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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Human) 14 최민식 사진집 휴먼(Human) 14
최민식 지음 / 눈빛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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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백사진도 아름답다
 [찾아 읽는 사진책 8] 최민식, 《HUMAN·14》(눈빛,2010)



 쉰두 해째 사진 한길을 걷는 최민식 님 새 사진책 《HUMAN·14》을 장만해서 읽습니다. 쉰두 해에 걸쳐 사진 한길을 걷기란 만만하지 않을 뿐더러 수월하지 않습니다. 쉰두 해 내내 사진 한길을 걸어온 발자국이란 얼마나 길디길으며 굵디굵을까요.

 잠자리에서 사진책을 펼칩니다. 이불을 무릎에 덮고 옆에 나란히 앉은 아이가 흘끔 사진책을 돌아봅니다. 사진책에 ‘어린이’ 모습 담은 사진이 나오니 가까이 다가오며 손가락으로 가리킵니다. 아이는 이내 책을 뺏아 듭니다. 조그마한 손으로 제법 큰 책을 휘릭휘릭 넘깁니다. 아이한테 언니나 동무나 동생 되는 모습이 나오면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어떤 모습으로 있는가를 아이가 아는 대로 말합니다.

 아이가 여러 번 보고 나서 사진책을 받아듭니다. 처음부터 다시 차근차근 넘깁니다. 첫머리 즈음 2010년 부산 골목동네를 담은 사진이 새삼스럽습니다. 2010년이라는 숫자를 옆에 달아 놓았으니 2010년 모습인지 알 만할 뿐, 숫자를 달아 놓지 않는다면 1957년으로 볼 수 있고, 1977년이나 1967년이나 1987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빛살을 잘 살렸고 빛느낌이 고이 내려앉은 사진이라고 느낍니다. 이 사진들을 흑백으로 곱게 여민 모습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한편, 이 사진들에 빛깔을 넣으면 어떠한 아름다움일까 궁금합니다. 1957년이나 1967년이나 1977년에는 빛깔 담은 사진을 찍기 어려웠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1987년이나 1997년이나 2007년이라면, 또 2010년이라면 빛깔 넣은 사진을 일구어 볼 만하겠지요. 또한, 2010년 오늘 빛깔 넣은 사진으로 담고, 다가올 2020년과 2030년에도 빛깔 있는 사진으로 담는다면 어떠한 멋과 맛일는지 궁금합니다. 흑백으로 담은 2010년 부산 골목동네 모습은 ‘흑백이라는 빛느낌’하고 맞물리며 마치 2010년이 아니라는 느낌이요, 지난 쉰두 해에 걸쳐 언제나 똑같은 삶터라는 느낌입니다.


.. 다큐멘터리 사진은 인간의 삶을 포착하는 작업이며, 대중에게 진정한 삶의 경험을 전달합니다. 저는 사진에서 인간적인 접근과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오랜 사진작업을 통해 배웠습니다. 사진은 제게 ‘삶이 무엇이냐’는 의문에 대한 답을 제시함과 동시에 인생 전체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  (머리말)


 사진쟁이 최민식 님은 지난 쉰두 해에 걸쳐 다 다른 사람들을 다 다른 삶자리에서 다 다른 모습으로 담아 왔습니다. 다 다른 사람들 다 다른 삶은 다 다른 사진마다 돋보입니다. 그러나 사진에 담긴 사람들은 다 다르지만, 다 다른 사람을 찍은 최민식 님은 늘 같은 마음과 매무새입니다. ‘삶이 무엇이냐’와 ‘사람은 무엇이냐’를 생각하는 최민식 님 마음과 매무새를 고스란히 담은 《HUMAN·14》입니다. 《HUMAN·14》뿐 아니라 《HUMAN·1》도 최민식 님 마음과 매무새를 고스란히 담습니다. 《HUMAN·1》 이야기는 《HUMAN·14》 이야기하고 맞물립니다. 《HUMAN·14》 모양새는 《HUMAN·14》에서도 곱게 이어집니다. 《HUMAN·1》을 이루는 넋은 《HUMAN·14》를 이루는 넋하고 같습니다.

 한결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한결같은 눈매로 바라보아 사진으로 옮깁니다.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한결같이 살고, 가난하면서도 사랑스러우며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난하면서도 사랑스러우며 즐거운 모습대로 한결같이 사진으로 옮깁니다.

 다큐멘터리 사진이란 최민식 님 말마따나 “사람 삶을 잡아채어 담아 놓는 사진”입니다. “살가이 다가서며 따사롭게 껴안는 사진”일 때에 비로소 다큐멘터리 사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사진 하나로 사람들한테 따스함과 아름다움과 슬픔과 고마움을 이야기 한 자락으로 들려줍니다.

 그런데, 가난하면서 가난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한테는 다큐멘터리 사진이란 부질없습니다. 가멸찬 살림이면서 가멸찬 살림을 넉넉히 나누지 못하는 사람한테도 다큐멘터리 사진이란 덧없습니다. 스스로 사람다이 살아가는 사람한테 바야흐로 따사로우며 너그러이 스며드는 다큐멘터리 사진입니다. 내 삶을 단단히 붙잡거나 여미는 사진쟁이들이 붙잡는 다큐멘터리 사진이면서, 내 삶을 튼튼히 가다듬거나 다스리는 살림꾼들이 즐기는 다큐멘터리 사진입니다. 여느 대중은 다큐멘터리 사진을 알아볼 수 없습니다.


.. 제 삶은 이 사진 컬렉션을 통해 재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저의 열정, 사상, 우리 삶의 비판적인 관찰을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사진은 농사를 짓는 것과 유사합니다. 새싹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돋아나지 않듯이 사진도 갑작스레 창조되는 것이 아닙니다. 농부가 땀과 고된 노동 끝에 낟알을 수확하듯이 사진도 사진가의 땀과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  (머리말)


 최민식 님은 ‘사람들 얼굴을 담은 사진’으로, 이 얼굴마다 깃든 다 다른 삶결을 보여줍니다. ‘사람들 모습을 담은 사진’으로, 이 모습에 밴 다 다른 삶무늬를 알려줍니다. 어디 먼 나라 사람들 얼굴이 아닙니다. 어느 딴 나라 사람들 모습이 아닙니다. 사진을 찍는 최민식 님하고 이웃하는 사람들 삶이 드러나는 얼굴입니다. 사진기를 쥔 최민식 님 둘레에서 올망졸망 부대끼는 사람들 몸짓이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최민식 님은 스스로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는다고 말씀하지만, 깊이 따지고 보면 최민식 님 사진은 딱히 다큐멘터리 사진이라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사진’이라 하면 되고, 사진 하나로 ‘삶읽기’를 한다고 말하면 됩니다.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내 이웃 삶 모습에서 느끼고, 내가 살아낸 자국이 배인 얼굴 모습을 내 이웃 얼굴 모습에서 깨닫는 셈이니까요.

 다큐멘터리 사진이기에 더 대단하거나 훌륭하거나 놀랍거나 좋거나 거룩한 사진이 아닙니다. ‘사진’이기 때문에 더 빼어나거나 아름답거나 멋지거나 괜찮은 문화나 예술이 아닙니다. 사진은 사진 그대로 좋고, 삶은 삶 그대로 즐겁습니다. 가난하다고 더 나은 삶이 아니요, 가멸차다고 더 못난 삶이 아닙니다. 사진 하나 즐기는 마음하고 농사짓기 즐기는 마음은 곱게 맞닿습니다. 사진 하나 나누는 마음하고 곡식 한 알 나누는 마음은 살뜰히 이어집니다.

 새싹은 어디에서나 스스로 돋습니다. 사진 또한 누구나 스스로 얻습니다. 풀싹은 어느 곳에서나 스스로 뿌리를 내립니다. 사진쟁이 또한 누구나 스스로 깨우쳐서 사진밭을 이룩합니다.

 농사꾼이 논밭에서 씨앗을 심거나 뿌려 곡식을 일구기도 하지만, 갖은 풀과 나무는 처음부터 스스로 씨앗을 내어 흙으로 녹아듭니다. 이 씨앗은 스스로 온힘을 내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 줄기를 올리려고 애씁니다. 사진쟁이들 누구나 사진을 누구한테서 배운다 할 수 있지만, 누가 가르쳐 준대서 깨닫거나 깨우치는 사진이 아닙니다. 스스로 온힘을 짜내어 뿌리를 내리려 할 때에 오랜 나날에 걸쳐 차츰차츰 이룩하는 사진이에요.

 최민식 님은 최민식 님이 살아온 대로 사람들과 사귀며 사진을 찍습니다. 최민식 님은 최민식 님이 살아가는 대로 사진밭을 일구면서 사진 이야기를 내놓습니다. 삶 이야기가 사진 이야기로 마무리되고, 삶 무늬가 사진 무늬로 아로새겨집니다. 최민식 님이 사진으로 담은 사람들 얼굴이나 모습이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으면, 최민식 님이 하루하루 꾸리는 삶이 아름답다고 느낄 만하다는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HUMAN·14》을 읽으며 어느 모로 보면 아쉽다 할 만한 사진이 있을 때에는 최민식 님 삶 한자락이 어느 모로 보면 아쉽다 할 만하다는 소리라고 봅니다.

 다큐멘터리 사진을 하는 분들이 흑백사진을 즐기는 까닭은 여럿일 텐데, 흑백사진으로 삶을 담을 때에는 눈길이 흩어지지 않습니다. 이 구석 저 구석 찬찬히 차분히 바라보도록 이끕니다. 빛깔사진을 찍을 때에는 더욱 마음을 쏟지 않으면 눈길이 이리저리 흩어집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나 사진을 보는 사람이나 속알을 살피지 못하고 맙니다. 그러나, 흑백사진이든 빛깔사진이든 때와 곳과 날씨와 철과 삶에 알맞게 다룰 수 있다면, 어느 사진으로 다큐멘터리를 엮든 사람 살아가는 내음을 아리땁게 엮어 냅니다. 빛깔사진이기 때문에 1957년과 1977년과 1997년이 서로 다른 삶자락을 읽도록 이끌지는 않습니다. 흑백사진으로도 얼마든지 다 다른 나날을 읽도록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 스스로 이 사진은 언제 적 누구 이야기를 풀어낸 사진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갈 때에는 사진 한 장으로 삶과 나날과 누리와 넋을 읽도록 이끕니다.

 흑백사진도 아름답고, 빛깔사진도 아름답습니다. 다만, 다큐멘터리 사진을 하는 분 가운데에는 빛깔사진 또한 아름다운 다큐멘터리 사진임을 보여주는 분은 좀처럼 태어나지 못합니다. 아름다운 빛깔 다큐멘터리 사진으로는 도무지 다가서지 못합니다. 삶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진을 하는 분 가운데 흑백사진으로도 아름답겠지만 빛깔사진으로도 아름다운 삶을 나누어 주는 분은 무척 드뭅니다. 빛깔 있는 삶을 빛깔 있는 이야기에 따라 빛깔 있는 사진으로 일구기란 너무 힘든 노릇인지 모릅니다.

 이이한테는 이 빛깔이 있고, 저이한테는 저 빛깔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삶을 사진으로 영글어 놓고자 할 때에는 빛깔사진을 함께 찍을밖에 없습니다. 삶 사진을 일구려 하면서 흑백사진으로만 이야기를 엮는다면 사진 한 장에는 내 이야기 한 자락만 깊이 배어듭니다. 최민식 님 목소리를 듣는 《HUMAN·14》도 즐겁지만, 《HUMAN·14》에 담긴 사진에 나오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목소리도 조곤조곤 즐겁게 듣고 싶습니다. (4343.11.18.나무.ㅎㄲㅅㄱ)


― HUMAN·14 (최민식 사진,눈빛 펴냄,2010.10.27./4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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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홀려 필름에 미쳐
김영갑 / 하날오름 / 1996년 9월
평점 :
절판


 

이번에 제주마실을 하며 '시중 책방에는 없는' 김영갑 님 사진책 하나를 장만했다. 예전에 눈빛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다시 내놓은 듯하다. 이 책 이야기를 올리려다가, 먼저 지난해에 적었던 글을 좀 크게 손질해서 걸쳐 놓는다. 몇 해 앞서 김영갑 님 사진책 이야기를 다룬 글 또한 여러모로 손질해서 함께 걸치면, 내 나름대로 김영갑 님 사진비평을 갈무리한 셈이 되리라 본다. 


 이 책 하나 102 - 삶이 되지 못한 사진이라면 돈벌이나 겉멋일 뿐
 : 김영갑, 《섬에 홀려 필름에 미쳐》



- 책이름 : 섬에 홀려 필름에 미쳐
- 글 : 김영갑
- 펴낸곳 : 하날오름 (1996.9.10.)
- 1996년에 처음 나올 때에는 김영갑 님 글만 모아서 묶었습니다. 2004년에 ‘휴먼&북스’에서 사진을 넣어 새판으로 다시 펴냈고, 2007년에는 ‘김영갑 2주기 기림’판으로 새로 펴냅니다. 저는 이 가운데 1996년에 처음 나온 판으로 만나서 읽었습니다.


 (1) 만화에서 느끼는 사진


 준코 카루베라는 일본 만화쟁이가 그린 《당신의 손이 속삭일 때》 열 권이 1999년부터 2000년까지 우리 말로 옮겨졌습니다. 이듬해 2001년에 뒷이야기 《신ㆍ엄마손이 속삭일 때》 열두 권이 우리 말로 옮겨졌습니다. 《당신의 손이 속삭일 때》가 나올 무렵에는 얼른 알아채고 열 권을 모두 장만해서 기쁘게 읽었는데, 뒷이야기까지 옮겨졌다는 소식을 듣지 못해 그만 놓치고 말았으며, 《신ㆍ엄마손이 속삭일 때》는 금세 판이 끊어졌습니다.

 이리하여, 헌책방에 이 만화가 들어오기를 손꼽아 기다린 끝에 지난달 가까스로 열두 권을 장만했습니다. 마침 골목마실을 하며 지나는 길에 본 ‘문닫은 대여점’에서 값싸게 내놓은 책꾸러미 가운데 이 녀석이 있었어요. 이 만화책을 갖추어 놓은 대여점이 있었구나 싶어 놀라면서 즐겁게 장만했는데, 열두 권에 이르는 만화책 《신ㆍ엄마손이 속삭일 때》를 읽는 동안, ‘이 만화는 대여점에서 거의 안 읽힌 듯하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어느 책이든 사람들이 찾아서 읽으면 읽은 자국이 남습니다만, 이 만화책 열두 권은 아주 깨끗했습니다. 2001년에 나온 만화임에도 먼지가 그리 내려앉지 않았고요.

 참으로 오래도록 기다린 끝에 만난 만큼 한 번 보고 그칠 수 없어 거듭 펼치고 다시 넘기고 합니다. 7권을 보면, ‘소리를 듣지 못하는 엄마’가 초등학생 딸아이를 앞에 놓고 “찌주루(딸아이 이름), 그 착한 마음은 어디에서 가져온 거니? 엄마는 뽐내고 있었단다. 찌주루의 모든 걸 엄마가 낳았다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 찌주루가 가지고 와 준 거야(25∼26쪽).” 하고 생각합니다. 꾀병을 부리던 딸아이가 참말로 몸이 아프지만 어머니를 걱정시키지 않으려고 말 않으며 꾹 참는데, 아이 어머니는 “숨겨도 소용없어. 엄마는 다 알고 있는걸. 찌주루의 일은 전부. 왜냐면 찌주루를 너무너무 사랑하니까(82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 “며칠 동안 머물며 찍은 사진하고, 몇 년 기다려 찍은 사진하고는 다르겠죠. 취미로 사진하는 게 아니거든요.” … 한 장이라도 감동적인 사진을 찍어야만 한다는 집념으로 집을 떠나 떠돌아다니는 동안, 정작 부모님의 사진은 한 장도 찍지 못했다 … 많은 이들을 사진으로 감동시킬 수 있으면 글로도 감동시킬 수 있다 ..  (13, 127, 204쪽)


 더없이 착하디착한 만화인 《당신의 손이 속삭일 때》와 《신ㆍ엄마손이 속삭일 때》에는 마음씨 나쁜 사람은 나오지 않습니다. 만화에 나오는 사람들 모습은 엇비슷합니다. 어쩌면 모두 똑같다 하여도 틀리지 않습니다. 때때로 심통을 부린다 할지라도 어느새 풀어지거나 누그러뜨립니다. 아프거나 괴롭게 하는 이야기란 나오지 않습니다. 슬프거나 힘겹게 하는 이야기 또한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만화책을 넘기는 내내 눈물을 흘립니다. 가슴속 깊은 자리까지 스며들면서 콕콕 찌르는 뭉클함이 있기에 눈물 없이 만화를 볼 수 없습니다.

 다 읽고 덮으면서도 뭉클뭉클함이 고이 남아 책등을 살며시 쓰다듬습니다. 이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하면서 사진기를 들고 골목마실을 나가면, 눈이 한결 맑아지고 손길은 더욱 부드러워진다고 느낍니다. 착한 만화를 보면서 제 마음이 착해지는 가운데 제가 담아내려는 사진 또한 착해진다고 할까요.

 저 스스로 좋아하는 이야기는 착한 이야기이고, 착한 사람들 나오는 만화에 더욱 눈길이 쏠리는 한편, 저 스스로 즐기면서 이웃하고 나누고픈 사진이란 바로 착한 사람들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골목동네와 헌책방동네라고 할까요. 제가 좋아하는 착한 이야기와 착한 그림과 착한 사진처럼, 저 스스로 착한 사람이 되고 싶으며, 제 삶터를 착한 마을로 일구는 일에 손을 거들고 싶다고 할까요.


..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의리나 배신, 명예나 권력, 돈, 이 모두는 나와 무관하다. 나의 삶은 사람들의 관심 대상에서 제외됐다. 설명될 수도 없는 사생활,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삶, 움막에 틀어박혀 허구한 날 알을 품은 채 하품하는 일상들. 일 년 내내 혼자 지내며 흘린 눈물도, 웃음도 사람들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오랜 세월 열과 성으로 품었던 알에서 탄생된 생명인데도 나의 사진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사람들은 극적인 드라마를 원한다. 눈물겹고 재미있는 감동의 드라마만을 원한다. 사랑하고 헤어지고, 헤어지고 만나는 행복한 드라마를 원한다. 성공했다 실패하고, 다시 오뚜기처럼 일어나 성공하는 영광의 드라마를 원한다. 나의 삶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드라마는 아니다. 내가 껴안은 드라마는 처음부터 감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  (45쪽)


 거의 모든 사진기자와 사진작가가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찍는 사진을 보면 어둡기 짝이 없습니다. 어수선하기 그지없습니다. 때로는 책을 몹시 거룩하게 드높이는 사진이 보입니다. 그러다가 아주 천덕꾸러기처럼 다루고, 옛추억에 잠기게끔 하려는 모양새로 다룹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담아내지 못합니다. 오늘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를 알아채지 못합니다. 오늘과 글피와 어제가 어떻게 달랐으며, 책이 살아온 오늘과 어제에다가 글피는 또 어떻게 다를는지를 헤아리고자 하지 않습니다.

 거의 모든 사진기자와 사진작가가 골목마실을 하면서 찍는 사진은 헌책방을 찍는 사진하고 어슷비슷합니다. 꼭 닮습니다. 골목동네 삶터를 꾸밈없이 바라보지 않습니다. 골목동네 사람들 살아가는 매무새하고 어깨를 나란히 하지 않습니다. 늘 구경꾼 사진이요, 노상 스침 사진입니다. 살 속으로 파고들지 못할 뿐더러, 골목동네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자 살붙이로서 사진을 찍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진마다 으레 ‘다큐멘터리’라는 이름을 붙이고들 있어요.

 생각해 보면, 모두들 제 깜냥껏 바라보는 셈입니다. 당신들 살아온 당신들 깜냥껏 마주하는 셈입니다. 제 깜냥껏 좋은 책을 알아보면서 고를 뿐입니다. 당신들 눈이 더 밝다면 당신들 손길로 더 많은 책이 좋음을 알아차리고 당신들 스스로 더 많이 읽고 장만하는 헌책방마실이 될 테지요. 내 눈과 생각이 한결 밝다면 골목마실을 하면서 골목사람 삶자락을 더욱 깊숙이 껴안으면서 녹아드는 가운데 사진을 하나하나 차곡차곡 담아낼 테지요.

 무엇보다도, 헌책방이나 골목길에서 따로 사진 한 장 찍지 않더라도, 두 곳에서 우리한테 나누어 주려는 느낌이 무엇인지를 깨달으면서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리라 봅니다. 사진이란 사진기 단추를 눌러 찍어도 좋지만, 사진기조차 없어도 즐거우며, 사진 한 장 안 찍어도 아름답습니다. 사진기를 들고 부지런히 단추질을 해도 즐겁지만, 사진기를 들고 있으면서도 어깨에만 얌전히 걸치고 있어도 재미있습니다. 사진에 우리 삶을 담는다 하면, 필름에 앉혀 종이로 찍어내는 사진이 되지 않고, 눈을 거쳐 마음에 아로새기면서 언제나 ‘그림을 그리듯 떠올리는 우리 발자취’로 간직한다고 느낍니다.


.. 자연을 의지해 살아가는 이들은 자연의 변화에 민감하면서도 적절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 일기예보는 참고나 할 뿐 그들 방식대로 하늘을 보고, 바람 부는 방향과 강약 그리고 느낌을, 바다의 물결이나 색감을 보고 내일을 준비한다 … 자연을 대상으로 작업을 하는 사진가들은 자연의 변화를 읽지 않고는 좋은 사진을 기대할 수가 없다. 대가가 사용했던 명품의 카메라를 가졌다고 해도, 사진가가 원하는 상황을 맞이하지 못하면 좋은 사진을 기대할 수 없다 … 내게 많은 영향을 미친 사진가들과는 시대도, 환경도, 가치관도 다른데 그들을 흉내내고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부끄럽고 고통스러웠다 … 누구도 나에게 사진에 대해 가르침을 주지 않았다.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 ..  (169∼170, 190∼191쪽)


 저는 김수정 님 만화책을 해마다 한 번씩 통째로 되읽습니다. 해마다 되읽으면서 딱히 어떤 뜻이나 꿈이나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다만, 가만히 돌아본다면 이와 비슷한 마음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느 사람들 수수한 삶을 올망졸망 담아낸 결이 그지없이 곱다고 느끼니, 스스럼없이 되읽는구나 싶어요.

 어릴 때부터 김수정 님 만화는 잡지에 이어실리는 대로 다 보았습니다. 학교(초중고등학교)를 마친 다음에는 낱권책을 장만해 놓고 거듭 봅니다. 김수정 님 만화를 보면, 김수정 님이 이 만화를 그렸던 때인 1980년대 사람들 삶자락이 고스란히 담깁니다. 단출한 줄이 이어지며 이루어진 만화이면서, 구석구석 꼼꼼하게 우리 동네 골목이 살아숨쉬고 이웃 동네 골목이 펄떡펄떡 뜁니다.

 무어라 대단하다 싶은 이야기가 없는데 아름답습니다. 어떤 이름난 사람이 나오지 않으며, 힘센 영웅 하나 나오지 않지만 어여쁩니다. 훌륭한 사람들이라든지 똑똑한 사람 하나 없는 김수정 님 만화인데, 아기자기하며 신납니다.


.. 어둠에 묻힌 정원은 어두운 대로 좋고, 달빛에 드러나는 정원은 그대로 좋다. 비가 내리면 내리는 대로, 눈이나 안개에 묻히면 묻히는 대로, 나를 매혹시킨다 … 사진가들 중에 사진의 우연성에 필요 이상 과대포장을 하려 한다. 사진의 미학 중에서 우연성이 사진의 전부인 양 착각한다 … 마라도는 일 년에 십만 명 정도 관광객이 다녀간다. 그 중에 사진가들도 많다. 이 사람 저 사람 카메라 들이대다 보니 주민들은 카메라만 보면 고개를 돌린다 … 현실을 상대하여 작업하지만 사진가의 마음에 여과된 것이다. 사진가가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 사진은 사뭇 다르다. 사진 속의 현실은 사진가의 마음에서 여과된 현실이지, 있는 그대로 복사된 현실이 아니기에 사진이 예술일 수가 있다 … 감동을 주는 사진은 우연히 만나 촬영할 수도 있지만 철저한 준비 없이는 불가능하다 … 잔재주를 피워 쉽게 작업을 마무리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 사진을 기대할 수는 없다 ..  (57, 180, 182, 198쪽)


 오늘날 만화를 보면 ‘배경 잘 그려 주는 도움 만화쟁이’를 꽤 많이 부립니다. 거의 사진을 옮겨놓았다 해도 틀리지 않을 만큼 빈틈이 없는 그림을 꽉꽉 눌러 담습니다. 그러나 그닥 싱그럽지 않아요. 잘 그리기는 솜씨있게 잘 그렸지만 아무런 느낌이 없습니다. 배경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맛이 없고, 배경을 가만히 가슴에 아로새길 만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만화를 본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잘 그리기만 한 배경 그림’이요 ‘이쁘장해 보이도록 그린 만화 작품’만 넘친다고 느낍니다. 다시 보고 또 보며 지난번에는 못 본 모습이 곳곳에 나타나는 기쁨을 찾아보기 어려운 오늘날 만화 작품들이에요. 주인공과 줄거리와 배경까지 골고루 들여다보고픈 마음이 들도록 하는 작품이란 나라안에서 좀처럼 태어나지 않습니다. ‘그냥 사진 찾아보면 되지?’라든지 ‘내가 몸소 거기에 가면 되지?’ 같은 마음만 듭니다. 어쩔 수 없이 채우려 하는 배경이 되었다고 할까요. 많이 팔릴 생각에 매인 만화 작품이라고 할까요. 만화를 즐기는 사람이 ‘만화를 왜 즐기는가’를 헤아리지 않으면서 기술자가 되어 버렸다고 할까요.

 오늘날 한국땅 사진쟁이가 퍽 많이 늘었으나, 사진쟁이 사진 작품을 볼 때면 한국땅 만화쟁이 만화 작품을 볼 때하고 매한가지입니다. 지루합니다. 따분합니다. 왜 이렇게 스스로 대단해 보이려는 작품에 얽매이는지 모르겠습니다. 모두들 사진‘작가’라는 제길을 걷지 못합니다. 사진‘기술자’다운 길에 옭매입니다. ‘찍는 솜씨’는 빼어난데, ‘찍는 마음’은 하나도 안 느껴집니다. 사진을 찍기 앞서 삶을 일굴 노릇이고, 사진을 빚기 앞서 사랑을 할 노릇이며, 사진을 내놓기 앞서 믿음을 나눌 노릇입니다.

 사랑 없이 작품만 그럴싸하게 보인대서 ‘사진’이라 할 만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랑 없이 작품만 그럴듯하게 보인대서 ‘만화’라 한다거나 ‘문학’이라 한다거나 ‘노래’라 한다거나 ‘춤’이라 한다거나 ‘예술’이라 한다면 덧없는 몸짓이라고 여깁니다. 사랑 없이 내미는 손길이란 얼마나 차가운가요. 사랑 없이 돈 몇 푼 내놓는 손길이란 얼마나 메마른가요. 사랑 없이 사진기 단추를 누르는 사람은 모두 슬픕니다. 사랑 없이 붓질을 하는 사람은 다들 딱합니다. 사랑이 있으면 사진기 단추는 안 눌러도 되고, 사랑이 넘치는 붓이나 연필은 안 들어도 됩니다.


 (2) 책에서 느끼는 사진


 아침에 골목마실을 다녀옵니다. 요즈음은 일산과 인천을 오가느라 몸이 고단하여 골목마실을 제대로 못 다니는데, 도서관 문을 열어 놓는 금·토·일 사흘에 걸쳐 아침저녁으로 틈을 쪼개어 사진마실을 나갑니다.

 오늘은 자전거를 타고 용현동이나 학익동으로 나가 보려고 했다가, 그만 도원동과 선화동에서 붙잡힙니다. 도원동과 선화동 골목길 곳곳에 피어나는 꽃과 나무가 몹시 싱그럽고 좋아, 더는 멀리 나아가지 못하고 맙니다. 바로 이곳에서 이 고운 모습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면서 사진 하나로 옮겨내고 싶습니다.

 다른 때에도 으레 이와 같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한 시간쯤 달려 우리 골목동네에서 퍽 먼 골목동네를 만나고 싶은데, 언제나 얼마 못 달립니다. 아예 눈을 감듯 자전거를 씽씽 달려야 비로소 다른 동네를 만납니다. 그런데, 씽씽 달리는 자전거는 저부터 좋아하지 않아요. 느긋하게 달리는 자전거이고 싶습니다. 나긋나긋 한들한들 걷고 싶은 제 두 다리입니다. 제 삶자리인 골목동네이든 이웃 삶자리인 이웃 골목동네이든 살짝살짝 스치듯 지나가며 빨리빨리 더 많은 사진을 더 대단하게 담는 일을 하고프지 않습니다. 그저 그대로 그곳 결을 보듬으면서 사진을 즐기고 싶어요. 사진을 즐기기 앞서 동네를 즐기며, 골목꽃을 즐깁니다. 사진으로 옮기기 앞서 골목동네 빨래 싱그러운 빛깔을 듬뿍 느낍니다. 어제도 찍고 그제도 찍었어도 그예 지나치지 못하고 다시금 찍습니다. 어제는 어제 하루 새삼스러운 빛깔과 날씨와 기운과 빛줄기였다면, 그제는 그제대로 다른 빛깔과 날씨와 기운과 빛줄기이며, 오늘은 오늘대로 다른 빛깔과 날씨와 기운과 빛줄기입니다. 날마다 다릅니다. 같은 하루이더라도 아침과 낮과 저녁이 다릅니다. 같은 낮이어도 한 시와 두 시와 세 시가 다릅니다. 어제는 어제대로 좋고 그제는 그제대로 좋으며 오늘은 오늘대로 좋습니다.


.. 십 년을 줄곧 섬에서 생활했는데도 지금도 나는 뭍의 것들 속에 포함된다. 섬 것들 속에 포함되려면 삼대가 지난 뒤에야 자연스레 섬의 것들 속에 포함될 수 있단다. 나도 이제는 섬사람이라고 고개를 세우고 되물으면 섬의 토박이들은 고개를 흔들며 웃는다 … 사람 살 곳이 못 된다며 변방이라 부르던 시절 토박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피눈물을 흘렸다. 인내와 희생만을 요구하던 시절을 살다 간 토박이들의 땀과 눈물을 채우고 있다 … 내가 작업하고 싶은 사진만을 작업하며 생활하는 그 자체로 만족한다. 사진작가로, 예술가로 인정받아야 할 이유도, 까닭도 없어졌다 ..  (166∼167쪽)


 요 몇 달에 걸쳐 《빅토르 하라》를 읽는데 아직 끝마치지 못합니다. 《말괄량이 삐삐》나 《국가는 폭력이다》나 《식민주의와 언어》나 《지로 이야기》 같은 책은 진작에 다 읽었으나 느낌글로 갈무리하지 못합니다. 이런저런 다 읽은 책이 책상맡에 한아름 쌓이고 두 아름 쌓입니다. 이렇게 한 해가 흐르고 두 해가 흐르기도 하는데, 이렇게 하루하루 흐르는 동안 ‘얼른 이 책을 마치고(졸업) 다른 책으로 뻗어 가야지’ 하는 생각을 잇고 잇다가 ‘두 번 읽고 세 번 읽고야’ 마는 이 책들을 만지작거리면서 늘 새삼스럽다고 느낍니다. 그러면서 생각을 고쳐먹습니다. ‘꼭 이 책을 마쳐야(졸업) 하지는 않아. 아니, 처음부터 책읽기란 없었지. 첫 줄부터 끝 줄까지 빠짐없이 읽어냈다고 책읽기는 아니니까.’

 지난번에 읽으며 놓친 대목이 이번에 읽을 때 눈에 뜨입니다. 지난번에 읽으며 잡아챈 대목이지만 이번에 읽을 때에는 다르게 스며듭니다. 이러는 동안 ‘어, 이 책 느낌글을 일찍 썼다면 너무 아쉬웠겠는걸’하고 생각합니다. ‘이 책 느낌글을 마무리짓지 못한 까닭은 따로 있었구나’ 하고 느낍니다. ‘더디 읽어야 할 책은 더디 읽어야’ 하고 ‘더디 새겨야 할 책은 더디 새겨야 함’을 깨닫습니다.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사진을 찍든 ‘적어도 열 해쯤은 해야’ 무언가를 한다는 시늉이라도 낸다고 이야기를 시나브로 헤아리다가는, ‘한길 한뜻을 이룩하는 일’도 나쁘지 않으나 ‘한길 한뜻을 이룩하지 않더라도 내 삶을 이 책 하나와 아름다이 보낸다’면 즐겁습니다.


.. 보통 사람과는 다른 삶을 살기에 가끔은 방송사나 잡지사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는다. 어떤 기자는 그저 흥미 위주로 묻기도 하고 어떤 기자는 꽤 심각한 질문만을 골라 던진다 … 대부분 기자들이 나 같은 풋내기에게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져 얻는 것은 없겠지만 성의없는 태도를 보이면 나도 하품이 난다. 아무리 풋내기 사진가라지만, 상대가 무성의하게 질문하면 나 또한 무성의한 대답을 할 뿐이다. 그러나 예의를 갖추고 질문하면 나도 진지하게 임한다. 나에게도 나만의 가슴속에 묻어 둔 눈물, 한숨, 기쁨이 있다. 이야기를 들으려는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이에게는 어떤 말을 해도 공염불이다 … 내가 배고프면 남도 배고프고, 내가 슬프면 남도 슬픈 줄 안다. 모든 것을 내 자신의 눈높이로 이해하고 해석하려 한다. 늘 떠돌아다녀야 하는 일을 하다 보니 가끔은 곤혹스럽고, 긴장하게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얼굴 마주하고 나의 깊은 곳을 털어놓지 않을 수 없게끔 인간적으로 나를 대한다. 진실에는 진실이 제격이다 … 여유있는 사람들의 서재에서 먼지가 쌓여 가는 값비싼 작품집이기보다는 손과 손에서 옮겨다니며 구겨지고 찢어지는 엽서와 카드이길 원했습니다 … 구한말 이 땅의 중요한 사건이나 사회의 구석구석을 사진으로 기록했던 것은 외국의 선교사들이었습니다. 이미 사진이 이 땅에 들어왔지만, 우리가 우리의 모습을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사진집으로 묶여 나온 것들이 대부분 외국인이 찍은 사진들이었습니다. 우리의 정서와 역사를 모르는 이들이 작업했기에 호기심에 의한 기념사진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정서와 역사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우리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일을 하려면 직장을 가지게 되면 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 언론이 보여주는 세상만을 보고 세상을 한탄할 것이 아닙니다. 남들이 보여주는 세상에 의지해서 세상을 판단할 것이 아닙니다. 내가 찾아가 보고 난 후에 세상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밝은 세상, 착하고 진실한 사람들을 만나 내 자신이 얼마나 악한 사람인지 깨닫고 나의 어리석음을 회개하고 그들을 닮아 보고, 흉내라도 내 보고 싶었습니다 ..  (81∼90쪽)


 오늘날 쏟아지는 책들을 살피면 글에 곁들이는 사진이 퍽 많습니다. 사진 없이 글로 이루어진 책은 거의 없다 할 만합니다. 그러나 이 사진을 보면서 ‘굳이 넣어야 했는가?’ 하는 생각이 들고, ‘사진을 넣는다고 책을 더 잘 읽을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지우지 못합니다. 글은 글이고 그림은 그림이며 사진은 사진이거든요. 사진에 글을 붙인 책을 볼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사진책인데 사진으로 말하지 못하나 궁금합니다. 글책이 글로 말을 걸지 못하고, 사진책이 사진으로 이야기를 이루지 못하는 오늘날 한국땅 책마을입니다.

 글에 보태려고 그림이나 사진을 넣을 수 없습니다. 그림이나 사진을 더 잘 알도록 한다며 글을 붙일 수 없습니다. 글은 글대로 홀로서야 하고, 그림과 사진은 그림과 사진대로 홀로서야 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뭘 잘 알거나 깨달아서 이런 이야기를 끄적이지는 않아요. 그저 제가 살아가는 대로 내뱉는 말입니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아니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아버지로서 느끼는 대로 지껄이는 말입니다. 집안일 도맡고 집밖일 함께 하는 바빠맞은 삶을 되도록 천천히 꾸리려 하면서 툭툭 튀어나오는 말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는 대로 보는 모습이 아니라 살아가는 대로 보는 모습이요, 아는 대로 찍는 사진이 아니라 살아가는 대로 찍는 사진”이라고,

 삶이 되면 알 수 있다고 할까요. 삶이 되니 글을 쓸 수 있고, 삶이 되니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며, 삶이 되니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할까요. 제 사진삶을 돌이키면, 사진하고 함께 산 지는 아직 스무 해가 못 되었으나 책하고 함께 산 지는 스무 해쯤 됩니다. 이러구러 ‘책이란 이렇구나’ 하고 혼자 싱긋 웃는 가운데 ‘사진이란 또 이렇구나’ 하고 홀로 빙긋 웃습니다. 살아온 만큼 웃고, 살아낸 만큼 웃으며, 살아가는 만큼 웃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웃으면 글피에는 저렇게 웃을 테고 모레에는 그렇게 웃겠지요. 모두 한 흐름이요 한 줄기요 한 뿌리인 삶이고 책이고 사진이고 문화이고 예술인 한편 살림살이입니다.


.. “곱쌍헌게 여편네 같쑤다.” 인물이 훤한 양반이 머리는 왜 묶느냐고 걱정을 한다. 머리 묶은 덕에 노인들과 어렵지 않게 말문이 열린다. 아이들도 노인들도 남자는 머리가 짧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남자는 머리가 짧아야 남자답고 사내라고들 생각한다. 남자의 기준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고 우려한다. 만나는 이들마다 한 마디씩 한다 … 낚시꾼들이 포인트를 찾아 무인도에서 무인도로 옮겨 다니듯 사진가들도 분주하게 촬영지를 찾아나선다. 아름다움은 어디에도 존재한다. 그런데도 아름다운 곳을 찾아 해외로 떠나려 한다 ..  (158, 182쪽)


 글쓰기를 가르치자면 글로 가르쳐야 하고, 그림을 가르치자면 그림으로 가르쳐야 하며, 사진을 가르치자면 사진으로 가르쳐야 한다고들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저는 다르게 생각해요. 글로도 글을 가르치지만 그림으로도 글을 가르친다고. 사진으로도 글을 가르치고, 글로도 사진을 가르친다고. 왜냐하면, 글이 삶이 되면 무엇으로든 글을 가르치거나 배울 수 있으니까요. 그림이 삶이 되면 어느 곳에 가더라도 그림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배우니까요. 사진이 삶이 되면 누구하고 있더라도 모두 사진으로 바라보고 사진으로 삭이니까요.

 어릴 적에는, 그러니까 제가 철부지일 적에는 하나도 몰랐습니다. 요즈음도 아직은 철부지가 아닌가 싶은데, 예전만큼은 철부지가 아닌지 모릅니다만, 아무튼 예전이나 이제나 똑같은 철부지라 하여도 요사이는 새로 느끼는 이야기가 많아요. 철부지인 주제에 깨닫는 셈입니다만, ‘온힘 쏟아 책 하나 내놓은 사람이, 애써 내놓은 책은 싹 잊고는 다른 책 하나 내놓으려고 온누리를 두루 돌아다닌다’고 깨닫습니다. 온힘 쏟아 내놓은 책 하나를 붙잡으며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거머쥘 생각은 않고, 이 책은 ‘이 책을 읽을 사람들 몫’이라고 여기며 훌훌 털어냅니다. 당신은 당신 길을 새롭게 갑니다. 산꼭대기에 오르자마자 산을 타고 내려오는 셈입니다. 논갈이 논삶이 모내기 풀뽑기 가을걷이 모두 끝내 하루 농사를 마감했으면, 이듬해 새로운 농사를 똑같이 다시 열고자 마음을 기울이는 셈입니다.


.. 섬 구석구석 아스팔트 길이 트이고 시멘트 건물이 늘어나면서 토박이들은 신명을 잃었다. 할망당이 없어진 자리에 대신 교회가 들어섰다. 하늘길이 열린 후 사람들이 몰려오자 인정도 사라졌다 … 마라도를 이해하는 데 태풍을 경험해 보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마라도 사람들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바람을 경험해 보지 않고는 마라도의 삶을 이해할 수 없다 … 아주 작은 섬이지만 자연의 교향악이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아주 감동적이지만 누구나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마라도에서는 한 철을 혼자 살아도 그리운 사람이 기다려지지 않는다. 온종일 바다로 하늘로 공허한 마음을 채운다 ..  (21, 185∼186, 200쪽)


 예나 이제나 아직 철부지이며, 이런 철부지이니 철부지로서 책을 펼치고 그림을 즐기고 사진을 맛봅니다. 철부지이니 아쉽거나 모자라지만,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받아들이고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맞아들입니다. 섣불리 더 뻗댈 마음이 없으며, 괜시리 숨기거나 가두고 싶지 않습니다. 늘 제 마음그릇 그대로 드러내면서 온몸으로 껴안고 싶습니다.


 (3) 김영갑 님 사진삶을 담은 《섬에 홀려 필름에 미쳐》


 “사진으로 감동시킬 수 있으면 글로도 감동시킬 수 있다”고 밝히는 김영갑 님 사진삶이 담긴 《섬에 홀려 필름에 미쳐》를 읽습니다. 204쪽짜리 자그마한 책 마지막을 채우는 말마디입니다. 이 말마디 앞에는 “사진으로 표현할 수 없었는데 글로 표현한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밝힙니다.

 한 줄로 밝힐 수 없다면 백 줄로도 살을 붙일 수 없고, 백 줄을 채우지 못한다면 한 줄로 간추릴 수 없다는 이야기와 똑같을 테지요.


.. 아버지에 대한 미움, 증오가 내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 나는 긴장한다. 내 자신을 반성한다. 그리고 후회한다. 내가 아버지를 미워했던 것만큼 내가 내 자신을 미워하고 증오했다 … 사진도 보는 사람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내 자신을 위해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다. 보는 사람을 위한 사진이다 ..  (140, 173쪽)


 김영갑 님은 오로지 제주섬 중간산을 찍었습니다. 루게릭병이 찾아들어 더는 사진기를 손으로 못 찍고 마음으로만 찍게 된 뒤부터는 두모악갤러리를 지켰고, 이곳 두모악갤러리는 당신 뜻을 잇는 분이 야무지게 꾸립니다. 제주섬마실을 하는 분들은 우도나 마라도에 들르듯 으레 이곳에 들르고, 김영갑 님 온삶을 바친 사진을 고개를 끄덕이며, 또는 눈물을 흘리며 바라봅니다. 또는, ‘저게 뭐야? 나도 찍겠는걸?’ 하는 눈으로 바라봅니다. 때로는, ‘사진에 갇혀 사진 이야기를 보기보다 내가 저곳에 기쁘게 찾아가서 자연 이야기를 내 삶 이야기로 삭이면 되지’ 하는 눈썰미로 바라봅니다.

 하기는. 김영갑 님 어여쁜 사진은 중간산 자연을 어여삐 담은 사진이 아닙니다. 김영갑 님 어여쁜 사진은 김영갑 님 이야기를 담은 ‘중간산 자락 삶’입니다.


.. (사람들은) 생각없이 즉흥적으로 건물 짓고 기념비를 세운다. 마라도가 오염돼 환경이 파괴되면 왔던 손님도 되돌아간다. 볼 것이 없고 느낄 것이 없으면 마라도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사람이 마라도를 잊어버리는 날 민박집, 교회, 절이 폐가가 되어 주춧돌만 덩그러니 남을 것이다. 시절이 변하면 사람도 변한다. 사람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 건물도 도시도 오래되면 늙는다. 늙으면 죽는다. 늙어도 죽지 않는 영원한 것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매혹시키는 것이 마라도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그것을 부각시키는 개발이 아니면 그 개발은 실패작이다. 사람을 환장하게 만드는 그 무엇을 보존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외면한다 ..  (200쪽)


 쉰을 미처 채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마흔을 조금 넘기고부터 병이 찾아들었습니다. 당신이 이 땅을 떠나기 앞서 여러 매체와 만나서 남긴 이야기를 살피니, ‘쉰조차 못 되어 이슬이 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쉰 살 가까이 살아남은 나는 얼마나 고마운’ 노릇이냐고 밝혔더군요.

 그래, 쉰은커녕 마흔이나 서른에, 또는 스물이나 열에 떠난 넋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스스로 못 느낄 뿐이지만, 우리는 이 젊거나 어린 넋들이 있었기에 오늘처럼 우리 목숨을 고이 여밀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 앞에 길을 마련한 숱한 땀방울이 있었기에 우리들 누구나 잔걱정 덜하면서 세상살이를 해 나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 밑빠진 독에 물을 채우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정신나갔다고 혀를 찬다. 그래도 나는 웃는다. 불혹의 나이가 되도록 밥벌이도 못한다고 핀잔을 주어도 웃는다. 그 나이에 장가도 못 가고 뭐했냐고 다그쳐도 나는 웃는다. 십 년 세월 동안 밥벌이도 안 되는 일에 몰두했지만 드러내 보일 것이 없다. 뚜렷한 결과는 없지만 부끄럽지 않으려 나만의 일에 최선을 다했다 ..  (160쪽)


 김영갑 님이 《섬에 홀려 필름에 미쳐》를 펴내던 해는 1996년이고, 이때 당신 나이 마흔이었으며, 제주섬에 흘러든 지 열두 해째입니다. 이 책에 스스로 적은 해적이를 보면, 이무렵까지 20만 장 넘게 제주섬 중간산을 찍었다고 했는데, 김영갑 님은 여느 필름이 아닌 파노라마사진을 했습니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하게 찍어댔습니다. 숨돌릴 틈 없이 찍었고, 오늘 어제 글피 가리지 않고 찍었습니다.

 한 장을 얻으려고 찍은 사진이었다 할는지 모르나, 제가 느끼기로는 하나하나 헤아리면서 20만 장을 얻으려고 찍은 20만 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뒤로 더 찍어 50만 장을 이루었다면 50만 가지 모습을 나누고 싶어 50만 장을 찍었으리라 봅니다. 김영갑 님한테 제주섬 중간산에 사진을 찍는 일이란 당신 삶을 하루하루 일구는 일이었으니까요. 하루도 거를 수 없는 삶이고, 하루도 놓칠 수 없는 삶이었으니까요. 아니, 하루조차 아닌 한 시간도, 한 분도 한 초도 잊을 수 없는 삶이었으니까요.

 한때 두때 석때 차근차근 사진으로 담아 한삶을 이룹니다. 그런데 김영갑 님은 애써 담은 당신 한삶을 당신 스스로 돌아볼 겨를이 없습니다. 얄궂게 찾아든 병 때문입니다. 당신 사진을 당신 스스로 갈무리하지 못하고 맙니다. 그렇지만, 생각해 보면 당신한테 병이 찾아들지 않았다면 언제까지나 사진기만 붙잡았을 테며, 당신은 훨씬 더 많이 사진을 남겼으리라 봅니다. 그리고, 훨씬 더 많이 모인 사진은 당신 스스로나 다른 사람 누구나 짐을 질 수 없을 만큼 되었으리라 봅니다. 아니, 당신이 제주 중간산을 사진으로 담은 삶이 어떤 이야기인지 사람들이 함께 느끼도록 갈무리해서 보여주지 못했겠지요. 사진만 덩그러니 남았을 때에 당신 사진에 깃든 삶을 찬찬히 읽어낼 사람이란 아무도 없었겠지요.

 당신을 부른 뜻이 하늘나라 뜻인지 모르겠지만, ‘제주섬 중간산을 제주섬 중간산 그대로 담아내는 일은 이제 그쯤이면 넉넉하구나. 이제부터는 있는 그대로 느끼며 담아낸 제주섬 중간산 모습을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게끔 갈무리해야 하지 않느냐’ 하는 조그마한 뜻으로 김영갑 님한테 병을 내려주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김영갑 님 스스로 아쉽거나 모자란 대목을 느낀다면, 이 아쉬움과 모자람은 사람들이 당신 사진을 보면서 하나씩 깨달으면 됩니다.


.. 사람들은 사진 공해 속에서 살면서도 사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텔레비전, 신문, 잡지 …… 고개를 들면 사방에 사진이다. 문밖을 나서면 골목에도, 지하도에도, 전철에도, 버스에도 사진이다. 그런데도 무관심이다 ..  (69쪽)


 2006년에 나온 《김영갑 1957∼2005》(다빈치)라는 사진책이 떠오릅니다. 이 사진책이 나온 지 벌써 세 해가 되었고, 김영갑 님이 세상을 떠난 지 네 해가 되었습니다. 참 빠르구나 싶으면서 벌써 그렇게 되었는가 싶습니다. 《김영갑 1957∼2005》를 들춰봅니다. “중간산 광활한 초원에는 눈을 흐리게 하는 빛깔이 없다. 귀를 멀게 하는 난잡한 소리도 없다. 코를 막히게 하는 역겨운 냄새도 없다. 입맛을 상하게 하는 잡다한 맛도 없다.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그 어떤 것도 없다. 나는 그런 중간산 초원과 오름을 사랑한다 … 내가 한라산만을 고집하는 이유를 사람들은 궁금해 한다. 질문을 받을 때마다 대답 대신 웃는다. 설명을 할 수가 없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벌써 다른 곳을 찾아 떠났을 것이다. 뭔가 설명할 수 없기에 한라산 자락에서 이렇게 세월을 허비한다 …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은 한라산이 설악산이나 지리산보다 빼어날 수 없다.” 같은 글줄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렇게 제주섬 중간산은 김영갑 님과 한몸으로 있던 삶이었군요. 비록 ‘세 대에 걸쳐’ 살지 않아 ‘제주 토박이’가 되지는 못했으나, 당신 그 삶으로 한몸이 되는 길을 찾았군요. 그러니, 돈벌이 사진이 아닌 두모악갤러리를 마지막으로 남겼고, 죽기 얼마 앞서 찾아온 기자 앞에서도 ‘기자 양반, 다음에 다시 찾아와서 그때는 사진 찍기를 배우라’고 스스럼없이 말했군요. (4342.5.3.해.처음 씀/4343.11.17.물.고쳐씀.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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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여우 헬렌 쪽빛문고 9
다케타쓰 미노루 지음, 고향옥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백 가지 삶과 백 가지 사진
 [찾아 읽는 사진책 7] 다케타쓰 미노루, 《아기 여우 헬렌》(청어람미디어,2008)



 스물일곱 달째를 지나 스물여덟 달째 함께 살아가는 아이가 큰방에서 혼자 놉니다. 아이 엄마는 작은방에서 이불을 무릎에 덮고 뜨개질을 합니다. 아이 아빠는 이불을 쓰고 자리에 누워 허리를 폅니다. 그제 서울과 인천으로 볼일 보러 갔다가 어제 돌아와서는 끙끙거립니다. 하룻밤 사이에 먼길을 오가고 나면 꼭 하루 남짓 끙끙 앓습니다. 아이 엄마가 아이 아빠한테 넌지시 묻습니다. “아이 예쁘지요?” 아이 아빠는 능청스레 대꾸합니다. “뭐가? 어디가?”

 아이랑 스물일곱 달을 꾹꾹 채워 살아오는 동안 날마다 서른 장 남짓 아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내 아이 모습을 어떤 이야기를 붙여 사진으로 담으면 좋을까 하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갖은 집일을 떠맡아 살림을 꾸리면서 이 사진은 이렇고 저 사진은 저렇고 하며 살필 겨를이 없습니다. 그저 이 모습은 이 삶결대로 담고, 저 모습은 저 삶자락대로 담을 뿐입니다.

 요 한두 달 사이 이 사진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곤 합니다. 아빠한테 둘도 없이 어여쁜 모델이 되어 주는 이 아이 삶을 어떤 이야기 담은 모습으로 나눌 때에 아빠한테도 엄마한테도 아이한테도 즐거울까 하고. 참말로 바쁘다고 말은 하지만, 이런 말은 핑계일 뿐, 나로서는 아직 아빠다운 아빠 길을 못 걸으니까 아이 사진을 찍으면서 이 사진이 아이 삶하고 어떻게 어울리도록 하면 좋겠는가 하는 갈피를 못 잡는 셈 아닌가 하고.

 아이 사진을 함부로 누리집(블로그라든지 인터넷방이라든지)에 올려서는 안 된다고 느낀 어느 날부터 아이 사진을 섣불리 다른 사람 앞에 내보이지 않았습니다. 한 달 남짓 이러다가 마음을 곰곰이 추슬러 하루에 한 장씩 아이 사진을 글 한 줄씩 붙여 갈무리해 보자 생각합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 스스로 살갑게 쓸 수 있다면, 이 이야기를 이루는 사진을 둘레 사람하고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 없이 사진을 아무렇게나 다루어서는 안 된다고 비로소 생각합니다.

 이제 날마다 한 가지 모습을 되새기며 이름붙이기를 해 봅니다. 이를테면 ‘고구마 어린이’라든지 ‘자전거 어린이’라든지 ‘책 어린이’라든지 ‘포대기 어린이’라든지 ‘북치는 어린이’라든지 ‘춤노래 어린이’라든지 ‘가을길 어린이’라든지 하면서. 어차피 이름을 붙인다면, 되도록 글자수를 맞추고 싶습니다. 첫 이름을 ‘고구마 어린이’로 했으니 모두 세 글자로 맞추고 싶은데, ‘책 어린이’에서 그만 걸렸습니다. 이 이름을 붙일 때 미처 생각을 못했으나, ‘책읽는 어린이’로 했다면 꼭 세 글자가 되었을 텐데, 왜 그때에는 이처럼 이름을 못 붙였나 싶습니다.

 예전에는 굳이 이름붙이기를 하지 않고 날짜만 살폈습니다. 아이하고 함께 살아가며 하루 동안 찍는 사진 서른 장이나 쉰 장이나 일흔 장으로 얼마든지 책 하나 날마다 만들 수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하루에 쉰 장을 찍더라도 쉰 가지 얼굴빛과 몸빛과 삶빛을 담을 수 있는 ‘내 아이 삶 사진’입니다. 이는 우리 집 아이한테서만 보는 모습이 아닙니다. 온누리 어느 집 아이한테서도 엿볼 수 있어요. 아이하고 어버이가 늘 집에만 붙어 있다 하더라도 매한가지입니다. 아이하고 어버이가 날마다 먼길 마실을 다닌다 하더라도 ‘날마다 쉰 가지나 일흔 가지 다 다른 얼굴빛’을 못 볼 수 있어요. 이 나라 저 나라 쏘다닌다 하는 사람이 더 나은 사진을 얻지 않고, 한 나라 조그마한 마을 작은 집에서 산다는 사람이 덜 떨어진 사진을 얻지 않습니다.

 시골마을에서 조그맣게 동물병원을 꾸리는 의사이면서, 당신이 돌보아야 하는 들짐승들 삶을 사진과 글로 묶어 이야기책을 내놓는 다케타쓰 미노루 님이 낸 책 가운데 《아기 여우 헬렌》을 읽으면, “솔개와 함께 생활했던 때를 뒤돌아보면, 그 형제와 형제의 학교 친구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살았던 그 솔개의 일생이 불행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하루하루가 무척이나 즐거웠을 것입니다(34∼35쪽).”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들새로 살아야 할 솔개이지만, (몹쓸 어른들 때문에) 몸이 크게 다쳐 아파 하던 솔개를 마을 아이들이 살려 달라며 껴안고 찾아왔다지요. 이 솔개를 어루만지고 함께 돌보면서 다시금 살아나 훨훨 날도록 도왔다지요. 이렇게 솔개랑 하루이틀 살아가면서 다케타쓰 미노루 님부터 ‘즐겁다’고 느끼는 한편, 들짐승 어루만지는 의사로서 솔개 몸이 ‘즐거워’ 함을 느꼈겠지요. 그야말로 날마다 새롭게 즐거웠으리라 생각합니다. 아기 여우 헬렌을 만나 함께 살아가면서도 “아내에게 안겨 있는 헬렌은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습니다(90쪽).” 하고 느끼거든요.

 아이 사진을 날마다 꾸준하게 찍으면서 곰곰이 떠올립니다. 아이가 아빠한테 안기거나 엄마한테 안길 때, 아이는 더없이 포근해 합니다. 할머니한테 안기든 할아버지한테 안기든 이모한테 안기든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는 저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 마음을 제 마음으로 느끼어 받아들입니다. 아이 사진을 찍는 아빠 앞에서 아빠가 제 모습을 사랑스레 담아내는 줄 느끼니 스스럼없이 찍혀 줍니다. 나중에는 아이가 아빠 사진기를 쥐어 아빠 모습을 찍어 줍니다. 우리 집 딸아이는 고작 여섯 달이 되었을 무렵부터 아빠 사진기를 갖고 놀았고, 일곱 달이 채 안 되어 첫 사진을 찍었으며, 돌이 안 되었을 때 엄마나 아빠를 찍어 준다며 사진놀이를 즐겼습니다.

 천재라서 돌쟁이조차 아닌데 사진놀이를 하지 않습니다. 그예 함께 살아가니까 사진을 제 몸으로 받아들일 뿐입니다. 아빠랑 엄마가 텃밭을 일구거나 너른 논을 돌보며 살면, 아이는 낫이나 호미를 즐겨 들겠지요. 이때에 아이는 돌쟁이조차 아닌데 ‘호미 어린이’가 되어 풀 베거나 벼 베는 어린이 몫을 톡톡히 했겠지요. 그러니까, 때때로 텔레비전 같은 데에 ‘아주 어린 꼬맹이가 자동차 이름을 다 판가름하는 모습’ 따위를 보여줄 때에 이 아이를 일컬어 ‘천재’라느니 무어라느니 떠드는 일은 부질없습니다. 게다가, 어린이한테 영어를 일찌감치 가르치거나 한자를 일찍부터 알려주는 일 또한 덧없어요. 아니, 이런 짓은 아이를 망가뜨립니다. 어느 아이든 아이일 때 무엇이든 쏙쏙 빨아들입니다. 좋은 모습이든 궂은 모습이든 빨아들여요. 빨아들여야 살아낼 수 있으니까요. 빨아들여 제 것으로 삼아야 무럭무럭 자라니까요.

 아이가 어릴 때에는 영어이니 책이니 한자이니 한글이니 따위를 머리에 집어넣으면 안 됩니다.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삶을 어버이 스스로 힘껏 살아내는 하루하루를 곱다시 껴안도록 손을 잡고 이끌어야 해요. 맑은 바람과 싱그러운 하늘과 하얀 구름과 밝은 별을 아이가 가슴에 꼬옥 안도록 거들어야 합니다. 물맛과 밥맛을 깨닫도록 힘쓰고, 손맛과 발맛을 새삼스레 느끼도록 도와야 합니다. 착하지 않으면서 영어를 잘하거나 일본말을 잘한들 무슨 보람이 있나요. 참답지 않으면서 수백 수천 권에 이르는 책을 달달 왼들 어떤 빛이 서리나요. 고운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아이가 서울대학교이든 하버드대학교이든 첫손 꼽으며 들어간들 얼마나 사랑스러운가요.

 아이하고 살아가는 동안 아이는 어버이한테 날마다 다른 빛깔을 베풀어 주고, 어버이는 아이한테 늘 다른 빛무늬를 나누어 줍니다. 주니까 받는 사랑이 아니고,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랑 또한 아닙니다. 살랑살랑 흐르는 사랑입니다.

 노상 느끼는 사랑이니까 노상 느끼는 그대로 사진 한 장 얻고, 노상 느끼는 그대로 사진 한 장 꾸준히 얻다 보니, 나날이 새삼스러운 이야기를 실어 사진을 차곡차곡 그러모읍니다.

 이야기책 《아기 여우 헬렌》을 들춥니다. “헬렌은 한 번도 모래사장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은 이상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100쪽).” 여느 여우와 달리, 앞을 보지 못하는 헬렌은 어미를 잃었습니다. 어미 잃은 새끼 여우한테 무엇인가를 사람이 가르치기란 매우 힘듭니다. 그런데 앞을 못 보는 헬렌이라지만, 헬렌은 여느 여우하고 똑같은 여우입니다. 여우는 여우이니까요. 한편, 새끼 여우 헬렌은 구경거리 여우 헬렌이 아닌 서로서로 따사롭고 넉넉히 안아 줄 좋은 살붙이인 여우 헬렌입니다.

 “헬렌은 본래의 귀여운 아기 여우 얼굴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커다란 눈망울에서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습니다(161쪽).” 삶을 함께 누리기에 죽음을 함께 맞이합니다. 슬픔을 같이 나누고 기쁨을 서로 맞아들입니다. 솔개를 돌보든 다람쥐를 돌보든 여우를 돌보든 딱따구리를 돌보든 저마다 다른 짐승들을 저마다 다른 결과 손길로 돌보지만, 모두들 고운 목숨이요 삶임을 헤아리는 손길로 함께 돌봅니다. 이들 짐승들을 다루는 이야기를 글과 사진으로 차곡차곡 엮어야 비로소 동물병원 살림돈을 마련한다는 다케타쓰 미노루 님인데, ‘살림’하는 돈을 얻고자 용쓰던 사진찍기이고 글쓰기였지, 벌어들일 ‘돈’만 생각하며 꾀부리던 사진찍기나 글쓰기는 아니라고 느낍니다. 어제와 오늘이 새롭고, 이 아이와 저 아이가 새로우며, 내 삶과 네 삶이 새롭습니다.

 백 가지 삶을 느끼기에 백 가지 사진을 찍습니다. 백 가지 짐승을 만나기에 백 가지 손길을 뻗어 돌보고자 애씁니다. 백 가지 사진을 찍으며 한 가지로 이어지는 고리를 깨닫고, 백 가지 손길을 뻗는 동안 모두 한결같은 손길일밖에 없다고 알아챕니다. 동물병원이든 사람병원이든, 병원이면서 보금자리이고 삶터입니다. 삶터에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야기에는 사랑과 믿음이 고이 묻어납니다. 이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옮기어 나누는 옛이야기로 남을 수 있고, 글로 적바림해 문학이 될 수 있으며, 사진으로 옮겨 예술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4343.11.11.나무.ㅎㄲㅅㄱ)


― 아기 여우 헬렌 (다케타쓰 미노루 사진·글,고향옥 옮김,청어람미디어 펴냄,2008.7.10./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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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관 - 인천 차이나타운
김보섭 지음 / 눈빛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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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사진, 잃어버린 삶
 [찾아 읽는 사진책 6] 김보섭, 《청관》(눈빛,2010)



 사진 백서른두 장이 갑작스레 날아갔습니다. 필름으로 치면 한 통에 서른여섯 장이니 서너 통쯤 사라진 셈입니다. 다섯 해쯤 앞서 사진기와 필름이 든 가방을 도둑맞았을 때에 사진기와 책과 돈뿐 아니라 이 가방에 들었던 필름 일곱 통을 함께 잃은 적 있습니다. 열 해쯤 앞서 신문배달을 하는 동안 누군가 신문사지국에 몰래 들어와 가방을 훔쳤을 때에도 필름 두 통을 함께 잃었습니다. 지난날 잃은 필름은 모두 헌책방을 찍은 사진이고, 어제 잃은 사진은 모두 골목길을 담은 사진입니다.

 디지털사진을 필름사진과 함께 찍던 처음, 그동안 겪은 일을 바탕으로 메모리카드를 제값 치르며 제대로 사자고 생각했습니다. 필름을 장만할 때에 한결 값싼 녀석을 쓸 수 있었으나, 값싼 필름을 쓰다 보면 으레 어딘가에서 말썽이 나곤 했습니다. 값은 곱절이요, 내 눈결하고 들어맞는 필름은 더 비싼값이지만, 내 사진을 내가 좋아하는 대로 이루자면 그만한 값을 들여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애써 찾아간 헌책방에서 찍은 사진들은 다시는 찍을 수 없는 모습이며 삶이기 때문에, 제 살림돈을 아무리 거덜내거나 차지한다 하더라도 필름에 말썽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디지털사진을 찍는다 할 때에도 나중에 갑작스레 무슨 말썽이 생기면 안 된다고 여겼습니다. 사진을 고스란히 잘 살릴 수 있어야 하며, 힘써 찍은 사진은 내장하드이든 외장하드이든 알뜰히 건사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메모리카드 되살리기를 해 보지만 메모리카드에 틀림없이 담긴 이 사진파일은 되살아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우지끈 뚝딱 하면서 가뭇없이 사라질 듯합니다. 모처럼 인천으로 마실을 가서 한창 신나게 사진을 찍었는데, 두 시간 남짓 다리품을 팔며 걸어다닌 골목동네에서 골목빛 담은 사진이 어느 한때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 셈입니다. 사진기를 떨어뜨린다든지 메모리카드를 꺼내어 분지른다든지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한창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다 보니 어느새 뿅 하고 날아갔습니다.

 그러고 보니, 잘 쓰던 사진기가 갑자기 멈춘 적이 이제까지 세 차례 있습니다. 떨어뜨리거나 부딪히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골목마실을 하거나 헌책방마실을 하며 땀 뻘뻘 흘리는 가운데 사진을 찍는데 사진기가 갑자기 멈췄어요. 나중에 수리점에 맡긴 다음 알았는데, 아무리 알뜰히 건사하며 사진기를 쓰더라도 ‘많이 찍’으면 사진기도 기계인 만큼 낡고 닳아 스스로 멈출 수 있더군요. 사진을 많이 오래 찍으려는 사람은 사진기를 한 대만 갖고 다닐 수 없습니다. 곁으로 하나를 마련해 놓아야 합니다. 가난한 사진쟁이로서는 사진기 한 대 렌즈 하나 마련하여 쓰기조차 벅찬데 곁사진기 하나를 둔다는 일은 몹시 어렵습니다. 저는 아직 곁사진기를 두지 못합니다. 곁렌즈 하나 없는걸요. 렌즈도 사진기와 매한가지로 언젠가 낡고 닳아 못 쓰고 맙니다. 그래, 사진기와 렌즈는 하나씩 더 챙겨 놓아야 해요.

 씁쓸하고 슬프지만, 아이 엄마는 아이 아빠한테 한 마디를 들려줍니다. “그 사진은 이제 없는 사진이라고 생각하셔요.” 하고.

 아쉬워 한다고 짠 하고 나타날 사진이 아닙니다. 애태운다고 살아날 사진이 아닙니다. 자전거를 타고 읍내마실을 다녀오는데 못난 자동차꾼이 저를 들이받아 제 팔이나 다리가 부러진다 하면 ‘부러진 팔다리’이지, ‘예전처럼 멀쩡히 살아날 팔다리’가 아닙니다. 제 사진기랑 가방을 훔쳐갔던 이들은 제 사진기랑 가방을 돌려주지 않습니다. 이제까지 열 차례 도둑맞았습니다. 없는 살림에 잃는 사진기랑 가방을 떠올리면 목매달아 죽고플 만큼 괴롭습니다. 그렇지만 잃은 사진기는 잃은 사진기이고, 잃은 가방은 잃은 가방입니다. 잃은 사진파일 또한 잃은 사진파일이라 해야 할 테지요.

 되새기기 싫으나, 사진파일 백서른두 장을 곰곰이 되씹습니다. 몇 시 무렵 어느 골목을 어떻게 거닐며 어떤 골목빛을 어떠한 사진으로 옮겨 담았는가 헤아립니다. 사진파일이 살아 있다면 말이 아닌 사진으로 보여주었을 이야기를 생각합니다. 사진쟁이란 사진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지 말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렇게 잃은 사진을 앞에 두고는 말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내 말마디로 ‘사진으로 보여주듯이’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합니다.

 맨 먼저, 동인천역 뒤쪽 송현1동입니다. 송현1동에서는 ‘동인천 북광장 재개발’ 때문에 쫓겨나야 하는 사람들이 세운 천막을 담았고, 추운 날 천막에서 농성하는 분들이 헐린 건물 자리 돌과 쓰레기를 치운 다음 일군 텃밭을 찍었습니다. 이분들은 일흔 해 안팎 건물이 서 있던 자리에 씨앗을 심어 배추며 무며 상추며 갖은 푸성귀를 길러냈습니다. 다음으로 이 텃밭 옆에 바지랑대를 세우고 널어 놓은 빨래. 가을햇살은 텃밭에도 빨래에도 곱게 내려앉습니다.

 건널목을 건너기 앞서 ‘아직 안 헐린 건물’에 깃든 나무집에 붙은 ‘애관극장 영화광고 나무판’을 찍습니다. 건널목을 건너 다시금 찍습니다. 나무판으로 만든 ‘애관극장 영화광고판’은 인천에서도 이곳에 딱 하나 남았습니다. 이 나무판을 알아보는 사람은 아직 못 만났습니다. 이 건물이 헐리면 이제 이 나무판도 끝장이지요. 애관극장은 대한민국에서 맨 처음 선 극장이요, 맨 처음 선 극장에서 만들어 붙인 ‘나무판으로 된 광고판’ 또한 한국땅에 더는 안 남은 줄 압니다. 시골에는 아직 남았으려나요.

 송현2동 안골에서 꽃잔치집 앞에 섭니다. 꽃잔치집은 가을날 대문 안쪽 작은 마당에서 자라는 감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일부러 한꺼번에 안 따고 한 알 두 알 따 드시는 듯합니다.

 다시 길을 건너 화평동으로 갈까 하다가 지하상가로 건너 전동으로 접어듭니다. 옛 인천여고 자리에서 자라는 우람한 은행나무는 가을빛이 한껏 빛납니다. 아, 이 자리에는 동인천동사무소가 아닌 학교가 있어야 하는데. 학교 운동장은 주차장이 되다니. 이 우람하며 멋들어진 나무를 아이들이 날마다 보듬으면서 너른 꿈을 키워야 하는데. 아이들한테는 최신시설이 아닌 우람한 나무 한 그루가 애틋한데.

 전동 안골로 들어섭니다. 지난해까지는 수세미가 나무전봇대 전깃줄을 따라서 자랐는데, 올해에는 수세미가 없군요. 그러나 나무전봇대 뿌리 께에 마련한 작은 꽃밭에 심은 꽃이 지고 잎이 지며 예쁜 노을빛을 베풉니다.

 내동하고 맞닿은 전동 쪽으로 갑니다. 할배 한 분이 해바라기를 즐기곤 하는 골목집 ‘대문 위쪽 자리’에 희고 큰 개가 앉아서 저를 바라봅니다. 제가 골목마실 하는 모양이 재미나 보이는 모양인지, 예전에 인천에 살면서 거의 날마다 지나다니던 저를 알아보았는지 궁금합니다. 살짝 인사를 하고 사진 한 장 찍습니다. 내동으로 접어듭니다. 2층 꽃밭에서 저를 내려다보던 다른 희고 큰 개가 컹컹 짖습니다. 깜짝 놀랍니다. 맞은편에 골목고양이 한 마리 있네요. 골목고양이도 놀랍니다. 이때다 싶어 깜짝 놀라 하며 우뚝 선 골목고양이 사진을 석 장 잇달아 찍습니다.

 성공회 내동성당 아래쪽 골목집 아줌마가 골목고양이한테 밥과 물을 주는 그릇을 찍습니다. 그릇 하나는 깨졌고, 그릇 둘은 잘 있습니다. 예전에 살던 내동 3층짜리 벽돌집 앞에 섭니다. 예전 살림집 임자인 할아버지가 저를 알아보고 인사합니다. 할배는 언제나처럼 당신 살뜰한 살림집을 알들히 여미어 놓습니다. 골목집 맞은편 텃밭은 사라지고 높은 울타리가 섭니다. 돈 많은 내리교회에서 새 건물을 세우려나 보군요. 신포시장을 거쳐 답동성당 가톨릭생협 매장에 들른 다음 율목동으로 올라설까 하다가 용동 골목으로 들어섭니다. 다시 경동 골목으로 빠져나와 싸리재 가구집들 사이를 지나 정보산업고 뒤쪽 동네로 접어듭니다. 빨간 사루비아와 하얀 사루비아 키우는 골목집 앞에 섭니다. 이 골목집 할머니가 저를 보며 “사진 찍어 주어 고마워요.” 하고 인사합니다. “저야말로 이렇게 예쁘게 돌보는 집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어 고맙습니다.” 하며 인사를 받습니다. 그런데, 이분 꽃밭 사루비아 밑을 보니, 아스팔트 사이를 뚫고 자라는 사루비아 한 포기가 있습니다. 어쩜!

 여기까지 두 시간 즈음 천천히 거닐며 사진을 찍어 백서른두 장이었습니다. 싱그러운 골목 삶터 모습을 이제 겨우 몇 가지 찍었다 싶었고, 배다리 헌책방거리로 들어서며 헌책방에서 스무 장쯤 더 찍는데, 헌책방에서 찍은 스무 장 남짓하고 골목길 사진하고 아스라이 사라지고 맙니다. 힘이 빠져 골목마실을 더 잇지 못합니다.


.. 그는 인천사람이다. 인천사람이 인천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관심이 인천에 주로 머물고 있는 것은 리얼리스트로서의 그의 사진적 입장과 무관하지 않다 ..  (추천글/한정식)


 사진책 《청관》을 읽습니다. 올 2010년 3월에 새로 나온 사진책 《청관》은 지난 1995년에 한 번 나온 적 있고, 이번은 고침판이라 할 책입니다. 열다섯 해를 묵어 새로 나왔다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1995년판은 1995년까지 살아낸 ‘중국사람 동네’ 이야기가 묻어난 사진책이라 할 테고, 2010년판은 2010년까지 열다섯 해를 더 살아낸 중국사람 골목 이야기가 깃든 사진책이라 할 테지요.

 그런데, 2010년판 《청관》을 읽으며 1995년판 《청관》하고 무엇이 달라졌는지 잘 못 느끼겠습니다. 2010년판 《청관》에는 1995년판에는 담기지 못한 어떤 새로운 이야기가 담겼는지 알쏭달쏭합니다. 사진으로 나누는 ‘새 열다섯 해’란 어떤 뜻이나 값이 있는지 아리송합니다.

 김보섭 님은 《한의사 강영재》와 《바다 사진관》과 《수복호 사람들》과 《시간의 흔적들》 같은 사진책을 내놓았습니다. 이 사진책은 하나같이 ‘인천에서 살아가며 인천사람으로서 마주한 삶’을 담습니다. 사진책에 한정식 교수님이 붙인 글마따나 ‘인천사람이 인천을 바라보며 느낀 이야기’를 담습니다.

 사진을 다시 들여다봅니다.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한국사람이라 할 때에 모두 같은 한국사람이 아닙니다. 한국사람 가운데 서울사람이라 할 때에 모두 같은 서울사람이 아닙니다. 서울사람 가운데 강아랫마을사람을 생각해 보면, 강아랫마을사람이라 해서 모두 같은 강아랫마을사람은 아닙니다.

 다 다른 인천사람이고 다 다른 인천사람 삶입니다. 그러면서 다 다르나 다 같은 삶과 사람과 삶터입니다. 바로 이 대목, 다 다르면서 다 같은 삶이고 사람이며 삶터인데, 김보섭 님 사진은 이 알맹이를 아직 못 건드리는 셈 아닌가 싶습니다.

 ‘청관 사진’인지 ‘청관사람 사진’인지 ‘청관사람 이야기 사진’인지 ‘청관사람 주름살 사진’인지 ‘청관 마을 사진’인지 ‘청관 마을 사람들 사진’인지 어떤 사진인지를 먼저 또렷하게 가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중국사람 동네에서 담벼락 이룬 벽돌 한 장 찍으면서도 얼마든지 온갖 이야기를 길어올릴 뿐 아니라 기나긴 삶을 보여줄 수 있어요. 중국사람 동네 골목고양이이든 꽃그릇 하나이든 간판 하나이든 유리창 하나이든 문패 하나이든 우물자리 바가지 하나이든 전봇대 하나이든, 얼마든지 ‘청관’이라는 이름을 붙여 사진이야기 엮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진쟁이 김보섭 님한테는 무슨 이야기를 간직했던 청관이요, 무슨 이야기를 나누려는 청관일는지요.


.. 김보섭의 사진은 정직하고 정확하다. 진지하고 무게가 있다. 사람이 작품이요, 작품이 곧 그 사람이란 말이 있지만, 그의 인품을 보면 그의 사진이 그럴 수밖에 없겠다는 것이 이해된다 ..  (추천글/한정식)


 사진찍기는 나한테 찍힌 사람들을 보여주는 일이 아닙니다. 내가 바라본 사람들 삶을 옮겨 보여주는 일입니다. 내가 바라본 사람들 삶을 옮겨 보여줄 때에는 나 스스로 살아냈고 살아가며 살아가려는 결에 맞추어 이 가슴을 고즈넉히 보여줍니다.

 잘난 모습이 아닙니다. 못난 모습 또한 아닙니다. 꾸밈없는 모습입니다. 수수한 모습입니다. 여느 모습입니다. 흔한 모습입니다. 사진 한 장에 담는 삶이란 더없이 흔한 삶입니다. 사진 한 장으로 옮기는 사람 이야기란 참으로 너른 사람 이야기입니다. 사진 한 장에 적바림하는 삶터 자국이란 대수롭다 할 만한 작은 자국입니다.

 사진 한 장을 담을 때에는 내가 살아낸 만큼 담기 때문에 내 옆으로 스쳐 지나가며 바라보지 못한 모습을 ‘잃기’ 마련입니다. 나로서는 느끼지 못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했으니 아예 ‘모른다’ 할 만한 모습인데, 사진쟁이한테는 이렇게 ‘모른다’ 할 만한 모습이란 ‘잃은’ 모습입니다. 처음부터 얻지 못한 모습이라고도 할 터이나, 사진쟁이 삶을 되새긴다면 사진쟁이로서 ‘얻지’ 못한 ‘잃은’ 모습이요, ‘찾지’ 못했고 ‘나누지’ 못한 셈입니다.

 추천글을 가만히 읽습니다. 한정식 교수님 말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작품이요, 작품이 곧 그 사람”이란 말 그대로입니다. 김보섭 님은 김보섭 님대로 바라본 ‘중국사람 골목’이고, 이 모습을 사진책 하나로 말끔히 엮습니다. 이 사진을 바라보는 한정식 교수님은 한정식 교수님대로 ‘중국사람 골목’을 이러한 사진 몇 가지로 읽을밖에 없습니다. 몸으로 부대끼거나 몸소 찾아가서 바라보며 맞아들인 중국사람 골목이 아니었으니, 추천글을 적을 때에 이렇게만 적을 뿐입니다. 더 오래 더 많은 사람을 마주하며 더 긴 말마디를 들었다 해서 중국사람 골목 담은 사진이 더 깊거나 더 넓거나 더 애틋할 수 없어요. 이야기를 이루어 내자면, 얼굴 주름살이 아닌 얼굴 주름살에 밴 삶을 사진으로 담아야 합니다. 이야기를 글로든 그림으로든 사진으로든 엮어 나누려 한다면, 이 사람 저 사람 얼굴 주름살 모습이 아닌 이 사람은 이 사람 결대로 어떤 삶이며 저 사람은 저 사람 굳은살마냥 어떤 넋인지 차근차근 읽어내고 담아내어 보여야 합니다. 참다이 읽지 못하며 찍는 사진은 잃어버린 사진입니다. 착하게 삭이지 못하며 보여주는 사진은 잃어버린 삶입니다. (4343.11.11.나무.ㅎㄲㅅㄱ)


― 청관 (김보섭 사진,눈빛 펴냄,2010.3.12.(고침판)/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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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11-11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본적으로 보급형 DSLR의 경우 셧터수명이 보통 몇만컷이라고 하더군요(사실 필림의 경우라면 평생쓰고다 남을 숫자이지만..DSLR의 경우 필림압박이 없고 연사놀이로 금방 몇만컷이 나옵니다).따라서 좀 오래 쓰실려면 아무래도 각사에서 나오는 플래그쉽 카메라를 추천해 드립니다.최소 셧터박스 수명이 15만~30만컷이라고 하니 굉장히 튼튼하지요.게다가 좀 예전거은 이제 50만원대로 중고 구입이 가능하니 쓸만하실 겁니다.
예전에 숨책에서 된장님을 봤을적에 DSLR을 가지고 계신것을 봤는데 그리 많이 도난당하셨는줄 몰랐네요.그 당시에도 자전거를 타고 책과 무거운 DSLR을 가지고 다니시니 무척 힘들어 보이서더군요.이기회에 차라리 작고 가벼운 하이엔드 카메라가 좋으실듯 합니다.

숲노래 2010-11-11 14:06   좋아요 0 | URL
작고 가벼운 사진기도 나쁘지는 않지만, '반사경'이 너무 작아서 제가 바라는 '각도'가 나오지 않는답니다 ^^;;; 그래서 헌책방 사진은 필름 사진으로 찍곤 하는데, 요사이는 슬라이드필름 값을 댈 수 없어, 칼라사진은 디지털로 찍어요. 디지털 작은 기종 가운데에도 1미터쯤 되는 크기로 뽑아도 깨지지 않으면서 '각도'가 비틀리지 않으면서 넓게 나오는 기종이 있다면 쓸 만하겠지요 ^^;;;

돈도 돈이지만, 사진기 만드는 회사에서 '전문가 기종'은 너무 좁게만 만들어서 몇 가지 기종 아니면 쓸 수 없도록 한답니다. '여느 즐김이 기종'은 거의 껍데기 모양만 바꾸어 수만 가지를 내놓는데, 다들 고만고만한 장단점이 있어 섣불리 쓰기 어려워요. 장점만 있는 사진기를 만든다고 돈이 더 들지는 않습니다만... 장사이기 때문에 어려워요...

카스피 2010-11-12 10:45   좋아요 0 | URL
음 각도라 하면 화각을 말씀하시는 건가요.좁은 헌책방 사진을 찍으시려면 필히 광각 렌즈가 필요하시겠지요.요즘 하이엔드로 24mm까지 지원하는데 그보다 더한 것은 DSLR도 왜곡 현상이 심하지 않을가요.

숲노래 2010-11-12 22:57   좋아요 0 | URL
광각을 쓸 때에 24미리 밑으로 내려가면 왜곡이 커서 거의 못 쓴답니다. 24미리도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왜곡이 잘 생기고요. 더구나, '값이 싼' 렌즈는 왜곡도 왜곡이지만 화각이 너무 좁답니다. 디지털사진기로 화각과 왜곡을 줄이려면, 기본 천만 원에 이르는 장비를 써야 하니까, 저로서는 꿈조차 못 꾸고, 값싼 사진기하고 옛날 필름사진기로 아쉬운 대로 화각과 왜곡을 겨우 줄이며 사진을 찍어요 ^^;;;
 
내가 못 본 지리산 - 사진가 이창수의 산마을 십 년
이창수 지음 / 학고재 / 2009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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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을 보여주고 싶어 사진을 찍을까
 [찾아 읽는 사진책 5] 이창수, 《내가 못 본 지리산》(학고재,2009)


 1985년부터 사진기자로 열여섯 해 일을 하다가 2000년부터 지리산과 섬진강이 어우러진 악양골 노전마을에서 살아가며 차 농사와 감 농사를 짓는 가운데 순천대학교 사진예술학과 겸임교수로도 일한다는 이창수 님이 내놓은 사진책 《내가 못 본 지리산》을 진작에 읽었습니다. 이창수 님은 “먼 길 달려온 햇빛이 논에 내려 빛잔치를 벌입니다(61쪽).” 하고 말할 줄 압니다. “마지막 모내기가 바쁜 논은 연둣빛 호수입니다(42쪽).”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산중에 사는 즐거움이란 바로 계절의 뒤바뀜을 실시간으로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겁니다(30쪽).” 하고 말하며 웃겠지요. 그러나 이 사진책에서 빛잔치와 연두빛 호수와 꾸준히 뒤바뀌는 철을 찬찬히 느끼기는 어렵구나 싶습니다. 사진과 글을 담은 이창수 님부터 “노전마을에서 우리 집 가는 길은 악양면의 ‘스카이웨이’입니다(34쪽).” 하고 말하거든요.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며 아름답고 살갑다 할 만한 시골 삶자락을 고이 선보인다 하는 책 《내가 못 본 지리산》인데, 아직까지 도시에서 하듯이 ‘스카이웨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진작에 이 책 읽었던 지난해 어느 날, 책을 덮으며 끝자락에 석 줄을 적바림했습니다.

 첫째 줄. 무엇을 말하고 싶어서 글을 썼을까.

 둘째 줄. 무엇을 보여주고 싶어서 사진을 찍었을까.

 셋째 줄. 무엇을 나누고 싶어서 책을 냈을까.

 74쪽에 실어 놓은 나락빛 사진이 참 좋다고 느꼈습니다. 다만, 이 사진 하나가 좋다고 느꼈습니다. 다른 사진을 볼 때에는 ‘빛잔치’가 무엇일까 하며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했습니다. 연두빛 호수라 하던 사진은 이창수 님이 스스로 이렇게 말했으니 연두빛으로 물든 못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철이 바뀌는 산골마을이라 말은 하면서 정작 철이 바뀌는 사진을 찬찬히 실어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바로 이 한 장’이라 할 만한 사진이 없기 때문인지 모르지요. 그러나 ‘바로 이 한 장’이라 할 만한 사진은 없어도 됩니다. 마음으로 와닿는 사진이면 넉넉합니다. 지리산골 예술쟁이들 사진을 잔뜩 싣거나 이들 이야기를 찬찬히 늘어놓기보다, 그저 이창수 님이 살아가는 터전에서 이창수 님이 가슴으로 받아안은 고운 빛잔치를 찬찬히 보여주기만 하면 됩니다. 빛잔치라 했지 글잔치라고는 안 했지요? 빛잔치라 하셨지 사람잔치라고는 안 했잖아요.

 시골사람을 만나 삶을 귀담아들으면 되는데, 구태여 취재를 하듯 다가설 까닭이란 없어요. 시골사람 시골살이를 차근차근 누리거나 즐기면 넉넉하지, 따로 글로든 그림으로든 사진으로든 옮겨야 할 까닭은 없어요. 반드시 글로 옮기거나 그림으로 다시 그리거나 사진으로 거듭 찍어야 하는 삶이 아닙니다. 가붓이 즐기면 넉넉하고, 살뜰히 어루어지는 그대로 느긋합니다.

 글에 서린 빛을 보여주고 싶을 수 있고, 사람에 어린 빛일 담고 싶을 수 있겠지요. 어느 빛이든 더없이 좋았기 때문에 혼자서만 즐길 수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서두른다고 일이 되지 않아요. 서두른다고 글이 멋있어지지 않아요. 서두른다고 사진이 아름다울 수 없어요. 마을 이장님은 이창수 님한테 한 마디 툭 뱉습니다. 아니, 마을 이장님은 당신이 살아온 결 그대로 당신 삶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를 사랑스레 건넵니다. “아녀, 지금이 딱이야. 봄이 바빠야 가을이 넉넉하지. 이제 일할 때가 되니 겁나나(46쪽)?” 서둘러도 안 되고 늦추어도 안 됩니다. 딱 이때에 이만큼 해야 합니다. 글이든 사진이든, 또 이창수 님이 대학교에서 맡은 강의이든 언제나 딱 고만큼 고 자리에서 고롷코롬 해야 합니다. 빛잔치란 빛이 넘치기에 이루어지는 잔치가 아닙니다. 빛이 모자라다고 이루어지지 않는 잔치 또한 아니에요.

 “라면을 끓여 먹던 도회지 생활은 바빴습니다. 정신없이 흘러갔습니다. 나름 의미 있는 것과 의미 없는 것이 뒤섞이며 그렇게 지냈습니다. 도회지에서 원없이 일했고 원없이 놀았습니다(21쪽).” 하고 말하던 이창수 님은 아직까지 라면 수렁에서 허우적거리는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라면을 먹든 말든 무슨 대수랍니까. 시골사람도 라면을 즐기는데요, 뭐. 도시사람 가운데 라면을 안 즐기는 사람이 있고, 시골사람 가운데 라면을 아주 즐기는 사람이 있어요. 도시사람이면서 바쁜 일에 얽매이지 않으며 내 삶을 따숩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한편, 시골사람이지만 너무 바쁜 일에 허우적거리며 허둥지둥 ‘소담스러운 하루와 한때’를 깡그리 놓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쩌면, 이창수 님은 도시에서도 몹시 바빠 도시살이 아름다움을 놓쳤고, 시골에서도 지나치게 바빠 시골살이 아리따움을 놓치지는 않나 걱정스럽습니다.

 라면 한 그릇을 아주 느긋하게 끓여 매우 느긋하게 즐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밭에서 거둔 푸성귀랑 멧자락에서 캐거나 뜯은 나물이랑 밥상을 차렸지만 헐레벌떡 주워먹기 바쁜 사람 또한 많습니다. 누군가는 스스로 농사를 지은 쌀을 손수 빻아 몸소 쌀을 일고 씻어 불린 뒤 밥을 하는 가운데 다른 찬거리를 마련하여 밥상을 차립니다. 누군가는 손전화 꾹꾹 눌러 바깥밥을 시켜 카드로 긁어 후딱 먹고는 비닐봉지에 대충 묶어 아무 데나 내놓거나 땅에 파묻습니다.

 사진은 손이 아닌 마음이 찍습니다. 밥은 손이 아닌 마음으로 마련하여 마음으로 먹습니다. 찍는 사진이나 찍힌 사진이나 마음으로 바라보며 즐깁니다. 차려 놓은 밥상이든 차리는 밥상이든 마음을 담아 나눕니다. 찍혀 준 사람이나 찍어 주는 사람이나 마음과 마음으로 사귈 때에 바야흐로 사진이 태어나고 사진이 빛납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나 살림을 하는 사람이나 마음과 마음으로 두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히도록 땀을 흘리며 사랑을 바칠 때에 비로소 삶이 아름답고 삶이 빛납니다.

 《내가 못 본 지리산》 74쪽에 실은 나락빛 사진이 좋았다고 말했는데, 이 나락빛 사진을 보면서 정인숙 님 사진책 《풍경》에 실린 나락무리가 떠올랐습니다. 《내가 못 본 지리산》 18쪽에 실린 층층논 누렇게 익은 나락 사진을 보면서 안승일 님 사진책 《굴피집》이 떠올랐습니다. 이창수 님은 이창수 님 사진을 찍고, 정인숙 님이나 안승일 님은 정인숙 님 사진이나 안승일 님 사진을 찍을 테지요. 그러면 이창수 님 사진에는 어떠한 ‘이창수 사진 빛’이 있다 말할 수 있으려나요. 이창수 님이 지리산 악양골 노전마을에 깃들어 지내며 담은 사진에는 어떤 ‘지리산 사진빛’이나 어떤 ‘지리산 악양골 사진빛’이나 어떤 ‘지리산 악양골 노전마을 사진빛’이나 어떤 ‘지리산 악양골 노전마을 이창수’ 사진빛이 감돈다 할 만한지요. 잡지사와 신문사 사진기자 노릇을 하던 때 버릇을 고스란히 움켜쥔 채 시골자락 삶결을 마구 헤집거나 후벼파지는 않나 근심스럽습니다.


.. “늙은 할망구 얼굴 찍지 말어.” “고우세요.” “곱기는 왜 아침부터 사진기 들고 다녀.” “어여 가.” ..  (37쪽)


 마을사람들은 이창수 님한테 말 한 마디 톡톡 뱉습니다. 바삐 일하느라 고단한데 말을 거니까 톡톡 뱉습니다. “아녀! 사월 이십칠일에 못자리 내려면 이제 해야 돼(40쪽).”  “없이 살다 보니 예까지 왔지, 있이 살면 이 험한 골로 누가 오나(52쪽).” “책상에서 숫자 가지고 노는 놈들이 농사를 알겠어(62쪽)?” “마누라 해 주는 게 맛있제, 내가 헌 게 맛있는가(66쪽)!” “사진쟁이는 복조리 많이 사 가서 많이 노나 줘(85쪽).” “누가 벌어 주나요, 내 안 벌면. 허리가 아파도 먹고살려면 해야지(98쪽).”

 차분한 빛 한 줄기여도 즐겁습니다. 따스한 사진 한 장이어도 기쁩니다. 살가운 글 한 줄이어도 곱습니다.

 더 많이 받아들여야 할 빛은 아닙니다. 더 많이 찍어야 할 사진은 아닙니다. 더 많이 써야 할 글은 아닙니다.

 도시이든 시골이든 한결 오순도순 살아가면 좋을 터전입니다. 내 살붙이하고 있든 감나무하고 있든 참으로 알콩달콩 속삭이면 좋을 보금자리입니다. 그예 올망졸망 손을 잡으면 좋은 이웃마을입니다. 내 살림집 자리잡은 마을도 좋고 내 살림집과 이웃한 마을도 좋아요. 천천히 거닐면 됩니다. 논둑길이든 멧등성이길이든 천천히 두 다리로 오가면 됩니다. 뭐가 그리 바빠서 짐차를 타고 대학교까지 강의를 하러 다닙니까. 무슨 가르칠 꺼리가 그리 많아서 짐차를 몰아 대학교까지 들락 날락 하며 사진 이야기를 쏟아내야 하겠습니까.

 스스로 빛나는 고운 사진잔치가 되어 《내가 못 본 지리산》이 아닌 “내가 본 지리산”이나 “내가 사는 지리산”으로 거듭날 수 있으면, 이 사진책 하나를 가슴에 품으며 사진을 찍으려 하는 어린 뒷사람한테 좋은 길잡이책으로 스며듭니다. 강의도 학문도 예술도 장사도 살림도 농사도 고스란히 책 한 권에 녹아들도록 마음을 바치는 굳은살이 그립습니다. (4343.11.9.불.ㅎㄲㅅㄱ)


― 내가 못 본 지리산 (이창수 사진·글,학고재 펴냄,2009.10.7./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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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i 2010-11-10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 내리는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힘이 들어가 있지 않은 글이란게 이런거구나 싶네요. 호기심 탓에 그간 내놓으신 글을 찾아봐야겠다 기억해 놓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장터목 산장 곁 경사에 앉아 석양에 넋을 놓던 기억이 십여 년 전이니, 그간 뭐하느라 한 번 찾질 못했나 싶은 자책이 쓸쓸해지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숲노래 2010-11-11 05:05   좋아요 0 | URL
이 나라 교수나 작가나 수많은 사람들이 조금 더 예쁘며 착하게 살아가며 예쁘고 착한 책을 내놓을 날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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