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게 먹는 아름다움



  아이들이 밥을 먹으면서 “아, 밥이 맛있다!” 하고 말하면 어쩐지 기운이 납니다. 아이들이 밥을 먹는 내내 “아, 밥 참 맛있네!” 하고 말하면 새삼스레 웃음이 납니다. 아이들이 밥을 다 먹은 뒤 “아, 밥 맛있었어요! 고마워요!” 하고 말하면 새롭게 즐겁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맛있다’ 한 마디를 들려주지 않더라도 밥을 짓는 살림은 늘 즐겁습니다. 나부터 스스로 즐겁지 않고서야 밥을 짓지 못합니다. 나부터 스스로 신나게 밥을 지어서 차리기에 이 밥을 다 함께 웃음으로 누리고 사랑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16.7.1.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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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안 와서 울었잖아



  하룻밤 서울에서 묵으면서 바깥일을 보았습니다. 새로 책을 내놓았는데, 이 책을 사랑해 주려고 하는 작은 마을방송국이 있어서 그곳으로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왔습니다. 작은아이는 집에서 누나랑 어머니하고 잘 놀았지 싶은데, 저녁이 깊을 즈음 집에 닿아 대문을 여니 큰아이부터 알아차려요. “아버지인가 봐. 아버지 소리가 났어!” 하면서 마루를 콩콩콩 뜁니다. 작은아이는 누나를 따라서 마루를 콩콩 뛰더니 “아버지, 아버지 어제 안 와서 울었잖아!” 하고 웃으면서 말합니다. 따사로이 반기는 아이들을 마주하면서 짐을 풉니다. 큰아이한테 선물로 줄 우산을 건네고, 두 아이가 앞으로 입을 새 속옷을 건넵니다. 새로 장만한 파란 물병을 꺼내고, 이것저것 가방에서 하나씩 내놓습니다. 이러고 나서 머리를 감고 몸을 씻습니다. 서울을 다녀오며 몸에 묻힌 때를 말끔히 벗깁니다. 개운하네, 이제 내 살림으로 돌아오네, 하고 느끼면서 개구리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아이들은 잠자리에 들면서도 서로 속닥거리기를 그치지 않습니다. 2016.6.30.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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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중 듣는 아버지

 


  나는 곁님이나 아이들한테 곧잘 꾸중을 듣습니다. 미처 살피지 못한 일이라든지 제대로 헤아리지 모한 일이 있으면 곁님이나 아이들은 나한테 바로 꾸중을 늘어놓습니다. 꾸중을 들으며 살 적에 기쁘거나 재미있다고 여길 사람은 드물 수 있을 텐데, 꾸중이 꼭 싫지만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미처 뜨지 못한 눈으로 미처 바라보지 못한 곳을 콕 짚어서 밝히는 말이 꾸중이기 때문입니다. 곁님하고 아이들한테서 들은 꾸중을 곱씹으면서 내 몸짓과 말결을 가다듬습니다. 오늘은 아침에 새로운 몸이랑 마음이 되어 일어나자고 생각합니다. 꾸중 듣는 살림이 아니라 노래가 흐르는 살림이 되자는 마음으로 하루를 짓습니다. 2016.6.30.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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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켜보는 힘


  아침 여덟 시 사십 분에 집을 나섭니다. 마을 어귀에 할머니 할아버지 한 분이 군내버스를 기다립니다. 두 분하고 반가이 얘기를 섞다가 버스 들어오는 모습을 봅니다. 때를 살피니 여덟 시 오십이 분. 그런데 우리 집 쪽에서 외침소리가 들려요. 큰아이가 아버지 잘 다녀오시라고 외쳐요. 아, 이 아이는 십이 분 동안 평상에 서서 지켜봤군요. 예뻐라. 사랑스러워라. 지켜보는 힘이 대단하구나. 아버지가 너한테서 새롭게 살림을 배워야겠네. 2016.6.29.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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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을 수 없을 때까지 걷다



  어느새 하루가 지나갑니다. 어제 나는 걸을 수 없을 때까지 걸었습니다. 자전거 발판을 구를 수 없을 때까지 굴렀습니다. 겨우 집까지 자전거를 끌고 온 뒤에는 평상에 털썩 주저앉아서 오랫동안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어제 읍내에서 저자마실까지 하며 챙긴 아몬드를 허둥지둥 씹어먹었습니다. 작은아이를 불러 냉장고에서 우유를 한 통 꺼내어 우유를 한 통 다 마시기까지 했습니다. 집에서 바다를 지나고 멧자락을 넘어서 읍내까지 두 시간, 읍내에서 저자마실까지 보고서 집으로 세 시간, 이렇게 다섯 시간을 자전거로 달리니 온몸이 삐끄덕거리더군요. 자전거조차 네 시간 반쯤 달릴 무렵부터 삐걱거렸어요.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워 두 시간 남짓 흔히 다니기는 했지만 다섯 시간 남짓 하루 만에 달리고 보니 몸에서 도무지 안 받아 주었네 싶어요. 게다가 집에 닿아서 아무것도 안 먹고 물조차 마시지 말고 씻은 뒤에 드러누웠어야 하는데, 이렇게 못했습니다. 아픈 곁님더러 저녁을 지어서 아이들한테 밥상을 차려 주라고 할 수 없으니, 어떻게든 기운을 내려고 허둥지둥 배를 채워서 억지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저녁을 지었습니다. 저녁밥을 차리고 나서 바로 쓰러져서 한 시간 반 즈음 죽은 듯이 끙끙거렸으나 잠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더군요. 아까 허둥지둥 먹은 것이 뱃속에서 삭지 않아 부글거리기 때문입니다. 한밤에 배앓이를 합니다. 걸을 수 없을 때까지 걷다 보니, 이렇게 몸앓이를 크게 하네요. 오늘은 아침부터 일찍 서울마실을 해야 하는데, 이 몸으로 시외버스에서 다섯 시간 즈음 잘 견디어야 할 텐데, 아무튼 곧 배앓이를 마치고 드러누워서 새로운 몸으로 깨어나야지요. 빗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을 달랩니다. 2016.6.29.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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