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타리무를 다듬으면서



  마당 한쪽에서 알타리무를 다듬으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이 다듬기를 힘들어 할 까닭도 지겨워 할 까닭도 없지만, 손이 오래 많이 가는 일이니,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면 이 일을 못하겠네 하고 느낍니다. 알타리무뿐 아니라 그냥 무도, 배추도, 열무도, 오이도, 어떤 김치를 담근다고 하더라도 이 남새를 알뜰히 다듬어 주어야 합니다. 요즈음은 흔히들 가게에서 남새를 장만하지만 지난날에는 밭에서 모두 손수 심어서 돌본 뒤에 거두었어요. 다듬기 하나만 치자면 아주 조그마한 일이요 대수롭지도 않습니다. 여러 달 살뜰히 돌보면서 키우기에 비로소 얻는 남새예요. 이 같은 김치를 손수 담그느냐, 김치를 그냥 사다가 먹느냐, 집에서 김치를 담가 주는 사람이 있어서 젓가락만 손에 쥐면 되느냐, 김치를 담글 적에 옆에서 거드느냐, 이도 저도 아니고 아무것도 모르는 채 사느냐에 따라서 살림뿐 아니라 삶이나 사랑은 틀림없이 달라진다고 느낍니다. 흥얼흥얼 혼자 노래를 부르면서 알타리무를 다듬습니다. 다듬은 것들은 옥수수 둘레에 뿌려 줄 생각으로 따로 건사해 놓습니다. 2016.7.13.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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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리무 사들고 돌아오는 길



  이틀에 걸친 삼례마실을 마치고 고흥으로 돌아옵니다. 아이들을 이끌고 마실을 다녀오지 않았기에 고흥집으로 돌아갈 적에 몸이 홀가분합니다. 오늘은 가방도 제법 가벼워서 읍내에서 ‘새로 담글 김치’를 생각하면서 무엇을 장만할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배추 한 단을 들고 갈까? 열무 두 단을 들고 갈까? 배추랑 열무 사이에서 망설이다가 열무로 고릅니다. 이튿날 아침에 아이들하고 천천히 열무를 다듬은 뒤에 절여서 김치를 하자고 생각합니다. 읍내에서 20시 30분 마지막 군내버스를 타고 마을로 돌아오는데, 읍내 중·고등학교로 다니는 아이들이 꽤 많이 탑니다. 이 아이들은 다른 면이나 깊은 마을에서 읍내까지 버스로 오가는군요. 시골 아이들이지만 창밖보다는 손전화에 눈을 박고야 마는데, 앞으로는 밤숲빛도 바라볼 수 있을 테지요. 집에 닿아 아이들한테 늦은 밥을 챙겨 주고, 밀린 설거지를 하고, 머리를 감고 몸을 씻습니다. 이제 신나는 노래를 틀고서 아이들을 마지막으로 놀린 뒤에 고요히 잠들어야지요. 따사로우면서 싱그러운 시골 밤이 흐릅니다. 2016.7.11.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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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더 많은 책이 아닌

 


  더 많은 책을 읽었으면, 말 그대로 더 많은 책을 읽었을 뿐입니다. 책을 몇 권 안 읽었으면, 말 그대로 책을 몇 권 안 읽었을 뿐입니다. 책을 더 많이 읽었기에 더 훌륭해지지 않습니다. 책을 몇 권 안 읽었기에 안 훌륭하지 않습니다. 책에 서린 숨결을 읽으면서 이러한 숨결을 내 삶으로 맞아들여 기쁘게 새로운 꿈을 짓는 노래로 거듭날 수 있다면, 우리는 누구나 어마어마한 책을 날마다 읽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종이책만 책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계발서를 읽는다고 해서 자기계발이 되지 않아요. 스스로 살림을 새롭게 짓는 몸짓일 적에 비로소 ‘자기계발’입니다. 인문책을 읽는다고 해서 인문 지식을 쌓지 않아요. ‘인문 지식’이란 스스로 삶을 지어서 살림을 가꿀 줄 아는 몸짓이에요. 책으로 쌓는 지식은 그저 책 지식일 뿐이에요. 아이하고 오랫동안 지내 보았기에 아이를 슬기롭게 돌보거나 따스하게 사랑할 줄 알지 않습니다. 아이를 슬기롭게 돌볼 줄 아는 마음일 적에 비로소 슬기로운 어버이입니다. 아이를 따스히 사랑할 적에 비로소 사랑스러운 어른입니다. 언제나, 더 많은 책이 아닙니다. 더 많은 책으로는 늘 ‘더 많은 책’으로 나아가는 길에서 그칩니다. 우리는 ‘더 많은 책’도 ‘더 많은 돈’도 아닌 ‘즐거운 사랑’과 ‘즐거운 이야기’와 ‘즐거운 돈’과 ‘즐거운 웃음’으로 오늘 하루를 즐겁게 노래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한손에 책을 쥐었다면 다른 한손에는 호미를 쥐어요. 한손에 책을 들었다면 다른 한손에는 부엌칼을 들어요. 한손에 책을 집었다면 다른 한손에는 아이들 손을 살며시 어루만져요. 2016.7.11.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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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목소리

 


  아버지는 군내버스를 타고 혼자 웁내로 갑니다. 읍내에서 순천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순천에서는 삼례로 가는 기차를 탑니다. 이날 하루 두 아이는 아버지하고 떨어진 채 시골집에서 낮이랑 저녁을 누립니다. 밥상맡에도 집에도 잠자리에도 아버지가 없는 하루입니다. 아이들은 밤이 되어도 좀처럼 잠들지 못하면서 전화를 겁니다. “아버지 보고 싶어요. 아버지 언제 와요?” “우리는 아무리 멀리 있어도 늘 마음으로 볼 수 있는걸? 아버지는 하루 자고 이튿날 집에 가요.” 오늘날 우리 삶터에는 손전화라고 하는 무척 놀랍고 재미난 기계가 있어서 참으로 멀리 떨어진 데에서도 목소리를 나눌 수 있습니다. 나라밖에서까지 목소리를 섞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이런 기계가 없더라도 서로 마음으로 아끼고 보살피는 숨결이 되면, 며칠 못 보더라도 한동안 멀리 떨어지더라도 마음으로 한가득 따스한 바람이 불지 싶어요. 아이들아 꿈을 꾸렴. 우리는 늘 꿈에서 하나로 만나거든. 아이들아 꿈을 꾸자. 우리는 서로 꿈으로 맺고 이어지는 노랫가락이야. 2016.7.11.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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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표 한 장



  일요일 오늘 순천에서 삼례로 가는 기차는 자리가 거의 없습니다. 오늘 나는 혼자 바깥일을 하러 갑니다. 두 아이는 “같이 가고 싶은데.” 하며 아쉽습니다. 그래, 아버지가 미리 살폈어야 하는데 말이지. 일찌감치 기차표를 살폈으면 너희 자리까지 넉넉히 끊고 함께 기차도 타고 버스도 타고 다른 고장으로 마실도 가고 다른 고장에 있는 동무랑 놀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만 서운해 하지 않기를 바라. 다음에 얼마든지 또 이런 자리가 있으니까. 그때에는 신나게 느긋하게 함께 길을 나서자. 집에서 시원하게 숲바람 마시면서 놀아 보렴. 2016.7.10.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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