요즈음 ‘사람책’이라는 말이 차츰 퍼집니다. ‘사람이 바로 책이다’라는 뜻으로 쓰는 ‘사람책’입니다. 종이로 빚어야만 ‘책’이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오롯이 ‘책과 같다’는 뜻입니다.


  종이로 빚은 책을 내놓을 때에만 ‘작가’이지 않습니다. 연필을 손에 쥔 적이 없고, 교사나 교수나 강사가 되어 본 일이 없더라도, 아이들한테 삶을 이야기로 물려준 사람은 누구나 ‘작가’라고 할 만합니다. 온 삶으로 사랑을 아이와 이웃과 동무한테 고스란히 보여준 사람도 누구나 ‘작가’라고 할 만합니다.


  작품이란 무엇일까요? 예술이나 문화라는 이름이 붙을 때에만 작품일까요? 전시회를 하지 않거나 책을 내지 않더라도, 온몸이 고스란히 ‘작품’과 같아서, 호미질을 하는 손놀림이나 밥을 짓는 손놀림이나 바느질을 하는 손놀림이 한결같이 사랑스럽거나 아름다운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사진은 바로 ‘사람책’을 찍습니다. ‘사람이 바로 책이다’ 하고 느낄 만한 모습을 보면서, 사진기를 찰칵 눌러서 사진 한 장을 남깁니다. 사진에 담긴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면서 저마다 아름다운 ‘사람책’ 모습이라고 할 만합니다.




마이어의 사진 한 장 한 장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고, 그 이야기는 보는 이들마다 달라진다 … 그녀가 찍은 사람들과 풍경은 누구라도 찍을 수 있다. 하지만 사진을 찍기 전에 먼저 보아야 한다. 마이어는 탁월한 시선과 완벽한 기술을 겸비한 예술가였다 (9쪽/로라 립먼)



  비비안 마이어 님이 찍은 사진으로 엮은 《비비안 마이어, 나는 카메라다》(윌북,2015)를 읽습니다. 이 사진책은 비비안 마이어 님이 엮지도 않았고, 비비안 마이어 님이 뜻하지도 않았습니다. 젊은 날부터 늙어서 죽는 날까지 늘 사진기를 목걸이처럼 몸에 품고 살던 사람이 걸어온 길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사진책인데, 비비안 마이어 님이 ‘한뎃잠’도 자다가 ‘돈이 없어서 애먹’기도 하다가, 그만 이녁 사진과 책과 물건이 모두 경매로 넘어갔다고 해요.



부동산 중개업자인 존 말루프는 380달러에 30만 장에 달하는 네거티브 필름과 소지품들을 구매했다. 자연스럽게 그는 그녀의 삶이 남긴 무런들을 소유하게 되었다 … 실제로 마이어의 작품은 무엇일까? 생전에 마이어는 자신의 작품에 우선순위를 매기지 않았다. (40, 41쪽/마빈 하이퍼만)




  ‘부동산 중개업자’인 ‘존 말루프’라는 사람은 380달러에 30만 장에 이르는 필름과 온갖 물건을 손에 넣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죽음을 앞두고 이녁 사진과 책과 물건을 모두 빼앗겨야 한 비비안 마이어 님 손에는 ‘돈 몇 푼’이 흘러갔을까요? 아마 한푼조차 안 갔을 테지요. 경매에 넘겨졌다고 하니까, 코앞에서 이녁 모든 것이 갑자기 이슬처럼 사라지는 모습만 지켜보다가 눈을 감고 흙으로 돌아갔겠구나 싶습니다.


  다시금 생각합니다. 380달러에 필름 30만 장입니다. 이밖에 다른 것도 아주 많다고 하니까(자그마치 컨테이너 다섯 대 부피), 10달러에 필름 1만 장을 산 셈입니다. 마흔 해 넘도록 바지런히 찍은 사진을 단돈 몇 푼에 빼앗긴 비비안 마이어 님이라고 할 만합니다. 존 말루프 님은 인터넷경매로 ‘비비안 마이어 사진’을 팔려고 했다는데(팔았는지 안 팔았는지까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사진 한 장마다 값을 얼마쯤 붙여서 내놓았을까요? 이를테면, 오드리 햅번을 찍은 사진은 값을 얼마쯤 붙여서 내놓았을까요?



주의 깊게 사진을 들여다보고 사람과 공간을 관찰하는 일은 특별하고도 은밀한 즐거움이었다. 마이어를 알았던 사람들이 그녀를 이야기할 때 독특한 차림새나 걸음걸이도 자주 언급하지만 항상 빠지지 않는 것은 그녀의 목에 언제나 카메라가 걸려 있었다는 사실이다 … 아이들에게 음식이 식탁에 오르는 경로를 보여주기 위해 도축 조합에 데리고 가기도 했고, 자필 서명하는 법을 가르쳐 주기도 했으며, 동네 공원이나 해변에 소풍을 가거나, 민주당 전당 대회 기간에 열린 대학생들의 격렬한 시위 현장에도 데리고 갔다고 한다. (18, 20쪽/마빈 하이퍼만)




  내가 찍는 사진을 돌아봅니다. 나는 우리 집 아이들을 사진으로 찍을 적에 이 아이들한테서 밝게 피어나는 눈부신 한때를 즐겁게 아로새깁니다. 먼저 마음에 아로새기고, 그 다음에 사진으로 옮깁니다. 언제나 마음에 기쁘게 담은 뒤에 사진으로도 가볍게 옮깁니다.


  사랑으로 짓고 싶은 하루이기에, 사진기를 쥐는 마음도 사랑이 됩니다. 노래를 부르며 어깨동무하고 싶은 삶이기에, 사진기를 쥐는 눈빛도 노래처럼 흐릅니다.


  스스로 사랑일 때에 사랑스레 사진을 찍고, 스스로 노래일 때에 노래하며 사진을 찍습니다. 스스로 슬프기에 슬픈 빛이 어리는 사진을 찍으며, 스스로 아프기에 아픈 넋이 드러나는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책 《비비안 마이어, 나는 카메라다》에 실린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이 사진책에 실린 비비안 마이어 님 사진은 모두 ‘비비안 마이어 님 삶’입니다. 비비안 마이어 님이 어떤 일을 하면서 돈을 벌었든, 비비안 마이어 님한테는 사진기를 목걸이로 삼아서 어디이든 마음껏 누비고 다니는 삶이 바로 기쁨이요 노래요 사랑이었습니다.


  비비안 마이어 님이 낳지 않았으나 비비안 마이어 님이 돌보는 아이들을 이끌고 도축장에 가거나 전시장에 가거나 골목길을 다니는 동안에도 사진기는 늘 비비안 마이어 님 목에 걸렸다고 합니다. 마음으로 삶을 읽고, 손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사랑으로 삶을 누비고, 기쁨으로 사진을 빚습니다.




마이어가 열심히 모았던 것은 사진만이 아니다. 마이어는 세실 비튼부터 토마스 스트루스에 이르기까지 사진가에 관한 논문을 포함해 수천 권의 책들을 모았다. 뿐만 아니라 사진엽서, 유명인사의 사인이 든 사진, 야구 카드, 모조 보석, 정치 홍보용 배지, 우표, 라이터, 구둣주걱, 병따개 등도 수집했다 … 갱단 기사부터 케네디에 관련된 기사, 상담을 해 주는 디어 애비 칼럼, 현대 사진전 리뷰 같은 기사들을 발췌해 모았다. 그 분량이 파일 수백 권에 달했다. (22쪽/마빈 하이퍼만)



  우리는 누구나 ‘도서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누구나 ‘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람책’이면서 ‘사람도서관’입니다. 둘레에 이야기로 삶과 사랑을 노래처럼 들려줄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저 온몸으로 삶과 사랑을 노래처럼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슬기로운 삶을 환하게 밝히듯이, 우리는 저마다 책이면서 도서관입니다.


  그리고, 비비안 마이어라고 하는 분은 이녁 두 손에 사진기를 쥐면서 ‘온몸과 사진으로 삶을 적바림하는 도서관’이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비비안 마이어 님이 빚은 사진을 두루 살펴보면, ‘사람이 살아가는 수많은 모습’이 드러나고, ‘사람으로서 이 땅에 태어나서 하는 일과 놀이’가 나타나며, ‘사람이 사랑과 꿈으로 짓는 이야기’가 애틋하게 흐릅니다.




대다수 사진가들이 안전하게 최상의 사진을 확보하려고 같은 대상을 다양한 구도로 여러 장 찍는 데 반해 마이어는 관심이 있고 눈에 들어온 피사체를 단 한 장만 찍었다 … 그녀가 찍은 도시 풍경에서 가장 강하게 드러난 것은, 사람들의 의식 수준을 높이겠다거나 맹목적으로 숭배하게 만들겠다거나 변화시키겠다는 의도가 아니라, 삶이란 무엇이며 우리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계속 직면하고 스스로 인정해야 하는 그녀 자신의 욕구였다. (26, 30쪽/마빈 하이퍼만)



  아마추어나 프로를 따로 나눌 까닭이 없습니다. 역사책에 이름을 남겨야 비로소 ‘작가’나 ‘사진가’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진이라고 하는 삶은 몇몇 사진가로 뭉뚱그릴 수 있지 않습니다. 그림이나 노래나 글도 이와 같아요. 몇몇 뛰어나다거나 놀랍다고 하는 화가나 가수나 시인 같은 사람들로 뭉뚱그릴 수는 없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면 누구나 사진가입니다. 노래를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수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면 누구나 시인이요 소설가입니다. 우리는 모두 작가입니다. ‘작가’, 한국말로 쉽게 풀자면, 우리는 모두 “짓는 사람”입니다. 삶을 짓고 사랑을 지어서 이 “삶 사랑”을 이야기로 새롭게 짓는 사람입니다.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사진을 찍을 적에 ‘같은 모습’을 굳이 여러 눈길로 찍어야 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일부러 여러 눈길로 찍으며 놀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꼭 한 장만 찍어도 이야기꽃이 피어나니, 애써 여러 눈길로 찍지 않아도 됩니다. 둘레를 휘 살피면 사진으로 담을 이야기가 흘러넘칩니다. 한곳에 고일 겨를이 없습니다. 나비처럼 춤추는 몸짓으로 이곳저곳 사뿐사뿐 즐겁게 웃으며 돌아다니면서 사진꽃이 핍니다.


  삶꽃을 피우듯이 사진꽃을 피우고, 사진꽃을 피우기에 사랑꽃이 피며, 사랑꽃은 이내 이야기꽃으로 거듭납니다.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은 어느새 사람꽃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사진책 《비비안 마이어, 나는 카메라다》는 아주 재미있습니다. 다큐멘터리란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말없이 들려주거든요. 사진이란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조용히 알려주거든요. 그러면, 사람은 무엇일까요? 사진책 《비비안 마이어, 나는 카메라다》에 실린 숱한 사진을 빌어서 말하자면, 사람은 노래이고 춤이고 빛이고 고요이고 웃음이고 눈물이고 사랑이다가, 이 모두를 아우르는 이야기 한마당입니다. 4348.8.26.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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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닷 Photo닷 2015.8 - Vol.21
포토닷(월간지) 편집부 엮음 / 포토닷(월간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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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찾아 읽는 사진책 211



‘누가 어디에서’ 찍는 사진인가

― 사진잡지 《포토닷》 21호

 포토닷 펴냄, 2015.8.1. 1만 원

 정기구독 문의 : 02-718-1133



  나는 스물너덧 살 즈음부터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까지는 사진을 찍지 않았고, 사진찍기는 내 삶하고 와닿지 않았습니다. 국민학교를 다니면서 소풍을 갈 적에 사진을 찍어서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고,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수학여행을 갈 적에는 관광지에서 1회용 사진기를 사서 동무들하고 어깨동무를 하고 몇 장 찍었을 뿐입니다.


  손전화 아닌 삐삐조차 없던 때에는 ‘작가’나 ‘예술가’ 같은 이름이 붙는 사람만 사진을 찍으려니 하고 여겼고, 돈이 좀 있는 사람이라거나 취미가 남다른 사람이라고 여기기도 했습니다.


  요즈음은 시골마을 할머니나 할아버지도 곧잘 사진을 찍습니다. 시골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쓰는 전화기로도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시골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봄들이나 가을들이나 겨울숲이나 여름숲을 사진으로 찍지는 않습니다. 이녁 손자를 사진으로 한 장쯤 찍어서 늘 들여다볼 뿐입니다.



외국에서 한국어와 스페인어를 동시에 사용하면서 자란 한국인으로서 고려인들의 문화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처음에는 언어학의 관점에서 시작됐던 관심은 곧 사회문화 이슈로까지 확장되었다. (26쪽/마이클 빈스 킴)


시간이 지나면서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걸 알았다. 사실 정체성이라는 것 자체가 증명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내 입장 또한 그들을 증명하고 판별해 줄 수 있는 입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관찰자인데, 그것도 미흡한 관찰자였다. (33쪽/이미지)



  오직 필름으로만 사진을 찍던 지난날에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 퍽 드물었습니다. 필름사진만 있던 지난날에는 ‘사진하는 사람’은 그저 ‘사진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저 ‘그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진하다’나 ‘그림하다’ 같은 낱말은 따로 없지만, 사진이나 그림 같은 갈래를 씩씩하게 걷는 사람을 보며 흔히 이런 말을 썼습니다.


  디지털사진이 널리 퍼지고 손전화로도 아주 쉽게 사진을 찍는 요즈음에는 누구나 ‘사진하는 사람’이 됩니다. 지난날에는 “사진 좀 찍어 주셔요” 하고 누군가 맡기면 “사진을 어떻게 찍어요?” 하면서 손사래치는 사람이 많았으나, 오늘날에는 길을 가는 어린이나 청소년한테 “사진 좀 찍어 주셔요” 하고 맡겨도 무척 멋지게 잘 찍어 줍니다. 누구나 늘 찍고, 아무라도 즐겁게 사진놀이를 하기 때문입니다.



심사위원과 심사 대상자들이 너무 끈끈한 관계이고, 서로 너무 잘 아는 특정 공간, 특정 인맥의 이너서클이었다는 데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 … 최민식 사진상이 상금이 없는 명예의 상이거나 액수가 아주 형편없는 상이었다 해도 수상자는 최광호였을까? (104∼105쪽/진동선)


어느 정도의 노력과 연습만으로도 그럴싸한 사진 한 장을 찍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렇다 보니, 속된 말로 ‘그림 그릴 능력은 안 되지만 예술가는 되고 싶은’ 철없는 이들이 사진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어쩌다 전시라도 한 번 열게 되면 그 이후로는 작가 행세는 기본이다. (111쪽/장정민)



  사진잡지 《포토닷》 21호(2015.8.)를 읽습니다. 《포토닷》 21호에 사진평론가 진동선 님이 ‘최민식 사진상’을 놓고 불거진 쓸쓸한 이야기를 짚습니다. 2013년에 이어 2015년에 두 번째 사진상 당선자가 나왔는데, 1회와 2회 당선자에다가 특별상 수상자 여럿이 ‘특정 인맥 이너서클하고 얽힌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진상을 어느 사진가한테 줄 적에 ‘오직 사진만 보면’서 심사를 하지 않고 ‘오직 사람(어떤 인맥인 사람)인가를 보면’서 심사를 하고 말았다는 뜻입니다. 더군다나 2회 수상자가 된 분이 심사에 내놓은 작품은 2009년에 강원다큐멘터리 사진사업 지원 프로그램에 뽑혀서 지원금을 받았다고 합니다.


  쓸쓸한 이야기이지만, 최민식 사진상 수상자가 나온 지 두 달이 지나도록 뾰족히 달라지거나 새로운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심사위원과 주최측은 ‘우리는 공정했다’ 하는 ‘입장발표(2015.7.14. 사진마을 누리집)’만 했습니다.


  진동선 님 말마따나 최민식 사진상을 ‘명예만 주는 상’으로 삼는다면, 상금을 아주 조금만 준다면, 그때에도 사진계에서 ‘이너서클’이 움직일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아니, 명예만 주는 상이든 상금이 얼마이든, 사진을 바라볼 적에 오직 사진을 바라보고, ‘사진을 찍은 사람이 이웃하고 나누려는 따스한 사랑’이 어떠한가를 바라보아야지 싶습니다.




안셀 아담스는 생을 마치기 직전에 자신이 꼽은 최고의 사진을 직접 인화해 아들과 딸에게 선물로 남겼다. 1남 1녀를 둔 안셀 아담스는 평생을 사진가이자 열정적인 환경운동가로 활동하면서 가족에게는 무심했던 것으로 알려지지만, 마지막 순간에 2명의 자식에게 자신이 인화한 각기 다른 사진작품 컬렉션 3세트씩을 선물했다. (76쪽/김소윤)



  훌륭한 사진이나 안 훌륭한 사진은 따로 없습니다. 잘 찍은 사진이나 못 찍은 사진도 따로 없습니다. 스스로 이야기를 담아서 이웃과 오순도순 나눌 때에 즐거운 사진입니다. 스스로 사랑을 실어서 한식구와 도란도란 나눌 때에 기쁜 사진입니다.


  작가로 뛰는 사진가라고 해서 늘 작품을 만들어 내야 하지 않습니다. 예술이나 작품이 되기 앞서 ‘사진’이어야 합니다. 사진이 되는 길은 ‘예술이 되는 길’이나 ‘작품이 되는 길’이 아닙니다. ‘삶이 되는 길’일 때에 비로소 사진은 사진으로 오롯이 섭니다.


  화가가 되려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있으리라 봅니다. 그러면, 화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요? 그림을 그려서 돈을 벌어야 ‘화가’라는 이름을 붙일 만할까요? 그리고, 사진을 찍거나 글을 써서 돈을 벌어야 ‘작가’라는 이름을 붙일 만할까요?



이곳 라다크의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거나 곰파에서 동자승으로 지내면서 교육을 받고 자란다. 디스킷 마을의 여학교에서는 여자아이들이 작은 교실 바닥에 앉아 수업을 듣고 있었다. 아이들 하나하나의 눈동자가 별처럼 빛나 보인 건 기분 탓일까. (89쪽/이경택)




  별처럼 빛나 보이는 아이들을 마주하면서 저도 모르게 사진을 찍는다고 합니다. 눈처럼 하얗게 보이는 마음을 만나기에 저도 모르게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내 마음’에도 기쁘게 이야기를 아로새긴다고 합니다.


  남보다 돋보여야 훌륭한 사진이 아닙니다. 돋보이지 않아도 사진은 사진입니다. 돋보이더라도 이야기가 없거나 삶이 깃들지 않으면 사진이라는 이름을 쓰기 어렵습니다.


  시골 할머니는 이녁 손전화 기계에 담은 손자 사진을 보면서 웃습니다. 밭일을 하다가 허리를 펴면서 손전화 기계를 딸깍 열여서 사진을 들여다봅니다. 한참 허리를 펴고 쉰 뒤에 다시 손전화 기계를 탁 닫고는 주머니에 넣습니다.


  늘 들여다보면서 애틋한 마음이 흐르도록 하기에 사진입니다. 늘 바라보면서 따스한 숨결이 흐르도록 하기에 그림입니다. 늘 되읽으면서 아름다운 꿈이 새록새록 피어나도록 하기에 글입니다.



패션사진을 업으로 살아온 내가 지난해부터 농민신문사에서 나오는 어린이 잡지 〈어린이동산〉의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셀 수 없이 많은 개인 사진 중에 우리나라 풍경사진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고 전국 방방곡곡을 다녀 보고 싶어 자청한 일이다. 어린이 잡지라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역사 유적지와 인물 순례를 하기 때문에 전국 박물관을 안 가 본 곳이 없을 정도다. 역사 공부도 함께 하게 되는 고마운 일이다. (94쪽/조남룡)




  사진잡지 《포토닷》에 실린 여러 사람 목소리를 가만히 살핍니다. 젊은 작가 목소리를 살피고, 패션사진 한길만 걸어왔다는 사람 목소리를 살핍니다. 외국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 목소리를 살피고, 이달 《포토닷》 21호에 실린 고려인 사진가 목소리를 살핍니다.


  다 다른 고장에서 태어나서 다 다른 어버이한테서 다 다른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들은 다 다른 이야기를 가슴에 품으면서 사진을 바라봅니다. 이 사람 사진은 저 사람 사진보다 낫지도 않지만 덜떨어지지도 않습니다. 이 사람 사진은 이러한 이야기를 담고, 저 사람 사진은 저러한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이 사람 사진에서는 이 고장 노래가 흐르고, 저 사람 사진에서는 저 마을 웃음소리가 퍼집니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날씨여서 집안에서 불을 피우고 계십니다. 작은 온기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함께 차를 나눕니다. 집안에 변변한 살림살이는 없지만 노부부가 생활하기에 부족한 것도 없습니다. (117쪽/황성찬)



  기계를 빌어서 찍는 사진이지만, 사진을 찍는 임자는 언제나 사람이고, ‘마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마음으로 이웃을 바라보는 사람이 사진을 찍습니다. 마음으로 한식구를 보살피는 사람이 사진을 찍습니다. 마음으로 숲을 헤아리는 사람이 사진을 찍습니다. 마음으로 온누리를 껴안으면서 드넓은 우주를 꿈꾸는 사람이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은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마음속에 있습니다. 사진은 어떻게 찍을까요? 바로 마음으로 찍습니다. 사진은 어떻게 읽는가요? 언제나 마음으로 읽습니다.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서로 아끼면서 언제나 사랑이 피어나는 마음입니다 … 어떻게 사진을 찍든 대단할 것도 대수로울 것도 훌륭할 것도 없습니다. 사진은 ‘전문가’만 찍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진은 ‘누구나’ 찍기 때문입니다 … 오늘 이곳에서 제 삶을 사랑하면서 찰칵 하고 단추를 눌러서 빚는 사진에 기쁜 이야기를 담자고 하는 사진기를 가슴으로 포근히 안으면 더없이 아름다우면서 반갑습니다. (125쪽/최종규)




  전문가만 사진을 찍어야 한다면, 사진은 대단히 재미없으리라 느껴요. 전문가만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야 한다면, 글이나 그림은 참으로 재미없으리라 느껴요.


  날마다 밥을 지어 아이들을 먹이는 어버이는 ‘살림 전문가’나 ‘밥짓기 전문가’가 아닙니다. 그저 아이들을 사랑하는 여느 어버이가 밥을 맛나게 짓고 즐겁게 짓습니다. 아이들을 재우며 자장노래를 부르는 어버이는 전문 가수나 성악가나 음악가가 아닙니다. 아이들을 아끼고 보살피면서 따사로운 마음으로 빙그레 웃는 모든 어버이가 기쁘며 달콤하게 자장노래를 부릅니다.



집마다 골목마다 전하지 못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벽에 묻어 있다. 아련한 것은 아련한 대로, 명징한 것은 명징한 대로 전하고 싶다. (39쪽/최정호)



  필름사진에서 디지털사진으로 넘어선 무렵부터 ‘사진은 누구나 마음껏 즐기는 삶놀이’ 가운데 하나로 거듭났으리라 느낍니다. 디지털사진으로 넘어선 뒤에 손전화 기계마다 이모저모 ‘사진 찍는 기능’이 놀랍도록 나아지면서 ‘사진을 언제 어디에서나 신나게 누리는 삶놀이’ 가운데 하나로 새롭게 뿌리내리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래서 나는 사진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누구나 찍을 수 있을 때에 사진이고, 누구나 즐길 수 있을 때에 사진이며, 누구나 제 삶을 기쁘게 담아서 이웃하고 오순도순 어깨동무를 하면서 노래하도록 북돋우는 웃음씨앗이 될 때에 참말 재미난 사진이라고 생각합니다. 4348.8.18.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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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카메라와 그녀의 계절 2
츠키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98



사진은 ‘전문(프로) 사진가’만 찍는가?

― 그녀와 카메라와 그녀의 계절 1∼3

 츠키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5.4.25. 4500원



  무더운 한여름을 식히려면 무엇이 좋을까요? 우리 집 아이들은 얼음과자를 말하기도 하지만, 바다하고 골짜기를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 집에는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습니다. 부채만 있습니다. 한여름 한낮에 해가 높이 걸리면 그야말로 후끈후끈하지만, 처마 밑이라든지 나무 그늘은 제법 시원합니다. 바람이 부는 날에는 모기그물을 치고 마룻바닥에 드러누워도 퍽 시원합니다. 시골은 해가 떨어지고 밤이 깊으면 서늘합니다. 도시라면 밤에도 더위가 꺾이지 않을 텐데, 시골하고 도시가 다른 대목은 바로 흙이랑 나무랑 숲이랑 풀이라고 느낍니다. 흙이 없고 나무하고 풀을 찾아보기 어려운 곳에서는 푸르면서 시원한 바람이 불기 어렵습니다. 흙이 있고 나무하고 풀이 넘실거리는 곳에서는 푸르면서 시원한 바람이 붑니다.


  자전거에 두 아이를 태워 골짜기로 나들이를 갑니다. 물놀이를 마친 뒤에 갈아입을 옷만 챙깁니다. 나무가 우거져서 햇볕이 스미지 않는 골짜기에서는 골짝물에 몸을 담그지 않아도 시원합니다. 골짜기에서는 귀가 멍할 만큼 우렁찬 소리를 내며 물이 흐르고, 이가 부딪힐 만큼 차가운 물살에 몸을 맡기면 더위는 가뭇없이 사라집니다.


  물방울이 튀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아이들이 물방울이 튀는 바위 틈으로 살살 다가가서 손이랑 발을 내미는 모습을 쳐다보다가, 미끌미끌한 돌을 밟고 골짝물에 풍덩 빠지는 모습을 보다가, 제비나비가 춤추며 날아가는 모습을 헤아리다가, 작은아이가 돌 틈에서 가재를 알아보고는 한참 들여다보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슬쩍 사진기를 손에 쥡니다. 나는 ‘사진가’ 아닌 ‘어버이’로서 아이들을 마주하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커다란 카메라? 찌, 찍었어? 방금 찍은 거야? 왜 갑자기, 게다가 아무 말도 없이 찍고 가 버리는 건 또 뭐야?’ (1권 12∼13쪽)


“아, 그대로 있어. 먹는 모습 찍는 걸 좋아하거든.” “머, 먹는 모습 찍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은데?” (1권 26∼27쪽)



  《그녀와 카메라와 그녀의 계절》(학산문화사,2015)이라는 만화책을 읽습니다. 모두 세 권짜리로 나온 만화책입니다. 만화책 이름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이 만화책은 ‘사진기’와 ‘젊음(사랑이 꽃피는 계절)’을 그립니다. 사진을 좋아해서 ‘전문 사진가’가 되는 꿈을 키우려는 주인공(유키)이 있고, 전문 사진가로 나아가려는 짝꿍한테 마음이 사로잡힌 다른 주인공(아카리)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꽤 오래도록 ‘전문 사진가’답게 사진을 찍으며 살았습니다. 전시회를 연다든지 작품집을 낸 일은 없지만, 고등학생이어도 푼푼이 돈을 모아서 사진기하고 필름을 장만할 뿐 아니라, 손수 현상과 인화를 합니다. 다른 한 사람은 얼결에 서로 짝꿍이 된 뒤에 처음에는 ‘모델’처럼 사진에 찍히기만 하다가, 짝꿍이 선물한 조그마한 사진기를 보배처럼 간수하면서 틈틈이 사진을 찍는데, 오직 한 사람, 제(아카리) 마음을 사로잡은 짝꿍(요키) 모습만 찍어요.




“알바는 오늘 쉴 수 있는 거지?” “응!” “그럼 오늘 하루는, 같이 사진 찍으면서 보내자. 걸어가는 모습도, 이야기하는 것도, 하늘도, 길을 가는 사람도, 고양이도.” (1권 123쪽)


“국도 중앙분리대에 서서, 신호가 바뀔 때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종일 찍은 적이 있어. 카메라를 알아차리고 얼굴을 찡그리는 사람, 숨기는 사람, 노려보는 사람, 개의치 않는 사람 등등 여러 가지였지. 하지만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어. 다들 바빠서 신경 쓸 틈이 없는 것 같더라. 그러다 보니 내가 투명해진 기분이 들었어.” (1권 127쪽)



  만화책 《그녀와 카메라와 그녀의 계절》에서 흐르는 사진 이야기는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남다르거나 대단하거나 놀랍거나 멋있거나 훌륭하다 싶은 ‘사진 이론’이라든지 ‘사진 철학’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저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이야기만 나옵니다.


  ‘프로 사진가’가 되기를 꿈꾸면서, 작은 도시를 벗어나서 큰 도시(도쿄)로 가고 싶은 아이(유키)는 ‘사랑이 꽃피는 짝꿍’을 사귈 마음이 없습니다. ‘프로 사진가’이든 ‘아마 사진가’이든 생각한 일도 생각할 일도 없는 아이(아카리)는 가난한 집안에서 늘 알바를 하면서 살림돈을 보태느라 취미나 꿈은 생각조차 한 일이 없다가, 그야말로 눈에 뜨이는 몸짓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가, 다른 사람 눈치는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즐겁게 한길을 걷는 아이(유키)를 처음 마주한 뒤로 마음이 움직입니다.


  처음에는 어렴풋한 그리움이라면, 이윽고 ‘더 오래 함께 있고 싶은’ 느낌이며, 곧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며 함께 놀고 싶은’ 생각입니다. 이 다음으로는 어떤 마음이 들까요?



‘이 작은 35mm 필름만이 아니라, 내 안에도, 이 그림을 새겨서 잊지 않도록 해야지. 언제든지 오늘 아침을 떠올릴 수 있도록.’ (1권 154쪽)


‘내가 이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줄 몰랐어. 아카리는 좋은 카메라맨.’ (2권 16쪽)




  사진을 처음 배우고, 사진기를 처음 다루며, 사진을 그야말로 처음으로 찍은 아이(유카리)는 문득 마음속으로 생각 한 줄기를 길어올립니다. ‘눈앞에 보는 그림을 마음에 새기자’고 생각합니다. 사진으로만 찍지 않고 마음으로 찍자고 생각해요.


  사진가로 나아가려는 짝꿍한테서 들은 “아카리는 좋은 카메라맨”이라고 하는 말은 무엇을 뜻할까요? 바로 아카리라는 아이는 ‘사진에 찍히는 사람’이 어떤 마음이요 눈빛이며 넋이고 삶인가 하는 대목을 사랑스럽게 읽어서 ‘가장 눈부시게 아름다운 모습’을 찍을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카메라맨”이라고 합니다.


  사진기 다루는 솜씨로 치자면 어리숙하지요. 사진기조차 선물로 받은 한 대만 있어요. 그러나,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어느 누구도 이 아이 마음을 따를 수 없다고 할 만합니다.


  사진은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마음속에 있습니다. 사진은 어떻게 찍을까요? 바로 마음으로 찍습니다. 사진은 어떻게 읽는가요? 언제나 마음으로 읽습니다.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서로 아끼면서 언제나 사랑이 피어나는 마음입니다.



‘내가 유키를 찍은 사진에 ‘감정’이 담긴 걸까?’ (2권 33쪽)


‘유키가 찍고 싶어도 찍을 수 없는 사진을, 이제부터 내가 찍어 주겠어.’ (2권 48쪽)



  ‘유키’라는 일본말은 여러 가지 뜻이 있는데, ‘눈’하고 ‘하양’ 두 가지 뜻도 있습니다. 아카리라는 아이는 제 짝꿍을 떠올리면서 “내 생활은 흑백이었다. 유키를 만나고부터 컬러가 됐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다시, 색깔이 사라지려 한다.(2권 73∼74쪽)”고 마음속으로 말합니다. 어느 모로 보면 ‘유키’라는 아이는 흑백사진처럼 흑백이라고 여길 수 있고, 아직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하얀 바탕일 수 있으며, 모든 것을 하얗게 감싸는 숨결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흑백(유키)’을 만나기 앞서 ‘흑백(따분한 삶)’이었다가, ‘하양(유키)’를 만나고부터 ‘컬러(무지개, 재미난 삶)’가 되었다고 하는 말을 가만히 돌아보다가 빙그레 웃음이 납니다. 문득 이 아이들한테 한 마디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얘야, 흑백도 사랑스러운 삶이고, 컬러도 아름다운 삶이란다. 흑백도 즐거운 사랑이고, 컬러도 기쁜 사랑이란다. 우리는 언제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하루를 즐겁게 나누면서 기쁘게 어깨동무를 한단다.




“그보다 나는 뭣 때문에 사진을 찍고 있을까. 아무리 애써도, 보여줄 사람도 없는데.” (2권 71쪽)



  “뭣 때문에 사진을 찍고 있을까” 같은 혼잣말은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또는 자주, 또는 으레 느끼는 생각이지 싶습니다. 참말 뭣 때문에 사진을 찍을까요? 재미있어서 찍겠지요. 좋아서 찍겠지요. 즐겁거나 기뻐서 찍겠지요. 아프거나 슬플 적에 이 마음을 달래려고 찍겠지요. 아름다운 모습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어서 찍겠지요. 아름다운 모습을 이웃하고 나누려고 찍겠지요.


  전시회는 왜 하고, 작품집은 왜 낼까요? 예술을 하거나 이름을 떨치려고 사진을 찍을까요? 어쩌면, 예술을 하려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을 테고, 예술가로 이름을 알리거나 돈을 벌려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을 테지요. 어떻게 사진을 찍든 대단할 것도 대수로울 것도 훌륭할 것도 없습니다. 사진은 ‘전문가’만 찍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진은 ‘누구나’ 찍기 때문입니다.


  몇몇 전문가만 쓰라고 하는 사진기가 아닙니다. 누구나 다루면서 제 삶이랑 사랑을 즐겁고 아름다우면서 재미나게 찍으라고 하는 사진기입니다. 노출이나 초점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잘 찍는 사진’이나 ‘좋은 사진’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명작’이나 ‘걸작’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누구나 오늘 이곳에서 제 삶을 사랑하면서 찰칵 하고 단추를 눌러서 빚는 사진에 기쁜 이야기를 담자고 하는 사진기를 가슴으로 포근히 안으면 더없이 아름다우면서 반갑습니다. 4348.7.15.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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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Modern Times - 한영수 Han Youngsoo
한영수 지음 / 한스그라픽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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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210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찍는 사진

― 서울, 모던 타임즈

 한영수 사진

 한영수문화재단 엮음

 한스그라픽 펴냄, 2014.6.20. 3만 원



  사진가 한영수 님은 1986년에 《우리 강산》(열화당,1986)이라는 사진책을 선보였고, 이듬해인 1987년에 《삶》(신태양사,1987)이라는 사진책을 선보였습니다. 《우리 강산》은 책이름처럼 이 나라 숲과 들과 냇물과 바다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보여주는 사진책입니다. 《삶》은 책이름대로 이 나라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저마다 아기자기하면서 수수하게 빚는 삶을 밝히는 사진책입니다.


  두 가지 사진책은 모두 한겨레 삶터와 삶을 사진으로 보여줍니다. 다만, 한겨레 삶터와 삶이되, 남녘과 북녘으로 갈라진 삶터와 삶 가운데 남녘땅과 남녘사람 이야기입니다.


  ‘남북으로 갈라진 이 땅’에서는 남녘 작가도 북녘 작가도 어느 한쪽만 바라보면서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강산”을 말하든 “삶”을 말하든 참말 어느 한쪽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참으로 쓰라린 노릇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쓰라린 나라와 사람을 따스한 눈길로 마주할 수 있다면, 북녘에서 북녘만 찍든 남녘에서 남녘만 찍든 ‘삶을 누리는 기쁨’과 ‘삶을 가꾸는 보람’과 ‘삶을 나누는 사랑’을 사진으로 담아낼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이리하여, 어느 모로 보면 가난하거나 구지레하다고 여길 수 있지만, 다르게 바라보면 ‘가난한 삶터에서도 함박웃음을 짓는 아이’를 보면서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어느 모로 보면 ‘구지레한 차림새’라 하더라도 ‘기운차게 일하면서 아이이하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살림을 가꾸는 어른(어버이)’하고 어깨동무하면서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





  옷이 넉넉하지 않고, 빨래도 자주 할 수 없지만, 맑은 넋으로 밝게 웃는 나요 너이며 우리입니다. 조그마한 집이고, 판자로 다닥다닥 얽은 집이며, 우물이나 냇물을 긷자면 한참 지게질을 해야 하는데, 넉넉한 마음으로 따스하게 노래하는 나요 너이며 우리입니다.


  한영수 님은 ‘가난’을 찍지 않습니다. 한영수 님은 ‘꾀죄죄한 모습’을 찍지 않습니다. 그예 내 모습을 찍고 네 모습을 찍으며 우리 모습을 찍습니다. 기록으로 남기거나 추억으로 되새길 모습이 아니라,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사람들이 저마다 어깨동무를 하면서 씩씩하게 하루를 짓던 삶을 고스란히 바라보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누군가는 일에 치여서 고단하게 등짐을 질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일하다가 지쳐서 아무 데나 지게를 세우고 꾸벅꾸벅 졸 수 있습니다. 학교 모자를 눌러쓰고 양담배를 팔아야 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뜻도 모르고 읽을 줄도 모르는 일본책이나 서양책을 두 손에 쥐고 들고 다니면서 팔아야 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삶을 짓는 사람들은 대통령 이름을 따지거나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삶을 짓는 사람들은 언제나 내 곁에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생각합니다. 삶을 짓는 사람들은 늘 내 둘레 이웃을 헤아리면서 서로 손을 맞잡습니다. 돈이 있기에 두레를 하지 않아요. 살림이 가멸차기에 품앗이를 하지 않아요. 서로 아끼면서 사랑하는 숨결이기에 두레도 하고 품앗이도 합니다.





  1950년대에 사진기를 손에 쥘 수 있던 다른 사람들은 어떤 사진을 찍었을까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사진기를 손에 쥘 만하던 여러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이웃’이나 ‘동무’나 ‘한겨레’로 여겨서 어떤 사진을 찍었을까요? 1980년대를 지나고 1990년대를 거쳐 2000년대와 2010년대를 맞이한 오늘날 사진기를 손에 움켜쥐고 사진을 찍는 수많은 사람들은 어떤 곳에서 어떤 사람하고 이웃이 되어 어떤 삶을 사진으로 찍는 하루를 누릴까요?


  2014년에 새롭게 나온 한영수 님 사진책 《서울, 모던 타임즈》(한스그라픽,2014)는 오늘 이곳에 선 우리 모습을 되새기도록 이끄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지나간 1950∼60년대를 보여주려는 사진이 아닙니다. 가볍게 이 사진책을 바라본다면 ‘지나간 서울 모습’으로만 받아들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이 사진책은 다른 무엇보다도 ‘사진기를 쥔 사람’이 ‘오늘 어느 자리에 어떻게 서서 이웃을 바라보느냐’ 하는 눈길하고 마음하고 사랑을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2015년을 사는 우리라고 한다면, ‘2015년 오늘 이곳에서 만나는 이웃’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나(사진가)하고 누가 이웃인가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어깨동무할 수 있어야 하며, 손을 맞잡고 함께 웃고 노래하며 이야기하는 하루를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구경하는 눈길’로는 사진을 찍지 못합니다. ‘어깨동무하는 손길’일 때에 사진을 찍습니다. 구경하는 눈길이라면 예술을 하거나 문화를 하거나 기록을 할 수는 있겠지요. ‘사진찍기·사진읽기’는 언제나 어깨동무하는 손길이자 마음길입니다. 내가 너를 찍든 네가 나를 찍든, 우리가 함께 ‘사진을 한다’고 할 적에는 예술 작품을 빚으려고 하는 몸짓이 아닙니다. 서로 어떤 삶이고 어떤 사랑이며 어떤 사람인가를 똑바로 마주하면서 바라보고 알려고 하는 몸짓일 때에 비로소 ‘사진을 한다’고 말할 만합니다.






  삶을 보기에 삶을 찍고, 삶을 찍기에 다시 삶을 봅니다. 삶을 껴안기에 삶을 읽고, 삶을 읽으면서 새롭게 삶을 껴안습니다.


  1987년에 나온 사진책 《삶》은 2014년에 《서울, 모던 타임즈》라는 새 옷을 입는데, ‘서울’이나 ‘오늘날(모던 타임즈)’이라고 하는 이름이란 바로 사진가 한영수 님이 스스로 어떤 넋이요 숨결인가를 늘 찬찬히 헤아렸다는 뜻이지 싶습니다.


  양복쟁이도, 호텔보이도, 등짐꾼도, 길거리 담배장수 아이도, 젖을 물리는 어머니도, 빨래터 어머니도, 한강 모래밭을 양산 쓰고 걷는 아가씨도, 모두 사랑스러운 이웃이면서 바로 나이고 우리 어버이입니다.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찍는 사진하고, ‘다큐멘터리 기록을 하려는 작가’가 찍는 사진은 사뭇 다릅니다. 삶을 사랑하는 수수한 사람이 오늘 이곳에서 마주하는 이웃하고, 다큐멘터리 기록을 하려고 문예기금을 받은 작가가 찾아가는 외딴 마을에서 만나는 시골사람이나 변두리 사람은 서로 다릅니다. 이웃을 이웃으로서 찍은 사진하고, 먼발치 변두리 사람을 구경하면서 찍은 사진은 참으로 다릅니다.






  서울에서도, 서울 아닌 도시에서도, 이 나라 모든 시골에서도, 우리 삶을 우리가 스스로 사랑스레 바라보면서 사진 한 장으로 담을 수 있기를 빕니다. 전문작가 손을 빌지 말고, 우리가 스스로 어떤 사진기로든(손전화 사진기이든 디지털 사진기이든) 즐겁게 찍을 수 있기를 빕니다.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됩니다. 서울에서 서울을 찍어도 되고, 대구에서 대구를 찍어도 되며, 대전에서 대전을 찍어도 됩니다. 아니, 저마다 ‘내가 사는 곳’에서 ‘내 마을’하고 ‘내 이웃’하고 ‘내 보금자리’를 찍으면 됩니다. 서울을 찍기에 값있지 않고, 숲이나 시골을 찍기에 뜻있지 않습니다. 사랑 어린 눈길로 바라보면서 따스한 손길로 어깨동무할 적에 비로소 ‘사진이라는 이름을 기쁘게 붙일 이야기꽃’이 피어날 수 있습니다.


  전문가나 예술가가 기록해 주어야 남는 사진이 아닙니다. 삶을 노래하는 사람이 스스로 웃고 노래하면서 문득문득 한 장씩 찍을 적에 오래도록 이야깃감이 되는 사진입니다. 4348.8.1.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 붙임글 (한영수문화재단 페이스북에 나온 자료에서 옮김)

 www.facebook.com/hanyoungsoofoundation)


“전쟁 후 나의 관심은 어떤 사람을 그의 주어진 환경에서 포착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2차 대전 후였기 때문에 세계적인 사조도 포탄의 연기가 가시지 않은 황폐함을 구석구석 보여주는 보도성이 강한, 리얼리즘의 경향이 만연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당시 외국에서 수입되었던 영화로 ‘길’ 이라던가 ‘지붕’ 같은 것이 기억되는데 전후의 삭막함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짙은 휴머니티를 다루었습니다.


  6·25를 겪고난 우리에게도 여러곳에 전쟁의 상처가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포탄 껍질로 되어있는 굴뚝이라던가, G.I 의 맥주 깡통을 이어서 만든 지붕, 군복을 염색해 입은 찌들은 얼굴은 나의 초점 대상이었습니다. 사진에 있어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사진 자체가 현상된 결과이고, 또 그 가시적 효과를 더 강조하기 위해 기술적인 처리를 연구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의미가 더 빨리 마음을 울린다는 일입니다. 남루한 옷차림의 어린 소녀가 아름다울 수는 없지요. 그러나 앵글의 각도에 따라 그 소녀가 품고 있는 아름다움이 남루함 속에서 풍겨 나온다면 그것은 성공한 사진입니다. 자신의 경험, 인상, 꿈에 대한 통로를 영상을 통해 만들어 냅니다. 나는 이것을 개성 표현과 함께 시도해 보려고 어떤 기법이나 혹은 어떤 진귀한 순간이라도 그저 지나치지 않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감정 표현이 둔해서 얘기하는 도중이라도 카메라를 들이대면 표정이 굳어져 원하던 앵글을 놓치고 말지만 시장 바닥이나 청계천 군복 염색하는 곳에서 여념없이 일하는 사람들 속의 무심함을찍는 재미로 사진에 깊숙이 빠져 들게 되었습니다.”


〈디자인〉 1978년 6월1일 통권 16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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