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지는 힘



  아이들이 하루하루 새롭게 자라면서 이 아이들한테 쏟는 힘도 차츰 커진다고 느낀다. 이를테면, 자전거를 아이들하고 달리면 예전보다 훨씬 힘이 드는데, 이렇게 훨씬 힘이 들면서도 두 아이가 돕는 힘이 나란히 커진다. 곰곰이 돌아보면,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아이한테 들이는 힘이 차츰 자라야 하는구나 하고 느끼는 셈이라 할 텐데, 아이들한테 들이는 힘은 재미나게도 다시 나한테 새롭게 돌아온다고 느낀다. 저녁이 되면 머리가 지끈지끈 터질 듯이 고단한데, 아침이 되면 언제 고단하거나 힘들었느냐는 듯이 싱그럽다. 아이들은 언제나 새롭게 노는 힘을 키운다면, 어른들은 언제나 새롭게 살림하는 힘을 키운다고 할까. 밤에는 쓰러지는 힘이요, 아침에는 일어서는 힘이다. 2016.5.23.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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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놀다



  어릴 적을 떠올려 본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같이 놀아 준 일은 거의 없거나 아예 없다고 할 만하다. 아버지는 으레 집에 없었고, 집에 있더라도 우리하고 같이 놀 마음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늘 집에 있으나, 집에 있더라도 하실 일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놀 틈이 없다. 모든 놀이는 언제나 스스로 찾았다. 어떤 놀이라 하든 스스로 생각해서 했다. 동무들하고 어울리든 혼자 조용히 있든 언제 어디에서나 모든 놀이는 스스로 했다. 누가 시켜서 놀지 않았다. 누가 가르쳐서 놀 수 있지 않았다. 누가 알려주거나 이끌기에 놀지 않았다. 참말로 스스로 우러나서 놀았다. 어릴 적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늘 마음속으로 그리는데 ‘놀다·놀리다·놀이’라는 말이 참 재미있다고 느낀다. 우리가 살면서 가장 가벼우면서 기쁘게 짓는 움직임이란 바로 ‘놀다·놀리다·놀이’라는 낱말에 살포시 나타난다고 느낀다. 어버이란, 어버이라고 하는 사람이란, 어른으로서 어버이 자리에 서는 사람이란, 스스로 놀 줄 알고, 아이들이 스스로 놀도록 북돋울 줄 알며, 다 같이 기쁘게 웃는 놀이로 살림을 짓는 숨결이지 싶다. 2016.5.20.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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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어젯밤부터 비가 가볍게 내렸다. 비가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가랑잎도 꽃송이도 떨어진다. 마당에 선 후박나무 둘레는 빗물을 맞으며 떨군 잎하고 꽃송이가 가득하다. 바람이 없는 아침에 아이들을 바라보며 외친다. “마당 쓸 사람?” “저요! 저요!” 시골순이랑 시골돌이는 심부름도 즐겁고 소꿉살림도 재미나다. 나는 이 아이들을 북돋우는 말을 즐겁게 외치면 된다. 그러니까, 억지스레 시킬 까닭이 없고, 나무라거나 꾸짖듯이 시킬 일도 없다. 활짝 웃으면서 “누가 함께 밭을 일굴까?”라든지 “누가 씨앗을 함께 심을까?” 하고 부르면 된다. 노래하면서 부르면 되고, 즐겁게 찬찬히 하면 다 된다. 마음에 사랑을 담아서 들려주는 ‘말’은 살림노래가 된다. 2016.5.6.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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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가 쉴 겨를



  제대로 쉬지 않으면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오는가 하고 돌아본다. 느긋하게 쉬지 않은 뒤에는 어떤 일을 어떻게 하는가 하고 돌아본다. 고요히 쉬는 밤을 누리지 않고서 맞이하는 아침은 어떤 하루가 되는가 하고 돌아본다. 쉴 겨를을 스스로 내어 몸도 마음도 새롭게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낀다. 남이 베푸는 쉴 겨를이 아니라, 이 일을 하다가도 저 일을 붙잡다가도 가만히 몸을 누이고 마음을 달래는 겨를을 내야겠다고 느낀다. 온 하루를, 온 나날을, 온 살림을 언제나 사랑으로 짓고 싶은 꿈을 마음에 품으니까. 2016.5.5.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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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날



  아픈 까닭은 새롭게 태어나야 하기 때문이라고 느낀다. 예전에는 아플 적에 몸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했다고만 여겼으나, 이제는 아플 적에 몸이 새로 깨어나려고 뭔가를 알려주려 한다고 느낀다. 몸이 아프니 밥을 짓기 힘겹고, 밭을 갈기도 벅차지만, 아프다가도 몸이 가만히 살아나는 때가 있어서, 이럴 때에 밥을 짓고 밭을 간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햇볕을 쬐면서 밭을 갈 적에 그리 아프지는 않다. 저녁밥을 새삼스레 기운을 내어서 다 짓는다. 그릇에는 담지 못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알아서 저희 그릇에 담아서 먹기를 바라면서 자리에 누우려 한다. 등허리를 펴고 누워서 눈을 고요히 감고 마음속으로 파랗게 눈부신 별을 그려야겠다. 2016.5.2.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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