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가자



  산들보라가 누나를 부릅니다. 같이 가잡니다. 때때로 누나한테 골을 부리지만, 누나가 알뜰히 챙겨 주니 애틋한 목소리로 “벼리야, 같이 가자.” 하고 부릅니다. 상냥한 누나는 어린 동생 손을 잡아 줍니다.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한 걸음 두 걸음 내딛다가 어느새 “더 깊이 가자.” 하고 말합니다. 이 아이들은 어느새 씩씩하게 더 깊이 들어갑니다. 훌륭하네. 두려움이 없는 마음은 참말로 두려움을 끌어들이지 않으니까 아주 잘 할 수 있어. 2016.7.21.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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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모를, 효모를



  집에서 찐빵을 하려고 어제 팥을 쑤었습니다. 더운 여름날 뜨거운 김을 쐬면서 신나게 팥을 쑤었어요. 이러고 나서 밀반죽을 하는데, 밀반죽을 마치고 나서도 무엇을 빠뜨렸는지 좀처럼 깨닫지 못했어요. 아차, 저번에도 그랬는데 효모를 또 빠뜨렸군요. 엊저녁에는 기운이 다 되어 팥소랑 밀반죽을 냉장고에 넣었어요. 새벽에 일어나서 밀반죽에 효모를 넣고 다시 반죽을 해서 종이로 덮습니다. 다음에는, 다음 빵반죽을 할 적에는, 참말로 효모를 잊지 말자고 다짐합니다. 2016.7.20.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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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가고 싶은 아침



  작은아이가 아침부터 “바다에 가고 싶어.” 하고 노래합니다. “아버지도 밥 다 먹고서.” “그래도 바다에 가고 싶어.” “아버지도 밥을 다 먹어야지.” 어제 바다를 다녀왔기에 오늘은 쉬고 싶은 마음입니다만, 작은아이가 바다를 노래하면 바다를 가야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바다에서 물결 맞는 놀이 하고 싶어.” “그래, 그 놀이가 재미있구나.” 어제 바다에 가 보니 7월 20일부터 8월 20일까지 ‘휴가철 해수욕장’으로 꾸린다는 걸개천이 걸렸어요. 그러니까 한 달 동안 자리값을 받으면서 도시 손님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이때에는 우리 같은 시골사람(고흥사람)은 바닷가에서 놀 틈이 사라집니다. 자동차에 사람들에 너무 많아서 자전거를 세울 틈마저 없으니까요. 오늘은 어쩌려나 모르겠는데, 어제도 손님이 제법 있던데, 어쩌면 오늘 바다마실을 가면 앞으로 한 달은 바다 구경을 못할 테니까, 오늘은 좀 힘에 부쳐도 씩씩하게 자전거를 달려야지 싶네요. 자, 옷을 챙기렴. 갈아입을 옷을 챙겨야지. 2016.7.19.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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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짓고 살림을 짓고



  밥을 짓거나 살림을 짓는 하루는 대수롭지 않을 만합니다. 늘 하는 일이거든요. 아침저녁으로 밥을 먹고, 이곳에서 보금자리를 누리면서 지냅니다. 그러나 늘 하는 일이고 늘 먹는 밥을 다루는 일이기에 언제나 새롭게 대수롭다고도 느낍니다. 하루에 한 끼를 먹든 세 끼를 먹든 온마음을 기울여서 다스리는 살림이 아니라면 즐거움이나 기쁨이 일어나지 않아요. 새벽바람으로 부엌을 건사하고, 아침 낮 저녁에 바지런히 부엌을 드나듭니다. 마당하고 뒤꼍을 재게 오가며, 이모저모 안팎으로 거느릴 살림을 헤아립니다. 밥이나 살림이라고 하는 낱말에 ‘짓다’나 ‘하다’를 마음대로 붙일 수 있는 발자국을 되새깁니다. 사람이 사는 하루에 ‘짓다’나 ‘하다’는 가장 대수로운 흐름이자 몸놀림입니다. ‘밥짓기·살림짓기’이고 ‘밥하기·살림하기’입니다. 오늘 지을 이야기를 마음으로 그리면서 아침에 할 일을 떠올립니다. 쌀을 씻고 개수대를 갈무리합니다. 아이들이 깨어나면 어떤 놀이를 즐기고서 어떤 밥으로 몸을 살찌울까 하는 그림을 언제나 새벽 다섯 시 무렵에 마무리를 짓고 기지개를 켭니다. 2016.7.18.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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끙끙거리면서 살아나기



  끙끙거리면서 살아나려고 합니다. 네 시 무렵에 바람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밤바람에 아이들이 감기에 들지 않기를 바라며 이불을 여미어 주었고, 슬금슬금 일어나서 아침에 지을 밥을 떠올리며 쌀을 씻어서 안칩니다. 여러모로 집 안팎에서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느라 아침이나 낮이나 저녁 사이에 모든 기운이 그야말로 빠져나가서 곯아떨어져야 하기 일쑤인데, 귓결로 아이들이 노는 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다스리지요. 차근차근 기운을 차리고 천천히 살아나자고. 새벽에 일어나서 이모저모 한 뒤에 쌀이 붓는 결을 느끼면서 살짝 눈을 감는데, 삼십 분이나 한 시간쯤 거의 죽은 듯이 드러누웠다가 일어나면 몸에서 새 기운이 솟습니다. 끙끙거리면서 살아난다는 말을 요즈음 들어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날마다 드는 잠이란 이 몸을 한 번 죽여서 새로운 모습으로 깨어나도록 북돋우는 일이지 싶어요. 힘들면 그냥 곯아떨어져서 느긋하게 꿈나라로 가고, 꿈나라에서 마음껏 날다가 새 몸으로 돌아가면서 느긋하게 살림을 짓습니다. 2016.7.14.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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