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셔터 걸 1
키리키 켄이치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101



무엇을 왜 사진으로 찍으려 하는가

― 도쿄 셔터 걸 1

 켄이치 키리키 글·그림

 주원일 옮김

 미우 펴냄, 2015.7.30. 8000원



  한국에 사진을 찍는 사람은 많으나, 어떤 사진을 왜 찍어야 하는가를 헤아리는 사람은 뜻밖에 매우 드뭅니다. 값진 사진기와 장비를 갖춘 사람은 무척 많지만, 이 사진기와 장비로 어떤 사진을 어떻게 찍고 읽는가 하는 대목을 슬기롭게 살피는 사람은 뜻밖에 아주 드뭅니다.


  가만히 보면, 한국 사회에서 ‘사진읽기·사진찍기’를 차근차근 이야기하거나 나누는 자리는 매우 드물어요. 학교나 강단에서도 ‘사진’을 알뜰살뜰 가르치거나 배우는 자리는 아주 드뭅니다.


  이른바 ‘이론 교육’은 있고, ‘잘 찍는 사진 소개’는 있으며, ‘공모전에 뽑히기’라든지 ‘전시회 열기’라든지 ‘사진 작품 팔기’는 있지만, ‘사진읽기·사진찍기’라든지 ‘사진 이야기’는 없다시피 합니다.



피사체는 흔히 볼 수 있는 도쿄 거리.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걷기만 해도 생각지 못한 만남과 놀라움이 있다. (10쪽)


내 카메라는 도쿄에 흐르는 현재의 시간을 담아내고 있다. (14쪽)



  켄이치 키리키 님이 빚은 만화책 《도쿄 셔터 걸》(미우,2015) 첫째 권을 읽습니다. 고등학교 사진부 학생들이 도쿄 시내 곳곳을 거닐면서 ‘두 다리로 느끼는 이웃 삶’을 이야기하고, ‘머리에 넣는 지식보다는 몸으로 마주하는 삶’을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느끼고 헤아리는 삶을 ‘사진으로도 넌지시 옮기는 즐거움’을 이야기합니다.


  다만, 이 만화책은 그림결이 그리 뛰어나지 않습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사람들 얼굴이 거의 똑같습니다. ‘인체 비례’도 썩 잘 그리지 못합니다. 아무래도 ‘도쿄 시내 구석구석’을 꼼꼼히 그려서 보여주려는 뜻인 만화책이기에 ‘인물 그림’은 뒤로 처졌구나 싶기도 합니다. ‘만화책으로 사진을 이야기하기’에 눈길을 맞춘 작품인 만큼 ‘인물 데생’에는 마음을 덜 기울였구나 싶기도 해요.


  어느 모로 본다면, 만화책에 나오는 그림은 좀 못 그려도 될 수 있습니다. 그림은 뛰어나지만 이야기가 없으면 어떤 작품이 될까요? 그림결은 훌륭하지만 이야기에 아무런 알맹이가 없이 재미조차 없으면 어떤 작품이 될까요?


  ‘사진을 이야기하는 만화책’이라는 얼거리를 헤아려 봅니다. 사진을 찍을 적에는 ‘사진을 잘 찍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잘 찍은 사진이라 하더라도 아무런 이야기가 깃들지 않으면 부질없어요. ‘사진 묘사’가 훌륭하다든지, ‘황금비율을 맞추었다’든지 ‘색감이나 비례나 콘트라스트나 이것저것 멋지다’든지 하더라도, 이 사진 한 장에 이야기가 없다면, 이런 사진은 더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요절한 위대한 작가의 모습은 이제는 사진에 담을 수 없다. 그래도 우리는 남겨진 작품 속에서 언제나 그와 만날 수 있다. (34쪽)


미하루는 그날 표정 중 제일 기쁘게 웃으며 어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40쪽)



  안 흔들리고 찍은 사진이기에 ‘좋지’ 않습니다. 안 흔들리고 찍은 사진은, 말 그대로 ‘안 흔들린 사진’입니다. 초점이 잘 맞은 사진도 그저 ‘초점이 잘 맞은 사진’입니다.


  어떤 사진을 찍어야 할까요? 아주 쉽습니다. 내가 즐겁게 여기는 이야기를 사진으로 찍으면 됩니다. 사진을 왜 찍어야 할까요? 아주 쉽지요. 내가 기쁘게 사는 모습을 그야말로 기쁘게 웃고 노래하기에 이 기쁨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즐거움을 사진으로 담을 적에는 ‘좀 흔들린다’든지 ‘초점이 살짝 어긋났다’든지 ‘색감이 좀 처진다’든지 ‘구도가 엉성하다’든지 하더라도 다 괜찮습니다. 즐거움을 담았으니까요.


  기쁨을 사진으로 옮길 적에도 이와 같아요. 기쁜 이야기가 흐르는 사진을 찍을 수 있으면 됩니다. 그럴듯해 보인다거나 멋져 보여야 하지 않습니다. 돋보인다거나 대단해 보여야 하지 않습니다.



“내 사진은 안 돼. 조금 세련되지 못하다고 할까. 투명감이 떨어진다고 할까. 찍고 싶은 순간의 공기를 담을 수가 없어.” “라이카를 사면 찍을 수 있을지도? 키무라 이헤이처럼.” “고등학생한테 그런 돈이 어딨어. 가끔 생각해. 좋은 사진이란 대체 뭘까 하고.” “음, 정해진 답이 없는 게 아닐까? 난 이렇게 생각해. 카메라는 ‘신의 눈’이라고. 하늘의 색, 나무의 흔들림, 철새의 무리, 길을 걷는 사람들 표정, 어디를 어떤 각도에서 찍어도 거기에는 반드시 빛이 들어가고 생명의 흔적이 있어.” (75∼76쪽)



  문학상을 타려는 뜻으로 문학을 한다면 재미있을까요? 졸업장을 따려는 뜻으로 학교를 다닌다면 재미있을까요? 공모전에서 뽑히려는 뜻으로 사진을 찍는다면 재미있을까요?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은 ‘남이 보아주라’는 뜻으로 일구지 않습니다. 글도 그림도 사진도 ‘내가 스스로 다시 보고 또 보고 새로 보고 자꾸 보는 즐거움’을 누리려고 일굽니다.


  내가 쓴 글을 내가 새롭게 읽으면서 스스로 즐겁습니다. 내가 그린 그림을 내가 새롭게 바라보면서 스스로 즐겁지요. 내가 찍은 사진을 내가 새롭게 들여다보면서 스스로 즐거워요.


  남한테 보여주려고 찍는 사진이 아니라, 내가 다시 보고 새롭게 보려고 찍는 사진입니다. 그러니까, 사진 좀 ‘잘 찍었다’고 해서 자랑할 일이 없습니다. 사진 좀 ‘못 찍었다’고 해서 서운해 하거나 아쉬워 할 일이 없습니다.



“스카이트리 건설에 따른 재개발로 풍경이 점점 변하고 있으니까, 들를 때마다 꼼꼼하게 촬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 그래서 이건 나 나름대로 남기는 마을의 기록이야.” (87쪽)


상반된 음과 양, 빛과 그림자를 통해 보이는 세계. 마치 내가 이제까지 몰랐던 오토나시 선생님의 또다른 모습과도 같았다. (118쪽)



  만화책 《도쿄 셔터 걸》에 나오는 고등학교 사진부 학생은 사진을 왜 찍을까요? 바로 ‘사진을 좋아하는 내 눈길로 내 삶을 담으려는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바라보아 주는 모습이 아닌 ‘내가 바라보는 내 고장’ 모습입니다. 다른 사람이 훌륭하다고 북돋아 주는 모습이 아닌 ‘내가 스스로 가꾸는 내 보금자리와 마을 이야기’가 흐르는 모습입니다.



“난 내가 가진 물감으로 도저히 하늘의 파란색과 나뭇잎의 녹색을 제대로 칠할 수 없어서 화가가 되는 건 무리라고 포기했어.” “딱히 하늘이 파란색으로만 되어 있는 건 아니잖아. 그건 너 스스로가 무의식중에 선택한 거야.” (163쪽)



  사진은 잘 찍어야 하지 않습니다. 말솜씨는 훌륭해야 하지 않습니다. 시험점수가 높게 나와야 하지 않습니다. 졸업장이나 자격증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되거나 시장·군수 같은 자리에 서야 하지 않습니다.


  그저 여기에 있으면 됩니다. 그저 나를 사랑하면서 삶을 가꾸면 됩니다. 그저 오늘 하루를 새롭게 맞이하면 됩니다.


  어떤 사진기를 써야 할까요? 어떤 사진기라도 다 되지요. 값진 사진기를 쓰고 싶다면 값진 사진기를 쓰면 됩니다. 가벼운 사진기를 쓰고 싶다면 가벼운 사진기를 쓰면 돼요.


  어떤 것을 찍어야 할까요? 어떤 소재나 주제라도 다 됩니다. 스스로 마음에 드는 소재와 주제를 찾으면 됩니다. 스스로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자리에서 즐겁게 마주하는 소재나 주제라면 모두 다 사진으로 담을 만합니다. 남들이 많이 찍는 소재나 주제라도 됩니다. 남들이 아무도 안 찍는 소재나 주제라도 되지요. 가리거나 따져야 할 것은 없지만, 꼭 한 가지만 가리거나 따지면 됩니다. ‘너, 이 사진을 찍어서 즐겁니?’ 하고 물으면 돼요. ‘나, 이 사진을 찍으면서 즐거웠나?’ 하고 물으면 됩니다.



“카메라나 렌즈도 중요하지만 포트레이트를 찍을 때 제일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해? 상대와 많은 커뮤니케이션을 취해 그 사람 본연의 모습에 되도록 가까워지게 만드는 것.” (177쪽)



  이야기가 흐르기에 사진입니다. 이야기를 빚기에 사진입니다. 이야기를 나누기에 사진입니다. 이야기가 새록새록 넘치기에 사진입니다. 그러니까, 이야기가 있기에 사진입니다. 모든 사진은 이야기입니다. 모든 책도 이야기요, 모든 글과 그림도 이야기예요. 모든 춤과 노래도 이야기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누리는 삶은 저마다 다르면서 새롭고 즐거운 이야기입니다.


  사진은 이야기를 찍습니다. 사진은 삶을 찍습니다. 사진은 사람을 찍습니다. 사진은 사랑을 찍습니다. 사진은 바로 내가 나를 찍는 즐거운 길입니다. 4348.10.10.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비평/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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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588 - 조문호 사진집 눈빛사진가선 11
조문호 지음 / 눈빛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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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찾아 읽는 사진책 216



이웃을 생각하는 사진 한 장

― 청량리 588, 1984∼1988

 조문호 사진

 눈빛 펴냄, 2015.2.21. 12000원



  한국에는 “꿈꾸는 카메라”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다큐영화 〈사창가에서 태어나(Born Into Brothels: Calcutta's Red Light Kids),2004〉가 있습니다. 이 다큐영화는 인도 캘커타에 있는 사창가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창가에 ‘몸 파는 가시내’만 있지 않다는 대목을 보여주고, 사창가에 ‘몸 사는 사내’만 드나들지 않는다는 대목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이 다큐영화는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아이들’을 보여줍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짓는 삶을 보여주고, 아이들이 스스로 새로 가꾸는 사랑을 보여줍니다. 여기에 ‘마을’을 보여주지요. 사람이 사는 마을, 사람이 사랑하는 마을, 사람이 꿈꾸는 마을을 보여주요.


  그러고 보면, 이 다큐영화를 한국말로 옮기면서 “꿈꾸는 카메라”로 새 이름을 붙일 만합니다. 어른들한테서는 꿈이 사라지거나 아스라하지만, 아이들은 꿈을 꾸거든요. 아이들은 새로운 마을을 꿈꾸어요. 아이들은 새로운 학교와 어른과 이웃을 꿈꾸어요. 아이들은 욕하지 않고 술 퍼마시지 않으며, 아이들을 안 때리는 어른들을 꿈꿉니다.


  다큐영화 〈사창가에서 태어나〉에 앞서 ‘마을 이웃’으로서 ‘사창가 사람’을 마주하려고 했던 사진가나 영화가는 있었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창가’는 어느 나라에서나 ‘불법’이고(불법이 아닌 나라도 몇 있습니다만), 몸을 사고파는 일을 ‘합법’으로 여기면서 ‘직업 칸’에 적을 수 있는 나라는 없다시피 하거든요. 그런데 문학이나 영화에서는 ‘몸을 사고파는 사람’ 이야기를 자주 다룹니다. 불법인 이야기는 문학이나 영화에서 대단히 자주 나옵니다. 이와 달리 사진이나 영상으로 ‘불법 사창가’를 찍거나 기록하는 일은 몹시 어렵습니다. 말 그대로 불법이니까요.



비록 몸 파는 창녀일지라도 하나의 직업인으로 보아 주도록 사회의 인식을 바꿔 보자고 설득했다. 그들은 스스로의 인권을 되찾자는 데 공감해 사진작업에 많은 힘을 보태 주기도 했다. 동등한 사람으로 봐 주는 깨어난 세상을 바라며 4∼5년 동안 뛰어다녔으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실패했다. 편견은 보기보다 완강했다. (머리말)





  사진을 찍는 조문호 님은 《청량리 588, 1984∼1988》(눈빛,2015)이라는 사진책을 선보입니다. 1984년부터 1988년까지 사진을 찍었고 1990년에 전시회를 열기도 했지만, 사진책은 2015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선보입니다.


  1988년이라는 올림픽 언저리에는 이런 책이 나오기 어려웠겠지요. 올림픽이 지난 뒤에도 군사독재 정치권력은 그대로 있었으니 이러한 사진책이 한국에서 나오기란 그야말로 어려웠겠지요.


  그렇지만 눈길을 넓혀서 생각해 보면, 사창가를 바라보는 사람들 눈높이는 언제나 한쪽으로 굳어집니다. 사창가는 ‘사창가’라는 곳이요, 이곳에 있는 사람도 나와 똑같은 사람입니다만, 이 대목을 살피는 사람이 매우 적습니다. 아니, 사회는 사람들이 ‘편견과 선입관’으로 사창가를 바라보도록 내몹니다. 어디에서 어떻게 살든 평화롭거나 평등할 수 있는 터전이 되는 마을로 나아가는 사회가 아니라, 힘과 돈으로 사람을 억누르거나 짓누르는 사회가 됩니다.


  한번 거꾸로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사창가 아가씨’나 ‘사창가 아줌마’가 ‘사진작가’를 기록하거나 촬영을 한다고 한다면 어떠할까요? 사진작가는 사창가 아가씨한테 어떻게 보일까요? 그리고, 사창가 아가씨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사진으로 기록한다고 하면 어떠할까요? 사창가 아줌마가 바라보는 시장님이나 군수님은 어떤 모습일까요? 사창가 아가씨가 바라보는 군대는 어떤 모습일까요? 사창가 아줌마가 바라보는 시골이나 숲이나 바다는 어떤 숨결일까요?


  사진책 《청량리 588, 1984∼1988》은 서울 청량리 언저리에서 ‘몸을 파는 일’을 하는 가시내 삶자락 가운데 한 가지를 보여줍니다. 몸을 팔려고 ‘가게 앞’에 서서 서성거리는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몸을 팔려고 ‘가게 안’에서 몸을 꾸미거나 화장을 하거나 옷을 갖춰 입는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몸을 팔려고 ‘가게 안’에서 옷을 벗는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밥을 먹으려고 연탄불을 지피는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고단한 하루 일을 마치고 달게 잠든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가게 앞’을 빗자루로 정갈하게 쓸고 치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거울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사진책 겉에 ‘청량리’나 ‘588’이라는 숫자가 없다면, ‘이런 이름’이 없이 사진만 흐른다면, ‘뭔가 다른’ 옷차림이나 ‘어쩐지 다른’ 길거리 모습을 담은 사진이 없다면, 이 사진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내 모습’이거나 ‘이웃 모습’이거나 ‘동무 모습’입니다. 그저 수수하게 이 땅에서 태어나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모습입니다.


  차근차근 돌아볼 노릇입니다. 왜 ‘성매매’는 불법일까요? 사람을 바보로 갉아먹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되며, 사람을 돈으로 사고팔아서는 안 될 뿐 아니라, 사람을 괴롭히거나 휘둘러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성매매업소는 버젓이 있습니다. 게다가 성매매업소를 드나드는 사람은 ‘수수한 여느 사람’을 비롯해서 ‘정·관계’에서 굵직한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까지 두루 있습니다. 그리고, 성매매업소를 드나드는 사람은 모두 ‘사내’이지요. 돈이 있거나 힘이 있는 사내가 성매매업소를 드나듭니다. 성매매업소를 차리거나 성매매업소로 돈을 버는 사람도 하나같이 ‘사내’입니다. 사내들은 권력을 두 손에 거머쥐면서 가시내를 벼랑에 내몰지요. 사내들은 가시내를 발 밑에 두면서 마음대로 주무르지요. 이러면서 합법이니 불법이니 하고 입으로만 떠들고, 이 사회에 평등도 평화도 민주도 자유도 제대로 뿌리내리는 일에는 마음을 쏟지 않습니다.



1990년 2월, 그동안 찍어 온 사진들을 모아 전시회를 가졌으나 주인공인 그녀들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 아니 올 수 없었던 것이다. 언론은 사람 대접을 받게 해 달라는 그녀들의 애끓는 목소리보다 매춘이란 호기심에 무게를 둔 선정적인 나팔을 일제히 불어 재꼈다. (머리말)





  우리 집 여덟 살 큰아이가 저녁에 불쑥 “아버지, 밥이 왜 이리 늦어요?” 하고 묻습니다. 낮에 자전거를 타고 바깥마실을 다녀온 뒤 아이들을 씻기고 밥을 차리고 이것저것 바쁘게 움직이는데, 아이들은 제 어버이가 씻겨 주고 입혀 준 뒤에 느긋하게 밥상맡에 앉아서 만화책을 보고 놀다가 문득 한 마디를 합니다. 나는 하하하 웃고는 아주 즐겁게 아이를 타일렀습니다. 여덟 살 아이가 톡 터뜨린 말이 재미있고 즐거워서 웃었습니다. 더욱 신나게 밥을 지어서 얼른 마무리지었어요. 제 어버이는 바깥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1초도 쉴 겨를이 없이 이 살림 저 집일을 보듬으면서 밥을 차리는데, 아이로서는 배가 고프니까 배고프다는 말이 나올밖에 없을 테지요.


  아이들이 터뜨리는 말은 참말 언제나 재미있으면서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사랑스럽지요. 모든 어른은 아기로 태어나서 아이로 자랍니다. 아기이지 않은 어른은 없습니다. 아이로 자라지 않은 어른도 없어요. 사진을 찍은 할아버지도 아기로 태어나서 아이로 살았습니다. 사진에 찍힌 풋풋한 가시내도 모두 아기로 태어나서 아이로 살았어요.


  사랑을 받으며 태어난 이웃입니다. 사랑으로 만나서 이 땅에 새롭게 태어난 숨결입니다. 오직 사랑으로 자라서 오로지 사랑으로 꿈을 키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왜 이 나라에는 사랑이 아닌 돈과 힘 따위로 사람이 사람을 괴롭히거나 부려먹거나 휘두르는 제도나 가게가 있어야 할까요? 왜 이 나라에는 아름다운 평화나 평등은 좀처럼 자리를 잡기가 어려울까요?


  가까운 곳을 둘러봅니다. 우리 둘레에 흔히 있는 학교만 보아도, 어느 학교이든 대학입시를 맨 앞에 둡니다. 대학입시에서도 서울에 있는 몇몇 대학교에 들어가도록 닦달합니다. 아이들한테 꿈이나 사랑을 가르칠 수 있는 넉넉하고 느긋한 학교는 매우 드뭅니다. 회사나 공공기관이나 공장도 엇비슷합니다. 어느 곳에서나 성과나 성적이나 실적을 외칩니다.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하고, 일을 더 많이 해야 하며, 성장률은 더 높아야 한다고 외쳐요.


  아이들은 놀면 안 될까요? 아니, 아이들은 놀면서 자라야 하지 않을까요? 초등학생뿐 아니라 중학생하고 고등학생도 틈틈이, 또는 자주, 아니 날마다 몇 시간쯤 느긋하게 놀면서 즐거운 나날을 누려도 되지 않을까요? 어른들도 빡빡한 일정에 맞추어 쳇바퀴처럼 돌지 말고, 느긋하면서 넉넉하게 삶을 지을 말미를 누려야 하지 않을까요?



“놀다 가세요∼” 거짓 사랑을 구걸했지만 지나치는 이의 반응은 차가웠다. “야! 니가 좋아서 잡는 줄 아니, 돈이 좋아 잡는다.” 체념 섞인 그녀의 절규가 듣는 이의 가슴을 더 아프게 한다. (머리말)





  내 한몸 먹고사는 일이 걱정없다면 몸을 팔아야 할 일이 없습니다. 우리 식구 먹고사는 일이 근심스럽지 않다면 몸을 팔아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 집 여덟 살 아이가 나한테 불쑥 한 마디를 했듯이, 나도 누군가한테 불쑥 한 마디를 하고 싶습니다. “전투기 한 대만 안 사도 먹고사는 걱정을 안 할 사람이 확 줄 텐데?” 한 마디를 더 하고 싶습니다. “잠수함 한 대만 안 사도 먹고사는 걱정을 안 할 사람이 엄청나게 줄 텐데?” 한 마디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원자력 발전소만 안 지어도 이 나라에 굶거나 가난한 사람이 몽땅 사라질 텐데?”


  나한테 전쟁무기가 없어도 너한테 전쟁무기가 있으면 무서우니까 전쟁무기를 너보다 내가 더 갖추어야 한다고 말하는 정치권력자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정치권력자한테 따져야 합니다. ‘이봐, 정치권력자야! 너희는 평화를 지키도록 그 자리에 있지, 전쟁무기를 만들라고 그 자리에 있지 않잖아? 우리한테도 저쪽한테도 전쟁무기가 다 함께 없어서 다 함께 평화로운 길이 되도록 네가 정치를 제대로 해야 하지 않아?’ 하고 따져야 합니다.


  나는 너한테 사랑을 말할 수 있어야 사랑스럽습니다. 너는 나한테 사랑을 노래할 수 있어야 사랑스럽니다. ‘거짓 사랑’도 아니고 ‘몸 섞어서 돈 주고받기’도 아닌 ‘서로 아끼는 아름다운 삶’이 될 때에 비로소 ‘사랑’이라는 이름을 쓸 수 있습니다.


  함께 어깨동무하면서 놀고, 그야말로 거리낌이나 스스럼이 없이 서로 아끼고 돌보는 따사로운 마음으로 놀며, 날마다 새로운 이야기로 꿈을 지을 수 있기를 빌어요. 우리는 모두 꿈꾸는 사람이 되고, 꿈꾸는 사진기를 손에 쥐고, 꿈꾸는 이야기를 오순도순 주고받을 수 있기를 빌어요. 사진이 노래가 되고, 노래가 사진이 되고, 삶이 노래가 되고, 노래가 삶이 되고, 이리하여 시나브로 사진도 노래도 삶도 모두 곱게 사랑이 되는 기쁜 지구별이 될 수 있는 꿈을 가슴에 품어요. 해님이 온 숲에 모든 풀하고 나무를 골고루 자라도록 비추듯이, 사랑이 온 지구별에 골고루 깃들어서 모든 사람이 기쁘게 웃는 삶을 꿈으로 꿉니다. 4348.10.7.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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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닷 Photo닷 2015.9 - Vol.22
포토닷(월간지) 편집부 엮음 / 포토닷(월간지)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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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215



우리가 사진을 ‘읽을’ 때는 언제일까

― 사진잡지 《포토닷》 22호

 포토닷 펴냄, 2015.9.1. 1만 원

 정기구독 문의 : 02-718-1133



  즐거울 때에 사진을 즐겁게 읽습니다. 즐거운 날에는 사진 한 장을 들여다보면서 즐거움이 새롭게 샘솟습니다.


  고단할 때에 사진을 고단하게 읽다가, 어느새 고단함을 가만히 씻습니다. 즐거운 날에는 사진 한 장을 들여다보면서 더욱 즐거운 마음이 된다면, 고단한 날에는 사진 한 장을 들여다보는 동안 어느새 고단함을 녹입니다.


  옛말에 기쁨은 곱절로 북돋우고 슬픔은 반토막으로 나눈다고 했습니다. 살가운 곁님이나 동무나 이웃은 기쁨을 한결 따스하게 북돋웁니다. 이러면서 슬픔은 나누어 받으면서 너그러이 달래지요.


  마음이 아프다든지 일이 힘들다든지 살림이 팍팍할 적에는 언제나 아이들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내가 찍은 우리 아이들 사진은 나한테 새롭게 기운을 북돋아 줍니다. 사진에서 웃는 아이들은 늘 나더러 웃으라고 속삭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사진에서뿐 아니라 바로 내 곁에서 늘 웃습니다.



인천 이외의 지역도 찍었지만 개인적으로 재미가 없었다. 인천 만수동을 비롯한 주택지역은 예상치 못했던 장면들을 불쑥불쑥 마주하게 되면서 찾아내는 재미를 느꼈다. 또한 그 모습 자체도 제멋대로라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서울 도심에서는 어느 정도 찍다 보니 질려 버렸다.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조경인데다 지속적인 관리를 받고 있어 몇 가지 유형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32쪽/유리와)


작업 과정 자체가 퍼포먼스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 영상으로 기록도 하고 싶었지만, 예산과 인력의 부족 문제로 실행하진 못했다. (43쪽/임형태)



  사진잡지 《포토닷》 22호(2015년 9월호)를 읽으며 우리가 사진을 읽을 때는 언제일까 하고 돌아봅니다. 그러니까 ‘사진찍기’ 말고 ‘사진읽기’를 생각하려고 합니다.


  오늘날에는 그야말로 누구나 사진을 찍어요. 전문가나 작가뿐 아니라 ‘안 전문가’도 사진을 찍습니다. ‘취미’로도 사진을 찍고, 전문가도 아니요 취미도 아니라 하더라도 사진을 찍어요. 이를테면 시골 할매가 이녁 손자를 손전화로 찰칵 찍은 뒤 액정 화면으로 담습니다. 한 해에 두 차례 있는 큰 명절에만 손자를 만나더라도, 한 해에 두 차례 사진을 찍지요. 볼 때마다 새삼스레 크는 손자를 손전화로 찍는 시골 할매는 무척 많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시골 할매가 ‘도시에 사는 손자’를 그리면서 찍은 ‘손전화 사진’을 죽 그러모아도 무척 재미난 사진전시가 되리라 느낍니다.


  아무튼, 사진찍기는 오늘날 누구나 하는 일입니다. 오늘날에는 사진을 안 찍는 사람이 없다고 할 만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오늘날에는 모든 사람이 ‘작가’나 ‘사진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올해 동강국제사진제에서 ‘동강사진상’ 수상자를 기념하는 정주하 작가의 전시장에서는 관객들의 다양한 물음들이 제기됐다. ‘왜 찍었을까, 무엇을 얘기하려는 것일까, 어떻게 봐야 할까…….’ 상동의 질문들은 현대미술을 다룬 전시장에서도 어김없이 들려오는 질문들이다. (50쪽/최연하)


작가들은 관람객들이 현대미술에 대해 문외한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볼멘소리를 하겠지만, 실상은 오히려 반대인 경우가 많다. 어떠한 대상을 재현하더라도 그것에 ‘예술’이라는 이름표만 붙여 주면 된다는 이들의 안일한 행동이 이런 결과를 낳고 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 한마디로 사진은 마음만 먹으면 작가 행세를 할 수 있는 가장 ‘만만한’ 수단이 되어 버렸다. (109쪽/장정민)




  누구나 사진을 찍는다면, 누구나 사진을 읽을까요?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누구나 사진을 읽을 수 있을까요?


  쉬우면서도 어려운 물음이라 할 텐데, 누구나 사진을 찍는다면 누구나 사진을 읽기 마련입니다.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누구나 사진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전문 사진가만 찍는 사진이 아니듯이, 전문 비평가만 읽는 사진이 아닙니다. 전문 사진가만 값비싼 장비를 써서 찍어야 하는 사진이 아니듯이, 전문 비평가만 서양 철학이나 사상을 끌어들여서 읽어야 하는 사진이 아닙니다.


  시골 할매가 이녁 손전화로 손자 사진을 찍듯이, 또 시골 할매가 손전화를 켤 적마다 이녁 손자를 손전화 화면에서 보듯이, 우리는 누구나 ‘사진찍기’하고 ‘사진읽기’를 늘 함께 합니다.


  자, 그러면 이제 새롭게 하나 물어 볼 노릇입니다. 사진잡지 《포토닷》 22호에서 최연하 님이 쓴 사진비평에 나오는 말처럼, 전시장에서 수많은 관객들이 ‘왜 찍었을까, 무엇을 얘기하려는 것일까, 어떻게 봐야 할까…….’ 하고 묻는다면, 전문 사진가와 전문 비평가는 ‘전문가 아닌 여느 사람’한테 사진읽기하고 사진찍기를 어떻게 이야기할 만할까요? 우리는 언제 사진을 찍고 언제 사진을 읽을까요?



별천지다. 찍고 싶은 장면들이 너무 많았지만 원칙적으로 내부에서 사진 촬영이 금지다. 걸리면 벌금을 내고 우리 같은 비정규직은 바로 해고다. 거대한 작업 현장에서 똑같은 작업복을 입고 온몸에 연장을 차고 마스크를 쓴 채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폐쇄된 군대나 교도소를 떠올리게 한다. 길게 줄을 서서 2층으로 올라가는 사진이 대표적이다.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 앞에 선 줄이다. 20분을 줄을 서서 기다려 15분간 밥을 먹고 다시 작업장으로 가는 데 20분이 걸린다. (75쪽/변해석)



  사진은 누구나 찍을 수 있습니다. 2015년 최민식 사진상 특별상을 받은 변해석 님이 ‘조선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동무를 사진으로 찍듯이, 참말 누구나 어디에서나 언제라도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한 가지를 더 헤아릴 노릇입니다. 조선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하고 정규직 노동자를 찍은 사진을 볼 사람들은 이 사진을 보면서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변해석 님이 찍은 사진을 보면 ‘못 알아보’거나 ‘못 알아차리’거나, ‘왜 찍었을까?’ 하고 물을까요? 아니면, 사진을 보는 동안 ‘이래서 찍었겠네’ 하고 느끼거나 이 사진이 들려주려고 하는 이야기를 곧바로 고스란히 알아챌까요?




전세계 곳곳에서 초대받은 사진 관계자들은 아침마다 란린거 호텔에서 조식을 먹으며 자유분방하게 서로를 소개하고 교류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다. 커다란 전시장을 하나 빌려놓고 공무원 중심의 개막식과 테이프 커팅 세레머니 이후에 뒷풀이를 하고 헤어지는 폐쇄적인 한국의 사진축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90쪽/강제욱)



  한국은 아직 ‘사진 후진국’입니다. 번쩍거리는 장비를 갖춘 사람들이 많은 한국이지만, 한국은 아직 사진 후진국입니다. 작가로 뛰는 사진가가 제법 많고, 사진전시가 전국 곳곳에서 다달이 꽤 많이 열리지만, 한국은 아직 사진 후진국입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전시가 제법 많다고 하지만 막상 사진책은 한 달에 몇 권 못 나옵니다. 사진책이 어쩌다가 한 권 나와도 잘 안 팔립니다. 전문 사진가는 전문가답게 서양 철학과 이론에 맞추어 이녁 사진을 해석하거나 비평하는 길로 접어듭니다. 젊은 사진가는 젊은 사진가답게 미국이나 유럽에서 새롭게 떠도는 흐름에 발맞추어 ‘사진기라는 장비를 빌어서 펼치는 아티스트 활동’을 합니다. 여기에 사진 동호인은 스스로 ‘아마추어’라고 하지만 장비만큼은 누구보다 전문가답게 잔뜩 갖추어 ‘하이 아마추어’가 됩니다.


  삶으로 사진을 기쁘게 즐기는 사람은 뜻밖에 퍽 적습니다. 사랑으로 사진을 기쁘게 누리는 사람은 뜻밖에 꽤 적습니다. 꿈을 이루거나 펼치는 길에서 사진을 기쁘게 가꾸는 사람은 뜻밖에 참 적습니다.



꽃을 사진으로 찍든, 예쁜 이웃을 사진으로 찍든, ‘남들처럼 찍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멋져 보이거나 훌륭해 보이는 풍경을 사진으로 찍든, 새롭거나 낯선 모습을 사진으로 찍든, ‘전문가나 프로 작가처럼 찍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모든 사진은 내가 나답게 살면서 찍습니다. 나는 나답게 내 둘레를 바라보면서 찍습니다. 내 사진은 오직 나다운 사진이지, 너다운 사진이 아닙니다. 내 사진은 ‘나다운 사진’일 때에 ‘내 이야기’가 서리면서 ‘내 꿈과 사랑’이 피어나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내 사진은 ‘브레송다운 사진’이거나 ‘카파다운 사진’이거나 ‘이런저런 잘 알려진 작가다운 사진’이 되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내 사진을 읽는 사람이 ‘아, 이 사진을 보니 아무개 작가 사진이 떠오르네’ 하고 말한다면, 내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127쪽/최종규)




  우리는 멋있어 보이는 사진을 찍을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역사에 남을 만한 사진을 찍을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남달라 보이는 사진을 찍을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새로워 보이는 사진을 찍을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충격과 공포’를 준다고 하는 사진을 찍을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내 삶을 사랑하면서 찍는 사진’으로 하루를 즐겁게 누리면 됩니다. 우리는 저마다 ‘내 삶을 사랑하면서 찍은 사진을 기쁘게 읽으’면서 하루를 아름답게 누리면 돼요.


  ‘전문가처럼 잘 찍는’ 사진은 그야말로 부질없습니다. 브레송을 흉내낸다든지 살가도 꽁무니를 쫓는 사진을 찍는 일은 덧없을 뿐입니다. 쿠델카나 아담스나 앗제나 카쉬 사진을 따라하는 듯한 사진을 왜 찍어야 할까요?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 즐겁게 웃고 노래할 수 있는 삶을 가만히 사진으로 찍고 차분히 마음으로 읽으면 넉넉합니다.



1982년 울산에서 카메라를 처음 쥔 필자가 맨 처음 한 일은 서점으로 가서 사진잡지를 산 것이었다. (100쪽/진동선)


우리가 어떻게 (사진을) 만들었는지도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는 사진을 보는 사람들을 속이고 싶지 않았다. 우리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어떤 방법을 썼는지, 어떤 재료를 사용했는지, 모든 것을 다 보여주고 싶었다. 유명한 사진에서 액자를 걷어낸 것과 같은 모습에 사람들은 잠시 ‘뭐지’ 하고 고민한 뒤에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이 알던 사진도 거짓, 조작은 아닐까 의심한다. 우리는 묻는다. 사진은 믿을 수 있을까? 더구나 지금과 같은 디지털 사진의 시대에 말이다. (121쪽/조야킴 코티스·아드리안 존데르거)



  글을 쓰는 사람은 소설가나 시인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그저 기쁘게 글을 쓰면 됩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가나 예술가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그저 기쁘게 사진을 찍으면 됩니다. 밥을 짓는 사람은 요리사나 쉐프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그저 기쁘게 밥을 지으면 됩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는 ‘육아 전문가’가 될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는 그저 ‘어버이’가 되면 돼요.


  이리하여, 우리가 사진을 읽을 때는 바로 오늘입니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사진을 읽으면 됩니다. 사진찍기도 바로 오늘 하면 됩니다. 사진학교를 다니거나 사진강의를 들어야 하지 않습니다. 나라밖에서 사진을 배워야 하지 않습니다. 이름난 스승한테서 배워야 하지 않습니다. 상업 스튜디오에서 견습을 해야 하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 삶을 스스로 사랑하면서 사진기를 손에 쥘 수 있으면 됩니다. 푼푼이 돈을 모아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사진책을 꾸준히 장만해서 즐겁게 읽을 수 있으면 됩니다.


  사진으로 가는 길이란 삶으로 가는 길입니다. 삶으로 가는 길이 기쁘면 사진으로 가는 길이 기쁩니다. 삶으로 가는 길을 꿈으로 여민다면 사진으로 가는 길도 꿈으로 여밀 수 있습니다. 나는 바로 내가 되어 내 사진을 찍고 읽습니다. 너는 언제나 네가 되어 네 사진을 찍고 읽습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우리 스스로가 되어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 사진을 기쁘게 찍고 읽습니다. 4348.9.23.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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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있었니, 사진아
테일러 존스 지음, 최지현 옮김 / 혜화동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찾아 읽는 사진책 213



이 수수한 사진이 모두 사랑이었네

― 잘 있었니, 사진아

 테일러 존스 엮음

 최지현 옮김

 혜화동 펴냄, 2013.1.30. 13000원



  우리 집 작은아이는 큰아이를 사진으로 찍을 적에 으레 고개를 빼꼼 내밉니다. 이러면서 “왜 나는 안 찍어? 나도 찍어 줘요.” 하고 묻습니다. 이 작은아이는 이른새벽에 조용히 일어나서 노는데, 늦게 자고도 일찍 일어나서 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살며시 사진기를 들어 찰칵 한 번 찍으면 어느새 눈치를 채고는 방실방실 웃으며 “또 찍어요. 더 찍어요.” 하고 말합니다.


  아이들은 저희 아버지가 언제 저희를 사진으로 찍는지 압니다. 아버지가 빙글빙글 웃고 노래하는 때에 사진기를 손에 쥡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즐거울 적에 사진을 찍으니, 아이들로서도 ‘아하, 우리 아버지가 즐거운가 보네. 그러면 사진 얼마든지 찍어야지.’ 하고 여길는지 모릅니다.



할아버지 자동차에 태우고 끌기. 이제는 가는 곳마다 할아버지를 태우고 다닐 수 없지만, 할아버지가 인생을 살아오시면서 느낀 그 기쁨은 아직도 나를 따라다닌다. (Sandy/23쪽)


우리를 돌봐 주던 할아버지가 계시던 때가 그리워요. 하지만 부디 걱정 마세요. 제가 여전히 여기서 할아버지의 꽃들에 물을 주고 있으니까요. (Marisa/36쪽)



  테일러 존스 님이 엮은 사진책 《잘 있었니, 사진아》(혜화동,2013)를 찬찬히 읽습니다. 테일러 존스 님은 어느 날 문득 알아챘다고 합니다. 이녁 어머니와 아버지가 언제나 이녁 곁에서 이녁을 사랑하면서 살림을 꾸렸구나 하고 알아챘다고 해요. 그래서 옛날 사진을 한 장 꺼내어 ‘오늘 이곳’에서 맞대면서 ‘우와, 지난날에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를 이렇게 바라보았구나!’ 하고 느꼈다고 해요. 이리하여, ‘겹쳐서 찍는 사진 이야기’를 선보였다고 합니다.





아빠 엄마,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낼 수 있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전 사랑받은 기억밖에 없어요. (Ronnie/43쪽)


40년 전, 갓 결혼한 부모님은 사랑이라는 재산을 일구기 위해 저 문을 열고 들어오셨어. 아버지가 지은 이 집은 우리 가족의 소중한 추억으로 채워졌지. 그 행복한 시간들은 영원히 우리 거야. (Fermec, 87쪽)



  겹쳐서 찍는 사진이란, 말 그대로 겹쳐서 찍는 사진입니다. 오늘 이곳은 액자처럼 바깥을 감싸는 틀입니다. 한복판에는 내가 예전에 찍힌 사진입니다. 또는 우리 어머니나 할아버지가 예전에 찍은 사진입니다. ‘찍은 때’는 달라도 ‘찍은 곳’이 같은 사진을 살며시 겹치는 셈입니다. 아스라하다 싶은 시간이 흘렀어도 예나 이제나 한결같이 흐르는 한 가지를 만나려고 하는 사진놀이인 셈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한결같이 흐를까요? 바로 사랑입니다. 오직 사랑입니다. 다만 한 가지 사랑입니다. 다른 것은 더 없어요. 서로 아끼고 돌보는 따사로운 마음인 사랑이 흐를 뿐입니다. 우리 삶에는 언제나 사랑이 흘러요. 사랑 아닌 다른 것이 흐르지 않습니다.



할머니가 옆에 계실 때는 햇볕이 훨씬 더 환하게 비췄어요. 작별 인사는 할 수 없었지만 할머니가 우리 곁을 떠나 천국으로 가실 때 할머니의 따사로운 영혼을 느낄 수 있었답니다. 보고 싶어요, 할머니. (Ivan, 122쪽)


23년 전엔 이렇게 꼭 붙어 있었는데, 지금은 얼굴 보기도 힘드네요. 언니랑 오빠가 보고 싶네요. (Danae, 150쪽)




  사진책 《잘 있었니, 사진아》는 참말 사진한테 절을 해요. 꾸벅 허리를 숙이거나 손을 흔들면서 불러요. “잘 있었니? 나도 잘 있었어.” 마흔 해 묵은 사진이 잘 있었느냐고 묻습니다. 스무 해 지난 사진이 잘 있었느냐고 묻습니다.


  한 번 찍고 파묻는 사진이 아니에요. 사진을 찍는 까닭은 틈틈이 지난날을 돌이키면서 오늘을 되새기고 앞날을 그리려는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꿈을 찍는 사진입니다. 오늘 이곳에 선 꿈을 찍고, 앞으로 이룰 꿈을 찍지요. 오늘 이곳에서 누리는 사랑을 찍고, 앞으로 이곳에서 가꿀 사랑을 찍습니다.



가끔은 자기 집 뒷마당에 앉아 그곳에서 보이는 풍경들을 마냥 즐길 필요도 있다. 내 아이도 그렇게 살기를. (Amy, 201쪽)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마흔 해 남짓 앞서 찍은 사진을 오늘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스무 살에서 서른 살로 달리던 두 젊은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한집을 이루기로 했을까요. 마흔 살이 넘은 ‘아이’는 ‘앳된’ 어버이를 바라보면서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 집 여덟 살 어린이와 다섯 살 어린이는 저희가 찍힌 두어 살 적 모습을 보며 새삼스럽다고 여깁니다. 저희가 어릴 적에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는가를 사진에 비추어 새롭게 바라봅니다. 며칠 앞서 신나게 놀던 모습을 찍은 사진을 오늘 바라보면서 며칠 앞서 그야말로 어떤 기쁨으로 신나게 놀았는가를 새록새록 아로새깁니다.


  노래가 흘러 사진이 됩니다. 노래가 빛나면서 사진이 됩니다. 노래가 어느덧 사진으로 거듭납니다. 노래 한 마디가 사진 한 장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네 삶도 내 삶도 모두 노래입니다. 네 이야기도 내 이야기도 언제나 노래입니다. 그러니, 우리 어버이가 우리 모습을 수수하게 찍은 사진은 모두 노래요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우리가 우리 아이를 수수하게 찍은 사진도 한결같이 노래이면서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4348.9.11.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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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5-09-11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겹쳐찍은 사진을 보니 이런 방법도 있구나!눈이 번쩍 하다가 사진을 찍은 당사자를 생각하니 뭉클하네요
제친구중 하나는 어릴적 부모님과 나들이때 가족과 찍은 그장소를 기억하여 자신의 아들,딸이 어린 자신의 나이와 얼추 비슷하겠다 싶어 그장소를 찾아가 가족사진을 찍어 옛사진과 현재의 사진을 대조하여 블러그에 올렸던데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뭉클하더군요!!
많은 시간들이 지났다는 것을 체감하며 카메라를 누를때의 심정은 어떠할까?
내가 성장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뭉클뭉클하네요!!

숲노래 2015-09-13 08:14   좋아요 0 | URL
자리는 같고
시간은 다르나
서로 아끼는 사람 사이에 흐르는 사랑은
언제나 한결같구나 하고 깨우쳐 주는
멋진 사진이로구나 하고 느껴요.

보슬비 2015-09-12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이런 스타일의 사진을 본적 있었던것 같아요. 참 재미있는 스타일이구나..생각했는데, 이렇게 겹쳐찍기를 해서 가족 이야기를 담았다고 하니 무척 궁금해지는 책이네요. 보관함에 담아두고 천천히 도서관에 있나 살펴봐야할것 같아요. ^^

숲노래 2015-09-13 08:13   좋아요 0 | URL
아마 도서관에 있으리라 생각해요.
애틋한 이야기가 흐르는 사진이 참으로 많아요.
아름다운 책입니다.
 
세상, 너를 꽃이라 부른다
고홍곤 지음 / 지누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2015년에 나온 이 사진책은 아쉽게도 책방에 배본이 안 되었군요.

출판사에 직접 연락해야 장만할 수 있을 듯합니다. (02-3272-2052)


..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99



꽃다운 삶을 사진으로 노래하는 아침

― 꽃시계는 바람으로 돌고

 고홍곤 사진

 지누 펴냄, 2015.3.24. 20000원



  밤이 되면 달빛이 드리웁니다. 달빛은 마루를 지나 방으로도 부엌으로도 들어옵니다. 풀벌레가 고즈넉하게 노래하는 밤이면 언제나 달빛을 바라보면서 고요히 잠이 듭니다. 다만, 시골집에서는 달빛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잠이 들지만, 도시에서라면 다르리라 느낍니다. 아무래도 도시에서는 달빛이 아닌 전등불빛이 퍼질 테고, 수많은 자동차가 밤새도록 비추는 불빛이 넘칠 테지요. 저 먼 별에서 찾아오는 별빛이 아니라 텔레비전이나 여러 전자제품이 내뿜는 불빛이 가득할 테고요.


  요즈음은 전등불빛 아닌 달빛이나 별빛을 마주하면서 한밤을 누리는 사람이 매우 드뭅니다. 한낮에도 햇빛이 아닌 전등불빛에 기대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한낮이든 한밤이든 사진을 찍을 적에 햇빛이나 햇살이나 달빛이나 별빛을 살피기보다는, 전등불빛을 살피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저는 늘 당신 안에서 돋습니다. 세찬 눈보라에도 당신이라면 맨발도 따뜻합니다. (10쪽)

솟구쳐 솟구쳐 촛불처럼 밝혀라. 환한 날들이 네 앞에 있음을. (12쪽)






  고홍곤 님이 2015년에 선보이는 ‘꽃 이야기’ 사진책 《꽃시계는 바람으로 돌고》(지누,2015)를 읽습니다. 고홍곤 님은 지난 2006년에 《꽃, 향기 그리고 미소》를 처음 선보였고, 《꽃심, 나를 흔들다》(2007)와 《희망, 꽃빛에 열리다》(2009)와 《세상, 너를 꽃이라 부른다》(2011)와 《굽이굽이 엄마는 꽃으로 피어나고》(2013)를 차곡차곡 선보였습니다. 2006년에 처음으로 ‘꽃 이야기’를 선보인 뒤, 홀수 해마다 사진전시와 사진책을 함께 내놓습니다. 앞으로 2017년에도, 2019년에도 새로운 꽃 이야기로 꽃내음을 들려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비바람 속에도 우리는 웃어요. 웃어, 햇살 가득하지요. (22쪽)

당신의 음성은 사랑의 꽃별입니다. 별빛 달빛도 머물다 갑니다. (26쪽)





  꽃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시골에서는 시골꽃이 핍니다. 바닷가에서는 바다꽃이 피고, 숲에서는 숲꽃이 피며, 멧골에서는 멧꽃이 피어요. 서울에서는 서울꽃이 필 테고, 부산에서는 부산꽃이 필 테지요.


  다만, 자동차와 사람이 빽빽하게 넘치는 곳에서는 꽃을 쳐다보기 어렵다고 할 만합니다. 시골에는 따로 꽃집이 없습니다만, 도시에는 따로 꽃집이 있습니다. 시골에서는 굳이 꽃집을 찾지 않아도 어디에서나 꽃잔치요 꽃내음이며 꽃누리인 터라, 모든 살림집이 ‘꽃집(꽃가게인 꽃집이 아닌, 꽃으로 이룬 집인 꽃집)’입니다.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너무 바쁘고 자동차가 너무 싱싱 달리니 들꽃이나 길꽃이 제대로 자랄 겨를이 없습니다. 길가에서 하염없이 들꽃이나 길꽃을 들여다보면서 꽃내음을 맡을 틈이 없어요.


  그래도 도시에서 골목꽃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이 꾸준히 늡니다. 아스팔트나 시멘트가 갈라진 자리에서 돋는 조그마한 풀포기와 꽃송이를 가만히 지켜보는 사람이 천천히 늡니다. 골목마을 이웃이 작은 꽃그릇에 작게 심어서 가꾸는 골목꽃이 골목길을 환하게 밝히는구나 하고 깨닫는 사람이 차츰 늡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됩니다. 중앙정부나 지역정부에서 목돈을 들여서 서양꽃을 잔뜩 심어야 아름다울까요? 백만 송이에 이르는 국화나 장미나 튤립을 한곳에 몰아서 심어야 아름다울까요? 한 가지 꽃만 백만 송이나 천만 송이나 십만 송이를 심을 적에는 ‘다른 모든 들꽃’은 ‘잡풀’로 여겨서 마구 뽑아냅니다. 장미꽃잔치나 튤립꽃잔치나 국화꽃잔치를 벌이는 자리에서는 나팔꽃도 냉이꽃도 민들레꽃도 씀바귀꽃도 달맞이꽃도 끼어들 수 없습니다. 쑥꽃이나 부추꽃이나 봄까지꽃이나 소리쟁이꽃은 아예 생각하지 않아요.





햇살과 바람의 이야기로 가득 채우는 (52쪽)

손 벌려 바람을 안고 가슴으로 하늘을 품으니, 늘 새로운 나날이여. (64쪽)



  사진책 《꽃시계는 바람으로 돌고》를 차근차근 읽습니다. 사진을 읽고, 글을 읽습니다. 고홍곤 님은 사진마다 이야기를 하나씩 붙입니다. 아니, 꽃을 찍은 사진마다 이야기가 한 타래씩 자랍니다. 꽃을 마주하는 동안에 사진을 한 장 얻고, 사진을 한 장 얻는 사이에 이야기를 한 꾸러미 얻습니다. 사진을 찍으려고 꽃한테 다가서는 동안 마음속으로 기쁜 숨결이 피어나고, 사진을 찍고 뒤돌아설 즈음 가슴속으로 기쁜 노래가 흐릅니다.


  사진책 《꽃시계는 바람으로 돌고》에 나오는 ‘사진말’을 꽃말이나 삶말로 여겨서 읽을 수 있습니다. 어머니를 그리는 말로 삼아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을 고스란히 ‘사진말’로 느끼며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찍는 사진은 무엇일까요?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을 찍기에 사진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어떤 사진을 찍을까요? 바로 우리가 사랑하는 하루를 내 눈길과 손길과 마음길로 찍습니다.


  “손을 벌려 바람을 안고 가슴으로 하늘을 품”을 때에 “늘 새로운 나날”인 줄 스스로 깨닫고, 이렇게 깨닫는 동안 꽃송이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문득 단추를 눌러 찰칵 소리와 함께 사진 한 장이 태어납니다. “처마 밑 비 오는 소리”를 듣다가 사진 한 장이 태어나고, “장독대 눈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사진 한 장이 거듭 태어납니다.





처마 밑 비 오는 소리, 장독대 눈 내리는 소리. (88쪽)

손을 잡으면 따스합니다. 손이 또 손을 부릅니다. (113쪽)



  꽃다운 삶을 사진으로 노래하는 아침입니다. 아이다운 놀이를 사진으로 노래하는 한낮입니다. 하늘다운 꿈을 사진으로 노래하는 저녁입니다. 냇물다운 사랑을 사진으로 노래하는 한밤입니다.


  꽃을 사진으로 찍든, 예쁜 이웃을 사진으로 찍든, ‘남들처럼 찍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멋져 보이거나 훌륭해 보이는 풍경을 사진으로 찍든, 새롭거나 낯선 모습을 사진으로 찍든, ‘전문가나 프로 작가처럼 찍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모든 사진은 내가 나답게 살면서 찍습니다. 나는 나답게 내 둘레를 바라보면서 찍습니다. 내 사진은 오직 나다운 사진이지, 너다운 사진이 아닙니다. 내 사진은 ‘나다운 사진’일 때에 ‘내 이야기’가 서리면서 ‘내 꿈과 사랑’이 피어나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내 사진은 ‘브레송다운 사진’이거나 ‘카파다운 사진’이거나 ‘이런저런 잘 알려진 작가다운 사진’이 되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내 사진을 읽는 사람이 ‘아, 이 사진을 보니 아무개 작가 사진이 떠오르네’ 하고 말한다면, 내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함께하는 노래는 늘 가슴을 울립니다. (132쪽)

사랑을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놓으면 삶은 감동입니다. (137쪽)



  시인은 시를 쓰고, 사진가는 사진을 찍습니다. 어버이는 밥을 짓고, 아이는 뛰놉니다. 시인은 시를 쓰면서 노래하고, 사진가는 사진을 찍으면서 노래합니다. 어버이는 밥을 지으면서 노래하고, 아이는 뛰놀면서 노래합니다.


  꽃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은 ‘꽃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노래’합니다. 골목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은 ‘골목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노래’할 테고, 숲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은 ‘숲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노래’할 테지요.


  그러니, 사진기를 손에 쥔 우리는 사진을 찍을 적에 ‘내 노래’가 어떤 가락이거나 숨결인가를 헤아리면 됩니다. 사진책을 손에 쥔 우리는 사진을 읽을 적에 ‘내 이웃이 부르는 노래’에 어떤 이야기와 꿈이 서려서 사랑으로 피어나는가 하는 대목을 살피면 됩니다.


  아이도 꽃답고 어른도 꽃답습니다. 젊은 사람도 꽃답고 늙은 사람도 꽃답습니다. 스무 살 먹은 나무도 꽃을 피우고, 이백 살이나 이천 살을 먹은 나무도 꽃을 피웁니다. 작은 들풀도 꽃을 피우고, 무리지은 들풀도 꽃을 피웁니다.


  그리고, 꽃은 흙이 있어야 필 수 있습니다. 흙이 있는 곳에서 씨앗이 싹을 트고 뿌리를 내립니다. 흙이 있는 곳에서 씨앗이 싹을 트고 뿌리를 내리니, 줄기가 오르고 잎이 돋아서 꽃이 피면서 열매를 맺어요. 다시 말하자면, 흙이 있어야 밥이 나올 수 있습니다. 아스팔트와 시멘트로는 밥이 나오지 않습니다. 꽃을 볼 줄 알아야 밥을 헤아릴 수 있고, 꽃을 가꿀 줄 알아야 밥을 지을 줄 알며, 꽃을 아낄 줄 알아야 밥을 함께 먹는 이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꽃이 곱고, 네 가슴속에서 피어나는 꽃이 아리땁습니다. 우리 마음밭에서 피어나는 꽃이 반갑고, 깊은 숲에서 피어나는 꽃이 고맙습니다. 봄에도 가을에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꽃은 언제나 피고 집니다. 한국에서 겨울이 되어 꽃이 지면, 지구 맞은편에서는 여름이 되어 꽃이 핍니다. 이 땅에서 피어나는 꽃이 고운 꽃내음을 싣고 지구 맞은편으로 퍼지고, 지구 맞은편에서 피어나는 꽃이 고운 꽃냄새를 퍼뜨려 이 땅에 베풀어 줍니다. 우리는 사진 한 장으로 ‘사진꽃’을 피워서 함께 웃고 노래할 수 있습니다. 4348.8.13.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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