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135] 풀숨

 


  나뭇잎이 우거지며 나무그늘 이루어집니다. 나뭇잎은 푸른 빛깔입니다. 소나무도 잣나무도 느티나무도 감나무도 매화나무도 뽕나무도 잎사귀는 모두 푸른 빛깔입니다. 나뭇잎 빛깔은 모두 푸르지만, 나무마다 잎빛이 다릅니다. 같은 나무에서도 같은 나뭇가지에 나란히 달린 잎사귀조차 살짝살짝 다른 빛깔이곤 합니다. 모양이나 크기나 무늬나 빛깔이 똑같은 잎사귀는 하나도 없어요. 땅바닥에서 자라는 풀 또한 푸른 빛깔입니다. 풀잎도 풀포기도 하나같이 푸른 빛깔입니다. 풀 빛깔을 바라보며 풀빛이라는 낱말이 나왔을 테고, 풀빛을 헤아리며 나뭇잎 빛깔을 살폈겠지요. 풀과 나무는 잎사귀가 푸르기에 바람이 쏴르르 지나가면 풀내음 물씬 풍기는 풀빛으로 춤춥니다.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쬐면 풀기운 담뿍 서리는 풀볕 깃들며 노래합니다. 나뭇잎 톡톡 따서 말리고 덖어 찻잎으로 씁니다. 풀잎과 풀줄기 툭툭 끊고 물에 씻어 나물로 먹습니다. 풀을 먹으니 풀밥입니다. 풀을 마시니 풀물입니다. 풀마다 어린 숨결을 내 몸으로 받아들이니 풀숨입니다. 입으로는 풀밥 먹으며 풀숨 맞이하고, 코와 살결로는 푸른그늘, 풀빛그늘, 풀그늘을 누리면서 풀숨 마주합니다. 4346.3.1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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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34] 착하며 곱고 참다운

 


  착한 사람이 아름다움을 느끼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이 참답게 삶을 일굽니다. 참답게 삶을 일구는 사람은 시나브로 착한 길을 걸어요. 착한 마음이 되어 스스로 몸을 곱게 건사합니다. 내 몸 곱게 건사하는 착한 매무새이기에, 이웃과 동무 몸 또한 곱고 튼튼하며 씩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손을 내밀고 어깨동무를 하며 서로서로 곱게 살아갈 보금자리를 돌봅니다. 어깨동무하는 사람들은 슬기롭게 생각을 기울여 삶을 빛내는 참모습을 하나둘 깨닫습니다. 참삶은 참사랑에서 비롯하고, 참사랑은 참마음에서 비롯하며, 참마음은 참꿈에서 비롯합니다. 착한 손길로 풀과 나무와 흙을 쓰다듬습니다. 고운 눈길로 새와 벌레와 짐승을 마주합니다. 참다운 마음길로 살붙이와 이웃을 얼싸안습니다. 착하게 살아가는 어버이가 아이한테 착한 몸짓 물려줍니다. 아름답게 살림하는 어버이가 아이한테 아름다운 삶터 이어줍니다. 참답게 이야기하는 어버이가 아이한테 참다운 넋 보여줍니다. 아이들이 즐겁게 받을 세 가지란, 어른 누구나 기쁘게 누리며 가꿀 세 가지입니다. 4346.3.1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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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33] 걷네

 


  걷습니다. 혼자서 걷고, 여럿이서 걷습니다. 걸어갑니다. 홀로 걸어가고, 아이들과 걸어갑니다. 두 다리로 걷네요. 두 다리로 들길을 걷고, 논둑길을 걷습니다. 골목길과 고샅길을 걷습니다. 시골길을 걷고, 마을길을 걷습니다. 바닷가를 걷고 모래밭을 걷습니다. 숲길을 걷고 풀밭을 걷습니다. 밭고랑을 걷지요. 겨울날 빈 논두렁을 걸어요. 마당을 걷고, 읍내를 걸어가요. 두 다리를 믿는 마실은 ‘걷기’나 ‘걷는 마실’, 곧 ‘걷기마실’입니다. 걸어서 다니기에 이웃한테 ‘걷자’고 말합니다. 나 스스로 걸어가니 ‘걷네’ 하고 이야기합니다. 때로는 자전거를 몰고, 때때로 자가용이나 버스를 얻어서 탑니다. 다만, 내 삶 한복판에는 두 팔과 두 다리가 있습니다. ‘걸어서’ 길을 가는 삶입니다. ‘두다리마실’이나 ‘두발나들이’라 할 만합니다. 걸음은 빠를 수 있습니다. 걸음은 느릴 수 있습니다. 시골 읍내조차 자동차 많고 배기가스 매캐하기에, 걸음을 재게 놀립니다. 마을 할배가 농약을 칠라치면 곱던 꽃내음 사라지고 숨이 갑갑하니, 걸음을 바삐 합니다. 제비가 찾아와 머리 위에서 춤을 추면, 천천히 천천히 하느작 하느작 걷습니다. 세 살 작은아이가 아장아장 거닐면, 아이 발걸음에 맞추어 느긋느긋 찬찬히 걷습니다. 걷고, 거닐고, 걸어가면서 생각을 즐겁게 여밉니다. 4346.3.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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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32] 풀물

 


  가게에서 ‘양송이 스프’를 사다가 끓입니다. 퍽 어릴 적에 먹던 일이 떠올라, 나도 한 번 집에서 가루를 풀어 천천히 끓이고는 밥상에 올립니다. 서양사람은 스프를 먹으니 ‘양송이 스프’라는 이름이 적힐 텐데, 서양사람이 한겨레 ‘죽’을 가게에서 사다가 먹는다면, 그 가게에서는 서양사람한테 어떤 말로 죽을 말할는지 살짝 궁금합니다. 서양사람은 ‘죽’을 서양말(영어)로 옮겨서 이야기할까요, 아니면 ‘zuk’이나 ‘juk’이라 적으며 가리킬까요. 다섯 가지 푸성귀를 가루로 내어 찻물처럼 마신다는 ‘야채 스프’를 마십니다. ‘야채 스프’라는 이름은 누가 지었는지 알쏭달쏭합니다. ‘야채(野菜)’는 일본 한자말이고, ‘스프/수프(soup)’는 영어일 텐데, 일본에서 먼저 이런 풀물을 마신 뒤, 한국에 들어왔나 싶기도 합니다. 가만히 따지면, 가게에서 파는 ‘양송이 스프’는 ‘양송이 죽’이요, 사람들이 마신다는 ‘야채 스프’란 ‘풀물’입니다. 푸성귀를 달이거나 끓인다는 뜻에서 ‘푸성귀 물’이라 할 수 있어요. 푸른잎 푸성귀나 풀을 갈아 마실 때에 흔히 ‘풀물’이라 할 테니, ‘야채 스프’ 같은 이름은 ‘푸성귀 물’이라 다듬을 때에 어울리겠지요. 몸을 생각하는 먹을거리라 하면, 몸을 살리며 마음 살리는 흐름을 살펴, 마음을 생각하는 말을 한 번쯤 짚을 수 있기를 빕니다. 4346.2.2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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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31] 시골살기

 


  서울로 가는 사람이 있고, 시골로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일자리 찾으려는 사람이 있고, 시골에서 일거리 살피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서울서 살고픈 사람이 있고, 시골서 살고픈 사람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살아가면 서울살이요, 시골에서 살아가면 시골살이입니다. 어디에서 살아가든 스스로 즐거울 때에 아름답습니다. 어디에서 살더라도 스스로 웃고 노래할 때에 사랑스럽습니다. 즐겁게 누리자는 삶이요, 사랑스레 어깨동무하자는 하루라고 느낍니다. 시골에서 태어난 이라면, 서울살기를 꿈꿀 만합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이라면, 시골살기를 바랄 만합니다. 시골에서 태어났기에 오래오래 시골을 아끼고 돌보며 살아갈 꿈을 꿀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터라 한결같이 서울을 쓰다듬고 보살피며 살아가자 바랄 수 있습니다. 나는 옆지기와 아이들하고 시골에서 지냅니다. 시골에서 살기를 바랐고, 시골살이 누리기를 꿈꾸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바라며 꿈꾸는 대로 삶을 이루는구나 싶습니다. 4346.2.2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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