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안 풍경 전집 - 김기찬 사진집
김기찬 지음 / 눈빛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골목안 풍경 전집>을 놓고 2011년에 느낌글을 쓴 적 있는데,

2015년을 맞이해서 느낌글을 아주 새롭게 다시 쓴다.

왜 새롭게 다시 쓸까?

아름다운 사진으로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니까.


..


사랑·꿈으로 오래도록 품을 들인 ‘골목이웃’ 사진



 책이름 : 골목안 풍경 전집

 김기찬 사진

 눈빛 펴냄, 2011.8.27. 29000원



  골목에 깃들어서 사진을 찍은 적이 있는 사람은, 골목으로 찾아와서 골목길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적에 빛살과 그림자를 어떻게 가누느냐에 따라 ‘내 눈에 비치는 골목 모습’뿐 아니라 ‘내가 찍은 사진에 그려지는 골목을 바라볼 다른 사람이 느낄 모습’이 얼마나 달라지는가를 압니다. 조금만 빛살을 바꾸어도 골목동네가 맑으면서 밝게 보입니다. 조금만 빛살을 어둡게 하거나 그림자를 짙게 담으면 골목동네가 퀴퀴하거나 어둡게 보입니다.


  골목길을 끼는 골목동네에 있는 작은 집에서 살던 사람은, 골목동네를 찾아와서 사진을 찍는다고 하는 사람 가운데 ‘골목사람 삶과 넋과 꿈을 사랑스레 헤아리거나 어깨동무하며 사진기를 손에 쥐는 사람’이 얼마나 적은지를 압니다. 무척 많은 사람들은 으레 ‘스쳐 지나가는 구경꾼 눈길과 마음길과 손길’로 사진기를 다룰 뿐입니다. 골목동네에서 사는 사람을 ‘이웃으로 느끼’면서 ‘우리 이웃’이 누리는 삶과 넋과 꿈에 함께 젖어들면서 어깨동무하려 하는 사람은 대단히 적습니다.


  ‘살면서 찍는 사진’하고 ‘구경하며 찍는 사진’은 다릅니다. 골목동네에 살면서 모든 빛과 어둠을 고스란히 바라보면서 봄·여름·가을·겨울을 누리는 몸으로 아침·낮·저녁·밤·새벽을 마주하는 사진이랑, 골목여행을 한다면서 어쩌다가 한 번 찾아와서 한두 시간 슥 훑고 지나가며 찍는 사진은 사뭇 다르기 마련입니다.



어릴 적 아름답게 채색되었던 기억을 더듬으며 내가 뛰어놀던 골목을 찾는다. (33쪽)



  1938년에 태어난 김기찬 님은 2005년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골목안 풍경”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진책을 모두 여섯 권 내놓았고, 《잃어버린 풍경》과 《역전 풍경》이라는 사진책을 하나씩 내놓았습니다. 《골목안 풍경》은 이 이름 그대로 ‘서울에서 골목동네를 이루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모습(풍경)’을 담아서 나누는 사진이면서 이야기이고 사랑입니다. 2011년 8월에 새롭게 나온 두툼한 《골목안 풍경 전집》(눈빛)은 골목동네에서 사랑과 이야기를 찾아서 ‘골목사람을 이웃으로 여기며 어깨동무를 하려던 사람’이 걸어온 발자국을 그러모은 사진책입니다.


  아름다이 아로새긴 옛이야기입니다. 아름답게 갈무리한 옛노래입니다. 아름다운 눈빛으로 돌아보는 옛사랑입니다. 그런데, 옛이야기는 그저 옛날 옛적에 머물지 않습니다. 작은 사진기를 손에 쥐고 골목동네를 하루 내내 거니는 사람은 ‘이녁이 어릴 적에 본 모습(풍경)’이 ‘오늘 이곳에서도 고스란히 흐르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사람은 다르지만 삶은 같습니다. 시대는 다르지만 사랑은 같습니다. 구불구불 이어진 골목길은 다르지만, 이 골목길을 오르내리면서 일하거나 노는 사람들이 짓는 웃음꽃은 한결같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뉴욕의 거리를 걷다 보면 도대체 인간의 체취를 찾을 길이 없다. 대신 마드리드의 뒷골목이나 멕시코 외곽에 오래된 도읍의 골목길에서 마주쳤던 홍미진진한 이색 풍물이 그 나라의 진정한 얼굴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김형국/234쪽)



  사람내음을 맡으면서 사진을 한 장 찍습니다. 사랑내음을 맡으면서 사진을 두 장 찍습니다. 살내음을 맡으면서 사진을 석 장 찍습니다. 어느덧 필름 한 통을 다 씁니다. 새 필름을 넣어 감다가 빙그레 웃습니다. 사진을 찍는 ‘늙수그레한 어른’은 어릴 적에 마냥 골목을 뛰놀면서 놀았습니다. 어릴 적에 ‘내가 놀던 모습을 사진으로도 찍어서 남겨야지!’ 하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거나 아예 없다고 할 만합니다. 1940∼50년대에 ‘골목아이’로 뛰놀던 아이 가운데 ‘내가 오늘 이곳에서 노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자’고 생각한 아이가 있을까요? 아마 사진기라는 기계조차 모르기 일쑤였을 테지요.


  그런데, 1940∼50년대에 골목아이로서 골목길을 뛰놀던 아이는 ‘마음속으로 사진을 찍으며 놀았’습니다. 사진기는 없으나, 손가락으로 찰칵 하고 찍습니다. 필름도 뭣도 없지만, 온몸과 온마음에 ‘골목에서 놀던 이야기’를 깊디깊이 아로새깁니다.


  이제 ‘골목아이’는 무럭무럭 자라서 어른이 됩니다. 골목아이는 한손에 작은 사진기를 하나 쥡니다. 옛생각에 잠겨 골목길을 걷다가 ‘어쩜 내가 어릴 적에 놀던 모습하고 이리도 똑같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웃음하고 눈물이 함께 흐릅니다. 웃으면서 사진을 찍다가 울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골목길에서 만난 할머니는 늘 골목에 의자를 내다 놓고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소일하곤 했다. 그런데 몇 해 지나지 않아 할머니를 영정 속에서 볼 수 있었다. (385쪽)



  아름다이 아로새긴 옛이야기란 바로 ‘풍경’입니다. 김기찬 님은 이녁 어린 날을 아름답게 돌아보면서 사진기를 손에 쥡니다. 누군가한테 보여준다거나 전시회를 연다거나 기록을 한다는 사진이 아니라, 스스로 즐겁게 웃는 사진이요, 스스로 기쁘게 눈물에 젖는 사진입니다. 어제 살던 아이가 누리던 이야기를 오늘 사는 아이가 누립니다. 앞으로 모레나 글피가 되면, 이 골목은 재개발 때문에 사라질 수 있습니다. 현대 도시문명이 널리 퍼지면서 ‘골목삶(골목 문화)’은 뿌리뽑힐 수 있습니다.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골목 안쪽까지 파고들면서, 골목길에 놓던 평상이나 돗자리는 밀려날 수 있습니다.


  골목사람은 늘 오늘을 삽니다. 이튿날 철거가 되어 쫓겨나야 하더라도 텃밭을 가꿉니다. 골목집 한 채가 헐려서 사라지면, 누가 시키지 않았어도 돌을 고르고 흙을 북돋아서 씨앗을 심습니다. 남새 씨앗도 심고 나무 씨앗도 심습니다. 언제 재개발이 될는 지 모르지만 나무를 키워서 열매까지 얻습니다. 골목동네마다 스무 해나 서른 해가 넘는 감나무가 꼭 있습니다. 마흔 해를 묵은 오동나무나 쉰 해를 묵은 호두나무가 있기도 해요.


  그리 넓지 않은 골목인데, 아니 퍽 좁다고 할 만한 골목인데, 시멘트로 깔린 골목길 한쪽을 쪼아서 조그맣고 길다란 텃밭을 마련합니다. 시멘트 바닥을 쫄 수 없으면 스티로폼 상자나 빈 통을 그러모아서 꽃그릇으로 삼습니다. 작은 꽃그릇에서 고추꽃이 피고 부추꽃이 핍니다. 작은 꽃그릇에 상추씨를 심어서 틈틈이 상추잎을 얻은 뒤에는 상추꽃을 보고 상추씨를 새로 얻어서 이듬해에 다시 상추씨를 심습니다.



작가의 마음이 따뜻해야 사진도 따뜻한 온기를 품고 뿜는다. 비평적인 사람의 사진에서는 날카롭게 번득이는 사진에서 차가움이 먼저 느껴진다. 일부러 따뜻한 채, 날카로운 채 위장하려 해도 되지 않는 게 사진이다. 단순히 기계로 찍어 내기만 하는 것 같은 사진이 ‘작품’이 되고 ‘예술’이 될 수 있는 것이 이 때문이기도 하다. (한정식/5쪽)




  김기찬 님 사진책 《골목안 풍경 전집》에 나오는 사람들이 웃습니다. 아이도 웃고 어른도 웃습니다. 아기도 웃고 할매랑 할배도 웃습니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 ‘낯선 사진쟁이 앞’에서 웃음을 터뜨릴까요? 바로 김기찬 님은 이들 골목사람을 ‘피사체’나 ‘구경할 만한 모습’이 아니라 ‘이웃’이고 ‘동무’이며 ‘어여쁜 우리 아이’로 맞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이웃으로서 사진기를 손에 쥐었으니 스스럼없이 사진을 찍다가, 한참 동안 그늘에서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동무로서 사진기를 손에 들었으니 활짝활짝 웃으면서 놀다가 문득 사진 한 장 찍을 수 있습니다.


  김기찬 님은 ‘골목이웃’인 골목사람을 담벼락에 붙여놓고 증명사진 찍듯이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골목이웃이 골목에서 일구는 ‘골목삶’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한 장 찍습니다. 골목삶이 드러날 수 있는 빛살하고 그림자를 살핍니다. 골목노래를 부를 만한 이야기로구나 하고 느낄 적에 햇볕과 햇빛과 햇살을 골고루 살펴서 ‘작은 골목동네에 무지개가 드리우는’ 사진을 빚습니다.


  칼라사진이라서 무지개빛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칼라필름으로 찍더라도 ‘너와 내가 이웃이 아닌 채’ 찍으면 시커먼 그늘이 지기 마련입니다. 흑백필름으로 찍더라도 ‘나와 너는 늘 살가운 이웃’으로 서면서 찍으면 맑으면서 밝은 해님이 방긋 고개를 내밀기 마련입니다.


  김기찬 님은 오래도록 다리품을 팔아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니, 다리품을 판다기보다 오래도록 골목사람하고 이웃으로 지내다가 문득문득 넌지시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웃으로 지내기’에 자주 찾아와서 인사를 여쭙니다. 이웃으로 지내니까 꾸준히 찾아와서 말을 섞고, ‘기념사진’을 찍어서 골목이웃한테 나누어 줍니다.




골목에 들어서면 늘 조심스러웠다. 특히 동네 초입에 젖먹이 아기들을 안고 있는 젊은 엄마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댄다는 것은 동네에서 쫓겨나기 알맞은 행동이었다. 사실 젊은 엄마들을 찍을 수 있게 된 것은 내 나이도 오십이 넘어서였다. 오랜 시간을 두고 서서히 접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590쪽)



  호젓한 골목길을 걷다 보면 어디에서나 골목꽃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골목꽃은 ‘빈 식용유 통’이나 ‘빈 스트로폼 상자’에서 피어날 수 있습니다. 골목꽃은 꽃그릇이 아닌 길바닥이나 담벼락에 뿌리를 내려서 피어날 수 있습니다.


  한갓진 골목동네에서 골목이웃을 만나러 마실을 다니다 보면 어디에서나 골목나무를 마주할 수 있습니다. 내가 골목동네에서 마주한 골목나무를 꼽아 보자면, 감나무, 배나무, 능금나무, 포도나무, 살구나무, 석류나무, 대추나무, 복숭아나무, 오동나무, 탱자나무, 모과나무, 매화나무, 밤나무, 호두나무, 배롱나무, 수수꽃다리, 무화과나무 …… 들입니다. 수세미 넝쿨이 전봇대나 전깃줄을 타고 오르다가 큼지막한 열매를 맺는 모습도 쉽게 봅니다. 굵고 큰 호박알이 담벼락이나 지붕을 올라탄 모습도 어렵잖이 봅니다.




  골목이웃은 서로 열매를 나눕니다. 골목이웃은 서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골목이웃은 서로 마음을 나누면서 꿈과 노래와 웃음을 나눕니다.


  나는 인천이라는 고장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내 어릴 적 동무는 모두 골목동무이고, 나도 내 동무한테는 골목동무이면서 서로 골목이웃입니다. 그런데, 이 골목동네에서 살다가 ‘사진기를 손에 쥐고 찾아오는 사람’을 보면 으레 공무원이나 작가인데, 공무원은 공무원대로 ‘하루 빨리 이 골목동네를 밀어내어 아파트를 높이 세우는 정책에 자료로 쓸 사진’을 찍습니다. 작가는 작가대로 ‘가난한 옛날을 추억처럼 되새기는 아련한 흑백필름 영화 같은 모습으로 보여질 만한 구도’를 잡아서 사진을 찍습니다.


  골목동네에서 골목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골목동네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 공무원이나 작가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스치듯이 구경하면서 바라보다가 사진을 찍는 눈매하고, 한동네 이웃으로서 어깨동무를 하며 사진을 찍는 눈빛은 사뭇 다릅니다. 어쩌다가 한 번 사진여행이나 출사를 와서 사진을 찍는 손매하고, 한동네 사람으로서 즐겁게 뿌리를 내리며 사진을 찍는 손길은 매우 다릅니다.


  한 달을 살며 한 달 동안 마주한 기쁨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한 해를 살며 한 해 동안 겪은 즐거움을 사진으로 옮깁니다. 한 삶을 오롯이 가꾸며 한 삶에 걸쳐 빚은 모든 꿈과 노래와 웃음을 사진으로 아로새깁니다.




이 집을 계단집이라고 했는데 아주머니들이 많이 모여들어 정담을 나누는 곳이었다. 오른쪽에 앉아 이가 아프신지 인상을 쓰고 계신 분이 왕초 할머니시다. 이곳에 모이는 분들 중에 연세가 제일 많아 왕초 언니라고도 했다 … 11년 후, 그동안 왕초 할머니와 나는 많이 친해졌다. 왕초 할머니가 사진 촬영하는 나를 놀리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550쪽)



  열 살 어린이는 골목에서 신나게 뛰놉니다. 스무 살 젊은이는 골목에서 벗어나 다른 삶터를 꿈꿉니다. 서른 살과 마흔 살을 거치면서 다른 고장에서 바지런히 일하다가, 쉰 살 언저리가 되면서 골목을 새삼스레 다시 봅니다. 예순 살을 지나면서 ‘골목을 사진으로 찍는 일은 기록도 추억도 되새김도 정취도 아닌’ 줄 시나브로 또렷하게 알아차립니다. 골목을 사진으로 찍는 일이란, 어른으로서 누리는 ‘골목놀이’입니다. 삶이 태어나는 자리를 사랑하는 눈길로, 삶을 가꾸는 보금자리를 어루만지는 손길로, 골목동네 이야기를 사진으로 영글어 놓습니다.


  김기찬 님이 찍은 사진이 좋아 보여서 골목길을 사진으로 찍어도 재미있습니다. 다만, 언뜻 스치듯이 찍거나 한두 번 찍고 그친다면, ‘김기찬 님이 골목동네를 마음으로 끌어안으면서 보여준 숨결’을 사진으로 되살리지 못해요. 《골목안 풍경 전집》에 흐르는 사진은 ‘그저 풍경’이기만 하지 않습니다. “골목안 노래 풍경”이고 “골목안 사랑 풍경”이며 “골목안 놀이 풍경”에다가 “골목안 이야기 풍경”입니다. 노래와 사랑과 놀이와 이야기는 구경꾼 눈길로는 담아낼 수 없습니다. 모든 골목집에 햇볕이 손바닥만큼 골고루 비추듯이, 모든 골목동네 사람들을 살가운 이웃으로 느끼는 가슴이 되면서 찬찬히 다가서려는, 그러니까 ‘골목을 내 몸과 마음으로 살아내는’ 발걸음과 손짓이 될 적에 비로소 “골목 사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다가서면서 찍지 않는 사진이라면, 골목동네를 빨리 허물어서 높은 아파트로 바꾸는 정책을 밀어붙이려고 ‘일부러 퀴퀴하고 어둡게 보이도록’ 사진을 찍는 개발업자 사진질하고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잘나지도 않으나 못나지도 않은 이웃이기에 빙그레 웃는 낯빛이 곱습니다. 가난하든 가난하지 않든 손바닥만 한 땅뙈기를 꽃밭하고 텃밭으로 일구는 이웃이기에 꽃내음을 함께 맡으면서 정갈한 바람을 마십니다.


  골목꽃이 사진꽃으로 거듭납니다. 골목노래가 사진노래로 다시 태어납니다. 골목빛이 사진빛을 새롭게 북돋웁니다. 골목삶을 사진삶으로 맞아들여서 이 지구별에 따스하고 넉넉한 바람 한 줄기를 일으킵니다. 오랜 나날 품을 들였기에 내놓을 수 있는 《골목안 풍경 전집》입니다. 사랑하고 꿈으로 오래도록 품을 들인 ‘골목이웃’ 사진이 《골목안 풍경 전집》에서 그치지 않고, 이 나라 젊은 작가들이 새로운 눈빛과 손길로 새로운 아름다움을 앞으로도 조촐히 나누어 줄 수 있기를 빕니다.


  그러고 보니, ‘골목’을 이야기하는 사진을 찬찬히 바라보다가 ‘골목길’에 이은 ‘골목집·골목사람·골목꽃·골목나무·골목동네·골목이웃·골목아이·골목삶’ 같은 낱말을 하나씩 새로 짓습니다. 이런 낱말은 한국말사전에 없을 텐데, 사전에 없는 말이어도 즐겁게 쓰고 싶습니다. 골목을 사랑스레 바라본다면 ‘골목밭·골목놀이·골목살림·골목사랑’ 같은 낱말도 새삼스레 지을 수 있겠지요. 4348.7.29.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송이버섯 이야기 - 하늘과 맞닿은 화원에서 펼쳐지는 대한민국 구석구석 사진 동화집 4
신응섭 글.사진 / 여우별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어린이가 읽는 사진책 27



솔숲바람 먹는 예쁜 이웃, 송이버섯

― 송이버섯 이야기

 신응섭 글·사진

 여우별 펴냄, 2012.9.20.



  그늘진 곳이라고 해서 버섯이 꼭 자라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늘이 지면서 나무가 우거진 곳이라면 버섯이 있을까 하고 두리번거리곤 합니다. 도시에서는 우리가 먹을 만한 버섯을 찾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도시 한복판에는 아스팔트와 자동차와 건물이 가득하니까, 여느 풀포기를 찾아보기도 어려워요. 게다가 도시에서는 땅값이 비싸다고 하니까 나무가 우거진 자리를 좀처럼 마련하지 않고요.


  도시를 벗어나서 시골에서 지낸다면, 숲에 깃들어 버섯을 찾아볼 만합니다. 숲에서 숲나물을 캐면서 버섯을 함께 딸 수 있습니다. 버섯은 아무 곳에서나 돋지 않으나, 버섯이 한 번 돋은 곳이라면 ‘버섯씨’도 틀림없이 그 둘레에 퍼졌을 테니, 앞으로도 버섯을 찾아볼 만합니다.



태백산의 높고 가파른 고갯길을 오릅니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지만 숲은 생명들의 소리없는 움직임으로 가득합니다. (15쪽)




  신응섭 님이 사진으로 빚은 이야기책인 《송이버섯 이야기》(여우별,2012)를 읽습니다. 신응섭 님은 여러 가지 버섯 가운데 소나무 둘레에서 잘 자라는 송이버섯을 오랫동안 찾아다녔다고 합니다. 송이버섯을 따려고 찾아다녔을까요? 송이버섯을 찾아서 즐겁게 딸 수도 있을 텐데, 이보다는 송이버섯이 어떻게 자라는가 하는 이야기를 어린이하고 나누고 싶어서 ‘어린이가 함께 보는 이야기 사진책’을 엮습니다. 소나무와 함께 송이버섯을 깊이 사랑하는 마음을 이 나라 어린이가 기쁘게 가꿀 수 있기를 바라면서 사진책 한 권을 내놓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요즈음 어린이는 버섯을 숲에서 구경하기 어렵습니다. 버섯 모습으로 그리는 만화나 그림은 둘레에서 쉽게 볼 수 있고, 가게에 가면 팩에 담기거나 랩에 싸인 버섯을 손쉽게 살 수 있습니다만, 요즈음 어린이는 숲바람을 쐬고 숲내음을 맡으면서 ‘숲이웃’ 가운데 하나인 버섯을 마주하기가 몹시 어려워요.



어디선가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후두둑후두둑! (40쪽)





  《송이버섯 이야기》는 송이버섯이 이제 막 땅에서 돋는 모습부터 보여줍니다. 아니, 송이버섯이 잘 자라는 두멧자락하고 숲을 먼저 보여줍니다. 숲이 있어야 나무가 있고, 나무가 있어야 버섯이 있습니다. 숲이랑 나무랑 버섯이 있는 곳에는 다른 숲이웃이 함께 있습니다. 크고작은 숲짐승이 숲에 살지요.


  송이버섯은 숲에서 돋는 버섯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람도 송이버섯을 먹고, 숲짐승도 송이버섯을 먹습니다. 사람이나 숲짐승이 송이버섯을 먹지 않으면, 송이버섯은 천천히 갓을 벌리면서 씨앗을 흩뿌리고는, 다시금 천천히 숨이 죽으면서 흙으로 돌아갑니다.


  솔숲에 송이버섯이 널리 퍼지려면, ‘아무도 안 따먹은 송이버섯’이 있어야 해요. 꽃이 피고 씨앗을 흩뿌리는 송이버섯이 있으니 차츰차츰 송이버섯이 퍼질 수 있습니다.


  이리하여, 숲에서 버섯을 따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대로 버섯을 훑지 않습니다. 닥치는 대로 모든 버섯을 다 따지 않아요. 앞으로 씨앗이 두루 퍼져서 이듬해에도 즐겁게 버섯을 거둘 수 있기를 바라면서 알맞게 ‘남겨’ 놓습니다.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사람도 새끼 고기까지 모조리 훑지 않아요. 새끼 고기가 남아야 나중에 다시 물고기를 낚을 수 있습니다.



송이버섯의 갓이 활짝 꽃피었습니다. 화려한 불꽃인 양, 머나먼 외계에서 날아온 우주선인 양 신비로움을 자아냅니다. 소나무의 잔뿌리에서 자라나 온 세상에 향기를 흩뿌리고, 자신은 기꺼이 소나무의 영양분이 됩니다. (54쪽)




  《송이버섯 이야기》를 살며시 덮습니다. 해마다 여름이면 우리 집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골짜기로 나들이를 갑니다. 골짝물에 몸을 담그면서 더위를 식힙니다. 자전거로 골짜기를 오르내리면서, 또 자전거를 숲 어귀에 세워 놓고 두 다리로 골짝물까지 걸어가면서, 둘레에 버섯이 돋았나 하고 살핍니다.


  때로는 큰갓버섯을 만나고, 때로는 달걀버섯을 만납니다. 아직 이름을 모르는 버섯을 만나기도 합니다. 잘 자란 버섯을 즐겁게 따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아직 어린 버섯은 더 자라기를 바라면서 지켜봅니다. 지난해에 만난 버섯을 올해에도 만나기를 바라고, 올해에 만나는 버섯을 이듬해에도 만나기를 바라요.


  숲이 파헤쳐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니, 숲이 숲 그대로 고이 제자리를 지키면서 짙푸른 바람을 베풀어 주기를 바랍니다. 시골마을 작은 숲이 토목공사나 4대강 지류사업 따위로 망가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니, 시골마을 시골사람 누구나 조그마한 시골 숲자락을 아끼고 돌보면서 오래오래 이 짙푸른 아름다움을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무가 자라고, 풀이 돋으며, 꽃이 피고, 버섯이 퍼지고, 숲짐승이 뛰놀며, 멧새가 노래하는 숲이 사랑스럽습니다. 사랑스러운 숲을 곁에 두면서 삶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은 마음과 몸을 씩씩하고 튼튼하게 가꿉니다. 4348.7.14.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포토닷 Photo닷 2015.7 - Vol.20
포토닷(월간지) 편집부 엮음 / 포토닷(월간지)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찾아 읽는 사진책 209



스스로 노래가 되어 노래하는 사진을 찍다

― 사진잡지 《포토닷》 20호

 포토닷 펴냄, 2015.7.1.

 정기구독 문의 : 02-718-1133



  날마다 밥을 먹습니다. 쌀알을 끓여서 밥을 짓기도 하고, 밀을 반죽해서 빵을 굽기도 합니다. 고기를 장만해서 익히기도 하며, 풀을 뜯어서 나물로 무치기도 합니다. 어떤 먹을거리를 받아들여도 언제나 밥입니다. 즐겁게 맞이하는 밥 한 그릇이요, 기쁘게 나누는 밥 한 끼니입니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지어서 아이들하고 먹으면서 생각합니다. 밥맛이 좋으려면, 밥을 짓는 사람 마음이 좋아야 합니다. 좋지 않은 마음이 되어 밥을 지으면, 이 기운이 고스란히 밥에 깃듭니다. 좋은 마음이 되어 밥을 지으면, 이 기운도 고스란히 밥에 깃들어요. 그러니, 내 마음이 어떠한가에 따라, 맛난 밥도 짓고 안 맛난 밥도 지어요.



나는 도시와 같은 어떤 공간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 관찰하는 게 좋았다. (19쪽/김영경)


사진 중에 노란 자전거를 탄 할머니가 지나가는 배경의 낡고 허물어진 집들은 술을 제조하던 양조장이다. 그런데 지난달에 갔을 때 그곳에 포크레인이 있었다. 이처럼 지정된 보존 가옥 외에는 아주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가고 있다. (27쪽/최철민)



  사진을 찍을 적에는 ‘사진기라는 기계’보다도 ‘사진기를 다루는 사람’이 어떤 마음인가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느낍니다. 대단하거나 놀랍다 싶은 장비를 갖추었어도, 마음이 좋지 못하다면, 좋다고 할 만한 사진을 찍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마음이 즐거울 적에 사진이 즐겁고, 마음이 고울 적에 사진이 고우며, 마음이 사랑스러울 적에 사진이 사랑스럽습니다.


  사진잡지 《포토닷》 20호(2015.7.)를 읽습니다. 《포토닷》 20호는 ‘2015년 최민식 사진상’을 특집 기사로 다룹니다. 올 2015년에는 ‘최민식 사진상’을 최광호 님이 받았다고 합니다. 사진 한길을 걸어온 발자국을 돌아보면서 나누는 사진상인 만큼, 이 상을 받은 분이나 이 상을 못 받은 분 누구나 기쁘게 사진길을 더욱 씩씩하게 걸을 수 있기를 빌어요.



수많은 정치적 희생자들이 머물렀던 건물이나 장소를 촬영하는 것은 그곳에서 고통 받고 사라져 간 사람들 모두의 희생을 바라보는 과정이었다. (55쪽/다이애나 마타)


순천으로 내려와 시간이 많아졌다. 주변 환경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졌다. 책도 천천히 읽고, 사진도 천천히 하게 됐다. 기다릴 줄 알게 된 것 같다. 지방은 나름대로 새로운 작업환경을 제공하는데 여건이 좋다고 생각한다. (79쪽/지성배)



  가만히 보면, 마음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밥맛이 달라지고, 사진이 달라지는데, 이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다 달라집니다. 아이들도 마음이 안 좋으면 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장난감이 있어야 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홀가분하면서 좋은 마음일 때에 비로소 신나게 웃으면서 놀아요. 장난감이 아무리 많은들, 놀 틈을 아무리 넉넉히 내어준들, 아이들 스스로 좋은 마음으로 지내지 못한다면, 아이들 얼굴에 웃음이 흐르지 않습니다. 웃지 않는 아이들은 놀지 않고, 놀지 않는 아이들은 노래하지 않습니다. 노래하지 않는 아이들은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못하며,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밥이나 주전부리를 먹을 마음이 안 일어납니다.


  아이하고 어른은 좀 달라서, 어른은 마음이 안 좋아도 꾹 누르거나 참으면서 일을 합니다. 힘들어도 일을 하고, 지겨워도 일을 하며, 싫어도 일을 하지요. 그야말로 꿋꿋하게 일어서서 일을 하는 어른입니다. 좋지 못한 마음이어도 이 마음을 다스리면서 일을 하는 어른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면,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좋지 못한 마음으로 힘겨이 일할 적하고, 좋은 마음으로 기쁘게 일할 적에, 일하는 보람은 어느 쪽이 나을까요? 아주 마땅하게도 ‘좋은 마음으로 기쁘게 일하는 사람’이 보람을 누리면서 활짝 웃겠지요.




내 사진을 어떻게 해석하든 상관없지만 내가 가진 생각은 글로 쓸 수밖에 없다. 사진만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있지만, 글까지 보면 좀더 많은 해석과 정보를 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82쪽/최수연)


나는 내 생각을 사진이라는 매체로 표현하는 사람이고, 그 표현에 필요한 공부와 경험을 스스로 해결하는 사람이다 … 사진은 아무리 상상해도 현실에 베이스를 두기 때문에 추상이 되지 않는다 … 나는 이 책을 함께 만든 사람들의 리스트를 표지로 하고 싶었다. ‘이 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멋진 사진을 담았어요’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한 사람들을 자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93, 96, 98쪽/사이이다)



  사진은 언제나 삶을 찍습니다. 내가 살고 네가 살며 우리가 사는 하루를 사진으로 찍습니다. 나중에 포토샵으로 만지든, 처음부터 기계에 손을 보아서 ‘추상’을 사진으로 담으려 하든, ‘추상’을 담으려고 하면 ‘추상이 아닌 삶’이 있어야 합니다. 삶이 있기에 추상을 나타낼 수 있어요. 그리고, 바로 우리한테는 저마다 다른 삶이 있기에, 이러한 삶을 바탕으로 꿈을 그립니다.


  꿈이란 무엇인가 하면, 새롭게 가꾸면서 기쁘게 누리고 싶은 삶입니다. 새롭게 가꾸면서 기쁘게 누리려는 삶은 어떠한 숨결로 흐를까요? 바로 사랑으로 흐릅니다.


  이리하여, 삶을 찍는 사진은, 늘 꿈을 찍는 사진이면서, 언제나 사랑을 찍는 사진입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삶이랑 꿈이랑 사랑을 스스로 기쁘게 마주하고 바라보면서 이야기로 엮는다고 할 만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풍크툼이니 아우라니 하는 말로 자기 사진의 예술성을 보증하려 한다. 그 속뜻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말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로댕은 나직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한다. 사진을 예술로 만드는 것은 풍크툼도 아우라도 아니라고. (111쪽/장정민)


이제 보도사진을 다루는 사람의 자격 요건에 사진을 기술적으로 잘 찍을 수 있는지의 여부는 포함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마치 ‘글씨’를 잘 쓰는 것과 ‘글’을 잘 쓰는 것이 연관성이 없는 것과 같다. 이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사진의 언어를 이해하고 매체의 특성을 활용해 설득력 있는 사진을 내보일 수 있는 표현력과 넘쳐나는 사진들 속에서 ‘보도될 만한 사진’을 솎아낼 수 있는 시각적, 윤리적 판단력을 갖추는 것이다. (115쪽/이기원)



  사진잡지 《포토닷》이 바라보는 곳은 ‘사람이 있는 곳’입니다. 사진잡지 한 권이 나아가는 길은 ‘사람이 있는 길’입니다. 내가 찍은 사진을 내가 먼저 보고, 네가 함께 봅니다. 네가 찍은 사진을 네가 기쁘게 보면서 나도 기쁘게 함께 봅니다.


  전문 사진가이든 아마추어이든, 풋내기 사진가이든 아직 사진을 잘 모르는 사람이든, 사진을 찍을 적에는 고요하면서 홀가분하고 따사로운 숨결이 됩니다. 사진기를 손에 쥘 적에는 ‘이제껏 사진을 찍은 햇수’라든지 ‘대학교 사진학과’를 다녔다거나 ‘나라밖에서 사진을 배웠다’고 하는 모든 것을 내려놓습니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내 앞에 마주하는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습니다.


  밥을 짓는 어버이는 바로 오늘 이곳에서 아이들하고 나눌 밥을 짓습니다. 요리사가 짓는 밥이 아닙니다. 뛰어나거나 빼어난 솜씨쟁이가 짓는 밥이 아닙니다. 오늘 하루도 아이들하고 사랑을 나누는 삶을 짓는다는 마음으로 짓는 밥입니다.




내가 어버이로서 우리 아이를 사진으로 찍는다고 한다면, 싱그럽게 웃고 노래하면서 뛰노는 아이가 사랑스러워서 사진으로 찍습니다. 현을생 님이 제주섬이나 제주 해녀나 절집을 사진으로 찍는다고 한다면, 역사나 문화나 사회나 예술이나 정치나 교육 같은 것을 따지면서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그저 제주섬하고 제주 해녀하고 절집이 사랑스러워서 찍는 사진입니다. (125쪽/최종규)


늘 건강하시리라 믿었던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셨다. 2014년 2월의 일이었다. 사진을 한다는 딸로서 사진 한 장 제대로 찍어드리지 못한 후회가 밀려왔다 … 다행히 아버지는 마치 내게 사진을 찍을 기회를 주시려는 듯이 기적처럼 깨어나셨지만 더는 일어서실 수가 없었다. (140쪽/조정숙)



  마음을 차분히 다스리면서 차분하게 사진을 찍습니다. 마음에 기쁜 웃음을 가득 실으면서 기쁘게 사진을 찍습니다. 마음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으면서 눈물젖은 사진을 찍습니다. 아프고 슬픈 삶을 되새김질을 하면서 아프고 슬픈 사진을 찍습니다.


  모든 사진은 저마다 다른 이야기가 흐릅니다. 왜냐하면, 저마다 다른 삶을 찍는 사진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진에는 저마다 새로운 숨결이 도사립니다. 왜냐하면, 저마다 다른 사람이 저마다 다른 사랑을 마음으로 품으면서 찍는 사진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사진을 찍기는 아주 쉽습니다. 스스로 좋은 마음이 되면 넉넉합니다. 멋진 사진을 찍기도 아주 쉽습니다. 스스로 멋진 삶을 가꾸면 됩니다. 고운 사진이나 예쁜 사진을 찍으려면, 스스로 고운 삶이 되고 예쁜 사랑으로 거듭나면 됩니다.


  스스로 웃음덩어리가 되어 웃음이 피어나는 사진을 찍습니다. 스스로 눈물바람이 되어 눈물이 흐르는 사진을 찍습니다. 스스로 노래가 되어 노래하는 사진을 찍고, 스스로 바람이 되어 바람처럼 흐르는 사진을 찍습니다. 4348.7.6.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풍경소리에 바람이 머물다
현을생 지음 / 민속원 / 200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진잡지 <포토닷> 2015년 7월호에 함께 싣는 글입니다.


..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97



곁에 있는 사랑을 사진으로 찍는다

― 풍경소리에 바람이 머물다

 현을생 사진·글

 민속원 펴냄, 2006.7.15.



  꽃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고, 꽃을 사진으로 찍으려는 사람도 많습니다. 꽃을 좋아하면서 사진으로 찍으려는 사람은 으레 꽃밭이나 숲이나 시골을 찾아갑니다. 아무래도 도시에서는 꽃을 구경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꽃을 좋아하기에 ‘꽃이 흐드러지는 시골이나 숲’으로 삶터를 옮기는 사람은 어느 만큼 있을까요? 꽃을 만나러 나들이를 다니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언제나 꽃을 마주하면서 꽃내음을 맡는 곳에서 보금자리를 가꾸는 사람은 어느 만큼 있을까요?


  ‘사진을 찍으려는 마음으로’ 꽃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서 사진을 찍을 적하고, ‘꽃이 있는 곳에서 살면’서 사진을 찍을 적에는, 똑같은 꽃을 사진으로 찍더라도 느낌하고 결하고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내 삶자리 둘레에 있는 아름다운 숨결을 사진으로 찍을 적하고, 먼발치에 있는 아름다운 숨결을 찾아나서며 사진으로 찍을 적에는 느낌이나 결이나 이야기가 사뭇 다릅니다.


  늘 곁에 있기에 아름다운 줄 못 알아채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름다움을 깊고 넓게 느끼기에 늘 곁에 두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름다움은 먼 곳에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곁에는 아름다운 숨결을 두지 않고 먼발치에 있는 아름다움만 생각하면서 삶을 보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멀리 나들이를 가기에 더욱 아름다운 모습을 만나서 사진으로 찍지 않습니다. 아무리 멀리 나들이를 간다고 하더라도 ‘나들이를 간 그곳’에서도 ‘아름다움을 곁에 두고 바라보기’ 때문에 비로소 아름다움을 알아채거나 느껴서 사진으로 찍을 수 있습니다. 곁에 있는 아름다움도 곁에 있는 줄 알아챌 때에 사진으로 찍지, 곁에 있더라도 못 알아챈다면, 아무것도 사진으로 못 찍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놓치고 그냥 지나치는 보원사지를 간다. 전각이 복원 안 된 절터에 서면 많은 것을 얻은 기분이 든다 … 도량을 걷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죄스러울 정도로 적막하여 숨소리를 죽이는데, 지나가시던 스님께서 사진을 찍지 말라 하여 가슴이 덜컹한다. (70, 79쪽)



  1998년에 ‘탐라목석원’에서 펴낸 사진책으로 《제주 여인들》이 있습니다. 《제주 여인들》이라는 사진책을 선보인 현을생 님은 1955년에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태어났고, 1974년에 제주도에서 9급 공무원으로 첫발을 내딛었으며, 2014년부터 서귀포시장이 되어 공무원 한길을 잇습니다. 현을생 님은 ‘빛깔있는 책들’ 가운데 《제주 성읍 마을》(대원사,1990)에 사진을 찍었고, 2006년에 《풍경소리에 바람이 머물다》(민속원,2006)라는 사진수필책을 선보입니다. 현을생 님은 공무원으로 오랜 한길을 걷는 동안 언제나 ‘사진가 한길’도 함께 걸었습니다.


  1990년, 1998년, 2006년, 이렇게 드문드문 사진책을 내놓은 현을생 님한테 사진이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제주도에 있는 조그마한 마을을 사진으로 담아서 엮고, 제주도에서 물일을 하는 사람을 사진으로 찍어서 엮으며, 현을생 님이 골골샅샅 두루 찾아다니는 절집에서 만난 숨결을 사진으로 찍어서 빚은 이야기에는 어떠한 바람내음이 깃들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아무래도 현을생 님 사진은 ‘곁에 있는 사랑’을 찍는 사진이지 싶습니다. 먼발치에 있는 사랑을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현을생 님이 태어나고 자란 고장을 사진으로 찍고, 현을생 님을 둘러싼 이웃하고 동무를 사진으로 찍습니다. 남녘(한국)에 있는 여러 절을 돌아다니면서 찍은 사진은 현을생 님이 ‘절집마실’을 좋아하고 즐기기 때문에 찍을 수 있습니다. 절집을 사진으로 찍으려고 돌아다닌 발자국이 아니라, 절집마실을 좋아하고 즐기기 때문에 어느 날 문득 절집을 사진으로 찍은 발자국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이 절집은 아직 인간들의 소음이 미치지 않아서 시골 외갓집 가는 기분으로 들어설 수가 있어 그 또한 편안하다 … 하도 오랜만에 이 절을 찾은 탓에 이 나무가 그냥 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게 사실이다. 합장하여 천 년의 역사를 말해 주고 있는 나무뿌리에 기도 드린다. (108, 118쪽)





  제주섬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이 대단히 많습니다. 제주 해녀를 사진으로 찍어서 책으로 엮은 사람이 제법 있습니다. 절집마실을 즐기면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무척 많습니다.


  제주섬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들은 무엇을 보거나 느끼면서 어떤 삶을 어떤 이야기로 엮으려는 마음일까요? 제주사람으로 제주섬에 살면서 찍는 사진일까요? 제주마실을 해 보니 무척 기쁘고 좋거나 예뻐서 찍는 사진일까요?


  더 나은 사진은 없습니다. 덜 좋은 사진은 없습니다. 모두 똑같이 사진입니다. 스스로 좋아하거나 즐기면서 찍을 수 있으면 모두 사진입니다.


  여행사진은 여행하는 숨결이 깃드는 사진입니다. 생활사진은 삶으로 녹이거나 삭이면서 사랑하는 넋을 담는 사진입니다. 기록사진은 차곡차곡 아로새기려는 사진입니다. 패션사진은 한결 돋보이도록 눈길을 사로잡으려는 사진입니다. 사진은 저마다 뜻이 있고, 사진을 찍는 사람은 저마다 이야기가 있습니다. 더 잘 찍어야 하는 사진이 아니고, 더 잘 ‘기록해야’ 하는 사진이 아니며, 더 예쁘장하게 보여야 하는 사진이 아닙니다. 네가 좋아해 줄 만한 모습을 찍는 사진이 아니요, 남이 더 부추기거나 우러를 만한 그림을 빚는 사진이 아니며, 예술이나 문화라는 이름을 얻어야 하는 사진이 아닙니다. 곁에 있는 사랑을 곱게 느끼면서 함박웃음이나 빙긋웃음을 기쁘게 짓는 삶을 노래하는 사진입니다.



건축 양식이 어떻고, 공간구조가 어쩌고 하는 전문적 지식은 나에게는 없다. 그러나 두 팔 뻗어 안고 싶을 만큼 그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가득한 … 절 가운데 있는 석탑과 대웅전 문창살의 속내. 어쩌면 이토록 단아하고 아름답게 조각되어 만들어졌을까 … 절 마당과 기와지붕이 금세 하얀 도화지로 변한다. 그것은 마치 내리는 눈발이 투명한 꽃으로 피어 있는 순간처럼 보인다. (210, 283, 349쪽)





  사진수필책 《풍경소리에 바람이 머물다》는 수수하면서 투박합니다. 글도 수수하고 사진도 수수합니다. 글도 투박하고 사진도 투박합니다. 구성진 멋을 보여주는 글이요 사진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현을생 님은 “풍경소리에 바람이 머물다”를 이야기합니다. 바람이 머무는 풍경소리를 헤아리면서 쓴 글입니다. 풍경소리에 머무는 바람을 바라보면서 찍은 사진입니다.


  사근사근 숲길을 거닐어 절집을 드나드는 동안 맞아들인 숲노래를 갈무리한 글입니다. 절집에서 하룻밤을 묵는 동안 밤새 흐르는 숲노래를 가슴으로 삭혀서 찍은 사진입니다.


  내가 어버이로서 우리 아이를 사진으로 찍는다고 한다면, 싱그럽게 웃고 노래하면서 뛰노는 아이가 사랑스러워서 사진으로 찍습니다. 현을생 님이 제주섬이나 제주 해녀나 절집을 사진으로 찍는다고 한다면, 역사나 문화나 사회나 예술이나 정치나 교육 같은 것을 따지면서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그저 제주섬하고 제주 해녀하고 절집이 사랑스러워서 찍는 사진입니다.


  절집을 찍을 적에 건축양식을 따질 일이 없습니다.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이천 해를 살아온 나무를 찍을 때하고 천오백 해를 살아온 나무를 찍을 때하고 천 해를 살아온 나무를 찍을 때하고 오백 해를 살아온 나무를 찍을 때에, 무엇이 달라질까요?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요? ‘건축 기록’을 노리는 사진이라면 모르되, ‘건축 기록’을 노리는 사진이 아니라면 ‘삶을 사랑하는 이야기’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건축 기록’을 노리는 사진이라 하더라도, ‘건축물을 지은 사람’하고 ‘건축물에 깃들어 살아온 사람’을 헤아릴 수 있는 이야기를 담을 때에 따사로운 사진이 됩니다.





서둘러 공양간 안으로 들어선다. 비구니 스님께서 전을 부치란다. 어찌 저 정갈한 스님의 마음을 내가 대신 만들 수 있겠는가 … 국보가 아니더라도, 보물이 아니더라도 그냥 좋다. 제발 나를 버리지만 말아 달라 애원하듯 서 있는 돌미륵을 몇 번이고 쳐다보며 헤어지는데 …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인 그 돌문의 주길은 너무도 아름다워 도저히 밟아 지나갈 수가 없다. (294, 301, 331쪽)



  오늘 이곳에서 마주하는 곁님이 사랑스럽습니다. 곁님은 곁에 있는 님입니다. 한집살이를 하는 짝꿍도 곁님이고, 한집에서 지내는 아이들도 곁님입니다. 우리 집 마당에서 자라는 나무도 곁님이요, 텃밭에서 자라는 남새도 곁님이며, 풀밭에서 노래하는 풀벌레도 곁님입니다. 내 삶자리에서 함께 어우러지는 모든 ‘곁붙이’는 ‘곁에서 사랑스레 빛나는 님’입니다.


  곁에 있는 사람도 나무도 풀벌레도 새도 이웃집도 고샅이나 골목도 하늘도 구름도 바람도 모두 ‘곁에서 곱게 빛나는 님’으로 느끼면서 사진으로 찍습니다. 곁에서 빙그레 웃으며 어깨동무를 하는 모든 숨결을 따사로이 사랑하면서 글로 이야기를 엮습니다.


  공무원 한길을 걸을 뿐 아니라, 사진 한길을 함께 걷는 현을생 님은 서귀포시에서, 또 한국에서, 앞으로도 즐거우면서 사랑스러운 이야기꽃을 사진하고 글로 곱게 여미시겠지요. 삶을 아끼고 사랑하면 곁에서 피어나는 꽃송이를 알아볼 수 있고, 삶을 노래하고 즐기면 곁에서 흐르는 맑은 바람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사진은 늘 오늘 이곳에서 태어납니다. 4348.6.15.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호테우 눈빛사진가선 13
권철 지음 / 눈빛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96



제주에는 ‘해군’ 아닌 ‘해녀’가 있어야 한다

― 이호테우

 권철 사진·글

 눈빛 펴냄, 2015.5.23.



  아이는 어른이 됩니다. 아이는 어른이 되면서 어머니가 되기도 하고 아버지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이는 그냥 어른으로만 지내기도 합니다. 아이를 낳은 어른만 어머니나 아버지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아이를 낳든 아이를 낳지 않든, 누구나 ‘늙은 사람’이 됩니다. 아이가 없어도 늙은 가시내는 할머니라는 이름을 얻고, 늙은 사내는 할아버지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도시에서는 으레 할머니·할아버지라 하고, 시골에서는 할매·할배나 할멈·할아범 같은 이름을 씁니다. 고장에 따라서 할미나 할마시 같은 이름도 씁니다.


  나이가 많이 든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까요? 몸에서 기운이 빠지고, 더는 움직이기 어려울 때에는 자리에 눕습니다. 자리에 눕고는 고요히 숨이 멎습니다. 고요히 숨이 멎은 뒤, 몸은 이 땅에 내려놓고 넋은 몸에서 빠져나갑니다. 몸은 처음 태어난 흙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흙으로 태어나고, 넋은 그동안 깃들었던 몸에서 빠져나온 뒤 온누리를 돌다가 새로운 몸을 찾을 테지요.



해녀 할머니를 만난 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제주의 대자연을 만끽하며 이호테우 해변가를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풍경 대신 내 눈에 들어온 건 사람 키보다 더 큰 자루를 메고 가는 할머니 … 본능적으로 차를 세우고 할머니의 자루를 들어 주게 되었고, 한참을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해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책에서만 보던 해녀를 이렇게 만나다니. (4쪽)



  권철 님이 빚은 사진책 《이호테우》(눈빛,2015)를 읽습니다. 사진책 《이호테우》는 ‘이호테우’에서 일하는 해녀를 사진으로 담은 책입니다. 여행하는 사람이나 관광하는 사람이라면 ‘이호테우’를 제주섬에 있는 아름다운 바닷가나 모래밭 가운데 하나로 여길 테지만, 제주섬 이호테우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언제나 물질을 하고 바닷살림을 꾸리는 삶터입니다.


  이호테우에서 나고 자라서 해녀로 삽니다. 이호테우로 시집을 온 뒤 해녀로 삽니다. 어린 나날을 바닷바람을 쐬면서 누리고, 젊은 나날을 바닷바람을 마시면서 일구다가, 늙은 나날을 마지막까지 바닷바람을 마주하면서 꾸립니다.


  사진책에 나오는 해녀 할머니는 하나같이 나이가 많습니다. 그리고, 《이호테우》를 보면 이 바닷마을에 중국에서 커다란 관광지를 꾸민다면서 ‘제주 해녀가 바닷일을 할 터전’이 차츰 줄어들거나 나빠진다고 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호테우 전체의 해녀는 대략 70명 정도이지만 2009년 이호테우 매립 전후로 실질적으로 물질을 하는 분은 1/3 정도 줄었다. 해녀 탈의장이 있는 곳 바로 밑이 원래는 바다였으므로 탈의장에서 옷을 갈아입은 즉시 바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호 해녀 탈의장 앞에서부터 대규모 매립이 강행되면서 이들은 바다와 양식장(매립 후 만들어진 곳)까지 한참을 걸어서 다니거나 경운기나 트럭을 이용한다. 매립의 영향으로 천연어장이 파괴되고 어획량도 급속히 감소한 것은 당연하다. 이제 몇 년 뒤면 이 매립장에 큰 드림랜드가 들어서게 될 것이고. (34쪽)



  제주섬에 해군기지를 커다랗게 짓는다고 합니다. 왜 제주섬에 해군기지를 지어야 하는지 알쏭달쏭한 노릇이지만, 중앙정부와 지역정부는 모두 제주섬에 해군기지가 있어야 한다고 밝힙니다. 군부대가 있어야 평화를 지킨다고 말을 하지요.


  그러나, 아무리 한국에서 군부대와 전쟁무기를 많이 갖추어도, 이웃나라에서 군부대와 전쟁무기를 더 많이 갖추면 부질없는 짓이 됩니다. 한국도 다른 나라도 군부대와 전쟁무기로는 평화를 찾거나 지키지 못해요. 군부대와 전쟁무기는 언제나 끝없는 군부대와 전쟁무기를 끌어들이기만 합니다. 군부대와 전쟁무기는 언제나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하고 만나서 여느 사람들 삶을 옥죄거나 짓누릅니다.


  관광시설이란 무엇일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관광시설을 늘리려고 하는 토목건설은, 어쩌면 군부대하고 비슷한 셈이 아니랴 싶습니다. 제주섬처럼 관광시설이 많은 곳이 한국에 얼마나 있을까요? 제주섬에는 관광시설이 참으로 많으나, 자꾸자꾸 늘어납니다. 오름이랑 바다가 아름다운 제주섬이라고 하지만, 막상 제주 관광정책은 오름이랑 바다를 더 파헤치는 길로 갈 뿐입니다. 지난날에는 바닷물이랑 모래밭만 아름다워도 사람들이 나들이를 갔으나, 오늘날에는 이런 시설과 저런 쇼핑센터와 그런 숙박업소가 있어야 나들이를 가는 얼거리가 됩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를 찬찬히 살펴보아야지 싶습니다. 제주섬을 찾아서 나들이를 가는 이들이 먹는 ‘싱싱한 바닷것(해산물)’은 어떻게 얻을까요? 깨끗하고 아름다운 제주 바다에서 얻겠지요. 그러면 제주 바다에 해군기지가 커다랗게 들어선다면 어떻게 될까요? 커다란 관광단지가 들어서면 제주 환경과 자연은 어떻게 될까요?



바람 한 점 없는 맑고 청명한 날이다. 홍순화 할머니는 가끔 유유히 물 위에 떠서 바다와 대화를 나눈다. (50쪽)




  제주 바다가 망가지면 제주 해녀가 설 자리는 사라집니다. 제주 바다가 망가지면 제주 해녀뿐 아니라, 제주섬이라는 곳은 관광지라는 이름까지 곧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제주시와 중앙정부는 제주섬에 군부대나 관광단지를 무턱대고 늘리지 말아야 하고, 한결 정갈하면서 깨끗하고 아름다운 삶터가 되도록 마음을 기울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전부터 있던 군부대’도 없앨 노릇이고, 온갖 시설과 쇼핑센터와 숙박업소로 돈을 벌려는 움직임은 그치고, 바다와 모래와 숲과 들을 마주하면서 삶을 사랑하는 길을 보여주는 움직임으로 거듭날 수 있어야 합니다. 정갈하지 않고 깨끗하지 않으며 아름답지 않은 삶터라면, 이러한 삶터를 ‘구경하’거나 ‘둘러보’고 싶어서 찾아가는 발걸음은 뚝 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진책 《이호테우》는 바로 이 대목을 살며시 건드립니다. 제주 해녀가 제주 해녀로서 설 자리를 잃는다면 제주섬은 어떻게 될까 하고 묻습니다. 제주섬에서 해녀가 삶터와 일터와 쉼터를 빼앗긴다면 제주섬은 어떤 모습을 놓고 제주섬이라고 할 만한가 하고 묻습니다.


  함께 일구는 삶이 없이, 정치나 경제나 문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함께 가꾸는 마을이 없이, 교육이나 사회나 예술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함께 어깨동무하는 두레가 없이, 평화나 민주나 평등이 있을 수 없습니다.


  작은 사진책 한 권은 작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더 잘 찍은 사진이 아니고, 더 돋보이게 찍은 사진이 아닌 《이호테우》입니다. 이호테우가 이호테우다운 모습을 언제까지 고이 이을 수 있을까 하고 마음을 기울이면서 찍은 사진이 깃든 작은 《이호테우》입니다. 작은 바닷마을이 곱고 사랑스레 작은 바닷마을로 이어갈 수 있을 때에, 제주섬도 한국도 참다운 숨결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보여주는 작은 《이호테우》입니다.



어느 날, 홍순화 할머니가 병원에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알고 보니 이틀에 한 번 꼴로 무릎 주사와 물리치료를 받지 않으면 버텨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 나는 무심코 병원에 동행하게 되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카메라를 들었지만, 병원 측으로부터 완강하게 거절당했다. 그때 할머니께서 이렇게 소리를 치셨다. “저 양반한테는 사진 찍게 해 주게마시. 저 사진 찍는 삼촌은 물질하는 물속에도 잠수복 입고 따라 들어와 찍는데 병원에선들 못 찍겠소. 찍게 해 주시게마시 선생.” 그 말을 들은 간호사가 잠시 뒤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촬영을 허락해 주었다.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112쪽)




  어머니는 할머니가 됩니다. 할머니는 머잖아 흙으로 돌아갑니다. 어머니 해녀는 할머니 해녀가 되는데, 할머니 해녀가 흙으로 돌아간 뒤, 새로 ‘어머니 해녀’가 될 젊은 해녀가 없으면, 제주섬에는 무엇이 있다고 할 만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제주섬에 있어야 할 사람은 ‘해군’이 아니라 ‘해녀’입니다. 제주섬에 있는 젊은이는 ‘군사훈련’이 아닌 ‘물일(바닷일)’을 할 노릇입니다. 제주섬에 있는 사람들은 너나없이 이웃이 되고 동무가 되면서 아름다운 삶자리를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라도 우리가 함께 바라보면서 같이 알아차려야 합니다. 해녀가 있는 곳에는 사랑스러운 삶이 있습니다. 해군(군부대와 전쟁무기)이 있는 곳에는 무시무시한 죽음이 있습니다. 제주섬이 나아갈 곳은 삶이어야 할까요, 죽음이어야 할까요? 한국 사회와 문화와 경제와 정치가 나아갈 곳은 삶일까요, 죽음일까요?


  평화로운 삶자리가 아름다운 보금자리가 되고, 아름다운 보금자리가 사랑스러운 마실터(여행지)가 됩니다. 제주섬에 있는 올레길은 자가용이나 오토바이가 싱싱 달리는 길이 아니라, 두 다리로 걷는 길입니다. 제주섬이 아름답거나 사랑스럽다고 한다면, 제주 해녀가 제주섬을 오늘까지 투박한 손길로 살가이 어루만졌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제주섬이 오늘날처럼 널리 사랑받는 삶터가 된 바탕에는 바로 해주 해녀가 수수한 손길로 따스히 어루만진 살림살이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밥을 짓는 손으로 물질을 합니다. 빨래를 비비는 손으로 물질을 합니다. 아기를 낳아 어르는 손으로 물질을 합니다. 나락을 심고 거두고 갈무리하는 손으로 물질을 합니다. 실을 자아 물레를 돌리고 베틀을 밟는 손으로 물질을 합니다. 삶을 사랑하는 손으로 물질을 하는 해녀 이야기가 《이호테우》라는 사진책에 고이 흐릅니다. 4348.6.24.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lanca 2015-06-24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 또 공감합니다.

숲노래 2015-06-24 20:5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제주섬도 한국 사회도
모두 골골샅샅 아름답게 나아갈 수 있기를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