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추 보름쯤 앞서 사진책 <꿀젖잠> 이야기를 썼습니다.

이 글을 오마이뉴스 기사로도 보내 보았고,

오마이뉴스 편집부에서는 글을 크게 고쳐쓰기를 바라서

인터넷서점에 올린 글하고는 아주 다르다 싶은

새로운 글을 써서 기사로 보냈어요.


새로 쓴 글은 인터넷서점 서평에 따로 더 올리지 않았습니다.

그나저나, 이 글이 네이버에서 오늘(2016.10.12.)

첫화면(메인) '책-문화' 자리에 올라갔다고 하더군요.




무척 고마운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요,

알아봐 주어서 고마운 눈길이라고 해야 할까요.

작은 사진가 한 사람이 내민 손길을

우리 작은 이웃님들이 즐거이 알아보아 주시면서

너그러이 사랑해 주시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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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젖 잠 - 돼지가 우리를 본다, 박찬원 사진책
박찬원 지음 / 고려원북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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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읽기 341



아기 돼지를 안으니 따뜻해, 이 숨결을 사진으로 찍지

― 꿀젖잠

 박찬원 사진·글

 고려원북스 펴냄, 2016.6.23. 12000원



  가을이 무르익으면서 시골은 들마다 누런 물결이 일렁입니다. 봄에는 빈논에 유채꽃이 피어나면서 샛노란 물결이요, 가을에는 무논에 나락이 굵으면서 샛노란 물결이에요. 사람들이 흔히 먹는 쌀밥은 겨하고 씨눈을 많이 깎아 하얀 빛깔로 보이지만, 막상 들에서 맺는 나락이라는 열매는 샛노랗습니다. 이 샛노란 열매를 거두어 햇볕에 말리면 차츰 누르스름한 빛깔로 바뀌지요. 겨만 살짝 벗긴 누런쌀(현미)로 밥을 지으면 누런 기운이 뱁니다.


  시골에서 살지 않는다면 ‘쌀알’, 그러니까 ‘벼 열매’가 ‘샛노란 빛’에서 ‘누르스름한 빛’으로 달라지는 결을 알기 어렵습니다. 가게에서 파는 하얀 쌀알만 본다면 ‘벼 열매’ 빛깔이 무엇인지 잘못 알 수 있어요.


  봄에 맨 먼저 심은 나락은 맨 먼저 벱니다. 봄에 심은 대로 논마다 벼를 베는 기계가 들어가서 한두 시간 즈음이면 논배미 하나를 말끔히 거둡니다. 요새는 낫으로 벼를 베는 곳이 거의 없어요. 다들 기계를 부려요.


  기계를 부리면 기계는 바로 낟알까지 훑어서 자루에 담으니 일손을 크게 덜 수 있습니다. 또 기계는 볏짚도 손쉽게 묶어 주어요. 아무래도 오늘날 시골에는 젊은 일꾼이 거의 없으니 기계를 빌지 않고서야 논일을 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시골에 어린이도 젊은이도 많던 때에는 딱히 기계를 쓰지 않았어요. 예전에는 시골에 일손이 많이 있으니 굳이 기계를 다루지 않아도 되었어요. 이러면서 아이들은 어른 곁에서 늦도록 일손을 거들면서 온몸으로 시골살이를 익혀요. 젊은이는 씩씩하게 땅을 가꾸지요. 이동안 어른들은 대견스러운 아이들한테 틈틈이 주전부리를 챙겨 줄 뿐 아니라 노래를 불러 줍니다. 이른바 ‘일노래’인데, 어른들이 부르는 일노래는 고된 일을 쉬는 구실도 하지만, 시골일을 거드는 아이들한테 삶을 배우도록 북돋우는 구실도 해요. 아이들은 어른들 곁에서 일손을 거들거나 놀면서 아이들끼리 노래를 불러요. 바로 ‘놀이노래’입니다. 예전에는 텔레비전이나 책이나 영화가 거의 없거나 아예 없었어도 시골사람은 스스로 놀이를 짓고 노래를 지으면서 삶을 지었어요.


  오늘날 시골에서는 온통 기계가 논밭을 휩쓸어요. 시골에 어린이도 젊은이도 없기 때문이지만, 논밭에 기계만 드나들면서 예전 같은 일노래는 싹 자취를 감추어요. 아이들은 어른들 곁에서 일이나 살림을 배우지 못하고, 오랜 옛날부터 입과 몸으로 물려주던 노래와 놀이와 잔치도 차츰 잊힙니다. 이러면서 시골 어린이와 젊은이는 도시로 떠나고 시골은 그야말로 고요하거나 쓸쓸하게 바뀝니다.



잠은 꿈입니다. 꿈에는 경계가 없습니다. 전생과 현생, 내생을 훨훨 날아 다닙니다. 잠은 혼과 백이 대화하며 운명을 이끌어 주는 시간이라 생각했습니다. 생명을 ‘숨 젖 잠’으로 보면 생명을 보는 시간과 공간이 달라집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생만이 아니라 전생, 내생을 이어 삶을 보게 됩니다. (36쪽)



  박찬원 님이 두 권째 선보이는 사진책 《꿀젖잠》(고려원북스,2016)을 읽으면서 어쩐지 ‘시골살림하고 어린이’가 떠오릅니다. 사진책 《꿀젖잠》을 읽는 내내 자꾸자꾸 ‘노래하고 놀이가 사라진 시골’이 떠오르고, 노래하고 놀이는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자취를 감추었네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시골일에 기계만 쓰이면서 예전처럼 일노래나 놀이노래가 흐르던 흠벅진 잔치마당도 함께 사라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도시에서도 다들 저마다 바쁘게 일은 하지만 신나는 놀이마당이나 잔치마당으로 어깨동무하는 일은 거의 없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박찬원 님 사진책 《꿀젖잠》은 ‘돼지우리에 있는 돼지’를 찍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 사진책을 보는 동안 시골마을 가을들이 떠올라요. 오직 기계만 드나드는 논이 떠올라요. 들에서도 마을에서도 자취를 감추는 아이들이 떠올라요. 시골은 시골대로 시골스러움이 사라지는 모습이 이 사진책에서 자꾸 떠오르고, 도시는 도시대로 도시스러움이 무엇인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해 봅니다.



어느 날 어미젖을 가만히 보니 상처투성이였습니다. 새끼들이 빠는 힘이 의외로 강합니다. 새끼 이빨에 찢겨져나간 젖도 있었어요. 젖은 희생이구나 생각이 들었죠. (38쪽)



  지난날을 돌아봅니다. 지난날에 돼지는 ‘집에서 키우는 짐승’이었어요. 요즈음처럼 ‘공장식 축산’이나 ‘대규모 축산’으로 돼지를 키우지 않았어요. 소도 돼지도 닭도 모두 예전에는 ‘집집마다 알맞게 키우면서 한식구’로 지냈어요. 예전에는 모든 짐승한테 이름이 있었지요. 사람하고 똑같은 한식구였으니까요. 이러면서도 고기를 먹어야 할 적에는 ‘한식구 목숨을 앗아야’ 하니 괴로운 노릇이었다 했고, 차마 ‘우리 집 고기’를 먹기 어려울 적에는 이웃집한테 주고, ‘이웃집 고기’를 받아서 먹었다고도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이 같은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워요. 집에서 알맞게 소나 돼지나 닭을 기르는 집이 아주 크게 줄었어요. 도시에서는 전화만 걸든 가게로 찾아가든 아주 손쉽게 소고기도 돼지고기도 닭고기도 값싸게 먹어요. ‘오래도록 한식구로 살던 짐승’을 손수 잡아야 하는 슬픔이나 아픔을 느낄 새 없이 고깃살을 입에 넣기 바쁘지요.



저는 종교는 갖고 있지 않았는데 사진을 찍으면서 우리가 모르는 제3의 세계가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사람이나 돼지 같은 동물은 물론 나무, 풀 같은 식물이나 염전, 소금, 바위 같은 무생물도 신성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돼지 사진을 찍고 있지만 결국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 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돼지를 통해서 보고 있고 듣고 있는 것이지요. (40쪽)



  일흔 살이 넘는 사진가 박찬원 님(1944년에 태어남)은 《꿀젖잠》이라는 사진책을 내놓고 사진전시를 열려고 ‘돼지하고 백 날 동안 함께 살았’다고 합니다. 스치듯이 구경하는 돼지를 찍은 사진이 아니라, 돼지우리에서 돼지하고 함께 뒹굴고 뒤엉키다가 문득 한 장씩 찍었다고 해요.


  박찬원 님은 일흔 살이 넘어 돼지를 사진으로 찍기 앞서까지는 돼지를 ‘쉽게 먹는 고기’로만 여기는 마음이었다고 털어놓습니다. 처음으로 돼지하고 ‘함께 뒹굴며 사는’ 나날이 되면서 비로소 돼지를 새롭게 바라보는 눈을 뜰 수 있었다고 해요. 돼지하고 눈을 맞추면서, 돼지하고 돼지우리에서 함께 낮잠도 자고 함께 놀기도 하면서, 어린 돼지를 품에 안아 보기도 하고, 다 해지고 만 어미 돼지 젖을 바라보면서, 이 새로운 삶과 살림을 마주하는 눈으로 돼지를 바라보면서 무언가 가슴으로 뭉클하게 올라왔다고 해요.


  돼지 사진을 찍으면서 “우리가 모르는 제3의 세계”를 돼지우리에서 느낀다고 하는 말은 괜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봅니다. 참말로 우리는 ‘눈으로 보지 못하는 다른 누리’가 있겠지요. ‘귀로 듣지 못하는 누리’라든지 ‘입으로 먹어 보지 못하는 다른 누리’도 있을 테고요. 그러니까 ‘마음으로만 느끼거나 알 수 있는 다른 누리’가 있으리라 생각해요.



태어난 지 이틀 된 아기 돼지를 손에 안았다. 따뜻하다. 기분 좋은 따스함이다. 살며시 돼지 볼에 입술을 갖다 대었다. ‘앞으로 자주 볼 테니까 잘 부탁해’ (76쪽/작업 일기 2015.8.17.)



  꿀이란 무엇이고, 젖이란 무엇이며, 잠이란 무엇일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할아버지 사진가 박찬원 님은 돼지우리에서 돼지하고 벗님으로 지내는 동안 ‘꿀 젖 잠’ 또는 ‘숨 젖 잠’ 세 마디가 떠오르면서 늘 마음이 가득 찼다고 합니다. 삶을 이루는 꿀이요 젖이요 잠이며, 살림에 바탕이 되는 숨이요 젖이며 잠이라고 느낀다고 합니다.



돼지는 생각이 있을까? 배고프고 춥고 아픈 동물적 욕구 말고 다른 생각이 있을까? 새끼가 발에 밟혀 비명을 지르는데도 꼼짝도 않는다. 새끼들이 젖 달라고 아우성을 쳐도 모로 누워 한쪽 젖만 내놓고 있다. 그런데 저 표정은 뭐지? (80쪽/작업 일기 2015.10.19.)



  사진책 《꿀젖잠》을 덮고서 아이들을 이끌고 들마실을 나옵니다. 대문 밖으로 마을논이 있습니다. 아이들하고 걷는 길은 가을들입니다. 비바람에 쓰러진 나락은 마을 할배가 짚으로 엮어서 세웠습니다. 논둑 한쪽에 꽃무릇이 꽃송이를 터뜨립니다. 개구리가 폴짝 뛰고 풀벌레가 노래합니다. 잠자리가 날고 나비가 춤을 춥니다. 이제 제비는 더 보이지 않습니다. 제비는 벌써 바다 건너 따스한 고장으로 날아갔겠지요. 참새가 무리지어 논을 덮다가 우리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 전깃줄로 올라갑니다. 물까치 여럿이 날고, 박새 한 마리가 논도랑에 내려앉아 물을 쫍니다. 고들빼기가 논둑에서 꽃을 피우고, 도깨비바늘도 꽃을 피우려고 애를 씁니다.


  이 모두를 돌아보다가 잘 익은 나락이 고개 숙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요즈음 논에서 자라는 나락은 키가 매우 작습니다. 요즈음 나락은 볏짚이 얼마 안 나와요. 지난날 나락은 키가 크고 볏짚도 굵었지만, 오늘날 나락은 품종을 바꾸어 키가 작고 볏짚도 가늘어요.


  우리는 오늘날 시골논에서 새로운 눈길로 이 논빛이나 나락이나 농기계나 시멘트나 논도랑을 바라볼 수 있을까요? 그냥 샛노란 들판으로만 바라볼 만할까요, 아니면 이 가을논에서 새롭게 눈을 뜨면서 삶과 살림을 새삼스레 바라보아 깨닫는 넋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


  돼지우리에서 돼지하고 뒹굴면서 돼지를 사진으로 찍다가 ‘사람이란 무엇인가?’를 새롭게 돌아볼 수 있었다고 하는 박찬원 님입니다. 그냥그냥 옆에 있다고 여긴다면, 그냥그냥 지나친다면, 그냥그냥 아무것이 아니라고 여긴다면, 돼지한테서든 가을들한테서든 아무것도 못 보고 못 느끼며 못 배우리라 봅니다. 사랑이라는 마음으로 다가서서 손을 잡고 어깨동무를 하려는 몸짓일 때에 비로소 새로운 이야기를 스스로 깨달으면서 사진을 찍고 글을 쓸 수 있으리라 봅니다. 아기 돼지를 안으며 따뜻함을 느껴 사진을 찍는 마음에 흐르는 숨결을 고이 헤아립니다.


  따뜻함을 느끼기에 사진을 찍고, 따뜻함을 느낀 마음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따뜻함을 나누려고 사진을 찍고, 따뜻한 삶을 이야기하려고 사진을 찍어요. 따뜻한 사랑이 되고자 하며 사진을 찍고, 따뜻하게 어깨동무하는 살림을 짓는 꿈을 노래하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2016.9.30.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진책 읽는 즐거움/사진비평/사진넋)


* 이 글에 붙이는 사진은 박찬원 님한테서 고맙게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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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사람들 눈빛사진가선 18
오상조 지음 / 눈빛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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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읽기 340



사진이 ‘기록’을 넘을 수 있다면

― 남도 사람들

 오상조 사진

 눈빛 펴냄, 2015.11.20. 12000원



  예나 이제나 시골에서는 일찌감치 하루를 엽니다. 다만 예나 이제나 시계를 보면서 하루를 열지 않아요. 몸이 저절로 움직이면서 하루를 열고, 몸에 기운이 다하면 하루를 닫습니다. 바쁜 일철이든 한갓진 철이든 새벽 서너 시 무렵이면 시골집마다 복닥이는 소리가 마을에 퍼집니다. 닭도 울고 개도 짖고 소도 울지요. 할매와 할배가 나누는 말소리가 들리고, 아직 풀벌레 밤노래가 고즈넉하며, 일찍부터 날아다니는 멧새도 노래합니다.


  새벽 서너 시라든지 너덧 시는 시골에서는 그냥그냥 모든 집이 조용히 일어나서 하루 일을 벌이는 때입니다. 도시에서는 새벽 서너 시부터 하루를 여는 집은 드물리라 느껴요. 도시에서 하루를 일찍 연다고 해도 대여섯 시쯤 되겠지요. 하루를 일찍 여는 시골이기에 하루를 일찍 닫지만, 하루를 느즈막하게 여는 도시이기에 하루를 늦게까지 닫지 않는 도시가 될 테고요.


  시골이라 해도 모든 시골이 같지 않으니, 어느 시골은 그야말로 자동차 소리를 듣기 어렵습니다. 어느 시골은 자동차가 꽤 많습니다. 그래도 오늘날 한국에서 시골마다 거의 비슷하거나 같은 모습은 몇 가지 있어요. 첫째, 아이들이 거의 없습니다. 둘째, 나이 일흔을 넘긴 분들이 마을을 이룹니다. 셋째, 아이와 젊은이가 시골에 거의 없기에 시골일을 물려받을 일손이 없고, 이 흐름은 더 많은 농약과 기계에 기대는 농업으로 나아갑니다.


  홰를 치는 소리를 들으며 부엌에서 새벽일을 하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비록 오늘날 시골에 아이들이나 젊은이가 모조리 빠져나갔다고 하더라도 씩씩하게 남은 이웃이 있고, 기운차게 시골살이를 꿈꾸며 새롭게 찾아오는 이웃이 있습니다. 시골에서 나가는 사람이 시골로 들어오는 사람보다 아직 더 많지만, 시골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어도 시골사람이 되겠다는 뜻을 품는 이웃이 차츰 늘어납니다.


  지난날 새마을운동은 시골사람이 도시로 빠져나가도록 북돋았고, 아직 시골에는 마을 어귀나 읍내나 길가에 새마을 깃발이 펄럭이는데, 이 흐름을 거스르려는 손길이 조금씩 퍼집니다.



이 책의 사진들 대부분 1970∼80년대에 촬영한 것이다. 이때는 급속한 산업화와 경제개발, 새마을운동이 한창이었던 시기였다. 이른 새벽부터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로 시작하는 확성기 소리와 함께 하루가 시작되곤 하였다. 이 시기부터 이 땅을 지켰던 많은 사람들이 대도시로 떠나면서 도농 간의 격차가 심하게 기울기 시작했고, 아담한 초가지붕과 아름답던 돌담들도 헐리며 수많은 것들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이때 수시로 고향 언저리 여기저기를 찾아 사진으로 기록하는 사진학도였다. 애경사나 명절 때 친인척들 이웃사람들의 기념사진, 가을 행사,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 평범한 일상 등을 기록하였다. (3쪽)



  오상조 님이 1970∼80년대에 ‘남도’를 담았다고 하는 사진책 《남도 사람들》(눈빛,2015)을 읽습니다. 이 사진책에 담긴 모습은 ‘지나간 모습’입니다. 아스라이 멀어진 모습입니다. 1970년대에도 늙은 할매와 할배가 이 사진책에 나옵니다. 1980년대에 아직 시골에서 살던 어린이가 이 사진책에 나와요.


  사진책은 흑백이라 더욱 예스러운 느낌이 납니다. 어쩌면 이 땅에 이 같은 모습은 너무 오랜 옛날 일이라는 느낌이 들고, 더는 붙잡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되찾을 수 없겠네 싶은 느낌까지 들어요.


  흑백으로 이루어진 남도 사람들 사진책을 읽다가 문득 다르게 생각해 봅니다. 1970∼80년대 남도 시골사람하고 시골마을을 흑백사진이 아닌 칼라사진으로 담았다면 어떤 느낌이 되었을까 하고요. 낡고 스러지고 아련하고 잊혀지고 사라지는 옛 모습을 남기려고 하는 흑백사진이 아니라, 1970년대에는 1970년대대로 즐겁게 일하며 사는 모습하고 1980년대에는 1980년대대로 기쁘게 놀며 어우러지는 모습을 칼라사진으로 담을 수 있었으면 어떤 이야기가 남았을까 하고요.


  전남 광주에서 열 몇 해째 나오는 잡지 〈전라도닷컴〉은 시골마을하고 시골사람을 늘 칼라사진으로 담아서 보여줍니다. 칼라사진이어도 시골은 시골이기에 돌담이나 멧논이나 고샅은 그야말로 오래된 자취가 물씬 풍겨요. 그렇지만 아득히 먼 옛날 옛적 모습이 아닌, 바로 오늘 우리 곁에서 살아서 펄떡이는 이웃 숨결을 살필 만합니다.


  사진책 《남도 사람들》은 ‘그리운 옛 시골 이웃’을 잘 보여줍니다. 그무렵에 이렇게 지냈지 하는 그림을 잘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리운 그무렵’으로만 그치기 때문에, ‘오늘 이 시골에는 어떤 마을이 어떤 사람들 손길로 새롭게 흐르는가’ 하는 대목까지는 새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합니다. 2000년대에도 2010년대에도 2020년대에도 틀림없이 남도 시골마을에 깃들어 남도 시골사람으로 오순도순 어우러지는 웃음꽃하고 눈물나무가 있어요. 새마을운동 같은 ‘새마을’이 아닌, 조촐한 시골잔치와 시골일과 시골놀이를 더 바라보면서, ‘기록을 넘어서는 이야기’가 되는 사진이 나올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2016.9.25.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진비평/사진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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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길 (반양장) - 박노해 사진 에세이, 티베트에서 인디아까지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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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113



커피잔 들고 웃음짓는 이웃을 그리는 ‘새로운 노동’

― 다른 길

 박노해 사진·글

 느린걸음 펴냄, 2014.2.1. 19500원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라오스, 버마, 인디아, 티벳, 이렇게 여섯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사진으로 보여주는 《다른 길》(느린걸음,2014)을 읽습니다. 글책이 아닌 사진책이지만 나는 이 사진책을 가만히 읽습니다. 왜냐하면 사진은 ‘눈으로 훑고 지나가는 어떤 모습’이 아니라 ‘어떤 모습에 깃든 숨결과 바람과 이야기’가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인도네시아에는 자연이 길러준 것들을 거두어 채취경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약 1만 년 전 농경정착을 시작하기 전까지 인류는 수십만 년 동안 수렵채취로 살아왔다. 우리 삶에서 정말 소중한 것은 다 공짜다. 나무 열매도 산나물도 아침의 신선한 공기도 눈부신 태양도 샘물도 아름다운 자연 풍경도. (31쪽)



  사진책 《다른 길》을 빚은 박노해 님은 한동안 노동자였고, 한때 시인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박노해 님은 ‘일을 하는 사람’이고 ‘노래를 하는 사람’입니다. 노동자 시인이라는 길을 지나오면서 ‘일하는 기쁨을 노래하는 사람’으로 탈바꿈합니다. 기계처럼 똑같이 되풀이하는 하루를 쳇바퀴처럼 보내야 하는 나날이 아닌, 날마다 새롭게 삶을 바라보면서 스스로 이야기를 짓는 길을 걷는다고 할 만해요.


  박노해 님은 아시아 여러 나라를 돌면서 수많은 사람들한테서도 이와 같은 일을 느끼고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이와 같은 모습을 만납니다. 사진책 《다른 길》에 실린 ‘일하는 사람들’은 고된 몸짓이 아니에요. 쳇바퀴처럼 빙글빙글 도는 모습이 아닙니다. 날마다 똑같이 뒹굴면서 고달파야 하는 살림도 아닙니다.



마르야나(20)와 세 남매는 엄마 아빠를 따라 ‘리아르 가요’ 커피 농사를 이어가겠단다. “증조할머니가 심은 이 나무는 백 살이 넘었어요. 하얀 커피꽃이 피고 꿀벌이 날고 꽃잎이 떨어지면 빨간 커피 체리 안에 녹색 커피 생두가 반짝여요. 제 손으로 커피 체리를 딸 때마다 저 안개 너머에 지금 커피잔을 들고 미소짓는 누군가를 떠올리곤 해요.” (37쪽)



  스무 살 젊은이가 커피밭을 물려받아서 즐겁게 커피꽃을 바라보겠노라 이야기합니다. 스무 살 젊은이는 커피밭에서 ‘할머니가 낳은 어머니’가 심은 커피나무를 떠올립니다. 어쩌면 백 해 앞서 심었다는 그 커피나무는 인도네시아가 유럽 어느 나라에 식민지살이를 해야 하던 무렵 ‘슬픔하고 눈물’로 심은 나무일 수 있어요. 그러나 ‘할머니를 낳은 어머니’를 거치고 ‘할머니’를 거치며 ‘어머니’를 거치는 동안 이 커피나무 한 그루에 따사로운 사랑이 깃듭니다.


  어머니와 어머니와 어머니와 어머니, 또 아버지와 아버지와 아버지와 아버지는 커피나무를 늘 사랑으로 돌보았을 테지요. 이러한 사랑은 앞으로도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랄 테고요.



축구의 꽃은 동네축구에 있다. 펠레도 마라도나도 메시도 호날두도 박지성도 다 골목축구에서 탄생한 별들이 아닌가. (65쪽)


수확을 마친 농부 아빠가 아들과 놀아 주고 있다. “이 의자는 아이가 처음 말하던 날 만든 것이구요, 이 목나는 아이가 첫걸음마 하던 날 만든 것이구요, 오늘은 대나무를 깎아 새장을 만들어 줄 거예요.” 아빠가 아이에게 주었던 것은 ‘시간의 선물’. 사랑은, 나의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다. (69쪽)



  아이한테 놀잇감을 마련해 주자면 품을 들여야 합니다. 어버이는 ‘내 하루’를 틈틈이 쪼개고 나누어서 놀잇감을 짓는 일을 합니다. 아이는 아직 ‘어버이가 하루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 잘 몰라요. 그래서 어떤 아이는 어버이한테 ‘왜 장난감을 빨리 장만해 주지 않느냐’고 조르거나 닦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아이는 어렴풋하게나마 ‘어버이가 늘 하는 수많은 일’을 느낄 수 있어요. 어버이가 날마다 조금씩 짬을 내어 제(아이) 놀잇감을 짓는 몸짓을 알아챌 수 있어요.


  ‘어버이가 제 시간을 내어주는 선물’을 아이가 느껴요. 놀잇감 하나에서뿐 아니라, 밥 한 그릇에서도 느껴요. 옷 한 벌에서도 느끼고, 이부자리에서도 느껴요. 처마 밑 그늘에서도 평상에서도 마루에서도 마당에서도 물씬 느끼지요.



“제가 제일 닮고 싶은 사람은 울 아빠예요. 제 동생들도 절 닮고 싶다고 하면 좋겠어요. 하하.” 학교를 그만둬도 아이는 비참해하지 않는다. 공부는 학교에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느냐며 씨익, 앳된 얼굴에 맺힌 구슬땀을 닦는다. (129쪽)



  사진책 《다른 길》을 읽으면서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박노해 님은 아시아 여러 나라 아이들하고 어른들 말을 귀여겨들은 뒤 조곤조곤 옮겨적습니다. ‘커피잔을 손에 쥐고 웃음짓는 이웃’을 그리는 젊은이 말을 옮겨적고, ‘아버지를 닮고 싶은 아이’ 말을 옮겨적습니다. 아이가 자라는 결에 맞추어 새로운 놀잇감을 손수 깎아서 마련하는 어버이 말을 옮겨적어요. 꽃밭을 가꾸어서 꽃을 저잣거리로 가지고 가서 내다 파는 젊은이 말을 옮겨적고, 손수 짠 돗자리를 멧골부터 짊어지고 저잣거리로 와서 내다 파는 젊은이 말을 옮겨적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새롭게 일하는’ 이웃들을 만나서 박노해 님 스스로 삶을 새롭게 바라본다고 합니다. ‘저임금 노동’이 아니라 ‘즐거운 일’을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바라보면서, 박노해 님부터 스스로 새로운 길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꽃을 기르는 마 모에 쉐(21)가 꽃 한 송이를 건넨다. “쭌묘에서 꽃밭을 가꾸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아름다운 꽃들은 제 손에 향기를 남기지요. 꽃을 든 사람들의 미소는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그리고 부처님께도 가장 멋진 선물이 될 거예요.” (213쪽)



  너랑 내가 같은 길을 걷지 않으니 너랑 나는 ‘다른 길’을 걷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시골에서 살고 너는 도시에서 살기에 너랑 나는 ‘다른 길’을 걷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너는 연봉 높은 일자리를 얻고 나는 시골에서 흙을 만지면서 살기에 너랑 나는 ‘다른 길’을 걷는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저마다 새로운 길을 걷는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나 파키스탄에도 커다란 도시가 있고, 공무원이 있으며, 부자가 있어요. 그리고 한국이나 일본에도 시골지기가 있고, 수수한 살림을 조촐하게 가꾸는 작은 사람들이 있어요. 더 많은 돈을 벌지 못해서 안달하는 사람도 있으나, 아주 적은 돈을 벌면서도 늘 웃음짓는 살림으로 기쁜 사람도 있어요.


  어떤 길이 길다운 길일까요? 더 좋은 길이나 더 나쁜 길이 있을까요? 모든 사람이 똑같은 길을 가야 할까요? 우리는 서로서로 다른 길을 가도 되지 않을까요? 아니, 우리는 저마다 제 나름대로 ‘새로운 길’을 갈고닦으면서 스스로 즐거울 이야기를 지을 수 있으면 아름다운 살림이 될 만하지 않을까요?


  구름을 등에 지고 해님을 마주보며 바람을 맑게 마시는 아시아 여러 나라 이웃들을 사진으로 마주합니다. 이 사진책이 아니더라도 이 지구별 곳곳에는 수수하면서 아름다운 살림을 가꾸는 이웃이 즐겁게 웃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곁에도 수수하면서 정갈한 삶을 짓는 동무가 기쁘게 노래하리라 생각해요.


  길을 생각합니다. 다른 길, 새로운 길, 즐거운 길, 기쁜 길, 웃음짓는 길, 노래하는 길, 꿈꾸는 길, 아름다운 길, 무지개 같은 길, 바람 같은 길, 푸른 길, 파란 길, 하얀 길, 금빛으로 출렁이는 가을논 같은 길, 숲내음이 물씬 흐르는 상냥한 산들바람이 부는 길, 수많은 길을 헤아려 봅니다. 우리가 선 이 길은 어떤 길인가요? 2016.8.9.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진책 읽는 즐거움)


* 이 글에 붙인 사진은 '느린걸음 출판사'에서 고맙게 보내 주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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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징소리 - 이규철 사진집 눈빛사진가선 25
이규철 지음 / 눈빛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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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226



마음을 씻는 신명나는 소리를 나누는 잔치

― 굿-징소리

 이규철 사진

 눈빛 펴냄, 2016.3.13. 12000원



  나는 굿거리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학교에서는 ‘굿거리장단’을 가르쳤으나, 굿판을 본 적도 없기 때문에 굿판에서 흐른다고 하는 굿거리장단을 알 길이 없습니다. 어릴 적 학교에서는 교과서로만 우리 옛 가락을 가르쳤습니다. 요즈음은 학교에서 동아리가 생기면서 북이나 장구나 징이나 꽹과리를 잡아 볼 수 있는 아이들이 퍽 늘었습니다만, 유신이나 새마을운동이 물결치던 무렵에는 한국사람이 한국노래를 한국가락으로 즐길 수 없었다고 할 만합니다.


  더 멀리 헤아린다면 일제강점기에도 한국사람은 한국노래를 한국가락으로 신명나게 즐기지 못하기 일쑤였습니다. 군홧발과 총칼을 앞세운 제국주의는 이 땅을 식민지로 억눌렀거든요. 신명나는 가락도 춤도 노래도 모두 움츠러들어야 했어요. 함께 일하고 함께 쉬다가 함께 놀고 함께 춤추면서 한껏 흐드러지던 품앗이하고 두레하고 마당놀이가 어느새 자취를 감추어야 했어요.


  어느 모로 본다면 한국사람으로 살면서 한국이라는 삶터에 걸맞는 살림을 제대로 누리기 어렵다고까지 할 만하지 싶습니다. 한겨레 옷이라는 ‘한복’은 설이나 한가위 같은 아주 큰 명절 아니면 입지 않는 옷이에요. 여느 때에 한복을 입고 일터에 다니는 공무원은 찾아볼 길이 없다 할 수 있어요. 시장도 군수도 국회의원도 모두 양복을 입을 뿐이에요. 교사도 공장 일꾼도 이와 같지요. 한복이든 ‘생활한복’이든 걸치면 ‘뭔가 수상쩍은 사람’으로 여기는 흐름마저 있기도 했습니다. 펑퍼짐하며 느긋한 옷을 좋아해서 이런 옷을 입어도 ‘뭔가 다른 사람’이라고 여기는 눈길이 있기도 합니다.


  요즈음은 판소리나 풍물을 이럭저럭 배우거나 가르치는 자리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굿은 배우거나 가르치기도 어렵지만, 여느 마을에서 여느 사람이 가까이에서 누리거나 마주하거나 즐기기에는 까마득해져 버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나고 자란 인천은 바닷마을이었기에 어릴 적에 조금만 눈을 돌려도 굿마당에 가 볼 수 있었습니다. 황해도에서 벌이던 굿도 인천에서 곧잘 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았어요. 오늘 내가 아이들하고 새롭게 지내는 삶터인 전남 고흥에도 굿마당이 있습니다. 다만 우리 살림집이 있는 마을하고 굿마당을 벌이는 마을이 꽤 멀어서 군내버스를 타고는 찾아갈 길이 없습니다.



나는 도시에서 자라서 굿을 볼 수 없었다. 1993년, 우연한 기회에 만난 우리의 민간신앙 굿은 감동과 경이로움이었다. 몸으로 느껴지는 징소리와 구구절절 이어지는 사설, 무당의 행위에 울고 웃는 신명과 치유의 시간이었다. (3쪽)



  다큐사진을 찍는 이규철 님이 선보인 사진책 《굿-징소리》(눈빛,2016)를 읽습니다. 이규철 님은 도시내기로서 다큐사진을 찍는다고 하는데, 여느 도시내기로서는 이녁도 굿거리이든 굿마당이든 굿판이든 마주할 일이 거의 없었으리라 느낍니다. 아니, 여느 사람들 여느 삶자리하고는 아주 멀리 떨어진 굿이라는 살림(문화)이라고 해야지 싶습니다.


  굿은 먼 옛날부터 언제나 여느 삶자리에서 여느 사람하고 가까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굿이 여느 삶자리나 여느 사람하고 멀어진 지는 얼마 안 됩니다. 아주 짧은 사이에 굿거리도 굿마당도 굿판도 여느 이야기에서 끝도 없이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오늘날에는 ‘신나는 놀이판’이 여러모로 많이 생겼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는 ‘마음을 달랠 만한 씻음거리’도 여러모로 많이 생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굿거리가 아니어도 텔레비전이나 노래방에서 흐르는 온갖 노래에 맞추어 몸을 흔들거나 소리를 지를 수 있어요. 굿마당이 아니어도 춤추고 술을 마시며 놀 만한 자리는 참으로 많습니다. 굿판이 아니어도 사람들은 자주 모이고 자주 어울릴 수 있습니다.


  사진책 《굿-징소리》는 굿을 처음으로 마주한 ‘오늘 우리(현대 도시 문명을 누리는 사람)’가 굿에서 무엇을 보거나 느낄 만한가 하는 대목을 사진으로 풀어낸다고 봅니다. 굿을 이끄는 사람들이 조용히 흙으로 돌아가면 아스라하거나 어렴풋하게나마 떠올리기도 어려울 굿마당 이야기를 사진으로 아로새긴다고 봅니다.


  고요한 손길로 정갈하게 차린 먹을거리를 상에 올립니다. 여느 때에 여느 사람이 여느 눈으로 볼 수 없는 어떤 님(이를테면 성주님이나 조왕님 같은)을 이 자리로 부릅니다. 삶과 죽음 사이를 잇는 다리를 놓습니다. 삶자리에서 사는 사람과 죽음자리로 떠난 사람이 어느 다리를 사이에 두고서 새롭게 만납니다. 이동안 굿이 한마당으로 펼쳐지고, 가락이 흐르고 춤사위가 흐드러지면서 삶자리와 죽음자리 사이에서 따사로우면서 슬픈, 구성지면서도 애닯은, 즐거우면서도 설운 이야기가 태어납니다.


  사진가 이규철 님은 이러한 굿판을 ‘징소리’에 빗대어 사진을 엮습니다. 징을 드문드문 치면서 퍼지는, 때로는 빠르게 울리면서 퍼지는, 깊고 길며 묵직한 소리가 가슴을 똑같이 깊고 길며 묵직하고 건드리는 삶노래를 사진으로 한 장씩 담아서 엮습니다.


  마음을 씻는 신명나는 소리를 나누는 잔치를 가만히 떠올립니다. 마음씻이, 신명, 나눔, 잔치 같은 말마디를 하나하나 되새깁니다. 굿마당은 굿잔치도 되다가 굿놀이도 되곤 했다는데, 한마당이요 한잔치이며 한놀이로 사람들 곁에서 눈물과 웃음을 빚어내던 고즈넉한 소릿결이 묻어나는 사진을 새삼스레 바라봅니다. 2016.6.25.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진책 읽는 즐거움/사진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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