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내 친구는 그림책
타키무라 유우코 지음, 허앵두 옮김, 스즈키 나가코 그림 / 한림출판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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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27

 


천천히 자라서 삶이 되는 사랑
― 조금만
 스즈키 나가코 그림
 타키무라 유우코 글
 허앵두 옮김
 한림출판사 펴냄, 2010.1.20.

 


  곧 한 해가 저뭅니다. 음력으로 치면 설은 아직 멀지만, 십이월에서 일월로 넘어가는 달력을 보면서 새삼스레 여러 가지를 떠올립니다. 2013년까지 여섯 살이던 큰아이는 일곱 살로 접어듭니다. 올해까지 세 살이던 작은아이는 네 살로 접어들어요. 일곱 살이 될 큰아이는 돌쟁이 무렵부터 혼자서 단추를 꿸 줄 알았습니다. 혼자서 단추를 꿸 뿐 아니라 혼자서 옷을 잘 갈아입습니다. 어느 날에는 하루에 옷을 열 벌 가까이 바꿔 입으며 놀아, 이렇게 한 번 입고 벗은 옷을 어쩌나 하고 애먹기 일쑤였어요.


  이와 달리 작은아이는 네 살이 되지만 아직 단추를 혼자서 못 뀁니다. 혼자서 옷을 입지 못합니다. 아직 양말도 혼자 신지 못합니다. 나는 작은아이가 스스로 단추를 꿰고 옷을 입으며 양말을 신기를 바라면서 안 거들려 하지만, 으레 큰아이가 동생을 도와줍니다. 더 나이를 먹으면 으레 혼자 다 잘 하겠거니 생각하지요. 참말 작은아이는 이렇게 늦구나 하고 새로 배워요. 어쩌면, 나도 어릴 적에 이러했을까 싶어요. 나도 어릴 적에 어머니나 언니한테서 도움을 받아 느즈막히 혼자서 옷을 입었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 단비는 시장에 갈 때 엄마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엄마가 아기를 안고 있었기 때문에 잡을 수 없었습니다 ..  (2쪽)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들과 지내며 돌아봅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사랑을 먹으며 살아갑니다. 어른들은 언제나 사랑을 나누어 주면서 살아가요. 사랑을 먹으며 살아가는 아이들은 마음밭에 사랑씨앗 심으면서 무럭무럭 키웁니다. 사랑을 나누어 주면서 살아가는 어른들은 마음밭에서 사랑열매 꾸준하게 거두고 가꾸면서 씩씩하게 살림을 일구어요.


  아이들은 언제나 씩씩하게 자랍니다. 사랑받으면 사랑받는 대로 사랑을 가슴으로 포옥 안습니다. 사랑을 못 받거나 덜 받으면 사랑을 못 받거나 덜 받는 대로 따사로운 손길과 눈길을 다스립니다. 사랑을 받으며 자란 아이들이 사랑을 나누어 주는 어른으로 우뚝 섭니다. 사랑을 덜 받거나 못 받은 아이들도 사랑으로 어깨동무하는 웃음꽃을 피우는 길을 씩씩하게 걷습니다.


  아이들로서는 어머니와 아버지하고 함께 지내는 하루가 가장 즐겁습니다. 놀이동무도 좋고, 놀이기구도 좋아요. 그러나, 어떤 놀이동무보다도 어버이가 가장 반갑습니다. 어떤 놀이기구보다도 어버이 손길과 눈길이 가장 기쁩니다. 왜냐하면, 아직 어리거든요. 어리기에 따사로운 손길을 타야 합니다. 어린 만큼 너그러운 눈길을 받아야 합니다. 어버이 곁에서 어버이가 살아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삶을 익혀요. 어버이 둘레에서 어버이가 나누어 주는 사랑을 받아먹으면서 튼튼하게 자랍니다.


.. 밤이 되어 단비가 잠옷으로 갈아입으려 하는데 단추가 잘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엄마한테 도와 달라고 갔더니 엄마는 아기를 재우고 있었습니다. 단비는 다시 한 번 혼자서 단추를 채워 보았습니다 ..  (10쪽)

 


  아이들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가서 무언가를 배워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글을 일찍 깨쳐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외국말인 영어를 빨리 익혀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놀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어버이 곁에서 호미를 쥐거나 낫을 들거나 괭이를 잡고 흙을 만지며 놀아야 합니다. 숲길을 걷고, 멧자락을 타고 오르며, 냇물을 가로질러야 합니다. 바닷물에서 헤엄치고, 들판에서 풀을 뜯으며, 숲속에서 나무를 타며 놀아야 합니다. 어느 만큼 나이가 되면 아이들은 스스로 집 바깥으로 뛰쳐나갑니다. 아직 어릴 적에는 어버이 곁에서 맴돌듯이 놀지만, 일곱 살을 지나고 여덟 살을 거치면서 조금씩 테두리를 넓혀요. 아홉 살이 되고 열 살이 되면, 이제 어디이든 스스로 나들이를 다닐 만하겠지요. 십 리쯤은 혼자서도 오갈 수 있어요. 이때에는 어버이보다 동무하고 사귀면서 온누리를 바라보는 눈길을 넓힐 만해요. 더 너른 누리를 헤아리기 앞서는 어버이 곁에서 ‘아이 스스로 씩씩하게 설 수 있는 기운과 마음과 넋과 꿈’을 사랑으로 받아먹을 노릇입니다.


  글이든 지식이든 외국말이든, 아이 스스로 언제라도 배울 수 있습니다. 한 살 일찍 배운대서 더 잘 하지 않습니다. 두 살 늦거나 열 살 늦게 배운대서 나쁠 일이 없어요. 꼭 여덟 살에 초등학교를 가야 하지 않습니다. 굳이 스무 살에 대학교에 가야 하지 않습니다. 아니, 초등학교뿐 아니라 중·고등학교를 반드시 다녀야 하지 않아요. 아이는 입시지식을 배울 까닭이 없어요. 아이는 스스로 살아갈 빛을 익히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스무 살이 되어 대학교에 들어갈 만큼 시험지식은 많이 갖추었다지만, 혼자서 밥을 지어서 차릴 줄 모른다면, 옷을 빨아서 갤 줄 모른다면,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할 줄 모른다면, 걸레를 빨아 방바닥을 훔칠 줄 모른다면, 이불을 빨거 말리며 해바라기 시킬 줄 모른다면, 씨앗을 심어 밭을 일굴 줄 모른다면, 나무를 돌보며 열매를 거둘 줄 모른다면, 꽃을 바라보고 풀내음을 맡을 줄 모른다면, 어린 동생을 보살피듯이 아기를 따사롭게 어르며 자장노래 부르고 함께 놀 줄 모른다면, 이런 스무 살은 어떤 빛일까요.


  대학생이 되어 인문책은 읽는다 하더라도, 나락 한 톨이 어떻게 다시 볍씨 되어 논자락에서 모로 자라고 이삭을 패며 누렇게 익는가를 깨닫지 못한다면 부질없습니다. 논문을 써서 학사나 박사가 된다 하더라도, 사람을 비롯한 모든 목숨을 살리는 물과 바람과 햇볕과 흙을 헤아릴 줄 모른다면 덧없습니다.


  사랑으로 자라는 아이들은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으로 삶을 가꿀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으로 새로운 빛을 밝힐 줄 알아야 합니다.

 


.. 단비는 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누나가 됐으니까 낮잠은 안 잘거야.” 그런데 자꾸만 눈이 감기려고 합니다. 단비가 말했습니다. “엄마, 조금만 안아 주세요.” “조금만?” 엄마가 단비에게 물었습니다. “네, 조금만이라도 괜찮아요.” 단비가 졸린 눈을 비비며 말했습니다 ..  (24∼26쪽)


  스즈키 나가코 님이 그림을 그리고, 타키무라 유우코 님이 글을 쓴 《조금만》(한림출판사,2010)을 읽습니다. 어버이로서 먼저 읽고, 아이와 함께 차근차근 읽습니다. 큰아이는 그림책을 보면서 “얘는 왜 단추를 못 꿰어? 여기 두 개 안 뀄네.” 하고 말합니다. “얘는 왜 머리를 못 묶어? 나는 묶을 줄 아는데.” 하고도 말합니다. 참말, 여섯 살 큰아이 말대로, 그림책 《조금만》에 나오는 아이는 혼자서 잘 하는 일이 잘 안 드러납니다. 그동안 혼자서 어머니 사랑을 차지한 탓일까요. 어머니한테서 사랑을 듬뿍 받기만 하면서 씩씩하게 홀로서기를 못 하는 셈일까요.


  그런데, 어린 동생이 태어나 스스로 ‘큰아이’, 곧 ‘누나’가 되면서 새삼스럽게 자라려 합니다. 어린 동생한테 마음을 더 기울일 줄 아는 누나가 되고 싶습니다. 어린 동생을 따사로이 보살필 줄 아는 누나가 되고 싶습니다. 어머니 손을 빌지 않고도 씩씩하게 제 놀이와 자리를 살피는 큰아이가 되고 싶습니다. 혼자서 야무지게 옷을 입고 몸을 씻으며 어머니 일을 거드는 큰아이가 되고 싶습니다.


.. 단비는 엄마 냄새 가득한 품에 포옥 안겼습니다. 그동안 아기에게 조금만 기다리게 했답니다 ..  (30쪽)


  아이들과 지내는 동안 집일을 도맡으며 가끔 숨이 차다고 느낍니다. 우리 아이들이 얼른 자라 밥하기랑 빨래하기랑 집안일을 살짝살짝 거들 수 있기를 기다립니다. 함께 풀을 뜯어 밥을 차리기를 기다려요. 함께 돌을 나르고 대나무를 베어 울타리도 쌓고, 이것저것 꾸밀 수 있기를 기다립니다. 다만, 아이한테 이런 말은 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어느 날 문득 큰아이가 나한테 묻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왜 이렇게 빨래를 잘 해요? 나는 왜 빨래를 잘 못해요?” 여섯 살 큰아이는 세 살 적부터 설거지를 거들겠다며 작은 손으로 그릇을 부시곤 했습니다. 여섯 살이 무르익고 일곱 살로 접어들려는 요즈막에는 이틀이나 사흘에 한 차례쯤 설거지를 스스로 맡아서 합니다. 걸레를 빨아서 내밀면 아주 좋아라 웃으면서 함께 걸레질을 합니다. 두 살 적부터 비질을 흉내내더니 세 살 적부터 비질을 제법 잘 합니다. 호미질도 꽤 잘 합니다. 삽질은 아직 몸이 작아서 잘 못하지요. 곧 자전거로 함께 달릴 만하리라 느껴요. 이듬해 봄부터 큰아이는 따로 제 작은 자전거를 타도록 하면서 면소재지까지 오갈까 하고 생각해요. 큰아이가 여덟 살쯤 되면, 집부터 바닷가까지 함께 자전거를 달릴 만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조금씩 자랍니다. 천천히 큽니다. 조금씩 힘이 붙습니다. 천천히 눈길을 넓힙니다. 아이가 커서 홀로서는 때까지 어버이는 아이를 따사롭게 품습니다. 아이가 커서 홀로선 뒤로는 이제 아이도 어른이 되어 그동안 저를 돌본 어버이를 따사롭게 안습니다. 아직 아이들은 키도 몸도 힘도 작아서 어버이 품에 포옥 안기지만, 머잖아 이 아이들은 저희 어버이보다 키도 몸도 힘도 크면서 어버이를 한결 넉넉하게 안아 주리라 느껴요.


  아이는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습니다.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은 어버이는 천천히 할매와 할배가 됩니다. 아이는 어느새 새롭게 어른이 되고, 새롭게 어른이 되면서 새로운 빛으로 아이를 낳아 새로운 사랑을 물려줍니다.


  조금씩 흐릅니다. 천천히 이어집니다. 삶도 사랑도 꿈도 따사로운 손길과 손길이 만나면서 한결 빛납니다. 4346.12.3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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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구니 달 - 베틀리딩클럽 저학년 그림책 2001 베틀북 그림책 12
메리 린 레이 글, 바버리 쿠니 그림, 이상희 옮김 / 베틀북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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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26

 


바람이 우리를 지켜봅니다
― 바구니 달
 바버러 쿠니 그림
 메리 린 레이 글
 이상희 옮김
 베틀북 펴냄, 2000.7.15.

 


  메리 린 레이 님이 글을 쓰고, 바버러 쿠니 님이 그림을 그린 《바구니 달》(베틀북,2000)을 읽으면, 책끝에 붙임말이 있습니다. 이 붙임말을 읽으면, 미국에서 나무를 잘라 바구니를 짜는 사람들은 거의 다 사라졌다고 합니다. 아니, 모조리 사라졌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고 합니다.


  그림책 《바구니 달》에서는 미국 숲 문화를 들려줍니다. 이 그림책을 읽는 내내, 나는 이 나라에서 송두리째 사라진 수많은 풀 문화와 짚 문화를 떠올립니다. 미국에서는 나무를 베어 바구니를 짜는 사람이 사라졌다면, 한국에서는 짚을 베어 바구니를 짜거나 둥구미를 엮는 사람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한국에서는 바구니나 둥구미뿐 아니라, 섬이나 자리를 짤 만한 짚이 나오지 않습니다. 굵고 단단하며 길고 곧게 뻗은 예쁜 짚이 더는 나오지 않아요. 모두 농협에서 품종개량을 하는 바람에 ‘키 작고 짚 가늘며 거무튀튀한’ 짚만 있습니다. 그나마 이런 짚조차 가을걷이를 하면서 모조리 한 덩어리로 묶어 고기소 먹을 사료로 삼습니다.


.. 달이 완전히 둥글어질 때까지 아버지는 허드슨에 갖다 팔 바구니를 짭니다. 그러다 보름달이 뜨면 집을 나서지요. 우리 집엔 말도 없고 마차도 없어서 아버진 그 먼 길도 걸어 다니세요. 아주 늦게서야 집에 돌아오시는데, 둥근 달이 보름달이라야 캄캄한 밤길을 환하게 비춰 주거든요 ..  (6쪽)

 


  이 땅에서 바구니 짜고 짚신 삼으며 자리 엮는 사람이 사라진 까닭을 생각해 봅니다. 시골사람을 몽땅 도시가 잡아먹었기 때문입니다. 1950년대를 지나 1960년대를 맞이한 독재정권은 경제개발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사회를 윽박지르려고, 또 몇몇 재벌을 키워 검은돈을 거머쥐려고 갖가지 특혜를 베풀며 공장을 때려지었습니다. 때려지은 공장에서 부속품처럼 아주 낮은 돈만 받고 일할 노동자가 있어야 하니, 시골에서 젊은이를 끌어모읍니다. 시골 아이를 도시로 보내도록 하려고 시골마을 두멧자락까지 작은학교를 끝없이 짓습니다. 학교를 다닌 아이들은 모두 ‘도시 예비 노동자’가 되어야 하는 길을 걷습니다. 시골에서 흙 파며 풀 먹는 삶은 ‘가난하고 나쁜 삶’인 듯 가르칩니다. 시골을 떠나 도시에서 공장일을 해야 효도가 되는 듯 가르칩니다. 이러는 한편, 시골을 떠난 젊은이 빈자리는 농약과 화학비료로 채우게끔 부채질을 하고, 비싼 농기계를 써서 젊은 일손 몫을 하도록 부추깁니다.


  이 나라 독재정권은 도시에 있는 공장 노동자로 쓰려고 시골사람을 도시로 끌어들이는 한편, 시골에 남은 사람들한테서 돈을 울궈내려고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다가 쓰도록 이끕니다. 농협에서는 품종개량이라는 이름을 내걸며 씨앗을 농협에서 사다 쓰는 얼거리로 바꿉니다. 한편, ‘경지정리’를 내세워 시골마다 농기계를 안 쓰면 안 되는 틀로 바꾸지요.


  이렇게 되니, 적게 거두어 적게 먹고도 ‘돈 걱정을 안 하면서’ 오순도순 오붓하게 살던 마을이 하나둘 사라집니다. 그나마, 시골마을 작은학교조차 나라에서는 돈을 안 들이고 지었어요. 시골사람한테 땅을 스스로 내놓게 해서 작은학교 터를 마련하고, 작은학교 건물조차 시골사람 스스로 시멘트를 개고 벽돌을 쌓아서 짓도록 시켰어요. 그리고, 시골마다 학교를 떡하니 지은 뒤에는 온갖 월사금과 납부금을 거둬들였고, 아이들을 몽둥이로 다스리는 짓을 일삼았어요. 이동안 아주 ‘자연스럽게’ 시골에서는 짚으로 무언가 만드는 일이 사라집니다. 시골사람이 짚신 신는 일은 자연스럽지만, 짚신을 신으면 손가락질을 하며 놀려요. 고무신을 신어도 놀리니, 짚신을 누가 신겠어요. 짚이나 억새나 대로 엮은 돗자리는 ‘새마을운동’하고 동떨어진다면서, 짚으로 짠 바구니와 둥구미 또한 ‘새로운 문명이나 문화’하고 안 맞는다면서, 모두 불태우거나 거름더미에 던지도록 내몰았습니다. 나일론 돗자리를 쓰도록 시키고, 플라스틱 바가지와 그릇을 쓰도록 부채질했습니다.


.. 어른들이 바구니를 만드는 동안 어둠이 깃들고, 이런저런 얘기가 오갑니다. 가끔은 아버지가 말하고 가끔은 조 아저씨나 쿠엔 아저씨가 말하지요. 보통은 나무가 자기한테 들려줬다는 이야기를 하고 또 합니다. 나도 나무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었어요 ..  (12쪽)

 


  숲에서 조용히 살며 나무를 베어 바구니를 짜던 이들은 바구니만 짜지 않았습니다. 이녁이 먹을 밥을 이녁 스스로 흙을 만지면서 거두었습니다. 이녁이 지낼 집 또한 숲에서 나무를 조금씩 얻어서 조그맣고 조촐하게 지었습니다.


  숲에서 바구니 짜던 이들은 쓰레기가 없습니다. ‘쓰레기’라는 낱말조차 없었겠지요. 서로 이웃이 되어 사랑스러운 마을을 이루었겠지요. 서로 아끼고 돌보는 평화로운 삶터를 이루었겠지요. 흙을 만지고 나무를 아끼며 바구니를 짜는 이들 마음속에는 ‘전쟁’이나 ‘경제개발’ 따위는 없습니다. 나무가 들려주는 노래를 듣고, 숲이 베푸는 노래를 즐기며, 흙이 가르치는 노래를 배웁니다.


  이 나라 한국에서 흙을 만지면서 짚을 짜거나 엮거나 삼은 시골사람은 풀이 들려주는 노래를 들었어요. 숲이 베푸는 노래를 즐겼지요. 골짜기와 바다와 냇물이 가르치는 노래를 배웠어요.


.. 무슨 일이 있었는지 털어놓자 엄마가 말씀하셨어요. “나무들은 우리 마음을 알 거야. 허드슨 사람들이 뭐라고 하건 신경 쓸 것 없단다.” ..  (25쪽)


  전문 가수가 불러야 노래가 아닙니다. 전문 작사가나 작곡가가 지어야 노래가 아닙니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 나와야 노래가 아닙니다. 노래방에서 부를 수 있어야 노래가 아닙니다.


  노래는 삶에서 태어납니다. 노래는 사랑으로 태어납니다. 노래는 꿈과 함께 태어납니다. 노래는 마알간 눈빛으로 부릅니다. 노래는 따스한 손길로 부릅니다. 노래는 고운 마음을 나누려는 넉넉한 넋으로 부릅니다.

 


.. “어떤 이들은 바람의 말을 배워서 음악으로 만들어 노래 부르지.” 조 아저씨가 계속해서 말했어요. “그리고 또 어떤 이들은 바람의 말을 듣고 시를 쓴단다. 우린 바람의 말로 바구니 짜는 법을 배웠지.” 그때 참나무 이파리 하나가 창고 안으로 날아 들었어요. “바람이 우릴 지켜보고 있었구나.” 하면서 조 아저씨가 덧붙였어요. “바람은 믿을 만한 존재가 누군지 알거든.” ..  (27쪽)


  바람이 우리를 지켜봅니다. 햇살이 우리를 지켜봅니다. 들풀이 우리를 지켜봅니다. 나무 한 그루가 우리를 지켜봅니다. 바닷물이, 냇물이, 도랑물이, 실개울이 우리를 지켜봅니다.


  구름이 우리를 지켜보고, 멧새가 우리를 지켜봐요. 작은 꽃이, 작은 벌레가, 작은 짐승이, 작은 개구리가, 작은 둠벙이, 모두 우리를 지켜봐요.


  가슴으로 함께 느껴요. 우리 가슴속에서 피어날 사랑을 저마다 곱게 느껴요. 마음으로 함께 어깨동무해요. 우리 마음밭에 뿌릴 씨앗을 저마다 즐겁게 헤아려요. 우리가 먹는 밥은 영양소가 아닌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직업이나 전문영역 아닌 사랑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물려받아 누릴 삶은 장래희망이나 진로계획이 아닌 사랑입니다. 4346.12.2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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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2-29 09:55   좋아요 0 | URL
바버라 쿠니님의 <바구니 달>을 저도 참 좋게 읽었어요~
그림도 좋았고 이야기도 좋았습니다.
옮겨주신 27쪽의 말을 마음에 넣어 두었지요~*^^*

숲노래 2013-12-29 10:12   좋아요 0 | URL
이 그림책을 읽었나 하고 넘어갔는데
아무리 살펴도 도서관에 없더라구요.
이번에 장만하고 보니 예전에 안 장만했더라구요 ^^;;;

참말 27쪽, 아저씨가 들려준 '바람 이야기'가 아주 좋아요.
그리고, 그 좋은 이야기대로
우리들이 잊은 '우리 풀짚 문화'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깨달았어요.
 
노랑이와 분홍이 난 책읽기가 좋아
윌리엄 스타이그 지음, 조세현 옮김 / 비룡소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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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25

 


삶을 이루는 이야기
― 노랑이와 분홍이
 윌리엄 스타이그 글·그림
 조세현 옮김
 비룡소 펴냄, 2005.10.4.

 


  어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람이 드세게 불었습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바람 한 점 없습니다. 어제와 그제는 낮에 부는 드센 바람을 맞으며 면소재지 우체국으로 자전거를 타고 다녀왔습니다. 우체국으로 가서 부칠 편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집과 우체국 사이는 2킬로미터라 그리 멀지 않지만, 드센 겨울 된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자전거를 달려 돌아오는 길은 십오 분 남짓 걸립니다. 이틀 내리 찬바람을 먹으며 고단했는데, 조용한 아침볕과 아침바람을 누리니, 어제와 그제 있던 일이 참말 있었나 알쏭달쏭합니다.


  아침밥을 끓입니다. 어제 불린 쌀을 끓입니다. 누런쌀에는 바구미가 꽤 들어서 한참 바구니를 솎습니다. 이 바구미는 어떻게 쌀봉지에서 알을 깨고 쌀알을 파먹는지 궁금합니다. 바구미는 추운 겨울에도 안 죽는지, 물에 불려도 안 죽는지 참 궁금합니다. 바구미한테는 쌀알만 있으면 될까요. 바구미는 쌀알만으로도 즐겁게 삶을 짓고 알을 까면서 신나게 지낼 만할까요.


.. 어느 날, 작은 나무 인형 둘이 오래된 신문지 위에 누워서 햇볕을 쬐고 있었어 ..  (5쪽)


  시골에서는 햇살과 햇발을 언제나 누릴 수 있습니다. 도시처럼 높다란 건물이 있지 않으며, 도시처럼 자동차 싱싱 쌩쌩 넘치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시골에서 살더라도 멧자락을 바라보지 않고 구름을 마주하지 않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으면, 햇살이나 햇살을 느끼지 못합니다. 하늘을 누리고 햇살과 햇발을 포근히 안으려는 마음일 때에, 시골에서나 하늘에서나 하늘과 햇살과 햇발을 따사롭게 맞이할 수 있어요.


  지난 여름 끝물에 처마 밑 제비들이 떠났지만, 한가을에 딱새 두 마리가 빈 제비집에 깃들었습니다. 우리 집 처마 밑에서 겨울나기를 하려는 딱새 두 마리는 아침저녁으로 딱딱딱 노래를 들려줍니다. 딱새가 노래하는 소리가 딱딱딱 들린대서 옛사람은 이 새한테 딱새라는 이름을 붙여서 불렀을까요.


  이른아침에 마루문 열고 마당으로 내려서면 처마 밑 둥지 딱새는 화들짝 놀라 포르릉 날아갑니다. 날아간댔자, 우리 집 마당 초피나무나 후박나무 사이로 날아갑니다. 멀리 가지 않습니다. 마당에서 딱새들이 무얼 하나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면 이윽고 딱새는 다시 처마 밑 둥지로 돌아갑니다. 딱새한테 이 제비집이 무척 포근한가 봐요. 그나저나 딱새가 빈 제비집에서 오래 지내면 딱새 냄새가 남을 텐데, 이듬해 새봄에 제비들이 다시 이 둥지로 돌아올까 모르겠어요.


.. 노랑이가 또 물었어. “우리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건지 혹시 아니?” 분홍이가 대답했지. “아니, 난 여기에 어떻게 왔는지도 기억이 안 나는걸.” ..  (7쪽)


  솥끝이 터서 여러 날 물을 제대로 못 만지며 지냈습니다. 그러나 집에서 물 만질 사람은 나 혼자이니 손가락을 밴드로 감싸고 씌우개로 씌우고 하면서 물을 만졌어요.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고 걸레질을 하고 빨래를 하고 아이들을 씻겼어요. 다만, 아이들을 씻기더라도 내 몸은 안 씻습니다. 아이들은 씻겨야겠다 생각하며 씻기지만, 손가락 따끔거림 때문에 내 몸은 나중에 손가락이 다 아물고 나서 씻자고 생각합니다. 여섯 살 큰아이는 곧잘 설거지를 거듭니다. 이 작은 아이 마음속에서 어떻게 “내가 설거지 해도 돼?” 같은 말이 샘솟을 수 있을까요. 시키지 않았는데 스스로 나서서 집일을 거드는 이 마음은 어떻게 태어날 수 있을까요.


  고운 빛은 곱게 흐르며 고운 넋이 됩니다. 고운 넋은 다시 흘러 고운 사랑이 됩니다. 고운 사랑은 따사룬 빛처럼 곱게 감돌며 고운 삶 됩니다.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갈 적에 고운 빛을 누릴까요. 우리들은 서로 어떻게 얼크러질 적에 고운 넋을 나눌까요. 우리들은 저마다 어떤 꿈을 키워 하루하루 가꿀 적에 고운 사랑을 꽃피울까요.


.. 분홍이는 자기가 들은 말을 믿을 수가 없어서 마구 웃기 시작했어. “그러니까 요리조리 움직이는 팔이랑, 앞뒤로 돌아가는 머리랑, 숨 쉬는 코랑, 걷는 발이랑, 이 모든 게 그냥 생겨난 거란 말이지?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야!” ..  (11쪽)

 


  윌리엄 스타이그 님 그림책 《노랑이와 분홍이》(비룡소,2005)를 읽습니다. 노랑이와 분홍이는 인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말을 하고 움직일 줄 알며 숨을 쉬는 인형이라고 해요.


  노랑이와 분홍이는 참말 인형일 뿐일까요. 몸집 커다란 사람은 이 인형을 만든 님일까요. 사람은 참말 사람일 뿐일까요. 사람 또한 어떤 다른 큰 님이 빚은 인형은 아닐까요.


  나무는 어떻게 태어났을까요. 꽃은 어떻게 피어났을까요. 풀은 어떻게 자랐을까요. 새는 누구일까요. 벌레는 무엇일까요. 짐승은 무엇이지요. 물고기는 누구인가요.


  하늘은 왜 파랗게 빛나고, 들은 왜 푸르게 빛날까요. 우리 몸은 왜 물로 이루어졌고, 바람은 어떻게 이토록 싱그럽게 흐를 수 있을까요. 과학이 유전자나 조합식을 알아낸다고 하더라도 지구별을 밝히지는 못합니다. 씨앗이 왜 태어나고, 씨앗에서 왜 목숨이 자라는가를 어느 과학도 밝히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학문으로 과학을 하고, 시험공부로 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쳐요. 참말 무엇을 헤아리거나 가르치는가요. 참말 무엇을 생각하거나 이야기하는가요.


.. “하지만 너랑 나는 왜 이렇게 다르지?” 분홍이가 말했어 ..  (25쪽)


  그림책 《노랑이와 분홍이》를 보면, 첫머리인 5쪽에 “분홍이고 …… 노랑이었어”라 나옵니다. 첫 판이 아닌 무척 많이 찍고 널리 사랑받는 책인데, 아직도 이 잘못된 말투를 바로잡지 않습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두 숨결은 ‘분홍이’요 ‘노랑이’입니다. “분홍이고 …… 노랑이었어”가 아니라 “분홍이이고 …… 노랑이였어”로 바로잡아야 올바릅니다. 이 작은 그림책에는 이밖에도 올바르지 않은 말투가 곳곳에 드러납니다. 몇 가지만 골라서 가다듬어 봅니다.


- 신문지 위에 누워서 햇볕을 쬐고 있었어
→ 신문지에 누워서 햇볕을 쬐었어 

 

- 뭐 하고 있는 건지 혹시 아니
→ 뭐 하는지 너 아니 

 

- 기억이 안 나는걸
→ 생각이 안 나는걸 

 

- 마구 웃기 시작했어
→ 마구 웃었어 

 

- 모든 게 그냥 생겨난 거란 말이지
→ 모두 다 그냥 생겨났단 말이지 

 

- 불가능한 일이니까! 절대로 불가능해
→ 터무니없는 일이니까! 도무지 말이 안 돼


  자리에 앉으라 할 적에는 “자리에 앉으라” 할 뿐입니다. “걸상에 앉아”라 하지 “걸상 위에 앉아”라 하지 않아요. 영어에서는 ‘위’를 가리키는 전치사라든지 낱말을 쓸는지 모르나, 한국말은 영어가 아닙니다. 한국말은 한국말대로 알맞게 써야지요. 이런 말투 저런 글월로 이 그림책을 엮어도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이럭저럭 읽힐 만하고, 글을 읽는 아이들도 혼자서 이 그림책을 읽을 만합니다. 그러나, 옳지 않고 바르지 않은 말투로 엮은 그림책을 읽는다면, 옳지 않고 바르지 않은 말투에 젖어들 테지요.


  아이들이 읽도록 엮는 그림책은 말투 하나와 토씨 하나까지 더 꼼꼼히 살펴야 합니다. 아이들 앞에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삶을 보여주는 어른들은 매무새와 말씨를 스스로 아름답게 추스르면서 착하게 가다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즐겁게 누리는 삶인 줄 돌아볼 수 있기를 빌어요. 사랑스레 어깨동무하는 삶인 줄 서로 깨달아 빙그레 웃을 수 있기를 빌어요. 4346.12.2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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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남매맘 2013-12-28 09:48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책 아직 못 읽었네요.
그나저나 손이 다쳤는데 계속 물일을 해야 해서 상처가 잘 아물지 않겠어요. ㅠㅠ

숲노래 2013-12-28 11:55   좋아요 0 | URL
아물지 않아도, 자꾸 물일 하고 또 하면...
알아서 아물더라구요 ^^;;;
그러나 손은 되게 못생긴 모습이 되지요~

그래도, 그런 것도 예쁜 훈장이라고 느껴요 ^^

착한시경 2013-12-28 09:59   좋아요 0 | URL
예전에 당나귀 실베스타와 요술조약돌,,,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이 책도 읽어보고 싶어요~

숲노래 2013-12-28 11:56   좋아요 0 | URL
윌리엄 스타이그 님 그림책과 동화책은
모두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느껴요.
하나하나 즐겁게 찾아서 읽고
밝은 사랑을 누려 보셔요~

저는 야금야금 하나씩 찾아서 즐기는데
이제 몇 작품만 더 보면
한국에 번역된 책은 모두 모을 수 있어요.
아아아... 아직 번역 안 된 다른 작품을
언제 구경해 볼 수 있으려나...
 
재미네골 : 중국 조선족 설화 재미마주 옛이야기 선집 1
재미마주 편집부 엮음, 홍성찬 그림 / 재미마주 / 1999년 12월
평점 :
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24

 


재미있는 마을이란
― 재미네골
 홍성찬 그림
 중국조선족 설화
 재미마주 펴냄, 1999.12.20.

 


  중국조선족 이야기를 바탕으로 새롭게 그린 《재미네골》(재미마주,1999)은, 책이름 그대로 “재미난 고을” 이야기입니다. ‘골’은 ‘고을’을 가리킵니다. ‘고을’은 ‘마을’보다 큰 곳을 가리키는데, ‘골’이라고 쓸 적에는 ‘밤골’이나 ‘솔골’이나 ‘감골’처럼 여느 마을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마을이름이 ‘재미골’이나 ‘재미말’이나 ‘재미마을’ 아닌 ‘-네’를 넣은 ‘재미네골’이었을까요. 그림책에서는 이 대목까지 낱낱이 알려주거나 다루지 않습니다. 아무튼, 마을사람 모두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재미나게 살아갔다고 하니, 이런 이름을 얻었겠지요.


.. 이 마을은 아주 평화롭고 살기 좋은 마을이었습니다. 마을 사람 모두 마음씨가 곱고 착해서 서로 싸우는 일이 없었죠.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기면 네 일 내 일 따로 없이 서로 도왔습니다 ..  (5쪽)


  재미있는 마을이란 남다르지 않습니다. 평화롭고 살기 좋은 마을이면 어디나 재미네골입니다. 평화란 무엇일까요. 군대를 두면 평화를 지킬까요? 아니에요. 군대가 있대서 평화를 지키지 않아요. 재미네골에는 싸울아비란 한 사람도 없어요. 칼을 차거나 창을 들거나 총을 거머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군인도 없지만 경찰도 없어요. 정보요원도 경호원도 없습니다. 모두들 너그럽게 웃고 따사롭게 어깨동무하면서 살아갈 뿐입니다. 군대나 전쟁무기에 들일 돈이나 품이나 겨를이란 없습니다.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데에 모든 마음과 힘을 쏟을 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군대를 두거나 전쟁무기를 만드는 곳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평화가 없는 곳에는 웃음이 없습니다. 웃음이 없는 곳에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이야기가 없는 곳에는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사랑이 없어요.


  서로 아끼려는 삶이라면 칼이나 총이 있어야 할 까닭이 없어요. 도둑이 있을 턱이 없겠지요. 굳이 대문이 있어야 하지 않아요. 겨울에 부는 드센 바람을 막으려고 울타리를 쌓거나 울타리가 될 나무를 심을 뿐, 누구나 스스럼없이 이웃으로 드나듭니다.


  서로 아끼면서 살아가니 애써 멀리 나들이를 다니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아름답고 사랑스레 살아가는데 무슨 좋은 구경이 있다고 멀리 나다니겠어요. 하늘을 누리고 햇볕을 즐기며 바람과 냇물하고 사이좋게 얼크러집니다. 냇물에서 참방참방 물장구를 쳐요. 들판에서 해바라기를 해요. 숲에서 나물을 캐고 새소리를 들어요.


.. 콩밭의 김을 매고 있던 농부가 무슨 일인지 까닭을 알고 나더니 “여기 네 분은 모두 마을에 꼭 필요한 분들이에요. 농사야 누구나 배워 가면서 지으면 되니 제가 가겠어요.” 하고 말했습니다. 농부의 말에 부락장, 목수, 대장장이, 토기장이는 “하늘과 바람의 뜻에 따라 땅을 가꾸어 우리 마을 창고를 늘 풍성한 곡식으로 채워 주는 농부님이야말로 이 마을의 보배지요. 어디를 가시겠다고 그러세요.” 하고 입을 모았습니다 ..  (16쪽)

 


  그림책 《재미네골》을 보면, ‘부락장’이니 목수이니 대장장이이니 토기장이이니 하고 나옵니다. 여기에 농사꾼이 따로 나옵니다. 그런데, 시골마을에는 따로 ‘농사꾼’이 없어요. 목수나 대장장이나 토기장이도 함께 농사를 짓습니다.  농사지을 겨를이 없이 목수질 하지 않아요. 농사를 안 지으며 대장장이나 토기장이를 하지 않아요. 어느 한 가지만 하는 시골사람은 없습니다. 저마다 조금씩 흙을 일구어요. 저마다 틈틈이 밭을 돌보지요.


  모내기철에 모내기를 함께 안 하는 목수나 대장장이란 없습니다. 가을걷이철에 가을걷이를 함께 안 하는 ‘부락장’이나 토기장이란 없습니다. 목수 일이나 대장장이 일은 여느 때에도 으레 하겠지만, 겨울과 봄에 훨씬 많이 합니다. 일철이 아닐 적에 이 같은 일을 훨씬 많이 하지요. 일철에는 다른 시골사람과 함께 흙일을 합니다.


  그리고, ‘부락장’이라는 이름이 어쩐지 맞갖지 않습니다. ‘부락(部落)’이라는 일본말을 중국조선족도 쓸는지 모릅니다만, 이 그림책은 중국조선족이 쓰는 ‘조선말’로 엮지 않았어요. 남녘에서 쓰는 말로 손질했어요. 그러면, 일본말 ‘部落長’을 ‘마을지기’나 ‘마을 어른’쯤으로 고쳐서 써야 올바릅니다. 우리 겨레 옛삶이나 우리 겨레 아름다운 살림살이를 보여주려 하는 그림책이니, 낱말 하나와 토씨 하나와 말투 하나까지 옹글고 알차게 가다듬을 수 있어야 한다고 느껴요.


  꼭 이 그림책에서 따질 낱말은 아니지만, 시골사람은 스스로 ‘농부(農夫)’라 말하지 않습니다. 시골사람은 스스로 ‘시골사람’이나 ‘시골내기’라 말합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모두 시골사람이었으니 ‘시골’이라는 말도 잘 안 썼어요. 그러면 무어라 했느냐 하면 ‘흙 만지는 사람’이나 ‘흙 가꾸는 사람’이나 ‘흙 일구는 사람’이나 ‘흙일 하는 사람’이나 ‘흙 먹는 사람’처럼 ‘흙’을 말했습니다. ‘농부’라는 이름은 흙을 안 만지는 양반이나 권력자가 흙을 만지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썼습니다.


.. 이웃 마을 사람들은 이 마을엔 언제나 재미난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며 ‘재미네골’이라 불렀답니다 ..  (29쪽)


  재미네골은 중국에만 있지 않습니다. 북녘에도 남녘에도, 사할린에도 일본에도 동남아시아에도 어디에도 있습니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려는 넋일 때에는 어디에서나 재미네골입니다. 서로 아끼지 못하고 사랑하지 않을 적에는 어디에서나 싸움터가 됩니다.


  오늘날 이 나라 어느 도시에서나 아침저녁 출퇴근길이 지옥과 같다고들 말합니다. 교통지옥이라 하지요. 그리고, 아이들은 입시지옥이에요. 입시지옥을 거친 아이들은 취업지옥에까지 시달립니다. 모두 지옥구덩이예요. 어디나 지옥투성이예요. 아름다운 삶이나 즐거운 삶은 아무 데나 없는 듯합니다. 고운 삶이나 착한 삶은 도무지 안 보이는 듯합니다.


  우리들은 왜 지옥불에 빠져 허덕여야 할까요. 우리들은 왜 웃음이 아닌 미움으로 치달아야 할까요. 우리들은 왜 서로 돕거나 아끼기보다는 내 밥그릇만 챙기려 애써야 할까요.


  아이들한테 지옥이 아닌 사랑스러운 보금자리를 물려줄 수 있기를 빌어요. 아이들을 지옥으로 내몰지 말고 따사로운 마을에서 놀며 자랄 수 있도록 보살피기를 빌어요. 아이도 어른도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환하게 웃는 삶 누리기를 빌어요. 4346.12.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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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이야기 - 숨은그림찾기 내 친구는 그림책
안노 미츠마사 지음 / 한림출판사 / 2001년 5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23

 


숲이 있어야 시골도 도시도 있다
― 숲 이야기
 안노 미쯔마사 그림
 한림출판사 펴냄, 2001.5.4.

 


  겨울날 숲길을 거닐면 무엇을 볼 수 있을까요? 겨울날 숲에 깃들어 포근히 쉬는 가랑잎과 풀벌레를 볼 수 있고, 멧새와 멧짐승을 볼 수 있겠지요. 그런데 요즈음은 겨울숲에 깃든 풀벌레나 알집이나 멧새나 멧짐승보다 사냥꾼을 볼 수 있습니다. 사냥총을 들고 사냥을 하려는 사람들 뻥뻥대는 총소리에 깜짝 놀라야 하고, 자칫 사냥꾼들 총알에 맞지 않을까 걱정해야 합니다. 시골에서 살면서 느긋하게 숲을 누리지 못해요. 사냥철이 끝날 때까지 조마조마해야 합니다.


  도시사람은 시골에 왜 찾아올까요. 도시사람은 시골에 찾아와서 숲에 들며 무엇을 누리고 싶을까요. 살찐 멧돼지나 꿩이나 노루나 고라니나 멧토끼나 너구리나 오소리를 잡을 수 있으면 즐거울까요. 도시 길거리를 걸어다니며 먹이를 찾는 비둘기 아닌 깊은 숲에서 살아가는 멧비둘기를 총을 쏘아 잡으면 즐거울까요.


  들나물 캐러 숲을 찾을 시골사람을 무섭게 하는 사냥꾼들 걸음걸이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궁금합니다. 조용한 시골숲을 사냥터로 꽝꽝 못박아 도시 관광객 끌어들이려는 군 행정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궁금합니다.


  시골은 언제부터 도시사람 관광터로 바뀌어야 했을까요. 시골은 언제부터 도시사람이 관광하러 찾아와 돈을 흘리고 돌아가기를 바라는 흐름이 되었을까요. 시골은 언제부터 도시바라기가 되어야 했을까요. 시골은 언제부터 아이들을 도시로 몽땅 보내는 ‘인력 충전소’ 구실을 해야 했을까요. 이러면서, 도시사람이 유기농이나 친환경곡식을 먹도록 흙을 들볶는 ‘흙공장 노동자’ 노릇을 해야 하는가요.


  지렁이가 꼬물꼬물 살아서 움직이는 흙이 싱그럽습니다. 지렁이 한 마리 살아남지 못하도록 농약을 뿌리는 흙은 싱그럽지 못합니다. 개미가 기어다니고 무당벌레가 내려앉으며 벌과 나비가 노니는 풀밭을 이루는 흙은 싱싱합니다. 개미도 무당벌레도 벌도 나비도 찾아볼 길 없는데다가, 풀밭 하나 없이 민둥민둥 흙땅은 싱싱하지 못합니다.

 

 


  잠자리가 날지 않아도 시골이라 할 수 있을까요. 메뚜기도 방아깨비도 사마귀도 없다면, 이런 들판에서 자라는 곡식을 누가 먹을 만할까요. 제비가 찾아오지 않아도 시골이라 할 만할까요. 제비가 잡아먹을 풀벌레와 잠자리와 나비와 애벌레가 없는 곳에서 거두는 곡식이나 열매나 푸성귀는 도시사람을 얼마나 넉넉히 먹여살릴 만할까요.


  숲에는 모든 목숨이 깃듭니다. 커다란 범과 곰도 숲에 깃듭니다. 작은 다람쥐와 공벌레도 숲에 깃듭니다. 여우와 늑대도, 토끼와 고슴도치도, 두더쥐와 수달도, 숲이 있고 냇물이 있으며 갯벌과 도랑과 골짝과 못과 샘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어요. 그리고, 사람 또한 이 모든 숲벗과 숲님과 숲동무가 함께 있을 때에 싱그럽고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나날 누릴 수 있습니다.


  갯벌을 메워 논으로 만들면 사람은 살 만할까요? 바닷가에 핵발전소와 제철소와 유리공장과 중화학공장 잔뜩 세워 갯벌에 살던 게와 조개와 갯것이 모조리 죽으면 사람은 돈을 잘 벌어서 좋을까요? 우리 바다에서 김과 미역과 톳과 다시마와 매생이를 거둘 수 없으면, 우리 바다에서 삼치와 갈치와 조기와 고등어와 오징어를 낚을 수 없으면, 우리 바다에서 아무런 바닷것을 얻을 수 없으면, 우리 살림살이는 얼마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울까요.


  숲을 밀고 송전탑을 때려박아야 경제발전이 될까 궁금해요. 숲을 짓밟고 고속도로와 고속철도를 놓아야 경제발전을 이루는지 궁금해요.


  우리들은 숲에서 무엇을 보는가요. 우리들은 숲에서 어떤 이웃을 만나고 싶은가요. 사람 사이에서도 이웃집이 사라지고, 사람과 다른 목숨 사이에 어깨동무를 하지 않아도 될까요.


  안노 미쯔마사 님이 빚은 그림책 《숲 이야기》(한림출판사,2001)를 읽습니다. 숲에는 수많은 목숨들이 함께 살아갑니다. 숲에는 온갖 이웃들이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웁니다. 숲에서는 수많은 목숨들이 서로 아끼고 돌보면서 살아갑니다. 숲에서는 온갖 이웃들이 푸른 숨을 마시고 맑은 물을 먹으면서 푸른 빛을 흩뿌립니다.


  숲이 있을 때에 비로소 시골이 시골답습니다. 숲이 있을 때에 도시도 문명과 문화를 가꿀 수 있습니다. 숲이 없으면 시골이 무너집니다. 숲이 사라지면 도시도 그예 와르르 무너질밖에 없습니다. 4346.12.2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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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3-12-23 22:02   좋아요 0 | URL
그림책이 너무 좋습니다!!^^

숲노래 2013-12-24 04:52   좋아요 0 | URL
우리 나라에서도 이렇게 숲을 한껏 누릴 수 있는 곳이
어디에나 곱게 남을 수 있기를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