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120] 작은집

 


  아이들한테 발 따순 신이 따로 없어 읍내로 가서 큰아이 신이랑 작은아이 신을 장만합니다. 어여쁜 신이 많습니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저희 마음에 드는 신을 고릅니다. 신고 간 신은 봉지에 담아 가방에 넣고, 새로 산 신을 신고 돌아다닙니다. 작은아이 신은 작은아이 발이 크면 신장에 덩그러니 남을 테고, 큰아이 신은 큰아이가 잘 신고 작은아이한테 물려줄 수 있겠지요. 큰아이 겉바지하고 치마 한 벌, 작은아이 양말 한 켤레를 더 장만합니다. 두 아이 신과 옷을 한꺼번에 장만하니 신값이랑 옷값이 쏠쏠히 듭니다. 한 해를 갈무리하는 선물이려니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예쁘장한 옷을 입지 않더라도 예쁩니다. 아이들은 아이들 마음과 눈빛과 몸짓으로 얼마든지 예쁩니다. 가만히 보면, 아이들은 가장 맛난 밥과 가장 즐거운 놀이와 가장 따스한 품과 가장 싱그러운 나들이와 가장 보람찬 일을 좋아해요. 가장 너른 사랑과 가장 푸른 꿈을 누리며 살아가요. 아이들은 대통령 이름을 모르고, 아이들은 공장이나 발전소를 모르며, 아이들은 자동차 이름이든 신문·방송 새이야기이든 모릅니다. 굳이 살피거나 알거나 찾아볼 까닭이 없어요. 작은 마음은 작은 몸에 깃들어, 작은 마을 작은 집에서, 작은 목소리로 작은 웃음을 꽃피웁니다. 오늘 아이들 신이랑 옷을 산 가게도 ‘작은 집(little house)’이었군요. 4345.12.2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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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19] 무릎노래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개구지게 뛰놀 적에는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어 글을 쓰기 수월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저희랑 놀자고 아버지를 부릅니다. 아이들은 배고프니 밥 달라고 부릅니다. 아이들은 이래저래 뒹굴며 옷을 버려 아버지를 부릅니다. 아직 많이 어린 작은아이는 바지에 똥을 누었으니 갈아입히고 씻겨 달라며 부릅니다. 이리하여, 두 아이 모두 잠든 깊은 새벽에 홀로 살며시 일어나 글을 쓰곤 합니다. 아이들이 뛰놀 적에는 아이들 노랫소리를 들으며 지내고, 아이들이 잠든 때에 비로소 내 마음 곱다시 돌아보면서 글을 씁니다. 그런데, 큰아이가 때때로 깊은 새벽에 잠을 이루지 못해 아버지를 찾아옵니다. 아버지는 모처럼 한갓지게 글쓰기를 할 마음이지만, 잠 못 이루는 아이를 손사래치지 못합니다. “얘야, 이불 가져오렴.” 다섯 살 큰아이는 작은 이불을 갖고 옵니다. 이제 키가 제법 자라 무릎에 누이자면 모자라지만, 큰아이를 무릎에 누입니다. 이불을 덮습니다. 토닥토닥 달래며 잠을 이루기를 빕니다. 아이는 무릎잠을 자고, 곧잘 무릎노래를 부릅니다. 무릎에 누여 부르는 자장노래라서 무릎노래입니다. 아양 떠는 아이가 무릎에 앉은 채 밥을 받아먹겠다 하면 무릎밥이 되겠지요. 무릎이야기, 무릎꿈, 무릎사랑, 무릎놀이, 하나하나 새롭게 태어납니다. 4345.12.2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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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18] 가득 넣어요

 


  장인어른 짐차를 얻어타고 돌아다니다가 기름집에 들릅니다. 창문을 열고 기름집 일꾼한테 이야기합니다. “가득 넣어 주셔요.” “네.” 기름집 일꾼을 바라보며 ‘가득’이라 말하면서 아직 내 마음 한켠 조마조마합니다. 설마 이곳 일꾼은 ‘가득’이라는 한국말을 못 알아들을까 싶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웬만한 기름집마다 ‘만땅’이나 ‘엥꼬’ 같은 일본말을 쓰는 일이 거의 없지 싶지만, 틀림없이 어느 곳에서는 이런 일본말 아니면 듣지 않을 수 있고, 어느 분은 이런 일본말 아니고는 말을 못할 수 있어요. 장인어른은 기름집 일꾼한테 “가득 넣어요.” 하고 말씀하시지만, 차를 댈 적에는 “오라이! 오라이!” 하고만 말해요. “괜찮아요. 됐어요.” 하고 말하면 못 알아들으셔요. 아주 천천히 일제강점기 찌꺼기말이 자취를 감추기는 하는데, 이러는 동안 영어가 슬금슬금 기어들어요. 내 동무 가운데 어느 녀석은 기름집에서 “풀!”이라고 말해요. 뭔 소리인가 했더니, 영어 ‘full’이에요. 나랑 내 식구들은 시골에서 지내고 자가용이 없으니, 온 나라 기름집마다 어떤 말이 오가고, 자가용 모는 분들 입에서 어떤 말이 튀어나올는지 잘 몰라요. 아마 참 엉터리 같구나 싶은 말마디를 내뱉는 분이 있을 수 있어요. 왜 한국사람이 한국땅에서 한국말로 따사로이 말을 나눌 생각을 못할까요. 왜 우리들은 슬픈 사람이 되면서 슬픈 줄조차 못 느낄까요. 4345.12.1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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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17] 감자피자

 


  읍내 저잣거리 마실을 나가는 길에 옆지기가 피자를 먹고 싶다 하기에, 피자집에 들러 치즈피자 한 판이랑 감자피자 한 판을 시킵니다. 피자집 일꾼은 내 말을 제대로 못 알아들었는지 “포테이토요? 고구마요?” 하고 묻습니다. “감자요, 그러니까 포테이포요.” 하고 다시 말하니 비로소 “포테이토피자요?” 하면서 알아듣습니다. 피자는 곧 익습니다. 피자집 일꾼은 상자에 뜨끈뜨끈한 피자를 담습니다. ‘감자알’ 송송 박힌 피자를 들고 피자집에서 나오다가 차림판을 들여다봅니다. 차림판 어디에도 ‘감자’라는 낱말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고구마피자’는 있습니다. 고구마피자는 왜 영어로 가리키지 않을까 궁금합니다. ‘야채피자’가 보입니다. ‘야채(野菜)’는 일본 한자말이니 ‘채소(菜蔬)피자’라 해야 맞다 할 텐데, 한국말로 올바로 일컫자면 ‘푸성귀피자’입니다. 그러나, 감자를 ‘감자’라 일컫지 않는 이 나라에서 ‘푸성귀피자’를 구워서 팔 피자집이 있을는지 알쏭달쏭합니다. 4345.12.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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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16] 빌림옷

 


  한복을 빌립니다. 한겨레가 입는대서 ‘한복(韓服)’이라 일컫는다는데, 한겨레가 입는 옷이라면 ‘한겨레옷’이라고 일컬어야 올바르리라 느껴요. ‘한겨레밥’이고 ‘한겨레집’이며 ‘한겨레말’이라고 말할 때에 알맞구나 싶어요. 그런데, 더 깊이 생각하면, 한겨레는 우리 스스로 ‘한겨레’라 일컫지 않았어요. 그저 내 둘레 모두 한겨레이기에 굳이 옆사람이나 나 스스로를 일컫는 다른 ‘겨레 이름’을 빚지 않았어요. 곧, ‘한복’이니 ‘한겨레옷’이나 하는 금긋는 말마디는 덧없습니다. 예부터 우리 겨레는 누구나 ‘옷’을 입을 뿐이었어요. ‘밥’을 먹고, ‘집’을 지으며, ‘말’을 할 뿐이지요. 1900년대에 들어선 뒤로도 언제나 ‘옷·밥·집·말’일 뿐이었는데, 일본이나 중국이나 미국이나 러시아나, 여러 이웃나라 문화와 이야기가 수없이 스며들면서 비로소 우리 겨레와 다른 겨레 사이를 나눌 ‘새로운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느꼈구나 싶어요. 그리고, 새로운 이름을 비로소 붙이려고 하던 때에는 ‘한문을 쓰던 권력자와 지식인’이 주름잡던 때라, 그무렵 사람들은 한자로 ‘韓服’ 같은 말마디를 적었겠구나 싶습니다. 아무튼, 옆지기 옷(한복)을 빌리려고 나들이를 나옵니다. 옆지기 동생 시집잔치에 입을 옷을 빌립니다. 옷을 빌려주는 곳으로 찾아가니 ‘빌려준다’라는 말만 씁니다. ‘대여(貸與)’라는 말조차 쓸 일이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빌려서 입는 옷이니 ‘빌림옷’입니다. ‘빌림차’이고 ‘빌림돈’이며 ‘빌림책’입니다. 비벼서 먹는 밥이기에 ‘비빔밥’이듯, 빌려서 쓰는 터는 ‘빌림터’가 됩니다. 4345.11.3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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