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밖 여고생
슬구 글.사진 / 푸른향기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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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112



‘평범한 여고생’은 “우물밖 여고생”이 되려 한다

― 우물밖 여고생

 슬구 사진·글

 푸른향기 펴냄, 2016.5.12. 14000원



  교실에 앉은 학생은 모두 비슷하거나 똑같아 보입니다. 줄을 맞춰서 앉고 똑같은 옷차림에 엇비슷한 머리 모습인 아이들은 ‘아이’가 아닌 ‘학생’이라는 이름이 붙으면서 ‘이름’이 아닌 ‘숫자’로 불리기 마련입니다. 더군다나 학생으로서 학교에 가서 교실에 들어서면 모두 똑같은 교과서를 펼치지요. 다 다른 숨결로 태어나서 다 다른 생각으로 살아온 아이들이지만 ‘학생이 할 일은 시험공부’라는 틀로 나아갈 수밖에 없구나 싶습니다.


  열일곱 살이나 열여덟 살에 ‘학생’이라는 틀을 벗어날 수 있을까요? 학생이 아닌 ‘내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까요? 스무 살 나이가 될 무렵에는 똑같이 짜맞춘 틀에서 벗어날 틈이 생길까요? ‘평범한 학생’이라는 이름을 내려놓고서 ‘나다운 숨결’이나 ‘나답게 새로운 꿈’으로 나아가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학교에서) 인정결석 처리를 해 줄 수가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 말은 꼼짝없이 무단결석 처리를 받는다는 거였다. 결석 자체가 생활기록부에 주는 영향이 무척 크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과연 그걸 감내하면서까지 일본을 가야 할까 하고 며칠을 고민했다. (18쪽)


첫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는 인천 행 비행기 안에서 든 생각은 하나였다. “난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42쪽)



  1998년 5월에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나 줄곧 이 고장에서 살았다고 하는 슬구(신슬기) 님은 2016년에 고등학교 3학년이라고 합니다. ‘평범한 학생’ 테두리에서 보자면 ‘입시생’이나 ‘고3 수험생’이라 할 테지만, 슬구 님은 두 가지 이름에다가 다른 이름을 스스로 지어서 붙입니다. 바로 “우물밖 여고생”입니다.


  “우물밖 여고생”은 그동안 우물에 스스로 갇혀서 지낸 줄 알아차린 여고생입니다. 그동안 우물에 스스로 얽매인 채 지낸 줄 몰랐으나, 이제는 우물밖이라고 하는 너른 삶터가 있는 줄 알아낸 여고생입니다. 우물에 머무는 삶이 아니라, 새로운 우물을 찾아나서는 삶이라든지 우물이 아닌 냇물이나 골짝물이나 샘물이나 바닷물을 찾아나서면서 꿈을 키우려는 여고생입니다.



이번만큼은 내 감정에 충실한 여행을 해 보는 거야. 살면서 맘만 먹으면 올 수 있는 게 제주 아니겠어? 일생에 한 번뿐인 여행도 아니니 너무 조급해 하지 말자. (64쪽)


끝내 별똥별은 보지 못했지만 괜찮다. 그보다 더 멋진 별과 달을 만났고, 그날의 바람과 공기를 느꼈고, 묘한 밤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으니까. 이거면 됐다. (71쪽)



  “우물밖 여고생”은 열일곱 살에 처음으로 알바를 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을 고스란히 하면서 일삯을 받는 일이 얼마나 ‘안 만만한가’를 이때에 처음으로 온몸으로 느꼈다고 해요. 만 원도 천 원도 아닌, 이른바 백 원이나 십 원조차 거저로 나한테 오지 않는 줄 뼛속 깊이 느꼈다고 합니다.


  “열일곱 우물안 여고생”은 학교를 다니면서 꾸준히 알바를 했고, 차츰 일삯이 모여서 제법 목돈이 되었다고 해요.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알바를 했달 수 있는데, 시나브로 한 가지 생각이 꿈처럼 떠올랐다고 해요. 첫 생각은 “내 사진기 장만하기”였고, 이 다음으로 떠오른 생각은 “여행 나서기”였다고 합니다.


  사진기를 장만해서 여행에 나서려는 생각은 ‘어머니하고 일본 여행’이었다는데, 어머니는 갑자기 함께 갈 수 없는 일이 생겼다고 털어놓았답니다. 이때에 슬구 님은 ‘스스로’ 생각하지요. 비행기표나 숙소 예매를 모두 취소하느냐, 아니면 혼자서 씩씩하게 떠나느냐. 이 갈림길에서 혼자 여행길에 나서기로 했고, 첫 걸음마처럼 첫 ‘나 홀로 여행’을 마치면서 “우물밖 여고생”으로 거듭나는 길에 섰다고 합니다.


  《우물밖 여고생》(푸른향기,2016)이라고 하는 사진수필책은 이렇게 태어납니다. 천천히 껍질을 깨듯이 찬찬히 우물밖 너른 터를 돌아보려고 하는 작은 눈길이 꿈길로 거듭나는 사이에 태어납니다.



하루에 몇 대 없는 버스를 놓쳐 두 시간을 길거리에서 보내야 하더라도 네가 화를 내지 않았으면 좋겠어. (82쪽)


왜 하필 지금 여행을 하냐고 물으면, 너는 왜 지금 여행을 하지 않느냐고 되묻고 싶다. (120쪽)



  사회에서는 흔히 말하기를 ‘학생은 공부만 하면 된다’고 합니다. 다만,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공부하는 학생’이라는 대목에서는 ‘어떤 공부’를 하면 되는가까지 건드리지는 않아요. 학교에 가서 교실에 들어가야만 ‘공부’라고 여기곤 하지만, 공부는 학교에서만 할 수 있지 않습니다.


  《우물밖 여고생》을 쓴 슬구 님은 알바를 하는 동안 ‘알바를 하는 곳’에서 사회와 경제와 노동을 배웠습니다(공부했습니다). 알바를 해서 얻은 돈을 푼푼이 모아서 사진기를 장만하는 동안 기쁨이나 보람이나 즐거움이나 선물이 무엇인가를 배웠어요. 어머니하고 일본 여행을 다녀오려는 꿈은 스러졌지만, 나 홀로 여행을 다녀오면서 ‘곁에 다른 사람이 없어’도 혼자서 하나부터 열까지 척척 살펴서 갈무리하는 살림을 배웠어요.


  여행길에서 새로운 이웃하고 동무를 배웁니다. 나고 자란 곳에서만 바라보던 삶터가 아닌, 드넓은 새로운 삶터를 배웁니다. ‘시흥에서 보는 하늘’을 넘어서 ‘제주에서 보는 하늘’이나 ‘경주에서 보는 하늘’이나 ‘일본에서 보는 하늘’을 새삼스레 배워요.


  하나씩 새롭게 배우는 동안 하나씩 새롭게 사진으로 빚습니다. 천천히 새롭게 마주하는 삶과 사람과 사랑을 천천히 새롭게 사진으로 옮깁니다. 누구한테서 배운 사진이 아니라, 스스로 새롭게 배우면서 찍는 사진입니다. 누구한테서 배운 글이 아니라, 스스로 새롭게 배우면서 쓰는 글입니다.


  남한테 예쁘게 보여주려고 하는 사진이나 글이 아닌, 스스로 새롭게 배우는 기쁨과 보람과 즐거움과 땀방울을 담는 사진이나 글입니다. 멋스럽게 선보이려고 하는 사진이나 글이 아닌, 스스로 즐겁게 맞이하는 하루를 그저 즐거운 마음이 되어 엮는 사진이나 글입니다.



추운 날씨 탓에 나뭇잎들이 얼어서 걸을 때마다 바스락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좋았다. 나뭇가지가 부서지는 소리는 특히 더. 그래서 나는 풀숲만 찾아 걸었다. (152쪽)



  《우물밖 여고생》은 우물밖으로 내디딘 첫걸음을 보여줍니다. 이 나라 ‘평범한 학생’이 서로 엇비슷하거나 똑같지 않다는 목소리를, 마음속에서 흐르는 목소리를, 교과서나 책에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스스로 온누리를 차근차근 디디고 밟고 서면서 느끼는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앞으로는 너른 바닷물 같은 목소리가 되고 싶은 꿈을 보여주고, 쉬잖고 솟는 샘물 같은 목소리로 살려고 하는 몸짓을 보여줍니다. 들을 적시는 냇물 같은 목소리로 자라는 숨결을 보여주고, 구수하게 끓는 밥물 같은 기운을 보여줍니다.



삶에 여유가 있기 때문에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하기 때문에 삶이 여유로운 것이다. (159쪽)



  우물밖으로 첫걸음을 내디딘 슬구 님은 이제 ‘생활기록부 성적이나 숫자’에서 조금은 홀가분할까요? 생활기록부에 ‘무단결석’이라는 글씨가 찍히더라도 이러한 굴레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을까요? 또는 우리 사회나 학교에서 ‘나 홀로 드넓은 온누리를 배우려는 여행’을 하겠다는 ‘평범한 학생’한테 ‘삶 공부(체험학습)’를 하는구나 하고 받아들이도록 제도나 규칙이 바뀔 수 있을까요?


  사진기·세발이·연필·책을 벗으로 삼아서 나서는 고즈넉한 마실길은 슬구 님이 《우물밖 여고생》에서 밝히듯이 스스로 넉넉해지려고(여유로워지려고) 나서는 새로운 길입니다. 돈이 넉넉해서 나서는 여행이 아닌, 마음을 넉넉하게 가꾸려는 꿈을 사랑스레 품기 때문에 나설 수 있는 새로운 길이지 싶습니다. 이리하여 《우물밖 여고생》에 깃든 사진이나 글은 풋풋하면서 차분한 그림이 됩니다. 이제 막 너른 터를 맛본 풋풋함이요, 이 너른 터에 흐르는 바람을 듬뿍 마시는 차분함입니다.


  기쁜 열여덟을 기쁜 몸짓으로 맞이하면서 적바림한 사진과 글이, 기쁜 열아홉에도, 기쁜 스물다섯에도, 기쁜 서른 마흔 쉰에도, 오월바람 같은 따사로운 이야기꽃으로 늘 새롭게 깨어날 수 있기를 빕니다. 2016.5.26.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진책 읽는 즐거움)


* 이 글에 붙인 사진은 슬구 님(http://blog.naver.com/ssol_0520)한테서 고맙게 받아서 붙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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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잘 찍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 어느 다큐 사진가의 사진강의 노트 눈빛사진학개론 3
양해남 지음 / 눈빛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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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111



아줌마 사진가한테서 배운 ‘이웃을 찍는 기쁨’

― 나도 잘 찍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양해남 사진·글

 눈빛 펴냄, 2016.3.10. 13000원



  지난 서른 해 남짓 다큐사진을 찍었고, 앞으로도 이 길을 즐겁게 걸어갈 양해남 님이 선보인 《나도 잘 찍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눈빛,2016)를 재미있게 읽습니다. 서른 해 남짓 사진길을 걸었는데에도 양해남 님은 “나도 잘 찍고 싶은 마음”이라고 책이름에서 밝혀요. ‘서른 살 젊은이’가 아니라 ‘서른 해 사진가’ 입에서 “나도 잘 찍고 싶은 마음”이 불거집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이를테면, ‘서른 해나 사진을 찍었는데에도 사진을 찍기 어렵다는 말인가?’ 하고 여길 수 있어요. 그리고, ‘서른 해뿐 아니라 쉰 해나 일흔 해 동안 사진을 찍어도 언제나 새내기 마음이 되어야 하는구나!’ 하고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사진을 찍어 오면서 내가 멋지다고 생각되었던 곳은 이미 누군가가 일찌감치 표현을 했었던 장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8쪽)


나는 일상적이고도 평범한 시간에 무게를 두고 사진을 찍습니다. 오솔길에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는 하나의 솔방울도 나에게는 중요한 피사체입니다. (43쪽)



  사진책을 읽으면서 ‘사진·사진기’ 생각은 살며시 접고서, 다른 생각을 해 봅니다. ‘자동차·자동차 몰기’를 생각해 봅니다. 아침에 마당을 쓸면서 ‘자동차를 모는 사람’하고 ‘어떤 자동차를 모는가’ 하는 대목을 조용히 생각해 보아요.


  어떤 사람은 작고 값싼 자동차를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몹니다. 어떤 사람은 작고 값싼 자동차를 우악스럽거나 거칠게 몹니다. 어떤 사람은 크고 비싼 자동차를 우악스럽거나 거칠게 몹니다. 어떤 사람은 크고 비싼 자동차를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몹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자동차를 몰면서 쉽게 다른 사람한테 삿대질을 하거나 빵빵빵 울려요. 어떤 사람은 자동차를 몰면서 한 번도 다른 사람한테 삿대질을 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빵빵빵 울리지 않고 가만히 기다립니다.


  작은 자동차를 몰기에 더 부드럽지 않고, 큰 차를 몰기에 더 우악스럽지 않습니다. 작은 자동차를 몰기에 더 거칠지 않고, 큰 차를 몰기에 더 사랑스럽지 않아요.


  어떤 자동차를 몰든지, ‘자동차를 모는 사람’ 스스로 어떤 마음이나 몸짓이나 생각이나 버릇인가에 따라서 사뭇 달라요. 자동차 손잡이만 잡았다 하면 마치 ‘자동차 경주’를 하듯이 달리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자동차 손잡이를 잡든 여느 때이든 늘 부드러우면서 사랑스러운 사람이 있어요.



아줌마 사진가는 나에게 사진으로 나눌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게 해 주었습니다. 자신이 사진에 찍히는 것보다 누군가를 찍어 준다는 것은 작은 나눔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62쪽)


가장 기본인 교과서는 내 머리 안에 있습니다.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나만의 작품세계를 추구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니까요. (88쪽)



  이제 ‘사진·사진기’를 헤아려 봅니다. 작고 가벼우며 값싼 사진기로 재미나며 훌륭하고 아름답고 즐거운 이야기를 늘 새롭게 찍는 사람이 있어요. 작고 가벼우며 값싼 사진기로는 도무지 재미없고 안 훌륭하고 안 아름답고 안 즐거운 이야기를 늘 비슷하게 찍는 사람이 있어요. 크고 무거우며 비싼 사진기로 도무지 재미없고 안 훌륭하고 안 아름답고 안 즐거운 이야기를 늘 비슷하게 찍는 사람이 있어요. 그리고, 크고 무거우며 비싼 사진기로 재미있고 훌륭하고 아름답고 즐거운 이야기를 늘 새롭게 찍는 사람이 있어요.


  어떤 사진기를 쓰느냐에 따라서 사진이 달라질까요? 네, 틀림없이 달라집니다. 그런데, 사진기마다 쓰임새가 달라서 어떤 사진기를 쓰느냐에 따라서 사진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진기를 손에 쥔 사람’에 따라서 사진이 가장 크게 달라진다고 느껴요.


  양해남 님은 《나도 잘 찍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라는 사진책에서 이 대목을 넌지시 다룹니다. ‘찍히는 사람’을 ‘찍는 사람’이 어떻게 마주하느냐에 따라서 사진이 달라진다고 말하지요. 그러니까, ‘찍히는 사람’을 ‘피사체’라고 하는 ‘사물’로 바라보느냐, 아니면 ‘찍히는 사람’을 ‘모델(내 사진을 빛내는 모델)’로 바라보느냐, 아니면 ‘찍히는 사람’을 ‘동무·이웃’으로 삼느냐에 따라서 사진이 달라진다고 말해요.



지금 현재의 순간은 나에게만 주어진 소중한 시간입니다. 세상이 나에게 보여주는 유일한 광경일지도 모릅니다. 이제 온힘을 다해서 사진을 찍을 시간입니다. (121쪽)


하루 온 종일을 소비하면서 마음에 드는 사진을 한 장도 얻을 수 없다면, 그냥 포기를 하는 것이 아늘까? 아니면 다음 날도 찍고 또 그 다음 날도 찍어서 마음에 드는 사진을 얻을 때까지 도전을 하는 것이 옳은 방법일까? (130쪽)



  우리는 어떤 마음결이 되어 사진기를 손에 쥘까요? 우리는 어떤 마음씨가 되어 자동차 손잡이를 손에 잡을까요? 우리는 어떤 마음바탕이 되어 밥을 짓거나 아이들 머리카락을 쓸어넘길까요?


  양해남 님은 ‘사진을 찍으려’고 우악스럽게 달려드는 몸짓은 안 반갑다고 밝힙니다. 사진에 찍히는 사람을 ‘이웃’이 아닌 ‘사물(피사체)’로 바라보는 몸짓은 사진다운 이야기가 되기 어렵다고 하는 뜻을 밝힙니다. 그리고, 사진에 찍히는 사람은 ‘모델’도 아니라는 뜻을 밝혀요. 사진에 찍히는 사람은 피사체도 모델도 아닌 ‘사람’이라고 하는 대목을 《나도 잘 찍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에서 꾸준히 밝힙니다.


  이리하여, 양해남 님이 찍는 사진은 다른 사진가들이 빚는 사진하고 대면 ‘많이 어려울(어렵게 찍을)’ 수밖에 없습니다. 양해남 님은 ‘찍히는 사람한테 허락을 안 받고 무턱대고 먼저 찍고 보자’는 생각을 할 수 없다고 해요. 왜냐하면 ‘그들(찍히는 사람)’은 ‘내 사진을 빛내는 소재’가 아니라 ‘나와 똑같이 사랑스러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가능하면 이런 후회를 줄이기 위해서 느리고 천천히 촬영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만일 돌이킬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그냥 그 공간에 머무르는 편을 선택합니다. (166쪽)


내가 찍는 사진의 무게를 생각하면 남의 사진을 가벼이 볼 수 없습니다. 불과 125분의 1초라는 아주 짧은 순간에 완성되는 한 장의 사진이라도 모든 예술작품과 동일한 무게인 것입니다. (176쪽)



  사진길을 걸은 서른 해를 되짚으며 “나도 잘 찍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하고 털어놓는 양해남 님은 사진을 천천히 찍으려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쓸 만한 사진을 한 장조차 건지지’ 못하는 일이 있어도 서두르려고는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쓸 만한 사진 한 장 건지기’에 마음을 빼앗기기보다는 ‘반가운 이웃하고 동무를 만나는 삶’에 마음을 기울이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아줌마 사진가한테서 사진을 찍는 마음을 배우고, 아이들한테서 맑게 노는 마음을 배웁니다. 새봄에 푸르게 돋는 싹과 꽃을 바라보면서 새롭게 거듭나는 숨결을 배웁니다. 흙을 만지며 살림살이를 손수 지어 온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마주하면서 고요하면서 너그러운 넋을 배웁니다.


  사진가는 으레 ‘찍는 사람’으로 여기기 마련이지만, 사진가라고 하는 자리는 수많은 사람을 오랫동안 꾸준히 수없이 다시 마주하는 동안 ‘배우는 사람’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즐거움을 배우면서 즐거움을 사진에 담고, 아름다움을 배우면서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으리라 느껴요. 사랑을 배우면서 사랑을 사진에 싣고, 기쁜 꿈을 배우면서 기쁜 꿈을 사진에 실으리라 느껴요. 맑은 눈짓을 배우면서 맑은 눈짓을 사진으로 옮기고, 밝은 웃음을 배우면서 밝은 웃음을 사진으로 옮기리라 느낍니다.


  “사진을 잘 찍고 싶은 마음”이란 바로 “살림을 기쁘게 가꾸고 싶은 마음”이요, “사람을 아름답게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며, “삶을 넉넉히 나누고 싶은 마음”이지 싶습니다. 2016.5.14.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진책 읽는 즐거움/사진비평)


* 글에 붙인 사진은 사진가 양해남 님과 눈빛 출판사한테서 고맙게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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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타운 눈빛사진가선 16
김보섭 지음 / 눈빛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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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225



한때 ‘인천 한복판’이던 ‘중구’ 차이나타운

― 차이나타운, 인천 청관

 김보섭 사진

 눈빛 펴냄, 2015.10.1. 12000원



  인천 중구는 행정구역으로 ‘중구’인데, 길그림으로 살펴보면 ‘가운데에 있는 마을’로는 안 보입니다. 인천이 걸어온 길은 인천이라는 고장으로서 곧게 걸은 길이 아닌 탓입니다. 인천은 바다를 끼고 항구가 선 곳이면서 바닷길로 서울하고 이어지는 징검돌입니다. 오늘날에는 직할시를 거쳐서 광역시가 되었기에 땅으로 치자면 넓습니다만, 지난날에는 그저 자그마한 고을이었어요. 일제강점기에도 인천은 그리 크지 않은 고을이었습니다.


  인천이라는 곳에서 ‘중구’나 ‘동구’ 같은 이름은 오늘날에는 걸맞지 않은 이름이지만, 이 이름에는 인천이라는 곳이 걸어온 자취가 고스란히 남습니다. 길그림을 보면 ‘중구’가 맨 왼쪽, 이른바 가장 서쪽에 있습니다. ‘동구’는 중구 위쪽에 있어요. 인천 ‘남구’는 중구하고 동구 오른쪽인 동쪽에 있습니다. 인천 ‘서구’는 동구 위쪽인 북쪽에 있어요. 이제는 계양구나 부평구라는 이름을 쓰지만 예전에는 ‘북구’라는 이름을 썼고, 이 북구는 인천에서 동쪽 끝에 있다고 할 만합니다. 이런 얼거리이다 보니 인천 길그림을 살피면 ‘동서남북’이 모두 뒤죽박죽인 셈이라고 여길 만해요.


  오늘날에는 뒤죽박죽이지만, 인천이라는 작은 고을이 도시로 커진 일제강점기를 살피면, 그무렵에는 ‘인천 = 중구 + 동구’였다고 여길 만했습니다. 그때에는 그랬어요.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인천 중구는 일본사람이 살던 곳이면서, 중국사람도 건너와서 살고 서양사람도 나란히 살던 곳이었어요. 그무렵에도 중구 쪽에 한국사람이 살았지만, 일본은 ‘조계지’라는 울타리를 내세워서 한국사람이 섣불리 넘보지 못하게 했어요. 이러면서 한국사람은 ‘동구’라는 곳에 몰려서 살았지요. 잠은 동구에서 자고, 일은 중구에 가서 하는 셈이라고 할까요. 요즈음 인천에서 잠은 ‘인천에서’ 자고 일은 ‘서울에서’ 하는 틀하고 비슷한 모습이에요.


  어느 모로 본다면 ‘일제강점기 중구’ 자리는 일본사람이 ‘한복판에 선’ 곳이요, 여기에 중국사람도 한복판에 선 곳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전철역 이름에도 아직 이런 자국이 남았어요. ‘인천역’은 경인선 맨 왼쪽(서쪽)에 있는 끝 역이고, ‘동인천역’은 인천역 옆에 있는 곳인데, ‘동인천역’은 ‘이제 동쪽 인천이 아닌, 맨 서쪽에 있는 인천’이에요. 다시 말하자면 ‘인천역’이라는 이름이 인천 중구에 있던 까닭은 그곳이 옛날에는 인천 한복판이었다는 뜻이고, ‘동인천역’은 인천 동쪽 끝자락을 가리켰다는 뜻입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동인천역에서 오른쪽으로 더 가면 ‘거기는 인천이 아니라’는 소리까지 됩니다. 옛날에는 그랬겠지요.



나의 기록은 1980∼2000년까지의 인천 화교들의 이야기이다. 지금은 많은 중국집들로 화려하지만 그 당시 인천 차이나타운은 여러 가지 이유로 쇠락해 있었다. 나는 사라져 가는 역사의 자취를, 화교 1세대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자 했다. (사진가 노트)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해방이 되면서 인천이라는 고을이 차츰 커집니다. 일제강점기부터 들어선 수많은 공장은 더욱 많이 늘어났습니다. 서울 옆에서 서울에 자원과 물건과 사람(인력)을 대는 고을로 커집니다. 이러면서 ‘인천 한복판’은 중구 쪽에서 차츰 오른쪽으로, 그러니까 서울하고 가까운 쪽으로 움직입니다. 인천역이나 동인천역이 ‘인천 중구’에 있다고 하더라도, 중구도 ‘인천역·동인천역’도 ‘옛날 한복판(구도심)’일 뿐입니다.


  김보섭 님이 1980∼2000년 사이에 찍은 ‘인천 차이나타운’ 모습을 담은 사진책 《차이나타운, 인천 청관》(눈빛,2015)을 읽으면서 인천 발자취와 ‘중구’라는 이름과 ‘한복판(도심, 구도심, 신도심)’이라는 자리를 가만히 돌아봅니다.


  나는 인천 ‘남구(도화동)’에서 태어났으나, 본적은 ‘동구(송월동)’이고, 어린 날이나 국민학교는 ‘중구(신흥동)’에서 보냈습니다. 집과 학교와 이웃집 사이는 언제나 두 다리로 걸어다녔고, 공항이 들어서기 앞서 배로 오가던 영종섬을 꽤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사진책 《차이나타운》은 인천 중구에서도 ‘북성동·선린동’ 두 마을을 찬찬히 살핍니다. 이 사진책에 붙은 이름은 ‘차이나타운’인데, 이곳을 가리키는 이름을 생각하니, 영어로 차이나타운뿐 아니라, ‘청관’이란 한자말도 썼고, ‘중국인거리’나 ‘중국인마을’이란 이름도 썼어요. 그냥 ‘북성동’이나 ‘선린동’이라고만 하기도 했어요.


  일제강점기에는 눈부시도록 북새통을 이루던 북성동이요 선린동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해방을 맞이하고 나서 새마을운동이나 경제개발계획 때문에 인천이라는 곳이 ‘서울 언저리 공업 위성도시’ 구실을 하는 동안에는 행정이나 경제 모두 ‘오른쪽으로(서울과 가까이)’ 갈밖에 없었으니, 그 눈부신 북새통을 이루던 북성동이나 선린동은 차츰 저물밖에 없었으리라 느낍니다. 고속도로가 나고, 중구에 있던 온갖 시설이 다른 구로 옮기면서 ‘중구’는 ‘한복판’이라는 이름이 바래도록 더 크게 저물었을 테고요.


  나는 어릴 적에 ‘중구에 있던’ 여러 학교들하고 인천시청에다가 인천시외버스역이 모두 ‘다른 구’로 옮기던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학교와 행정기관과 여러 시설이 중구에서 다른 구로 옮기면서, 그야말로 인천 중구하고 동구는 나란히 비면서 엄청나게 조용해졌어요.


  요즈음은 ‘차이나타운 관광지’로 다시 북새통을 이루는 마을로 바뀌는 중구이지 싶습니다. 다른 도시에 있는 ‘중국인마을’도 관광바람이 불며 다시 북새통을 이루는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북성동이든 선린동이든 청관이든 차이나타운이든 중국인마을이든, 예나 이제나 똑같은 대목이 하나 있어요. 북새통을 이루었든, 눈부심이 저물었든, 새 관광바람이 불든, 작고 수수하게 살림을 짓는 사람들은 늘 그대로입니다.


  관광지 걸개천이나 붉은 등불이 주렁주렁 매달린 곳에서 몇 미터 안쪽으로 들어서면 조용하고 한갓진 골목이 나옵니다. 이곳에서는 얌전하면서 수수한 골목집이 어깨를 맞댑니다. 사진책 《차이나타운》에 나오는 사람들은 바로 이 조용하고 한갓진 골목집에서 얌전하면서 수수하게 살림을 짓는 여느 얼굴입니다.


  이제 와 돌아보면, 북성동이나 선린동에 살던 내 어릴 적 동무들은 ‘그냥 동무’였습니다. 화교도 뭐도 따로 아닌 동무이자 이웃입니다. 바다 너머에 있는 어떤 나라를 그리는 마음을 때때로 느끼더라도, 바로 이곳에서 오늘 함께 웃고 떠들면서 어깨동무를 하는 사이예요. 내 어릴 적 동무들하고, 내 어릴 적 동무들하고 놀던 골목하고, 내 어릴 적 동무들을 낳고 돌본 어버이(이웃 아저씨 아주머니) 모습을 작은 사진책 한 권에서 새삼스레 되돌아봅니다. 2016.4.21.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사진책 읽는 즐거움/사진비평)


* 이 글에 붙인 사진은 '눈빛출판사'에서 보내 주어서 올릴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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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이후 - 비무장지대와 군사문화 한치규 사진집 3
한치규 지음 / 눈빛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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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224



‘평화 이후’를 바라는 ‘분단 이후’ 이야기

― 분단 이후, 비무장지대와 군사문화

 한치규 사진

 눈빛 펴냄, 2016.2.25. 3만 원



1929년 함경남도 정평 출신으로, 1·4 후퇴 때 어선을 이용해 월남했다. 그 후 군에 입대해 6·25전쟁에 참전했으며, 1979년 보안사 기조처장(대령)을 마지막으로 예편하기까지 30여 년간 군생활을 하였다. 전쟁 이후 군생활을 사실 그대로 기록할 수 있는 것이 사진이라고 판단해 일본에서 발행하는 사진실기 강좌를 어렵게 구독하여 사진술을 독학으로 익혔다. (사진가 한치규 님 해적이)




사진책 《분단 이후, 비무장지대와 군사문화》(눈빛,2016)를 읽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사진책 《분단 이후》는 ‘한치규 사진집’ 셋째 권입니다. 한치규라는 분은 직업군인으로서, 또 아버지로서, 또 수수한 서울사람 가운데 하나로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가라는 이름보다는 ‘사진 즐김이’로서 사진을 한 장 두 장 찬찬히 찍어서 남겼다고 느낍니다.


문화를 이루려는 사진이 아니라 삶을 적으려고 하는 사진이라고 느낍니다. 예술을 펼치려는 사진이 아니라 살림을 아로새기려고 하는 사진이라고 느낍니다. 지난 2012년 5월에 《한씨네 삼남매》가 사진책으로 태어났습니다. 2016년 2월에 《변모하는 서울》과 《분단 이후》가 나란히 사진책으로 태어났습니다.


사진책 《분단 이후》를 넘기면, 한치규 님이 마주한 비무장지대와 군대 모습이 낱낱이 드러납니다. 한치규 님은 사병이 아닌 간부(장교)였기에 사진기를 손에 쥘 수 있다고 봅니다. 사병이 군대나 비무장지대에서 사진기를 손에 쥐면 군사법에 걸려서 옥살이를 해야 하거든요. 간부(장교)는 얼마든지 홀가분하게 사진기를 손에 쥐면서 온갖 모습을 담아낼 수 있습니다.


진책 《분단 이후》를 넘깁니다. 한치규 님은 어떤 멋들어진 제식훈련(전국대학교련 실기대회)이나 군사행렬(월남 파병 환송국민대회)도 사진으로 담곤 했지만, 비무장지대나 철책이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아름다운 이 나라 숲과 골짜기가 아스라이 펼쳐진 모습을 꽤 많이 사진으로 담아서 보여줍니다. 참말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얼핏설핏 철조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금수강산’을 찍은 사진이네 하고 느낄 만합니다. 이곳저곳에 길다랗게 철책이 늘어진 모습이 드러나기에 남녘하고 북녘이 갈린 생채기가 사진마다 도사린다고 할 만합니다.


문득 예전 어떤 일을 떠올립니다. 내가 군대에 있을 적입니다. 나는 1990년대에 강원도 양구에서 육군 보병으로 있었고, 이무렵 경계근무를 서든 그냥 지오피에 있든 언제나 ‘맨눈으로 금강산 구경’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안개가 짙게 덮이거나 구름이 두껍게 깔린 날이 아니라면 으레 금강산 봉우리를 보며 지냈어요.


군대에 있는 동안에는 내가 있던 부대나 철책 둘레에 흐르는 냇물이 어떤 냇물인지 몰랐습니다. ‘두타연’이라는 이름은 전역하고 한참 뒤에 알았고 ‘용늪’이라는 이름도 참으로 한참 뒤에서야 깨달았습니다. 두타연이라는 골짝물을 마음껏 헤엄치는 커다란 물고기가 연어인 줄도 나중에서야 알았어요.


사진책 《분단 이후》에 나오는 ‘성명을 알 수 없는 적군묘’ 사진을 보면서 가슴이 싸합니다. 나는 군대에서 수색이나 정찰을 해야 하던 때에 ‘아군 무덤’인지 ‘적군 무덤’인지 알 길이 없는 무덤을 제법 보았습니다. 나뭇가지를 십자가처럼 얽어서 땅에 박은 무덤이에요. 덩굴이 우거진 수풀에 이런 나무십자가 무덤이 꽤 있었어요. 이런 무덤을 볼 적마다 그저 철모를 벗고 고개를 숙입니다. 두 손을 모아서 절을 합니다. 그러고 보면, 교통호를 판다든지 철조망을 새로 치는 일을 할 적마다 땅을 파야 하는데, 이렇게 땅을 파다 보면 뼈다귀도 나오고, 예전 부대에서 파묻은 쓰레기가 썩지도 않은 채 나오기도 했습니다.


‘땅굴 시추 현장’ 사진에서 김이 솔솔 나는 밥 한 그릇 먹으려고 모인 군인을 보며 가슴이 찡합니다. 한겨울에 따끈따끈 김이 나는 밥 한 그릇이라니. 얼마나 따뜻하고 반가울까요. 나는 군대에서 한겨울(혹한기) 훈련을 하다가 숟가락이 입천장에 달라붙어 안 떨어진 적이 있습니다. 이날 수은주로 영하 18도였는데, 언손으로 겨우 숟가락을 쥐어 국물을 떠서 입에 넣고 빼다가 숟가락이 붙었지요. 누군가 뜨거운 물을 얻어 와서 입에 들이부어 주었기에 ‘뜨거운 기운’보다는 ‘숟가락이 떨어졌다’며 마음을 놓던 일이 떠오릅니다. 한겨울에 훈련을 할 적에는 눈밭에 천막을 치고 자면서 누구나 군화를 품에 안고 자요. 그런데 군화를 품에 안고 자도 얼어서 쪼그라드니, 새벽에 다시 군화를 발에 끼우려면 용을 써야 합니다. 그래도 군화가 안 들어가서 발이 다 안 들어간 채 엉성하게 한 시간쯤 걸어서 ‘발에서 나는 땀’으로 군화를 녹이면 비로소 끝까지 다 들어갑니다.


‘파월 장병을 면회하는 가족’ 사진을 보면, 비무장지대에 있던 터라 아무도 면회를 올 수 없는 곳에 아들을 보낸 어머니나 아버지가 어떤 마음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이제서야 듭니다. 참으로 그래요. 전쟁훈련을 시키는 군대에 아이를 보내야 하는 어버이는 늘 걱정하고 근심이 가득합니다. 총을 두 손에 쥔 젊은이는 죽음을 늘 코앞에서 맞닥뜨려야 합니다. 목숨이 걸린 일이에요. 내가 죽지 않으려면 너를 죽여야 하는 군대입니다. 평화를 지켜야 한다는 뜻으로 ‘이웃나라 멀쩡한 젊은이’를 죽이도록 훈련을 시키는 군대예요.


분단은 한겨레를 두 나라가 되도록 갈랐습니다. 흔히 ‘군사문화’라 하지만, 아무래도 ‘문화’라 할 수 없는 이 ‘군대신분계급질서’는 두 나라에 아주 깊이 박혔지 싶습니다. 군대에서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군대 같은 신분이나 계급으로 위아래가 갈리기 일쑤입니다. ‘위에서 시키’면 ‘아래에서는 고스란히 따라’야 합니다. 밥그릇을 비운 숫자(나이값)로도 신분이나 계급이 갈립니다. 전쟁무기도 군부대 크기도 좀처럼 줄어들 낌새가 안 보입니다.


한치규 님이 1960∼70년대에 사진으로 남긴 모습은 스물 몇 해가 지난 1990년대 군부대에서 거의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마흔 몇 해가 지난 오늘날 군부대에서는 얼마나 바뀌었을까요? 아니, 이제는 남녘이나 북녘 모든 자리에서 군대가 사라지고 평화가 새롭게 태어날 노릇은 아닌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철조망을 걷고 지뢰를 치울 수 있기를 빕니다. 낡은 탱크와 소총은 녹여서 낫과 호미와 쟁기로 바꿀 수 있기를 빕니다. 금수강산이라 일컬을 만큼 아름다운 ‘천연보호구역’마다 군부대가 어김없이 있는데, 천연보호구역을 앞으로도 천연보호구역이 되도록 지킬 수 있기를 빕니다. 군대와 전쟁무기를 앞세운 평화가 아니라, 참말 평화로운 삶과 살림을 짓는 사랑으로 가꾸는 평화가 남북녘에 함께 뿌리내릴 수 있기를 빌어요.


사진책 《분단 이후》를 가만히 덮으면서 다시금 생각합니다. “분단 이후” 어느새 일흔 해나 됩니다. 앞으로는 분단이 아닌 “평화 뒤”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고 글로 담으며 그림으로 담을 수 있는 아름다운 삶자리를 일구는 하루가 되기를 꿈꿉니다. 남녘에서는 금강산도 묘향산도 백두산도 마음껏 드나들고, 북녘에서는 지리산도 북한산도 한라산도 마음껏 드나들 수 있는 새로운 삶을 꿈꿉니다. 2016.3.24.니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사진책 읽기/사진비평)


* 이 글에 붙인 사진은 '눈빛 출판사'에서 고맙게 보내 주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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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아베 고지 사진.글, 박미정 옮김 / 안단테마더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110



아버지는 ‘사진가’와 ‘시인’이 된다

― 아빠!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아베 고지 사진·글

 박미정 옮김

 안단테마더 펴냄, 2016.1.11. 18000원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과분한 일상. 이것이 바로 나의 보물이다(109쪽).” 같은 멋있는 말을 들려주는 사진책 《아빠! 안녕히 다녀오셨어요!》(안단테마더,2016)를 무척 고맙게 읽습니다. 왜 고맙게 읽느냐 하면, 이 사진책을 빚은 아베 고지 님은 이녁 아이들이 신나게 뛰놀면서 숲을 누비는 기쁨을 기꺼이 나누어 주거든요.


  석 달 동안 배를 타고 한 달 동안 뭍에서 쉬는 일을 하는 아베 고지 님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석 달 동안 아이들을 볼 수 없이 일하다가는, 비로소 한 달 동안 말미를 얻어서 아이들하고 만난다고 해요. 한 해 가운데 아홉 달은 아이들도 곁님도 볼 수 없는 일이지요. 그렇지만 배를 타는 사람은 누구나 이와 같겠지요?



삼 개월 만에 만나면 아이들은 놀랄 만큼 자라 있다. (4쪽)


사슴벌레를 모자에 넣고 그대로 머리에 쓴다. 이것이 바로 아이들 세계의 ‘멋’. (8쪽)





  석 달 만에 만나는 아이들은 늘 놀랄 만큼 자란다고 합니다. 아무렴 그렇지요. 석 달 만인걸요. 아이들은 날마다 새롭게 자라니, 석 달이라는 나날은 얼마나 길까요. 한 달씩 말미를 얻어서 쉰다고 하더라도 다시 석 달을 헤어져야 하니까, 한 달이라는 나날은 무척 짧다고 느끼리라 생각해요.


  이리하여 아베 고지 님은 한 달을 쉬는 동안 늘 아이들하고 어울려 놀겠노라는 다짐을 합니다. 아이들하고 만나서 놀려고 석 달을 일한다고 할까요. 석 달을 배를 타며 일하는 동안 ‘앞으로 다시 한 달 동안 신나게 놀아야지’ 하고 꿈을 키운다고 할까요.


  아이들은 이런 아버지 마음을 잘 알리라 느낍니다. 아버지가 드디어 배를 내리고 뭍으로 돌아올 적에 기쁘게 웃으면서 안길 테지요. 눈물 같은 기쁜 웃음을 짓지요. 이러다가 한 달이 지나갈 무렵 서로서로 아쉽고 서운한 손짓으로 헤어질 테고요.


  사진이 없었다면 어떠했을까요. 사진기가 없었다면 어떠했을까요. 사진이 있고, 사진기라는 기계가 있기에, 우리는 그립고 애틋하며 사랑스러운 짝님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습니다. 아마 사진이 없었으면 그림을 그리고 글월을 띄웠을 테지요. 마음속에 오롯이 이야기를 담으면서 떠올리려 할 테지요.



신나는 게 최고. (20쪽)


단순함이 좋다. 빛이 나니까! (26쪽)





  사진책 《아빠! 안녕히 다녀오셨어요!》는 오직 사랑으로 태어납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아버지가 된 아베 고지 님은 처음에는 ‘사진’이라고는 조금도 몰랐다고 합니다. 아니, ‘아이’조차도 잘 몰랐다고 해요. 사랑하는 짝을 만나서 한집살림을 가꾸다가 큰아이가 태어난 뒤에 차츰 ‘아이’를 느꼈고, 이 놀랍도록 사랑스러운 아이를 지켜보면서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딸이 돌이 되었을 무렵, 함께 산책하러 가면 아이는 무의식적으로 내 손을 잡거나 균형을 잃고 넘어질 것 같으면 내 다리를 붙들기도 했는데, 이것이 아이나 엄마에게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지금껏 경험해 본 적 없는, 신선하면서도 낯선 감정이 싹텄습니다(120쪽).” 같은 말을 가만히 헤아립니다. 이제껏 겪은 적이 없는 새로운 마음이 싹텄다고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돌아봅니다.


  사랑 어린 손길로 사진기를 들고, 기쁨 어린 눈길로 사진을 찍습니다. 꿈이 가득한 마음결로 사진기를 쥐며, 웃음 가득한 숨결로 사진을 찍어요.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사진에 찍혀 줍니다. 이 사진은 모두 ‘아버지가 다시 배를 타고 석 달 동안 일하러 가’면, 배에서 이 사진을 돌아보면서 저희를 그릴 줄 알아요.



여름에는 매미잡이로 하루를 시작한다. (32쪽)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웃음소리가 아닐까? (43쪽)





  나도 아이들을 늘 사진으로 찍는 사람으로서 이 사진책 《아빠! 안녕히 다녀오셨어요!》를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사진으로 찍힐 때에는 기쁘게 웃으며 노는 때입니다. 기쁘게 웃으며 놀 수 있기에 어버이가 사진기를 손에 쥘 적에 스스럼없이 찍혀 줍니다. 모델이 되는 아이들이 아니라, 그저 즐겁게 노는 아이들입니다. 모델을 찍는 어버이가 아니라, 그저 기쁘게 웃는 아이들이 사랑스러운 어버이입니다.


  아버지는 하루하루 사진을 찍는 동안 어느새 ‘사진가’가 됩니다. 사진을 잘 배우고 훌륭히 찍기에 ‘사진가’이지 않습니다. 사진 한 장에 담는 숨결이란 언제나 사랑이라는 대목을 깨닫기에 사진가입니다. 사진 솜씨가 훌륭하기에 ‘사진가’이지 않아요. 너(아이)와 내(아버지)가 이곳에서 함께 짓는 하루가 아름다운 꿈으로 피어나는구나 하는 대목을 알아차리기에 사진가예요.



보물이란 무엇일까? (55쪽)


(큰아이) 아카리가 엄마의 치마를 입게 되었다. (72쪽)





  사진가로 다시 태어나는 아버지는 시인으로도 다시 태어납니다. 아이들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하고 생각하다 보니, 모든 말이 마치 노래처럼 시처럼 흘러나옵니다. 아이들하고 도란도란 짓는 이야기를 떠올리다 보니, 그림책을 읽어 주든 동화책을 함께 읽든, 모든 말소리는 노랫소리로 거듭나면서 피어납니다.


  “둘째, 셋째가 태어나고 셋째 아이가 걸어다닐 즈음, 나는 아이들에게 완전히 푹 빠져 있었습니다. 카메라도 DSLR로 바꾸고, 시간만 나면 아이들과 산속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답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한없는 사랑을 주고, 아이는 그 사랑을 받아먹으며 무럭무럭 자랍니다. 하지만 도리어 내가 아이에게 무한한 사랑과 신뢰를 받고 변해 갔습니다(120쪽).” 같은 이야기를 천천히 읽습니다. 이 말마따나 아이는 사랑을 받아먹으며 무럭무럭 자라요. 그런데 언제나 어버이도 아이한테서 사랑을 받아요. 아이도 자라고 어버이도 자라요. 아이도 사랑으로 자라고, 어버이도 사랑으로 자라요.


  나이를 먹으며 늙는 어버이가 아니라, 아이하고 나누는 사랑을 아이한테서도 고스란히 나누어 받으면서 날마다 새롭게 웃음잔치랑 노래잔치랑 사진잔치를 즐기는 어버이입니다.



이랬으면, 저랬으면 하는 바람은 없다. (82쪽)


‘아, 고향이 참 좋아.’ 그렇게 생각해 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91쪽)





  온누리 모든 사내가 아버지가 될 수 있다면, 참말 온누리 모든 사내는 아버지로서 사진가와 시인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두 손에 호미랑 연필을 쥐거나 괭이랑 사진기를 들면서 아이하고 어깨동무를 할 수 있다면, 참말 온누리에는 사랑하고 평화가 흐르리라 생각합니다.


  어버이는 사진을 찍으면서 아이한테 ‘사진 찍는 기쁨’을 가르칩니다. 어버이는 모든 말을 시처럼 노래하면서 아이한테 ‘시를 짓는 즐거움’을 물려줍니다. 아이는 천천히 뛰놀고 자라면서 아버지처럼, 또 어머니처럼 사진가도 되고 시인도 됩니다. 삶을 그리는 사진가로 자랍니다. 삶을 노래하는 시인으로 자랍니다.


  사진은 예술이기 앞서 사랑이어야지 싶습니다. 사진은 문화이기 앞서 꿈이어야지 싶습니다. 사랑을 담을 수 있기에 아름다운 사진이지 싶습니다. 꿈을 그릴 수 있기에 멋진 사진이지 싶어요.


  사진책 《아빠! 안녕히 다녀오셨어요!》를 읽을 온누리 아버지랑 어머니 모두 즐겁게 사진을 찍고 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모두 놀랍고 멋진 사진기이자 시인이거든요. 활짝 웃으면서 사진기를 쥐면 누구나 사진가예요. 하하 웃으면서 연필을 쥐면 누구나 시인이에요.


  아버지 사진가랑 어머니 시인을 만나고 싶습니다. 아버지 시인이랑 어머니 사진가하고 강강수월래를 하고 싶습니다. 2016.2.21.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사진책 읽는 즐거움/사진비평)


* 이 글에 넣은 사진은 안단테마더 출판사에서 보내 주었습니다. 사진을 실을 수 있도록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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